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 도 |
인천국제여객터미널과 페리호 선상 2008. 10. 10(금) 10 : 00 안동에서 중국의 산동(山東) 일원을 탐방하려고 인천국제여객터미널로 향발하였다. 용인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15 : 20에 인천 제1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출국수속을 하고 17 : 30 화동훼리호에 승선하여 선내에서 석식을 하고 21 : 20 석도(石島)로 향발하였다. 여객선 내에서 좌담도 하고 오래도록 놀다가 잠자리에 들어갔다.
붉은 산의 석도 석도(石島)의 옛 이름은 적산포(赤山浦)라고 하는데 설악산을 찌그러뜨려 작게 만들어놓은 것 같은 붉은 산이 석도항구 바로 뒤에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석도는 고대부터 풍경이 매우 수려하다고 알려진 곳이라고 한다. 석도는 사계절 구름과 안개가 많고 예부터 <대동선경(大同仙境)>이라고 하며 완전 돌산으로 갈대와 억새도 많다고 한다. 석도항구는 중국 북방 최대의 항구로 교역의 중심센터인 <중국북방어장>이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 지역에 사는 조선족은 지난 89년 두 사람에 불과했으나 현재 40여 가구에 이르고 있고 또한 석도에는 중국 바닷가에서 제일 먼저 해상 일출을 볼 수 있어 예로부터 태양이 떠오르는 곳인 중국의 희망봉으로 일컬어진 성산두가 있다고 한다. 석도항구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석도 적산(赤山)으로 가서 법화원 앞에서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고 가이드가 입장권을 구입하여 오기를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고 언덕을 올라 대불인 적산명신(赤山明神)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1) 대불 적산명신 버스에서 내려 성덕참천(聖德參天)의 문을 지나 대불(大佛)인 적산명신(赤山明神) 앞에서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였다. 이곳 주민들이 바다에 나갈 때는 여기에 와서 제사를 지내고 간다고 하였다. 대불은 파도가 치지 말라고 손바닥을 아래로 보게 하고 있다고 하였다. 대불의 정면에는 <제세택생(濟世澤生)>, 반대편에는 <공덕무량(功德無量)>이라고 쓰이어 있었다. 적산명신에 있는 불상은 대불을 합하여 모두 1,000개나 된다고 하였다. 대불 앞 비문에는 저 멀리 진시황 때 이사(李斯)가 불사약을 구하러 갔다가 병이 나자 이 적산명신에게 기도하여 <곧 병이 나았다.>는 것으로 보아 적산명신은 중국 고대 선민들이 예로부터 숭배 해 오던 신일지도 모른다. 중국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큰 동상을 만들어 두었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작은 산 전체를 기단으로 사용하여 저렇게 큰 동상을 만들어 둔 것을 보니 참으로 통이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적산명신 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석도 시내와 바다가 석산과 어울리어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2) 장보고전기관 적산명신을 내려와 장보고전기관(張保皐傳記館)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적산을 쳐다보니 적산명신의 대불 등이 보이고 산허리에는 누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면의 무영종군(武寧從軍)과 측면의 대당추몽(大唐追夢), 입당배경(入唐背景) 등을 보니 당나라 문화가 신라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곳이 무역항구로 신라인이 많이 머물렀으며 무역단을 따라 당나라에 와 무영군에 입대하였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수성보지(殊胜寶地)>의 내용은 <적산은 기아한 돌들이 겹겹이 솟아있고 구름과 안개가 감싸고 있는 적산명신의 동천복지(洞天福地)이다. 이곳은 뒤로 산이 우뚝 솟아있고 멀리 앞으로도 산을 맞이하며 법당 중앙으로는 옥수가 흘러 이른바 “앞뒤로 높은 산이 있고 서쪽에서 동으로 물이 흐르며 동쪽은 활짝 열려 있어 자자손손 왕위에 오르고 대대로 군왕과 반려한다.”는 풍수의 보배지이다. 이러한 길지에 장보고가 법화원을 건립하여 훗날 대업을 이루게 된 것이다.>라고 한글로 게시되어 있는 것을 읽어보았다. 장보고는 시대를 앞선 해양개척의 선구자였다. 천 이백년 전 해상왕이던 그는 해양 진출을 통한 교역이 부국의 원천임을 인식하고 바다를 통해 세계를 제패한 해양 개척의 선구자였다. 청해진을 중심으로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교역 망을 구축하고 새로운 해상무역의 항로를 개척하는 등 무역은 물론 문화, 외교적으로도 큰 업적을 남긴 진정한 세계인이며 해양인었다고 생각한다. 높이가 8m이고 무게가 6t이나 된다고 하는 장보고 입상 앞에서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였다.
