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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발전에 따른 우리의 대응 방안
반여농산물도매시장관리사업소장
김영춘
1.서
중국은 70년대 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최근에는 매년 9%이상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수십 년 내에는 미국을 능가해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92년 국교수립 이후 무역 규모가 매년 급신장하고 있으며, 사실상 중국 덕분에 우리나라의 경제가 이렇게 성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지리, 역사, 문화적으로도 깊은 연관이 있으며, 지난 해 중국을 찾은 외국인 중 한국인이 최다를 기록하는 등 한중관계는 나날이 긴밀해지고 있다.
이제 미국에 버금가는 정치, 문화, 경제적인 영향력을 갖기 시작하는 중국을 피해갈 수 없다. 우리나라는 일본 미국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미국, 일본에 편향된 시각을 중국으로 돌려 중국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해하는 전문가가 각계각층에서 더욱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어 구사능력과 함께 중국을 잘 아는 지방공무원의 필요성도 증대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1년간의 중국 유학은 개인적으로도 참으로 값지고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보기 드물게 혜택을 입어 91년8월부터 2년 반 일본 유학과 95년 9월 3주간의 미국시라큐스대학 연수를 통해 업무추진 과정에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었다고 생각한다. 하야리아부대의 공원화, 황령산스키돔, 동래파전의 브랜드화, 자연체험학습장 조성 등은 모두 유학 생활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유구한 역사와 문화에서 나오는 막연한 영감은 얻지만, 우리나라의 70년대의 낙후된 사회상을 보는 것처럼, 후미진 길거리의 쓰레기들, 보행자 무시, 차량 우선의 교통 무질서, 불친절, 미흡한 도시기반 시설 등 확실히 우리보다는 후진국으로서 특별히 우리가 배울 것이나 색다른 아이디어는 별로 못 얻을 것 같다.
그래서 본 보고서는 솔직히 특정 분야의 과제를 깊이 연구하거나 이미 알려진 내용들을 발췌해 짜깁기하는 식의 내용보다는 중국에서 직접 체험하고 느낀 부분을 토대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에 대해 피상적이지만 나름대로 제언해 보고자 한다.
2.중국어 공부
일본 유학 경험에서도 느꼈지만, 학자가 아닌 공무원으로서 학위에 얽매여 매일 강의, 숙제, 논문 쓰기에 매달리다 보면 오히려 외국어 회화 능력의 퇴보와 함께 그 나라의 지리 역사, 문화 등의 체험을 통해 전문가가 되기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나는 중국 유학의 목적을 중국어 회화 능력의 신장과 중국인과의 교류, 지방여행을 통해 중국의 지리 역사 문화를 체험하고 많은 중국인을 친구로 만드는 것으로 했다.
사실 난 1992년 일본 유학 시절 조선족 친구와 알면서 호기심에서 중국어를 시작했지만, NHK, EBS 등 교육방송을 통해 평균하여 하루 5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한 정도로 기초를 쌓고 시험에 통과하여 중국에 간 셈이다.
그러나 북경임업대학의 원림(조경)분야의 청강생으로서 강의도 들어 보았지만, 사실상 중국어를 알아들을 수도 없고 별로 도움되는 내용도 없어차라리 그 대학에 개설된 외국인을 위한 중국어 과정에 등록해 매일 4시간 씩 중국어 수업을 들었다. 기숙사에 돌아와서는 시간만 나면 TV를 보면서 자막을 통해(중국은 방언이 많아 TV 자막 처리)발음과 상황에 맞는 중국어 회화 공부에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중국 각 지방의 방송국 프로그램이 방영되므로 TV시청을 통해 중국의 전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마침 같은 연구실에 우리말을 조금 배운 연변대학 출신의 박사생인 란리핑과 자주 만나, 나는 한국어를 그녀는 중국어를 서로 가르쳐 주고 대화하면서 중국어 회화가 상당히 나아진 것 같다.
그래서 1년 만에 향상된 나의 중국어 회화 실력에 많은 중국인 친구들이 감탄하곤 했다. 또 영어를 잊지 않기 위해 대학 안의 영어회화 클럽에 가입해 중국 여러 지방에서 온 대학생들과 영어로 때로는 중국어로 대화하면서 중국의 여러 사정을 이해하고 외국 생활의 외로움을 달랠 수도 있었다. 중국어 강좌에는 일본, 태국, 터키, 베트남, 몽골 등 외국 유학생들이 있어 그들과 중국어, 일본어, 영어로 대화하면서 외국어 실습과 함께 국제적인 감각을 익히는 장이 되기도 한다.
언어는 쓰지 않으면 곧 잊혀지기 마련이므로 이와 같은 의식적인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외국에 살면서 간단한 일상적인 대화 외에 깊이 대화를 나누며 회화 능력을 향상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은 저절로 만나지지 않는다. 중국에 10년 살면서도 중국어를 못하는 사람도 많고 1년 있어도 중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아직은 일본어나 영어만큼은 능숙하게 중국어를 구사할 수 없지만, 같은 한자 문화권으로서 미국, 유럽 사람 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우리가 배우기 쉬운 외국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한글과 달리 일일이 한자 표기와 발음을 외어야 하니 중국인 선생도 종종 사전을 찾아가며 한자를 쓰는 걸 보면 참으로 어렵고 비효율적인 언어임에 틀림없다.
한자로 표기하는 발음에도 한계가 있어 외래어 표기는 연상이 곤란할 만큼 어색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한글은 원음에 가까운 “켄터키치킨”을 중국어 발음은 “건더지”로, “맥도날드”를 “마이라오당”으로, “자카르타”를 “야자타”로, “킹콩”을 “진강”으로 밖에 발음할 수 밖에 없으니 중국어 공부가 힘들어진다. 세계 각국의 이름과 미국 50 개 주도 한자로 억지로 표기하고는 있지만, 한자의 쓰기와 발음을 암기하는 것은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3.북경의 생활
북경은 원,명,청나라의 수도로서 천년의 고도이자 지금도 정치,경제,문화,교육의 중심지로서 세계적인 대도시이다.
북경대학, 청화대학, 북경임업대학, 어원대학, 광업대학, 지질대학 등이 학원로라는 곳에 몰려 있으며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세계 각국의 젊은이 들이 중국 학생들과 어울려 공부하고 있다.
특히 한국 유학생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학원로 부근의 오도구(우다오코우)에는 한국 음식점, 술집이 중국음식점보다 더 많을 정도다. 우리 학교와 가까운 북경대학 박사 과정에 유학 중인 김 기재 전장관님을 만나게 된 건 개인적으로 큰 행운이었다. 회갑을 넘긴 나이에 어린 학생들과 같이 대학원 공부와 함께 모자라는 중국어 실력을 보충하기 위해 시간만 나면 중국어 학원에 다니면서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중국어 공부에 집중하시는 걸 보면서 역시 한 나라의 장관을 하신 분답게 강한 정신력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주선하여 11월 초 “월간시민시대”의 편집장이신 서 세욱님을 북경에 초청해 내 방에서 3일을 머물면서 김 장관님의 공직 일대기와 북경 유학생활을 소개하는 내용이 “월간시민시대”12월호에 소개된 바 있다.
