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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 이라고 불리어 왔다.탑과 같이하는 탑동 마을은 고려초(고려 통일 938년)에 탑이 세워지면서 마을이 형성 되었다. 이는 고려태조가 탐라국 고씨 왕조 (자견왕45대)을 속국으로 왕조의 세습이 끊어진 해이기도 하며 1000년이 넘은 역사를 갖고 있고 군산에서 유일하게 탑을 가지고 있는 명당 마을이다. 탑의 존재로 보아 현 보탑정사 였던 사찰(청룡사)은 아주 큰규모 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역사 이래 어떠한 국난이나 이민족의 침탈에도 횡액 재앙 질병이 없는 마을이다. 마을 뒤로 건장산(97m)이 병풍처럼 마을을 안고 드넓은 풍요의 땅아래 탑천강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 臨水 ) 명당지라 하겠다. 삼층석탑, 탑천, 탑천로,탑과는 뗄수없는 마을 형성과 함께 현 탑동 191번지에 임피군 남이면 면사무소(1895~1914.관할구역:고척.접산.죽산.용절.야중.원두.삼길.신평.입석.장자.하광.중광.상광)가 있었고, 대 문장가 죽봉 고용집(즙)(1672~1735)선생이 태어나고 돌아 가신 곳이다.
삼층 석탑:
화강암 으로 만들어진 백제말 양식으로 고려시대 초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보탑정사(옛 청룡사) 사택 쪽으로 큰 사찰이 있었으며 사찰에 이어 탑이 지어졌다. 탑은 사찰의 덕망 있는 고승이 입적 했을때 다비식(화장)을 거행하고 유골 사리를 봉안하는 곳으로 무덤이라 하겠다.사찰과 탑은 뗄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3층 석탑에 대한 자세한 역사적 기록이 없다.
언제 누가 무슨 연유로 지었는지 알길이 없다. 단지 백제 양식 고려 초에 세워졌다는 외 기록이 없어서 지자제, 및 문화원을 통하여 사료조사를 하여 제대로 밝혀야 할 것 이다.
1967년 고대영이 투고한 MBC 문화방송에서 제작되었던 "전설따라 삼천리"에 설화가 방송 되어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탑동 3층 석탑(백제 양식 고려초 건조>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66호
탑동 3층 석탑과 골샘에 얽힌 설화 주요 내용.
지금 부터 1000 여 년전 건장산 아래 탑골 마을에 건장한 여자 장사가 살고 있었고 뒷 마을 장자골에 남자 장사가 살고 있었다.
두 남녀 장사는 힘도 좋고 성격이 잘 맞아 친구로 지내며 부모님을 성심껏 섬기고 시합을 자주 벌였다.
하루는 둘이 제안 하기를 탑을 쌓고 무너 뜨리는 시합을 하기로 하였다.
여자 장수는 탑골에 탑을 쌓고, 남자 장수는 장자골에 탑을 정성드려 쌓고 손으로 탑을 무너 뜨리는 괴력의 시합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사물놀이를 펼치고 두 사람을 응원 하였다.
먼저 남자장수가 쌓은 장자골 탑은 여자 장수가 미는 손가락 힘에 무너지고, 탑골 3층 석탑은 남자 장수의 손가락 흔적만을 남기고 건재하게 서 있었다.
시합을 끝내고 여자 장수는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탑 시합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평온한 하루를 지나고 여자 장수의 어머니 얼굴에 부종이 나고, 등에서는 종기가 나는 병에 시달리고 병세는 날이 갈 수 록 심해져 갔다. 효심이 깊은 여자 장수는 갖은 약초를 구해 먹이고 바르며 명 한의사를 찿아서 전국을 헤메었으나 효험이 없었다.
깊어가는 어머니의 병환에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시합으로 무너진 탑 귀신이 붙어서 그런다는 둥 여자 장수는 마음 편 할 날이 없던 어느날! 꿈에 나타난 중이 탑에 가서 백일 기도를 드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 졌다.
여자 장수는 이튿날 부터 탑 기단에 무릅을 꿇고 백일 기도를 시작합니다.
1기도를 드리던 마지막 100일이 되는 날!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덥고 비 바람이 불고 천둥 번개가 쳐 한치 앞을 바라 볼 수 없을 때에 하얀 옷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서
주문을 던집니다. "너의 효심이 갸륵하구나! 건장산 아래 골샘에 가서 물을 떠다 네 어머니에게 먹이도록하라"
는 말을 마치고 노인이 홀연히 사라집니다.
