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건축사회 전통건축 연수기행을 마치고 (2006.11.17)
지난 11월 17일 서울 건축사협회에서 마련한 건축답사에서 강사 부탁을 받고 참가해 상원사와 선교장 등을 다녀왔다. 그 행사는 60명의 회원과 사무국 직원 2명을 합쳐 62명이 참가했다. 참가한 회원님들은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과 자연의 맑은 기운을 느껴서인지 모두 즐겁고 명랑한 표정이었다. 이번 행사를 통해 건축사로서의 교감을 바탕으로 건축을 생각하고 격의 없이 친분을 나누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상원사의 장소성과 오대산의 기운
행사가 있기 몇 일전 기상대에서 예보한데로 눈이 많이 내렸던지 영동 고속도로에서 진부로 들어서 오대산으로 가는 국도 주변의 산기슭이 설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상원사 경내에서도 눈이 쌓여 있었는데, 눈이 내리며 대기가 더 맑게 되어서인지 문수전 앞마당에서 바라보이는 오대산 산세와 공기가 여느때보다 더 맑게 느껴졌다.
오대산은 신라시대 자장에 의해 거명된 곳인데,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네 나라에도 오대산이 있어 1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고 있으니 가서 뵙도록 하라”는 말을 듣고 와서 그가 찾아낸 곳이라고 한다. 중국 오대산의 원래 이름은 청량산인데, 동서남북과 중앙의 산봉우리가 평평하게 생겼다 해서 오대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오대산은 그것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오대산은 강원도 지역에서 금강산․설악산․오대산․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구간인데, 금강산이나 설악산에 비해 빼어난 경치로 알려진 곳은 아니다. 또한 또아리를 틀 듯 응축된 기세로 느껴지는 태백산처럼 위치가 뚜렷이 인식되는 곳도 아니다. 하지만 이 곳은 식생의 보고로 불리는 건강한 자연 생태와 깊은 산세로부터 일어나는 맑고 평안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바로 도량으로서의 오대산이 지닌 힘인 듯 보인다. 그리고 이 곳이 문수보살의 상주처로 전해오는 이야기도 그런 힘을 성스러운 서기로 여긴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오대산의 문수신앙은 보살의 실제 상주 여부보다 성지의 의미를 부여한 장소성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서 등장하는 보살의 존재는 불교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을 한층 더 복잡하게 한다. 보살은 본래 깨달음의 서원을 하고 정진하는 존재로서 싯다르타가 부처가 되기 전 수행하던 존재 모습과도 비유되는데, 부처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얻는 것이 수행의 한 가지 길이라면 보살 신앙은 깨달음에 이르기 전 수행자의 모습을 본받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불교에서는 보살 뿐 아니라 많은 부처도 나타나는데, 그것은 부처에 대해 불멸성을 부여하려는 상징적 의미라고 본다. 즉 유한한 생을 살다간 석가모니의 실존성과 불멸의 구원자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려고 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에 다시 오대산을 찾아들면서 여느 때보다 더 해맑고 청명한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수행에 적합한 맑고 깊은 장소의 기운을 찾아드는 심정은 오래전에 이곳에 신앙의 터를 닦은 인물이나 오늘날 이 곳에서 수행하는 출가자에 이르기까지 마찬가지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도시에 살며 잠시 찾아온 사람들도 그로부터 정신적 기운을 얻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선교장의 집합성
선교장은 전통 건축 가운데 퍽 특이한 건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외부로 드러나는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전통 가옥의 인식으로 볼 때 의아해하기 쉽다. 그런데 선교장이 이루어진 과정을 추적해 보면 쉽게 수긍될 수 있다.
현재 보이는 선교장의 거대한 모습은 처음부터 그렇게 지어진 것이 아니라 형제 자식의 여러 대가 한 집에서 함께 모여 살기로 하고 그에 필요한 건물들을 확충해감으로서 생긴 것이다. 이 곳에 처음 집을 지을 때는 지금의 안채 규모였다.
현재의 선교장을 보면 한 집으로서 완결된 것이 아니라 이웃집처럼 따로 살 수 있게 지어진 건물이 나열된 상태로 보여 질 수 있다. 하지만 여기는 집으로서의 삶의 통합성이 있다. 즉 엄연히 한 집안으로 영위되는 삶의 내용이 있기에 이 가옥을 하나의 집으로서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선교장에 대해 건축적으로 가장 의미 있게 살펴 볼 것은 각기 다른 용도의 건물이 이루고 있는 집합적 구성에 관한 것이다.
선교장이 많은 건물로 이루어진 이유는 단층 구조로서 수요를 수평적으로 확장해가는 양상과도 관계가 있다. 각 채들은 외부로부터 출입 및 건물끼리의 상호 연계를 고려해 배치되었는데, 그를 통해 쓰임상의 연계뿐 아니라 신분상의 영역 구분과 위계 그리고 각각의 영역안에서 건물의 쓰임을 매개하고 완결케 하는 마당의 효과 등이 면밀히 적용된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한 예로써 연지당은 양반 자제의 교육 공간인 서별당과 행랑채속의 하인 거처와 영역을 구분할 뿐 아니라 여자 하인이 거처하며 주인과 자제들의 수발을 들 수 있게 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도 마당 공간을 통해 신분상의 위계가 지켜지게 했다.
선교장 건물 곳곳에서는 수원 화성처럼 전벽돌이 사용되어 있다. 그것은 재료의 동일성 뿐 아니라 수류방화정 기단부에 보이는 십자 문양 수법까지 비슷하여 그 시대 문화적 흐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김석환 터․울 건축사사무소)
첫댓글 글 올려주셔서 감사 합니다.~^^*
좋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지는 건축기행문 이네요,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활동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