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토 거래처
학구농장 윤영석 안성 금광면 금광리 347번지 (0334)72-3207
명동 칼국수
삼창회관
밤차
다미
물레방아 허원용!
邈兎居士記
창립----- 1991년 4월 명동 칼국수 에서 --문이 닫혀 그앞 벤치에서 만남 동내를 시끄럽게 해서 쫒겨나 옆의{목마}라는 맥주집에서 모이고 다음달 (91년 5월) 이재영이 초청으로 이재영이네 집에서 첫모임 갖기로1991.5.막토이재영이네91.6.막토덴탈코러스 창단공연 관람 1991.8.막토--강일홍이네집 습격.91.9.막토--제주도 여행 91.10.막토--양평 콘도 91.12.막토--정태석이네집 에서 망년회 92.1.막토--설악산 92.3.삼창회관 92 5.막토--장석규네집 창립 1주.
1994년1월 29일--------------------------------------------------------
막토회 소식
개띠해 첫모임인 1월29일 마지막토 모임은 30주년 기념 앨범에 넣을 사진을 찍는다는 루머 때문에 슬리퍼에 츄리닝 으로 모이던 가이들이 정장에 무쓰를 잔뜩 바르고(김기원군은 싸우나까지 하고), 아지트 명동 칼국숫집에 모였다. 새해 선물로 대우전자 상무로 있던 김종환군이 계열회사인 대우 모터공업(주)의 사장을 겸직 하게 되었고, 이동진군의 "숨겨진 성서"가 10만부를 돌파 출간 되었다. 때마침 홍대 미대 서양화과에 살림 밑천인 큰딸을 합격 시키느랴 노고가 많았던 김영근이가 참석 하는 바람에 푸짐한 2차가 목동 사거리 "밤차"에서 있었다.
밴드에 마춰 참가자 전원, "신춘 음악회"무대에 올라 밤새워 노래를 부르며 마셨다. 발군의 무도 실력을 보여준 몇몇이 있었는데 역시 옛날에 공부 잘했던 순서대로 였다.
1994.2.26 막토-------------------------------------------------------
유래없이 多忙하신 막토멤버들! 2월26일 막토는 회장 강일홍이는 무주 스키장 행사 주관으로, 김영근이는 교회의 거룩하온 행사로,이재영이는 목5동 천주교 구역장 회무수행 차, 박상사 박영길이는 막토에 마춰 귀국 했으나 피치못할 썸싱때문에, 김종철이는 지방시찰 차--, 그간 막토를 어지럽히던 staff들이 대거 有故(not 휴거)였던 날 이었다.
그래서 여느때와는 달리 10명의 조용한 친구들 만의 오붓한 모임을 가져 이정섭 김평일 이경룡 강희만 박근식 김기영 정현조 김기원 윤동환 장석규 들이 함께 했다. 특히 장석규군은 과기처의 大賞 "장영실賞"을 수상하여 막토회의 사길를 높힌바, 아지트 명동 칼국수 쥔 아줌마(젊었음)로 하여금 샴펜을 "뻥--!" 하도록 하여 별다른 분위기의 토요일 밤이 연출 되었다.
이날 마침 지난달에 오기로 했던 60회 30주 기념 앨범 촬영팀 전주흥 회장(照明보) 김인섭군(촬영기사)가 전격 참가, 수염도 깍지 않는 막토 고유의 모습을 촬영해 갔다.---지난달엔 사진 박는다고해서 무쓰도 바르고 사우나에 이발까지 하고들 나왔었는데---.
1994. 3.26.막토-------------------------------------------------------
3월26일 막토는 꽃샘추우ㅣ 아닌 三冬의 추위. 바람도 불고 해서 진짜 골수 주당들만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막토하게 마시는 주당들이지만 이날은 말도 안되는날. 막토 창립 3주년이 되도록비가오나 눈이오나 개근했던 골수들이 최소 10명이며, 평소15명이상 나와야 정상인데 6명만 나오는 천지개벽과같은 사실에 놀라 밤새 놀란 술을 찾아 마시고 26일다 보낸뒤, 27일 어는 누구보다도 이른 시간에 귀가 했다. 이날 참석한 막토는 찐짜 막토들--. 강일홍, 김기원 김평일 박달원 윤동환 정현조 .
