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으면 이런 짓 할 수 없어요.” 그는 마지막 공정만 남은 자신의 건물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언뜻 들으면 그저 그런 뜻으로 흘려듣기 십상이지만 가만히 새겨들을 만한 말이다. 아무도 선뜻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을 용감히 해낸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 자신만큼 연극을 사랑하기 쉽지 않다는 자부심, 그리고 아직도 황량하게 서 있는 한국의 연극 발전을 위해 모든 걸 투자했다는 만족감 등이 섞여 있는 건 아닐까. ‘어디 당신뿐이겠냐’고 반박하기 쉽지 않은, 그래서 대견스럽고 박수를 쳐주고 싶은 예술인 유인촌(49)이다.
“전재산을 다 투자했습니다. 25억원 정도 예산을 뽑았는데 음향과 조명시설에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더군요. 총 30억원 정도 들 것 같습니다. 사실 IMF 이후에 지었으면 14억~15억원이면 너끈했을 텐데 한창 비쌀 때 땅 사고 공사 시작해서 훨씬 더 든 셈이죠.”
그래도 남의 돈은 끌어쓰지 않았다. 부인 강혜경씨(40, 중앙대 성악과 교수)와 이제까지 모은 돈을 닥닥 긁어 모았을 뿐이다. 남들이야 모르겠지만 그는 이 오랜 꿈을 위해 내핍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방송과 외부활동으로 꽤 많은 돈을 벌었지만 튀지 않게, 사치하지 않고 살았다. 오로지 ‘언젠가 내 극장을 갖는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돈을 번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돈이 넘쳐나게 많았던 건 아닙니다.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갈 줄 몰랐어요. 전 그저 연극하는 애들과 한솥밥 먹으며 땀흘리고 싶었을 뿐인데…. 건축에 대해 뭘 알아야 확실히 계산했을 텐데 대충 계산해 모르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집도 팔고 가진 것을 톡톡 털어야 했죠. 하긴 계산 똑바로 했으면 시작 안했을지도 모르죠. 영화극장이라면 수익이 쏠쏠하겠지만 연극은 상황이 많이 다르잖아요. 수지타산을 계산하는 제작자와 열정만으로 좋은 작품 고집하는 배우로서의 나를 어떻게 조율할지가 가장 큰 화두입니다.”
온전히 연극만을 위한 공간
지금은 거의 정리가 됐지만 그도 얼마전 돈 때문에 어려웠던 고비가 있었다. 수년전 잠깐 했던 대치동 주유소를 친구에게 넘겼는데 명의이전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도가 났다. 친구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연대보증인처럼 돼버린 그가 모든 걸 뒤집어쓴 것. 마침 집과 땅을 팔아 공사비에 써야하던 차에 일이 터져 부동산이 가압류당하자 대출을 받을 수도 없어 한동안 애먹었다고. 거기다 모월간지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되는 바람에 빌려주겠다는 사람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사업하면 안된다는 말이 있나봐요. 계약에 관해 뭘 자세히 알아야 대처하죠. 나름대로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남들은 그 일로 제가 길바닥에 나앉은 것으로 아는데 전혀 아닙니다. 그 어려운 때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했어요. 그런데 그 일로 좋았던 점도 있습니다. 사람이 정리되더라고요. 내가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사람과 그렇지않은 사람이 확실히 구분되었죠.”
그렇게 힘든 가운데에서도 ‘유씨어터’는 유인촌의 오랜 꿈만큼이나 탄탄하게 지어졌다. 대지 160평 위에 지상 5층 지하 3층의 ‘유씨어터’는 노출 콘크리트 방식으로 지어져 회색 시멘트와 목재의 느낌이 그대로 느껴진다. 유난히 비가 많았던 지난 여름을 치르고도 물 한방울 새지 않을 만큼 견고해 대견하다며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 하는 모습으로 그가 얼마나 이 극장에 애착을 갖는지 알 수 있었다.
