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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불문 (禮佛文)
茶偈(다게)
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
아금청정수 변위감로다
奉獻三寶前
봉헌삼보전
願垂哀納受 願垂哀納受 願垂慈悲哀納受
원수애납수 원수애납수 원수자비애납수
五分法身香(오분법신향)
戒香 定香 慧香 解脫香 解脫知見香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光明雲臺 周徧法界 供養十方 無量佛法僧
광명운대 주변법계 공양시방 무량불법승
獻香眞言(헌향진언)
옴 바아라 도비야 훔.
옴 바아라 도비야 훔.
옴 바아라 도비야 훔.
인터넷상에서 이렇게 강의를 한 것이 상당히 오래된 것 같이 느껴집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또 이런 좋은 기술이 개발이 되어서 이런 것을 우리가 수용하는 동안 더욱 더 시간의 신속함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미리 예고해 드린 대로 오늘은 예불문부터 방송 강의를 할까 합니다. 그동안 법화경을 시작으로 해서 금강경도 했고 그 다음 아주 선으로 내지 선시(禪詩) 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증도가 신심명 그리고 대승찬 아주 수준 높은 내용들을 가지고 강의를 했는데, 아무래도 일반 불자님들이 많이 오시고 그래서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불자라면은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하고 그것이 이루어진 뒤에 법문을 듣든지 기도를 하든지 불공을 올리든지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죠.
그래서 또 이 예(禮)라고 하는 것이 그냥 절만 삼배하는 경우도 있지마는 좀 모양새를 갖추어서 하게 되면은 예불문이라는 것을 외우면서 하게 됩니다. 예불문이라고 하는 글 속에는 우리가 예불을 하는 의미가 담겨있고 또 어떻게 하는 것이 또 바람직한 것인가? 진정 우리가 예불을 하는 데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해야 하는가 하는 이러한 것들까지도 다 포함되어 있어서, 그래서 이런 기회에 또 이것도 짚고 넘어가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평소에 했습니다.
강원에 스님들에게도 설사 사교(四敎)를 공부하고 대교(大敎)를 공부한다 하더라도 이 예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못할 경우는 저는 어떤 반을 분별하지 않고 그 예불문을 일단 강의하는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 예불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하고 쉬운 일이라면 쉬운 일이지마는 또 알고 보면 그 속에 불교의 모든 가르침이 다 포함되어 있고, 또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이 간단한 예불문 속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마침 우리 친불회 회원분들의 법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창에는 57명이 염화실에 동참을 해서 이렇게 듣고 계시지마는 또 강의하는 저의 방에는 또 친불회 회원 분들이 오셔서 이 예불문 첫 강의에 동참을 하고 계십니다. 아주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불문 내용은 너무나도 잘 아시죠. 참고하라고 자료실에 올려놓은 내용도 있었고 또 불자라면 아침 저녁 예불은 설사 참석을 못했다손 치더라도 , 낮에 아마 불공(마지) 올릴 때는 참석을 많이 하셨을 거예요. 아침 저녁 예불과 낮에 불공을 올릴 때 하고 다른 구절이 몇 몇 가지가 물론 있습니다마는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또 요즈음은 신심 있는 신도님들은 사찰에 가서 아침 예불 저녁 예불에 참석하는 이들도 아주 상당히 많아요. 포교당이 또 시중에 많이 생겨가지고 포교당에 가서 예불을 함께 하는 그런 예들도 많고 해서 우리 불자들에게 거의 일상화가 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익히 아는 내용이고 또 평소에도 예불에 많이 참석하는 그런 분들이라 생각하면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고 새삼스럽지 않아서 좋다 하는 그런 생각도 합니다. 우리 예불문을 들여다 보면은 처음에 부처님께 예불을 하는데 오분 법신향을 가지고 먼저 하는 그런 사찰도 있고 참고하시라고 한 내용에 보면은 “다게” 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녁 예불에는 하지 않는데 아침 예불에는 꼭 이 다게를 먼저 하는 그런 사찰이 또 적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다게를 먼저 설명을 하면은 글자 그대로 차 다(茶)자 게송 게(偈)자입니다. 근래에는 다도에 대한 그런 관심들이 상당히 고조되어 있어서 저의 염화실에도 밑에 다도라고 하는 란을 만들고 거기에 차에 대한 이런 저런 상식과 여러 가지 사진들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올리기도 합니다마는, 본래 부처님께 올리는 것이 차를 다려서 올려야 하는데 일일이 차를 다려서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맑은 물을 올리면서 “이 맑은 물이 아주 훌륭한 차가 되어서 삼보 전에 올리오니 삼보님께서는 이것을 좀 받아 주십시오. 그리고 자비로서 받아 주십시오.” 하는 그런 마음이 담겨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차 다(茶)자 게송 게(偈)자이죠. 그래서 다게 이렇게 합니다.
