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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상반기 게시물 모음>
1. 신봉호 (2004-03-31)
해서 들어와 보았다.
그런데 카페 이름은 바꾸기 힘들겠고 카페소식에 나온 회장이란 말은 빼고
관리인은 김치훈 하고 카페 주인은 "떡도골"로 하면 되겠다.
그래야 평리동 등에서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을
것같다.
평산교회사를 적은 책도 제목이" 떡도골이야기" 다
이는 동이름을 삭제함으로써 서먹서먹하거나 어색함을 없애려는 편집자의
뜻인 듯하다.
하옇튼 카페개소를 축하한다,
많은 고향 선후배들의 사랑방이 되었으면한다.
이만 줄인다. 며칠내로 만나기를 바라면서...
2. 김치훈(2004-04-19)
제목 : 당신이 먼저…
왜?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는가?
왜? 내가 먼저 웃어주지 못하는가?
갈등과 싸움으로 입에 침을 튀기는 동안에도,
사랑을 더 주지 못하여 울부짖는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조금도 잘못이 없다고 큰소리 칠 때,
한밤에 일어나, 있지도 않는 엄마를 불러대며
통곡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등 돌리며 사는 날은 괴로운 날입니다.
서로가 마주보며 웃으며 사는 날은 행복한 날입니다.
그럴 수 있나? 분노하는 마음보다
그럴 수 있지!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사람들이 글로는 가능하나 실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로 감싸 앉기만 하면 그날부터 문제는 풀려집니다.
세상에는 작은 문제를 눈덩이처럼 키우는 이가 있고,
아무리 큰 문제도 줄여서 결국에 소멸시키는 이가 있습니다.
당신이 먼저 손을 내미십시오.
당신이 먼저 웃어 주십시오.
당신이 먼저 내어 주십시오.
- 소 천 -
3. 김치훈 (2004-04-22)
오늘 이렇게 늦은 시간 고독에 몸부림 치면서 몇자 끄적거리려 합니다.
요 며칠간 원고마감에 신경을 쓰느라 심한 몸살로 기절할 뻔 했습니다. 내 몸을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인생의 의미고 욕망이고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오로지 이 상태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염원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내 몸의 상태가 좋아야 좋은 생각이 납니다. 친절해집니다. 명랑해집니다. 관용이 생깁니다. 남을 이해할 줄 압니다. 건강해야 욕망이 생깁니다. 돈도 건강할 때 벌립니다.
나는 속으로는 몹시 재물을 원하면서 겉으로는 초연하고 군자인 체합니다.
하루는 집 사람이
"도대체 당신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냐?"라는
소리가 콤퓨터 앞에서 禪을 행하고(?) 있는 나의 등 뒤에서 들려 왔습니다.
" 책을 한 백권 정도 저술하고 죽었으면 좋겠어."
"그거 전부 짜집기 아냐?"
순간 짜증이 폭증했습니다. 아니 알만한 사람이 이렇게 빈정댈 수가 있나.
물론 그녀의 빈정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적으로 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화살이겠지요.
사실 모든 창작물이 다 짜집기입니다. 맞습니다. 나의 창작물이라는 이름하에 나온 것이 과연 얼마나 순수한 자기 것이라고 감히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좀 더 골똘히 생각해 보면 나의 사고, 나의 생각은 순전히 나의 것입니까? 신약성경 빌립보서에 보면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 생각과 내 마음은 순전히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 마저 나의 것이 아니라면 과연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내가 누구일 필요가 있는가? 창작이란 내가 남과 다른 다른 것을 증명하는 작업인데 애초에 신께서 창작을 했으므로 창작이란 없는 것이므로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내가 영어를 가지고 씨름을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의 적성과 소질로 봐서는 어학적인 면은 전혀 없었으며 지금도 항상 말을 잘 하는 사람을 보면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상황으로 다시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영어에 대한 한계를 느낄 때 마다 몇 차례 모든 영어책을 죄다 불사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영어나 언어학에 대한 지식은 모두 남의 것입니다. 앞선 선배님들의 책을 통한 짜집기 지식입니다. 가끔 회의가 들 때가 많습니다. 나는 나이고 싶지만 나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라 전문가이고 싶어하는 그래서 남들과 차별하고자 하는 욕망의 실체입니다. 내가 아는 지식이 순전히 나의 것이 아니기에 아낌없이 주는 것이 편안합니다. 나는 가끔 대학에 계신분들이 그 자리에 앉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공부와 시간을 투자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정작 그런 지식을 소수의 학생들을 위해 평생 몸을 바치는 것이 안타깝고 아깝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그런 지식을 공유하면 더 의미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과거에는 이렇게 여러 사람이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 했지만 지금 가능하지 않습니까? 자기의 전문적인 지식을 다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교수님들이 넷상에서 많은 활동을 바랍니다.
인간의 본능 중에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전달하고자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런 지식을 자기만 알고 있는 것은 본능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가끔 밤을 세워가며 자료정리을 하고 아이디어를 짜느라 며칠 밤을 고생하면서 만들어 낸 정보, 사실 그냥 주기가 아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낌없이 주십시오.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보답이 있을 것을 확신합니다.
그냥 주는 것 자체를 즐깁시다.
사랑은 주는 것이고 지식은 전달하는 것입니다.
甲申仲春
광명시 철산동 누옥에서
4. 김치훈 (2004-05-04)
서방을 팝니다
헌 서방을 팝니다
반 십 년쯤 함께 살아
단물은 빠져 덤덤 하겠지만
허우대는 아직 멀쩡합니다.
