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傳心法要 제 1 강]
傳心法要를 가지고 이제 공부를 시작하게 되겠습니다. 교재를 보니 황벽선사 이렇게 했는데, 그동안 우리가 임제록을 가지고 공부를 하면서, 임제스님이 처음 황벽스님 만나서 삼도발문에 삼도피타(三度發問 三度被打)를 하고 대우스님께 가서 비로소 눈을 뜨고 하신 말씀이 아주 재밌는 말이 있습니다.
黃檗佛法이 "무다자(無多子)-별 볼일 없다."라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잘못 한 것도 없는데, 황벽스님이 세 번이나 사람이 죽도록 후려쳐서 무슨 잘못이 있는지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대우스님에게 왔었는데, 대우스님의 한 말씀 아래 눈이 열려서 황벽불법이 "별 볼일 없고 너무 쉽고 간단해서 아무것도 아니다." 황벽불법이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뜻이 우리말로 하면 포함돼 있어요.
그런데 그 제자 임제스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대강 훑어 봤고, 이제 거슬려 올라가서 임제스님의 스승인 황벽스님의 가르침을 더듬어 보려는데, 황벽스님의 불법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그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우리가 공부하게 됐어요.
임제스님이 표현했듯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정도로 우리의 안목이 툭 트여 정말 일체 생활에 행복을 누리고, 자유를 누리며 어떤 상황에 처해 살더라도 처한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고, 달라져서도 안 되고 달라질 수도 없지만, 똑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가 살더라도 거기서 자유를 누리고, 온갖 난무하는 주의 주장과 삿된 가르침의 소견들에 꺼달리지 않고, 미혹되거나 흔들리지 않고, 인간으로써 또 자신으로서의 진정한 가치와 보람을 한껏 누릴 수 있는 그런 삶이 우리가 바라는 바입니다.
부처님이나 조사스님의 가르침을 배워서 달리 뜻을 이루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무한의 가치를 내 것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임제스님의 말씀에 "황벽 불법이 무다자-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이런 표현의 그 의미를 우리가 찾아서 가슴에 사무치도록 새겨야 됩니다. 여기 책 제목이 "마음의 도리를 전하는데 있어서 아주 요긴 한 것- 전심법요라 그랬어요. 전한다고 하는 말이 우리가 물건을 전해 주듯이 그렇게 전해주고 전해 받는 게 아닙니다. 말인 즉, 전한다고 돼 있지만 물건을 전해주고 전해 받듯이 그렇게 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이런 가르침을 통해서 마음의 도리를 깨우치는 겁니다. 아, 이치가 이런 것이구나. 마음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그런 것을 깨우치는 것이 바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우선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유인물을 좀 보면 ‘傳心法要 大旨’라 이렇게 돼 있어요. 이건 전신법요에 대한 전체적인 뜻을 한마디로 간추리면 ‘유전일심 갱무별법(唯傳一心 更無別法)’이라 서문에 나오는 말인데, 이렇게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임제스님의 법문이 담겨 있는 임제록은 뭐죠. ‘三度發問 三度被打’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 임제스님의 불법과 사상과 임제록 전체의 정신이 다 담겨 있다고, 또 예를 들어 화엄경 하면 ‘통만법 명일심[通萬法 明一心]’‘만법을 통과해서 한 마음을 밝힌다.’ 이게 화엄경을 한마디로 표현할 때 그렇게 표현하죠. 법화경은 ‘회삼승 귀일승(會三乘 歸一乘) 삼승을 모아서 일승으로 돌아간다.’ 이런 형식으로 불교는 불교공부가 아주 뛰어난 분들이 삼천년이란 긴 세월동안 갈고 닦고 발전해 오고 정리가 돼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을 요약해서 근기에 맞추어 알아듣기 쉽게 잘 했지요.
