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를 찾는 순례의 길
박동영
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은 누구나 똑 같다고 본다.
먼저 태어날 수는 있겠지만 가는 것만큼은 순번을 논 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이라 하겠다.
그러듯 사는 길도 여러 형태로 가는 것이다.
여기 이 한 사람도 누구나 안고 있는 시련과 똑 같이 가고 있었지만, 어느 날인가, 일어났던 심리적 변화는 상상을 초월할 일이였다.
동짓달 초 송골송골 솟구치는 바람 따라 햇귀 머금은 붓 끝 자락으로 열심히
하늘 천 따지를 써 내려가는 중이였다.
한참을 쓰고 있는데 분명 어디선가"너는 마음을 비워야한다."라는 말이 들리지 않은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데 과연 누가 했을까?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고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것 참 무슨 계시였을까! 계속적으로 "마음을 비워야 된다."는 깨침이 법어처럼 맴돌고 있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다. 내 생에 처음으로 절간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던 것이다.
주지 스님은 수차례 면식을 익힌 터라 “스님, 스님.” 부르며 요사채로 다가갔다.
"아니 처사 아닌가, 어연 일이야?“
손을 덥썩 잡고 근력 좋게 끌어당긴다. 건성으로 건네는 인사치레가 아니다.
조금 뜸을 들이는 척 축대 밑에 버티고 섰다.
"처사, 행랑은 울러 매고 왜 그렇게 있는 거야 허허."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사실 내가 불교 신도도 아니었지만 가스 공급 차 내왕이 많아 스님과의 인연이 닿아 있었던 터였다.
"스님 저 올부터 맘 좀 비우러 왔심니더."
스님은 깜짝 놀라며
"처사, 엄마는 어떡하고?"
대충 말을 하고
"우째끼나 스님 다 이자뿌고 기도 좀 할랍니더."
무턱대고 조르니
"그러머 3천배 7일기도를 해요. 기도는 지장전에서 하고."
이렇게 말하고 스님은 종종걸음으로 주지실을 향해 들어갔다.
나는 깜짝 놀라며
'삼천 배... 삼천 배...' 왜 이렇게 절을 많이 해야 하는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무턱대고 지장전 법당으로 나의 전신을 맡겼다.
기도하러 오기 전 나는 어머니 병간호를 하고 있을 때였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자신에게도 눈도 감지 못하고 입에 밥술을 넣을 수 없도록
구안와사란 병이 와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햇살 드는 아침나절 말문을 닫고 숨을 쉬시는지 거뒀었는지 모를 정도였었다. 나로서도 '엄마가... 엄마가...' 라는 소리 밖에 나오지 못하였다.
그리고 한참 후에 착잡한 심정으로 효성이 지극치 못했던, 자신을 질책도 해 보았다. 오지랖은 촉촉이 적셔지고,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모질 수도 있구나, 하고 한탄도 했었다.
3개월간의 간호 중이었지만, 무언가에 홀렸는지 생각지도 못했던 삼랑진 염동 삼봉사란 절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기도를 하기 위해 지장전에 들어섰지만 부리부리한 조각상을 보니 겁도 났다.
뒤통수를 당기는 것 같으면서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꼭 지옥에 들어온 기분 같기도 해서 한동안 오들오들 떨면서 마음 다스리기에 바빴었다.
처음이라 막무가내로 평절 하듯이 하고 있을 때, 어느새 스님이 들어와서
“처사, 그러는 게 아니야” 라며 직접 시범을 보이지 않는가.
“처사, 이것은 절이 아니고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를 땅에 닿아, 엉덩이가 발굽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기도야, 또 이것이 바로 오체투지라는 것이야. 그리고 손바닥을 올리는 것은, 부처님을 받든다는 뜻이지.
”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일러주고는
<나무 남방화주 대원본존 지장보살, 지장보살...,> 명호를 쪽지에 써 주었다.
그 때부터 막연하게 애타게 불러보고 찾았지만'찾는 자'와 '찾고자 하는 이'는 구름 낀 밤하늘에 별을 찾는 격으로, 혼란을 일으켜 겨우 숨만 고르는 것 같았다.