키는 6척에 조금은 미달이고
똥배라고는 할 수 없으나
허리는 솔찬히 굵은 편,
대학은 나왔으나 머리는 깡통입니다.
직장은 있으나 수입은 모릅니다.
아침에 겨우 일어나 출근하고
밤늦게 용케 찾아와 잠들면 그뿐.
잔잔한 미소 한 번,
은근한 눈길 한 번 없이
가면 가는 거고 오면 오는 거고.
포옹이니 사랑놀이니
달착지근한 눈맞힘도
바람결에 날아가버린
민들레 씨앗된 지 오래입니다.
음악이며 미술이며
영화며 연극이며
두 눈 감고 두 귀 막고
방안의 벙어리된 지 오래입니다.
연애시절의 은근함이며
신혼초야의 뜨거움이며
생일이며 결혼기념일이며
이제는 그저 덤덤할 뿐,
세월 밖으로 이미 잊혀진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일 뿐,
눈물방울 속에 아련한 무늬로 떠오르는
무지개일 뿐, 추억줄기일 뿐.
밥 먹을 때도 차 마실 때도
포근한 눈빛 한 번 주고받음 없이
신문이나 보고 텔레비나 보고,
그저 덤덤하게 한마디의 따근따끈한 말도 없고.
매너도 없고 분위기도 모르는지
그 흔한 맥주 한 잔
둘이서 나눌 기미도 없고.
일요일이나 공휴일의
들뜨는 나들이 계획도
혼자서 외출하기, 아니면 잠만 자기.
씀씀이가 헤퍼서 말도 잘해서
밖에서는 스타같이 인기 있지만
집에서는 반 벙어리,
자린고비에다 술주정꾼.
서방도 헌 서방이니
헐값에 드립니다.
사실은 빈 가슴에 바람 불고
눈 비 내리어
서방 팝니다, 헐값에 팝니다,
주정거리듯 비틀거리며 말은 하지만
가슴에는 싸한 아픔
눈물 번지고
허무감이 온몸을 휘감고 돌아
빈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서방 팝니다.
헌 서방 팝니다며 울먹입니다.
흩어진 마음,
구멍이 송송 뚫린 듯한
빈 가슴을 추스리며
안으로만 빗질하며 울먹입니다.
-- - 이향봉 시집에서.. 퍼온글- -
5. 김치훈 (2004-05-08)
가장 행복한 만남은
손수건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들 때에는 땀을 닦아 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 주니까요
가장 불행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입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 오니까요
가장 조심해야할 만남은
꽃송이같은 만남입니다.
피어 있을 때에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요
가장 비참한 만남은
건전지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다가
힘이 다 닳아 버리면 던져 버리니까요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같은 만남입니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요
6. 김치훈 (2004-05-09)
**
나이를 먹음에 따라, 철이없을 때 그렇게도 부모님들에게 매정하게 군 단편들이 자꾸 생각이 나곤합니다.
이러한 일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일입니다. 그러므로 남들이 이런
얘기를 하면 다 그런거야 하며 간단히 넘기곤 하지만 , 실상 본인들은 모두 부모님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그들에게 못되게 한 부분들이 문득문득 생각이 나 가끔 혼자 소주 한잔 하면서 눈시울을 적시곤 합니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자신이 그토록 싫어한 아버지의 모습을 나한데서 발견할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들곤합니다.
미련하게 순종하며 박복했던 어머니의 삶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겠다고 시집와서 정신없는 삶을 산 후 지금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그것과 껍질은 달라도 내용이 같음을 문득문득 느낄 때 어머니가 그토록 그리워집니다.
세월은 이렇게 사람을 순화시키고 서정적이고 감상적으로 만드나 봅니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 멋모르고 외웠던 것인데 조선시대 선조 3년에 박인로가 누구의 집을 방문했다가
대접 받은 홍시를 보고 지은 시조가 생각이 납니다.
"盤中 早紅 감이 고아도 보이나
柚子 아니라도 품엄즉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글로 서러워하나이다"
이 시조을 현대어로 풀어보면,
"소반 위에 놓인 홍시가 매우 곱게도 보이는데
유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몸에 품고 돌아갈 만도 하다마는,
(품속에) 품어 가도 반가워해 주실 분이 없으므로 그것으로 인하여 서러워합니다." 입니다.
이제 모든 것에 순응하려는 마음과 효도하려는 마음이 새로운 감정으로 싹트지만
더 이상 이런 감정을 해소시켜 줄 대상이 없어졌습니다. 목표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에게 우리들 자신을 진정한 인간과 원래의 인간으로 순화시킬 수 있는 어떤 힘을 남기셨습니다.
어떤 스님의 말처럼, 모든 사람들이 모든 말 끝에 '...구나, ....겠지, ...감사합니다'만 붙이면 평화가 온다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고 실천할 힘을 주시고 갔습니다.
나는 바빠죽겠는데
앞차는 느릿느릿 갑니다.
성질을 내지 않고...
"차가 늦게 가는구나..., 무슨 일이나 사정이 있겠지.... 나는 그로 인해 안전 운행도 하고 주변의 경치도 감상하니 이 또한 감사한 일아닌가 ...."
대구 평리동에서
2004-05-09
7. 현승호 (2004-05-13)
달이 밝다. 산사에서 내려다본 골짜기, 멀리있는 봉우리도 어렴풋 보인다.
