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과 마찬가지로 아랍인들에게 있어서 결혼은 전통적으로 개인적인 일이라기보다는 가족․친족을
포함하는 집단이나 공동체 전체의 중대사로 간주합니다. 특히 아랍인에게는 결혼을 통해 혈연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집단적 목적과 이익을 추구 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아랍인들의 혼사에 있어 결혼 당사자 특히 여성의 의사는 그다지 고려 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오늘날 근대화에 따른 서구식 교육을 받은 아랍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전통적인 결혼
방식보다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해 결혼하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아랍인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결혼 관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랍인들의 결혼과 관련한 전통에서는 혈연․종교․지연의 동질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친척간의 근친 결혼과, 같은 종교 집단, 단체, 마을, 이웃 등의 범위 내에서 결혼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개인의 의사보다는 집단의 공동 목적을 우선시하는 데 그 발상을 두고 있고,
개인보다는 가족을 사회구성의 기초 단위로 보는 아랍인들의 의식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아랍인들이 생각하는 근친 결혼의 장점은 마흐르(mahr, 신랑이 신부에게 제공하는 결혼 지참금)
값이 저렴하다는 것과 친족의 범위 내에서 가족의 부와 재산을 유지하며, 혈연의 결속을 공고히 한다는 점, 그리고 신부와 그녀의 일가가 분리되는 것을 막는다는 것에 아마 그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랍인들의 근친결혼의 대표적인 예는 부계 혈족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결혼으로, 부친 형제들의
자식들 곧 사촌간에 이루어지는 결혼이 많은 편입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유형의 결혼은 부족 사회에서
동족간의 결혼을 통해 순수한 혈통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데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사실상 이에 관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부계 혈족 간의 결혼은 보수적 성향이 강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아랍인들 전체 결혼의 30% 내지 20%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아랍인들의 결혼에서의 특이한 관습으로는 마흐르가 있는데 이는 결혼시 신랑이 신부에게 선사하는
결혼 지참금을 말합니다. 마흐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혼인시에 주는 선불 방식과 결혼 이후
남편의 사망이나 이혼시에 이루어지는 후불 방식이 있습니다. 신랑 측은 이 두 방식 중 하나에 따라
지참금을 주거나, 또는 두 방식을 혼합해 금액을 나누어서 지불하는 방법을 따르기도 합니다.
아랍인들의 마흐르 관습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이슬람교에서는 이 제도를 특히 이혼이나
남편 사망시 여성을 보호하는 양속(良俗)으로 보는 반면, 서구화된 사고방식을 지닌 아랍인들은
여성에 대한 남자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간주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밖에 이를 단순히 상징적인 선물로 생각하는 아랍인들도 있습니다.
마흐르는 혼약시 필요 조건으로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결혼은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또한 원칙적으로 마흐르는 신부의 부친이나 보호자가 아닌 신부에게 직접 주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며 그 액수와 조건 등은 양측 집안의 부친들 간에 흥정을 거쳐 결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금전이 걸린 일에는 문제점이 생기는 것이 인간사이고 보면 마흐르도 그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마흐르의 문제점들 중 하나는 그 돈을 신부를 위해 쓰지 않고 빈번히 신부의 부친이나
보호자가 챙긴다는 데에 있습니다. 또다른 문제는 상승하는 마흐르의 가격입니다. 이는 물가가 오름에
따라 신부측이 보다 높은 마흐르 금액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결혼 적령기에 있는
아랍 총각들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에서 아랍인들의 전통적인 결혼방식은 일부다처제입니다. 이 제도는 남편이 다수의 아내를
평등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는 조건하에 4명까지 결혼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네가 선택해 두명,
세명, 네명의 여자와 결혼하라. 그러나 네가 아내들을 공정하게 대해줄 수 없을 것을 염려한다면
한 명의 아내만 두도록 하라"고 언급한 이슬람 경전인 꾸란 구절에 따른 것입니다.
이 관습은 장려되지는 않지만, 무슬림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여전히 지켜지고 있습니다.
일부 무슬림들은 이 관습이 간통을 막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다분히 여성을 남성의
부수물로 여기는 남성 우월적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부 다처제는
드물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부 부족장이나, 봉건적 지주, 자식이 없는 남편, 노동의 필요에 따른
일부 농민들에 국한되어 다수의 아내를 두는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이 관습이 시행되는 아랍국가들에서는 평균적으로 무슬림 남편들 중 대략 5% 이하가 한 명 이상의
아내와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리비아, 요르단, 모로코,
레바논, 이집트에서는 종교 정책 차원에서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라크, 시리아,
알제리는 조건부로 즉 남편의 경제적 능력을 고려해 이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리아는 일부다처제에
따른 결혼을 할 경우 법정(法廷)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법안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튀니지는 1956년 이를 완전히 법적으로 폐지시킨 바 있습니다.
결혼과 더불어 이혼에서도 아랍 고유의 방식이 드러납니다. 이혼은 아랍인들 중 카톨릭 교인이나
마론파 기독교(Maronite, 레바논 내 기독교파)인들 간에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슬람교에서는
이혼에 대해, 물론 바람직한 것으로는 간주하지는 않지만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에서는
두 가지 방식의 이혼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첫째 방식은 "회복가능한 이혼"인데 이는 일단 이혼을 한 뒤
3개월의 기간(이혼한 여자가 전 남편의 아이를 임신했을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간으로 3개월,
또는 4개월 10일 정도)이 경과하기 이전에 재결합을 원하는 경우 새로운 혼약이나 마흐르 없이
다시 결혼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방식은 "회복불가능한 이혼"인데 이는 이혼을 한 뒤 3개월이 지난 경우 완전히 이혼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며 이 경우 만일 재결합을 원한다면 새로운 혼약이나 마흐르가 반드시 요구됩니다.
이 외에 또다른 방식으로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과 이혼한다."는 말을 세 번 반복해 말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때는 무조건적으로 이혼이 이루어집니다.
아랍국가에서는 최근 몇십년 동안 이혼률이 증가했으며, 특히 근대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도시에서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른 문제점들 중 하나는 남편이 아내에게 쉽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으나,
반대로 여자가 이혼 의사를 나타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남편의 소홀, 학대,
가족 부양 거부, 장기간 부재, 성적 불능 등으로 인한 경우 여자는 법정의 동의를 얻어 이혼을 요구할
수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아랍여성들은 대체로 이혼시 수동적인 위치에 있으며, 이와 관련해 아랍 여성
운동가들은 이혼할 여성의 권리, 법정 밖에서의 남자측의 일방적인 이혼을 금지하기 위한 운동을
점차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