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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포도농사, 나처럼만 짓지마라` -귀농통문 원고
노연웅 추천 0 조회 13 09.12.26 20: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농사이야기를 해보려니 부끄러워진다.
귀농해서 농사지은 지는 만 11년이 되는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얼마 전까지 서러운 임차농으로서 이 밭 저 밭 전전긍긍 뜨내기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었다. 한곳에서 진득하게 땅과 작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농사를 짓지 못했던 나이기에 진정한 유기농업을 이야기하기에는 웬지 좀 부끄럽다.
유기농업이라고 하면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무슨 유기농자재를 어떻게 쓰고, 무슨 자연 약재를 어떻게 쓰고 ...... 등등 말 그대로 농사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접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흔히 말하는 ‘건강한 땅을 만드는 것’이라는 확신이 점점 든다. 여러 생명들이 공생할 수 있는 땅, 양분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균형 잡힌 땅, 작물의 뿌리가 숨 쉴 수 있는 떼알 구조의 땅 ...... 이러한 건강한 땅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깊은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를 포함한 귀농자들에겐 대체로 ‘애정과 열정’은 높은 편이나 ‘오랜 시간’을 쓰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일정한 땅을 사거나 장기간 임대해서 처음부터 일편단심으로 내리 농사짓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나처럼 이 땅에서 몇 년, 저 땅에서 몇 년 유목민처럼 땅을 옮겨 다니는 것은 안정되지 않는 귀농자들의 어쩔 수 없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땅을 만든다’라는 측면에선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니 이 부분을 항상 마음의 숙제로 가지고 있어야 하겠다.

나는 포도농사를 짓는다.
처음 귀농해서 3년은 유기농업으로 포도농사를 지으시는 선생님 댁에서 머슴살이하면서 농사를 배웠고, 그 이후 5년간 남의 포도밭을 임대해서 농사를 짓다가 지난 3년 전에 지금의 포도밭을 구입해서 내 농사를 짓고 있다.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농사가 어렵다. 유기농으로 포도 농사짓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포도나무 수세가 자꾸 떨어지고, 힘을 잃는다. 그러니 자연히 매년 수확량도 줄어든다.왜 그럴까? 이유는 두가지인데, 하나는 나무를 혹사시키는 나의 욕심이 이유고, 또 하나는 나의 유기농업의 기술적 한계 때문이다.

과수농사는 다년생작물이기에 1년생 작물을 키우는 것과는 시각 차이가 있다.

고추나 벼같은 1년생 작물은 한해를 주기로 삼기 때문에 그 해 작물의 생육이 않좋으면 그 해 농사만 망하는 반면, 다년생 작물은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다음세대까지 평생을 한 주기로 삼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작물을 대하고 농사를 지어야한다.그런데 현실에선 눈앞의 이득에 눈멀기 쉽다. 돌아보면 특히 귀농 초기에는 경제적으로 불안하니 당연히 소득에 관심이 많아져 포도나무에서 ‘얼마나 수확을 빼낼까’가 농사의 주된 관심사였다.

농사꾼의 눈이 열매를 팔아 소득을 많이 내야한다는 것 하나에만 사로잡히면 나무의 생리를 무시하고 나무를 혹사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그 한해는 어찌어찌 수확이 많았을진 몰라도 해를 거듭할수록 나무는 힘을 잃고 결국엔 고사상태까지 다다르고 만다.그러니 열매를 어떻게 하면 많이 달수 있을까를 염두하며 일하기보다는, 나무를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열매’보다는 ‘나무’에 중심을 두고 농사를 지으면, 건강한 포도나무는 농부의 긴 삶의 여정과 자연스럽게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이 단순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 부끄럽지만 여러 포도밭을 망쳐놓게 되었고, 나무가 힘을 잃어가는 것을 멀거니 바라봐야만 했다.

그런 아픔과 실패를 여러 차례 맛보고 나니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농사의 가장 핵심적인 철학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포도송이 착과량을 최소한으로 줄이려 노력한다. 포도양분의 최종 소비자인 포도송이를 과감하게 솎아줌을 통해 나무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말이 그렇지 주렁주렁 열매 맺은 포도송이를 가위로 잘라내는 것이 농부로서 쉽지 않은 결단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지속가능하게 오래도록 나무와 동거 동락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알기에 눈 딱 감고 도 닦는 마음으로 잘라낸다.


정성들여 싼 포도봉지는 다시 벗겨지고... 솎아낸 포도송이들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벗겨진 포도봉지들과 땅에 내쳐진 포도송이들은 나의 과분한 욕심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좀 더 열매를 얻고 싶고, 좀 더 많은 수확을 보고 싶은 것이야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무의 건강상태를 직관할 수 있고, 나무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만큼의 열매를 농부의 열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단순히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넘어 그런 나무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애정이 유기농업의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두 번째 농사를 망치는 이유로 나의 유기농업적 기술의 한계가 있다.
어디서 가장 한계를 느끼는가 하면 포도 잎을 사수하지 못해서 결국 포도가 익어갈 시점이 되면 포도 잎이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유기농업을 하다 보니 웬만큼의 벌레 피해 같은 것에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 나이다. ‘콩 세 개를 심어 콩 하나만 심은 사람이 먹으면 된다’는 말까진 못따라가도 10%~20%정도의 벌레 피해는 피해라는 표현보다는 벌레랑 나눠먹었다고 여기는 여유정도는 있다.
그렇지만 포도밭의 ‘갈반병’과 ‘애매미충’피해는 포도 잎 전체로 번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고, 더 큰일은 10년이 넘게 매년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매년 감수하고 있다는 것이다.포도봉지를 씌우기 전까지 그나마 깨끗했던 포도 잎들이 한두 개씩 갈색점이 찍히고, 초록의 잎 앞면이 허옇게 탈색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 속이 쓰리기 시작한다.

