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일 첨부하였습니다.
열어 보시면 됩니다.
고별공연
신영우
유채호는 출근 전에 몇 차례나 자신에게 다짐을 했다. 20년이나 미루어 오던 그 일을 오늘은 꼭 해야 한다며 결단성이 부족한 자신을 윽박질렀다. 그는 현관을 나서면서 오늘 8시에 저녁기도를 하자고 말하자 ‘그럼 오늘 저녁엔 우리와 같이 식사를 하시게 일찍 들어오세요’하고는 모두 반기며 일제히 배웅했다. 그는 저녁기도 시간에 가족들에게 성실하지 못하고 상처를 주었던 지난 날을 반성하고 용서를 청하는 사랑의 편지를 전하며 각자에게 사랑의 편지와 함께 포옹까지 해 줄 계획이었다. 늘 가족들에게 사랑을 전하려고 커피 타임을 약속했지만 그날따라 일을 핑계삼아 약속을 지키지 못해 늘 미안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분주한 일 속에 빠져 일확천금을 노리며 탐욕의 노예가 된 것은 건설업이란 직업 탓만은 아니었다. 그는 성장과정에서 부모로부터 ‘특대생이 되어라, 완전무결해라, 판검사가 되어 부모가 못다 산 한을 풀어라’는 등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여 자신을 버림받은 무가치한 존재로 느끼면서 스스로를 몹시 싫어하게 되면서부터 자신이 꿈꾸어오던 이상적인 형인 유능하고 화려한 거짓 자아를 양육하면서 더더욱 분주한 일 속에 빠졌다. 더구나 자신의 무능함이나 나약함으로 인해 받은 상처와 가난으로 인한 아픔들이 곪아터져 탐욕과 결합하여 돌연변이를 일으켜 죄만을 편식하며 거대한 욕망의 괴물로 자랐다. 이런 그의 자아는 짜릿하고 달콤한 죄를 즐겨먹으며 화려하게 성장했고, 그는 거짓자아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여 언제나 남보다 유능해야 했고, 성공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충동으로 그의 행복은 끝이 없이 요구하는 거짓 자아의 탐욕을 충족시켜야만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그는 끝없이 욕망을 포기함으로서 행복을 누리려는 참 자아를 받아들일 수 가 없어, 참 자아를 버리게 되었고, 그로부터 자신의 존엄성마저 잃고 불안한 감정표출로 인한 강박관념에 휩싸여 거짓자아에게 빗나간 애정을 낚기 위해 일확천금만을 꿈꾸며 헤메고 가족들과는 커피타임마저 갖지 못하던 그가 저녁기도를 갖자고 했으니 기뻐할 수 밖엔……. 이런 소박한 가족들에게 충실하지 못했던 지난 날을 반성하며 용서를 청하는 사랑의 편지와 함께 포옹까지 한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콧등이 찡했다. 그는 안주머니에 있는 사랑의 편지를 만지작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오늘따라 사무실의 분위기가 몹시 어수선했다.
“사장님, 어제 오후에는 전혀 연락이 안되던데요.” 하며 최과장이 황급히 말했다.
“왜,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하며 유채호가 물었다.
“어제 오후 아파트 현장에 인부가 둘이나 죽었습니다.”
“어떤 인부가?”
“미장공과 미장 보조공이 비계를 보수하다 7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하며 최과장이 말했다.
“산재보험과 근로자 재해보험은?”
“산재보험은 년 매출이 백억이 넘는 회사는 일괄처리라 자동으로 가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근로자 재해보험은 미장전문 건설에서 가입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럼, 보상금이 일억씩은 넘겠구나? 그리고 둘 다 죽었으니 천만 다행이구나.”
“네, 맞습니다. 죽지 않고 병신이 되었다면 골치가 아플 뻔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어음교환 자금은 얼마야?”
하며 유채호가 물었다.
“칠억 이천만원입니다.”
“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습니다.”
“교환이 7억이나 되는데 전무와 상무는 수금은 안하고 어디에 간거야?”
하며 유채호가 신경질적인 고함을 질렀다.
“전무님은 해운대 경찰서에, 이소장을 데리고 조사를 받으러 갔었고, 상무님은 아파트 현장에 갔습니다. 그리고 아파트 현장에는 조폭들이 유족들과 함세를 했습니다.”
“조폭들이 합세를 했다고?‘
“네, 사장님도 피하시는게 좋겠습니다. 사장님을 찾는 전화가 몇차례나 왔습니다. 곧 들이닥칠 것 같습니다.”