강일홍회장이 나이가 쉰이 되닌까 착해져서 인지 무단결석 하는녀석들 집을 새벽 5시까지 쳐들어 가지 않은지가 벌써 半年餘. 부드럽게 대하니까 물렁한줄 아는 모양인데, 학실(確實)하게 司正하는 의미에서 회장님---!, 다음달부터는 용서 없이 쳐들어 가야 됩니다. 중단없는 사정입니다.
註:막토의 엄정한 벌칙은 무단결석 회원의 집을 쳐들어가 안주와 술독을 완정히 비워주고 새벽까지 담론회를 하는 것이다.
막토회 소식------------------------------------------------
4월30일 막토는 지난 동창회보 막토란의 戒嚴소식 결과인지 아지트 명동 칼국수 교자상 3개를 빡빡하게 끼고 앉도록 출석率이 좋았다. 마침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합창을 막토들의 존 음성을 십분 발휘 하기로 뜻을 같이한 마당에 우리 60회의 樂聖 정순남군이 自願訪來하니 不亦悅乎라!
그 먼길을 오로지 동창과 음악을 위하여 왕림한 정군을 술로 죽여주자고 귓속말로 오갔는데--, 야간 보충 수업중인 令愛를 모시려 간다고 絶對早退를 父情宣言하니 막토의 卒이 悚懼無言한 찰라에 아차 놓쳐 버렸다. 이리하야 막토 창립 3년 만에 유일하게 술에 죽지않고 無事脫出한 珍記錄이 발생 하였다.
이 자리에서 정순남군은 "60동창회가"의 작곡의 뜻을 엄정하게 비쳤으며 마침 참석한 이동진군에게 작사를 부탁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했다. 亥時가 다되도록 출석약속을 지키지 않는 김기원박사 산부인과병원을 쳐들어 가기로 뜻을 모아 막 실행 하려는 찰라, 아슬아슬 하게 끝시간 안에 출석하는 기술을 김박사가 묘수를 펼쳐 보았으나 이미 막토회비는 마감, 그렇다고 출석한 사람 침실로 쳐들어 갈수도 없고, 해서--, 그집 가는 중간에서 왠수를 갚기로 하여 우리 단골 "밤차"에서의 이차로 행사로 김박사의 체면을 세워 주기로 했다.--회비 내는 손의 부끄럼이 없도록.
이정섭군의 사회로 두레唱, 두레飮, 두레舞, 두레談하니 花童化木童!
돌아오는길에는 가장 목소리 큰 사람 집에가서 목을 축이고 가자는 여론이 지배적 이었고, 예기하고 소리 지르느랴 그 내용을 못들은 이재영이내 집으로 落點 되었다. 마침 실명제 이후 自主家防의 목적으로 거실 유리를 16mm로 교환 했겠다--, 그 품질 평가겸 窓戶의 大權者 이건창호 대표이사 김영근군을 모시고, 앞으로---.
안주는 남았으나,이재영이 아끼던 꼬냑도 바닥나고, 달도 기울고 시도 丑時에 이르러, 돌연 집생각이 나서 자리를 일어서니 4월 막토가 5월에 끝나도다.
참석자: 강일홍 윤동환 박영길 이정섭 정현조 김평일 김기영 박달원 김종철
김영근 김기원 이동진 이재영 정순남
모꼬지 이모습 저모습
막토회 소식
6월 막토는 6월25일 잊을수 없는 그날, 날씨는 무덥고 밤은 짧으니 어디 시원 한 곳에가서 濯足에 路邊情談을 나누고져 경기도 안성군 금광면의 금광 저수지 호반의 鶴龜農場을 1박2일 코스로 택하였다.
저녁 6시 정각 목동 빠리공원 옆 법안정사 앞에 은은한 梵鍾소리에 마춰 모이기로 약속해서 모인 不汗黨들은 강일홍 고영림 김영근 김평일 박영길 윤동환 이정섭 정현조에 항상 그렇듯이 제몸대신 봉고차만 보내는 김기원의 봉고차 이렇게 아홉이 집합 했다.
베스트 드라이버 姜會長겸 기사의 날랜 운전 솜씨로 남태령 수원 송탄으로 해서 고속도로 안성을 누빈, 로고-마크도 선명한 "김기원 산부인과 TEL 692-6776"의 백색 봉고차는 배꼽수술(가족계획용)전용 봉고찬데 때아닌 덥석부리 주당 영감들을 가득 태우고 衆人環視裏에 안성읍을 누볐겄다.