다게는 외우지 않고 “아금 청정수”부터 하죠.
‘아~ 금~ 청정수~~’ 하고 이렇게 아주 범음으로 뽑아서 그렇게 합니다. 이런 예불문 소리는 곳곳에 많이 올려져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아주 청정(깨끗)한 이 물로서 부처님께 올리는데 이것이 변하여 감로 차가 되어 주십시오. 감로 차가 되어서 삼보님 전에 봉헌합니다.” 그랬어요.
감로차(甘露茶)! 그냥은 달 甘자 이슬 露자 해서 감로차, 아주 단 이슬 같이 맛있는 그리고 아주 깨끗한 그런 차를 상상하기 쉽습니다마는, 이것은 사실은 깊은 뜻을 우리가 생각해 보면은 부처님의 법을 감로법문 그렇게 하고 감로는 불사약이다 이렇게 합니다. 사실 감로라는 말 속에는 불사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어요. 맛이 달다 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 해탈한 그런 죽음이 없는 불사예요. 아닐 不자 죽을 死자 그런 죽음이 없는 생사해탈의 법문 그런 의미가 바로 감로차입니다.
우리가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는 이런 간단한 의식임에도 불구하고 불교궁극의 의미가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이죠. 불교 궁극의 의미는 사실은 이고득락(離苦得樂)! 모든 인간의 고통을 떠나서 편안한 즐거움을 얻자고 하는 것이라면 그 고통은 많은 고통이 있겠지만 가장 극심한 고통은 죽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죽음의 고통까지도 다 벗어나서 해탈을 얻도록 한다. 그것이 불사약(不死藥)! 불사의 법문 감로법문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차 한 잔을 올리면서 아니, 아직 차가 아닌 청정수 한 그릇을 올리면서 그와 같은 원대한 마음을 갖고 부처님께 예배를 올린다 하는 것입니다.
사실 부처님께 예배 드리는 사람들의 뜻과 마음은 각양각색이겠습니다마는, 부처님이 바라는 바는 모든 중생들이다 생로병사의 고통을 벗어나서 열반락(涅槃樂)을 누리도록 하는 그런 마음이 부처님 마음입니다. 우리 중생들이야 조그마한 그런 자기의 소원과 꿈을 가지고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지마는, 예배를 받는 부처님은 저 많은 중생들이 궁극적으로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서 정말 열반이라고 하는 그런 영원한 락을 누렸으면 하는 그런 바램이 있기 때문이죠.
奉獻三寶前
봉헌삼보전
우리가 올리는 청정수가 감로의 차,
불사의 법문이 되어서 삼보 전에 이렇게 봉헌하오니
願垂哀納受 願垂哀納受 願垂慈悲哀納受
원수애납수 원수애납수 원수자비애납수
“원컨대 아주 애석하고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받아들임을 두리우소서!”
문자 직역을 하면 그렇습니다마는
“원컨대 연민의 마음으로 저희들이 올리는 이 차를 받아 주소서!”
“원컨대 자비심과 연민으로서 저희들이 올린 이 차를 받아 주십시오.”
원수애납수 원수애납수 원수자비애납수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이제 계행 정향 들어가는 그런 예불 형식도 있지요. 그 다게를 빼고 계향 정향부터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
戒香 定香 慧香 解脫香 解脫知見香은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五分法身香(오분법신향)이다. 또 오분향례라 이렇게 하는데
이 다섯 가지의 향은 불교 내용의 가르침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계(戒) 정(定) 혜(慧) 이것을 삼학(三學)이라 그러죠. 불교는 한마디로 표현할 때 삼학입니다.
