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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스라엘의 인구조사(민수기 1:1-54)
민수기(백성(民)셀(數)기록할(記) 영어로 Numbers)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민수기’의 제목이“광야에서”라고 붙어 있습니다. 출애굽 후 2년 2월 1일부터 모압 광야 도착(B.C 1406년)때까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며 경험한 내용에 붙은 제목입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전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한 지(B.C. 1876년 경, 창46:1-27),약 400년 뒤인 B.C. 1446년 1월 15일 경에(출12:31,40),애굽의 고센 라암셋을 출발하여 가나안으로 귀환 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하여 11일이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던 가나안 땅을, 하나님에 대한 불평, 원망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순종한 대가로 광야에서 보낸 40년의 불행한 역사입니다.
민수기는 인간이 아무리 원망하고 불평해도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원망 불평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획된 뜻에 의해서 역사를 진행하여 결국 그 일을 이루시고야 만다는 것을 보여 준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불평 원망 불순종해도 소용없습니다. 인간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중지되지 않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불순종하면 일주일 고생으로 끝날 일을 40년을 고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순종하는 것이 복입니다.
(삼상15:23)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민수기의 내용을 요약해 놓은 말씀을 두 구절 찾아보십시다.
첫째,‘가데스 광야의 사건’입니다(14장 22절과 23절)“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출애굽의 기적,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을 경험하고도 불순종했습니다.하나님에 대해 불순종하는 백성은“결단코”,“한 사람도”가나안을 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불순종의 결과,광야 40년의 방황이 시작된 전환점이 가데스 광야입니다.
둘째 구절은‘므리바 물 사건’입니다.(20장 12절).“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라고 하십니다.“믿지 않았다”는 표현은 “순종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쓰셨습니다.하나님 보시기에 믿음과 순종은 같은 개념으로,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하나님이 보시는 믿음의 기준은 ‘순종했느냐 안 했느냐’입니다. 이 때 단 한 번 불순종 때문에 모세는 끝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신3:23-27)“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믿음은 곧 순종이며, 순종은 곧 믿음이라는 등식이 민수기의 주제입니다.
(1)첫 번째 인구조사
본서는 두 번의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첫 번째는 군사적 목적으로 조사하였습니다(1장-4장). 그리고 두 번째는 가나안 땅 정복이 임박한 때에 이스라엘 공동체를 재정비하여 각 지파별로 정복한 땅을 분배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26장)
오늘날로 말하면 주민등록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 중 남자의 명단을 전부 작성하고, 그 중에서 20세 이상을 가려 군대를 조직했습니다. 46절에 보면,60만 3550명입니다.그 외 식솔들을 더하면 최소 200만 이상의 숫자가 짐작됩니다. 이 많은 인구를 하나님이 40년간 광야에서 먹이신 것이 믿어지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충분히 이겨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18절에(이 월 일 일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구조사를 명령하신 날과 인구 조사를 끝마친 날이 동일합니다. 논리적으로 하루 만에 인구 조사가 완료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60만이나 되는 대군을 하루에 파악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인구조사서’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38:24-31을 보면 이미 인두세를 거두기 위한 조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족 및 종족표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즉 자기 계통을 말합니다. 출생 근원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각 지파별 인구(21절-43절)
1), 르우벤(46,500), 시므온(59,300), 갓(45,650) 지파의 계수 결과입니다(21-25절).
이 세 지파는 출생 상 매우 친구한 지파입니다. 르우벤과 시므온은 레아로부터 나왔고, 갓은 레아의 시녀 실바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기질과 감정상의 문제까지 염두에 두시고 조직을 만드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유다(74,600), 잇사갈(54,400), 스불론(57,400) 지파입니다(26-31절).
광야 여행에서 제일 선두에 서게 될 유다지파와 그 휘하 지파입니다. 유다 지파는 계수결과 다른 지파보다 훨씬 많은 수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야곱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영적 장자권을 부여받은 유다의 위상과 권세가 출중함을 말하며 또한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3), 요셉과 그 아우 지파인 베냐민 지파입니다(32-37절).
