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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사
화엄경에 유심게(唯心偈)라는 글이 있습니다.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상사를 다 그린다.
오온의 육신도 이 마음으로부터 생겨났으며, 세상의 일체 법을
만들지 않은 것이 없다. .....
만약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응당
법계의 본성을 잘 관찰하라. 일체가 다 이 마음이 만들었느니라."
그렇습니다.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 되므로 모든 것에 우선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모든 행복과 불행도 이 마음이 만들며, 천당과
극락도 이 마음이 만듭니다. 불교는 한마디로 말하면
이 마음을 깨달아 알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우리 나라의 고려시대에 보조 지눌(普照知訥)이라는
큰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 불교의 근본이 되며 만류의
핵심이 되는 이 마음의 문제를 철저히 깨달으시고 그 내용을
잘 정리해서 진심직설(眞心直說)이라는 글로서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경전연구실 문수원>에서는 법화경, 금강경, 화엄경
여래출현품, 임제록, 유마경, 증도가, 신심명, 지장경 등을
공부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보조스님의 <진심직설>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어 이렇게 작은 책자를 간행하여 교재로 쓰게
되었습니다.
강의에 직접 동참하신 분이나 테이프를 통하여 공부하시는
분이나 모두가 불교의 근본이며 참 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들의 마음을 이 <진심직설> 공부를 통하여 깊이
깨닫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디 이 인연 이 공덕으로 언제나 건강하시고 가정이 항상
화목하시기를 부처님 전에 기도드립니다.
모두 부처님 되십시오.
경전연구실 문수원
1997년 3월 23일 如天 無比 합장
진심직설 법문 제1강
眞心直說 序
或이 曰
혹 왈
祖師妙道를 可得知乎잇가
조사묘도 가득지호
曰 古不云乎아 道는 不屬知하며
왈 고불운호 도 불속지
不屬不知하니 知는 是妄想이요
불속부지 지 시망상
眞達若不疑之地는
진달약불의지지
猶如太虛寬廓이어니 豈可强是非耶리요
유여태허관확 기가강시비야
경전에 대한 공부를 하셨고 오늘은 진심직설이라고 하는 책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는데, 불교에는 아시는 데로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상당히 방대한 경전이 있습니다. 어떤 종교를 보더라도 불교같이 그렇게 가르침이 그렇게 가르침의 양이 그렇게 많은 종교는 아마 없을 거예요.
기껏해야 신. 구약 두 권 정도, 또 코란이라 하더라도 역시 불경에는 역시 비교가 안되고, 유교의 경전이라 하더라도 그렇고 어떤 종교에서도 불교의 그 가르침 같이 그렇게 많은 것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불교의 경전이 어째서 그렇게 많은가? 또 우리가 우리 잘 모르는 불자들은 불교의 경전하면은 그냥 경이라고 이렇게 생각을 하죠. 그런데 조금 우리가 조금 공부를 하다 보면은 이것은 경이다. 이것은 또 무슨 논이다. 이것은 또 어록이다 하는 그런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 불교에는 부처님을 위시해서 성인이 많죠. 성인이 첫째 부처님인데, 부처님 있는 데는 보통 이제 경(經)이라고 그렇게 하고. 그 다음에 부처님이 제정한 내용가운데 경 말고 또 율(律)이라고 하는 말도 써요.
율! 율이라고 해서 율장이라고도 하는데 역시 그것도 분류를 하면은 경하고 나눠서 이야기를 하지만은 또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보면은 같이 취급을 합니다.
그런데 이제 부처님 이후로 부처님의 많은 제자가 계셨죠. 그런 분들을 조사라고 그래요. 조사는, 조사 스님들은 맨 처음에 당신의 깨달음을 논(論)이라고 표현할 때 논이라고도 하는 것으로도 표현하고, 그 다음에 소라고도 표현을 하고 그 다음에 어록(語錄) 등 이렇게 나누어서 볼 수가 있습니다.
불교에 방대한 소위 팔만대장경 그것을 나누면은 대개 경이다. 율이다. 논이다. 이렇게 해서 삼장이라 그래요. 삼장! “경율론(經律論) 삼장이라.” 그래서, 장은 옛날에 책을 바구니에 이렇게 담아 가지고 이것은 경이 담긴 바구니, 이쪽엔 율이 담긴 바구니. 이쪽엔 논이 담긴 바구니. 이렇게 큰 어떤 바구니에다가 담아 가지고 보관을 했던 그런 전통에 의해서 장자는 그런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 가지만 있어오다가 나중에 또 그 경을! 그리고 혹은 율을! 그리고 또 논을! 좀 더 이제 뒷사람들 이 자세하게 잘 알도록 설명한 것이 논이라는 것이 있고, 또 그 외 경이니. 율이니. 논이니. 하는 그런 것을 해석한 글 말고, 자기가 어떤 불교적인 깨달음이 있으면은 그것을 또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뒷사람들에게 정리를 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저술을 한 것이 있고, 혹은 또 법문 한 것들을 기록하는 경우가 있어요. 스스로 저술을 하거나 혹은 법문을 하면 그것을 제자들이 낱낱이 기록을 합니다. 기록을 해서 책으로 남기는 그런 경우! 그런 경우가 많죠. 그것을 대개 어록이라고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조사어록! 흔히 우리가 조사어록 그런 표현을 쓰는데, 불교에는 부처님을 위시해서 부처님 이후에 또 많은 훌륭한 제자들! 그야말로 성인이라고 할 만한 그런 제자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무슨 초기에 가섭존자라든지. 아란존자라든지. 상락화수라든지 사자존자라든지 쭉 내려와서 그 다음에 용수보살이니. 마명보살이니. 인도에만 하더라도 그렇고, 그 다음에 중국으로 오면은 달마대사라든지. 그 다음 육조스님이라든지 쭉 그냥 우리가 대강 알기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그런 훌륭한 조사가 있습니까?