邈兎居士의 십년 선배인 鶴龜農場의 尹사장이 모기 쑥불을 마당 가득히 피우고 민물 장어 소대병력을 이미 양념까지 해서 주안상이 즐거운데, 한손엔 "진로" 한손엔 두산의 이훈석이 의리를 생각해서 "그린" 소주의 양대 병권을 쥐고 흔드니 주흥이 충천 하야 마침 월드컵 축구 화면 조차 눈에 차지 않고 한여름 밤 자연 속에서 邈兎之友의 情이 더욱 厚朴하였더라.
휘파람새 소리, 뻐꾸기 소리가 귓가에 즐거운 아침이 되어보니 昨夜醉中 "모기"軍團과 엄청난 전투를 벌린 흔적이 뚜렸한데 해장술 앞에서 껄껄 웃으니 적어도 見蚊拔劍하는 小人輩 모습은 없어 -- 그대들 멋쟁이.
돌아오는 길에 참새가 어이 방아간을 그냥 지나리, 기흥의 소머리 국밥집에서 又一盃, 갈"之"字 안전운행으로 서울 목동에 다다르니 그냥 헤어지기 섭섭 하여 코스에 있는집 "밤차"에 술동냥 허러 가니 지금은 낮이니 안되고 "밤차"니까 밤에 오라나?--!
邈兎居士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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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막토 요일은 24일. 주택은행 인천 구월동 쩜장에서 서울 연신내 지점장으로 자리를 옮긴 정현조군이 소집을 하였다. 행주산성 아래 "일미집"이 거래처라나, 해서 목동 파리공원옆 법안정사 정문앞에서 일미집 봉고차를 줄서서 기다렸다. 강일홍 김평일 이재영 정현조 박영길 이경룡 이동진 강희만 박달원 고영림 윤동환 이정섭 이렇게 12사도가 나왔다.
6인상 두자리를 놓고 장어 안주로 소주를 권커니 자커니 하는데 앉다보니 한쪽은 금연파, 또 한쪽은 흡연파 이나이가 되도록 담배를 배우지 않은 샌님은 강일홍 김평일 이재영 이경룡 이었고 동석한 정현조 윤동환은 덩달아 금연, 한편 옆상에는 고등학교때부터 40년간 담배를 피어온 고영림 박영길 이동진 강희만 이정섭 박달원 -- 그래서 금연파와 흡연파가 누가더 술 잘넘어가나 겨뤄 보니 역시 뿔땐집이 따스한 법, 담배가 술을 마시는 모양.
저녁 10시에 일미집을 나와 자유로를 120km/hour로 달려 목동으로 돌아오니 목동네거리의 2차 아지트 "밤차"앞에서 하차, 밤차에 승차 했다. "멀리이 기적이우우네에 내님 태운 마지막 밤차아--"
막토회소식
먼저 프롤로그 한 토막.-----------------------------------------------------
9월 막토에서 행주산성 涉獵記에 邈兎居士가 붓 잡은 손이 삐었는지 노망기가 있어서 인지 實錄의 착오를 일으켜 琴瑟의 소리가 아름다운 C군 부부 사이를 절반쯤 멍 들도록 하였다. 내용인즉은 참가자 12명의 명단에 C군의 이름이 빠지고 박영길군의 이름이 대신 올랐던 것.
"여봇. 여기 당신 이름이 없잖아 -, 당신 막토 간다구 해놓고 12시 넘도록 어딜 갔었어."
해서 C군은 변명같은 해명을 구구히 하고, 그래도 그게 통한 것은 그간 쌓아온 C군의 고매한 인격과 그들 부부 사이의 금슬 때문
"야 邈兎居士, 어떻게 책임질거야 --"
그런데 다행이도 당일 이동진군이 촬영한 카메라 사진에 날짜며 12명의 성실한 가장의 모습이 또렸히 박힌 사진이 12장이나 있어서 C군의 명예는 절대회복 이지만 막토거사의 필력(筆歷)에는 지울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본론으로 들어와 10월, 11월막토는 매번 12에서 15명 사이로 목동4단지 뒤 명동칼국수에서 1차 목동4거리 "밤차"에서 2차를 갖는 술푸는 모임으로 특별한 일이 없었고 이러한 권태로움을 이기기 위해 12월 모임은 17일 18일 1박2일로 양평 플라자에서 1박하고 중미산을 등반 하기로 예정 했었다.
