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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밀양) 변씨의 시조는 변정실(卞庭實)
고려 성종조에 등과하여 벼슬이 문하시중에 오르고 팔계군에 봉해졌다.
익호는 文烈(문렬)이다.
팔계는 초계의 옛이름으로 후손들이 초계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그런데 변정실의 4대손이 밀양에 시거하여 그 후손 일부는 밀양을 관향으로 삼았다.
밀양변씨(密陽卞氏)에 대(對)하여
◈ 밀양변씨의 시조 및 유래
변씨의 본관은 초계(草溪)와 밀양(密陽) 2본이 대종을 이룬다. 이들은 모두 고려시대에 문하시중을 지낸 도시조 변정실(卞庭實)의 분파다. 그러나 종파는 초계변씨다. 초계변씨에서 분적한 밀양변씨는 고려 때 국자진사를 역임하고 밀양에서 대대로 살아온 변고적을 1세로 한다. 밀양변씨는 초계변씨와 대종회를 같이하고 있다.
◈ 밀양변씨의 대표적 인물은 변계량(卞季良)이다.
그는 조선 개국 후 예조판서, 참찬 등을 지내고, 태종 때 대제학에 올랐으며《태조실록》 편찬, 《고려사》 개수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의 아버지 변옥란(卞玉蘭)은 고려 말 각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조선 개국 초에 중추원검교판사가 되었다.
◈ 시조 변정실의 아들 변광(卞光:장파), 변요(卞耀:중파), 변휘(卞輝:계파) 3형제를 기점으로 크게 3갈래로 갈라졌다.
그 후 시조의 둘째 아들인 변요의 손자 변고적(卞高迪)이 밀양에 살면서 밀양변씨(密陽卞氏)로 분적했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세거지명(世居地名)에 따라 초계, 밀양 외에도 원주, 팔계, 진주, 청주, 경주, 장성, 남원 등 44개 파로 분관(分貫)되었으나 모두가 동조동근(同祖同根)이다.
지금은 모두 합보(合譜)를 하여 계대(繼代)하고 있다.
◈ 일찍이 영남내륙과 호남지방에 뿌리를 내리고 도덕과 학문의 집안으로 명성을 떨친 변씨(卞氏)는
시조의 맏아들 변광의 후손인 장파(長派)가 변씨 일문의 6할을 차지하여 영남과 호남지방에 많이 살고 있 다.
둘째 아들 변요의 후손 중파(仲派)는 경상도 지방에,
막내 변휘의 후손인 계파(季派)는 합천군을 중심으로 집중 세거하며 명문의 기틀을 다져왔다.
장파에서는 시중(侍中) 변광의 8세손 변남룡(卞南龍)이 조선이 개국되자 한성판윤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직산(稷山)에 은거한 후 절의를 지켰으며, 그의 아들 7형제가 현달했다.
◈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했던 장남 변혼은 사복시 주부를 역임했고, 둘째 변순(卞純)은 홍문관 교리를 거쳐 연안부사로 나가 장흥부사였던 아우 변타, 참판 변굉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 다섯째 아들인 변효문(卞孝文)은 태종 때 알성문과에 급제, 직제학을 거쳐 첨지중추원사로 일본에 다녀왔고,「오례의주(五禮儀注)」를 상정(詳定)했으며「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편찬했다.
한편 변효문의 증손 변형량(卞亨良:감의 아들)은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으로 연산군 때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정자(正字)로 있다가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무장(茂長)에 유배되었다가 효수 당했다.
변승세(卞承世)의 아들 변훈남(卞勳男)은 군수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명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연안공(延安公) 변순(卞純)의 증손 변준(卞雋:훈련원 부정 변옥곤의 아들)은 중종반정에 공을 세워 정국사등공신에 책록되고 지의금부사를 거쳐 병조판서에 올라 초계군(草溪君)에 봉해졌다.
그 외 변형량(卞亨良)의 둘째 아들로 선조 때 효행을 떨쳐 정려가 내려졌던 변경복(卞景福)과 < 변충효(卞忠孝) >로 불리웠던 변시익(卞時益:경복의 손자)이 있다.
한말에 와서는 마동(麻洞) 창덕궁 부근에 살았던 변지사(卞知事)의 아들 변원규(卞元圭)가 유명하다. 그는 한성부 판윤을 지냈으며, 명판윤(名判尹)으로 이름났다.
시조 변정실의 둘째 아들 변요의 후손인 중파(仲派:밀양변씨)에서는 공양왕 때 호(戶), 병(兵), 이조(吏曹)의 판서를 지내고 이성계를 도와 개국원종공신으로 검교판중추원사에 올랐던 변옥란(卞玉蘭)의 아들 3형제가 대표적이다.
◈ 조선 초에 이조판서를 역임한 변맹량(卞孟良:옥란의 맏아들)의 아들 변필상(卞必祥)은 좌승지를 지냈으며, 이원계(李元桂:이성계의 이복형)의 사위가 된 변중량(卞仲良)은 1398년(태조7) 제1차 왕자의 난에 정도전의 일파로 몰려 화를 입었다.
◈ 태종조의 변문형(卞文衡), 변계량(卞季良)은 변옥란의 막내 아들로 20여 년 간 대제학을 지내며 명문장가로 손꼽혔다. 특히 그는 역대 신하들의 말이나 행실로써 경계가 되고 본받을 만한 것을 모아서 정부상규설(政府相規設)을 저술했다
◈ 밀양변씨(密陽卞氏)
밀양변씨는 2000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전국에 5,298가구 16,911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됨.
또 변씨 인구는 2000년 현재 78,685명이다. 초계변씨 49,506명, 경주변씨 2,741명, 남원변씨 1,012명, 부용변씨 265명, 원주변씨(卞氏) 5,784명, 장성변씨 566명, 진주변씨 594명, 청주변씨 758명, 팔거변씨 267명이다.
◈ 초계변씨 밀양변씨 세계
참고 사이트 : http://www.surname.info/byeon/cho_gye.html
◈ 밀양변씨에는 거창파,부평파,이천공주파,비안파,청도파,영산파등의 지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