임제스님이니. 황벽스님이니. 영가스님이니 뭐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그런 조사 스님들이 정말 불교 역사 속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사실 부처님만 위대한 게 아니 예요. 부처님 이후 부처님 제자들도 부처님 못지않은 그런 훌륭한 제자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원효 스님이니. 의상 스님이니 하는 이런 이들이 얼마나 훌륭했던 그런 분들입니까? 그래서 불교가 전래된 그런 국가에는 역사적으로 불교공부를 깊이하고 수행을 깊이해서, 부처님의 그 깨달음의 경지에 거의 버금가는 그런 수행과 그 깨달음에 도달한 분들이 사실은 아주 많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분들의 말씀! 또 그런 분들의 저술! 이런 것들은 부처님의 경전에 절대 못 지지 않고 어떤 의미에서는 경전은 오히려 지리법련하고 장황하다면은 조사 스님들 말씀은 아주 정곡을 찌르고 간단명료하고 그래서 우리들이 이해하기가 더 쉬운 그런 감이 없지가 않은 그런 어록들이 아주 많습니다.
뭐 육조단경 같은 것은 얼마나 훌륭한 경전입니까? 그것도 육조 해능 스님을 글이지마는 부처님에 경전에 조금도 못지않다 해서 경(經)자를 부쳐요. 물론 조사어록에 해당 되지마는 육조단경이라고 경을 이렇게 부치거든요. 우리나라 원효 스님만 하더라도 그 저술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우리나라에 신라에서부터 고려로 또 조선시대로 이렇게 내려오면서 많은 훌륭한 도승들이 있었는데, 오늘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것은 그런 부처님으로부터 훌륭한 많은 조사 스님들의 역사 속에서,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스님이라고 하는 훌륭한 분이 계셨어요.
그 분의 어록! 그분은 정말 고려불교를 대표하고 신라에 원효와 의상이 있었다 라고 한다면은, 고려에 와서는 진각국사! 또는 보조국사(普照國師)! 물론 진각 국사는 보조스님의 제자지마는 보조 스님이니 또는 진각 국사니 또는 마용 스님이니 이런 이들을 들 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첫 손가락 꼽는 한 분을 꼽으라 하면은 당연히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보조 지눌 스님을 꼽을 수 있지 않겠나? 이런 그것을 첫 손가락이다. 둘째 손가락이다. 이런 편애를 한다는 것이 망발입니다마는
그러나 우리 범부들의 그런 사사로운 그런 생각으로 굳이 그런 표현을 써야 한다면은 보조스님을 첫 손가락으로 꼽아야 하지 않겠나? 그 스님의 사상이 워낙 좋고 또 남긴 업적! 또 그 당시 활동상! 이런 것들이 아주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그런 훌륭한 그런 선조를 우리 불자들은 모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뭐 승려가 된 사람만이 선조가 아니고 현금의 한국의 그 불교의 신도라면은, 다 과거에 신라 때에 계셨든, 고려 때 계셨든. 조선시대에 계셨든. 다 우리의 불교역사에 길이 남는 도승들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선조다! 우리의 선배다! 또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다! 연구의 대상이다. 부처님 못지않게 신앙하고 또 존경해 받들어야 할만한 그런 분이다.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 우리가 그런 선배를! 또 그런 선조를 모시고 있다고 하는 사실, 그것이 또 우리의 영광이기도 해요. 우리의 영광입니다. 그게 참으로 자랑스러운 거죠. 현재에 우리들은 설사 시원찮다손 치더라도 그 우리 조상은 어떠했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흔히 자랑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몇 대조 할아버지가 무슨 진사벼슬을 했느니. 또 무슨 급제를 했느니. 또 무슨 영의정을 했느니. 또 더 거슬러 올라 가면은 전부 왕족이었죠. 왕족 아닌 사람 있습니까?
최씨든 김씨든. 이씨든. 박씨든. 거슬러 올라가면은 전부 옛날부터 다 왕손이다. 이렇게 족보 자랑을 하는 그런 경우가 있듯이 우리 불교 안에 들어와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불교 안에 들어와서도 거슬러 올라가면은 아주 훌륭한 그런 선조들이 우리 불교 역사 속에 있었다라고 하는 것, 이것도 우리가 알아야 돼요.