해탈한 사람으로서의 소견이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해탈하게 하는 거죠. 해탈지견이라는 것이 간단합니다. 이것이 모두가 이 세상을 청정하게 하고 오염된 세상을 맑히고 악취를 제거하고 또 잘못 어떤 세속적인 그런 오염된 냄새에 찌들려 마취가 되어, 정신을 못 차리고 취생몽사(醉生夢死) 하는 모든 중생들에게 이 오분법신향의 향기를 맡고 모든 위몽(爲夢) 에서 깨어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어서 그래서 香자를 붙입니다.
이 향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사찰에서 잘 쓰는 것이고 으레히 예불할 때는 향을 올리죠. 또 신도님들이 사찰에 갈 때는 향촉?이라 해서 향이나 초를 가지고 가서 부처님께 촛불을 키고 향을 피웁니다마는, 사실은 지금은 우리가 부처님께 한 개의 향기 나는 그 향을 올리자고 하는 것은 아니 예요. 그 향을 올리는데 사실은 오분법신향의 의미를 담고 올리는 것입니다.
불교는 사찰에 들어갈 때 예를 들어서 계단 하나라 하든지 또 들어가는 길목에 이런 저런 문! 일주문이니 천왕문이니 이런 건물 하나에 이르기 까지, 전부 그런 건물과 계단의 의미를 깨달아서 정말 우리들 마음의 법문으로 삼아라 하는 그런 뜻에서 설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단도 예를 들어서 여섯 계단을 해도 좋을 것을 다섯 계단을 한다든지, 또는 오십 계단을 해도 좋을 것을 사십 팔 계단을 한다든지 불교의 어떤 건물이나 시설물에는 이런 어떤 상징성이 아주 뛰어나죠. 그래서 향도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의 오분법신의 의미를 마음에 새긴다면 그 사람은 이미 자기 자신에게 향기로서 정신을 정화하는 그런 의미가 되는 거죠.
우리가 세속적인 어떤 정신에 찌들려 가지고 혼탁해있다든지 취해있다든지 이렇다면은 바로 이 사찰에 우리가 와서 참배를 한번 하고 절 한번 하고 또 경전 한 구절을 읽고 하는 그런 일 자체가, 이미 우리들의 정신을 훌륭한 향기로서 정화하는 일이 안되겠습니까? 아무리 나쁜 냄새가 나더라도 좋은 향을 피우면 바로 정화가 되듯이 바로 사찰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다섯 가지 향보다도 우수한 향은 이 세상에 없다 그래요. 그래서 오분향례(五分香禮) 그리고 오분 법신향(法身香)! 진리의 향이다 그런 뜻이죠.
계향(戒香)
계향이라는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어떤 기본적인 질서 윤리 도덕 이런 것들이 戒입니다. 좀 더 거기서 전문적으로 들어가면은 불교에서 말하는 오계(五戒) 십계(十戒) 또 팔계(八戒) 십중대계(十重大戒)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 그 다음에 출가인들 만이 해당 되는 이백오십계(二百五十戒) 삼백사십팔계의 이런 등등의 아주 세부조항들이 많고 더 나아가면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 이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숫자가 세부 조항으로 되어있습니다마는 그것을 한 마디로 묶어 말하면은 어떤 윤리와 도덕 그리고 질서 이런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어떤 모양새를 갖추는 그런 일이기도 한 것이 바로 이 계이기도 하죠. 아무리 자기가 훌륭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상황에 모양새가 아니면은 그것은 또 계 일수가 없는 것이죠.
계는 사실은 선계(先戒)가 있고 차계(次戒)가 있는데 선계는 본래 우리가 지켜야 할 어떤 계가 있는가 하면, 대개는 차계! 어떤 상황에 따라서 방편으로 시설된 것이 차계라고 하는데 막을 次자 이죠. 그것이 거의 99%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거의가 방편이죠. 그래서 자기가 아무리 모범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상황에 안 맞을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면은 그것은 오히려 계를 파하게 되는 것이고 계를 가지고 우리가 이야기를 하기로 하면 참 그것만 가지고도 아주 이야기가 깁니다.
