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고향근처에는 유홍준이라고하는 경북대교수가
남도답사 일번지라는 책에서 강진의 무위사와 김영랑의 생가 정다산의 유배문학
그리고 만덕산 백련사와 다산초당등을 소개해 베스트셀러가 됨으로해서
강진은 일약 청자문화와 더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이에 한층고무된 강진군은 칠량에서 다산초당으로 250억원을 투입해 다리를 놓는다고
추진중이란다~~
인근의 보성역시도 회천의 녹차밭 그리고 율포해수탕이 힛트를치자
조정래의 태백산맥의 소설무대와 판소리 서편제 를 묶어서
테마여행 답사기라며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이젠 녹돈이라고해서 녹차먹인 돼지고기까지 상품화해 성공을 거듭하고있다~
우리장흥은 과연 어떠할까?
놀랍게도 아직도 아껴놓은 땅이라며 잠자고 있는것만같아 못내아쉽다!
천년고찰 동양에 삼보림이요 9산선교의본산 보림사가 그러하고 가사문학의 효시인
백기봉의 관서별곡이 묻혀있으며
저 고부읍에서부터 밀린 갑오 농민군의 마지막 결전장 삼천열사와 장태장군의 장렬한죽음
석대들이있으며
서편제의 요람 보성 강산도 원래는 장흥땅/ 장흥의 서편제요
회천또한 원래는 장흥의 우리 안하면이였으며
고려중엽 인종비가 장흥출신덕이었는지 부사골의 영화가 엊그제인데
오호통재라! 오호애재라!
오늘날 광산으로 빼앗긴 고싸움도 우리 장흥의 동편 서편 고가
전국대회 출전 비용의 예산 타령만하다 광산으로 행원의 고잘꼬는
일꾼까지 붙여서 넘겨주었었다니~~
이러한 처지의 우리고향 장흥 이지만 꾸준히 우리 장흥을 알리며
활동하시는소설가 이청준님이나 한승원님 같으신
훌륭하신 분도 계시고
이번호 장흥 신문을 보신 친구들은 익히 아시겠지만
부산면 터꼴의 위상규 항공공학박사 서울대 교수님의 귀향은 고향에
잔잔한 파문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천재 소녀골퍼 미셸위가 위상규 박사의 손녀란다
장흥 군청에서는 매년 군비 2000만원을 지원한단다 (프로대뷔때까지)
이번에 귀향차 마을잔치를 노교수님이 열었는디!
민초의눈 촌로 말하는것잠 들어보소!
여당 사무총장 하든넘도 민선군수 하든양반도 하나같이
고향을 떠나기만하는디
우리 박사님언 고향으로 살러오셨당께
낼모레 또 한양반이 고향으로 오신당마요~~~~
인자 목포서 광양까정 고속도로 철도도 나뿡께 고흥 항공우주센타까장
득량도 거쳐서 다리만 놔 뿔먼 우리장흥 인자안 살기좋것오?
도청도 목포로 가뿐디 뭣할라고 전남대학은 광주에만 있을랍디여?
우리장으로 전남대학 유치운동언 안하고 뭣하고들 자빠졌는가 몰것오!
정부각부처를 지방으로 나눈단디 광주에 땅이 어디가있다요?
전대캠퍼스 자리에다 농림부나 산자부 오먼되고 인자 전남대학언 도 중심부로 옮겨가
지역발전 혀야제!그라먼 뺑뺑돌려서 지역발전은 자동으로 돼야분당께!
새끼덜 교육시킨다고 고향 안 떠도돼제 을매나 좋컷소?
이청준님의 소설 '축제' 영화 촬영지로 세간에 알려져
지금은 해돋이 명소로 부각된 용산면 남포의 소등섬
우리 안양면의 장재도 건너편 이기도 하지만
진도의 기적 바다 물갈라짐이 이곳에선 하루에 두번이나있다
수평선 너머의 고흥반도의 경치도 일품이지만 ~~~~
나는 오늘
그 소등섬에 얽힌 망부석의 이야기를 하고자한다
섬을 들어가면 암반으로 형성된 바위섬에 아름드리 소나무군이 있었다
놀라워라 그속에 망부석이 있고 할머니 신단지가 모셔져 있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온마을 주민이 할머니 신을 제사 모신단다!
때는 이조말//
서로 결혼을 약속한 약혼자가 바닷일을 나간뒤 돌아오지 않자
약혼녀 큰애기는 날마다 섬바위 위에서 약혼자를 기다리다 지쳐
죽어서 굳어버렸다 해서 마을 사람들이 처녀의넋을 위로하기위해
소등섬 당산에 혼단지를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모셨더니
뱃사람도 마을에 사고도 아직없단다
아들못난 사람도 거기서 빌면 아들도 난단다~~~~
세상살이 지친 사람들
아들 못난사람들이 몰려들자
요사이는 때를맞춰 숯불구이 굴에 쭈꾸미 바지락회 키조개(일명 게두)가유명하다~~~~
득량만 드라이브 코스도 강원도 수평선 못지않은 절경이고요
돌아서 회천면의 군항리 경치는 또 어떠합디까?
//파도소리도 다르데요// 철부덕 덕덕 더그덕 덕//
율산 여닫이 해수욕장은 조선사람 해수욕장
순포 해수욕장은 일본놈 해수욕장 그랬닥 안합디여?
2003년8월
봉 명제 白 光哲 씀
(위의 글은 2003년 여름에 썼던 글에다가 사진을붙여 재편집 한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