중국에서는 하숙의 개념이 거의 없고 직장 단위를 중심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사회주의 영향이 남아, 대부분의 학생들과 교수 교직원도 학교 안의 기숙사 또는 사택에서 생활하므로 학교 건물의 대부분이 기숙사 또는 사택이다.
북경은 서울, 동경, 워싱턴처럼 외곽의 위성도시와 연담화 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도보다 큰 면적으로 도심부와 외곽은 낙후한 농촌과 산들이 나타난다. 따라서 대부분의 북경시민은 시내 중심에 산재한 주택단지 또는 최근 택지 개발이 한창인 3환과 4환 사이의 왕징, 회룡관 등에서 거주하며 출퇴근한다.
북경의 중심인 자금성을 감싸는 2환, 3환, 4환, 5환의 외곽순환도로가 만들어져 있고, 3환 안이 중앙부처를 비롯한 국가핵심 기능이 산재한 도심이라 할 수 있다. 도로망이 잘 발달 되어 있고 버스 중심의 대중교통 체계가 잘 형성되어 있지만, 근래 개인 소득의 증가로 자가용 차량이 급속히 증가해, 갈수록 교통체증이 심해지고 있다.
낡은 차량도 아직 많이 눈에 띄고 노후한 택시는 올림픽까지 점차로 북경현대의 엘란트라나 소나타 등의 신차로 교체할 방침이라고 한다. 실제 하루가 다르게 산뜻한 색상의 현대차로 북경의 택시가 바뀌고 있어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도 덩달아 좋아지고 있다.
도로에 비해 지하철은 뒤처진 편으로 실제 3 개 노선이 운행 중이며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건설이 한창이다. 환승 할 때는 한참을 걷는 경우가 많아 불편하고 외곽지하철의 따종스역과 롱저역의 역세권 주변은 삭막한 역광장에 구멍가게, 호객꾼만 득실거리는 걸 보아 역세권 개발의 개념이 없는지 아직 자본주의 감각이 부족한 것 같다.
어쨌든 2008년 북경올림픽을 중국의 도약의 계기로 삼아, 북경시는 올림픽 준비에 박차를 기하고 있다. 메인스타디움을 비롯한 관련 체육시설 공사가 착착 진행 중에 있으며, 재개발 등 도시정비 사업도 활발히 이루어져 시가지가 공사장을 방불케 한다.
연탄 사용의 규제, 도심 공장의 이전 등으로 과거에 비해 대기가 깨끗해졌다지만, 워낙 건조한 지역에 공사장 먼지마저 날려 스모그 현상이 일상화되다시피 한다. 연간 600㎜ 정도의 강수량으로 1년 동안 거의 비다운 비를 만난 기억이 없을 정도로 건조가 심해 비 피해를 막는 배수로가 없이 시내도 자연 배수로가 많고 하천의 수질오염도 심한 것 같다.
북경공항에서 시내 진입 구간에 포플러나무가 집단적으로 심어져 있고 대부분 녹지대의 주 수종은 포플러나무이고 가로변에 심어진 나무에는 항상 인위적으로 물을 주어야 할 정도로 건조한 지역이다.
북경에서는 부족한 물을 양쯔강에서 끌어오기 위해 거대한 공사가 추진 중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 비가 자주 오는 우리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기도 깨끗하고 식물도 싱싱해 북경에 사는 사람들이 금수강산인 한국에 갔다 오면 피부가 달라지는 걸 느낄 정도라고 한다.
중국이 아직 후진국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무질서한 교통질서와 음식문화라고 할 것 같다. 교통 신호와 관계없이 차량과 보행자가 길에서 먼저 가려고 뒤섞이고 보행자 무시, 차량 우선의 후진적 교통 의식이 당연시 되어 있다. 그리고 어느 식당에 가더라도 음식을 넘치도록 주는 바람에 음식쓰레기가 과다하게 발생하고 쓰레기 줄이기에 대한 관념도 희박하다.
후진타오 주석이 절약형 사회를 부르짖고 있으나 의식전환에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11월말 북경의 외국유학생 중국어 웅변대회에 나가 위와 같은 내용으로 발표했는데 등수에 들지는 못했다.
<중국어 웅변대회 내용>
我心目中的北京
北京林业大学 金永椿
大家好,我是韩国留学生金永椿,今年47岁。
今年2月末,我来到了美丽的北京,来到这个我向往已久的地方。来到北京,一方面是为了更好地学习汉语,另一方面是想更全面地了解中国的文化。在地理位置上,韩国和中国相邻,在历史上,韩中两国有着密切的往来,文化有许多相似之处。因此我们交流的空间也很大。
在北京,每天除了上汉语课,我还通过看电视,以及同中国人交流来学习汉语,了解中国的文化。中国的电视频道很多,仅中央电视台就有新闻、音乐、教育等十三个频道,每个省还有许多地方频道,而且大部分的电视频道有中文字幕,所以通过看电视不仅使我提高了汉语的水平,而且使我更进一步了解中国的传统文化和民俗风情。
和北京的很多大学生一样,我也很喜欢大学里的英语俱乐部,经常参加他们组织的活动。在这里我可以见到来自中国各地的大学生。我同他们交流,了解中国更多的情况。比如他们的家乡在哪里?那儿有名的风景和特产是什么?乘火车到北京需要多少时间等等。通过交流,我切实感受到中国的幅员辽阔,地大物博;感受到中国的历史悠久,源远流长;感受到中国的文化丰富,博大精深。
有时候,我也碰见一些学习韩国语的中国朋友,我们就互相帮助,互相校正,这种方式特别好,提高了自己的汉语表达能力。
汉语是一门很复杂的语言,很有用,也很有意思,要学会它,并且融会贯通,并不是一件容易的事。其实,从35年前读中学的时候,我就开始学习汉字了。但是到现在,我觉得读和写仍然有点困难,尤其是一些专有名词,比如说,Kenturkey和肯德基,California和加里佛尼亚等等,我觉得它们缺乏联系性,而且写起来也困难。这些都是用它们的音译来表示的。要把他们记住不下一番功夫是不行的。
北京是个国际化的大都市,也有需要不断完善的地方,作为一个真心热爱北京的韩国人,我也想谈谈自己的看法。
比如,北京的交通秩序不好,有时交通信号灯好象是一种装饰物,许多人经常无视它的存在,违反交通规则,造成交通堵塞,还会危及生命安全。我觉得“宁停三分,不抢一秒”不应停留在口头上,而应落实到每一个市民身上,这也是社会文明的标志之一。
另外,还有饮食上的浪费。13亿人每天三餐消耗的粮食非常多,解决温饱问题是中国政府的基本目标,也是中国政府了不起的业绩。在北京的饭店或学校的食堂,我经常说:“够了,可以少给一些”。我觉得很多人吃剩下的饭菜非常多,这是一种不好的现象。现在,韩国的剩菜剩饭也是一个非常严重的问题。从去年开始,我们将剩菜剩饭干燥处理后埋藏。吃剩的饭菜不仅是浪费粮食,而且浪费能源,甚至污染土壤。现在,中国政府积极提倡建设节约型社会,如果每个人节约一点饭菜的话,13亿人就会节约很多粮食和能源。
我们大家知道北京正在积极筹备2008年的奥运会。1988年我国也举办过奥运会,我觉得全体人民的努力要比政府的努力更重要。目前还有许多工作要做,这必须通过全民的努力来实现。但不管怎样,我深信在中国人民和政府的努力下,北京2008奥运会一定会办的非常成功。
我衷心希望北京越来越美丽,越来越亲切……
最后,我还想朗诵宋词:春有百花,秋望月,鸿雁群飞翔。红花谢,绿林黄,寒雾涨,枫叶舞霓裳。
4.중국의 동북지방 여행
겨울에는 강풍과 추위로 견디기 어렵더니 6월 말인데도 북경은 38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벌써 시작된다. 아직 혼자서는 표 끊기, 길 묻기도 어려우므로 연변이 고향인 란리핑의 여름방학 귀향에 동행해 13박14일의 동북 지방 여행에 나섰다. 6월23일 밤 10시 반 북경발 장춘행 잉워는 많은 중국인들로 시끌벅적하고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정해진 침대칸에 자연스레 두러 누워 처음 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워낙 나라가 커 같은 중국인이라도 외국인을 대하듯 상대의 고향 풍물 사투리 등이 호기심어린 화제가 되는 것 같다.