3) 장보고기념탑 장보고기념탑은 적산법화원의 북쪽이고 장보고기념관 가까이에 있는데 1991년 한국 성신여대 교수, 세계한민족연합회(世界韓民族聯合會)회장 최민자(崔珉子) 교수가 적산법화원에 왔다가, 한민족의 선각자 장보고대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1994년 7월 24일에 준공되었으며 탑 높이는 15m, 넓이는 16㎡이다. 탑의 모양은 양쪽 손바닥을 마주한 모양이며 <장보고기념탑(張保皐紀念塔)> 여섯 글자는 김영삼 전대통령의 친필휘호이다. 탑의 의미는 한, 중 양국의 친선(親善)이 영원함을 상징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4) 신라인의 교화처 적산법화원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 츠샨파화위웬)은 장보고 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당시 해상 무역으로 삶을 살았던 신라인들이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고 신라방에 살던 신라인들의 교화처였으며 교민사회 결속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적산법화원은 통일신라시대 당시 산동에서 규모가 제일 큰 불교사원이였다. 이곳은 재당 신라인들에게 있어서 교화를 담당하는 장소이며 만남의 장이었고, 교민사회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중심체였으며 신라 교민들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열린 장소였다고 한다. 적산법화원은 5,000㎡의 부지에 건설되었는데, 당대의 건축양식을 살려 㰡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㰡에 묘사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산의 남쪽을 기대고 앉아 있는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이곳의 중요한 건축물로서 보전하고 있고 안에는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정교한 석가모니상이 자리하고 있다. 전국불교협회의 회장인 조박초(趙朴初) 선생이 직접 쓴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는 글자가 걸려 있다. 적산법화원의 삼불보전(三佛寶殿), 대웅보전(大雄寶殿), 관음전(觀音殿), 지장전(地藏殿) 등을 두루 돌아보았다. 뜰에는 한국의 장씨대종회(張氏大宗會)에서 주관하여 건립하였다는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 장보고공적비(張保皐功績碑)가 있었는데 장세기(張世基)씨가 중심이 되어 29명의 공적비건립추진위원 명단이 한자로 음각되어 있었는데 <장보고>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은 <張보고>라고 성만 한자로 하고 이름은 다른 사람과 달리 한글로 표기되어 있었다. 장보고 유적지를 탐방하고 나서 석도빈관(石島賓館) 호텔 안에 있는 사풍관(史風寬)에서 현지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2 : 30 남산으로 향발하였다.
(5) 관광도시 남산 석도를 출발하여 사과밭이 이어지고 간혹 계단식 밭이 이어지는 시골길을 따라 가다가 동각빈관(同閣賓館) 옆에서 용변도 보고 잠시 쉬었다. 다시 출발하여도 사과밭과 포도밭이 계속 이어져 있었는데 이곳은 사과생산이 많아 동남아로 수출하고 있다고 하였다. 석도를 출발한지 3시간이 되어 남산에 도착하였다. 남산오락풍경구는 용구시 경내에 있는 <로산>을 잇는 국가 4A급 관광지로서 골프장과 문화유적지의 두 곳으로 나뉘어있다고 한다. 풍경구내에는 고문화원, 남산선사, 향수암, 영원관, 문봉탑 등과 당나라 때의 유적, 천년 고찰 등 경건하고 웅장한 유적들이 많다고 한다. 고건축군 중 누각, 정자, 장랑, 탑 등은 울창한 산을 배경으로 세워져 고풍스럽고 소박하지만 우아한 것과 아름답고 웅장한 것도 있다고 하나 일일이 다 돌아보지는 못하였다. 1) 남산약사옥불 남산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남산문화원내에 있는 남산약사옥불(南山藥師玉佛)로 갔다. 남산약사옥불의 건물 앞쪽 산위에 있는 400m나 된다는 최초의 만리장성도 바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 양쪽에 수 없이 많은 불상을 보면서 에스커레터를 타고 올라 옥불 앞에 갔다. 남무약사불(南無藥師佛)과 좌대 둘레의 난간 모두가 옥으로 만들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남산옥불전은 면적이 2만 6천㎡ 유럽식 건축물로서 국내에서 가장 큰 높이 13.66m, 660톤에 달하는 진귀한 옥으로 제작되어졌다고 한다. 옥불대전은 약사만다라, 사리전(舍利殿)으로 구성되었으며, 그중, 사리탑 내의 석가모니 차아사리와 고승들의 사리를 가장 진귀한 보물로 여기며, 경건하게 모시고 있다고 한다. 밖으로 나와 계단 밑에서 남산약사옥불전의 건물을 배경으로 단체로 기념촬영을 하고 남산청동대불전으로 갔다.
2) 남산의 청동대불 남산선사(南山禪寺) 문으로 들어가서 대웅보전(大雄寶殿), 32분의 보살을 모시고 있다는 원통전(圓通殿)을 지나서 360계단을 힘겹게 올라 청동대불의 만불전(萬佛殿)으로 갔다. 남산문화원내에 있는 종교문화원은 도교, 유교, 불교 등 중국의 시대별 종교별 관광이 가능한 테마관광지라고 한다. 남산대불은 2000년 4월 8일에 완공한 석가모니의 좌불로 주석과 청동으로 주조되었으며 높이는 38.66m, 무게가 380톤에 달하는 세계 제일의 청동대불상이라고 한다. 대불 아래에는 공덕당, 만불당, 불교 역사관이 있다고 하나 다 돌아보지는 못하고 내려왔다. 만불전에서 다시 360계단을 내려와 아래에 청동대불의 손과 같은 크기의 조형물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였다. 모두 둘러 앉아 잠시 환담을 나누다가 이곳 탐방 일정을 마치고 남산빈관(南山賓館) 호텔의 영빈루(迎賓樓)에서 현지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남산국제고이부(南山國際高尒夫) 호텔에 투숙하였다. 다시 호텔 밖으로 나가 용보족요(龍普足療)에서 발마사지를 받고 돌아와 잠자리에 들어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