17일 토요일 오후 4시 목동 빠리공원앞 法眼精寺 정문 앞에서 김기원이 대신 출석한 "김기원 산부인과 봉고차"는 영하 15도의 강추위 임에도 불구하고 약속시간 30분전부터 출석하여 동아리 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워낙 추운 날씨에 년말의 바쁨이 오버랩 되어 출석이 아주 저조 했다. 강일홍 이정섭 김평일 김영근 강희만 고영림 고영림 부인 강일홍 부인 이렇게 여덟 식구가 만부득 하다는 정현조 군의 환송을 뒤에 두고 오붓하게 출발 했다.
양평에 가면 玉川골이란 곳이 있어 예로부터 그 물이 玉에서 나왔다 하니 보통 광천수라는 石間水와는 玉石之差의 差異가 있으리 많큼 물 맛이 좋다. --- 하여 양평 프라자 콘도의 수돗물은 일부러 물통에 길어 가기도 하는데 이곳에 물이 좋아 전국에서 이름난 냉면 주방장들이 솜씨를 겨루는 터, 초입부터 원조, 진짜, KBS, MBC,원조집 등등 냉면집이 즐비 한데 옥호는 모조리 옥천 냉면이라 원래의 옥천냉면(SINCE 1954), 그 집 찾기는 아동잡지의 숨은 그림 찾기 만큼 어려운데 옥천골을 골목 골목 직진 우회전 좌회전 모도시 빠꾸 가진 재조 다부려 찾아내는 데는 우리 막토의 강일홍 회장 당할 운전기사가 없다.
니북서 월남 해서래 3대째 모밀이래 뽑아 개지구 영업을 하는 그 집은 고인이 된 여러 명사들의 단골집, 냉면 말고도 똥그랑땡 이라는 함부르끄 스테이크 비슷 하고 난자완즈 비슷한 그러면서도 값이 파격적인 우리 고유 음식이 주특기, 안주 좋고 물 좋고 하니 술이 술울술 들어가 한저녁 골든 아워를 다 보냈다.
이래서야 어디 등산온 사람다운 데가 하나라도 있는가 말이다 해발 790M의 중미산을 오르는 데 과음 해 쓰나.
"어이 막토거사 내 행색 좀 봐, 와이샤쓰에 단화 신은 사람을 영하 20도는 될 그 꼭데기에 대려가껬다는 맴은 무슨맴인가. 밤새 술 푸고 이야기 하고 그게 친구지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나 ---."
산이라면 질색인 이정섭군이 두꺼비 한병 잡아 먹더니 정신이 들어 제 주장을 한다. 이곳 저곳에서 찬반 양론인데 산보다 술이 지배적이다.
저녁을 파하고 콘도에 들어와 막토거사는 막토에 유래없는 화투치기를 제안 했다. 베트공 이라는 게임인데 비교적 건설적(우째 화투 노름에 건설이 있노)인 게임,-- 워낙 공부라면 끝내 주는 녀석들인지라 공부를 시키니 새벽 3시까지 꼬박 고리눈을 뜨고 공부에 열중, 그 좋아 하는 술을 한방울도 마시지 않게 하는데 성공 하니 막토 부인들은 화투노름의 건설적인 면에 매혹된 듯, 잠간 눈 붙치고 눈부신 좋은 아침을 맞았다.
하지만 그 좋은 날씨에(三九會 백문영이 보면 환장할 날씨)에 단화 신은 사람들은 끝내 산행을 반대하여,-- 강일홍 회장이 운전하는 김기원 산부인과 봉고차가 대신 등산 하기로 하고 우리는 모두 업혀 가기로 결정 했다. 중미산 노티재로 走馬看山이 아닌 走車看山하여 중미산 유명산을 누비고 모곡에 이르러 홍천강 백사장에 이르니 ----
겨울 강변의 멋에 취하여 꽁꽁 얼어 붙은 비단결 같은 얼음 판에 빨려 들어 가더라, 그 것도 가나다라 순서인지, 먼저 강일홍군이 뛰로 꽈당 하여 강부인을 놀라게 하더니 강씨 댐으로 우리의 고영림군은 주머니에 손을 푹 지르고 코트 깃을 세운 로맨틱한 폼 그대로 이번엔 앞으로-- 고부인을 놀라게 하였더라. 하긴 산행을 안 한다고 차안에서 그 토록 과음 했으니 새해에는 술을 끊고 茶道에 들거나 [베트공] 어떨까.