잉워는 3층의 침대칸이 북도와 개방된 침대차이고 란워는 2층 침대가 양쪽으로 4인실의 고급형 기차이며 좌석 기차도 잉쭈어와 란쭈어로 차별화하고 있다.
중국은 철도교통이 발달해 비행기 탈 형편이 안 되면 기차를 타고 2박3일씩 장거리 여행을 하고, 나도 저녁에 밤차에서 자고 아침에 내리면 시간도 절약되기 때문에 중국에 있는 동안 많이 이용한 편이다.
장춘 역에는 다음 날인 6월24일 아침에 도착해, 그녀는 사촌 언니 집에 가고, 난 호텔에 짐을 풀고 장춘 시내 관광에 나섰다. 장춘은 비교적 우리와 익숙한 길림성(지린)의 수도로서 동북대평원 중앙부의 교통 요지이다.일제시대에는 만주국의 수도로서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푸이가 일본의 괴뢰국 황제로서 거처했던 웨이항꽁과 만주국 당시의 관청 건물들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도심의 중앙에 위치한 광활한 인민광장과 호수를 끼고 있는 난후공원 등 풍부한 녹지와 넓은 공원을 보면 장춘이 유럽, 미국의 대도시와 다를 바 없으나, 역 주변의 비포장된 뒤골목, 낡고 지저분한 슬럼가를 보면 아직 후진국임을 실감한다.
TV타워의 회전 식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시 외곽의 광대한 평야 지대는 중국의 땅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인구 203만의 장춘시의 면적이 18,881㎢라니까.
드디어 혼자만의 여행, 장춘에서 하얼빈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3시간 반 동안 가면서 바라보이는 넓은 평야에 옥수수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과연 인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드문드문 기계 없이 농사짓는 인력 작업이 눈에 띈다.
하얼빈은 중국 최북단 헤이룽장성의 수도로서 쑹화강변에 자리한 도시로 과거 러시아와 충돌의 영향을 받아 성소피아성당 등 러시아식 건물도 많이 보인다.
헤이룽장 박물관에서는 고구려와 발해 관련 고대 한국의 역사적 흔적을 보면서, 중국이 동북공정이란 이름으로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그들의 역사의 일부로 간주하려는 저의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한반도의 서너 배가 넘는 광활한 동북지방의 수많은 민족이 소멸하고 중국이라는 단일국가화 되면서도 살아남은 우리 민족이 흡수 동화되지 않기 위해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중국의 대도시는 시내버스 체계가 잘 되어 있고 1위엔(130원 정도)이면 탈 수 있으므로 나 홀로 여행 때는 아무데서나 타고 적당한 곳에 내려 거리를 걷다가 다시 타고 시내여행을 하기 좋다. 쑹화강변의 해상공원은 고수부지를 시민공원화 한 곳으로 연밭, 낚시터, 갈대 습지 등과 함께 시민광장, 놀이시설 등 휴게공간이 잘 정비되어 있어, 많은 시민들이 나와 휴식을 즐기고 있다. 하얼빈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장춘으로 기차를 타고 돌아오며 이제 중국에서의 나홀로 여행에 자신감을 얻는다.
장춘에서는 다시 란리핑과 우리의 완행열차와 같은 잉쭈어를 타고 아침에 옌지로 향해 출발한다. 한여름의 더위와 10시간의 장시간에도 좌석 없이 무거운 짐을 들고 서서가는 중국 농민들의 고달픔도 눈에 띄고 간간이 우리말이 오가는 걸 봐 조선족 사회에 들어왔음을 실감한다.
길림성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인 옌지(연길)에 도착하니 마치 우리나라의 어느 소도시에 온 것처럼, 우리말과 한자가 같이 쓰이고 우리말도 자연스레 통한다. 중국에는 55개의 소수민족이 있으며 소수민족 우대 정책으로 소수 민족에게 산아제한 완화, 대학 입학특례 등 많은 혜택을 주고 있으며 소수민족의 자치구, 자치주, 자치현의 형태로 자치권을 부여하고 한족의 당서기와 소수민족의 수장이 서로 견제 협력하도록 하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인종 갈등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옌지, 투먼, 롱징, 훈춘시 등 6시,2현으로 구성되고 조선족이 40%를 차지하며 한글이 제2공용어로 되어 있다.
투먼은 옌지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의 북한과 접한 국경도시이다. 북한과는 소하천이 경계를 이루고 북한 군인과 주민의 모습을 육안으로 볼 수 있고 산꼭대기까지 밭을 개간하고 투먼보다 더 낙후된 건물들의 모습에서 북한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북한의 접경지역이면서도 북한 사람 또는 상품의 흔적을 거의 볼 수 없고 오히려 한국의 상품, 노래방, 기업의 모습을 찾기가 쉬울 정도다.
롱징은 옌지에서 30분 정도의 기까운 곳에 있고 특히 조선족의 비율이 높아 그런지 어디서나 우리말이 통용된다. 문익환 목사, 정일권 총리,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롱징 중학에는 윤동주 시인의 동상과 조선족 출신의 유명인사 들의 전시관이 만들어져 있고, 많은 한국인 들이 방문하여 기부를 한다. 지금의 롱징 중학에는 조선족의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갈수록 한글이 잊혀지고 있는 현실에, 뜻있는 조선족 지도층들은 민족의 정체성이 희박해지는 걸 걱정한다고 한다.
힘들게 찾아간 산 정상의 일송정에서 선구자를 부르고 혜란강을 사이로 광활하게 펼쳐진 만주 벌판을 내려다 보면서, 먼 옛날 선조들과 독립군 들이 활동하던 모습을 느껴보며 과거 우리민족의 주무대였던 이곳이 이젠 북한과 중국이라는 이중의 공간의 제약으로 심리적으로 아득히 먼 곳이 되어버렸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하다.