여자장수는 지체없이 골샘에 달려가 약수를 받아 어머니에게 마시게 합니다.
사흘째를 마시자 어머니의 피부병은 깨끗하게 나아져 완쾌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골샘은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 고 알려져 매년 칠월 칠석 날에는 인근 지역에서 사람들이 찿아옵니다..
치료가 어려운 피부병을 가진 사람들이 찿아오고, 골샘물이 피부를 깨끗하게 해준다고 알려져 물맞이 행사를 하였습니다.
3층 석탑과 골샘에 얽힌 설화(1967년 문화방송" 전설따라 삼천리"에서 절찬리에 방송되었다))
보탑정사(청룡사)
백제 무왕 시대에 미륵사지 9층 석탑 왕궁리 석탑과 함께 청룡사를 크게 지었으나 소실되어 암자를 지어 명맥을 이어오다 1890년 정내진이 중수 하였다.이어서 노보살- 오상택 주지가 1936년 보수하고 -서정덕-송완진(지산 스님)이 1991년 탑동 마을 주민들과 인근 불자들의 협조로 중건하고 대한불교 태고종에서 조계종으로 종단을 바꾸고 보탑정사라 하였다 2007년 학송스님이 사찰을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원래 청룡사는 현재의 보탑정사를 중심으로 삼층석탑 아래에 연못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가옥까지를 아우르는 보기 드물게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보탑정사( 옛 이름은 청룡사였다.태고종에서 조계종으로 종단이 비뀌면서 사찰 이름을 바꾸었다)
골샘(약수터):
건장산의 맑고 정기를 담은 물이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는 전설과 함께 지금도 약수터에서는 물이 흐르고,
물로 피부를 씻으면 피부가 깨끗해지고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건장산 :
해발 92m의산으로 마을을 안고 있는 듯 거북이 형상을 하고 용천산에서 남산 왕산 건장산 보탑정사(옛청룡사) 시루봉 원접산 지맥으로 11.6km에 달한다.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지켜주는 당산이라고 불리어 진다. 삼층 석탑,보탑정사,약수터를 안고 있다. 약수터를 들러 미소길(구불길)로 산행하고 삼층탑과 보탑정사(사찰) 를 둘러보는 산행 코스가 있다(약 1시간). 건장산에서는 일제 강점기 식량 수탈로 1번지 전군(전주-군산) 도로와 임피역(1912)이 내려다 보인다.
"탑동 들노래"
1974년 제15회 전국 민속예술 경연 대회에서 "탑동 들노래"로 민요 부분에 문화 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민요 마을로 전국에 알려 졌다.들노래 기능 보유자인 탑동 태생 고 고금덕(판덕)의 선소리로 진행되며 탑동 들노래는 500여년전 임진왜란 경부터 시작 되었다고한다, 힘들고 가난한 고난의 시기에 농민들의 삶에 그나마 위로가 되었고 계승되어왔다.
만경산 타령(맨경산 타령), 오호타령(방아 타령), 잦은산 타령 ,에이 싸오 타령,불무노래,상여소리로 특히 유명하다.
앞소리꾼 고금덕(고판덕)님 의 뒤를이어 고상락님이 이어오다 두분이 돌아 가시고 현재는 계승자를 찾기 힘들다. 1993년 연예 다큐멘타리 "농사 소리꾼 고판덕(고금덕)"으로 한국 방송 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상여소리 앞소리꾼 이길수(이길봉.1934년~)옹이 건강하게 계시며 1998년 강우순 님의 장례 행렬 상여 소리를 마지막으로 이길수 함옥환씨의 상여소리는 멈추고 말았다.
선소리:고금덕(고판덕)/후렴:최명섭 고시남 고종수 조석준 이풍세 고종태 이기복/장고. 최명섭/징.고종수/꽹과리;이길수/
효자의 마을이다.
삼강록에 기제된 정려서(고종순 소장), 3효 비문(접산 고씨 종묘산)을 순종황제로 부터 받은 효의 마을이다.
고태신(공조참판)이 피부병과 종기로 기력이 쇠잔하자 며느리 최씨와 두 아들 고두환, 고명환이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마시게 하고 볼기살을 베어 국을 끓어 드려 3년 동안 생명을 연장하였다.이에 감복한 진사를 비롯하여 현감 현령이 관찰사에게 상소하고 판서들이 황제에게 상소하여 순종황제께서 왕비 수연일에 정려서를 수여하고 3효 정려 비문을 내려 주었다.
