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제(獻帝)
유협(劉協)이라는 본명보다는 "헌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있는 인물로, 후한의 마지막 황제이다.학문을 좋아했으며, 인물됨이 어질고 총명하였다. 영제의 어머니이자 유협의 할머니인 동태후에 의해 길러졌다.
189년에 영제 유굉이 죽고 유변이 하진에 의해 소제(少帝)로 즉위하자 유협은 진류왕(陳留王)으로 봉해졌다. 그 해에 하진이 십상시들에게 암살당했고, 원소와 조조, 원술이 대노하여 성안으로 쳐들어가 환관으로 보이는 자들을 죽이기 시작하자, 십상시 중 살아남은 장양과 단규는 진류왕과 소제를 데리고 함께 화를 피해 도망친다. 장양은 일이 틀렸음을 알고 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고, 단규는 황제와 협을 버려둔 채 도망갔다. 소제와 협은 반딧불을 따라가서 민가를 찾아내 거기에 묵었다. 한편 민공이라는 장수가 장양과 단규를 쫓다가 혼자 도망치는 단규를 발견하고 그의 목을 벤 후, 아침에야 황제가 있는곳을 알고 찾아왔다. 민공과 함께 돌아오던 황제와 협은 중간에 동탁의 보호를 받고 낙양으로 돌아왔다.
동탁은 낙양에 입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제를 폐위했고, 9세의 유협을 즉위시켰으니, 이가 헌제(獻帝)이고, 연호를 초평이라 했다. 동탁은 스스로 상국에 올라 온갖 간섭을 다 했는데, 그의 위세는 누구도 꺾을 자가 없어보였다. 반 동탁 동맹마저 결렬되자, 충신인 왕윤은 연환계를 써서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하는데 성공한다. 동탁이 왕윤과 여포, 이숙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이각과 곽사가 반란을 일으켜서 여포를 격퇴하고 왕윤을 죽여 다시 황제를 옹립했는데, 그들의 횡포는 동탁의 정도를 넘어섰다.
하루는 황제가 주전과 양표를 불러 현실을 한탄하니, 양표가 꾀를 짜 내서 이각과 곽사를 갈라놓게 했다. 양표의 아내가 곽사의 아내를 찾아가서 곽사가 이각의 부인과 바람을 핀다는 소문이 돈다고 했는데, 질투심 많은 곽사의 아내는 곽사와 이각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온갖 수를 다 썼고, 결국 둘이 싸우게 되었다. 두명이 한참을 싸우는데, 장제가 섬서에서 대군을 끌고 와서 둘이 화해하도록 했고, 결국 둘은 화해했다. 장제의 권유로 황제는 낙양으로 떠났다. 그러나 곽사는 이각이 돌아가고 장제도 섬서로 가자 군사를 이끌고 어가를 뒤?i았고, 이를 양봉, 한섬, 장양이 막았다. 양표가 조조더러 황제를 보호해달라고 하자, 조조는 군대를 이끌고 양봉세력을 격퇴한 뒤, 황제를 허창에 옮기고 자신이 보호했다. 하루는 조조가 유비를 데리고 황제와 함께 사냥을 나갔는데, 이때 황제를 간접적으로 능멸한다. 이를 계기로 조조 암살 계획이 시작되는데, 첫째는 유비, 마등, 동승, 충집, 오자란, 왕자복이 주축이었고, 두번째는 복왕후와 그녀의 아버지가 참가했다. 세번째는 길목, 길막 형제와 경기, 위황이 참가했는데,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조조 사후, 조비는 헌제에게 양위를 강요하였다. 그리하여 220년에 헌제는 조비에게 제위를 반강제로 강탈당한다. 이로써 후한은 14대, 195년만에 멸망하였다. 헌제는 산양공(山陽公)이라는 이름뿐인 직위에 봉해져서 살다가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