“얼씨구, 출근 전이라던 사장이 사장실에 있구먼. 얘들아, 우리들은 사무실에서 술판을 벌리세. 같은 값이면 아가씨들 옆이 더 좋겠구나.”
근육질에 검정색 양복의 스포츠 칼라들이 사무실에 소주됫병을 따르며 술판을 펼쳐Te.
“최과장, 저 꼬마들은 어느 소속이래?
유채호가 물었다.
“서면 불곰파랍니다.”
“불곰파면 칠성이야? 20세기야?”
“칠성팝니다.”
“그럼 우리 김이사하고 족보는 당겨봤나?”
“아니요,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사장님, 우리도 애들을 부를까요?”
“아니다. 전투에는 무혈 입성이 최고지. 책임자를 불러봐.”
“사장님 불렀습니까?”
“그래, 너 어느 소속이야?”
“서면 불곰팝니다.”
“직책은?”
“행동 대장입니다.”
“이름은?”
“김두환이고요, 건달명은 독사라고 합니다.”
“하하하! 독사라고?”
“사장님, 왜 웃으십니까?”
“난, 지리산 땅꾼이야. 그래서 독사만 보면 그저 기분이 좋아. 그리고 삼백번지 철이가 우리 회사 업무이사야. 난 너희 본사의 고문이기도 해. 너희 공장에서 일어나는 큼직한 사건은 내가 해결을 많이 하는 편이지.”
“그렇습니까? 철이 형은 제가 3년이나 모셨습니다. 큰 형님을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얘들아, 이리와서 인사 드리자.”
“큰 형님 만수무강하십시오!” 하며 검정색 양복의 스포츠 칼라 다섯 명이 행렬로 줄을 지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미쓰 김, 지금 시재가 얼마 있지?”
“이백만원 정도요.”
“그래, 그걸 다 갖고 와. 그리고 책임자를 불러 봐.”
“큰형님, 부르셨습니까?”
“응, 이거 이백만원인데 애들하고 식사나 해.”
“큰형님 감사합니다.”
“교환이 7억이나 되는데 상무는 아파트 현장에서 무엇하고 있는거야?”하며 유채호가 또다시 신경질적인 고함을 질렀다.
“아파트 현장에서 유족들에게 잡혀 꼼짝을 못한답니다.”
“그럼 독사를 불러봐.”
“큰형님 부르셨습니까?”
“너 아파트 현장에 가서 우리 상무를 빨리 풀어줘.”
“알겠습니다. 지금 우리 애들한테 전화해서 바로 풀어드리겠습니다.”
“현장에는 애들이 몇 명 더 있는거야?”
“세 명이 더 이씁니다.”
“미쓰 김, 상무님한테 전화해서 대학 현장으로 수금하러 가시라고 해.”
“사실은 어제 상무님이 대학 현장에 연락을 했는데 재단 이사장은 서울 출장 중이시고, 법인 국장은 노동청에 압류를 해지해야 결제를 하겠답니다.”
“노동청이라니”
“산재 체납금으로 현장에 압류가 되었습니다.‘
“압류 금액은?”
“오천만원입니다.”
“그럼, 차용을 해서라도 납부를 해야지.”
“박회장님께 차용을 해서 납부를 했습니다만 해지 서류는 내일 결재가 난답니다.‘
“납부를 했으면 자동으로 해지가 된 것 아니야? 그런데 해지서류는 무슨 해지서류냐? 법인 국장 바꿔봐.”
“입장이 곤란하니까 한시간전부터 연락이 안됩니다. 사장님 어음 교환이 돌아왔습니다.”
“누락된 것은?”
“칠억 이천 전액 다 돌아왔습니다.”
“그럼 빨리 연장을 걸어야지.”
“연장을 걸었습니다만 이번이 3차 마지막 부도라 김차장이 비협조적입니다.”
“사채 시장에는 알아봤나?”
“네, 사채 시장엔 당좌수표를 발행해야 하는데 수표장이 없습니다.”
“수표장은 왜 또 없는거야?”
“미회수 용지가 20매를 초과해서 못했습니다.”
“그럼 지점장 바꿔 봐.”
“지점장이 일주일간 교육이랍니다.”
“미스 최, 냉장고에 캔맥주 좀 가져와.”
“어제 오후에 사장님이 다 자셨잖아요.”
“그럼 한 박스를 사 와야지. 우황청심환도 알약으로 사 오고. 그리고 차 대기시켜. 내가 대학 현장에 수금을 가야겠다.”