황벽불법이 무다자- 별것 아닌 것이 결국은 "유전일심 갱무별법(唯傳一心 更無別法)- 오직 한 마음만 전해가지고 다른 법은 없고 한마음만 가르친다." 마음에 대한 이치만 공부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전체의 중심이고 주인이기 때문에 우주의 주인이고, 이 세상 내 살림살이. 내 인생이 왜 이 모양이야 하는 것도 결국 내 마음이 들어서 했지 아무도 책임이 없어요. 걸핏하면 나라 가족책임 지우고, 자식 남편 아내책임 거슬러 올라가면 죄도 없는 선배들 책임 지우고, 그런 식으로 자기 팔자를 얘기 하거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불교공부한 사람은 절대로 이런 생각해서는 안 돼요. 일체 책임이 내게 있어요. 내가 마음을 어떻게 썼냐에 따라서 인생이 어떻게 되는 것이지, 누구한테 책임이 있겠습니까? 아주 형편없는 집안에 태어났다고 합시다. 스스로의 업으로 그 집으로 인연을 지었기 때문에 태어난 게 결국은 자기 책임이지 부모 책임입니까? 갱무별법 이게 한 번 더 죽이는 거야. 일심만 정했지 다른 법 없다. 정말 무다자야 얼마나 간단합니까. 한마음 없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이미 우리는 한마음 속에서 살아가는 한마음의 이치로 모든 내 생을 운영해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 일심의 문제는 우리가 평생 공부해야 할 문제고, 아무리 아무리 해도 널리 깊이 더 잘해야 할 일이 일심의 문제입니다. 정말 부처님의 깨달음이나 조사스님의 가르침을 공부해 갈수록 어쩌면 이렇게 이 세상에서 가장 근본이 되고, 원리적이고 근원과 중심이 되며, 옷으로 치면 옷깃과 같고, 그물로 치면 추스리는 벼리와 같고, 집으로 치면 용마루와 같고, 일체의 중심이고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걸 우리가 살아가면서 공부하면서 더욱더 절실히 느끼지 않습니까.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은 확연히 깨달아가지고, 가나오나 일심의 문제라 이걸 표현하고 가르치는 방법이 사람 따라서 다를 뿐이죠. 아주 논리적으로 길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손가락 하나 간단하게 세웠지요. 저도 처음부터 그 길로 나갔으면 쉬운데 괜히 더운 날 말하느라 땀 흘려 가며 팔자가 잘못 된 겁니다. 나도 손가락 하나 세우는 것 흉내 냈으면 제일 간단하고 좋은데, 평생 구지선사라고 역사에 유명한 스님이 돼 버렸잖아요. 전 이렇게 이야기해도 역사에 안 남아요. 구지선사는 손가락 하나 가지고 명법문해서 더 이상 설명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천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전부 구지선사 법문 기가 막힌 법문이라고 합니다. 손가락 세우는 것 얼마나 간단합니까.
거기에 八萬大藏經 없다고 누가 말합니까. 다 그 속에 팔만대장경이 다 있는 겁니다. 간단하다면 간단하고 ‘無多子’ 별것 아이다라면 별것 아니고, 그러면서 전체라면 전체고, 그걸 一心이라면 일심인 겁니다. 오직 일심만 전하는 갱무별법이라 오직 손가락 하나만 세웠지 별거 없죠. 손가락 하나가 결국은 일심인 겁니다. 일심을 표현한 그대로 일심입니다. 이런 중요한 것을 우리가 깊이 잘 인식하여, 요게 나며 내 주인공이고, 우주의 주인공이고 일체 가정살림 살이나 제 인생살이나 회사나 나라를 운영하는 일이나 전부 주인공 하나인데, 이것 하나 깨우쳐 자유자제로 마음대로 이 원리에 의해 쓸 줄 알면 끝납니다.
어디 가서 下根機 중생들 인도한다고 온갖 方便으로 열어 놓은 방편에 꺼달리며 헤맬 필요가 없는 겁니다. 부처님이 오신지 삼천년이나 되었으면, 아무리 미련한 중생들이라 하여도 철들 때가 되었잖아요. 삼천년이란 세월이 흘렸는데 이제 철 좀 들어야지 아직도 정신없이 방편에 헤매는 사람들이 만잖아요. 자기 주인이 누군지 이젠 알만하잖아요.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전신법요를 한마디로 요약해서 표현하면 그러한 내용입니다. 서론으로 공부의 중요성을 장자에 있는 말 한마디 인용 했어요.