<백두산 천지에서> 옌지에서 백두산까지는 봉고차로 4시간 거리로 새벽 일찍 출발해 침엽수림대의 평지를 달려 산오름이 시작되는 주차장에 닿는다. 주차장에서 급경사의 길을 짚차로 굽이굽이 돌며 올라 천지 부근에 이르니 싸늘한 냉기와 짙은 안개로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다. 차에서 천지가 보이는 산정까지 5분 정도 가서 잠시 기다리니 안개가 살짝 걷히면서 눈 아래에 시퍼런 호수의 천지가 확 드러난다.
우리 민족의 최고 명산이자 중국의 10대 명산인 백두산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보이는 광활한 산림, 드문드문 있는 헐벗은 농촌 다 우리 국토의 모습이다. 통일만 된다면 대륙으로 무한히 뻗어나갈 통로인데, 어쨌든 우리말과 전통풍습을 유지하면서 한족들과 잘 어울리며 자신있게 살아가는 조선족 동포들을 보면서 한가닥 위안을 느낀다.
중국에선 어느 지방에 가더라도 주변의 친구들을 불러 같이 원탁에 둘러 앉아 식사와 술을 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비슷하다. 옌지에 4일 있는 동안, 란리핑은 매일 저녁 그녀의 남녀 친구들을 불러 같이 둘러 앉아 한류 드라마와 한국과 부산의 발전상 등을 화제로 대화하며 서로 친구가 되자는 건배 제의를 수시로 한다.
이제 그들과 헤어져 오후 6시 기차에 올라 다음날 아침 7시 반 심양역에 도착한다. 심양은 랴오닝성의 수도로서 여진족인 누르하치가 청나라를 세워 중원을 정복하고 북경으로 천도하기 전까지의 수도였다.
그래서 누르하치의 묘가 있는 동릉공원과 왕궁인 화려한 고궁 등 유적이 많이 남아 있고 서안 사건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동북지방의 군벌인 장작림, 학량 부자의 공관 겸 사저가 품위 있는 근대 건축물로서 보존되고 있었다.
시내 중심의 중산광장에는 모택동과 노동자 농민의 거대한 조각상이 인상적이고 도심에 있는 중산공원에는 일요일이라 그런지 노인, 농아자들의 모임, 노래모임, 그림그리기 모임, 아베크족, 가족 나들이객들로 공원 안이 북새통을 이루다시피 한다.
시외곽에 자리잡은 심양식물원은 엄청난 넓이에 다양한 백합꽃들의 백합원, 작약원, 생태관 등이 잘 갖춰져 있고 넓은 호수에는 수상유격시설, 외줄타기, 암벽타기, 보트놀이 등을 즐길 수 있고 낮은 언덕의 지형을 활용해 목재데크 미로, 출렁다리 모험시설 등으로 청소년의 모험심을 자극하고 있다.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이 온갖 희노애락을 안고 걸어 다녔을 동북지방, 13일 간의 기차여행을 통해 그들의 숨결을 꿈속에 느끼면서 심양에서 밤새껏 달린 기차는 다음날 아침 북경역에 도착한다.
4.사막녹화의 현장
7월 중순 내몽고의 치펑과 몽고의 고비사막에서의 사막녹화 사업 현장을 방문했다. 북경임업대학은 사막녹화 연구가 활발한 대학으로 건조와 추위에 견디는 수목의 개발, 사막녹화를 위한 항공파종, 모래고정 기술, 관개 방법 등을 연구하고 직접 사막 현지에서 사업을 펼치고 성공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방목, 경작, 기후변화 등에 의해 사막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며, 매년 봄 우리나라에서도 황사피해가 심해지고 있고 UN에서도 사막화 방지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내몽고 사막녹화 현장> 2000년 한중정상회담 이후 매년 500만 달러를 우리나라는 중국의 사막녹화 사업에 지원하고 있으며 산림청과 민간기구인 동북아산림포럼을 통해 내몽고와 몽고고비사막 녹화에 기술을 지원하고 확인도 한다. 이번 방문도 동북아산림포럼 관계자들과 현장을 다니면서 수목의 생육상태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지원방안 등을 협의하는 것이다.
<고비사막에서의 식수 광경> 치펑시는 내몽고자치구의 제2도시로서 북경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8시간 거리의 가까운 곳이다.치펑시 외곽의 사막녹화 현장은 과거 농민들이 옥수수와 밭작물을 재배한 곳으로 퇴경환림 정책에 따라 농민들을 이주시키고 나무를 심고 있다. 건조에 강한 산살구나무를 심고 강수량이 적어 관정을 파고 호수로 물을 주면서 관리를 하고 있지만, 들쥐와 추위 등의 피해가 염려된다고 한다.
까마득히 울퉁불퉁한 낮은 구릉지대에는 여름에 약간의 풀이 나다가도 겨울에는 추위로 말라죽고 강풍에 붉은 황토가 날리면서 사막으로 변해 간다. 과연 인간의 힘으로 이 광활한 땅에 나무를 심어 녹화하여 황사를 막을 수 있을까? 내몽고보다 훨씬 북쪽의 몽골의 고비사막은 더 악조건으로 사방이 지평선으로 완전한 모래 땅과 콘크리트와 같은 단단히 다져진 땅 위의 나무가 혹독한 추위와 건조에 견딜 수 있을까?
가난한 몽골 정부는 고비사막에 500m의 폭으로 수백Km의 방풍림대를 조성하여 황사를 막기 위해 세계 각국에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사막화 진행 광경> 울란바토르에서 한여름만 운행하는 프로펠라 전세기로 도착한 사막 관광지에서 가까운 남고비주의 주도인 달란자트가드에서는 부근의 사막에 포플러, 느릅나무, 카라가나 등 건조와 추위에 강한 나무를 심고 외곽에 펜스를 쳐서 방목 중인 양, 말, 낙타 등의 침입을 막고 관리원이 상주하면서 펌프로 퍼 올려 물을 주면서 관리하고 있다.
3년 전 심은 수목의 생육은 양호하지만 20년 후 다시 왔을 때 울창한 숲으로 변해 시가지를 모래 바람으로부터 막는 계획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한반도보다 더 넓은 남고비주의 주도인 달란자트가드는 인구 14,000명으로 끝도 보이지 않는 광활한 평지 사막에 사각형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지평선 너머 찝차를 타고 가는 도중 멀리서 육안으로 보이며 몽고식 천막집인 겔과 판자촌 집 들,비포장의 도로가 마치 서부영화의 인디안 요새처럼 모래먼지에 휩싸여 있다.
몽골의 북쪽은 초원의 스텝지대로 동북아산림포럼에서 지원해 3년 전부터 구주적송을 심고 있다. 셀렝게주의 주도인 토진나르스에서 가까운 국립공원 내의 조림지를 방문해 보니 활착률은 100%에 이르지만 수시로 발생하는 산불이 문제라고 한다.
강우량 500㎜로 사막보다 덜 건조한 초원지대에는 드문드문 숲이 형성되어 있어 조림이 가능하고 교토의정서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가 활성화되면 이산화탄소를 많이 생산하는 기업의 돈으로 스텝지역과 사막녹화가 활성화되어 지구환경이 점차 개선되어질 것을 기대해 본다.