“사장님, 차 대기시켰습니다.”
“아이구, 머리야!”
“최과장님, 사장님이 침을 흘리며 쓰러졌습니다.”
“침을 흘리신다구? 내가 메리놀 병원으로 모시고 갈테니 사모님께 연락해서 병원으로 오시라고 해요.”하며 최과장이 유채호를 업으며 말했다.
유채호는 두 차례나 뇌의 수술을 받았으나 너무 민감한 부위가 손상되어 결국 그의 육체가 그의 영혼을 버렸다.
불현 듯 그가 보던 세상이 사라졌다. 별도, 달도, 언덕도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의식의 강 위를 떠돌던 생각의 조각배에 타고 있던 가족들마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강의 심연으로 침몰하면서 칠흑같은 망각의 어둠 속에 묻혀버렸다.
죽음의 끝 너머로 영원 불멸의 세상을 향하는 문이 열리고 감각의 세상 저편, 죽음의 징검다리 건너에 감각의 눈으로 보이지 않던 실존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영혼의 눈과 귀가 열렸다. 그러자 빛의 장벽으로 쌓여진 웅장한 성벽이 그를 가로막았고, 성문 앞에서 한 수녀가 서성이고 있었다.
“왜 창조주 하느님을 만나려고 하십니까?” 하며 성문을 지키던 염라대왕이 물었다.
“방금 저와 지상에서 온 유채호씨는 저와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를 지어내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아버지께 부탁을 드린 일이 있었어요. 부양가족이 있는 유채호씨는 살려주시고 가족이 없는 저를 대신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저의 기도를 한번도 거절하시기 않던 아버지께서 못들은 척을 하셨으니 그의 부양가족을 어떻게 해야합니까? 더구나 오늘 저녁에 가족들에게 사랑의 편지를 전하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저녁기도를 갖기로 했다는데 말입니다.”
창조주 : 나의 작은 영혼아! 너가 왜 나를 찾느냐?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지 않았더냐?
골롬바 수녀 : 아버지, 유채호 형제가 가족들과 작별 인사라도 나눌 수 있도록 앙코르의 박수를 보내주세요. 아버지께서 외아들 예수님께 보내신 그런 앙콜의 박수 말입니다.
창조주 하느님 : 너는 자비와 정의를 혼돈하고 있구나. 너의 정이는 감동이 없는 앙코르의 박수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단다. 그래서 인류 역사상 단 한 차례밖에 앙코르의 박수를 보낸 일이 없지 않았더냐? 그러나 나의 외아들 예수는 너무 감동적인 연기를 했었지. 그래서 기립 박수까지 보냈단다.
골롬바 수녀 : 그거야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시나리오는 천지창조와 함께 인류 구원을 우해 아버지께서 직접 쓰셨잖습니까? 아버지! 이 우주적 드라마를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이 드라마는 우리를 지어냇고 만물을 창조하신 아버지께서 주관하시지 않습니까? 왜, 무대에선 연습이 없습니까? 왜, 각본도 없는 연기를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십니까? 그러고도 무대의 막을 일방적으로 내릴 수가 있습니까? 하찮은 축구 경기에서도 두 번씩이나 경고를 보낸 뒤 퇴장을 시키는데 대단원의 막을 내리시면서 한번의 경고도 없이 퇴장을 시킬 수가 있습니까? 그런 우린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무대에 차례로 놓았다가 버리는 소품인가요? 아버지의 정의로서 앙코르의 박수를 보낼 수 없으시다면 아버지의 자비께서 앙코르의 박수를 보내주세요. 그렇지 않으시면 대단원의 막을 내리시면서 한 차례의 경고도 없이 퇴장을 시킨 부당한 심판이라고 소문을 퍼트리고 다닐 거예요. 그에게 앙코르의 박수만 보내주시면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창조주 : 나의 작은 영혼아! 나는 객석에서 한 차례도 너희의 연기에 눈을 돌린 일이 없었단다. 너희의 주님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산말마의 고통 중에서도 자신을 못박아 죽이는 원수까지 용서를 청하지 않았더냐?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당신 스스로 사셨던 것이다. 그런데 유채호는 자신의 무대에서 이렇게 외쳤단다.