그냥 ‘아이고 나는 기도나 조금 하고 그냥 편안하게 골치 아프게 알 것 없이 절에나 좀 다니다 말란다.’ 이렇게 안이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좀 더 역사 의식을 가지고 좀 더 폭 넓은 그런 생각을 할 때, 우리가 부처님의 품에 이렇게 몸을 말하자 면은 함께 했다면은,
이미 그런 과거에 훌륭한 조사스님! 또 올라가서 불보살들! 이런 분들하고 알게 모르게 다 연관이 되어 있고, 우리가 함께 인연을 맺고 있다고 하는 그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우리는 모두 인연을 맺고 있어요.
그래서 보조스님하고도 인연을 맺고 있기에 오늘부터 보조스님의 글인 진심직설을 공부하게 되겠습니다. 공부하기에 앞서 보조스님에 대해서 조금 말씀 드린다면은 보조스님은 우리 고려 의종 12년인데, 황해도 서흥군에서 태어났는데 이분의 역사가 서기로 하면은 제일 좋죠.
1158년에 태어나셔 가지고 1210년에 입적이라 그래요. 스님을 죽었다 라고 사(死)자를 쓰지 않고 입적하셨다 그런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1158년에 출생하셔 가지고 1210년에 입적하셨다. 열반에 드셨다 이 말입니다. 그 때 계셨던 분이죠.
그러면은 어떻습니까? 지금부터 어림잡아서 한 800여년 전에 사셨던 분이고, 연세는 그렇게 오래 못사셨어요. 53세, 우리 나이로 53년을 생존해 계셨던 분인데, 53세까지 사셨지 만은 그 활동과 그 사상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까, 우리 불교사에 아주 길이 빛나는 그런 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의 저서도 진심직설 같은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이런 것은 아주 세계의 명저 속에 들어갑니다. 역사 속에서 세계의 명저에 들어가는 그런 아주 훌륭한 저술로 돼 있어요. 그래서 장경 속에도 올라져 있고 그렇습니다. 또 이분의 『간화결의론』이라든지, 또 『원돈성불론』이라든지 또 그 다음에 『화엄론절요』라든지, 『수심결』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유명하죠.
그래서 이분을 화엄학에 대한 그런 저술이 세 가지나 돼요. 세 가지나 되기 때문에 그래서 일본 같은 데는 이 보조스님을 화엄학자라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만은, 우리나라에서는 선사로! 보조선사 보조선사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주로 말년에 전라도 순천 송광사에 많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도 송광사에서는 그 보조스님의 법맥을 이은 후손들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이 보조사상 연구원을 설립해 가지고 지금도 보조스님의 사상에 대해서 연구를 열심히 하고 있고, 책도 간혹 발간되고 하는 그런 실정입니다.
그만치 보조스님은 뛰어난 분이고 성씨는 정씨라고 그래요. 동래 정씨고, 정씨를 아버지로 하고 조씨를 어머니로 해서 세상에 태어났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 아주 몸이 허약하고 병이 잦아 가지고 별별 약을 써도 도대체 효험이 없고 그래 가지고, 병을 낮게만 해줄 것 같으면은 아들을 출가 시키겠다 라고 이렇게 부처님 앞에 가서 기도를 했어요. 법당에 가서 부처님 앞에 그런 기도를 했어요.
병만 제발 낮게 해주면은 아들을 부처님한테 바치겠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 아주 기도를 열심히 해서 그래서 병이 나아가지고 약속대로 아들을 절로 보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여덟 살! 어린나이에 그만 절로 보내 가지고 그 때 무슨 인생무상을 알겠습니까? 뭘 알겠습니까?
천지도 모르지마는 그래도 아버지가 부처님과 약속 때문에 그래서 절로 보내 가지고 어려서부터 절에서 공부를 하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여덟 살에 출가 했으니까 머리는 아주 총명했다고 그래요. 그래서 나중에는 건강도 좋아지고 그래서 공부를 해서 승과에 급제도 하고 그래서, 불교공부에 아주 깊은 그런 이치를 통달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리고 또 조선시대에 와서는 불교가 상당히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그 어려움을 겪게 되는 데는 역사적으로 왜 그러면 조선시대에 배불정책을 당했느냐? 그것을 따지고 보면은 고려 때 신라를 거쳐서 고려에 오면서 불교가 너무 융성해 가지고, 그래서 불교가 많이 말하자 면은 부패했다. 많이 부패해 가지고서 그래서 그 때 제대로 하지 못한 그 인연으로 조선시대에 와서는, 불교가 크게 유생들로부터 배척을 당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고려 때 보조스님 무렵에 불교가 상당히 부패를 해 가지고, 예를 들어서 고려사에 보면은 반승! 스님들 공양을 올린다 하면은 보통 처음에는 삼백 명! 그 다음에 오백 명! 천 명! 삼 천명! 심지어 과장도 좀 섞였겠지마는, 심할 경우에는 반승 만 명이라고 하는 것 까지 있어요.