에브라임(40,500), 므낫세(42,200), 베냐민(35,400)입니다. 광야 여행 중 제3대입니다. 다른 지파에 비하여 숫자가 많이 적습니다. 그렇다고 타지파와의 공동 사역에서 제외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요셉으로부터 난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기 다른 지파로 인정은 받은 것은, 요셉의 공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창 48:5-20).
4), 단(62,700) 지파와 아셀(41,500) 지파와 납달리(53,400) 지파입니다(38-43절).
행군 중 제일 뒤를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그 위치로 볼 때에 이들은 타지파보다 열등함을 뜻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미래를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들은 용맹하고 정의로운 기질로 이스라엘 공동체에 여러 공헌을 하기는 했지만, 성급하게 우상을 좇아 하나님을 떠나서 결국 선민공동체에서 제외되는 비운을 맞게 되고 말았습니다(계 7:5-8).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족장들이 계수한 결과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이었습니다. 이 숫자는 약 9개월 전에 조사된 성막 건축을 위한 속전 헌납자의 명수와 동일합니다(출 38:26).
전투에 능한 사람이 육십만이라고 했으니 대군입니다. 당시는 대략 B.C. 1,440년 경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수많은 세월이 흘러 즉, A.D. 1592년 일본을 통일한 히데요시가 조선을 공격하기 위해 보낸 병력수가 20만이었으니 이스라엘은 분명한 대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수는 약 200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불과 430년 전 야곱의 70명 가족이 이룬 쾌거입니다. 그 경이로운 숫자에 인구통계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데 상관이 없습니다. 얼마나 원통했던지 애굽의 바로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고 곧장 따라와 진멸하려고 한 사실이 그것을 입증해 주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목적일 것입니다. 왜 200만 명이냐?라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참 많은 나라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런 많은 백성들을 주셨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분께서 의도하신 나라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태초부터 계획하시고 추진하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그분이 왕인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 샘플이 바로 가나안 땅에 세워진 이스라엘입니다. 사실상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실은 한 나라의 백성들이라고 봅니다. 마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국민들인 것처럼 말입니다.
비록 인종도 다르고, 지역과 사회와 문화도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점에서 다 하나님 나라의 국민들인 것입니다. 미국 시민은 미국 법을 따르며 살며, 한국 사람들은 한국 법을 따르며 삽니다. 마찬가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며 살아야 합니다.
만약 한국 사람이 한국의 법을 따르지 않으면 한국 사람이 아니듯,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고 그분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둘째,하나님은 가나안 주민들을 몰아내지 않고 대신에 이스라엘에 60만 대군을 주었습니다.
힘쓰고 애써야 자기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차지한다고 했습니다. 고난과 시련으로 믿음이 증명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200만은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아브라함 꿈의 성취되는 표징임과 동시에 아직 이 땅에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그분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군사로 사는 것이 믿는 자의 본분입니다. 오늘 그 행군은 부단 없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430여년의 애굽에서의 고된 노예생활을 마치고 모세의 지도하에 출애굽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센 땅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서 불기둥, 구름기둥의 보호와 안내를 받으면서 출애굽 후 석 달만에 시내산에 도착하였습니다.
시내산 기슭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십계명을 비롯한 언약의 율법들을 받고 또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성막을 건립하게 됩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상징물과 같은 곳이었고, 율법은 하나님의 통치기준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율법을 받고 성막을 건립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인간의 법이 아닌 하나님의 법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을 통치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신정국가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때가 출애굽 이후 2년 1월 1일이었습니다.그러니까 출애굽 이후 1여년이 지난 때입니다.
성막건립 이후 하나님께서는 성막에서 드릴 각종 제사법과 성막에서 제사를 주관할 제사장 제도를 일러주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에게 남은 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만 남은 상황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인구조사를 명령하셨습니다.
세째,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를 실시하도록 명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싸울 만한 군대 조직을 갖추기 위해서입니다.
