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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天 無比 큰스님 염화실 인터넷 법문]
信心銘 제 1강
[如天 無比 큰스님]
반갑습니다. 염화실 인터넷 방송 법문이 중단된 지 5개월 남짓 되었는데, 제 개인적으로 치료관계이긴 합니다만 일이 많았고 지난 여름, 가을 사이에 법화경 강의하느라고 좀 힘이 들었나봅니다. 그래서 푹 쉰 그런 기간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오늘이 마침 2006년 2월 1일입니다.
대화창에 반가운 염화실 법우님들 이름이 쭉 오르는 것을 보니까 너무 반갑고 또 감회가 새롭고, 법화경 강의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을 초월한 느낌도 듭니다.
또 음력 설도 지났죠.
병술년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부처님의 소중한 가르침을 배우는 인연이 되었으니 이 인연은 일생에 있어 그 어떤 인연보다 값지고 소중한 인연임을 가슴 깊이 느끼고 이 좋은 인연이 되었을 때 헛되지 않게, 유익하고 보람되게 잘 활용해서 각자의 인생에 큰 보탬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해 봅니다.
이제 내일 모레 글피가 입춘이고요, 모든 것이 새로 용기를 가지고 출발할 수밖에 없는 시절 인연이 도래했다고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다. 가을 방송보다 들어오는 길이 조금 바뀌어서, 인터넷 문제라든지 날로 발전하고 변하기 때문에 조금 헷갈렸을 줄 압니다.
그동안 회원이 가을만 하더라도 천명이 넘었는데 이제 삼천 명이 넘었습니다.
또 여기 법문 방청석에 입장하신 분들도 새로운 이름들이 많아서 더욱 더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신심명을 가지고 공부를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염화실 카페에 몇 가지 강의가 있고 본문도 올려져 있고 영상 강의도 있습니다. 몇 번의 강의가 있지만 이 신심명은 깨달음이 높으신 분의 최상 법문이기에 제대로 그때 이해했을까도 문제고 얼마나 설명할 수 있었을까도 늘 불조의 말씀을 대할 땐 의문으로 남고 미진한 생각이 듭니다.
깨달은 분의 생각을 100프로 이해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고 이해를 못하다보니 설명을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해가 달라지고 설명이 달라집니다.
어제 설사 어느 구절을 이해하고 설명했다 하더라도 오늘 그 설명이 똑같을 수 없는 거죠.
어릴 때 독서할 때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죠.
십대에 독서를 하는 것은 방안에 앉아 달을 보는 것과 같고, 이십대에 독서를 하면 마루에 앉아 달을 보는 것과 같고, 30대, 40대 50대 중년에 독서를 하는 것은 넓은 마당에 나와서 달을 한껏 보는 것과 같다고 하는 말이 있죠. 특히 깨달은 분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보통 사람이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리 공부했다 하더라도 또 해야 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조금씩 조금씩 뜻이 가슴에 와닿고 깨달은 성인의 마음에 한걸음 한걸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심명에 대한 책도 많고 강의도 많이 합니다.
그렇더라도 이것은 정말 진리에 대한 가르침이고 금생뿐 아니라 세세생생 공부의 과제로 삼아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가르침인 까닭에 공부를 알뜰히 하고 또 아무리 했다 하더라도 또 해야 할 내용이라고 평소에 생각합니다.
공부 들어가기 전에 이 신심명은 번역으로 말씀드리지 않고 원문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글자도 짚어드리고 새기는 법도 짚어드리고 담긴 뜻도 아는 만큼 짚어 드리고 하겠습니다. 원문은 염화실 신심명난에 가면 있으니 한글로 큼직하게 출력해서 보시면 아주 편리하실 줄 믿습니다.
또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이 신심명은 글이 얼마 되지 않으니 양을 많이 못합니다. 그 대신 이것을 육필로 백번쯤 쓰기 바랍니다.