술에취해 올라왔지만, 맑고 청아한 산사의 밤공기가 정신을 깨운다.
그녀는 바위무더기 쪽으로 사라져 잘 보이지는 않는데, 깔깔댄다.
짖까불며 폴짝 폴짝 뛰어 다닌다. 그녀도 술에취해있다.
위험 하다고 생각 되지만 말리지 않는다. 한순간 사위가 고요하다 .
바람이 위에서부터 산아래 쪽으로 내려분다.
솔바람 소리! 땀이 식어진다. 그녀를 부른다. 가희야!
메아리가 대답한다. 가희야! 가희야!
그녀가 대답한다. 왜! 또 메아리가 대답한다. 왜! 왜!
바위무더기 초입에 그녀의 샌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큰 바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문다.
풍경소리 가 갑자기 산사를 깨운다. 안개 같은 월무가 뿌옇게 피어 오른다. 내일은 비가 올것이다.
멀리 바위 위에 뭔가가 보인다. 그녀다. 넓고 평평한 바위 위에 누워 있을 것이다.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숨는다.
그녀는 계속 날 흘끔 흘끔 올려다 봤을거다. 큰 적송 뒤에숨어 그녀의 동작을 훔쳐본다.
내가 보이지 않으니 무서울거다. 이 깊은 밤에 산중산사 에 혼자 있음은,
자기야! 그녀가 날부른다.
돌무더기 위로 폴짝이며 뛰어 오는게 보인다. 나는 숨어서 지켜본다. 자기야!
그녀의 날 부름엔 울음이 베어있다. 메아리가 대답한다. 자기야!
난 웃음을 참고 있다.
그녀가 신 벗어논 곳 까지와서 샌들을 들고 두리번 거린다. 그리곤 법당으로 올라간다.
이미 밤이 깊어 처소에는 불이 꺼져있다. 그녀는 겁이나서 스님을 부른다. 스님! 스님!
난 황급히 그녀에게로 다가가 입을 막는다. 그녀가 화들짝 놀란다 앙~! 울음을 터트린다.
들고 있는 샌들로 날 마구 때린다. 그때 처소 문이 열리고,
노구의 스님이 디딤돌로 내려서며 우리를 꾸짓는다.
' 아니, 오밤중에 이깊은 절집 까지와서 떠드는게 사람이요? 아니면 도깨비요? '
내가 머리를 조아리며 합장 하고 사죄한다. 스님, 죄송합니다.....
'처사님 어여 그 아가씨 데리고 산을 내려가구려!' 예,스님,....
.법당을 벗어 나기까지 우리는 말이 없다.
그녀가 내 등에 얼굴을 가만히 댄다. 그녀를 업고 산을 내려온다. 아니, 산을 업고 내려온다.
아니, 달빛을, 솔바람을,
풍경소리를, 월무를, 부처를,........
내등을 적셔오는 그녀의 눈물이 따듯하다
8. 현승호 (2204-05-16)
눈이 왔다. 그러나, 큰길은 다녹아, 차가 다니는데는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入金 문제로 회사와 다투고 나온터여서, 기분이 우울하다.
하늘은 잔뜩찌푸려 내마음 같다. 12월의 마지막 토요일 인데도, 장사는 생각보다 되지않는다.
그냥 거리만 떠들썩하다. 차가 많이 밀려서, 손님 찾아 다니기도 힘들다.
황 사장은 공차거리(빈차로 간 거리) 가 많다며, 시말서 쓰란다, 벌써 난 3장의 시말서를 썼다.
시말서 3장이면 노조합의 없이 퇴사 당한다. 나쁜 놈들! 생각만 하면 혈압이 오른다.
카오디오 에 생상 을 꼿는다. 바이올린의 선율이 가슴아프다.
창을열어 담배를 피워문다. 쿨럭! 기침이다. 누구탓도 아니다, 다 내가 문제이다.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혈육까지 버리고 도망치듯 그 먼나라로 갔던가?
뒷차가 신경질적으로 클랙션을 울린다. T 백화점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기로 한다.
K 선배 따라 꼬박 25 시간의 비행기를 타고서 도착한 칠레.
자리를 잡으면 데려오겠다고, 어린 아들을 업은 착하기만 아내의 눈물을 뒤로하고....
K 선배와 난 건축 수리업 으로 돈을 벌었다.
그러나 난 삶에 불성실을 더했어, 술과 섹스에빠져 사업은 뒷전 이었지, 실향병 때문이라면 핑계에 지나지 않겠지만, 신은 공평한 분이라 나의 방탕함은 그리 오래 가지않았어, 닥쳐온 불행들, 짧은 환락은 끝나고 고통의 날이 시작 되었어 그때는 그 고통이 영원할것같았어 귀국 하려했으나 여비조차 없었지, 숱한 곡절끝에 만신창이가 된 난 10年만에 돌아왔다. 그렇게 K 선배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은 내 인생을 끝이 없어 보이는 나락으로 만들었다.
가족! 그들은 이미 내 가족이 아니었다.
내가 10年전 그들을 버린것이다. 무슨 낮짝으로 내가돌아왔소, 달려가겠는가 ..... 하염없이 상념에 빠져있는데 손님이탄다. 어서오세요. '아저씨 장거리 갈수 있읍니까?' 아그럼요, 어딜 가세요? 'K 군에 갈건데요 , 요금은 어느정도인가요?' 한 만원 정도면 되겠읍니다. '그럼 가 주세요.'