토진나르스는 우리의 읍에도 못미칠 것 같은 낙후한 도시로서 러시아 국경과 가깝고 인구가 워낙 적어 국경의 역이 마을의 중심이고 식당, 나이트클럽을 겸하고 있다. 몽고와 러시아의 국경은 그냥 돌담과 목책 형태로서 손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몽골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우리를 접대하기 위해 식사와 술자리에서 주량에 관계없이 독한 고량주를 억지로 마시게 하는 것이 손님에 대한 대접으로 우리와 비슷한 음주문화 때문에 고역이었다.
5.남순강화에 나서다
남순강화란 덩샤오핑이 1992년 개혁개방을 독려하기 위해 중국의 남쪽을 기차로 여행하며 지방 관리들에게 경제개혁을 강조한 것을 이른다. 나도 북경에 있는 동안, 남쪽의 여러 도시와 지방대학을 기찰 다니며 특강도 하고 그 지방 사람들에게 부산을 알리고 대화를 많이 나누었으니, 남순강화라 감히 이름 붙여본다.
북경임업대학에는 30시간,40시간 기차를 타고 멀리 지방에서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고 젊은 지방대학의 강사 또는 지방의 공무원들도 박사과정에 등록해 공부하는 나이 많은 학생들도 많다.
9월까지는 가능한 학교의 기숙사에 머무르면서 중국어 공부에 집중하고 틈틈이 같은 연구실의 석박사생 들과 어울리며 점점 능숙하게 중국어로 대화가 가능해졌다.
2005년 10월 말 뤄양시청에서 온 박사생 펑롱의 소개로 뤄양시원림국 공무원들을 상대로 "부산광역시의 녹지행정"에 관해 특강을 하게 되었다.이후 같은 연구실의 여러 지방 출신들로부터 소개를 받아 남쪽의 여러 지방대학 들을 다니며 특강을 하게 되었다. 중국어로 하는 강의지만, 파워포인트로 미리 연습한 시나리오대로 얘기하고 쉬운 질문은 간단한 중국어로 어려운 질문은 영어로 답변하면서 박수도 많이 받았다.
10월25일 밤 서북경역에서 잉워를 타고 다음 날 아침 뤄양에 도착하여 호텔에 짐을 풀고 뤄양시 윈림국부국장의 안내로 서원공원을 방문했다. 서원은 수나라의 양제가 지냈던 곳으로 최근까지 묘포장으로 활용했으나 개방해 시민공원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뤄양시의 중심에는 루어강이 흐르고 강변에는 10여 Km 이상의 긴 강변의 고수부지를 콘크리트로 제방을 만들고 공원화한 곳이다. 뤄양시는 삼국지에 자주 등장하는 유서 깊은 도시로서 BC 770년 주나라의 수도가 된 이래 9개 왕조가 도읍을 정한 곳으로 불교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용문석굴은 400년에 걸쳐 강변의 암벽을 깎아 각종 불상을 만들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뤄양의 용문석굴> 드디어 순 중국인 약 150명을 앞에 두고 중국어로 설명을 하니 모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 봐 나의 중국어가 통한 것이리라.
첫 데뷔는 성공적인 것 같았다.
뤄양시에서 아침 7시15분 카이펑행 시외버스를 탔는데 곧 출발한다는 버스가 결국 손님을 다 채운 8시반에야 출발하는데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는 걸 보아 시간관념이 없는 곳도 아직 남아 있는 모양이다.
버스는 허난성의 수도인 정주를 지나 카이펑에 11시 반 넘어 도착하는 바람에 펑롱의 친척인 꾸어빈 부부는 1 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친절하게 맞아주고 먼저 카이펑부로 안내했다. 카이펑은 북송의 수도로서 당시의 흔적을 되살린 황궁과 서민들의 삶을 재현한 민속촌이 시내 한가운데 자리 잡고 실감나는 공연도 보여준다.
송나라 때의 화려한 흔적과는 달리 시내의 비포장도로, 남루한 차림의 많은 인구, 낡은 가옥들의 모습의 소도시가 지금의 카이펑이다.
장시성의 수도인 난창에 있는 장시재경대학과 장시농업대학에서의 특강은 우리 연구실의 박사생이자 대학 강사인 꾸어메이팡의 소개로 이루어졌다.
혈기 왕성한 대학생 들을 상대로 강의를 마치자 한 학생이 일본에 대한 나의 견해를 얘기해 달라는 질문에 영어로 난징학살기념관에서 느낀 나의 분노를 얘기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일본에는 좋은 친구들이 많아, 국가는 별개로 하더라도 민간 차원에서 한중일이 우정을 쌓아 가자고 제의하니 박수가 쏟아진다.
난창봉기와 장시소비에트로 알려지듯이, 난창은 공산혁명의 실험 기지로서 많은 공산당원이 국민당군에게 죽임을 당한 곳으로 혁명열사기념관, 8.1기념관 등이 혁명의 도시임을 알리고 있다.
항주의 저장임학원은 시내에서 동쪽으로 1시간 떨어진 린안이란 한적한 곳에 있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호젓한 캠퍼스의 중심에 큰 호수가 자리해 아름다움을 더한다. 교수들도 대부분 젊고 중국 농촌 활성화에 대한 역할 모색과 대학의 국제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새마을운동 관련 자료와 한국 유학생 유치에 나의 역할을 적극 요청하고 있다.
<중국대학생 상대 특강장면> 중국 대부분의 대학처럼 15,000명 학생 전부가 기숙사에서 지내므로
부산의 좁은 면적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낙동강고수부지와 석대쓰레기매립지의 공원화에 관심을 보인다.
항주는 원림 조경 분야에서는 쑤저우와 함께 가장 유명한 도시로서 중국 제일의 시시습지공원과 서호가 알려져 있다. 시시습지공원은 하천 고수부지의 농촌 마을을 소개하고 군데군데 편의시설을 만들고 물길 사이로 배를 띄어 갈대 등의 습지식물을 볼 수 있게 했다.
낙동강 하류의 갈대 숲 사이에 목도를 만들고 식물 이름에 팻말을 달고 간단한 편의시설을 한다면 우리도 가능하리라.
산이 많은 항주풍경구에는 죽림공원, 산동굴, 항주동물원이 있으며 서호에는 숲 속의 물길을 인공적으로 파내고 다듬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도심의 넓은 호수는 신비함으로 다가온다.
6.중월국경을 걸어서 넘다
강풍이 몰아치는 북경의 1월 추위를 피해 비행기로 4시간만에 도착한 쿤밍은 따뜻한 봄나라이다. 중국 서남 끝의 운남성의 수도인 쿤밍의 서남임학원 강사인 쟝찌화의 소개로 그 곳 대학원생들에게 특강을 하니, 한국과 부산에 대한 호기심어린 질문을 많이 한다.
중국에서도 오지로 알려져 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그들에겐 처음 만나는 한국인일 테지만, 많은 소수 민족들이 살고 있고 태국과 접경지대의 시상반나, 따리 등 많은 유명 관광지가 있어 앞으로 많은 한국 관광객도 몰려 올 것이다.
쿤밍은 중국 최대의 꽃 생산지와 유통시장이 있으며 99년 세계 꽃박람회가 열린 곳으로 지금도 당시의 꽃 박람회장에는 화려한 꽃들로 관광객을 맞고 있다. 박람회장에서 산정상까지 리프트로 연결된 삼림공원은 야트막한 산에 온실, 전망대, 놀이광장, 연수원이 산속 군데군데 들어서 있어 시민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다.