흔히 우리 불자들이 많이 받는 오계 그리고 또 십중대계 하고 사십팔계 소위 보살계라고 하는 거죠. 그런 것들은 설사 우리가 다 치키지는 못한다손 치더라도 그 내용이 어떠한가? 이런 것들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그런 내용이죠. 불교에서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소위 불자들이 지켜야 할 윤리 도덕이라고 할까? 또 출가한 승단에서 반드시 지켜야 윤리 도덕이라고 할까 그런 것들도 한번 알아보면은 좋습니다. 그런데 戒자 이것 하나는 꼭 짚고 넘어가야 되는데
그래서 초발심자경문에 보면은
受五戒十戒等하야 善知持犯開遮니라
수오계십계등 선지지범계차
“오계와 십계등을 받아서 잘 가지고 범하고 열고 막을 줄 알지니라.” 가질 줄만 알고 범할 줄 모르면 안 된다는 거예요. 범할 줄도 잘 알아야 된다 하는 그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방편은 어디까지나 방편이기 때문에 그 방편에 얽매여 있으면 오히려 계를 지키는 것이 계를 파하는 것이 된다. 그런 이야기들도 많고 그런 가르침이 아주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거짓말 같은 것은 살생보다는 가볍죠. 그래서 가벼운 계는 범하더라도 큰 계는 지켜야 한다는 이런 이야기들도 있고, 예를 들어서 사냥꾼이 노루를 쫓아왔는데 나뭇군이 노루가 가는 방향을 알았지마는 그 사냥꾼에게 다른 방향으로 갔다고 이렇게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루의 생명을 살릴 수가 있는 거죠. 이런 경우는 거짓말이 오히려 크게 계를 잘 지키는 경우가 된다. 우리 불교에서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아주 잘 가르치고 있습니다.
戒자를 보면 글자가 중국 한자 글자지만은 쭉 울타리를 길게 쳐놓고 거기에 창을 들고 지키고 있는 그런 형상의 글자입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어떤 큰 회사로 치면 수위가 무슨 잡상인 들여보내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아주 크게 회사에 큰 거래를 틀어줄 사람인데, 예를 들어서 잘 못보고 막아서 들여보내지 않았다 하면은 이것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회사에서는 큰 손해이죠.
거기에 창을 들고 지키는 이것이 말하자면 큰 회사로 치면은 계라는 것이 마치 그와 같이 융통성이 있어야 된다. 아무나 못 들여 보내서도 안되고 또 아무나 들여보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이것을 제대로 지키려면 현명해야 되고 지혜가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런 점들이 현명하고 지혜로웠을 때 비로소 계로서 향기가 나는 것이지 잘 못하면 향기는 고사하고 썩은 냄새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량한 그런 계 조항을 아주 자기 딴에는 철저히 지킨다고 너무 상을 내거나 냄새를 피우거나 하면은 향기는 고사하고 썩은 냄새가 나는 예들도 많지요. 그러나 우리는 일단은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그 다음에 범하고 트고 열고 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죠. 지키기도 전에 트고 여는 것부터 생각 한다면은 그것은 또 앞 뒤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지키지도 않는 사람에게 트고 여는 것부터 이야기하면 그것도 안 되는 일이죠. 또 계에 대해서 다른 기회에 길게 이야기할 그런 기회가 있으면 또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다음에
정향(定香)
정향은 선정(禪定)이라고도 하고 안정이라고도 하고 이런 것인데 이것은 어떤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불교 수행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오늘 강의를 공부를 듣고 간단한 이런 일도 마음이 안정이 돼야 공부가 들어갑니다. 마음이 안정이 되도록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죠. 그래서 마음이 안정이 되도록 하려면은 사실은 미리 준비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전화도 좀 꺼놓고 또 어떤 일도 있으면은 할만한 것은 다 정리를 하고 삼십 분이 걸릴지 사십 분이 걸릴지, 그 걸리는 시간을 대충 계산을 해서 그 동안은 집안 식구들도 좀 조용히 있으라고 한다든지 이렇게 미리 준비를 잘 하는 이것이 사실은 계향이 예요. 그래야 최소한도 삼 사십 분 안정된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되는 거죠. 그것이 정향입니다. 그랬을 때 한 삼 사십 분은 그래도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지혜가 생기는데 그것이 혜향 이죠.