막토회소식
을해년 벽두부터 막토모임은 경사가 12곱이었다. 내용인즉은 대학 입시생, 12명의 막토 멤버의 입시 자녀가 전원 합격, 그래서 1월 28일 95년 첫 막토는 합격을 뽐내는 분위기로 과열 되었다. 특히 딸아이가 서울의대, 포항공대, 아주의대를 모두 합격하여 3관왕을 획득한 박달원군은 어느 학교를 등록 시킬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 이야기 꽃을 피웠다.
3월 25일 막토는 오랜 만에 회원 가정 방문을 가졌다. 고양시 일산 신도시 호수마을 롯데 아파트로 보금 자리를 옮긴 윤동환군의 새집 집들이 쎄레모니가 있었다. 무공해 자연환경에 65평의 스위트 홈 인 스위트 하우스, {이 집에 사랑과 평화가 충만 하소서}
4월 29일 막토는 29일 30일에 걸친 강화도 코레스코 콘도 단합대회 예의 그 장소, 목동 파리공원 법안정사(절)앞에서 남자는 인천의 김제환군이 가져온 12인승 그레이스 봉고, 여자(물론 동반 부인들)은 승용차 편으로 오후 5시에 출발,-- 역전의 명마,김기원 산부인과 봉고차는 노쇠하여 이 즈음 쌩쌩한 새차로 교환 중이어서 불참.--
이조 실록의 4대 사고(史庫)중의 하나인 정족산성은 전등사의 뒷산으로, 폐허가된 사고지(史庫趾)를 깃점으로 오르고 그리로 내려오는 산책 코스가 있어서 삼삼오오 무리지어 올랐다. 미테랑 불란서 대통령이 돌려준다, 아니 잠간만 보여준다 등등으로 신문에 소식이 오르 내리던 문제의 실록이 도난된 그 현장. 조선왕조의 몰락과 어려웠던 근대,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정족산성 사고지.
막토들은 부부중심으로 사진촬영 솜씨를 뽐내고, 홀아비 들은 오나가나 서러워 끼리 끼리 사진박고, 허물어진 산성의 성루에 50, 쉰동이 쉰순이들이 그렇게 찰떡 궁합으로 어울릴 줄이야. 어언간에 반세기를 넘겼다는데에 안도하는 모습들 이었다.
귀로에 오르며 간밤에 김제환군이 제공한 {건강식품}으로 보양보음(補陽補陰)한 것도 부족 한지 멧돼지 사육장에 들렸다. 아득한 서해안 뻘밭을 바라보며 싱싱한 봄나물과 새싹이 푸르른 언덕으로 여자팀은 봄나물을 캐고 남자팀은 소주잔을 기울리고. -- 막토는 봄 내음을 숨쉬고.
5월 막토는 27일 강일홍 군이 가장 좋아 하는 {명동 칼국수집(목동 4단지뒤)}에서 다시 모였다. 이집의 돼지족발에 물린 회원이 허다 한데,--4년을 꼬박 먹어봐-- 그래도 막토 식구들이 워낙 인간성이 좋고 강일홍군의 그 진실한 마음을 높이 사서 {이번 한번만 더 모이는---} 이라고 설득하는 강일홍회장의 말을 진실로 믿고 또 모였다. 이 날 막토거사는 집안일로 부득이 불참 했는데 들리는 말로는 L.A.에서 유수열,유승근(단근)군이 날아와서 합세 2차, 3차 재미 좋았다고 하는데 특기 할 만한 사실은 민자당의 정원식 서울시장 후보가 유단근군의 처남 이라니 이거 글로 쓰면 막토거사 사전 선거운동으로 때가지 않을까, 좌우당간 유단근 군으로 알고 꽉 찍어 보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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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토회소식
6월 막토는 24일, 1950년 6.25가 일요일이니 금년 달력은 6.25가 나던 그 해와 꼭 같은 달력이다. 22일 목요일에 김인섭군이 상을 입어 23일 연락을 받고 막토회원들이 이대목동 병원에 대거 문상을 한 까닭에 그 다음날 바로 막토를 가진 까닭인지, 아니면 명동 칼국수에 물려서인지 명동 칼국수 아지트에 출석한 반바지들이,-- 유래 없는 흉년--, 아홉명에 불과 했다.