예를 들어서 그 당시 스님들 만 명을 초청해서 궁중에서나 아니면 호족이 예를 들어서 공양을 대접한다 그러면은, 거기에 경비하며 여러 가지 사회적인 그런 문제가 얼마나 많이 야기 되겠습니까? 워낙 불교가 득세를 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런 기록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온갖 부정적인 그런 일들도 많았다.
그래서 보조스님이 그런 상황을 보시고는 너무나도 이것이 불교가 아닌데, 불교의 본질은 이것이 아닌데 싶어 가지고 불교가 어떤 권세를 얻고, 또 왕족들이 그 당시는 고려 때는 출가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 놓으니까 스님들의 어떤 사회적 지위라고 하는 게 상당했지요. 그래 놓으니까 다른 사람들까지 덩달아서 그렇게 어떤 권세를 남용을 한다든지 그런 경우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조스님이 그것을 보다 못해서 불교가 이것이 아니다. 불교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또 승려는 어떤 신분이든 간에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일단 승려가 되었으면은, 왕족이든 무슨 거지든 간에 승려가 되었으면 수행자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래서 수행하는 풍토를 새롭게 조성하려고 결사운동을 벌였죠.
그래서 정혜결사문이라고 하는 결사문을 지어서 공포를 하고 그 결사운동을 했는데, 그것이 한 두어 번 실패로 돌아가고 최후 마지막으로 송광사 정혜사라 그러죠 법당 위에 정혜사가 있는데, 거기에 말하자 면은 수선사! 수선사라고 그러죠. 선을 닦는 선방이 있는데 거기에서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수행자를 모아 가지고, 아주 정말 수행자다운 그런 수행자의 길을 가는 그런 결사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래서 전국에서 뜻 있는 스님들이 많이 모여 가지고 아주 제대로 공부를 하고, 수행을 아주 참 피나는 고행을 하면서 그렇게 수행을 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혜결사문을, 그런 결사를 하기 위해서 우리 같이 모여서 수행을 아주 참답게 잘하자. 저렇게 권세나 남용하고 흥탕 망탕 그렇게 사는 게 수행자의 길이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정신 차려서 부처님의 본래의 그 가르침대로 돌아가자. 라고 이런 선포문을 지은 것이 지금 팔공산 범어사 말사인 거조사라고 있어요, 거기에 계시면서 그 정혜결사문을 지었습니다. 거기서도 한번 모집을 했었어요.
모집을 했는데 사람들이 몇이 모이기는 했지마는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나중에 다시 한 12년인가 세월이 지난 뒤에 사 다시 상무주암을 거쳐서 다시 송광사로 가 가지고 거기서 꽃을 피우게 되었죠.
그런 결사운동을 했던 분으로 보조스님은 상당히 유명합니다. 고려불교가 상당히 번창은 했지 만은, 흥성은 했지 만은 한쪽에는 썩었다. 아주 부패 투성이었다. 그래서 거기서 불교를 다시 되살리고자 아주 큰 마음을 먹고 결사운동을 펴 가지고서 뜻 있는 수행자들을 모아 가지고, 본래의 수행자의 모습으로 정말 고행을 하자고 하는 그런 운동을 전개했던 그런 분으로써, 보조스님의 그 가치를 첫째 평가를 하고,
그 다음에는 여러 가지 훌륭한 깨달음의 안목에 의한 그런 저술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그 저술과 그 저술 속에 담긴 그분의 사상! 이런 것으로 또 보조스님이 훌륭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그 뒤로 보조스님의 제자들도 많았고 그래서 지금도 이 태고 보우스님 쪽으로 흘러내려온 그 법맥이 있는가 하면은, 또 고려 때 보조스님 쪽으로 흘러온 그런 또 법맥이 있고, 그런 우리 불교 승단에 그런 두 계통의 법맥이 이렇게 크게 잡으면 두 계통의 법맥이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 불자가 참선. 기도. 그 나름의 어떤 염불. 이것이 평소에 늘 꾸준히 해야 하는 그런 수행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내가 지난 시간에도 말씀 드렸듯이, 또 우리 부처님이 정말 무엇으로 우리에게 가르쳤는가? 부처님이 뭐 어떻게 우리에게 일러주고 계시는가?
불교를 그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니까, 그런 부처님의 가르침을 또 일면 알아야 그야말로 수레의 두 바퀴와 같고 우리 신행생활이라는 것이 새의 두 날개와 같아서 아주 균형을 잡을 수가 있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라고 하는 그런 말씀을 드렸듯이, 그런 과정에서 우리가 이렇게 공부를 하다 보면은 경전도 만나게 되고 조사 스님들의 어록도 만나게 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셨다 라고 그렇게 우리가 일컫는 소위 경(經)과 율(律) 이런 것이 있는가 하면은, 우리가 공부한 것으로 가지고 이야기 한다 면은 유마경 같은 것은 그런 경에 해당되고, 또 지장경도 역시 지난 시간에 마침 지장경도 그런 경에 해당 되겠죠.