쿤밍에는 중국의 6대 담수호로서 넓은 전지호가 있고 인접한 서산공원은 해발 2500m로 콘돌라와 리프트로도 주변 경치를 감상하면서 정상에 올라갈 수 있고, 정상에서 호수쪽 깎아지른 암벽에는 오랜 세월이 걸려 돌을 깎아 터널식 길이 만들어져 있다. 길을 따라 조심스레 내려오면서 용문석굴, 화정사 등 여러 절과 유적들을 보면서 호수를 감상할 수 있다.
쿤밍에서 비행기로 2시간만에 도착한 방콕은 완전한 여름 나라이다. 여름 옷으로 갈아입고 방콕의 유명한 에메랄드사원, 국립박물관, 수상가옥 등을 관광하고 방콕 대중교통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수상버스도 타 보았다.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방콕이지만, 중심을 흐르는 큰 강변에는 번호를 매긴 수상버스의 정류장인 접안시설이 있고 지하철과 버스 등으로 환승이 편리하게 되어 있다.
이틀 후 베트남의 하노이로 이동했다. 한적한 하노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농촌의 낙후된 길거리에는 마치 우리나라의 어디인 것처럼, 대우,현대 등의 자동차가 한글 간판을 그대로 달고 다닌다. 제2도시인 호치민보다 경제적으로 뒤처진 수도 하노이는 그들의 오랜 독립 애국 투쟁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진정한 독립애국 투사로 추앙받고 있는 호치민의 기념관과 혁명역사박물관 등에서 보듯이 아직도 미국과 프랑스에 대한 뿌리 깊은 식민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을 가지면서도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비교적 호감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 친구에게 한국의 참전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에 한참 방영 중인 대장금 등 한류드라마를 통해 동양적인 동류의식을 갖고 있단다.
하노이에서 이틀을 지내고 아침 일찍 시외버스를 타고 하노이의 북쪽을 향해 베트남 농촌을 보면서 3시간 정도 달리니 랑송이란 국경 도시가 나타난다. 베트남에선 영어, 일어, 중국어도 통하지 않으니 손짓, 발짓을 하여 겨우 중월 국경까지 오토바이 뒤에 타고 우리 돈1만원 정도 주고서야 1시간만에 베트남 검문소에 도착한다. 오토바이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니 걸어서 10분정도 인적 드문 길을 가니 단층 건물의 베트남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있다.
출국확인을 받고 다시 500m 쯤 북쪽으로 가니 3층 건물의 깨끗하고 웅장한 건물에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간판이 붙은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나타난다. 역시 베트남보다 중국이 대국임을 느끼게 만들고 무료하게 앉아 있던 중국공무원은 나 홀로 여행객을 반가운 듯 맞아주고 나도 오랜만에 말문이 트인 기분에 관광가이드를 대하듯 이런저런 얘기를 건넨다. 보통은 가장 친절한 나라의 출입국공무원도 불친절한데, 가장 불친절한 나라의 출입국공무원이 친절한 것은 절간같은 외롭고 적적한 환경이 만들었겠지만.
다시 200m를 북쪽으로 걸어가자 국경수비대 격인 인민무장경찰부대의 막사가 나타나고 승용차 호객꾼 들이 몰려든다.
30위엔을 주고 30분 거리의 핑샹이라는 인구 4만의 소도시 터미널에 도착해 난닝행 고속버스를 탔다. 광시장족자치구의 들판과 삼각 모양의 산들이 이어지는 때로는 농사의 흔적이 보이고 때로는 인적 드문 자연을 보면서 2시간 반만에 광시장족자치구의 수도인 난닝에 도착했다.
7.중국의 지방행정
중국에 있는 동안 지도교수가 직접 운영하는 도시계획 및 조경 설계 회사의 일과 관련해 허베이성 장자코우시 선화구와 안휘성 화베이시를 방문해 업무협의도 하고 한국지방공무원연수단과 같이 10일간 시안, 우씨, 쑤저우, 해 등을 방문해 공무원들로부터 개발구 운영, 지방행정 등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중국은 워낙 땅이 넓어 대체로 주변의 농촌을 포함한 우리의 도농 복합시 형태로 도시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직할시인 충칭시는 남한의 3분의 2 면적에 인구도 3천만에 이르고, 텐진직할시와 텐진항은 부산광역시와 마산항의 거리처럼 시중심에서 한참 떨어진 별도의 도시인 탕구구의 탕구항이라야 적당한 표현이다.
대부분의 도시는 도심의 중심구와 장거리 버스를 타고 1,2시간 가량
농촌과 들을 지난 곳에 독립된 생활권인 시, 구, 현이 있어 일반적으로 OO시라고 할 때 시가지 중심을 말하는지 시행정구역 전체를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시, 구, 현, 진의 행정 단위에는 우리의 의회에 해당하는 인민대회가 있고 주민의 선거로 뽑힌다. 특이한 것은 중국공산당 초기부터 있던 교수, 예술인, 퇴역군인, 원로 등 전문가로 구성된 정치협상회의가 중앙과 지방에도 있어 각급 지방행정기관을 인민대회와 같이 견제하고 사실상 별로 역할이 없다면서도 건물은 화려하다.
또 성, 시, 구, 현 등의 장인 성장, 시장, 구장 보다 당서기가 서열이 높다. 중국은 공산당이 국가기관과 지방행정기관의 우위에서 지도하며 모든 단위에는 공산당이 임명하는 당서기가 파견되어 일사분란한 지휘체계 아래 당의 이념과 시책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감독한다고 한다. 심지어 대학이나 북경식물원에도 당서기가 있어 대학총장과 식물원장 사이에서 역할이 모호할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실제 자본주의의 급속한 확산에 따라 공산당원인 학생들과의 대화에서도 공산당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며 당의 역할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로 언젠가는 불필요하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도 있다.
따라서 지방정부도 기구가 방대하여 인대, 정협, 시구정부가 따로 떨어져 있으며, 시구정부 청사에도 핵심부서만 있고 나머지 원림국, 건설국, 재무국 등의 청사는 별도의 건물로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결재나 회의를 위해서 길에서 왔다 갔다하며 길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것 같다.
사무실에는 우리처럼 넓은 방에 계원들과 계장 과장이 같이 근무하는 것이 아니고 작은 방에 2,3명 씩 근무하면서 필요시에 오가고 상하급자,남녀 사이도 우리보다 훨씬 덜 권위적인 것 같다. 노동자 농민을 우대하는 공산당 이념의 특성과 상하 관계를 뒤집은 문화대혁명 등을 거치면서 남녀와 상하 의식은 훨씬 민주적이 되었다고도 한다.
낙후된 주거지역의 낡은 건물과 빈곤한 주민들에 비해 인대, 정협 등 핵심적인 관청 건물은 화려한 걸 보면 아직은 인민을 위한 진정한 지방자치와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사회안정을 강조하며 언론도 통제 하에 있다고 한다.
지역마다 기후와 풍토, 언어마저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지역적인 특색이 있으면서도 내가 가 본 지역은 대부분 관청 건물의 모양, 크기, 공원, 광장 등이 비슷한 걸 보면 지방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지방분권의 국가라기 보다 공산당 지도하의 일사분란한 중앙집권체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각 단위의 당서기는 공산당에서 임명하고 성장과 시장은 인민대회의 선거를 거치지만 당의 입김이 작용한다고 한다.
