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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은 우리땅
2007년1월31일 제6회 장춘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녀자 쇼트트랙 선수들이 시상대
에 오르면서 불쑥 "백두산은 우리땅" 이라고 쓴 종이를 쳐들었다. 그리하여 관람객들에
게 기립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이 사건은 나의 머리속에서 여운으로 남아 어떤글을 써서 세계 각지에 흩어져사는 우
리 동포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헤아려 매듭을 풀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령감
을 잡을 수가 없었다.
2007년8월20일 나는 백두산 천지를 관광하는 행운을 가졌다. 장백조선족자치현 현성
에서 하루 묵고 아침일찌기 택시를 잡아타고 백두산 남파 관광입문을 향해 달렸다.
백두산 최고기온은 20도, 1년중 눈비내리는날이 200여일,강풍이 부는날이260일 겨울
날씨가 230일, 택시기사의 설명이다. 7,8월이 백두산 관광의 최고 적기라고 한다. 지금
바로 요때 백두산 관광의 열기가 새롭게 오르기 시작한다.
우리가 제일 먼저 남파산문에 도착하였다. 관계일군들이 사람이 더 모여 함께 관광버스
를 타고 출발하라고 하였다. 9시가 되였는데도 어찌나 추운지 부들부들 떨리였다.
눈비, 추위, 강풍, 안개, 이것이 백두산의 날씨다. 9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겨울이며, 봄
이 되면 곧 가을로 이어져 버린다. 여름이란 이름도 없다. 1년중 맑은 날씨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기후가 급변하고 구름에다 안개로 가려져 신비한 천지의 풍
광을 옳게 보기가 여간 쉽지않다.
백두산 관광길은 북파,서파, 남파,동파로 나뉜다.그중 동파는 북조선을 통에서 올라야한
다. 북파를 리용한 관광객이 가장많고, 산행을 즐기는 일부는 서파도 리용한다. 서파는
경사도가 작아 차에서 내려 걸으면 청석봉아래 5호경계비까지50분거리라고 한다. 남파
는 최근에 개발한 곳이여서 관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10분정도 기다리는데 뻐스 한대가 올라왔다. 한국관광객들이였다.우리는 서로 악수하면
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서울 뚜벅이 산악회"회원들이였다. 우리들는 동포
의 정으로 서로 너무나 친절하였다. 이것이 "한 피줄이구나" 하는생각이 가슴을 찡하게
하였다. 서로간에 후더운 난류가 흐르면서 참으로 감격의 시간을 보내였다.
관광차는 우리들을 싣고 압록강 최상류를 거슬러서 천지를 향해 달렸다. 비탈진 산길로
접어들면서 강은 어디론가 들어가 버리고 대신 가파로운 협곡이 나타난다. 북파나 서파
에서 보지 못하던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뾰족하고 기묘하게 다듬어진 바위들이 기다
란 무대후장처럼 주름져 내려가고 협곡이 얼마나 깊은지 아래 물은 보이지도 않는다.이
곳이 바로 그 이름있는 압록강 대협곡이다. 우리 눈에 전시되고 있는 그 기이한 풍경은
바로 조선의 령토였다. 가이드와 운전기사의 대화에서 내려올때 다시 잘 보자는 약속을
들었다.
차는계속하여 수림속을 달렸다. 여기의 나무는 구불구불하던가 하얀 것, 그리고 올라
갈수록 키는 점점 작아지는 것이 전부가 이상하게 생겼다. 가이드의 설명이 그냥 들려
온다. 해발고도가 2000m이여서 식물생장이 억제를 받는다고 한다. 각종 소나무와 자
작나무,여러가지 식물의 특별한 이름을 말하면서 쉴새없이 주절거리는데 그 명사들을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수림을 벗어나면 거대한 초원이다.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에 온듯한 느낌이다. 모
든 풀들과 별나게 고운 색갈을 가진 야생화가 땅에 납작 붙어 있었으며 차창밖은 사방
이 확틔여 있고 앞뒤로 하얀 차길만이 꼬부랑하게 늘어져서 달리는 차에 삼키였다가 다
시 차밑구멍으로 요리조리 뽑혀 나간다. 시야에 들어오는 프르스럼하고 폭넓게 펼처진
민둥산은 마치 리발한지 며칠된 소년의 중머리를 련상케한다. 고산지대의 특유한 풍광
이다. 그러나 그런것도 잠시 보얀 안개가 밀려 오더니 어느샌가 우리는 자욱한 솜뭉치속
에 포위되였다.