그러나 정금의 영가 증도가라든지 또 신심명이라든지 그 다음에 또 임제록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전부 어록에 해당 돼요. 조사 스님의 어록에 해당 된다.
역시 오늘의 진심직설은 우리나라 고려 때 보조스님의 어록이다. 그런 분별도 우리가 해서 그런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본문에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아서, 그래서 서두로서 간단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목이 진심직설(眞心直說)인데, 진심직설을 공부하면서 조금 이제 연관 되는 그런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까, 간행사를 한번 우리가 쭉 같이 보고 본문으로 들어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간행사를 잠깐 살펴 보죠. 이것은 진심직설 하고 내용이 연관이 있습니다.
화엄경에 유심게(唯心偈)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이런 것이 있어요.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상 사를 다 그린다.”
화가는 물감만 같다 주면은 세상에 못 그릴 것이 없어요. 무엇이든지 다 그려요. 오온의 육신도, 오온은 다섯 가지 구성 요소지요. 우리 육신을 구성하고 있는 ‘색 수 상 행 식’색은 물질이고 수상행식은 정신론이고 그래서 오온의 육신도 이 마음으로부터 생겨났으며, 세상의 일체 법을 만들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만약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응당법계의 본성을 잘 관찰하라. 일체가 다 이 마음이 만들었느니라."
이런 이야기가 유심게(唯心偈)! 화엄경 야마궁중게찬품 이라고 하는 그 품 속에 하나의 게송인데, 화엄경에 그 많고 많은 글 가운데서 한 가지의 게송! 시 한 수만을 선택을 하라 라고 하면 당연히 이 유심게를 제1 게송으로 그렇게 꼽습니다.
말하자 면은 ‘만법유심(萬法唯心)이라.’ ‘만법은 오직 마음이다.’ 만법이라고 하는 말은 나로부터 내가 이 세상에 처하고 살아가는 바로 이 세상! 그리고 하루하루 흘러가는 그 시간! 이 모든 것을 통 털어서 가깝게는 내 집!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에서부터 멀리는 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무한한 우주공간에 이르기 까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일체법이고 마음법입니다.
마음 법이 오직 마음으로 됐다라고 하는 것이 불교의 기본사상 이거든요. 그래서 이 마음을 불교에서는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 보았고 그러기 때문에,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 그 어떤 가르침 보다도 비중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 되므로 모든 것에 우선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모든 행복과 불행도 이 마음이 만들며, 천당과 극락도 이 마음이 만듭니다. 불교는 한마디로 말하면 이 마음을 깨달아 알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이런 말 많이 들어오지요.
“우리 나라의 고려시대에 보조 지눌(普照知訥)이라는 큰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 불교의 근본이 되며 만류의 핵심이 되는 이 마음의 문제를 철저히 깨달으시고, 그 내용을 잘 정리해서 진심직설(眞心直說)!참 마음을 직설한다! 바로 이야기 한다 이 말이 예요.
뭐 돌려서 이야기 하거나. 좀 방편을 써서 이야기 하거나 그렇게 하지않고, 바로 그냥 대놓고 바로 이야기 한다 이 말이야. 직설한다 이거야. 이러한 글로서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경전연구실 문수원>에서는 법화경, 금강경, 화엄경 여래출현품, 못들은 사람은 좀 마음 아프겠네. 임제록, 유마경, 증도가, 신심명, 지장경 등을 공부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보조스님의 <진심직설>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어 이렇게 작은 책자를 간행하여 교재로 쓰게 되었습니다.
강의에 직접 동참하신 분이나 테이프를 통하여 공부하시는 분이나 모두가 불교의 근본이며, 참 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들의 마음을 이 <진심직설> 공부를 통하여 깊이 깨닫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디 이 인연, 이 공덕으로 언제나 건강하시고 가정이 항상 화목 하시기를 부처님 전에 기도 드립니다. 모두 부처님 되십시오 이렇게 해 놓았습니다.
이 마음만 깨달아도 부처님이니까 부처님 되는 일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 예요. 아주 어렵고 큰 일이다 생각을 하면은 정말 어렵고 큰 일이지마는, 사실 어렵고 큰 일이 아니 예요. 어쩌면은 이미 부처님이 되어 있는지도 몰라. 본인이 몰라서 그렇지. 본인이 부처가 되도 됐는지 몰라서 그것이 문제지 어쩌면 됐을지도 몰라요.
이제 목차를 보면은 대개 보조스님께서 이렇게 제목을 다 정확하게 부쳐놓고, 그 제목에 맞는 내용으로 짝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착착 정리를 하셨어요.
