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호선
출연: 장미희(윤심덕), 임성민(김우진), 이경영(홍난파),
1926년 여름 경성. 윤심덕의 자살을 알리는 호외에 윤심덕과 김우진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던 홍난파는 절망적인
기분에 사로잡히며 그들의 진실을 알고 있는 친구로서 윤심덕의 과거를 회상한다. 1920년 봄 동경. 관비장학시험을
치르고 온 가난한 유학생으로 동경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있는 윤심덕은 당당하고 밝은 성격으로 뭇 유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거침없이 자유분방한 생활을 한다.
3.1운동의 여파로 한창 타오르던 독립 운동이 일본의 무자비한 압력으로 뿌리채 거세될 즈음, 뜻있는 유학생들은
여름방학을 이용해 조선을 순회하며 운동 자금을 마련할 공연을 계획한다. 이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람
중엔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적을 두고 있던 김우진도 끼어있다. 공연 연주를 담당했던 난파의 소개로 윤심덕은
이 공연의 유일한 여성 참가자가 된다. 그리고 김우진과 윤심덕의 운명적인 조우가 이루어진다. 한편, 유학생들의
움직임을 경계한 일본 경찰은 청년 회관을 기습하여 노동자를 색출하고 유학생들을 검거하려고 한다. 윤심덕과
난파는 졸업 공연 연습이라는 명목을 둘러대며 즉흥적인 무대를 만든다.
열정적인 윤심덕의 재스츄어와 음성으로 아무런 결정적인 꼬투리를 잡지 못한 일본 경찰은 물러나고 김우진은
새삼스럽게 윤심덕의 존재를 의식하고, 심덕또한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냉정한 이성으로 동료들을 이끌 왔던
김우진의 깊이를 느낀다. 김우진의 초청으로 심덕과 난파는 우진의 집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심덕은 자신에게
요구하는 장손의 무게와 새로운 가치관을 요구하는 밖의 바람을 자신안에 가두고 싸우고 있는 우진의 방황하는
마음에 길을 만들어 주고자 결심하며 자기에게서 떠난 사랑을 느끼게 된다. 가난한 집안을 이끄는 윤심덕은
자신을 혹사하며 이곳 저곳의 무대에 끌려 다니지만 성악가를 기생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윤심덕의
가창력보다는 미모와 재스츄어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중 일본인 파티를 거절한 이유로 심덕은 무대와 사랑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그녀의 재능보다는
사생활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로 인해 점점 술에 젖는 생활에 빠져든다. 홍난파는 윤심덕을 다시 무대에
복귀시키려 애쓰지만 윤심덕은 재기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김우진도 신극을 이해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낙향을 하게 되고 가문을 지킨다는 것에 의미를 잃어가고 결국 오래된 종가를 등지고 집을 떠난다. 김우진은
자신의 젊음을 정리할 생각을 하고 예전에 윤심덕과 갔던 북해도의 여관으로 간다. 그곳에서 윤심덕을 만나고
서로의 시선속에서 끝까지 와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본다. 우진은 마지막 시편과 희곡을 조선의 친구에게
부치고 참혹하고 절망적인 사랑속에서 목숨의 마지막을 다한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그들의 죽음을 에워싼다.
일제하 가부장제가 철저하던 1920년대의 신여성으로 자유연애의 선구자였으나 끝내 현해탄에 투신해야 했던
비련의 여가수 윤심덕의 일대기를 조명한 시대성 멜로 영화. 1919년 우리나라 최초의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간 윤심덕은 동경 음악 대학에 적을 두고 야망을 불태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유 분방함과 넘치는
매력으로, 그녀 주위에는 항상 연모의 눈길을 보내는 남학생들이 있다. 그러던 중 윤심덕은 유학생들이 결성한
극예술협회의 중심 인물인 김우진과 만난다. 와세다 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하던 그는 고향에 아내와 딸을
둔 유부남이었다. 불같은 성격으로 거침없는 윤심덕과 나약하고 섬세한 김우진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져들고, 홍난파는 윤심덕을 사랑하지만 깊은 우정으로 두 사람을 대한다. 제30회(91년) 대종상 우수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장미희), 제12회(91년) 청룡상작품상, 남우주연상(임성민), 여우주연상(장미희),
제2회(91년) 춘사영화예술상 작품상, 여우주연상(장미희), 제37회(92년서울) 아태영화제 여우주연상(장미희)
실존 인물인 이 영화의 주인공인 윤심덕(1897~1926)은 여가수로 1918년 경성여고보 졸업하고, 총독부
관비생으로 일본에 가서 도오껄오(동경) 음악학교에 유학, 성악을 전공했다. 귀국 후 경성사범부속학교 음악
선생으로 근무하면서 성악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후 토월회 배우로 활약하다가 유행가 가수로 전향,
특히 "사의 찬미"라는 노래로 인기가 높았다. 26년 일본에 다녀오다가 애인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투신, 정사했다.