莊子曰 事雖小나 不作이면 不成이요
장자왈 사수소 부작 불성
장자가 말씀하시길 일이라고 하는 것이 비록 작은 것이나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음이요.
일이라고 하는 것이 비록 작은 것이지만 예를 들어서 여기 와서 공부하는 일 아주 작은 일입니다. 가서 한 시간 공부하나 집에서 노는 것이 별 차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하지 않으면, 不作 이루어지지 안 해요. 아 ~ 기가 막힌 말입니다. 밥을 입에 떠 넣는 것. 아주 쉬운 일이죠. 그렇지만 안 떠먹고 상에만 차려 놓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밥을 입에 떠 넣는 일 얼마나 간단한 일입니까? 하지만 하지 않으면 배가 부르지 않는 겁니다. 그와 마찬가지의 비유입니다.
子雖賢이나 不敎면 不明이니라
자수현 불교 불명
우리가 비록 어질다고 하나 그런 공부를 하지 아니하면 밝은 이치를 알 수 없음이니라.
자식이죠. 자식이라는 子자는 모두 해당되는 겁니다. 우리가 비록 근본이 불성을 가지고 있고, 마음을 가지고 있고 비록 어질다고 하자. 마음 불성이 어질고 본래 부처라고 하지만, "불교는 불명이니라- 그런 공부를 안 하면 그 이치에 대해서 밝을 수가 없습니다." 참 대단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우리 소질이 부처의 소질을 가지고 있고, 인간으로써 아주 위대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누구 없이 자식이나 우리나 아버지나 똑같습니다. 거기에 대해 성인들의 가르침을 공부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으면 밝아지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가르치지 않으면 개나 소나 돼지처럼 산다는 겁니다.
못 배운 지역 사람들. 오늘날 이 시대에도 그런 오지에 아무런 見聞이 없고 듣고 보고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은 동물처럼 그렇게 살잖아요. 인간의 그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못 배워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이 없기 때문에 동물처럼 사는 겁니다. 캄캄하게 그래 삽니다. 공부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잖습니까? 공부도 질이 높은 우수한 성인의 가르침을 공부를 해야 마음이 자꾸 밝아지지. 그렇지 않고 아무 공부나 한다고 마음이 밝아지는 게 아닙니다.
至樂은 不如讀書요
지락 불여독서
지극히 즐거운 일은 독서하는 것만 같지 못함이요.
至要는 莫如敎子니라
지요 막여교자
지극히 중요한 일은 자식을 교육시키는 것만 같지 못함이라.
지극히 즐거운 일은 무엇이냐, 독서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지극히 중요한 것은 자식을 교육시키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런 한시에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지극히 즐거운 것은 뭡니까. 전심법요을 떡 놓으면 황벽스님하고 마주하고 있는 겁니다. 임제록을 떡 놓으면 임제스님하고 마주하고, 금강경 펴면 부처님하고 수보리하고 마주하고, 같이 도반이 되어 주고받는 겁니다.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이 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지락은 불여독서요- 독서한다는 것은 성인을 책을 통해서 만나는 일이닌까요.
지극히 중요한 일은 자식을 교육시키는 것만 같지 못하다. 교육도 오늘날 학교 교육이라는 것은 전부 경제활동을 위한 교육이지 정말 사람 가치를 위한 교육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나이 들어서도 계속 공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두고두고 우리 자신을 경책하는 일이고 모든 사람을 경책하는 일이기 때문에 참고로 올려놓았습니다.