사경이라는 것이 참 중요한 것이고 사경에 대해 또 말씀드릴 기회가 있으면 말씀드리겠지 만은 이 신심명은 백 번 아니라 천 번을 써도 결코 시간 손해가 아니고 평생에 있어 보람 있는 일을 했다, 정말 큰 불사를 했다 할 정도로 자부심을 가질 일이 됩니다.
그러니 한 백번쯤 육필로 사경을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외우게 될 것이고 글자 한 획 한 획을 소상히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신심명 하나만 제대로 쓸 줄 알고 외울 줄 알고 나름대로 뜻을 이해하고 설명할 줄 안다면 어디 가서든지 승속을 떠나서 불교 강의를 할 수 있습니다.
분필 하나만 가지고 몇 시간이고 불교 이야기를 할 수가 있고 문자를 구사해가며 부처님 사상의 진수를 전할 수 있는 큰 재산을 마련한 계기가 됩니다. 컴퓨터로 쓰시는 것 보다는 육필로 또박또박, 요즘 한자 쓰는 노트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사가지고 육필로 백번쯤 하루에 두 구절이나 네 구절, 여섯 구절을 배웠다 하더라도, 쉬는 날도 있으니 충분히 쓰실 수 있습니다. 설사 강의 중에 다 못쓴다 하더라도 이어서 백번만 사경을 하신다면 그 어떤 재산보다도 더 훌륭한 재산을 마련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에서 재산은 죽어서 가져가지 못하는 것은 재산이라고 보지 않죠. 불교에서는 죽어서 가져갈 수 있는 업, 좋은 수행력은 죽어도 따라가고 다음생과 연결되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재산입니다.
어떤 물질도, 어떤 명예도, 어떤 부도 많이 쌓여있다고 하더라도 못 가져갑니다. 가져가지 못하는 것은 진정한 재산이 아니죠. 악업도 가져갈 수가 있죠.
그렇지만 불교에서는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죠.
정말 좋은 업, 지혜를 갈고 닦는 일, 부처님께서 서사 수지 독송을 말씀 하셨지만, 사경을 하는 것이 값지고 중요한 일이란 것을 새기시고 백 번쯤 써서 평생에 어디 가서든지 불교를 마음껏 이야기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미륵골 님은 염화실의 일꾼이신데, 信心銘 三祖 승찬대사 글을 잘 올리셨습니다. 원문에 들어가면 글자를 키워서 보기 좋게 올려주시면 그걸 보면서 들으면 글자를 모르시는 분들은 글자를 파악하기가 쉬우므로 수고스럽더라도 글자를 키워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말은 일방적으로 하지만 동참하신 분들의 이름이 창에 떠 있어서 얼굴을 대하는 맘으로 합니다. 새로 시작해서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아주 반갑습니다.
신심명을 저술하게 된 승찬 대사에 대해 조금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분은 흔히 우리가 삼조 승찬 대사라고 이야기 하는데 삼조란 것은 불교의 종맥을 이은 대수를 이르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법을 가섭존자에게 전했으니 1조, 아난존자가 2조, 상나화수존자가 3조 아시는 대로 달마스님까지 28조가 되는 거죠. 달마대사께서는 인도에서는 28조이지만, 그 법을 중국에 전하게 되어 중국에서는 달마스님이 1조, 혜가 2조,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 대사로 이어집니다.
그 대수의 3조가 바로 승찬 대사입니다. 이 승찬 대사는 이 불후의 명작을 남겼는데 내용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 속에 부처님의 사상이 소롯이 다 들어있고 팔만대장경이 함축되어 있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런 표현을 과거의 조사스님들이 서슴없이 하십니다. 그와 같이 가장 짧은 한편의 글을 선택한다면 신심명을 선택할 정도로 내용이 아주 훌륭하고 글도 빼어나고 높이 치는 데 승찬 대사와 6조 스님의 제자인 영가스님의 증도가를 같이 공부를 하죠. 책을 낼 때도 두 개를 함께 내기도 합니다.