본장에서“20세 이상으로 싸울 만한 각 남자”만을 계수하라고 한데서 인구조사의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하나님은 군인의 숫자를 집계하고자 인구조사를 실시한 것입니다.유소년이나 모든 여성,심신이 병약하거나 지체에 장애가 있는 자들은 인구조사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 역시 이 땅에서 사단과 싸워야 하는 하나님의 군대요,예수의 군사된 자들입니다(딤후2:3).그러므로 성도는 싸워 이길 수 있도록 강건해야 합니다.그런데 성도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입니다.우리의 영과 육은 20대의 청년처럼 강건하게 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엡6:10-20).그래야 하나님의 군대로써 영적전투에 나갈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조직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구조사를 하되 ‘가족과 종족을 따라’ 실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2절) 여기서 ‘가족’은 가까운 친족들과 집단을 가리킵니다. ‘종족’은 ‘가족’보다는 넓은 개념으로 여러 가족 집단의 그룹인 ‘지파’ 전체를 의미합니다. 이는 혈통을 중심으로 가족과 지파별로 유기적으로 구성된 이스라엘의 사회 조직을 그대로 인정하고 그 조직을 기반으로 이스라엘의 군대를 편성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조직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 그 조직을 인정하고 그 조직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의 언약 공동체인 동시에 열두 지파로 구성된 유기적인 공동체입니다.
군대의 생명은 결속 있는 조직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전쟁이던 간에 숫자만 많다고 해서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습니다.전쟁을 이끄는 지휘관은 훌륭한 작전과 리더쉽으로 군사들을 이끌어야 하고,군사들은 지휘관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 군대 조직들이 체계화되고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군대의 총 지휘관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당신의 명령에 따라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이스라엘의 군 편성을 재정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오합지졸이 아닌 잘 조직화 된 생명력 넘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현대 사회는 다원주의 영향으로 다양한 사상과 철학이 난무하고 있습니다.이러한 세태 속에서 넋놓고 있다가는 오히려 헛된 사상의 흐름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도전에 잘 응전하기 위해서는 막강한 조직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의 총지휘관이 하나님이셨던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하겠습니다. 목회자로부터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도님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한몸된 지체로서 체계를 이루며 하나님나라 건설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셋째, 잘 돌보고 관리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인구를 계수하도록 하신 데에는 가나안 전쟁을 준비하며 군 조직을 정비하고자 하신 목적도 있지만 광야 생활가운데 이스라엘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거룩한 지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하나하나 기억하시고 눈동자와 같이 우리들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하게 이 세상에서 선한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그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인구조사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이 지배하고 있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하나님이 법이 통치하도록 하는 신정국가 건설을 수행하는‘여호와의 군대’ 의식을 확고히 정립하게 하는 소중한 일이 되었습니다.
인구조사는 이스라엘이 잘 조화된 모습으로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로서 상호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협력하도록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사단의 세력과 부단히 싸워야 하는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야 하는 점병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큰 구원을 만들어야 가며 하나님의 큰 구원을 이루어 가기 위해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십자가의 군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딤후2:3).
(2)레위지파는 군대 복무에서 면제되었습니다(47-54절)
첫째, 레위지파는 야곱의 셋째아들인 레위의 직계 자손들입니다.
하나님만 섬기는 일에 종사해야 하는 특별하게 성별시켰습니다. 모든 사제는 레위인이어야만 했는데, 나중에 아론의 직계로 한정되면서부터 아론의 지계를 뺀 다른 레위지파는 그냥 레위인으로 불리어 졌습니다.
그 후 레위인들은 제사장 아래에서 종교적 업무에 종사하는 계급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둘째,다윗왕 시대에 3계급으로 나뉘고, 각 계급은 24반으로 분류되었다.
첫째 계급은 사제직이었고,
둘째 계급은 성전(聖殿, 예루살렘에 있었음)에서 악사의 역할을 하였으며,
셋째 계급은 성전지기 및 그 문지기였다.