황벽희운스님의 전등계보라 해서 제 28조 동토에선 초조죠. 菩提達磨스님이 계시고, 제자 慧可스님. 僧璨스님. 道信스님. 弘忍스님. 그리고 6祖 慧能스님 33祖. 동쪽에 와선 6조 혜능스님 밑에 南岳懷讓스님이 계시고, 물론 淸源行思스님도 계시자만, 임제종 황벽스님 계통을 밟자면 남악회양스님이 계시고 그 밑에 馬祖道一스님이라고 아주 뛰어난 도인입니다. 이 분은 "馬구답살 천하인이라- 말馬자 든 스님이 세상에 나와서 천하 사람을 다 밟아 죽일 것이다." 옛날 사람이 예언을 했어요. 무수 도인을 배출 할 것이다. 라고 표현 했습니다. 중생으로써 죽어야 大死却活대사각할이라고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금강경에 '依法出生分- 법에 의해서 늘 우리는 거듭 태어나야 된다’는 겁니다. 법에 의해서 새롭게 출발해야 되는 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죽인다고 하는 말 또한 현재의 나를 부정하고, 보다 더 잘나고 발전된 나. 정말 지혜가 밝은, 내 어디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자재한 나의 삶이 비로소 들어난다. 이런 뜻에서 그동안의 나를 죽인다. 선가에서는 죽인다는 말이 참 좋은 뜻으로 사용돼요. 不殺生해서 죽이지 말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선가에서 죽인다는 말처럼 훌륭한 말이 죽어야 진짜 훌륭한 부처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입니다. 그런 인연과 표현이 따라다니는 마조도일스님입니다.
마조도일스님 밑에 전백장 후백장이라고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따라다니는 분이 白丈懷海스님입니다. 백장스님 밑에 우리가 공부하는 전심법요의 주인공 黃蘗希運스님입니다. 역사는 큰스님들이 언제 태어났는지 구태여 밟히지 않고, 당신이야 생년월일 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제자들에게 생년월일이 언제다 잘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는 스님들이 많습니다. 임제스님도 그렇잖아요. 언제 태어났는지 모르는 겁니다. 그렇지만 많은 제자들에 의해 돌아가신 해와 날짜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남아있습니다.
黃檗希運스님이고 우리가 공부했던 臨濟義玄스님 興化存奬스님 南院道옹스님 이렇게 내려오는데, 밑에 裵休배휴라고 하는 분은 자사로서 전심법요가 배휴라는 사람의 손으로 엮어졌어요. 이분과 황벽스님과 만난 인연을 말씀드릴 텐데, 황벽스님의 제자가 되어 아주 뛰어난 학자며 벼슬은 자사고 그렇습니다. 황벽스님을 만나서 불법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배휴거사님이 법문정리를 다 해서 그 당시 법문을 들은 스님들께 가서 보여서, 그동안 제가 황벽스님 법문 들으면서 메모하고 정리한 것인데, 어떤지 바르게 기록을 했는지 큰스님들께 묻고, 큰스님들께 인가를 받은 이 전심법요가 비로소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 연유가 있어서 배휴거사를 내 놓게 된 것입니다. 다음 西當智臧스님도 마조도일스님 밑에 백장회해스님의 사제로 서당지장스님도 뒤에 책에 나오기 때문에 기록을 해 놨습니다. 법으로 삼촌(西當智臧스님)과 조카(황벽스님)가 됩니다. 그 다음 우리 보통 선가에서 일화오엽이렇게 말하는데, 가끔 액자로 써서 붙여 놓은 것을 보신 기억이 있을 겁니다. 一花五葉 ‘꽃 한 송이에 다섯 잎이다' 매화 잎을 세어보면 꽃 한 송이에 대개 다섯 잎으로 돼 있어요. 옛날부터 아름다운 표현으로 일화(육조혜능스님)를 말하고 혜능스님 밑에 오엽(임제종. 위앙종. 운문종. 법안종. 조동종) 이 있는데, 이렇게 해서 임제스님의 몇 대손으로 내려가면 다섯 종파의 선종이 크게 세상을 떨쳤습니다. 중국불교를 완전히 사로잡다 싶이 했어요.