갈반병은 아래 사진처럼 포도 잎에 갈색 점들이 점점이 찍히는 것으로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적으로 갈색점이 번져 수확 철 쯤 되면 노랗게 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병이다.

밑의 사진처럼 초록의 잎이 허옇게 탈색이 되는 것은 깨알보다 작은 '애매미충'들이 잎 뒤에 다닥다닥 달라붙어서 흡즙을 하기 때문이다. 잎을 손으로 툭 치면 하얀 먼지같은 느낌으로 폴폴 날아다닌다.

갈반병이든, 애매미충 피해이든, 밭 전체로 번지는 특성이 있고, 잎의 광합성능력을 떨어뜨려서 포도가 익는데 어려움을 주고, 저장양분의 부족으로 나무의 세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나름의 대책으로는 갈반병에는 4-4식 석회보르도액을 만들어 ①꽃피기 전, ②꽃 진후,③ 봉지 씌운후 등 3회 방제를 한다. 그렇지만 우리 포도밭 나무들이 수세가 약한편이여서 갈반병을 잡는 것이 쉽지가 않다.
약제로 방제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무를 건강하고 수세가 균형잡히게 키우는 것이 더 근본적인 처방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런지 남들은 갈반병에 이만한 친환경약제가 없다고 하는데 내 주관적 경험상으론 석회 보르도액을 10년간 만들어 써와도 갈반병은 매년 찾아오는 무서운 손님이시다. 오히려 잿빛곰팡이병이나, 흰곰팡이병같은 곰팡이병에는 확실한 효과가 있다. 게다가 석회 성분은 칼슘이기 때문에 잎을 두껍게 만들고 성장억제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재이다. 4-4식 석회보르도액을 만드는 방법은 물 500리터에 유산동 400그람을 녹여놓고, 유산동물에 생석회를 녹인 물을 휘저으며 부어서 섞어주면 된다. 요즘은 석회보르도액을 용해시켜 만들어 파는 완제품도 많이 나와 있으니 기호 따라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벌레 피해는 한방살충제를 만들어 치는데 고삼, 계피, 은행, 울금, 박하, 송진, 마늘, 청량고추등을 구해 말려 가루를 내어 각각 300그람씩을 주정이나 에탄올 한말에 다 부어서 3개월정도 숙성시킨다. 숙성시킨 액을 물 500리터당 5리터 희석해서 치면 된다.

그런데 이 한방살충제도 경험상으로 보면 어떤 벌레에는 효과가 있기도 하고, 껍질 있는 벌레-곤충류-에는 언제 살포했나 싶을 정도로 효과가 없기도 하다. 최소한 기피제정도 역할을 한다고 보면 실망은 하지 않을 듯싶다.이왕 약제 만들기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가지 더 이야기하면, 대체로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포도밭이 일반 관행 포도밭보다 나무 수세가 약하다. 우리밭은 더더욱 그렇고...



질소액비분을 만들어서 신초가 나올 때, 포도꽃이 수정되어 포도송이가 형성될 때 등... 나무가 질소질 영양분을 필요로 할 때 점접호스로 뿌리주위에 넣어준다.
어분과 깻묵, 아미노산을 자루에 넣어 큰 통에 물과 함께 넣고, 효모균과 효모균의 먹이인 당밀을 넣는다.

며칠간 전기 히터기로 우려내며 발효시키는데, 공기 기포기도 설치해서 산소도 공급해준다.

5일간 발효를 마치고, 막걸리와 맥반석 우린물과 목초액을 섞어서 물에 희석한 후 필요할 때 포도밭에 관주로 3일에 한번씩 계속 준다.나는 포도밭 땅에 관주용으로 막걸리와 목초액을 많이 이용하는 편인데, 막걸리는 비타민과 효모균이 많이 들어있는 식물성 아미노산제로 작물의 생육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목초액도 저농도로 관주하면 뿌리 발육과 식물의 생육을 촉진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고농도로 주면 생육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막걸리는 인근 양조장에서 팔고 남은 것을 저렴하게 구입할수 있고, 목초액은 구들방에서 직접 채취한것과 모자라는 부분은 구입을 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 밖에도 좋다고 하는 유기농 약재들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사기도 해서 주기적으로 옆면살포도 하고 토양관주도 하지만 사실 병의 번지는 속도를 좀 늦추는 의미이고, 생육을 좀 도와준다는 의미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나도 약장수처럼 ‘이것 치면 다 해결할수 있다’고 떵떵거리며 이야기하고 싶은데... 내가 농사를 잘 못지어서 그런지 왠지 속에서 캥기는게 많다.

(이번에 나올 2009년 봄호 귀농통문 중 '나는 이렇게 농사짓는다' 꼭지에 쓴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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