앞으로 경제 발전에 상응한 민주화와 함께 필연적으로 지방분권을 할 수 밖에 없는 거대한 중국으로서는 고민이 심각해질 것이다.
9.중국의 산악형 관광지
중국은 동북과 남서의 산악지대를 빼고 한반도의 4배가 넘는 넓은 중원 즉 광활한 평지로 산은 귀하면서 소중한 휴식공간이자 관광지로 인식되는 것 같다. 5대 명산에 들어가는 황산, 태산, 헝산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시 외곽의 산은 삼림공원 또는 풍경구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고 편리한 접근 시설과 함께 볼거리를 만들어 내외 관광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중국인의 정신적 지주인 태산은 산동성의 태안 시내에 있으며 소형버스로 중턱인 중천문까지 올라갈 수 있고 중천문에서 케이블카로 정상인 남천문에 오를 수 있는데 정상에 오르는 케이블카 코스도 3군데나 된다.
정상에는 도로를 따라 호텔과 공묘가 있으며 최정상에는 황제가 참배하는 옥황사라는 사찰이 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시가지와 산악 경치는 황산이나 우리의 설악산 에 비길 바가 못되는 것 같다.
중국의 명산 중의 명산은 역시 황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황산은 설악산과 같이 장년기 지형의 뾰족뾰족한 산봉우리와 기암괴석이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산으로 케이블카와 암벽을 깎아 만든 계단을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지나가는 묘미가 일품이다.
장시성 쥬강시에 있는 루산은 온 산속이 도로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고 산정상에 하나의 도시가 형성되어 주거단지, 호텔군, 학교와 고산식물원, 산정호수, 장개석, 모택동, 주은래 등이 참여한 루산회의장, 소박물관 등이 산 속 군데군데 산재해 있으며 산 정상에서는 내륙 최대의 호수인 포양호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중국 남악의 하나인 헝산은 후난성 수도인 장사에 있는데 소형버스로 중턱까지 올라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이르니 절이 있고 산 속에 다양한 모양의 절과 건물 들이 숨어 있다.
난징 시내에 있는 중산릉은 중국 근대화의 영웅인 손문의 기념묘지와 동산으로 자금산이란 넓은 산의 중턱에 자리 잡고 오르는 중간중간에 거대한 돌 조형과 대문이 인상적이며 가까이에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묘인 명효릉도 있다.
홍콩의 해양공원은 바닷가에 있는 산을 잘 활용해 만든 곳으로 등산로를 대신한 에스컬레이터와 바다 주변을 감상하며 이동하는 로프웨어, 산중턱의 수족관, 물개쇼장 놀이시설 등이 있어 입지여건이 신선대와 이기대공원과 비슷하다.
북경 외곽의 롱칭샤는 뾰족 솟은 산 계곡의 협곡에 댐을 막고 호수를 만들어, 리프트로
<롱칭샤> 산 위를 연결하고 배를 띄어 호수의 배로 협곡을 둘러보는 관광지로서 성지곡수원지와 유사하다.
쿤밍의 서산에는 부산의 병풍사의 바위처럼, 바위 속을 뚫어 길을 만들고 절벽 위에는 사찰과 각종 기념물이 있고 높은 곳에서 넓은 호수와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다.
<쿤밍서산의 바윗속 길> 심양의 식물원, 난닝의 청수산풍경구에서처럼 기복이 있는 산악지형을 이용해 목재, 대나무로 미로형 통로 또는 모험놀이시설화한다면 많은 관광객의 환영을 받을 것이다.
10.북경과 상해의 스키돔
중국에는 북경의 챠오보스키돔과 상해의 은칠성스키돔이 개장해 영업을 하고 있다.
챠오보스키돔은 북경 시내 북쪽의 허허벌판에 2005년 7월 개장해,금년 1월 초,황령산스키돔 건설 회사인 (주)스포츠랜드부산의 대표,김 기재전장관님,토목,제빙,지붕 등 기술자들이 함께 방문하여 시설,설비,제빙 등 기술적인 참고를 하고 관계자들과 토론도 한 바 있다.
챠오보스키돔은 청화대학이 투자한 것으로 슬로프 길이 260m,경사 18도로 겨울이라 그런지 이용객은 별로 없었지만,지난 여름에는 많았다고 한다.겨울이 추운 북경에는 야외스키장이 5,6군데 있어 겨울에는 구태어 비싼 실내스키장을 이용할 이유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에 비해 상해의 은칠성스키돔은 슬로프 길이 380m로 겨울에도 눈이 없는 따뜻한 기후로, 4계절 이용객이 비슷한 것 같다.은칠성은 2002년 중국 처음으로 민간회사에 의해 홍챠오비행장과 가까운 번화가인 시내에 개장했지만,시설은 종전의 일본,네덜란드,독일의 스키돔과 같이,제설기,제습기,냉방공조기가 따로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챠오보스키돔은 100년의 제빙기술을 가진 캐나다 Cimco사가 제설기,제습기,냉방공조기를 통합 작동 제어관리하는 기술을 개발해 적용한 첫 스키돔으로 황령산스키돔에도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통합 관리 시스템에 의해 기자재가 컴퓨터에 의한 일괄 제어로 시설이 콤팩트해져 내부가 단정하고 에너지도 30% 정도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2000년 1월 시작된 사업이 우여곡절 끝에 6년만에 본격적으로 시작됨으로써 손실도 컸지만,후발자의 이익으로 다소 위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북경과 상해의 스키돔은 평지 위에 거대한 철구조물을 사각으로 조립해 최대 높이에서 경사를 만든 것으로 북경의 챠오보스키돔은 최대 높이의 슬로프 밑의 빈 공간에 호텔을 만들 계획이다.
그런데,황령산스키돔 예정지는 이미 18도의 경사로 약 300m 길이,폭 약 50m로 훼손된 상태에 있어, 별도의 추가 토공 비용없이 건축이 가능하므로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면 스키돔의 적지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1992년 경 일본 지바대학 유학 시절 지바현 쯔따누마시의 150m 길이의 실내스키장에서 8월 한여름에 일본 친구 시라또리와 같이, 추위 속에 스키를 즐긴 경험과 그 무렵 지바현 후나바시시의 기차역 바로 옆에 550m길이의 실내스키장 공사 현장을 보고 황령산스키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평지에 550m의 슬로프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비용으로 거대한 철구조물로 경사를 만드는데 최고 높이가 50층은 되지 않았을까?