3효비( 고두환, 고명환 어머니 최씨가 순종황제로 부터 사비다)고씨 종산 라궁(라부산)에 있다.
마을이 배출한 인물들
죽봉 고용집(1672~1735)선생
승정원 일기에 기록된 조선 시대 대 문장가로 경종 영조시기에 노론과 소론의 당파 와중에 경종때에 두번, 영조시대에 두번에 걸쳐서 목숨을 걸고 왕에게 상소를 올린 선비셨다.3권 1책 209수의 시를 남겼고 1938년 월하리 영모제에서 죽봉집을 출판하였다.
2016년 12월 죽봉집을 한글화 작업을 완료하여 군산 리츠 호텔에서 "죽봉 시문집"을 발간하였다.
2017년 12월에 죽봉학술대회(근대 역사 박물관)를 개최하였고 2018년에도 이어서 학술 대회를 발표하였고 "군산 역사 사랑회"(2014년,창설 및 회장 고대영)하여 두번에 걸쳐서 답사를 마쳤다.
이로 인하여 죽봉선생에 대하여 매스컴을 비롯하여 역사 문회인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송하진 도지사를 찿아 뵙고 성역화 작업을 추진하였으나 대야면, 및 마을의 이해 부족, 죽봉 산 산주의 비 협조로 송지사가 주신 협조금 1억을 쓰지도 못하고 무산 되었다.
죽봉 기념사업회를 결성 할 준비 작업 중이다.
죽봉 선생에 대한 관심은 월하리 고석교 전)임피 종문회장님의 노력이 누구보다 컷다.
죽봉 아우 고용려가 서당(탑동길 123-1~115-1~117-1 )을 짓고 죽봉에게 서당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자 "취취당"이라는 서당 이름을 내려 준다는 죽봉집(취취당기)에 기록되어 있다.죽봉선생이 1735년에는 고씨 족보를 완성하는데 큰 역활을 한다.
대 문장가 죽봉 고용집선생 묘소(죽봉에 있다)
효자, 열녀
고두환, 고명환과 모친 최씨; 삼강록에 적시되고 1925년 순종황제로 부터 효자 정려서를 받았다.
3효비가 정려 비문이다.
효자 정려서
사업가
1.고종득:두성건설 사장.2.이길녀:가천구룹회장(가천대총장)
고씨 임피종문회장
1.고 고용곤(1991~ 1992)
2.고능곤(2005~2006)
군옥 축협회장:고 고수창
교장.
1.고석균.고석충 고현세. 고기선. *박사 고석현
소리꾼
1.농사소리꾼:고 고판덕(금덕)
2.상여소리꾼: 이길수 함옥환
한시 문장가.서예가
1. 고상락 2.설파 고종팔(종성)
법조계
1.고광우.군산지법 지청장.현변호사(고등고시7회 사법고시 9회 합격)
애국지사.
고 고종훈(고종군)
메스컴에 알려진 마을 소식
1.1967년 / mbc 문화 방송" 탑동 3층석탑과 약수터 골샘"에 얽힌 설화"가 절찬리에 방송
2.1974년 / 제15회 전국 민속 예술 경연 대회에서 문화 공보부 장관상( 만경산 타령(맨경산 타령),오호타령.잦은산타령,에이 싸오 타령,불무노래,상여소리)( 선소리꾼,고판덕(고금덕)
3.1993년/ kbs 연예 다큐멘타리 "농사 소리꾼 고판덕(금덕)"으로 한국 방송 작가상 수상(이장순.프로듀서)
4. 2009년/ 살기좋은 우리동네 만들기 군산시 1위. 전라북도 4위(이장. 고성구)
5.2013년.4.15 전주 MBC TV 제 30주년 기념 특별 프로그램(이승우 PD) "면대면"에 선정되어 전주 MBC TV 스트디오에 탑동 주 민 30명,전주시 이서면 은교리 마을주민 30명이 마을 자랑, 노래자랑,재치 문답 시합에 참여 하였다,
마을의 구성과 관련 지명:
건장산(금장산 백토산).고떰.양떰,가운떰.대롱 모랭이,탑밑이.구렁너머.갯골.골샴골.마루고개.죽봉.골샴.거리샴.물탕물.수리봉(시시봉).안터.당골.공동묘지.앞들(건장산 남쪽에 있는 넓은들).