慧香(혜향)
이것을 좀 더 깊이 있게 설명한다면은 계는 정말 우리 마음에 동요가 없는 것이고, 동요가 없도록 모든 조건을 갖추는 것이고 그러면 저절로 마음은 안정이 되고 선정이 이루어지겠죠. 그 다음 선정이 잘 이루어지면 지혜는 저절로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물결로 비유한다면 바람이 불지 않도록 한다든지 물이 흐르지 않도록 한다든지 물이 조용히 있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戒다. 그러면 시간이 가면 저절로 물은 안정이 되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물이 안정이 돼서 시간이 흘러가면 결국은 이제 구정물은 다 가라앉게 되는 것이고 출렁거리게 되던 물도 가라앉게 되는 것이고, 거기에서 나무 그림자라든지 새가 날아간다든지 하면 새의 그림자라든지 우리가 가서 얼굴을 비춰도 그 얼굴도 잘 나타날 수가 있고, 또 물 밑에 돌이 있다든지 고기가 논다든지 하는 것도 환히 나타날 수가 있게 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혜향인데 우리 마음을 비유하자면 그와 같은 거죠.
어떤 일이 있는데 그 일의 선후도 알 길이 없고 마음이 그냥 뒤흔들려 가지고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 줄 모르고 그러면, 벌써 그것은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에 마음이 안정이 안돼 있다 하는 뜻입니다. 마음이 안정이 왜 안되어 있는가? 온갖 주변과 정신 상태를 어수선하게 해 놓았다는 뜻이죠. 그것이 계가 제일 안되어 있다는 뜻이고 계가 안되어 있으므로 마음이 안정이 안되고, 안정이 안되므로 해서 공부도 안 들어 가고 공부 하려고 해도 안 들어 가고, 또 어떤 일이라면 일에 대한 선후와 앞뒤에 어떤 해결책이 도대체 보이지가 않는 거죠.
그래서 계향 정향 혜향 이것은 불교 수행에 있어서 아주 요체이지만 일상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그런 가르침입니다. 이것을 사업을 한다든지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한다든지 뭐 가정을 하나 꾸미는 일에 까지더라도 이것을 적용시켜서 활용을 하면은, 아주 여러 가지로 잘 활용이 될 수 있는 그런 세 가지 좋은 덕목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런 좋은 지혜를 가지고 결국은 무엇을 하자고 하는 것인가 하면은 해탈하자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 다음에 해탈향입니다.
解脫香(해탈향)
이 해탈은 모든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첫째 해탈이고 그 다음 나아가서 삶과 죽음, 생사문제까지도 벗어나는 이것이 불교 궁극의 해탈인 것이죠. 일체 고통에서 벗어나고 그 고통이 아주 궁극적 고통인 삶과 죽음의 고통까지도 벗어나는 그것을 불교에서는 해탈이라고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解脫知見香(해탈지견향)
해탈지견이라고 하는 것은 해탈한 사람의 지견(지혜), 해탈한 사람의 안목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다른 사람도 해탈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노력과 원력이 해탈지견입니다.
이 다섯 가지 어떤 우리 마음가짐이나 또 여기에 대한 관심 여기에 대한 우리의 정진과 노력 이것을 위한 우리의 공부와 정진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더 이상의 좋은 향기가 될 수가 없습니다. 최고의 향기가 되는 거죠. 이런데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가 산다면 우리 정신 속에 무슨 오염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향기라고 하는 거죠. 우리 정신세계에 아주 정말 멋진 향기를 풍겨서 살아오면서 숱한 그런 업과 인연에 의해서 오염이 돼서, 독한 냄새를 설사 풍긴다 손치더라도 돌아서서 우리가 이런데 관심을 기울이고 여기에 정진을 한다면은, 그 순간 바로 정말 좋은 향기로서 우리의 정신을 정화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음식 냄새가 아무리 진하게 난다 손치더라도 좋은 향을 하나 피워버리면은 그 음식 냄새는 간 곳 없이 다 사라져버리는 그와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이치를 알고는 사실은 부처님 앞에 사실은 향을 아무리 피워도 좋지만은 이런 뜻을 모르고 피운다면 한 개의 향도 많은 것이죠. 그런데 향을 하나씩 피우는 정도가 아니라 한 묶음씩 피우는 그런 예들도 많습니다. 부디 좀 향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가지고 물질의 향을 설사 피우지 않더라도 우리 마음의 향! 간단합니다. 우리 마음의 향이 무엇이냐? 얼른 생각하면 애매모호 하지만은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입니다. 여기에 대한 정진과 관심과 공부가 그대로 마음의 향이죠. 그 다음
光明雲臺 周徧法界
광명운대 주변법계
이러한 향기가 모두 저기 높이 떠 있는 구름과 같이 그렇게 높이 떠서 비추는 그런 빛이 돼 가지고서 온 세상에 두루 하여 지이다.