운전수가 속도를 줄이였으나 우리는 안개속에서도 끝내 봉우리에 도달하였다. 운전수가
내리라고 해서 알았지 안개속에서 그것이 봉우린지 어딘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정상에
오르자면 조금 더 걸어야했다. 앞뒤로 두사람 정도 어렴풋이 보이고 그 다음은 안개속에
숨어버린다.
산꼭대기에 도달했는데 천지는 안개속에 모습을 감추고 중조국경의 4호경계비만 우리앞
에 다가섰다. 안개가 조금 걷히자 경계비를 따라 조금 먼곳에 보잘것없는 녹슬은 가시철
망이 보였다.중국경비원이 조선땅쪽으로 발을 디디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을 아랑곳 하지않고 "아 ! 여기가 정말 우리 조선땅이구나"하고 서로 눈빛을 보내며 따
스한 우리민족의 정감을 느껴 보았다. 한국동포들도 격동되여 "우리땅 한번 밟아보자"하
면사 경계를 넘어서서 좋아 하였다. 다들 경계비 앞에서 사진찍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안개가 점점 어두어지더니 보슬비 살살 뿌려주면서 옷을 적셔주기 시작하였다. 모두들
준비해온 비닐옷을 입느라 한창 법썩 거렸다. 비옷을 다 입고 나니 비도 그쳤다.그렇게
날씨가 사람을 놀래는것 같았다. 그래도 추운지라 비옷을 벗지 않았다. 시간이 자꾸 흘
러가는데 자옥한 안개는 불었다 줄었다 할뿐 걷히지 않았다.
누군가 기도를 올렸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여. 이역만리에서 찾아온 우리동포들
에게 민족의 령산 -백두산 천지를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좋은니 꼭 보여주십시요.....
...."..이렇게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안되겠다 오늘 보기 힘들겠어"웃고 떠들던 사람
들은 점점 락심하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실바람이 불어와"나온다 나온다..."하고 웨친다.
그리하여 한쪽으로 천지의 한 귀퉁이가 보이면 환성을 지르면서 사진기 샤타를 눌러 댔
다.그렇게 반복하면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였다.... 이렇게 또 시간이 좀 지나자 아래 있던
운전사가 빨리내려 오라고 고함을 지른다. 시간이 됬다는것이다. 경비대원도 빨리 내려
가라고 협조하여 독촉한다.
"빨리내려와요. 시간이 넘었어요"그냥소리 지른다.
"뭐라구?! 그럼 여기까지 왔다가 천지도 못보고 그냥 간단 말이야?!!"내가 버럭 소리
를 질렀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은 조금도 반항하지 않고 뒤를 슬슬 돌아보면서 순순이 내려간다.
"안된다! 내려갈 사람은 다 내려가라 나혼자 천지 구경하고 걸어서 내려가겠다!!" 나
의 말은 단호하였다."
그러자 나에게 기대를 품은 사람 몇이 길 중간에 서서 갈가말가 동요하는 현상이 보였
다. 나는 운전수더러 "갈사람 태워가지고 먼저가라 나는 천지를 구경하고 걸어서 내려
갈태다" 라고 우겨대자 운전수는 어이가없어 하며 "그런법은 어디 있느냐?"하며 계속
내려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는 중에 가느다란 바람이 솔솔 부는 느낌이 왔다. 그러면서 안개는 서서히 아주조금
씩 물러나기 시작하는 것이였다.
"나온다. 나온다! 진짜나와!"내가 미칠것처럼 고함을 질렀다.
"나온다! 나온다!! 이것보라 정말 나온다. 정말이야! ...나오라! 나오라!! 나오라!!나오
라!... 나온다!!...... 아!!....다 나왔다!!!"마치 내가 응원하여 안개를 걷어내는 기분이다.