고려 중기~말 부터 제주고씨. 제주본관 남원양씨. 전의 이씨. 전주 이씨로 구성 되어 고씨가 많은 고떰, 양씨의 양떰으로 집단 거주하여 내려오다가 현재는 타지역에서 많이 이주해와서 다성씨로 살고 있다.현재도 고씨 양씨 전주 이씨가 절대적인 분포상을 보이고 있다
오시는길:서해안 고속도로-동군산IC- 전군도로.익산방향 2km-호원대 방향 900m-탑동마을 이정표
주소: 전북 군산시 대야면 죽산리 탑동(탑골) 66번지
현 주소; 군산시 대야면 탑동길
탑동 마을 해설사 고대영 010-3659-9811
천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천년마을" 탑동마을 입구 입니다. 마을 뒤로 건장산이 보입니다.
탑골 삼층 석탑 입니다. 백제 양식 고려시대(고려건국 935년) 초에 축조 되었습니다. 우측 밭도 사찰의 일부 였습니다. 건장산으 산맥으로 당시에는 길 너머 장자골로 가는길이 없었으며 안터와 공동묘지가까지 같은 마을 이었다. 탑골 삼층 석탑과 골샘 약수터의 설화가 "MBC 전설 따라 삼천리"(1967년 방송) 프로에서 절찬리에 방송 되었던 탑의 실제 모델입니다.
보탑정사(옛 청룡사). 큰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 됩니다.탑을 아우르는 사찰이기 때문 이지요.삼층 석탑과 이웃하고 있습니다.
골샘(약수터) 입니다. 피부에 효험이 있다는 전설과 함께 약수터 위로 구불길이 삼층 석탑으로 이어져있습니다.(약 1.2km) 건장산(96m) 산행의 종점 이기도 하며 삼층 석탑으로 이어져 있습니다(산행 약 45분)
상여소리(앞선 소리꾼) 이길수(이길봉 1934~) 부부 입니다.상여 앞에서 흥겹게 선소리를 치시고 백중날 마을 "술멕이'축제를 할때는 그리도 꽹과리를 신명나게 치시던 모습이 선 합니다. 해질녁 추수 할 때에는 마를 청년들과 지게에 볏가래를 하늘 높이 쌓고 긴 행렬을 하며 땀을 뻘뻘 흘리며 호기롭게 마을로 들어 서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마을 모종에서 노인 병원 자동차를 기다리고 있는 이길수씨 부부
보탑정사 내에 있는 마애불상 입니다.
년
군산시 주관 2009년 "행복한 우리동네 마을 만들기"에서 군산시 관내 125법정 동리 중 당당히 1등을 하였습니다.
상금도 4300만원을 받았습니다. 탑 주위 정비 약수터 정비 사업등 마을 가꾸기에 큰힘이 되었습니다.
마을 대표.고성구//마을 위원:강점순 강규채 고대영 고석제 양순자 양기운 양기만 한상호 이신관 두미희
추진위원 단장.김병옥/ 담당 추진위원.조동용
2013년 4.15일 전주 문화 방송국에서 ^면대면^ 녹화 방송중
2013년 전주 문화 방송 스튜디오에 탑동 마을 사람들이 같이 했 습니다. 오래 기억될 화면 인것 같습니다.
임피면 사무소 지근 임피향교에서 출발하여 임피역을거쳐 우리마을 탑동을 통과하는 구불길2-1길(미소길)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 습니다.18.7km의 먼거리를 도보로 걸어서 신창 마을까지 가는 중간 지역 쯤 되는곳이 우리 탑동 마을 인듯 합니다.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여 우리마을의 좋은 인상을 남겨야 되겠 습니다.
미소길! 우리마을 을 지나는 우리의 길 입니다.
첫댓글 탑골이 이리 역사가 깊은 동네인지 처음알게되었네요
까페 만드신거 축하드려요^^
Thank you! 탑동의 역사에 관심이 있고 읽어 준것만으로도 감사
안녕하세요!!반갑습니다.. 대야에..그런 역사가깊은곳이 있는줄 몰랐어요전북 군산시 대야면 죽산리 탑동(탑골) 66번지..네비치고 둘러보고요.사진찍어와서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