周徧法界
주변법계
법계에 두루두루 하여 지이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이것이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나 혼자만의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옛날에 구름만 하더라도 얼마나 높습니까 구름 달 태양 이것이면 끝이죠. 그러니까 “높이 떠서 온 세상을 비추는 그런 광명이 돼 가지고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서 그것이 결국은 시방무량불법승에게 공양 하여 지이다.” 그런 뜻입니다.
供養十方 無量佛法僧
공양시방 무량불법승
여기는 우리가 부처님께 예불 드리는 그런 입장으로 보기 때문에 불법승, 시방은 잘 아시죠. 사방(東西南北) 사유상하(四維上下) 이것이 시방인데 무량불법승 하면은 우리가 부처님과 모든 깨달은 분과 깨달은 분들의 가르침과 그리고 깨달은 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승가(僧伽) 라 그래요. 이것이 이제 출가한 승려만 승가가 아니고 대승불교 입장에서는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승가(僧伽) 승단(僧團) 그래요.
그래서 승가 하면은 비구 비구니가 있고 우바새 우바이가 있고 그렇습니다. 출가한 남녀가 있고 재가한 남녀가 있고 또 심지어는 출가 승 재가 승 그래요. 보통 신도들을 그냥 신도로 보지를 않고 격상시켜서 재가 승 그럽니다. 세속에 사는 승려, 승가 단체다 이것입니다.
사실 출가했다고 꼭 훌륭한 부처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죠. 자기의 마음가짐과 생활 자세가 어떠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무슨 사찰에 산다 머리를 깎고 산다. 먹물 옷 입고 산다. 세속 옷 입고 산다 여기에 껍데기 가지고 그렇게 우리가 중요하게 여길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 때부터도 대승적인 그런 관점에서 불교단체 전체를 승가 승단 이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 僧자는 단순한 출가 승만을 그렇게 지칭하는 그런 좁은 의미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잘 못된 것이죠. 특히 대승불교 권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다 이 승단에 속합니다.
여기까지 보면은 어떻습니까?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오분법신향 이것이 그대로 팔만대장경을 함축해 놓은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을 요약해 놓은 것이라면 그대로가 불교의 진수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부처님이나 어떤 조사스님이나 어떤 보살이더라도 이 다섯 가지 덕목에 벗어나 있는 가르침을 펴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이 다섯 가지 내용 속에 다 포함되었죠. 계의 문제가 아니면 선정의 문제요, 선정의 문제가 아니면 지혜의 문제요, 그 다음 해탈의 문제요, 그 해탈을 많은 사람들에게 함께 공유하자고 하는 그런 원력과 그런 보살행의 문제고 그렇습니다. 그것이 크게 확대되고 부연 설명을 하다 보니까 팔만대장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향을 부처님 전에 올립니다. 그러니까 향 하나 척 올리면서 이러한 의미를 담고 올리고 이러한 의미를 하나의 향을 꽂는데 다 거기다 포함시켜서 우리가 표현하는 거죠. 이 깊고 넓은 의미를 한 개의 향을 꽂으면서 다 표현하자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헌향진언” 그래요.
獻香眞言(헌향진언)
향을 올리는 그런 진언이다.
진언이라는 그런 말이 많이 나오는데 진언, 주문, 다라니 이것이 같은 뜻입니다. 혹은 진언이라고 하고 혹은 다라니라고 하고 혹은 주문이라고도 하고 그러는데 이것은 대개 번역하지 않고 많이 소개 되죠. 왜냐하면 그 속에 깊은 뜻이 담겨져 있어서 번역 하면은 뜻이 줄어든다거나 뜻을 다 나타내지 못한다 그래서 번역을 안 하는 예들이 많습니다. 반야심경에도 “아제 아제 바라아제”도 있고 또 천수경에 특히 진언이나 주문 이런 것이 많지요. 그래서
오종불번(五種不飜)의 원칙이다
다섯 가지 번역하지 않는 그런 원칙이 있다.