“내 영혼아! 우리는 어디든지 갈 수 있도록 육체라는 나귀를 하나 대여받았다. 그 나귀를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는 한평생이란 시간도 얻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삶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할 수 있는 자유 의지도 부여받았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시나리오 작가요, 연출가다. 그러니, 우리가 백만장자의 역할을 하든 거지의 배역을 연출하든 우리의 자유의지만이 결정할 따름이다. 나의 영혼아, 우린 백만장자의 역할을 맡아보세나! 그러면 이 무대는 우리 자신만이 주인공이다. 달도, 별도, 태양마저도 우리들을 위한 소품들이라네. 우리가 백만장자의 역할을 맡게 되면 우리 영혼을 태울 나귀는 진주로 반짝이는 편자를 신을 것이며, 안장은 황금으로 꾸며 눈이 부시어 어느 누구도 우리 곁에 접근을 하지 못할 것일세. 더구나 나귀의 구유는 칠보로 단장되어 입맛을 한껏 돋굴 것일세! 그것 뿐이랴. 창고마다 나귀의 먹이들로 넘칠 것이며 대궐 같은 마굿간엔 나귀의 장신구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을 것이네. 자, 우리에게 백만장자의 배역을 허락한 자유의지를 위해 축배를 드세나! ”
하며 그는 자신의 나귀를 영원토록 소유할 것인양 나귀의 종 노릇을 하지 않았더냐? 그러나 너희의 나귀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담이 원죄로 쳐놓은 죽음이란 그물망에 포착되어 있었다. 그 나귀는 멍에처럼 씌워진 시간의 바퀴에 묶여 과거의 노예며, 미래에 저당잡힌 볼모가 아니더냐? 더구나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죄의 거대한 자체관성에 이끌려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죄의 종착역인 죽음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시간의 병사가 잠시 빌려 준 ‘나귀라는 무대의상’을 영혼에서 강제로 벗겨, 지로 부패하여 악취가 풍기는 그 의상을 참신한 새로운 배우를 맞이하기 위해 무대 밖으로 밀어낸 것이란다. 그래서 너희는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후회없는 삶을 살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너희의 주님인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들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해 왕의 광채도, 신성마저도 숨기셨다. 너희들을 우해 자신의 덕마저 베일 속에 감추셨다. 너희가 완벽한 모델을 보고 도달하지 못하는 굴욕과 절망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너희 주님은 사제가 원하면 지금도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간다. 그렇다. 너희에게 굴복할 정도로 너희를 사랑하셨다. 이런 너희 주님과 유채호를 너의 정의가 판단해 보려므나? 이제 끝도 없이 영원히 막이 내려지지 않는 2막을 준비하자꾸나.
골롬바 수녀 : 아버지! 2부에도 우리 스스로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해야 하나요? 저는 이곳의 관습이나 법도를 전혀 모릅니다. 그런 저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해야 한다면 형편없는 졸작이 되고 말 거예요.
염라대왕 : 2막에선 인간의 자유 의지가 죄와 함께 퇴장을 당했단다. 2막에선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정의께서 시나리오를 쓰시고 하느님의 공의께서 연출을 하신다네. 더구나 2막은 1막에 대한 결산의 무대란다. 2부에서의 재무제표는 사랑과 자선이랑 저축금에 죄라는 부채를 뺀 것이 순수한 이익금이다. 그리고 천상에서의 부채를 변제하는 방법은 불의 고통으로 갚아야 한다.
창조주 : 그런데 너희는 성처 성사로 내 외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자랐으니, 왕족의 피가 흐르고 있구나! 왕족의 혈통이 되었으니 왕자나 공주의 배역을 맡는단다.
유채호 : 아버지! 저는 왕자의 역만은 싫습니다.
창조주 : 천상에서 왕자나 공주의 배역보다 더 멋진 배역은 없을텐데?
유채호 : 그러나 저는 악마들을 위한 희극배우는 되기 싫습니다. 그들은 저의 죄를 낱낱이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저는 그들의 종살이를 평생동안 하지 않았습니까?
창조주 : 염라대왕, 유채호의 결산서를 본인에게 읽어주게나.
염라대왕 : 아니, 이거 큰일났구먼. 부채는 태산이고 저축금은 티끌이구려. 태산에서 티끌을 공제해 본들 그대로 태산이니 영원한 지옥불의 고통은 면할 길이 없네 그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이지? 그 큰 태산이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말일세! 그래, 자세히 한번 살펴볼까? 그러니까 유채호가 세례성사를 받아 요한으로 새로 태어나던 날이군. 예수님께서 이천년 전에 인류의 죄를 보시고 창조주 하느님과의 화목제물이 되시어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르시고 유채호를 구속(救贖)하시면서 그의 부채를 모두 변제를 하셨구려. 세례성사의 대 사면 이후에도 작은 부채가 이렇게 많을수야? 그러나 이것 도한 예수님이 사제들에게 능력을 주시어 고백성사라는 회개의 지우개로 깨끗이 지웠으니 눈처럼 깨끗하다네.