“축축하고 냄새나는 극장 정말 싫습니다. 공연하는 사람 기분도 불유쾌한데 장시간 앉아 있는 사람은 어떻겠어요? 그리고 찬바닥에 쭈그리고 보는 것도 연극의 감동을 감소시키는 요인이에요. 불편하고 찝찝해 빨리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제대로 몰입할 수 있습니까? 전 제대로 된 극장이 많이 늘어나 서로 대접받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씨어터’는 그런 면에서 걱정없다. 극장이 지하에 있지만 냉난방은 물론 공조(공기의 유통)시설까지 완벽하다. 관객우선주의의 그가 다른 것보다 극장환경을 최대한 신경썼다는 걸 입증해준다.
약 3백석 정도인 지하2층 극장은 예술의 전당 내 ‘자유소극장’보다 조금 작다니 결코 소규모는 아니다. 건물의 용도는 처음 계획과는 사뭇 달라졌다. 이런저런 문화공간으로 전체를 꾸밀 예정이었는데 자금조달이 어려워 임대도 할까 생각중이다. 지하3층은 주차장, 지하2층과 지하1층은 극장과 부대시설, 지상1층은 로비, 2층과 3층은 기획사무소나 임대지로 쓰일 예정이고 4, 5층은 그의 가족들이 살 집이다. 같은 살림집 용도라도 5층은 가족들만의 공간이지만 4층은 좀 다르다.
“일종의 게스트 하우스예요. 몇년 전 국제연극제가 우리나라에서 있었습니다. 그때 외국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했어요. 연극이야 연습실에서 했지만 10명 남짓한 외국인들이 두어달 동안 작은 호텔에서 먹고 자니까 아주 불편해하고 돈도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언젠가 극장을 지으면 거기서 얼마간 배우들이 생활하면서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요. 괜찮은 생각이죠?”
놀라운 말이다. 수십억의 사재를 털어 건물 지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연극, 연극인의 생활에 대해 뼛속 깊이 알지 못하면 나올 수 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아내만을 위한 공간 만들어
모든 재산을 털어 돈도 안되는 일을 한다는 남편이 있다면 그 부인은 어떤 생각을 할까?
“초록은 동색이죠. 우리 아내도 처음부터 시작된 걱정이 지금도 계속이지만 극장에 종종 와보면 뿌듯한가 봐요. 아내도 시간이 허락되는 한 무대에 자주 설 겁니다. 올 연말쯤 아내가 출연할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려고 합니다.”
그가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은 비공식적(?) 구조인 6층 옥탑이다. 하늘을 배경삼은 음악연습실을 만들어 피아노를 놓고 방음장치를 한 후 아내인 강교수에게 선물할 계획이라고 관계자가 슬쩍 귀띔했다. 남편으로서의 유인촌은 겉보기만큼이나 멋지다고 느낀 건 외부인의 단편적인 사고일까?
아버지로서는 어떨지 궁금해 아이들 교육에 대해 질문했다. 중3, 초등학교 5학년인 두 아들들은 아직 아버지처럼 살겠다는 뜻은 없고, 유인촌·강혜경 부부도 뭐가 되라고 강요해본 적 없다. 그냥 풀어놓고 마음껏 지내다 언제든 뭔가 결정되면 전폭적으로 지지할 생각일 뿐이다. 하지만 집안의 가업이나 다름없는 문화예술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할아버지인 희곡작가 유치진과 작은할아버지 청마 유치환 시인, 숙부인 유길촌 PD, 아버지 유인촌과 어머니 강혜경 성악과 교수 등등, 이 화려한 핏줄과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저 애들이 어디로 벗어나겠습니까? 남들과는 피가 다른데…. 아무리 풀어놔도 이 근처에서 놀겠지. 갓난아기 때부터 음악과 연극을 접하고 자란 아이들이 뭘 하겠어요? 큰 아이는 확실히 영화를 좋아해요. 나중에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연기만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넌 아무리 해도 나보다 더 잘할 수 없을 테니까’라고 설명했죠. 하하.”
대단한 자신감이다. 하긴 그의 연기가 어디 한군데 흠잡을 데가 없다는 것은 모교인 중앙대에서 인정해주고 있다. 후배들에게 한학기에 3~4과목(성격창조, 화술, 창작실습, 기본연기)을 강의하고 있으니 말이다. 주로 실기과목인 이 강의는 97년에 시작할 때부터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다른 선배보다 유인촌이란 선배를 더 신뢰하는 까닭일 것이다.