고유한 어떤 이름들은 중국에도 없고 한국에도 없고 일본에도 없으니까 번역 못하고 인도 말 그대로 옮겨오는 것과, 또 뜻이 깊어서 한 가지 말로 번역하니까 뜻이 너무 줄어들기 때문에 그래서 또 옮겨오지 못하는 것 등등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조금 해석을 하면은
『옴』
지극한 찬탄의 뜻과 함께 이것은 어떤 무서운 그런 상대가 오더라도 이『옴』을 크게 소리지르면은 거기에 굴복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이렇게까지『옴』자를 설명합니다. 또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문이 이『옴』자에서 나왔다 그러기도 해요. 그래서 이『옴』자를 설명하는데 보면은 몇 페이지를 설명하고 있을 정도로『옴』자에 대한 뜻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까『옴』진리교도 나와 가지고 세상을 어지럽게 하기도 하고 그런 예도 있습니다마는,『옴』은 참 정말 진언중의 왕이고 밀교 계통에서는『옴』보다 더 위대한 법문은 없다. 모든 부처님의 법문이 전부『옴』에서 나왔기 때문에『옴』하나만 해도 팔만대장경을 다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까지 표현을 합니다. 또 진언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밀교 쪽에서는 그 나름의 그런 교리가 있죠. 그 다음에
바아라
“바아라”는 금강이라는 뜻입니다.
바즈라 라고 하면 빨리 알아듣지요. 그런데 바즈라가 바아라로 또 옮겨 쓰게 되었습니다. 인도 말을 중국에서 비슷한 한자로 쓰다 보니까 표기를 했는데 그것을 중국식으로 발음하지 않고 우리 식으로 발음한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그야말로 족보도 없는 발음이 돼버렸습니다. 도대체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인도 음에 가까울 텐데 우리 식으로 발음 한다든지 일본 식으로 발음한다든지 하면 얼토당토 않는 발음이 돼 버려요. 그러나 이것이 한자로 번역을 해 와서 또 우리가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고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 하면 “바즈라”인데 “바아라”로 돼 있습니다. 금강, 다이아몬드라는 뜻입니다. 또
도비야
도비야는 “소향존(燒香尊)” 그런 뜻입니다. 향을 사르는 분
‘도비’가 이제 “소향존” 『야』는 ‘에게’ 그런 뜻입니다. 금강 소향존에게 그런 뜻입니다. 바아라 도비야 까지가 금강 소향존에게, 금강은 이 세상 모든 그런 견고한 것도 이 다이아몬드 앞에는 다 잘려 나갈 수 있듯이 이 오분법신향의 이 향기에는 어떤 오염된 정신도 다 깨끗하게 정화될 수 밖에 없다. 그와 같이 향을 올리면서 다이아몬드 금강 소향존이라고 이렇게 높이 평하는 거죠. 그 다음
『훔』
『훔』자는 “이구청정(離垢淸淨)”이라고 그렇게 번역하는데 여읠 離자 때 垢자 이구청정이라 그렇게 합니다. 왜 여기『훔』자가 들어와서 이구청정이 되느냐 하면은 우리는 여러 가지로 오탁악세(五濁惡世)에 살면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과 팔만사천 번뇌로 흐려져 있고 혼탁 되어 있고 오염되어 있고 온갖 냄새로 찌들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오분법신향을 피우므로 해서 그 ‘때’가 다 떠나고 깨끗해진다. 그래서『훔』자를 쓰는 거예요.