골롬바 수녀 : 염라대왕님. 천상에서 예금 금리는 얼마예요?
염라대황 : 천상에서의 빵은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 자녀들에게 사랑의 빵을 무한정으로 공급을 하시지요. 그리고 예금의 금리는 행복이랍니다.
하느님이 유채호의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채권을 추심한 원고 측의 변론과 채무자 측의 변호인은 최종 변론을 하세요.
악마 :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척이나 존중하시는 하느님!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한계를 여쭤보겠습니다. 월남전이 끝나고 사회가 몹시 혼란했을 때였습니다. 월남의 갱단이 실의에 빠진 미혼모에게서 어린이를 사서 다리를 부러트리고, 팔을 비틀어 거지로 만들어 거리에서 돈벌이를 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의 한 선교사가 그 불쌍한 어린이를 구하기 위해 착취자에게 값을 치르고 그 어린이를 사서 그의 어머니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그 어린이는 자신을 구속한 선교사를 향해 마구 대들었습니다. “죄의 종살이를 하면 적어도 나귀의 먹이와 안전은 보장되는데 자유가 무슨 소용입니까? 여긴 어느 곳보다 나귀를 먹이를 구하기에 익숙해 있고 이만한 기득권을 얻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뤘는지 알기나 하시나요? 자유를 향해 광야의 길을 걸은 후에 얻어지는 대가가 무엇입니까? 분명치 않는 자유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나귀의 목숨을 걸 순 없습니다. 그러니 나귀의 먹이가 보장되는 착취자에게 다시 보내주세요.” 하며 선교사의 바지가랭이를 붙들고 애원을 했습니다. 이럴 때도 그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야 하십니까?
창조주 : 어린이는 사고의 판단능력이 없으므로 그의 자유의지는 존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악마 : 그가 어린이가 아닌 성인이라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창조주 : 성인이라면 당연히 그의 자유의지는 존중해야 한다.
악마 : 그 성인이 바로 유채호입니다. 유채호는 그의 죄값을 십자가 위에서 치르시고 그를 구속하신 예수님께 그 어린이와 똑같은 말을 하여 죄의 종살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니 그는 그의 자유의지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대속으로 대 사면을 하신 구원을 그의 자유의지로 거절한 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영원한 지옥불’에 보내야 함은 지극히 마땅한 일임을 변론하오며, 더구나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시어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속량하신 대 사면은 이천년 전이라 유채호가 태어나지도 않았을뿐더러,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죄가 있을리도 없고, 없는 죄를 이천년이나 거슬러 올라가서 탕감을 하는 것은 하느님의 정의에도 어긋나므로 그는 대 사면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함은 지극히 마땅하므로 ‘영원한 지옥불’에 보내야 함을 강조하며 채권자의 변론을 마치는 바입니다.
베드로 사도 : 하느님 아버지! 유채호 형제가 그런 의사 표명을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땐 그가 세례성사로 저의 부채를 모두 탕감받고 난 후에 나귀를 부양하기가 힘이 들어 죄의 종살이로 되돌아가는 그를 말리시는 예수님께 투정을 부렸던 말입니다. 이미 그땐 세례성사로 그는 부채를 모두 탕감받은 후의 일일뿐더러 ‘일사부재리’의 진리에 의해 사면이 되었으므로 더 이상 거론의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천년이나 소급해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는 악마의 변론은 궤변입니다. 예수님은 천지창조 이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살아계시는 그 분의 시간으로는 ‘영원한 현재’가 아닙니까? 더구나 ‘영원한 현재’에도 인류의 죄값을 대속하시며 십자가 못 박히고 계십니다.
유채호 : 맞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인류의 죄값을 대속하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며 고난을 받고 계십니다. 오늘 아침에도 수감되어 계시는 예수님께 면회를 다녀 왔습니다. 예수님은 감실이란 감옥에 수감되어 계십니다. 죄명은 사랑이랍니다. 예수님께서 놓아두신 사랑의 덫에 예수님이 갇혔습니다.