상념에서 빠져나와 가속 페달을 밟는다. 하루종일 밀리는 도심을 벗어나 시 외곽 으로 나가는 행운을 잡은 터라 기분이 환기 된듯했다. '아저씨! 지금 음악 라디오 예요?' 손님이 묻는다. 예! 나는 거짓말을 한다. '클래식 을 즐겨 들으시나봐요?' 또다시 손님이 묻는다. 예! 나는 대답한다. '아저씨는 택시 운전할 사람 같지않네요?!'.... 택시 운전하는 사람이 따로 있나요? 나는 되 묻는다. 침묵.... 생상의 챌로곡이 무겁게 흐른다.
잔뜩 지푸린 K 군 의 늦은 오후는 우울하다.
멀리 혹은 가까운 산들이 하얗게 눈 을 쓰고 웅크리고 있다. 어둑어둑 해지는데 나는 손님 하나 못 태우고있다. 빈 차로 돌아갈수는 없는 일이다.
시외 버스 터미널 입구에서 한없이 손님을 기다린다. 날이 차서 그런지 그놈의 촌구석에는 사람 그림자도 없다. 담배 한개피를 피우니 춥다. 차 안으로 들어가 어두워지는 바깥 풍경을 훝는다.
지금쯤 시내는 손님들로 북적 대겠지, 물론 차도 밀리겠지만. 초조해진다.
그때, 어둠속에서 승복입은 50 代의 아주머니 한사람과 키가 크고 잘생긴 40代의 스님이 날더러 묻는다. ' T 시 가지요?' 예! 나는대답한다. 두사람이 내차에 올랐다. 아주머니는 손목을 자꾸 드려다 본다. '아저씨, 우리 두사람만 태우고 가면 않될까요?' '급한데..' 그럼, 한사람의 몫을 더 내시면 지금 출발 하지요. 내가 대답했다. (시외를 운행 하게되면 요금계를 사용치 않는다. 나갈땐 흥정하고, 들어올땐 적정선 까지 요금을 4사람이 나눠내고 타고온다. 이것만 전문으로 하는 택시를 특공대 라부른다.
또다른 말로 총알택시 다.)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하고 차는 출발했다.
아주머니가 짜증섞인 목소리로 스님을 질책한다. '내가 바쁘다고, 시간없다고, 그만큼 얘기했잖아요!
스님 때문에 길 어긋나게 생겼네요.....' 스님은 무표정하게 말이 없다. 룸미러 를 통해 흘끗 흘끗 훔쳐본다. 그 보살은 계속 중얼 거린다. 나는 생각한다. 도데체, 이사람들의 관계가 무얼까?
혼란스럽다.
T 시로 접어들자 차가 많이 밀린다. 보살이 말한다, '아저씨! 스님은 시외버스 터미널 에 내려드리고, 나는 T역까지 태워 줄수 있읍니까?' 아,그럼요 ! 그렇게 하지요. 나는대답한다.
보살이 말한다. '스님, 잘좀 찾아 보세요.' 여전히 짜증섞인 투다. 스님을 그 북적대는 터미널에 내려 주고, 도심 한가운데 있는 T 역으로 향했다. '아저씨! 역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보살이 걱정스레 묻는다. 글쎄요? 토요일 저녘이라 한... 30분에서 40분쯤......
차가 많이밀린다. 내가묻는다.아주머니! 어딜 가시나요? 아주머니가 대답한다. '아뇨, 서울서 우리딸이 내려오는데 마중가는 길이예요. 그런데 늦어서...... '
한동안 말이없다. '아저씨! 이 죄많은 년도 에미라고 우리딸이 마지막으로 엄마 보러 온답니다... 흑!' 서름에 북받쳐 삼키는 울음, 보살이 가슴에 감춰둔 서러움을 꺼내 내게보인다.
저는 서울의 큰 절 에 이름있는 보살 이었읍니다. 서울의 불자라면 웬만큼은 저를 알겁니다.
다복한 가정도 있구요, 그런데 어느날 우리 절에 아까 그스님이 왔더랬습니다. 나는 그스님을 보고 그만 눈이멀었읍니다. 도무지 여태껏 살아온 것들이 다 물거품 처럼 느껴졌지요, 나는 그스님과 정분을 통하게 되었읍니다. 급기야 가족몰래 재산을 처분하고, 그 스님과 야반도주 하고야 말았읍니다.
그리고는 멀리 K군 골짜기에 절을 짓고 그 스님과 살림을 시작 했읍니다.
사람의 사랑이란게 허무하기 짝이없습디다. 그인간은 부처의 탈을쓴 마귀 였읍니다. 우리 절에오는 여신도들중에 젊고 잘생긴 여자만보면 눈이반짝이고, 어떤 수단을 쓰던지 정을통하는겁니다. 워낙 훤출해서 여자들이 쉽게 넘어가지요, 그러면 나는 질투에 눈이멀어 자주 다투게 되었지요, 공양시간에 고기반찬 올라오지 않으면 그 화상은 밥상을 냅다 법당밖으로 차버립니다. 아!... 후회한들 어쩌겠습니까?
보살은 서러움에 북받쳐 흐느낀다. 차는 중앙통에 갇혀 꿈쩍도 않는다. '기사아저씨 죄송합니다, 이렇게 할말 못할말 하게되서'....