그의 궁극적인 인생목표도 바로 그거다. 뛰어난 연극인들을 많이 배출하는 것, 그러기 위해 액팅스쿨을 세우는 것. ‘유씨어터’가 제대로 운영되면 먼훗날 ‘힘이 없어’ 무대에 설 수 없는 날 후진양성을 하는 게 꿈이라고 조심스레 밝힌다. 하지만 여기저기 난립하는 연극학원이 아니다. 문교부나 대학과 손잡고 제대로 된 학교 또는 대학원을 만들 생각이다.
“유씨어터 건물 기둥에 사람 이름을 새겨넣을 겁니다. 우리 건물을 짓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이죠. 그분들이 나를 믿고 도움을 준 의도는 이 건물과 함께 연극에 한평생 바치라는 뜻일 겁니다. 제가 살아 있는 한 이 건물의 용도를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이름을 새기는 거죠. 그리고 이 건물에서부터 액팅스쿨이 시작될 겁니다.”
30년 연기생활 동안 그는 수많은 팬과 조력자를 두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그와 친분 있는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의 아내들로 구성된 ‘디딤회’. 음으로 양으로 유인촌을 돕는 데 앞장서는 그들이 하는 일이 많지만 그 중 감동적인 게 있다면 연극공연 때 일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첫 공연은 완전매진
유인촌이 등장하는 모든 공연의 첫날 첫회 공연은 아무나(?) 볼 수 없다. 예매표가 몇 장이든 모두 디딤회 회원들이 사버리니까. 출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첫 공연이 매진이니까 그만큼 부담이 줄어 고마울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말이 쉽지 공연이 어디 한두 번도 아니고, 더군다나 좌석수가 어디 한두 개인가? 적어도 1백~2백석인데다 한두 푼도 아닌데. 그리고 불만 한 가지. 유인촌과 동료들로서는 백번 고마운 일이지만 그를 사랑하는 또다른 사람들은 첫 공연을 보는 기회가 거의 없으니 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까?
‘유인촌의 극장’ 또는 ‘당신의 극장’이란 뜻의 ‘유씨어터’는 4월 개관에 맞춰 20일부터 6월20일까지 두달간 <햄릿 1999>를 공연한다. 다른 공연과 달리 ‘유씨어터’는 저녁 8시에 시작한다. 이유인즉 퇴근하자마자 교통혼잡을 뚫고 헐레벌떡 늦게 들어오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마음의 준비 없이 늦게 오는데다 앞장면을 놓쳐 손해나는 관람객, 들락날락하는 사람들 때문에 산만해지는 배우, 양쪽의 불만을 없애기 위한 그의 아이디어다.
5월1일부터 6월30일까지 낮에는 아동극
<하늘·땅·바다이야기>를, 6월24일부터 7월25일까지는 극장을 알리기 위해 조관우·양희은·김창완·들국화·해바라기 등의 콘서트를 마련한다. 올 연말까지 알찬 공연스케줄이 빡빡한 유씨어터의 티켓은 현장판매가 2만5천원, 전화예약은 2만2천원이다. 연회비 3만원이면 유씨어터의 회원으로 1만5천원에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젊은층도 좋지만 사실 저는 30~40대를 위한 극장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에요. 그 나이의 사람들이 즐길만한 문화공간이 없잖아요. 그리고 극단 연극은 웃고 떠들기보다 무게감이 있기 때문에 인생의 맛을 어느 정도 경험한 사람들에게 적합할 겁니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양질의 공연을 좋은 환경에서 관람해보자고요.”
74년 MBC탤런트 공채 6기로 시작해 25년간 연기만 하며 살아온 그가 더 늦기 전에 자신의 극장에 서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앞뒤 잴 것 없이 저지른(?) 무대, 자신이 더 이상 관리할 수 없게 될 날이 오면 대학이나 문예진흥원 등에 기증할 생각이라는 유인촌의 꿈의 전당, ‘유씨어터’가 자리잡을 몇 년간은 연극에만 몰두하고 싶다는 유인촌은 기운이 떨어지는 날까지 무대에 설 것을 약속하는 우리 시대 진정한 배우가 아닌가 싶다. 유씨어터는 도산로 탑웨딩 골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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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진짜인가.... 설마.... 유인촌이....
친일파 후손이 역사스페셜을 진행해 왔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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