저도 신심명 다음에는 영가 증도가를 하려고 생각합니다. 이 두 편을 선시의 최고봉이다, 부처님 사상이 짧은 글 속에 잘 드러나 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승찬 대사는 수나라 양제 대 2년 10월 5일, 서기 606년에 입적하셨는데 태어난 시기는 모릅니다. 그러니까 세수가 얼마인지 모릅니다.
돌아가신지 150년쯤 뒤에 당나라 현종 황제가 감지선사라고 시호를 내렸고 탁호를 각정이라고 내려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승찬 대사에게 개인적으로 특별히 마음이 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분은 거사로서 법을 받았는데 평소에 대풍질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렸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나병인데, 이병에 걸리면 낫기가 어렵죠. 지금도 낫기가 어렵지만 우리 어릴 때도 이병에 걸리면 아주 무섭게 생각했고 정말 걸려서는안 될 병이죠. 바로 이분이 그 병에 걸려 여러 해를 고생을 했고 불교가 뭔지 출가가 뭔지, 부처님이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근데 마침 2조 혜가 대사의 소문을 듣고 그 도사에게 가서 뭔가 물으면 자기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혜가 대사를 찾아가서
“저는 문둥병을 앓고 있는데, 과거에 죄가 많아서 이 병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죄를 참회시켜주시면 병도 낫고 죄도 참회하는 길이 있을듯한데 참회시켜주십시오“.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스님이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예전에 당신이 불안한 마음을 갖고 달마스님을 찾아갔다가 달마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불안한 마음이 씻은 듯이 낫게 되었는데 그와 거의 똑같은 대화가 두 분 관계에서도 오고 갑니다.
“그대는 죄가 많아서 이런 병을 앓고 있다고 하니 그 죄를 가져오면 내가 참회시켜 주겠다” 죄를 가져오면 참회시켜 주겠다고 하는 그 소리를 들으니 이건 상상치도 못한 상황이죠.
아무리 생각해봐도 죄를 찾을 수 없고, 정말 죄가 많아서 이런 큰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죄를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어 혼자 끙끙거렸죠. 그래서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혜가 스님께서는
“그렇다면 그대의 죄는 모두 참회 되었다.”
죄를 찾을 수 없다면 공한 것 아니냐. 없는 것 아니냐, 그런 뜻이죠. 없는 줄 알고 공한 줄 알면 다 참회되었다.
불교는 이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난행 고행 하는 것 아닙니다. 한마디 말을 듣고 깨닫거나난행 고행해서 이치를 깨닫거나, 기도, 참선을 해서 이치를 깨닫거나, 경전을 읽고 깨닫거나 바로 그 이치를 깨달는 것이 불교 아닙니까?
불교는 깨달음의 가르침 아닙니까.
바로 그 깨달음을 통해서 이해하면 그뿐인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까 정말 아무 문제가 없어진 것입니다. 죄의 성품이 공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하신 말씀이
“그대는 불법승 삼보에 의지해서 안주 하라.”
문둥병을 앓고 여러 해를 나그네 생활 거지 생활을 했으니 그 골머리가 오죽했겠습니까?
그래서 승찬은 거사로서 처음 듣는 말이라 도대체 불교의 불자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지금 화상을 뵙고 승보라는 것을 알았는데, 어떤 것을 불보, 법보라고 합니까?”
삼조 승찬 대사는 불교와 처음 인연 되었기에 도대체 알 까닭이 없었죠.
“마음이 부처다. 마음이 법이다.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다. 승보도 또한 마음이다. 마음 밖에 다른 것이 없다. 불법승 뿐 아니라 온 우주 법계가 다 마음이다.”
말하고 듣고 우리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렇게 법문을 듣고 하는 이런 것 전부가 마음이 들어서 하는 거죠. 아니 바로 마음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는 오늘 비로소 죄의 성품은 마음 안에도 없고 밖에도 없고 중간에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마음이 그러하듯 불보도 법보도 둘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이 다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고 깨달은 겁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몸이다, 병든 몸이다. 분별할 까닭이 없습니다.