답답했다.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워문다. K선배는 변두리 건달들에게 피살됐다. 그놈들은 K선배를 수십차례나 칼로 찔렀다. 선배가 그 싸구려 술집 앞에서 피를 쏟고있을때 난 개처럼 sex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놈들은 이웃나라로 다 도망을가고, 경찰은 이방인인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심지어 나를 취조한답시고, 보름이나 가둬놓았다.
보살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는 이제 석달을 넘기지 못한답니다. 자궁암으로 시작해서 제몸 구석구석 암이 번지지 않은곳이 없답니다. 천벌을 받았지요, 이것도 에미라고.... 제딸이 마지막으로 날 보겠다고 이 먼곳까지 내려오는데,..... 때맞춰 나오지도 못하고...' 나는 묻는다, 왜 늦으셨습니까? 조금일찍 나오지요! '그 화상이 저녘시간에하는 어린애프로 거 뭐, 개구장이 스머픈가 하는 만화본다고...조금만,조금만 하다가 늦었지뭡니까....'
T역 입구에 도착 하면서 보살은 내게 합장을 했다. 나는 하염없는 연민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무엇을 얻고자 그 먼곳까지 간걸까? 무엇을 얻고자 K선배는 피를 뿌리고, 나는 부질없는 육신에 매달렸는가? 무엇을 얻고자 저 가여운 중생은 부처를 따라 나섰나? 도데체 무엇에 도달하고자 함인가?...... 숱한 지옥중에, 無間 이라는 지옥이 있다 들었다.
나나 보살이나 그 무간 지옥에 떨어져 있는건 아닐는지?
아직 사납금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내일이면 또 시말서를 쓸것이다.내일은 또 어느 지옥을 해맬까? 佳角
9. 침묵의 춤을 (김치훈 2004-05-16)
맑디 맑은 늦은 가을 아침
촉촉한 이슬에 고개 숙인
해바라기의 여문 입술처럼
알알이 들어선 태양빛의 선율처럼
그렇게 침묵과 빛으로
당신을 노래하고 싶습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봅니다
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새의 자유로움도 황홀합니다.
밤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들이
나의 모든 생각을 얼어버리게 합니다
당신의 모든 침묵과 빛에 꼼짝 못합니다.
침묵의 춤을 추고싶습니다
빛의 춤을 추고 싶습니다
삶의 춤을 추고싶습니다.
소리 없이 어깨를 들썩입니다
내 맘속에서는 빛의 소리가 들립니다
쿵 더쿵 쿵 쿵 더쿵
더엉 덩 더엉 덩 ....
월악산 자락
고즈넉한 시골 교정에
당신의 침묵과 빛의 향연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맞이하려고
예쁜 길도 단장했습니다.
침묵으로 오세요
빛으로 오세요
하염없이 기다릴게요
2001년 늦은 가을
월악산 자락 덕천에서
10. 인생모경가 (김치훈 2004-0516)
* 다음은 복음 성가에 나오는 가사입니다. 조금은 신파조 같지만 마음에 와 닿아 옮깁니다.
* 제목 : 인생 모경가
꿈결 같은 이 세상 산다면 늘 살까
인생의 향략 좋대도 바람을 잡누나
험한 세상 고난 풍파 일장춘몽이 아닌가
슬프도다 인생들아 어디로 달려 가느냐
이팔청춘 꽃다운 시절 다 지나고
혈기방장 그 장년도 옛말이 되누나
성공실패 꿈꾸면서 웃고 우는 그 순간에
원치 않는 그 백발이 서리 휘날리누나
해와 달과 별처럼 총명하던 정신
안개 구름 듬뿍 끼어 캄캄해 지누나
모든 정욕 다 패하고 아무 낙도 없어지니
땅에 있는 이 장막은 무너질 때가 되누나
인삼녹용 좋다해도 늙는 길 못막고
진시왕의 불사약도 죽는덴 허사라
인생 한 번 죽는 것을 누가 감히 피할 소냐
분명하다 이 큰 사실 너도 나도 다 당하네
꽃이 떨어진 후에는 열매를 맺구요
엄동설한 지나면 양춘이 오누나
어둔밤 지나면 빛난 아침 오리니
이 세상을 다 지난 후 영원한 천국 오리라
근심마라 너희들은 하나님을 믿으니
또 한나를 믿으라고 주 말씀하신다
네 아버지 그 집에 있을 곳이 많다지요
기쁘도다 주님함께 영원히 함께 살리라
강 건너 편에 종소리 내 귀에 쟁쟁코
보석성에 그 광채는 눈 앞에 찬란타
앞에 가신 성도들이 주님 함께 기다리신다
어서 가지 내 고향에 할렐루야 아-멘
11.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 (김치훈 2004-05-20)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직장)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때--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때--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때--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때--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때--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나요.
25세때--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때--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때--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때--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었어.
60세때--아버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큰 소리로 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12. 동대구명 대합실에서 (김치훈 2004-05-24)
25일간의 대구 생활에서
나름대로 많은 것을 느꼈고 그 동안 단절된 그 무엇이 다소 연결이 되는 듯했다.
아직 작업은 마무리 되지 않았으나 안양에 있는 사무실의 책도 정리도 해야했고
자료도 필요한 것이 있었고, 또한 23일 일요일 내가 소속한 산악회에서의 덕유산 산행도
무척 가고 싶었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즐기자라는 사고를 갖게 된 것 같다.