1.眞心正信(진심정신)
2. 眞心異名(진심이명)
3. 眞心妙體(진심묘체)
4. 眞心妙用(진심묘용)
5. 眞心體用一異(진심체용일이)
6. 眞心在迷(진심재미)
7. 眞心息妄(진심식망)
8. 眞心四儀(진심사의)
9. 眞心所在(진심소재)
10. 眞心出死(진심출사)
11. 眞心正助 (진심정과조)
12. 眞心功德(진심공덕)
13. 眞心驗功(진심험공)
14. 眞心無知(진심무지)
15. 眞心所往(진심소왕)
이런 열 다섯 가지의 제목으로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들어가기 전에 서문이 있는데, 이 서문은 보조스님께서 스스로 쓰신 서문 이예요. 스스로! 대개 책을 쓰다 보면은 본인이 쓰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이 서문을 쓰기도 하고 그런데,
이 서문은 그야말로 보조스님이 심혈을 기울인 진심직설이기 때문에, 감히 누구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딱 그 진심직설의 정곡을 찌르는 모양새 갖추자고 책 만드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다른 어떤 딴 사람에게 괜히 서문을 받아놓고 안 실을 수도 없고, 또 받았는데 그것이 자신의 내용하고 또 이렇게 서로 안 맞으면 그것도 곤란하고, 그래서 아마 본인이 본 내용에 딱 맞는 그런 서문을 쓰신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이제 보조스님이 본인이 직접 쓰신 서문이니까 서문부터 공부하기로 하죠.
或(혹)이 曰(왈)
祖師妙道(조사묘도)를 可得知乎(가득지호)잇가
或(혹)이 曰(왈)
혹 어떤 사람이 이 말입니다.
대개 우리 조사 스님들의 어록을 보면은 자문자답을 많이 해요. 이런 질문이 또 있을 수 있다. 그렇죠. 또 이런 의문이 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내가 풀어주는 또 그 의문을 해석을 시켜서 공부하는 사람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그렇게 자문자답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 어쩌면은 자신이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그런 의문이기도 해요. 자기가 그 전에 몰랐을 때 그런 의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게 보면은 아마 틀림없을 것입니다.
祖師妙道(조사묘도)를 可得知乎(가득지호)잇가
조사의 묘한 도!
조사는 아까 내가 설명을 부처님! 그리고 부처님 이후에 많은 훌륭한 수행자들! 또는 도를 이루신 분들을 흔히 조사라는 말을 합니다. 할아버지 祖(조)자하고, 스승 師(사)자 써 가지고 그래 가지고 우리가 조사스님하면 최고예요. 부처님 이후로는 최고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깨달으신 내용을 불도(佛道)라고 한다면은, 또 보조스님이 말씀 데로 조사 스님들이 깨달은 도를 조사도(祖師道)라! 또는 조사묘도(組師妙道)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죠. 그것은 같이 합해 가지고 불도(佛道)라고 해도 상관없고, 부처님의 깨달음까지 합해 가지고, 역시 조사의 묘도라 해도 또 크게 망발은 아닙니다.
간혹 보면은 우리 조사 스님들은 얼마나 깨달음에 대한 그 열망과 그 노력이 대단했던지 당신의 깨달음을 조사선이라고 하고, 부처님이 깨달음을 여래선이라고 해 가지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조사들의 깨달음보다 더 밑에 둔다고요. 그래서 여래선 보다 조사선을 더 높이 이렇게 두기도 합니다.
얼마나 깨달음에 대한 그런 열망과 그 어떤 고심! 이런 것이 있었으면 그렇게 했겠는가 이런 생각도 해 볼 수가 있는데,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祖師妙道(조사묘도)라 해서 부처님이 깨달은 불도(佛道)하고 부처님의 경지하고 다른 것이다. 이렇게 볼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묘도(妙道)와 미묘한 도! 참 심심미묘 하죠.
그 마음을 투철하게 깨달은 그 경지! 우리가 예를 들어서 목마를 때 시원한 찬물 한 그릇 마시고도, 그 찬물에 그 묘미를 누구에게 설명할 길이 없는데, 그야말로 참 그 깊고 오묘한 그런 마음을 깨달은 그 경지! 그것을 누구에게 다 설명하고 알려 준다 라고 하는 것, 이것 참 보통 문제가 아니죠. 그래서
“야 ~ ! 부처님의 깨달음! 조사 스님들의 깨달음의 그 경지를! 이것을 알 수가 있겠는가?”
可得知乎(가득지호)잇가 .
가히 알 수가 있겠습니까? 이 말입니다.
친구가 옆에서 마신 찬물 먹어보고, 옆에 있다가 마시는 것을 보고 ‘그 시원하나?’, ‘시원하다.’ 라고 하지만은 그 시원하다라는 말! 말이 시원하다는 것이지, 시원하다는 것도 여러 가지거든요.
뜨거운 물을 먹고도 시원하다는 사람도 있고.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시원하다는 사람도 있고. 대개 가려운 데는 피가 나도록 긁어버리면은 굉장히 따갑고 아픈 데도 시원하다고 그러고, 이 참 곤란하다고요 그러니까,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이 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것도 하물며 그렇거늘
이 묘도(妙道)!
깨달음의 도를 어찌 그렇게 제대로 설명할 수가 있고, 알 수가 있겠는가? 그 참 알았으면 좋기는 하겠는데,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나온 것 같애요.
“조사의 묘도를 가히 알 수가 있겠습니까?”