첫 날은 천오백 배, 다음 날은 천팔백 배, 이렇게 하는 순간마다 육신은 만신창이가 되도록 아프기도 하였다. 그동안 잊었던 옛날 일들이 필름처럼 지나갔으며, 감고 있는 눈 속에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였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아픔과 괴로움도 사라지고 정신도 맑아오기 시작했었다. 이틀간 기도 속에 하루는, 아주 조용히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무엇인가 머리에 스치는 무언의 말이 귓가를 두드렸다. '넌 하나가 아니고 둘이야' 이렇게 연속적인 말소리가 들리질 않은가, 기도 중인지라 무언의 대꾸로 '허어, 그 이상타, 누가 그러는가' 속으로 되뇌며 정성을 다해 기도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한 참 후 마음의 변화 속에 혼란과 진통이 물밀 듯 밀려왔으며 '왜 내가 둘이냐'에서부터 '내가 누구냐'란 혼몽 속에 나를 찾게 되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손꼽은 일주일동안, 직접 뭔가를 알게 될 때가 바로 깨우침과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오체투지란 것을 통하여 몸 일부분도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나를 찾아 간다는 일념으로 어느새 7일의 기도는 끝이 났었다.
그러나 이것도 욕심인가, 라는 여유도 없이
"스님, 저 기도를 조금만 더하면 안 될 까요?"
라고 말을 했더니만, 3일간 기도를 더 하라고 했다.
3일간의 기도 중에서는 너무나 많은 마음의 변화가 왔었지만, 숨만 몰아쉬는 어머니의 생각에
이것도 불효인 것만 같았다.
허나 이것도 사랑의 깨침이다. 라는 생각은 막연한 이유에서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10일간의 기도 입제와 회양을 마쳤다. 내려오기 싫었지만 스님의 말 중에 내려오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었다.
"처사, 어머니가 동지 스무엿새 날을 넘기기 힘드니 갔다가 다시 와요."
황당한 말이었지만 기도하기 전을 생각하니 나무랄 수 없는 현실에는 뿌리치질 못했다.
"네, 스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기도를 접고 절문을 나서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과 어머니의 모습이 걱정되어, 한 걸음에 달려와 방문을 열었다. 순간 이게 웬일인가,
“엄마”라고 부르는데 스치는 두 형상이 있었다.
바로 현재와 미래의 어머니 얼굴이 스치는 것이었다. 자신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꽉 차있었기에 "지장보살, 지장보살," 계속 명호를 불러가며 바라보았다.
열흘 전의 모습은 생소할 정도였고, 지금의 웃음 짓는 모습에 안도의 빛을 보았다.
다시 병간호는 시작이 되었지만, 자신만이 아는 무언가를 찾기도, 하고 얻기도 하면서
마음의 기도는 계속되었다.
그러다 2000년 1월 2일 아침 눈을 뜨고 나도 모르게 보일러 불도 껐다.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도 불러 어머니를 지켜보라고 부탁했다. 무엇인가 서두르고 있었지만 혹, 정초라 어머니가 금방이라도 깨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달력을 들여다보니, 바로 스님이 말을 한 음력동지 스무엿새 날이었다.
너무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면서, 한동안 다스려진 마음으로 장례는 무사히 치르게 되었다.
그 후 또다시 행랑을 둘러 맨 채, 어디론가 달음박질 치고 있었다. 한 구석엔 나를 찾아 간다는 구심점이 자리 잡힌 채, 지금도 열심히 가고 있다.
자신이 기도하면서 혼자 느끼고 깨달은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예컨대 살아가는 가운데 내가 무엇을'했느냐'가 아니고'하느냐'에서 악은 시작이라 느껴진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기에 선과 악이 마주치기 마련인 것이다. 자신들이 태어날 때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찾았겠는가?
오직 어머니의 젖만 먹고 싶었을 것이다. 그 순수한 선악이 나를 찾고자 하는 계시물이 아니겠는가.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찾아 가고 있다.
첫댓글 기도 잘하여 어머니를 왕생 극락으로 쉽게 가시도록 도우셨군요. 앞으로도 열심히 정진하시길 염원합니다.
아직 기도의 의미를 모르고 살아가는 제 자신이,,,막연한 마음속 기도만 합니다~! 마음과 몸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될긴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