하루에 10시간 가량 컴 앞에 앉아 있는 것도 즐기고, 허공에 메아리 치는 봉호 형의
끊임 없는 논리성에 대한 집착도 즐기고, 나 자신의 많은 약점도 그것들이 있음을
즐기고, 겉으론 돈에 대해 초연한 체하지만 속으로는 좀팽이처럼 구는 자신도 귀엽고,
세상을 대하고, 세상과 타협하는 각자의 여러 다양한 방식들을 보고, 느끼고, 듣는 것도
나에게는 새롭기만 하다.
그렇다
삶이란 호기심이다.
................
동대구 역 방향의 242번을 유진장 근방의 정류장에서 부랴부랴 탔다.
왼쪽에는 노트북을 어깨에는 sack을 오른 손엔 열댓권의 책이 묶여
들려 있었다. 무척 촌스러운 모습이었다.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목적지 까지 다소 시간이 걸려 조금은 지루했다.
나는 평소 습관이 예약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냥 가는거다. 두 시간고 세 시간이고 언제든지 기다릴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또 차를 타고 간다든가 어디 한 군데서 목적없이 앉아 있는데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한 것을 즐긴다.
4시 30쯤 도착해서 광명가는 KTX 편을 문의해 보니 딱 1장 그것도 두 시간 후 출발이었다.
ticketing을 담당하는 아가씨가 참 상냥하고 이뻐 보였다. 나도 저런 딸이나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아니 본심은 한번 품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이렇게 표현되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열차표를 카드로 긁었다. 신기하기도 했다.
돈이 나를 만든다. 돈은 피다. 피를 많이 흘리면 죽는다.
대합실 의자에 위치하고 1시간 쯤 책을 보다가
담배가 마려워 옆에 있는 지긋한 아저씨에 부탁하려고 하는 순간 그 아저씨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금 기다렸다. 노트북이 있어 섣불리 자리를 뜰 용기가 없었다.
조금 후 왠 아줌마 둘이 옆에 앉는다.
그제서야 짐을 부탁하고 일어 서려는데
"그 많은 책을 어떻게 가지고 가세요?" 한다.
" 뭐, 제가 들고 가나요, 차가 실어주지요."
"그래도 ..."
담배를 피우고 오니
자꾸 말을 걸고 싶어하는 눈치다.
"서울 가세요?"
"예, 그쪽도 서울 가세요?"
"아네요, 포항 갑니다. 근데, 뭐하세요"
"아, 뭐 그냥 책 작업합니다."
"책은 산골 같은 조용한데서 쓰죠?"
"뭐,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포항 어디 사세요?"
" 죽 xx에 삽니다."
"나도 포항에 한 번 간 일이 .. 거.. 오 무슨 절이던데" 순간 그 옛날 무슨 한울회인가에서
포항가서 모기밥이 된 기억이 났다.
" 아, 오어사요? 그 밑에 못도 큰 거있어요."
그러더니 수첩을 꺼내더니 포스트잇에 무엇을 주섬주섬 적는다.
전화 번호와 이름을 적어 거내주면서 포항에 오면 전화 한번 하란다.
그러면서 찢어버리지 말라는 당부까지 하고 열차를 타기 위해 일어선다.
.......
아주 명랑한 여인 같다.
.....
요새는 남자가 하는 역할을 여자가 다 하는 것 같다.
13. 내생은 민박이었다(신봉호 2004-05-24)
민박- 이재무 부분-
내 생은 민박이었다
뜨내기 생들이 잠시 유숙하는 곳.
情은 넝마와도 같은 곳
미련이며 집착은 땀 흘린 등에
달라붙는 넝닝구처럼 갈 길은 불편할 뿐이다
사방 벽면에 누군가 남긴 얼룩과 낙서
읽으며 짐을 풀고 묶었다
새로운 풍경은 낯이 익기도 전에 진부해졌다
사연이 많은 여인과의 사랑은 곧 시들해졌다
세상은 가도, 가도 바가지 요금이더라
외상은 허용되지 않았고, 집요하게 주소지를
따라다니는 고지서들,
투명한 피부를 가진 생의 장기 투숙자들이
나는 부러웠다 마음이 정주할 집 한 채
평생 나는 짓지 못할 것이다.
14. 묵은 사집첩을 정리하면서 (김치훈 2004-05-25)
안녕하세요?
대구에서 공수해온 추억의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여러 가지 상념에 젖습니다.
사진을 승호와 봉호형에게 대구에 있을 때 미리 건내 받았지만 그쪽에는 scanner가
없어서 디카로 찍어서 올리려 했으나 사진기의 flash에 반사되어 원하는 그림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서울에 올라와 사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로 참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급변하고, 세월이 쏜살같지만 이것은 겉 모습이고 잘 차려입은 옷입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고 잘 드러나지 않는 속내에는 우리를 찡하게 하고, 삶을 의미있게 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
묵은 사진첩을 들추고 있노라니
까닭 모르는 슬픔이
왈칵, 내 몸에 배어 옵니다
기쁜 얼굴도 그렇고
웃고 있는 얼굴도 그렇고
가만히 입 다물고 있는 얼굴도 그렇고
슬픈 얼굴은 더욱
슬프게 다가옵니다
기억 밖에 아주 묻혀 버린 얼굴들
기억 내에 아직 머물고 있는 얼굴들
어렴풋이 그때 그 시절, 생각나는 얼굴들
사진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핑 돕니다.