적은 숫자끼리 그런대로 오손도손 마시는데 잔 돌아 가는 속도는 모인 인원에 비례하기 마련--, 두어 순배 돌때 쯤 아니 왠일 과천에서 김성준군이 신림동에서 손명철군이 반바지들을 응원하러 自遠訪來하니 不亦悅乎아! 물렸던 돼지족발 맛도 우정 어린 정담으로 함께 씹으니 술맛이 상승효과를 나타내었다.
광복 50주년, 우리들 생애 반세기를 기록하는 뜻 깊은 금년의 막토 활동을 위한 금년도 하반기 사업목표를 중점 토의 하였다.-- 사업이래 봤자. 음주에 국한된 그래이 컬러드 청춘사업이지 뭐--- 하여 7월 29일은 정현조 지점장 책임하에 진관사 계곡에 슬리퍼째 무좀생긴발 시원하게 담그고 소주에 보신장국으로 일배일배 우일배 하기로 하고, 8월은 26일 27일 박근식 아시아나 상무 책임하에 1박2일로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부부동반 사천 비행장으로 날라가 그곳 아시아나 셔틀 버스로 충무시 아시아나 콘도미니엄에 1박하고 다음날 아침 콘도미니엄 욧트를 타고 한려수도를 쎄일링 하기를, 9월 30일은 새집들이를 하는 안기준 동부제강 전무의 집을 쳐들어 가는 것이 목표 10월달엔 대구 광역시 외교 자문대사 이동진군의 공관을 점령키로 하고 11월엔 부산의 이정섭군을 습격 12월엔 년말 쌍쌍 파티. 이렇게 금년 스케쥴을 꽉 짜 놓은 팀 어디 또 있냐? 공부는 몰라도 노는 데는 천재성을 발휘 하니 그 머리들이 아까워---.
이차는 역시 목동 4거리 주점, 밤차! 이차로 가는길에 아차. 김성준군이 미아가 되었으니 의리의 막토들은 목동의 뒷 골목을 이리 저리 찾아 헤메고, "미아를 찾습니다 신장 180, 마른 체격에 안경을 쓰고 미아는 술을 마셨음. 과천이 집이고---." 목 놓아 찾았지만 술이 받지 않아 집으로 줄행랑을 놓은 미아를 찾는다고 나오냐? 밤은 깊어가고 집에간 성준이도 잠들었을 그 시간까지 마이크를 붙들고 초여름밤의 왠 귀뚜라미 들이 울고 또 울어 모임은 一飮二日이 되어 6.25 未明 일찌감치 집으로들 갔다.
막토거시기
邈兎居士
7월막토는 예정대로 마지막 토요일날 진관사 계곡에서 가졌다. 초복과 중복사이 날씨에 저녁도 짓기 힘들겠다, 부부동반하여 남자 열셋, 여자(물론 부인)일곱, 해서 스므명이 물따라 맛따라 저녁 자리를 했겠다. 때가 때 인지라 복달임을 먹어야 하는데 으뜸으로 계삼탕이요 버금으로 개(犬)장이라고 막토거사는 읊었다지만, 역시 간 작은 우리 막토 동아리들은 버금을 취하고 존경하옵는 어부인들은 으뜸으로 저녁을 했다. 신골(腎骨)이 모나미 볼펜 만한 견공이 개장이 되고 행운의 신골은 이재영군이 차지 알자배기를 혼자 꿀꺽 했으니 금년엔 꼭 득쌍동(得雙童)하리라. 분위기 익어 소주 두어박스 즈음하여 현지 식당 주모 두 사람이 창(唱)으로, 흥을 돋구니 공처가 막토내들은 지어미 눈치보랴 전전긍긍.