베드로 사도 :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천상의 밀을 빵의 집 베들레헴에 뿌렸습니다. 예수님의 본성인 밀의 이삭이 짓밟히고 으깨어져 가난한 겸손으로 변장하십니다. 제대 위에서 불의 고통에 던져져 살아 있는 빵이 되셔서 악의를 품은 자들의 음식이 되어 그들의 영혼 안에서 십자가에 못을 박힙니다. 그들은 살아있는 예수님의 심장을 자신들의 육체 속에 가두어 둡니다. 그 심장을 자신들의 주인인 악마에게 데리고 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시며 지금도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하느님과 화목제물이 되시기 위해 사제들에게 능력을 주시어 매일 제대 위에서 자신을 창조하십니다. 당신을 창조하시는 곳은 베들레헴의 구유가 아닌 갈바리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니 인류를 위한 대속은 유채호 뿐만 아니라 당신을 믿는 온 인류에게 해당되므로 그의 영혼은 구원을 받아야 함은 지극히 마땅함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악마 : 존경하는 하느님! 예수님의 구속사업은 실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가상칠언(架上七言)을 상기하여 보십시오. 예수님이 ‘아! 목마르다’ 하신 말씀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주시는 분께서 신체적인 갈증이 아닌 영혼의 갈증이었는데도 예수님이 선택하신 백성들은 그분께 초와 쓸개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어머니 이 사람을 보십시오.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시고 요한 사도에게는 “아들아! 이 분이 너의 어머니시다.”하시며 요한 사도의 이름을 부르시지 않으셨던 것은 그에게 인류의 대표성을 부여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이 선택한 백성들은 그 유언을 성실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더구나 저의 종과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 사도를 비교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수난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 3번이나 부인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저의 종은 어떠했습니까? 지옥의 문을 들어선 우도가 죽음의 문턱에 서 계시는 분을 주님으로 인정하며 천국을 훔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 예수님이 왕이 되어 오실 적에 저를 꼭 기억해 주십시오.”하는 신앙고백으로 말입니다.
베드로 사도 : 하느님! 본 사건의 심리와 무관한 인신공격을 중시시켜 주십시오.
염라대왕 : 악마는 본 사건과 무관한 인신공격은 삼가 주십시오. 곧 하느님의 심판이 내려지오니 모두들 정숙해 주십시오.
창조주 : 베드로 사도가 변론한 예수의 시간은 ‘영원한 현재’로서 시공을 초월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 사면은 당신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해당되어 인간들이 지은 죄로 받아야 할 고통의 빗줄기를 십자가 위에 대속한 고통의 바다로 모두 흡수한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구속으로 유채호의 영혼이 구원되었음을 심판하는 바이다. 아들아! 구원을 축하한다.
베드로 : 염라대왕, 유채호를 묶고 있는 죄악의 족세를 풀어주게나! 이제 그는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영원 불멸’의 영혼이 한 푼의 부채도 없이 순수한 그의 소유가 되었으니 그가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가? 유채호 형제 무한대의 가치를 지닌 영혼의 구원을 축하하네.
유채호 : 나의 주님, 나의 예수님 감사합니다. 벌레보다 못한 이 죄인이 무엇이길래 이렇게도 사랑하시어 벗으로까지 섬겨 주셨나이까? ‘벗을 위해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시던 생전의 그 말씀이 지금도 귓전에 쨍합니다.
주님을 찌른 것은 나의 반역리요. 주님을 으스러뜨린 것은 나의 악행이었구나! 주님이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나를 성하게 해 주셨도다! 아훼께서 그분을 때리고 찌르신 것은 나의 죄 때문이었구나! 주님이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나를 성하게 해 주셨도다! 나의 모든 죄를 주님께서 대신 지셨구나!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주님은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으셨도다! 내가 앓을 병을 대신 앓아주셨고, 내가 겪을 고통을 대신 겪어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심판대에 서서야 알았나이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사랑합니다!
- 그러나 앙코르의 박수 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았다.-
약력
신영우 (申英雨)
경남 진주 출생
‘아담의 가설무대' 중편으로 한맥문학에 데뷔
부산문인협회 이사 역임 (소설분과 위원장)
주식회사 두산 토건 회장 역임
대통령 자문위원 역임
현 한국펜션 통나무학교 교장
첫댓글 저기저 낙시 하시분, 사모님의 제부님 아니세요? 멋진 장면 입니다. 소설은 조금 시간이나면 읽어보겠습니다.소설 올려주셔 감사합니다.
안개 낀 바다에 초록빛깔을 폼내는 풀꽃들과 나무들이 경이롭네요. 소설 읽기도 전에 사진에 푹 빠졌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