**
앞으로 우리들의 이카페를 더욱 알차게 꾸며 나가보려고 합니다.
회원들이 가지고 있는 추억을 사진들을 많이 올려놓으시고 그 밖의
자료들 (서신, 이북 고향과 관련한 것 등등)을 가지고 계시면 보내주시던가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사진 올리는 법에 익숙하지 않은 회원들을 위해 올리는 법을 자료실에
올려놓겠습니다.
사진 작업이란 게 시간이 걸리는 것이므로 한꺼번에 하기는 힘들 것 같고
틈나는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봉호형은 메일로 나에게 입당하지 않은 회원들의
핸드폰 전화번호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일괄 문자를 때리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광명시 철산동 새벽에
김치훈
15. 명일우작 (김치훈 2004-05-27)
明日又作
病時猶未剛辭酒 死日方知始放觴
醒在人間何有味 醉歸天上信爲良
병중에도 오히려 술을 사양하지 못하니
죽는 날에 가서야 술잔을 놓으리라
깨어서 살아간들 무슨 재미있으랴
취하여 하늘로 가는 것이 좋을씨고
白雲 李奎報(1168-1241)
16. 가끔 나무처럼 살고 싶다 (김치훈 2004-05-28)
가끔은 나무처럼 살고 싶다
미국의 심리학 박사 리처드 칼슨은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끝없이 뒤로 미루면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매순간, '언젠가는' 행복해 지리라 믿으며 힘겨운 하루 하루를 보낸다.
지불해야 할 청구서가 다 해결되고, 지겹기만 한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거나 열심히
일해서 일찍 승진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또 다른 일들이 해결되면 삶이 즐거워질 것이라고 자신에게 타이른다.
최선을 다한 후, 좋은 차를 사고, 멋진 휴가를 떠나고,
결국에는 은퇴를 했을 때 비로소 완전해 지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행복에의 기대만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러는 가운데 인생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하지만 실제로는, 행복을 움켜잡기에 '지금'보다 더 나은 때는 없다.
지금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때가 언제란 말인가?
인생에는 항상 어려운 도전들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이 점을 받아들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해 지기
'결심'하는것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끊임없이 기다리기만 하다가 한 평생을 보내게 된다면
그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헛된 기다림이다.
시간적 물질적인 기다림이 아닌 마음이 더해가고 정신적인 노력이
들어가지 않는 기다림은 의미가 없다.
아니 그 의미가 오래가지 못한다고 해야 옳겠다.
삶은 과정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고 마지막에 도착하는 곳은 무덤뿐이다.
"중요한 것은 네가 무엇을 향해 가느냐 하는 것이지,
어디에 도착하느냐가 아니다.
인간은 죽음 이외의 그 어떤 곳에도 도착하지 않는다."
광명시 철산동에서
17. 목화밭 (현승호 2004-05-28)
패러디!
알수없는 흥얼거림으로,
어둡고 긴 골목을 지나가는 世月
또한, 알수없는 안개 숲 사이로 방황하는
우리들의 孤獨.
모호한 時間속을 나는 流泳 한다.
보라! 지극히 데폼 된 우리들의 삶 위로
하이얀 엑토플라즘 의 연기를.
깨어 있는 者 만이 죽음의 잠위에 군림 하고....
그러나 모두는, 거부 하고, 끌려간다. 끌려간다.
아마도 구름이 닿는,
아니면 훨씬 더 높은 山 위에 오래전 살았던 기억들,
혹은 살아야 할 것들의 片璘 들이
어둠의 時間 속에서 彷徨 하고,
그번득이는 殺害慾 때문에
나는 四角 의密閉 된 空間속의 時間이 괴롭다.
바람이 풀잎 들을 깨우고,
나는 목화밭 섶에 서서 따가운 햇살 을 받고 있었지.
그때,
태양은, 목화를 열어 그 大地 의 子宮 속으로
씨앗 들을 떨어뜨리고,
나는 너무나 한적한, 또는 그로데스크 한
그 태양 의 언덕 위에, 오래토록 서있었다.
18. 바람의 노래 (현승호 2004-05-28)
내가 그걸 생각해 낸때는 무더운 한 여름밤 이었어.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지. 여러개의 빈병이 베란다 난간에 놓여있었는데, 그것들이 울기 시작 했어.
말하자면 바람이 병들을 울리기 시작 했다고 하는게 정확한 표현 일거야.
당신 들도 아마 병주둥이 대고 피리를 불어본 추억이 있을 거야. 그 여러개의 병들이 노래를 불렀어. 그건, 아주 心美的 소리였지. 나는 보다 나은 방법을 생각해 냈어.
바람을 모은 다음 그것을 무작위의 대롱 들에게 보내는 장치를 만든거야.
그 장치는 마치 풍향계 와 비슷한 원리지만 아름다운 팬플룻 의 소리를 선사 했어.
난 그걸 대량 생산 했지 물론 전 재산을 털어서 말이지.
집 집 마다 지붕 장식 으로 그걸 달기 시작 했어 中世 에는 닭 모양의 장식이 宗敎的 이유로 유행 했지만, 現世紀 엔 소리나는 장식이 유행을 타는 거야, 지붕위의 피리는 사람들의 자랑 거리가 되어 온 나라가 그 피리소리 로 즐거워 했지.