득(得)자는 얻을 得자지마는 알 수!
가(可)자 하고 뜻이 같습니다.
가능성을 나타내는 거예요.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왈(曰) 하는 것은 그 다음에 대답입니다.
대답 이예요. 누가 그렇게 물었다고 치자.
대답을 하는데,
古不云乎(고불운호)아
고(古) 옛 사람이
운(云) 말하지 아니했던가.
옛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이거예요.
道(도)는 不屬知(불속지)며
不屬不知(불속부지)라
불속지(不屬知)! 불속(不屬)!
지(知)!
아는 데도 속해 있지 않고
불속부지(不屬不知)라
부지(不知)!
모르는데도 속해 있지 않다. 도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느냐? 라고 하니까, 알 수 있느냐? 라고 하는 그 생각이 벌써 틀렸다 이 말이 예요. 왜냐? 도라고 하는 것은 아는데도 속해 있지 않고. 모르는 데도 속해 있지 않다. 거기서 설명이 그렇습니다.
지(知)는
안다고 하는 것은 뭐냐?
결국은 망상 이예요.
“지(知)는 시(是) 망상이요.”
안다고 하는 것은 망상!
우리가 보통 무엇을 안다, 무엇을 안다! 배워서 알고. 그 나름대로 궁리해서 알고. 생각해서 알고. 머리에서 짜 내어서 알고. 그것은 사실 망상이지요. 그것이 사실은… 안다는 것은 망상이고
不知(부지)는 是無記(시무기)라
모른다는 것은 無記! 기(記)자는 기억할 記! 기록할 記자인데, “기억함이 없다.”이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거다 이 말이여. 모른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죠.
무기(無記)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것,
기록할 것이 없는 것.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좋습니다.
모르는 것은 없는 것이다 이거예요. 또 멍청한 것이 되기도 하고. 무기란 멍청한 것. 기억이 없으면 멍청하죠. 모르는 것은 기억이 안 나는 것이죠. 이것을 우리가 아주 진실하게 이해를 해야 될 대목이죠. 그래서
若眞達不疑之地(약진달의지지)는
만약에 참으로 통달하면, 무엇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경지에
참으로 통달하게 된다면,
“아~ 인생이 무엇인가? 도가 무엇인가? 부처님은 어떤 존재인가? 조사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그런 그야말로 진리에 대한 의심 없는 그런 경지에 참으로 도달하게 된다면은, 예컨대 무엇과 같은가 하면은 도통한 경지입니다.
若眞達不疑之地(약진달불의지지)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은 도통한 경지는,
도통한 경지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설명이 안되니까 세상에 있는 것을 가지고 비유를 들 수 밖에 없다고요. 이 비유를 드는데 여기에 보면은
猶如太虛寬廓(유여태허관확)이라 그랬어요.
관확(寬廓)!
관자는 너그러울 寬(관)자. 확은 탁 트일 廓(확)자입니다. 곽씨 라고 할 때 그 안에 있지요. 이것은 확! 탁 트이다. 끝이 없다 이 말이 예요.
태허(太虛) 라고 하는 말은 허공을 말하는 것입니다.
허공이 불교에서는 그냥 허공이 아니고 태허공 이래요. 대허공! 대자보다 더 큰 것이 이 클 태(太)자예요. 그러니까 저 드넓은 우주 공간을 태허라 그래요. 태허! 저 드넓은 우주 공간처럼 관활하다. 탁 트였다! 끝없이 탁 트였다! 관활을 탁 트였다. 끝없이 그것도…
어디에 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변입니다. 무변이요. 무량이요. 무한이죠. 시원하게 탁 트인 것과 같거니,
猶如(유여)!
마치 태허가 탁 트인 것과 같거니
豈可强是非耶(기가강시비야)리요
어찌 가히
강(强)자는 억지로! 구태여!
어찌 가히 구태여 옳다. 그르다. 하리요.
시비(非耶)!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
이것은 도고 이것은 도가 아니다. 이런 거예요. 여기 시비라고 하는 말은 우리가 옳고 그른 것을 따질 때 ‘아이, 그 시비 그만하라고…’ 그렇게 그런 말을 합니다마는 그런 의미와 아울러서 여기서는 ‘이것이다. 아니다. 이것은 도고 이것은 도가 아니다.’ 그런 말을 하겠느냐 이거예요.
불교를 믿어야 도고. 불교를 안 믿으면 도가 아니고. 무슨 기독교를 믿어야 도고, 기독교를 안 믿으면 도가 아니고 그런 것이 여기에 해당이 안 된다 이거예요.
왜 그러느냐? 그 경지! 깨달음의 경지는 마치 저 태허공이 탁 트인 것과 같아 가지고, 전부 태허공 속에 아무리 큰 위성이라 하더라도 먼지밖에 안 되는 거예요. 이 지구는 이거 사실 좀 더 멀리 올라가서 보면 보이지도 않아요. 지금 저 우리 육안으로 그냥 먼지처럼 짝~~~ 이렇게 뿌려져 있는 밤 하늘의 별, 그것이 크기가 얼마나 한지 압니까? 말도 못하게 커요.