임제종에서도 두개의 파로 양지파. 황용파 나눠져서 참고로 적어 놓았습니다. 일화오엽하면 잘못 이해하는 이들은 달마스님을 일화로 치고, 그 밑에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까지 오엽으로 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건 잘못 해석했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육조스님 밑으로 다섯 줄기가 바로 내려 간 것은 아니죠. 두 줄기로 내려가서 한쪽엔 두 줄기 한쪽엔 세 줄기 이렇게 퍼져서 결과적으로 유명한 다섯 선종이 벌어졌다. 고 해서 일화오엽이란 표현을 씁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려는 황벽희운스님이 바로 오엽가운데 일본에 있는 임제종 종맥을 이은 대종장이시다는 뜻입니다. 이제 전체적인 황벽스님에 대한 전등 맥을 대강 우리가 斟酌을 하고 공부를 해야지 특별하게 갑자기 세상에 뛰어난 사람도 아니고, 당신의 깨달음과 법문을 역사적으로 모두 일체 선지식들에게 검증을 거친 소견의 법문입니다. 이걸 우리가 믿고, 믿음 아래서 공부를 해야지 우리에게 소득이 있기 때문에 참고로 해 놓았습니다. 사찰이나 어딜 가서 공부를 하든지, 다도를 배우든지 서예나 그림을 배우더라도 전통과 족보가 제대로 있어 맥을 이어온 사람에게 배워야지 정상적으로 제대로 배우는 겁니다. 혼자 특별하게 잠깐 유명해서 그 사람 유명하단다 하는 것 가지고 안 되는 겁니다.
특히 절에선 더 그렇습니다. 불교계에서 그 스님 유명하고 뛰어나서 잘하는 것이 많아도, 그 스님이 어떤 전통을 밟고 검증을 받아서 유명한지. 그 사람의 소견을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보통사람으로선 점검할 수 있는 길이 그것 뿐 입니다. 소견이 툭 트여 바로 대화를 통해서 알면 좋지만, 그건 어려우니 전통을 보고 이 사람 보면 돼. 그래서 이력을 중요시 여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디 가서 글씨를 배워도 전통이 없는 곳에서 배우면 안 됩니다. 실컨 고생하고 돈만 버리고 잘못 배우게 됩니다. 뭐든지 마찬가지로 茶道 또한 같습니다. 전통 맥을 이어 온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교 공부하는데 더욱 중요합니다. 그런 뜻에서 황벽스님이 이런 맥을 이어온 분이라고 살펴 본 것입니다. 다른 역사적인 세세한 이야기는 다 할 것 없고, 제일 중요한 건 전심법요를 기록하신 배휴거사와 황벽스님과의 인연이 아주 유명하여 많이 들어서 잘 아시리라고 생각이 듭니다만, 유명하지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배휴라고 하는 사람은 중국 하동사람인으로 첫 인연으로 황벽스님이 黃蘗山 大安精舍에 객으로 와서 청소도 하고 마당도 쓸고 나무도 하며 허드렛일을 하며 뒷방에 살고 있었어요. 그때 배휴라고 하는 하동의 자사(지금 같으면 고을 원, 군수, 도지사)가 불교를 좋아하면서 큰스님들도 많이 찾아뵙고, 불행이 깊은 분으로 대안정사라는 절에 와서 법당에 향을 사르고 법당을 쭉 돌아보는데, 주지스님이 하동 자사니까 절 안내를 했어요.