금으로 불상을 만들었든, 칼을 만들었든, 물고기를 만들었던, 코끼리 형상을 만들었던 오직 금일뿐이다. 불상을 만들었다고 금값이 더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이런 이치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삼보가 뭐고 사홍서원이 뭐고 사제, 팔정도 삼귀의가 뭐고 십이 인연 한번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이분은 바로 이렇게 불교를 지름길로, 바로 정법을 만나게 되어서 이렇게 한순간에 불법의 근본을 확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혜가 대사는 법의 그릇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고 그때야 비로소 머리를 깍아 주고 하는 말이 “그대는 나의 보배다” 그래서 중 승자, 구슬 찬자를 써서 승찬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해 3월 18일 광복사에서 구족계 비구계를 받게 되었죠. 그로부터 병이 나아서 2년동안 혜가 스님을 시봉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승찬 스님은 그 당신 멸불, 중국의 어떤 왕이 불교를 배척하는 왕이 등극해서 불교를 탄압하는 시절을 만나서 40년을 은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신이라는 어린 스님을 만나서 그를 깨우쳐주고 늦게야 법을 전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불법이 연면히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정말 병든 몸으로 ,고치기 힘든 나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이름 있는 도사를 찾아가서 한두마디 대화에서 모든 것이 마음의 이치다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이 분은 거사로서, 나병 환자로서 깨달았죠, 그래서 이것이 보통 인연이 아니기에 승찬 스님의 인간적인 삶에 관심이 깊고 애착도 가구요, 특히 신심명을 통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의 소견을 열어주고 눈을 뜨게 해준 그런 내용에 언제나 감동하는 그런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자로서, 부처님과 인연을 맺은 이 인연으로 신심명 한번 공부 못한다면
불자 된 보람이 뭐가 있겠습니까.
불자라면 뛰어난 가르침을 얻는 행복, 그런 다행함을 얻자고 하는 것이 불자 된 보람이고, 거기서 소득을 얻는다면 얻는 것이지 ,달리 어떤 소득이 있겠는가 생각합니다.
신심명은 믿을 信, 마음 心, 새길 銘인데, 명이란 것은 마음 속에 깊이 새기다, 나무 판에 새기다, 그런 뜻으로 명자를 씁니다.
신심이라는 말 우리가 잘 쓰는 말인데, 우리가 흔히 쓰는 그런 신심이 아닙니다. 근본적인 신심, 믿는 마음, 그것을 말합니다.
그 사람이 신심 있다고 할 때, 절을 많이 한다든지 공양을 올린다든지, 불사를 잘한다든지, 그런 차원의 신심을 염두에 두고 이것을 들으면 이해가 안됩니다. 그런 신심은 다 던져버리고 여기서는 마음의 도리, 믿는 마음, 믿는다는 말의 근본적인 실상이 뭐냐, 하는 것입니다.
신앙심이 아주 돈독해서 예불을 많이 하고 , 염불이나 공양, 절을 많이 하고 행동거지가 아주 모범이고 하는 것도 좋은 신심이지만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죠.
그야말로 모든 것의 근본이고 우리 자신의 근본이고, 근본을 이해함으로 우리의 삶이 바르게 되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행복, 최상의 의미와 보람을 신심이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 인생을 극대화 시키는 말이고 가장 보람 있게 만드는 말이고 멋진 삶을 약속하는 말입니다.
첫구절이
至道無難至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다 라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도란, 가장 멋진 삶은 도대체 뭐냐, 도란 것을 너무 도교적으로 설명하면 거리가 멀어집니다.
도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요. 가장 바람직한 길입니다.
지극한 도라면 가장 멋진 삶, 가장 마음에 그리는 이상적인 삶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고 바람직한 생활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극한 도란 가장 바람직한 생활 태도입니다.
바람직한 인생은 무엇일까 이렇게 풀어야 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인생의 길은 어려움이 없다. 어려움은 없지만 그러나 조건이 있다. 여기서는 힘든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維嫌揀擇 오직유, 싫어할 혐, 가릴간, 가릴택.
간택을 오직 싫어할 뿐이다.