8월 막토는 멋쟁이 막토 마지막 주말에 충무 마리나 리조트에서 가졌다. 우리 60회 동창 상감, 허완대왕 부부와 신기영 대감이 초도순궁차 왕림 하셨고 우리동기에서 부천의 김기창과 막토의 박달원과 함께 땐스삼절(舞踊三絶)이라는 조준호대감 부부가 스페시알 게스트로 참석한 가운데 강일홍 부부, 고영림 부부,김평일 부부, 박근식 부부, 윤동환 부부, 이정섭 싱글, 이재영 부부, 정태석 부부 이렇게 20명이 오붓한 한려수도 여행을 하였다. 이정섭군은 직장이 부산이라 충무에서 단신 합류 하였고, 나머지는 서울서 항공기편으로 출발 하였는데 한강은 망망대해로 변해서 위험수위와 경계수위를 오가고 태풍 무신무신호가 쳐들어 온다든둥 불안 궁금한데, 못 먹어도 고! 하는 고스톱파는 비행기를 타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장고파 김영근 부부는 처음부터 철석 같이 간다고 해 놓고, 결정적인 순간에 { 고야 스톱이야 --?} 하니 {--- 시돕!} 하면서 다 큰 대학생 애들을 태풍과 홍수에서 지키려 비행기 탑승을 거부했다. 장석규 부부는 본부팀과 2시간 시차로 오려다가 악천후로 결항된 까닭에 불참.
다 친구 잘둔 덕이지, 아시아나 박근식 대감의 주선으로 비행기도 잘 얻어타고 숙박도 6층 60평형 10층 60형 두동을 차지 했다.-----전야제! 저녁에 강일홍 대감이 마련한 회와 박근식 대감이 마련한 중국술 리터짜리 5개 아시아나 현지 사람들의 환영주 리터짜리 시바스 2개 이렇게 7리터로 푸짐하게 저녁을 들고 방파제에서 가진 전야제, 방파제, 소화제.
한밤에 태풍이 지나 간듯, 아침에 일어나니 베란다의 의자들이 왕창 한 곳에 쓰러져 있다. 청옥색 바다에 에메랄드빛 하늘, {---폭풍우 개이며는 동녁엔 광명의 했빛 눈 부시게 비치네---} 막토거사와 동아리중 몇은 새벽 주일 미사를 드렸다. 아침 8시에 요트에 오르다, 기우뚱 흰 돛을 좌악 펼치니 파란 물결을 가르며 배가 한 곳으로 쏠린다. 이재영, 허완, 강일홍, 조준호 김평일 다섯이 부인네 다섯과 열이 되어 한배, 이정섭, 고영림, 박근식, 정태석, 윤동환, 신기영 이렇게 여섯이 부인네 넷과 열이 되어 한배, 이렇게 한쌍의 욧트 흰 돛을 펼쳐 나란히 달린다.
부산 동아대학 체육과를 나와 올림픽 욧트 선수 였다는 선장이 막토거사가 보기에는 30이 넘어보이는데 엄마네 들은 자꾸 20대란다. 단단한 몸집에 검붉게 탄 젊음이 아름답다. 태풍이 지난 검푸른 바다에는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 부르르르-- 돛떠는 소리, 배는 살같이 한산도를 향한다. 강일홍군이 하이 테너로 싼타루치아를 부르고, --- 우리 중학교때 한려수도의 기행을 조카에게 일기식 편지로 보낸 국어 독본, {동명아 -- !}로 시작되는 옛글의 현장, 그 바다위를 달리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3년간 이용 하셨다는 샘물은 바닷가에서 불과 십수 미터 거리, 그런대 그렇게 물맛이 좋았다. 동백 나무의 윤기는 그 맑은 공기로 반짝이듯 윤이 흐르고 수백년 됨직한 노송 고목이 충무공의 고사를 새롭게 흠모 토록 한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 큰칼 옆에차고-- .} 시조를 읊으시던 현장, 그 수루에 올라 20여명이 두루 두루 앉았다. 그 옛날 깊은 시름에 마음 상하셨을 그분을 마음으로 흠모함이 이심전심으로 교감 되었다.
-- 이렇게 앉으셔서 큰칼을 차실수 있으셨을까? { 큰칼 옆에 놓고-- }가 맞을꺼야 , --- 아니지 의자에 앉으셨으면 찰수도 있지-- 놓고,론 차고,론으로 설왕 설래 하다가 기념 촬영
오후는 바다를 보면서 팀 별로 시간을 죽였다. 라운드 형의 넓은 베란다에서 거제도와 한산도 사이의 조망에 마음속으로 가곡이 흐른다.
{ 내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물 눈에 보이네,--- }
저녁 5시 3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다음달 막토회 모임을 위하여 짐을 꾸리는 8월 마지막 일요일, 그 파란물 흰 돛이 우리들의 추억의 한 자락이 되니. 아 뷰티풀 선데이, 50대는 아름다워라.
첫댓글 朴永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