조사전에 들어가면 조사스님과 고승들의 진영을 걸어 놓잖아요. 부처님부터 33조하며 그 후로 산중의 큰스님들 등등 지명을 크게 많이 걸어놓는 조사전이 있어요. 그 조사전에 들어가서 배휴거사가 쭉 보다가 주지스님께 여쭙게 되었어요. 이 진영은 참 볼만한데, ‘이 高僧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하니 주지스님이 대답을 못했습니다. "사진은 있는데 이 사람 어디가 있습니까?" 배휴 이분은 그 순간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특별한 질문을 했습니다. 아무나 못하는 질문을 했어요. 휙 돌아보고 말지, 그래도 꼭 알고 싶었던지 주지스님이 대답을 못하니, "혹시 이 절에 참선하는 선을 닦는 스님이 있습니까?" 물었습니다. ‘전에 살던 스님으론 없고 근래에 어떤 스님이 와서 사는데, 허드렛일을 하며 사는 아마도 그 스님이 참선하는 스님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고 간단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럼 그 스님을 청해서 물어볼 수 있는지 주지스님께 부탁을 하니, 사람을 시켜서 황벽스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두 사람은 보자마자 배휴가 스승제자가 되려고 했는지 기분이 좋아 역사 사전에 보면 흔연한 기분으로 황벽스님을 바라보게 되었다 합니다. 그러면서 아까 주지스님께 물었던 질문을 다시 한번 질문하고 싶습니다. 하면서 아주 멋진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아까 주지스님께 물었는데 말씀을 아끼셨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답을 못하더라고 하지 않고 말씀을 아끼더라. '아! 이 대목을 보고 배휴라는 사람의 인격이 대단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주지스님과 다른 스님들은 말씀을 아끼더라.’ 吝辭인사라고 했어요. 제덕吝辭라 주지스님하고 다른 스님들이 있는데 대답해 달라고 했더니, 말을 아끼더라. 아낄 吝인, 말씀 辭사. 아, 이런 대단한 표현을 했습니다. 주지스님과 다른 스님들은 대답 못하더라고 하지 않고, 대답을 아끼셔서 스님께 물어 보려고 모셨습니다. 이런 표현입니다. 인격자는 이렇게 말할 줄 아는구나. 전 감동을 했어요. 우리도 말하는 것도 배워야 됩니다. 그러니 스님이 대신 대답 좀 해 주십시오. 하나도 무시하지 않고, 대답을 못해서 못 한 것이 아니고, 할 줄은 알지만 겸손해서 말씀을 아끼니, 스님이 대답을 좀 해 주십시오. 이렇게 한 겁니다.
황벽스님이 상봉(총리)벼슬까지 올라간, 기록엔 상봉께서는 물으십시오. 그러니 그대로 물었습니다. 여기 ‘옛날 조사스님들의 진영은 볼만한데, 이 고승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묻자마자, 낭성으로 아주 낭낭한 음성으로 황벽스님이 ‘배휴’하고 이렇게 불렀어요. 그 사람이 배휴요. 성은 배씨고 이름은 휴라. 배휴라하니 천하에 자기 이름을 한부로 부를 사람이 없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조심스럽고 겸손한 분위기에서 그렇게 다시 스님이 설명해 주십시오. 했는데, 배휴하고 가슴에 박히도록 이름을 부르는 거라. 엉겁결에 배휴라는 소리에 ‘예’하고 대답을 해 버렸습니다. 어릴 때 부모가 부를 때 놀래서 대답하듯이 ‘예’하고 연달아서 제삼마처‘어디 있느냐?’ 예하고 대답은 했지요. 어디 있어. 그 말에 딴 대답도 없고공이당하지지라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그 뜻을 알아 차렸다.’ 이게 영원한 숙제입니다. 숙제를 풀어야 됩니다.
우린 다 부르면 대답할 줄 알지요. 부를 줄도 알고 뭐가 들어서 대답할 합니까. 분명히 여기 있는데, 어디 있어요. 뭔가 좀 보여 줘야 될 거 아닌가요. 여기 있는 것까지는 짐작을 했어요. 여기 있는 것 같으면, 컵처럼 여기 있으니 보여 줘야 되는 거죠. 내가 여기 있으면 진짜 나를 보여 줘야 되는 겁니다. 배휴는 보여 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때, 보여 주는 것이고 그 순간 알아차렸어요. 내가 거기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당하에 알았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알아 차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간 그 기분을 표현을 했는데, 왕과 왕위를 계승할 때 상투에 아주 훌륭한 구슬을 얹는데, 마치 그런 구슬을 머리에 얻어 얹어지는 것과 같았다고 했어요. 상투에 올리는 최고의 벼슬을 상징하는 구슬이거든요. 왕위를 상징하는 구슬을 얻은 것과 같았다. 그리고 말하길 우리 스승님은 참으로 진짜 훌륭한 선지식이다. 그런 비밀스럽고 어렵고 극적인 것을 어떻게 사람에게 이렇게 보여 줄 수가 있는가. 어찌 그렇게까지 멋지게 보여 줄 수 있는지. 환하게 보여줄 수가 있느냐. 하골몰어차왈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골몰했던가.’ 그렇게 쉽게 척 보여주는데, 난 그동안 경전 어록 찾아 헤매며 골몰했었던가.