'사의 찬미'가 만들어진 1991년은 소위 70년대 트로이카(유지인, 정윤희, 장미희) 시대가
막을 내린 이후입니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국내 영화계의 부동의
트로이카 시대를 이끈 이 세명의 배우들은 장미희의 도미, 유지인, 정윤희의 결혼으로
막을 내리게 되죠. 이후 정윤희는 완전 은퇴, 유지인은 꽤 오랜동안 연예활동을 중지하지만
장미희는 3년만에 귀국하여 황진이로 복귀하면서 다시 영화출연을 재개합니다.
그리고 1991년 '사의 찬미'라는 대작을 완성합니다.
'사의 찬미'는 배우 장미희에게는 많은 것을 얻게 해준 작품입니다. '대종상' '청룡영화상'은
물론이고, 아시아태평양 영화제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받게 되죠. 이 영화 한편으로
수많은 상을 수상했고, 당시 34살의 아직 한참 활동할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사실상 이 영화는 '젊은 인기여배우로서의 장미희'의 화려한 영화인생의
종지부를 찍은 듯한 작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2년뒤 '사랑 그리고 이별'이라는 작품과
95년 애니깽, 그리고 97년 '아버지'라는 영화가 그 이후 출연한 영화의 전부였으니까요.
사의 찬미로 호평을 받았으면 사실 '제 2의 전성기'를 누릴 만도 했는데 이후 오히려
활동이 줄었다는 것은 아마도 '사의 찬미'로 인하여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그만큼 지금 시점에서 볼 때 160분짜리 대작인 시대극 '사의 찬미'는 단연 장미희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볼 때도 그녀의 전성시대인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의 작품중 이만한 영화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되거든요.
장미희 뿐만 아니라 '김호선'감독에게도 최고의 작품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 영화는 한국영화의 분위기와 기술이 업그레이드 된 90년대의 작품치고는
다소의 투박함과 고전적인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장미희의 원숙한 연기와
임성민, 이경영, 김혜리, 신충식, 조민기, 김성수, 조선묵, 강계식 등 신구를 막라한
다양한 배우들의 호연과 거대한 제작비, 적절한 픽션을 살린 각본 등 투자한 만큼
꽤 볼만한 작품이었습니다. 30대를 넘어선 장미희는 관록을 갖춘 모습도 보여주었고,
잘생긴 외모때문에 연기보다는 얼굴위주의 '에로물'에 캐스팅이 자주 되었던 임성민도
모처럼 진지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장미희가 연기한 실존인물 윤심덕의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사실 윤심덕의 일대기를 다룬
'사의 찬미'는 적절한 픽션과 논픽션이 결합된 작품입니다. 한국 근대화시대의 '비련의
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윤심덕의 죽음(사실은 실종)은 한국 예술사의 미스터리이기도 하고,
오늘날까지 정확한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윤심덕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 생존했다는
설도 꽤 강하고.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질 때는 뭔가 '일관성'을 가져야
합니다. '사의 찬미'는 '홍난파의 관점'을 택하였습니다. 홍난파(이경영)의 나레이션으로 영화가
이어지는 '1인칭 관찰자 시점'입니다. 한국음악계의 불세출의 존재 '홍난파' 물론
그의 인생 후반기의 '친일파 행적'이 많이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 '사의 찬미'에서는
친일이나 반일이냐 라는 이념보다는 '근대화시대'를 맞이하여 개화하는 조선 말기에서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젊은 문화예술인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윤심덕'이
보여준 '신 자유연애주의'도 언뜻 보여지는데, 그렇다고 윤심덕을 방탕한 여인으로
다룬 것이 아니라 김우진(임성민 역)과의 진실하고 운명적인 사랑의 이야기로 주로
흘러갔습니다.
최초의 관비유학생신분으로 동경에서 서양음악을 전공한 가난한 유학생 로맨티스트 윤심덕(장미희)
목포의 갑부의 아들로 결혼한 아내가 있지만 일본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윤심덕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작가지망생인 이상주의자 김우진(임성민)
음악을 전공하는 유학생으로 윤심덕을 사랑하며 지켜주는 따뜻한 남자인 휴머니스트 홍난파(이경영)
이렇게 세 사람의 파란만장한 삶과 예술과 사랑의 이야기가 진하게 펼쳐지는 대작입니다.
물론 실제 윤심덕의 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부자집 아들 이용문(김성수)와의 로맨스는
사의 찬미에서는 비중이 꽤 적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윤심덕의 인생을 사실관계에
따라서 복잡하게 흘러갔으면 영화가 산만해질 수 있었지만, 김우진과의 사랑위주의 이야기로
많이 단순화시켜서(다소의 과장이 섞였겠지만) 진행한 것이 오히려 더 그럴듯한 영화가
나온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