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강원도와 인접한 산림지대인 이곳은 예로부터 소나무로 유명하다. 특히 이곳의 소나무는 '춘양목'이라 별도의 명칭이 붙을 정도로 정평이 나있는데, 붉은 적송(赤松)으로 곧게 뻗고 굵어 옛부터 궁궐이나 권문세도가의 저택을 지을 때 중요한 부재로 많이 쓰이기도 했다. 때문에 '춘양목'으로 집을 지었다는 것 자체가 그 집안의 권세를 가늠하는 척도로 여겨질 정도였다고.
그런데 이곳 춘양이 유명하게 된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바로 서울에서 강릉에 이르는 중앙선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예정에 없던 역사 하나가 이곳 춘양에 갑자기 들어서게 됐던 것이다. 더구나 이곳은 유동인구나, 물류의 유통면에서 그다지 활발하지 않아 특별히 철로가 지날만한 까닭이 없었던 것.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1955년 개통된 춘양면의 춘양역사는 당시 자유당 소속으로 이지역 국회의원을 지냈던 정문흠 의원의 선거공약에 따라 예정에 없던 것을 건립하게 되었던 것. 법전역과 녹동역을 사이에 두고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간 춘양역은 보기에도 다소 부자연스럽고 기형적인 노선을 그리고 있음이 한눈에 확인 될 정도인데... 당시 정문흠 의원은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이었다니 말 그대로 '자유당 시절에 건교위 소속 의원이 역 하나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바람에 풍수지리학적으로 용이 감싸고 돈다는 이 지역에 문제의 철길이 용의 머리를 잘라 대대로 '인재'가 많이 나던 이 지역에 아직 이렇다할 '인재'(?)가 없다고 주민들은 믿고 있다. 실지로 철로가 놓이기 전의 이 지역은 전국평균에 비해 고시합격자가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예정에 없었던 역 하나를 억지로 만들어 '억지춘양'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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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대학시절. 태백산지역 민속종합조사의 일환으로 여름방학을 맞이해 봉화라는 지역을 열흘 가량 다녀왔다. 아마도 척박한 산골짜기로 기억되는 그곳에서 제법 큰 중심지로 기억되는 곳이 춘양이라는 지역이었다. 물론 '억지춘향'이란 말도 분명 있다. 하지만 또다른 억지춘양의 이야기가 실재했음을 보면서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옮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