절에 있는 대중들도 모두 놀라고, 그리고 스승 사제가 되면서 계속 와서 공양올리고 법문 청해서 시내 관청에 대중 불러 법문하고, 시간 있는 대로 스님께 오르내리면서 법문을 듣고 중요한 내용은 계속 메모 하면서 전심법요와 완릉록이라고 하는 또 하나가 역사로 남아 있어요. 이 둘은 모두 황벽스님의 법문인데 배휴라고 하는 사람이 모두 기록을 한 것입니다. 멋진 제자를 하나 얻음으로 해서 황벽스님이 세상에 드날리게 되었던 겁니다. 절을 마련해드려 황벽스님이 맘껏 법을 펼 수 있도록 주선을 해 준 분도 배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벼슬도 높지만 거부장자로써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고 그런 인연이 있습니다.
보면 임제스님과 황벽스님도 그랬지요. 처음엔 부처님도 祇園精舍라고 하는 절을 지을 때 祇陀태자와 급고독장자의 因緣으로 給孤獨장자가 다른 곳에 장사하러 갔다가 부처님 만나면서 이런 부처님 훌륭하신 분을 우리고향에다가 절을 지어서 모셔서 사시도록 한 절이 기원정사라 하는 불교역사상에 가장 아름답고 제일 멋진 절. 그 공사감독은 目犍連하고 舍利佛 두 분이 했죠. 알고 보면 그런 아름다운 역사들이 많아요. 후원자들이 역사적으로 보면 많이 있었어요. 후원자가 없으면 안돼요.
다섯 가지 인연을 갖추어야 법을 펼 수 있다. 그랬어요. 첫째는 외호연 - 정치적으로 외호 해 주는 사람. 둘째는 단월연 -시주하는 사람. 배휴 같은 분은 단월연 외호연 다 겸한 사람입니다. 경제적으로도 돌봐주고 벼슬하는 사람이라 외호도 아무 어려움 없이 해 주고. 그 다음에 세째는 납자연 - 아무리 법이 높아도 공부하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지요. 대중들이 모여야 되는데, 뒤에 나오지만 황벽스님 밑에는 천명이 모였다고 했어요. 네째는 - 토지연도 있어야 됩니다. 다섯째는 지역연 - 지역의 인연이 되어야 합니다. 어릴 때는 해인사에 가서 잘 살았는데, 중간에 해인사에 가서 살려고 해도 인연이 다 했는지 통 안 되어 되돌아왔어요. 등등 그런 인연들. 납자연. 단월연. 외호연. 토지연. 도연 이런 인연들을 갖쳐야 됩니다. 부처님이나 과거 훌륭했던 조사스님들 임제스님도 그랬지만 훌륭한 인연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佛法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첫댓글 청비님 傳心法要 녹취를 훌륭하게 잘하셧네요 임제스님은 황벽불법 무다자(無多子)라고 설파 하셧습니다 그거시 말하자면 황벽불법 별것아니라는뜻 임니다 우리는 여기서 눈을 뜨야델것입니다,,,감사합니다,,_()()()_,,
청비님 녹취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여여선당에서 함께 공부하는 수승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_()()()_
傳心法要 大旨 - 유전일심 갱무별법(唯傳一心 更無別法) : 오직 한마음만 전해서 한마음만 가르친다. ※ 대사각활(大死却活) :크게 죽어야 제대로 산다. 죽어야 되거든요. 죽어야 살아요. - (無比) 큰스님 법문 中 -
청비님 언제나 쉼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合掌 올립니다.