안개가 기적처럼 사라지면서 해맑은 백두산천지 전부가 눈앞에 쏵 안겨 왔다!
순간 이름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 가슴에 솟구치면서 욱하고 치미는데 그 느낌을 언어
로 표달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아무리 천하의 절승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다!!...
....... 안개구름이 산봉우리를 지나면서 유유히 떠다니다가 흩어지면서 서서히 사라지더
니 또 다시 새로운 구름이 나타나 형태를 바꾸어 실실이 풀어지면서 재주를 부린다. 이
것은 풍경이라기 보다 광폭- 아주 어마어마하게 넓은 동영상이다!!...아니, 그만하자,......
이것을 묘사한다는 것이 애당초 잘못이였다....!!
내려갔던 사람들이 모두 달려 올라와 정신없이 바라보다가 못밖힌듯 서서 환성을 지른다.
"야!!....."
"야!!......."
"야!! 좋다야!!......"
"야!! 좋다야!!......"
"야!!!......"
"아!..."
"아!! 좋다야!!!..."
"아!! 좋다야!!!..."
"아!! 좋다야!!!..."............이것밖에 형용할 말이 없다!!! 환호성이 저절로 나왔다.
누구나 이슬맺인 눈에 격정과 환희의 생기를 내뿜고있다. 아마도 이전에 한번도 찾아볼
수 없었던 표정이리라!! 이윽고 우리는 사진기샤타를 누르기에 바쁘다.......
천지물의 동족켠으로 55%가 조선땅이다. 국경선 이쪽의 북쪽켠은 연변조선족자치구
이고, 남쪽켠은 장백조선족자치현이다. 즉 백두산은 주위에 온통 "조선"이란 두글자가
들어있는 구역안에 포위되여 있다는 말이다.
백두산줄기는 마천령산줄기에서 철령을 거쳐 남으로 뻗어 금강산과 오대산, 태백산이
되였고 계속하여 남쪽 지리산으로 제주도까지 뻗는다. 이것이 백두대간이다. 조선반도
는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지맥으로 이어져있는 하나의 땅덩어리이다.
백두산은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등 세 줄기의 강을 거느리고 있다. 그 중에서 송화강은
직접 백두산천지에서 흘러내려 동북지구의 중심부를 흐른다. 수상교통으로 길림,할빈,
가목사등 중요도시를 련결하여 흑룡강으로 들어간다. 송화강의 지류로는 휘발하,음마
하,이통강,눈강,호란하,목단강 등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송화호와 동북경제의 주축인
풍만수력발전소를 품에 안고있다. 이곳을 우리는 간도땅이라고 한다.
이곳은 가혹한 항일전쟁의 나날에 수없이 많은 우리민족 영웅들이 피 흘려 싸운 땅이
다. 안중근,윤봉길,량세봉, 리홍광.최순희.....등 수천에 달하는 우리민족 우수한 아들
딸들이 혈전에서 귀중한 생명과 피끓는 청춘을 바쳤다. 그리고 중국내지에도 곳곳에
우리민족영웅들의 피어린 발자국이 력력히 찍혀있다. 그들의 이름은 그대들이 지켜온
이 땅과 함께 우리민족의 후손만대에 영원히 길이 빛날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연변의 항일시기의 렬사는 2,726명인데 그 중 조선족이 93%를 차지한
다 . 그리고 항일전쟁시기에 희생된 녀성렬사가 전 길림성에 398명인데 그 중 조선족렬
사가 397명이다. 여기에는 이름을 알지못하거나 가족이 없어 렬사증을 발급하지 못한
렬사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 밖에 조선족백성들이 일제의 "토벌"과 탄압밑에 살해된 것
은 더 헤아릴수 없이 많다. 연변만 보더라도 1932년에 전 감행된 적들의 대"토벌"에서
4,000여명의 조선족들이 살해되였으며 수십개의 조선족마을들이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한다.