그래서 옛날 스님들이 범서를 다른 글자『옴』자는 못써도『훔』자 하나는 쓰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행을 하다 보면 절에서 먹지 않던 음식을 많이 만나게 돼요. 심지어 상한 음식도 먹게 되고 오염된 음식도 먹게 되고 다른 수행자가 먹어서 안될 음식도 만나게 되고 그렇습니다. 그럴 경우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옛날같이 긴 여행을 할 때 어디 가서 어떤 음식을 만날 줄 모르죠. 그럴 때는 음식에다 대고 관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훔 자 하나를 씁니다. 이렇게 마음을 담아서『훔』자 하나를 쓰면 그 음식이 무슨 음식이든지 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된다.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옛날에 만행을 떠날 때 꼭 범서로『훔』자 하나를 쓸 수 있도록 가르치고 또 그것은 일찍이 훔 자 하나는 쓰도록 돼 있습니다. 그것이 이구청정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렇게 쓴다고 해서 청정해지는지 어쩌는지 그것은 그 사람 마음가짐에 달렸죠. 우리 마음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마음만 제대로 모아진다면 어떤 일도 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잘못된 음식도 다 청정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위력이『훔』자 안에 담겨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왜 이 짧은 예불문 속에 진언이 한 마디씩 들어 있는가? 이것이 우리 나라 불교의 특색입니다. 불교가 소승불교에서 초기 대승불교 중기대승불교 후기대승불교 이렇게 넘어오면서 북쪽으로 보면은 티베트나 그 쪽으로 특히 밀교가 발달이 많이 되었어요. 그런데 남쪽에는 밀교성향이 전혀 없고 대승불교로 발전하지도 않았습니다. 태국이라든지 스리랑카라든지 이런 소위 남방불교라고 하는 데서는 대승불교도 들어가지 않았고 밀교적인 것은 더욱 없고 선불교도 물론 없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이나 한국 이쪽으로는 대승불교가 들어오면서 밀교도 섞여서 들어왔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가만히 보면은 밀교적인 성향이 상당히 많습니다. 내가 보기에 한 30%는 밀교적인 성향이라고 보아져요. 선불교 선 불교 하지만은 사실은 밀교적인 성향이 아주 농후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예불 하는데 그런 밀교적인 냄새가 나는 진언이 들어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천수경이라고 하는 것이 밀교적인 경전인데 불교 모든 의식 속에 천수경을 하도록 돼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 불교의 어떤 특색이고 또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불교의 공통점이기도 하는 그런 내용이기도 합니다.
오늘 첫 시간인데 시간이 많이 경과되었습니다. 오늘 아주 많은 분들이 첫 시간에 동참하셔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여기 동참하신 분들 이름을 다 일일이 불러드리지 못하겠네요. 86명이 지금 창에 들어와서 동참하고 계십니다. 나중에 기록하는 분들이 이런 것들 좀 기록해서 올려주시고 또 강의는 제 방송으로 들으실 수 있도록 다른 분들이 또 준비해서 올려놓겠습니다. 월화수목 일주일에 4일간 강의하도록 그렇게 계획하고 있습니다. 혹 무슨 다른 일이 있으면 중간에 또 휴강이 있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휴강이 있게 되면은 게시판에 늘 공고가 나갈 테니까 잘 보시고 차질 없으시기 바라고 오늘 강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일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불문 제1강 녹취시범: 인터넷전법도량 염화실 공인元祖녹취전법행자 無影樹님]
좋은 깨우침 감사합니다 _()_
좋은가르침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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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_()()()_
고맙습니다._()()()_
알고 싶었던 내용을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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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대단히 필요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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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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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스님 큰 절 올립니다.
감사합니다_()_
법문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_()()()_
새 맘으로 다시 한번 더 잘 듣고갑니다~
감사합니다._()()()_
인터넷으로 라도 강의를 듣게되어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히 듣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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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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獻香眞言,,, 옴 바아라 도비아 훔
감사합니다. _()()()_
깊은가르침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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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어제 외출했다가 돌아오면서 <화계사 불교대학 학생모집>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이제 더이상 미루지 말고 차근차근 공부해봐야겠다고 발심하고 오늘부터 예불문을 듣습니다. 역시나 좋습니다^^ 계정해....마음을 차분히 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 놓고 공부를 한다...그러면 지혜는 생긴다....
옴 바즈라 도비야 훔 옴 바즈라 도비야 훔 옴 바즈라 도비야 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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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보살..._()()()_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고맙습니다()()()
이곳의 강의를 들으며 스님의 책을 참고로 보며 독학을 해도 될 수 있어서 좋을듯 합니다.
관세음보살~~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스님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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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