저기 은하수 중에서 제일 중심이 되는 오리온이 있지 않습니까? 오리온의 제일 성자는 무려 태양의 이만 오천 배인가 그렇게 돼요. 태양의 이만 오천 배나 되는 그렇게 큰 별인데 먼지 같이 보이잖아요. 지금… 낮에는 그것도 보이지도 않는다 어두워야 보이지. 또 어디쯤 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큰 별들도 이 태허공 안에는 그런 미묘한 먼지 같은 존재밖에 안 된다고요. 그러니까 무엇이 우리가 옳으니. 그르니. 이것이 꼭 부처님 말씀이니. 이것이 무슨 누구의 말씀이니. 이래야 맞느니. 저래야 맞느니. 이러면 지옥 가느니. 저러면 천당 가느니. 그것 다 참 하잘 것 없는 소리고. 째째한 소리고. 너무나도 좀 살 궂은 짓이고 그렇죠. 사실 따지고 보면은…
若眞達不疑之地 (약진달불의지지)
의심할 때 의심하지 않을 그런 경지!
정말 우리 마음자리를 제대로 깨닫고 보면은 정말 소소한 그런 문제! 이 세상에 어떤 그런 크다고 하는 무슨 문제도, 아주 하잘 것 없는 문제로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보조스님께서 마치 태허공이 탁 트인 거와 같다. 그러니 구태여 억지로 시비할게 무엇이 뭐 있겠느냐? 이것이다. 이것이 아니다. 라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거지.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녹취- 無影樹님]
첫댓글 행복합니다. 드디어 큰스님의 육성을 통해서 진심직설을 직접 듣게되는 행운이 저에게도 오다니...
청비님. 잘 들리고 글씨도 보기가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의 법문중에 콩나물에 물을 주면 물은 빠져나가도 콩나물은 자란다는 말씀처럼 스님이 주신 법 지식 지혜로도 못 쓰지만 스님이주신 법비에 흠벅젖고 싶습니다 .
삼보에 귀의합니다. 큰스님의 끝 없는 법공양에 보은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길상, 길상, 대길상이 성취되어지다! 나무관세음보살!
청비님 감사합니다,한꺼번에 병풍처럼 둘러진 복전에서 허우적거리듯(?) 정신을 못차립니다 ..감사합니다_()_
녹음이 잘 맑읍니다. ()()()
스님! 저 오늘부터 진심직설 강의를 듣습니다. 간단명료하고도 완벽하게 핵심을 정리한 어록이라 늘 탄복했습니다. 다시 스님의 강의 새겨 들으며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오늘은 지눌스님의 간략한 전기와 시대배경, 서문의 일부를 공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청비님! 음질이 무척 깨끗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목소리도 낭랑하시고...참 좋았습니다...()
猶如太虛寬廓이어니 豈可强是非耶리요.....거룩하신 가르침 감사드립니다...큰스님의 활기찬 음성도 듣기 좋구요...청비님 도 감사드려요...()
부처님의 말씀,-삼장(경,율,논)소,어록(증도가,신심명,임제록, 진심직설)이있다.고려때보조의 법맥과 태고 보우스님의 법맥이 현재 이어지고 있다.道는 아는데도 속해있지 않고 모르는데도 속해 있지 않다.안다는것은 망상이, 모르는 것은 기억함이 없다.도통하는 경지는 저 드넓은 우주공간처럼 끝없이 광활하다.
우리 마음자리를 제대로 깨닫고 보면 태허공이 탁 트이는 것과 같다. 보조 지눌스님의 진심직설 강의를 듣게 되는 귀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_()()()_
큰 스님 . 청비 님 감사합니다. _()()()_
큰 스님 감사드립니다. 청비님 감사합니다..._()()()_
진심직설 공부 하려고 왔습니다.큰 스님 그리고 인연 만들어 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한마음 깨닫고 보니 태허공과 같다,...큰스님 청비님 감사합니다. _()()()_
늦게 방부드립니다..._()()()_ 청비님 고맙습니다..
태허공이 탁 트인 거와 같다. 그러니 구태여 억지로 시비할게 무엇이 있겠느냐? ...스님! 감사드립니다..._()()()_
_()()()_
큰스님 감사 합니다.청비님 감사합니다._()()()_
_()()()_
마음을 깨달아 알게하는 가르침...진심직설...마음 한법 깨달아서 참 나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는 큰스님, 감사합니다..._()()()_
큰스님 청비님 감사합니다. _()()()_
_()()()_
^^ _()()()_
감사합니다. _()()()_
_()()()_
큰스님 청비님 무영수님 감사 드립니다 _()()()_
부모 미생전 나는 누구인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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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_()()()_
"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응당법계의 본성을 잘 관찰하라. 일체가 다 이 마음이 만들었느니라."
큰 스님 ! 두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무영수님 ! 청비님 ! 고맙습니다. 에공...큰스님 음성은 안 나오네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