지극한 도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간하고 택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것만 아니면 멋진 인생, 바람직한, 이상적인 인생에는 어려움이 없다는 말입니다.
돈이 많아야 한다든지, 학식이 많아야 한다든지,, 명예를 높이 가져야 한다, 그런 조건이라면 어렵겠지만, 여기서는 유혐간택이라고 했습니다. 멋진 인생은 어렵지 않다. 오직 간하고 택하는 것이 있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가릴 揀, 가릴 擇
간은 가려낸다. 택은 선택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쌀과 뉘가 섞였을 때 쌀을 고르는 것은 택이고, 뉘나 돌을 가려서 버리는 것은 간입니다.
우리말로는 가릴 간, 가릴 택이지만 간은 가려내 버리는 것이고 택은 선택해서 내가 갖는 것입니다. 쌀 입장에선 택이고 뉘 입장에선 간이라고 하죠.
뉘는 벼가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것을 말하는데 요즘은 쌀에서 보기 힘들어서 이름마저 듣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간과 택의 다른 뜻을 말씀 드렸습니다.
또 자세한 뜻은 다음 시간에 두고두고 이야기 하겠습니다.
다시 해석한다면 신심명 할 때의 신심이란 신앙심, 부처님께 신심 있다가 아니고 마음의 근본 문제, 그 마음의 문제를 통해 우리가 가장 이상적인 삶을 어떻게 엮어 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신심이다 .다른 말로 하면 지극한 도다, 멋진 인생, 이상적인 인생, 가장 이상적인 삶의 태도를 至道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렵지 않으나 가려내는 것과 선택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에 유의하면 된다, 유의 한다는 말은 그것을 하지 않아야 된다 이런 말입니다.
오늘은 서론과 승찬 대사의 이야기, 신심명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특히 나병을 앓다가 혜가 스님을 만나서 병고의 몸으로 한 두 마디 대화에 마음이환하게 깨달아져서 병고도 낫게 되는 그런 인물이 드물죠. 그런 어려운 경운데, 결국 그래서 부처님의 법력을 잇는, 그 당시 얼마나 사람이 많았겠습니까? 그런데도 , 부처님의 적자로서 법을 이어가는 그런 인물이 되었다는 것은 정말 대서 특필감이죠. 그런 승찬 대사의 인생에 애착이 가고 마음이 가고 관심이 가고 나아가서 신심명에 여러 가지로 함축된 뛰어난 내용을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금요일은 청림회 강의가 있어 강의를 못하고 토, 일은 쉬기로 했기에 오늘 내일 하고 금, 토 ,일 3일은 쉬니 조금 마음에 섭섭한 것은 있습니다. 그러나 월 화 수 목 금 5일간 강의를 하게 되니 그렇게 틀에 맞게 하겠습니다.
오늘강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법문정리:행욱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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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들려주신 법문 감사히 잘 듣고갑니다
불법승 우주법계 모두 마음이다
*佛法僧 三寶 至道無難 唯嫌揀擇 _()()()_
감사합니다 열공하겠습니다_()_
감사 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_()()()_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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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世生生 공부의 課題 ; 금강경 법화경 신심명 대승찬 임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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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 성불하십시요.
고맙습니다._()()()_
_()()()_ 고맙습니다.
그야말로 신심나는 법문 신심명 강의를 어른스님의 사자후로 듣고 새기며 또 듣습니다. 어른스님!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저희들 곁에서 법을 설해 주시옵소서.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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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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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감사 감사합니다.
진실로 감사 감사합니다.
道...사람이 살아가는길...가장 바람직한길...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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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 _()()()_
고맙습니다._()()()_
재발심의 마음으로 큰스님의 신심명강의를 보게되어
좋은인연으로 깊이 새겨 공부하겠읍니다.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나무아미타불_()()()_
사경도 같이 해보겠습니다.고맙습니다_()()()_
신심명강의를 스님께 이렇게 집에서 들을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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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공경
감사합니다 _()_()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_()()()_
스님의 신심명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염화실이 있어 어디서라도 가르침을 듣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