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간 스모그가 자욱한 도심의 풍경은 시골의 가을풍경을 더욱 그립게 만든다. 풍성한 계절의 전라남도 순천은 가는 곳마다 한 폭의 그림이 연출되는 곳. 가을 속의 순천으로, 낙안배 이곡마을을 찾아가 보자.
낙안배 이곡마을의 정겨운 풍경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자리잡은 이곡마을. 가을이면 누렇게 익은 평야의 벼보다 더 구미를 당기는 낙안배가 눈에 띄는 곳이다. 낙안배와 낙안오이로 유명한 이곳은 가을이 되면 물이 많고 달기로 이름난 낙안배가 수확을 맞고, 겨우내 우리네 식탁에 신선함을 전해 줄 낙안오이를 밭에 심기(정식) 위해 분주한 농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식을 하고 나서 낙안오이가 무럭무럭 자라면, 올 겨울에 아삭아삭한 오이 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낙안읍성에서 벌교 방면의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누렇게 익은 벼가 가을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저 멀리 보이는 영농조합의 집하장은 언뜻 보기에도 낙안배의 이름을 떠오르게 한다. 영농조합의 집하장을 지나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보화시범마을’이라는 입간판이다. 낙안배 이곡마을임을 알리는 입간판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 보았다.
사람들이 모두 수확으로 바쁜 덕분에, 마을 한가운데 자리잡은 마을 정보센터는 잠시 조용한 모습이다. 정병원 위원장은 “교육은 주로 농한기 때 많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주민의 반이 배 과수원을, 다른 반이 오이 하우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오이농가가 비교적 한가한 7월에도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겨울에는 과수농가를 위해서도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교육 덕분에 어르신들이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기도 하고, 바둑을 두기도 하는 등 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게다가 금년에는 전자상거래 건수가 늘어나 흐뭇하다는 반응이다. 전자상거래의 주요 품목 역시 낙안배와 낙안오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보센터에서 바라본 이곡마을의 풍경 역시 흐뭇한 웃음을 짓게 한다. 정겨움과 넉넉함이 묻어나는 풍경이다. 잘 익은 대추가 주렁주렁 열린 어느 집 마당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했다. 그렇게 이곡마을의 풍경은 가을을 한껏 물들이고 있었다.
낙안의 고향으로 귀농한 사람들
이곡마을에서 만난 사람은 배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는 안정호 총무. 배 수확을 끝내고 이제는 겨울에 저장할 배를 수확할 것이라고 했다. 가족 모두가 농사를 짓는다고는 해도 6천여 평의 배 농사가 쉽지 만은 않을 터인데, 안정호 총무는 그래도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8년여 전에 귀농을 했다고 한다.
이곡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했었다는 안 총무는, 그래도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있는 터라 다른 사람보다 귀농이 어렵지는 않았다고 한다. 경제가 어려워진다며 귀농을 외치던 사람들이 채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일이 많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뚜렷한 목표와 할 일을 선택하고 귀농하면 실패확률이 적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마침 낙안오이를 재배하는 남영택 씨가 안정호 총무의 과수원에 들렀다. 남영택 씨 역시 7년 전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이제는 어엿한 농민 대열에 섰다. 그 역시 이곳이 고향이기 때문에 귀농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이 마을에도 귀농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남영택 씨의 설명이다. 게다가 귀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층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떠나는 농촌’에서 ‘돌아오는 농촌’이 되고 있는 것일까?
최근에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귀농인을 위한 박람회나 귀농설명회 등을 활발하게 열고 있다. 귀농인을 위해서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지원비를 마련하는 등 농촌인구를 늘리기 위한 대책 마련도 활발하다. 그러나 귀농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일자리’가 관건이다. 농촌으로 돌아와도 생계가 충분히 해결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귀농 아이템을 잘 선정하고, 농촌 환경과 이웃에 적응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안정호 총무와 남영택 씨의 경우에는 이곳이 ‘고향’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귀농이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용기 있는 일이고, 지금까지 이것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 더더욱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가을여행지 풍성한 순천
이곡마을이 있는 순천은 이 마을의 풍경뿐 아니라, 곳곳의 여행지가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가까이는 낙안읍성민속마을이 자리잡고 있고, 순천과 여수 경계쪽으로는 순천만이 자리잡고 있다.
낙안읍성민속마을은 조선시대의 관아를 비롯해, 중요민속자료가 풍부한 곳이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그 문화를 지켜온 주민들이 직접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을 엿보고 체험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체험의 장'이다.
순천시 쪽에서 여수반도와 고흥반도의 방향으로 넓게 펼쳐진 순천만 역시 살아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갯벌과 바다, 산이 어우러진 풍경이 눈길을 끄는 곳이다. 특히 가을에는 갈대군락이 꽃을 피우고, 낙조가 들 때면 더욱 찬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조계산에 자리잡은 송광사, 선암사 등의 사찰은 물론이고 인근의 고인돌공원 역시 가을을 즐길 수 있는 관광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어느 곳보다 풍성한 가을수확의 기쁨을 맞이한 이곡마을, 달고 시원한 맛의 낙안배, 그리고 추억이 아로새겨질 풍성한 가을여행지가 있는 전라남도 순천으로 가을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오늘도 누렇게 익은 벼 사이로 빨간 노을빛이 순천의 가을을 물들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