11.한류와 한중관계
1992년 한중 국교 수립 이후 한중 관계는 최고조에 달한 느낌이다. 반면 일본과의 관계는 고이즈미총리의 야스꾸니 신사 참배로 급속히 나빠지면서 일본 유학생의 격감, 일본 기업의 퇴보 등 여러 분야에서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2005년은 항일전쟁 승리 60주년으로 연일 TV에선 장정, 팔로군 등 항일관련 드라마와 다큐멘타리를 방영하고,9월3일에는 천안문광장에서 성대한 기념식을 갖고 항일의식을 고취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와는 양국간의 무역 규모의 확대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을 찾는 한국인도 급증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의 진출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지난 해 9월 후난TV에서 방영된 "대장금"은 한류의 절정으로 공산 혁명과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잃어 버린 그들의 전통문화가 살아 있는 문화 국가로 한국을 인식하는 등 한국에 대해 친근감과 존경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 외에도 CCTV를 비롯한 각 성의 지방TV에서는 우리가 진부하다고 느꼈던 한국의 TV드라마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원탁에 앉아 식사와 술을 대접 받으면서 대학교수,지방정부 공무원들과의 주 대화 소재가 "대장금","보고또보고","인어공주" 등 나도 본 적 없는 한국드라마들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면서 한국 여자는 모두 예쁘고, 한국 남자는 술을 대체로 잘 마시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월드컵, 아시안게임을 통해 부산을 알고 있으며, 애국심이 강한 나라, 북한보다 훨씬 자유롭고 잘 사는 나라로 우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중국의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그들의 혈맹국이라는 북한의 흔적보다 삼성, LG, 현대 등 우리의 대표적인 기업들의 홍보 간판을 볼 수 있으며, 한글로 된 상점,식당 간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13억 중국인의 절반 이상은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2시간 이내인 중국의 동부 해안 지방에 거주하고 있으며 빠른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곳도 동부 해안 지역이다.
미국, 일본 등 서방 세계에서는 중국을 빠른 경제 발전과 함께, 위협적인 패권 국가로 부상할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동북공정 등에서 보는 것처럼, 1개 성보다 작은 한국을 티벳이나 내몽고와 같은 중국의 변방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시각도 생길 수 있다.
따라서, 지금처럼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중국을 활용하고 중국을 통해 살아갈 수 있는 지혜의 개발이 요구된다 하겠다.
12.부산 관광에 대한 제언
무한 경제의 WTO체제의 가속화와 함께 1등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세계화 시대이지만, 관광 분야는 1,2등의 구분도 애매하고 3,4등도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휴대폰, 자동차와 같은 제품은 품질 경쟁력이 최고가 아니면 세계 시장에서 도태되지만, 관광 분야는 꼭 세계 최고의 관광지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조금만 노력한다면, 많은 중국인을 끌어 들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1인당 평균 GNP가 낮고 해외여행에 까다로운 규제를 하고 있지만,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해외여행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나간다면, 한국은 중국인의 가까운 해외여행지로서 각광 받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부산의 관광 활성화방안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지만 손쉬운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우리 부산은 바다, 강, 산이 조화를 이룬 삼포지향의 도시라 하면서도 별로 관광자원이 없어 체류형이 아닌 경유형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어느 외국의 도시를 방문하든지, 그 도시 전체를 조망하면서 여행의 추억으로 삼고자 한다.
그래서 중국의 평지 대도시의 TV탑이 관광전망대 역할을 하는 걸 보면서, 난 황령산 정상의 각 방송 TV탑을 흉물처럼 세운 것을 늘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탑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전망시설을 한다면, 부산 앞바다,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관광 자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대공원 조성계획에 들어 있으면서도 추진되지 않고 있는 어린이대공원 입구와 백양산 정상을 잇는 케이블카 계획이 성사된다면, 많은 내외 관광객이 손쉽게 케이블카로 백양산 정상에 올라 낙동강, 가덕도 앞바다, 성지곡 호수와 숲들을 조망하는 부산의 최고의 관광전망대가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산림 훼손이 최소화되면서 민자 유치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중국 관광객이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도 한글과 한자의 병용을 더욱 확대해 길거리 간판에도 한자가 많이 포함되면 좋을 것 같다.
13.3개 외국어 정복을 목표로
국경 없는 세계화 시대에 외국어 특히 영어의 중요성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와 지리상 가까운 일본과 중국이 경제와 세계정치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봤을 때, 일어와 중국어의 중요성도 영어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업무상 관련이 없으면서도 나는 외국어에 남달리 취미가 많았던 것 같다. 고교 입학을 앞두고 일본어 단어가 신기해서 히라가나, 가타가나를 써 보고, 대학 입학을 앞두고 몇몇 한자 단어를 호기심 삼아 중국어로 발음을 해 보았을 정도로 외국어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대학 입학 후 기숙사 생활 중에 두 달간의 일본어 강좌에 대부분 도중하차했지만, 나는 하루도 안 빠지고 공부하며 다진 기초를 바탕으로 혼자서 라디오 교육방송을 들으며 매일 밥 먹듯이 조금씩 공부해 왔었다.
영어도 같은 방식으로 꾸준히 해오며, 87년 지방행정연수원 5,6급 공무원 영어교육 과정에서 1등으로 수료했지만, 기술직이기 때문에 연구 테마가 정해지는 영어권 유학은 갈 수 없었다. 비영어권의 총무처 국비유학은 풀제로 부처별 배당의 등수에 들면 가능하므로 90년 일본어시험에 합격해 2년 반의 일본유학 길에 올랐다.
일어는 이미 회화가 가능한 상태였고 오히려 일어가 유창한 한국인은 일본인들에게 우월감을 줄 뿐 역시 영어를 잘해야 인정을 받는 분위기에서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역전유학이라는 별명의 프랜차이즈 형태로 도쿄권의 전철, 기차 역 부근에 있는 영어학원 NOVA는 연중무휴로 티켓 한 장이면 오후2시부터 9시까지 시간마다 번갈아 나오는 네이티브 스피커와 회화를 할 수 있게 해 언제라도 가능한 날, 가능한 시간 동안 영어 회화를 할 수 있는 편리한 시스템이다.
매일 바쁜 일본의 직장인과 나처럼 가족이 오지 않던 고독하고 외로운 유학 초창기 토,일요일 오후 학원에 살다시피하면서 영어권 여러나라의 영어 선생, 다양한 일본인과 다양한 주제로 영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역사 문화 정치에 대한 안목도 넓히고 많은 친구도 만들었다.
2년반의 유학 기간에 120장의 티켓을 사용했으니 평균 4시간을 잡아도 480시간을 영어회화 공부에 투자한 셈이다.
당시 일본에 많은 중국 유학생들이 와 있었고 그 중 조선족 출신의 유학생 박영길과 급속히 가까워지면서 나도 중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북경에 있는 동안 그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9월 말 경 산동농업대학 교수로 있는 그와 연락이 되고 12월 초 태산 밑에 있는 그의 대학을 방문해 반갑게 재회하고 특강도 했다.
일본에서 NHK교육방송과 중국인 유학생들과 만나면서 중국어를 공부하다가 귀국 후에는 EBS강좌를 통해 늘지도 줄지도 않는 상태의 실력으로 유학 시험에 합격하고 북경에서 1년간 중국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던 것이다.
흔한 질문에 흔한 답변, 외국어 습득의 왕도는 매일 꾸준히 하는 수 밖에 없다.
나는 지금도 매일 NHK, CCTV와 Arirang 등 외국어 방송을 보면서 기왕에 배운 외국어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시청 영어회화클럽과 전화 중국어 강의를 통해 계속 공부하고 있다.
14.편집후기
첫댓글 중국이야기 좀 많이 접할 수없을까.....중국을 ....중국을 접수 할려고 생각 중인데 아직 중국에 대해서 연구 검토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