또한 여기는 우리 선조들이 개척한 고구려땅이다. 북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주몽이 고
구려라는 어마어마한 대국을 세운 땅이다. 집안의 국내성에가보면 아직도 주몽이 탄
말발굽소리가 들리는듯하다. 그 때 고구려는 승승장구로 북부여를 삼키고 고조선의 옛
터 료서를 진격하여 천하에 위세를 떨친 이야기는 후세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면서 민
족적 자부심을 안겨 주고있다.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하여 고구려,발해,고려로 이어진 우리 민족의 국가들 그리고 리씨
조선의 국가도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서 나라를 세웠다. 고구려사람들은 고구려가 고조
선을 계승한 국가임을 알리면서 건국과정을 백두산과 긴밀히 결부시켰다. 고구려,신라,
백제에 이어 발해 그리고 그 이후 력대 나라들은 모두 백두산을 건국번성의 우상으로
섬기고, 슬기롭고 용감하고 깨끗한 민족의 넋을 기르는 성산으로 자랑하였다.
아득히 멀고먼 옛날, 기원전 7, 8천년에 우리선조들은 료서일대의 하북성그리고 산동반
도등 연해지구에서 료하문명인 홍산문화를 창조하였다. 고조선은 이렇게 시작 되였다.
이것이 아마 세계에서 가장 일찍이 나온 문명사회일 것이다. 신라,백제,고구려를 계승
한 발해, 고려,...,그리고 오늘날 중국의 조선족을 망라한 전체 한민족의 뿌리는 바로 대
륙의 동이족이 창조한 료하문명에서 발생되였다는 것이 사료분석에 의해 알수있다.
오늘날 정부의 농토개혁에 이어 농민 세금 면제로 중국농업은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
왔다. 시장경제의 봄바람은 먹고입는 문제를 해결한 중국조선족에게 물질문화적으로
잘 살아보려는 욕망을 한껏 부풀어주었다. "조선김치"와 "조선음식점"이 하늘에 별처
럼 중국 방방곳곳에 쫙퍼졌다. 마치 항일 전쟁시기에 애국적 조선청년들이 독립을 위
하여 중국의 도시로 몰려들었던것 처럼. 동시에 이어서 전개되는 한국뿜, 한걸음 먼저
발전한 모국은 중국동포들에게 푸짐한 선물을 안겨주었다.
2007년통계에 재한 조선족 인구가 35만명에 달하였다.이들은 종자돈을 마련함과 동
시에 한국에서 창업기술을 가져다가 중국에 민족기업을 발전시키는 골간으로 될것이
다. 내가 알고있는 어느 재한 조선족과의 통화에서 입국한 후에 큰 기업을 차려보겠다
고 하는데 신심이 대단하였다.
개혁개방의 생기로 들끓는 중국땅은 바야흐로 동방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깨여난 중국은 평화의 땅, 기회의 땅,희망의 땅으로 발돋음하며 그로 인하여 세계각
국, 특히 남한의 부호들과 유능한 인재들의 거대한 흡인력으로 이목을 끌고있다. 그들
은 대륙의 값싼 부동산과 인력 그리고 넑고넓은 시장을 발견한 것이다. 전중국의 곳곳
에 어디라 할 것없이 한국기업가들의 열정의 숨결을 느낄수있다. 지금 한국의 대중국
투자액은 해마다 수십억딸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중국의 각지방에서 2007년 중한무역에 1700억딸라를 초과하여 7년 이래 년평 25%
의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데 2000년의 20배를 초과한샘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이자 최대 수출대상국이 되였다.
해마다 6만에 이르는 한국 류학생들이 중국학교를 찾는다. 중국에서 공부하는 류학생
중 남한 학생이 가장 많다고 한다. 미국의 한인 종교인사들과 부호 지식인들의 조선족
지원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사천지진 피해에 한국 연예계 스타인 장나라,안재욱,함소
원,비,채림 .....등이 거액의 성금을 보내왔고 또 모금하여 학교도 세워주기로 하였다.
