연안 송씨(延安宋氏)② (시조 : 송 한)
연안(延安)은 황해도에 있는 고장으로 고구려 때 동음홀 또는 고염성이라 부르다가 신라시대에
해고군, 고려에서는 염주·영응현·복주·석주·온주 등으로 고쳐 불렀고, 충선왕 때 연안부로 고쳤다.
1895년 군이 되었으며, 1914년 배천군과 합하여 연백군이 되었다.
연안 송씨(延安宋氏)의 시조 송 한(宋 罕)은 고려 고종 때 호장(戶長)을 지내며 나라에 공을 세워
염주군( 州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받들고, 봉군지(封君地)인 염주가 연안
으로 개칭됨에 따라 그 곳을 관향지로 삼게 되었다.
그후 한의 손자 흥(興)이 고려 말기에 주요 관직을 거치면서 어지러운 정국 수습에 많은 공적을
쌓았으며 벼슬이 직제학(直提學)을 거쳐 지제고(知制誥)에 이르러 연안백(延安伯)에 봉해졌고,
그의 아들 윤서(允庶)는 충숙왕 때 보승중랑장(保勝中郞將)을 거쳐 충목왕 때 문하시중평장사
(門下侍中平章事)로 오원군(五原君)에 봉해져서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한편 오원군 윤서의 둘째 아들인 전실(田實)은 공민왕조에서 중랑장(中郞將)과 군수(郡守) 등
주요 관직을 역임했으나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로 두문동으로 은거하여
절의를 지켰으며, 그의 아들 의강(義剛)은 태종 때 곡산 부사(谷山府使)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특히 조선조에 와서는 병조 정랑(兵曹正郞) 인(麟:부사 강의 아들)과 그의 순자 순(純:수군 절제사
를 역임)이 유명했으며, 직장(直長) 세우(世遇)의 아들 대립(大立)은 부제학(副提學)을 역임하고,
그의 아들 4형제 대에서 정기(廷琦)를 파조로 하는 형참의공파(刑參議公派), 정필(廷弼)을 파조로
하는 예참의공파(禮參議公派), 정수를 파조로 하는 병참의공파(兵參議公 派), 정광(廷光)을 파조로
하는 호참의공파(戶參議公派) 등 크게 네 파로 갈라져서 연안 송씨의 4대 산맥을 이루었다.
그밖에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는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이현(以顯:정수의 아들)과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한 경직(慶稷)이 유명했고, 경적(慶積)은 성균관 교수(成均館敎授)를 역임
하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경득(慶得),해남 현감(海南縣監) 경인(慶仁), 효자(孝子) 희천
(希天), 학자(學者)지경(之璟)·의증(義曾), 목사(牧使) 인수(仁粹) 등과 함께 연안 송씨를 더욱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연안 송씨는 남한에 총 88가구, 37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