그 밖에 모든 레위인은 성전에서 일하는 자 외에는 백성을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이들의 생활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48개의 성읍(城邑)과 각각의 땅을 제공하고,
또 국내의 농산물과 가축의 1/10을 주었는데, 그들은 다시 그 1/10을 사제에게 바쳤다.
이것이 십일조(十一條) 제도의 기원이다.
셋째, 47-54절은 병역 의무에서 레위인을 제외한 내용입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을 위해 헌신된 자들입니다(출32:26-29).비록 군대는 면제 되었으나 그것에 버금가는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영적인 전투부대인 것입니다. 이들은 각 가정의 장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므로 선민중의 선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3:12).
넷째, 레위인들이 하는 업무
첫째, 성막 중심의 봉사를 통한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보존하는 것이며,
둘째, 일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적 존재로서의 각종 역할입니다.
이러한 레위인의 삶은 오늘날 우리 성도의 삶의 지표입니다. 즉 성도는 하나님과 이웃의 중보적 존재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영, 육의 건강을 위하여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3)증거막(증거의 장막)-이것은 성막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십계명이 담긴 두 돌판이 들어 있는 증거궤가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행7:44에서는 ‘증거의 장막’으로 언급됩니다. 그리고 모든 기구로 증거궤, 대접, 숟가락, 병, 잔, 진설병, 상, 등대, 불집게, 불똥 그릇, 번제단, 물두멍 등이 있습니다.
레위인들이 이 모든 것들을 관리하게 됩니다. 보살피고, 감독하고, 감시합니다. 또 운반합니다(나사). 운반한다는 말은 들어 올린다는 말로 사람의 손뿐만 아니라 각종 도구나 가축 등을 이용해서 운반하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와 회막 물건들은 레위의 첫째 아들 고핫 자손이 어깨로 매어 운반하며(4:15), 둘째 아들 게르손과 셋째 아들 므라리 자손들에게는 수레 둘씩과 소 넷, 수레 넷과 소 여덟을 주어서 운반케 하였습니다(레7:7-8).자세한 것은 레위기 4장에서 나옵니다.
성막은 이동할 수 있도록 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만지고 이동시킬 수 없습니다. 규정에 따라 진행하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규례에 따라 운반을 하고 관리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를 위한 봉사가 철저한 섬김과 순종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막 중심으로 봉사에 전념해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존키 위해 성막 외부로부터의 사람의 침입과 접근을 방지해야만 합니다. 마치 성을 파수하는 파숫꾼처럼 주위 성막을 중심으로 둘러 외부의 침입자를 능 경계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주의 영광을 위해 힘쓰는 동시에 주의 진리와 거룩함이 훼손되지 않도록 죄악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고전10:31).
(4)장막을 운반할 때에는 레위인이 그것을 걷고 세워야 한다(51절)
광야를 이동하기 때문에 장막도 세우고 걷는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다른 아무도 할 수 없고, 오직 레위인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막에 침입하는 자들 즉 외인은 모두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장막에 접근이 허용된 자 외에는 모두 외인입니다. 이 접근 금지 명령은 인간의 전적 부팽성과, 여호와의 장막의 신성함과,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성품을 반영한 조처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막을 치되 그 군대대로 각각 그 진과 기 곁에 칠 것이나(52절),
막은 여행이나 전쟁 시에 거주하기 위하여 혹은 공격을 위한 진을 말합니다. 인구 조사를 통해 파악된 12지파의 진, 곧 장막은 성막을 중심으로 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의 인생 항로가 항상 하나님의 성막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군대대로 치는 것은 편상된 조대로 장막을 치라는 것입니다.
(5)레위인은 증거막 사면에 진을 쳐서(53절)
레위인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사망을 둘러싸게 하였습니다. 그래야 성막 봉사에 용이하고, 또한 죄악으로부터 성막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게 한 것입니다. 경계를 잘 해서 외인의 침입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6)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행하였더라(54절).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온전한 순종을 말합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순종입니다. 순종은 모든 불가능과 역경을 뛰어 넘어 끝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드리는 참 용기와 참 지혜의 행동 원리입니다.(삼상 1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