한마디로 대륙은 력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우리민족에게 너무나 매혹적인 희망의 터
전이였다.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남한은 생산력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높이므로써 국민의
지혜와 근신한 로동으로 한강기적을 창조하여 국제마당의 선진 대렬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군사분계선 이북의 핵위협과 그 영향으로 각 파벌간의 권력다툼과 로선투쟁이
격화되여 사회 불안을 엄중하게 조성하고 있다. 그리고 분단 상태로 인한 시시각각 압
박하는 전쟁 공포의 시달림을 받아, 거기에 따르는 천문학적으로 치솟는 군비증강의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이로하여 지금 당장 한국경제발전이 저애를 받고 있다는것이 가
시적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가까운 장래에 중국경제가 남한을 릉가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한수교이래 국제결혼이 활성화되여 지금까지 근십만명의 조선족처녀들이 한국으로
시집을 갔으나 바야흐로 뒤바뀌는 세상이 오리라는 것을 전문가들은 내다보고있다.
대륙을 동경하는 남한청년들이 중국에 발붙이려면 여러가지 애로와 문제가 존재한다.
먼저 나서는것이 까다로운 입국절차와 그에 따르는 외국인 차별,그리고 부과되는 경제
적 손실과 정신적 부담이다. 그리고 기업을 세울때도 외국인으로써의여러가지 시끄러
운 문제가 나서게 되며 지어는 기편당할 위험성을 떠안아야 된다.
만약 조선족 혹은 한족과 결혼하여 중국에 자리잡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것은 없
을 것이다. 조선족 혹은 한족안해가 낳은 자녀는 중국국적이다. 조선족 혹은 한족아버지
를 둔 자식도 중국국적이다. 그렇게되면 그 자녀들로부터 대륙에서 당당한 중화인민공
화국 공민으로 모든 권리를 향수할 수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대상자의 명의로 각
종 경제활동과 생활에서 중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될것이다.
한족녀자는 사지가 바르고 갸름하게 이쁜얼굴이 많다. 한족남자는 부엌에서 반찬 만들
기를 즐긴다. 지금 국제 혼인소개소가 각지,그리고 인터넷에서 활약하고있다. 중국에서
는 자녀의 성씨과 민족선택은 정부에서 관할하지 않는다.
몇년전에 순이현대자동차 공장에서 한족로동자들이 한국어 학습에 열을 올린다는기사
를 보았다. 근래에 무연고한국방문 취업에서 한국어시험에 한족명액도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국에서 우리민족의 흥성번영을 꽤한다.한국기업과 조선족기업이 발
전할때 조선어의 위상은 올라간다. 그러면 대졸생들과 청년들이 민족기업에 대거 취직
할것이며 조선어 할줄아는 한족도 여기에 동참할것이다.
중국에서 우리민족 자신을 대표하는 기업과 브렌드를 창출하여 민족 과학자 기술자, 근
로자를 대량으로 흡수하고 확대되여 그 지명도가 올라갈때 우리민족의 문화부흥와 민
족번영의 인적,물질적기초가 마련된다. 돈있는사람들과 능력있는 사람은 우리 민족의
기업을 지원하고, 격려하고 밀어주자!
이번에 리명박대통령의 중국방문에서 중한쌍방이 중한 전면적 협력동반자관계를 전략
적 협력동반자관계로 격상시키기로 합의한것은 량국관계발전을 위해 견고하고 밝은 미
래를 전망하게 되였다.
북조선은 락후한 체제 본질의 제한성으로 인하여 핵을 개발하고 페쇄주의를 실시함으로
써 생산력의 발전이 억제되여 경제를 파탄시키고 인민들은 고통에 신음하며 기아와 죽
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진실을 덮어 감추고 반항을 저지하기 위하여 전례없는 가장 엄중
한 인권유린으로 인민들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다. 이것이 악순환되여 세계적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력사상 우리 백의민족의 지울 수없는 최악의 수치로
남을 것이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온다고 하였다. 아직은 불투명 하지만 조만간 북조선에 개방의 폭풍
이 휘몰아칠것이다. 북조선인민은 더이상 3대세습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
남한은 물론 중국과 일본등 주위나라들의 막대한 지원과 본국의 해방된 생산력으로 조선
은 새로운 대비약을 맞을것이다. 우리민족 동포들의 자유로운 래왕과 협조는 우리사회를
물질문화적으로 더밝고 더높은 계단으로 끌어올릴것이다. 일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
하는 우리민족은.백두산의 정기를 받아안고 그 힘을 온세상에 자랑할 날은 지금 바야흐로
다가오고있다!!
첫댓글 알찔아찔하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