마지막 만났을 때, 책을 잔뜩 사고 있던 청비님, 전심법요가 뭐지요? 해서 전심법요가 무얼까, 저도 궁금했지요. 녹취방이 열리길래 청비님이 궁금해 하시던 전심법요를 누가 녹취할까 궁금했구요...역시 목이 마른자 우물을 판다...입니까? 아, 바쁘신 청비님 다 아는데...녹취까지...저는 이제 더이상 게으를 변명의 여지가 없군요!!! 기쁘고 행복합니다. 전심법요가 무얼까, 열심히 살피겠습니다! 바라시던 공부 시작하심을 축하드리고 원만회향을 빌어드리고 그리고 저도 다시 마음을 잡습니다. 감사합니다_()()()_
배휴라는 분과 황벽스님 아름다운 만남이네요. 그런 만남이 있기까지 세세생생의 긴 바램이 있었을거다 생각하니 편안하게 다음이 궁금해질 뿐입니다. 요즘 하는 공부가 모두 경제를 위한 공부다라는 말씀에도 공감하고, 자신이 살아온 내력이 자기 마음지은 대로다 라는 말씀에도 공감하고....미미하나마 자꾸자꾸 두둘기고 흔들어봐야겠다 생각해봅니다..무엇이건 전통있는 곳에서 믿을 수 있는 곳에서 배워야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청비님 감사드립니다._()()()_
_()()()_
이쁜이 청비님! 큰 불사 시작에 큰 박수를 보냄니다. _()()()_
이 세상의 가장 근본이되고 원리적으로 근원과 중심이되며 옷깃과같고 벼리와같고 용마루와같고 뿌리가되는 ...子雖賢이나 不敎면 不明이라, 우리가 비록 어질다고하나 그런 공부를 하지 않으면 밝은 이치를 알수 없음이라. 至要 는 莫如 敎子니라, 지극히 중요한일은 자식을 교육시키는 일만 못함이라...환하게 비추는 진리의 말씀에 감복합니다. 청비님의 정성에 감사드리며 한가지부탁드립니다. 내용과 뜻이 무르익을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주시기를요. 황벽스님과 임제스님, 우리의 큰스님께 _()()()_
청비님! 감사드립니다... _()()()_
그 바쁘신 청비님이 녹취불사 까지?? 고맙습니다..원만회향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_()()()_
일체 중심이되고 뿌리가 되는것을 일깨워주고 계시는 스님께 합장 예배드립니다. 청비님 감사 합니다._()()()_
마음의 도리를 깨우치는 가르침! ... 함께하는 좋은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청비님, 죄송한 마음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진심으로 감사한 마음 전합니다. _()()()_
결정적인 시기에 청비님께서 월간 염화실제2호를 장엄해주시는군요_()()()_
감사합니다.
청비님! 큰 불사의 공덕을 받게 되어 참으로 고맙습니다...사랑합니다._()()()_
감사합니다..._()()()_
_()()()_
_()()()_
()
()
()()()
청비님 감사합니다 _()()()_
()
‘옛날 조사스님들의 진영은 볼만한데, 이 고승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배휴가 이렇게 묻자, 황벽스님이 ‘배휴’하고 부른다. '예'라고 답하자, ‘어디 있느냐?’ 배휴는 그 자리에서 그 뜻을 알아 차렸다. 배휴! 그대는 어디에 있느냐? 배휴!...............
모셔 갑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염화실을 의지처로,,,, 이 좋은 경전공부를 만 중생들이 함께 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근정진하는 불제자가 되겠습니다._()()()_
삼배 올립니다
유전일심 갱무별법(唯傳一心 更無別法)- 오직 한 마음만 전해가지고 다른 법은 없고 한마음만 가르친다.
큰스님 ! 다시 음미하겠습니다. 청비님!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전심법요 또 다른 세계에 한 걸음 내딛습니다. 이런 공부, 이런 가르침 정말 고맙습니다. ... _()_
다른 스님들은 말씀을 아끼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감사합니다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_()_ _()_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
무비큰스님 법문은, 참, 들을수록 감칠맛이 납니다. 여타 강사들 강의와는 정말 다릅니다. 감사합니다. 큰스님. _()_
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