나는 그 덕에 유명 인사가 되고 많은 돈을 벌게 되었어 저택 에다, 좋은 차,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도 얻었다. 행복한 世月 이 흘렀어, 그러나 어느날인가 부터 우리 나라 에는 바람이 끊임없이 드세게 불기 시작 했어 그것도 한 방향으로 만 말이야.
그 지붕위 의 피리 들은 일제히 한 소리 만을 내게 되었어 그것은 사람들 에게 恐怖感 을 불러오고,
心理的 安靜感 을 잃어 버리게 했지. 생각을 해봐, 都市 가 어떤 고음의 소리로만 가득 찬다는건 사람들 에겐 괴로운 일이었어. 이윽고 사람들은 그 피리장치 를 떼어냈지 물론 나는 집과 아름다운 아내 조차 버리고 夜半跳走 했어, 그都市로 부터....
그 나라 에선 어떠한 피리도 불지 않았어 몇몇 의 악동 들이 피리를 불다가 바람언덕 에서 효수 되었어. 그나라에는 피리가 하나도 남지 않았지 하지만 다양성 을 지키기 위한 無慈非한 暴力은 또다른 多樣性 을 파괴하고 있다는 걸 아는데는 그리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피리가 빠진 오케스트라와 피리가없는 협주곡, 실내악, 피리가 빠진 많은 음악들, 생각해봐! 숱한 大家들의 名作들이 死葬 되고 있었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틈엔가 웃음을 잃어버린 自身 들을 발견 한거야. 뜻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어 그리고 용감하게 피리를 만들어 불기 시작했지,
아직도 그나라엔 바람이 한방향 으로만 불고있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길로 가고있지.
나? 난 오늘도 옥상 난간에서 술을 마시고 있지 피리? 피리는 아냐. 기타아를 퉁기면서 말이야,
뭐랄까!? 다양성에 대한 연구를, 愚昧와 無智한 群衆에 대해, 狡猾함과 治世에 대해,
떠나온 아름다운 아내에대해.......
佳角.
19. 취하고 싶은 것도 하나의 이유다 (김치훈 2004-06-01)
**
자고이래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취하고 싶어했을까?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정말 많다. 그러나 눈물과 웃음소리가
그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왜냐면 사람이 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한가지 뿐이기 때문이다. 바로 정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酒神과 愛神은 부부가 아니라 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거나 달콤하거나 좋아서 웃을 때 당신은 취하고 싶어하며,
괴롭거나 고통스럽거나 눈물이 흐를 때는 더욱 취하고 싶어한다.
만약 인류생애에 정이 없었다면 절대로 술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설탕은 달고, 식초는 시고, 약은 쓰고, 고추는 맵고, 꽃은 향기롭다.
그렇다면 술은 어떤 맛일까? 술은 달기도 하고 달지 않기도 하고, 시기도 하고
시지 않기도 하고, 쓰기도 하고 쓰지 않기도 하고, 술의 맛은 어떤 것도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정에 여러 맛이 있듯이 '술'도 여러 맛이 있다.
그래서 "술맛이 어떠냐?"는 질문에 가장 좋은 답은 "당신 마음속에 새겨진 맛이 어떤
맛인데요?"하고 묻는 것이다. 마음이 단 맛일 때는 달게 느끼고 쓴 맛일 때는 쓰게
느낄 것이다.
취하고 싶은 것은, 사실 어떤 때는 울고 싶어서이고 어떤 때는 웃고 싶어서이다.
그래서술을 마시는 것은 밥을 먹는 것과 같이 결코 단순한 생리적 욕구와는 다르다.
시인은 정이 많다. 그래서 항상 취하고 싶어 한다. 꽃이 피고 지고, 봄이 오고 가고,
기쁘고 슬프고, 만나고 해어지고, 웃고 울고, 태어나고 죽는 것, 이 모든 때가 취하고
싶은 때문이다. 그들이 술잔을 들어 남김없이 마셔버리는 것은 사실 그들이 정이 있는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난 '飮酒詩'를 진지하게 읽으려 한다. 시인은 술잔에 마음과 인생을 담는다.
결국 "취해 사막에 누워있음을 그대 비웃지 마소"하는 왕한의 비가를 듣는 것 같고,
"혼자 마시니 같이할 상대가 없다"는 이백의 고독을, "저녁에 깨어보니 아무 일도 없구나"
하는 소동파의 한적함을 보는 듯하다. 이에 나도 술잔을 들어 거울과 같은 술에
내 자신의 웃고 우는 영혼을 비쳐보고 싶어진다.
당신을 어떤가? 취하고 싶지 않은가! 취하고 싶다면 술 한잔을 비우고 음주시 몇 편을
읽어보기 바라네. 그 후 술맛이 어쩐지 나에게 얘기해 주길 바라네...
-안양곤 (대만 중앙대 교수)의 술의 미학 중에서-
20. 산길을 가며 (신봉호 2004-06-04)
긑없는 번민
꽃은 산속의 달력이요
바람은 고요속의 손님일세
花是山中曆 風爲靜裏賓
悶極
산길을 가며
아이는 잠자리 잡고 영감은 울타리를 손질하고
작은 시내 보물엔 가마우지 멱을 감네
푸른 산도 끊어진 곳, 갈길은 멀어라
등나무 가지 하나 등에 걸머지고 있네
兒捕 翁補籬 小溪春水浴 驚
靑山斷處歸程遠 橫擔鳥藤一箇枝
山行卽事
學生諸未十 先生來不不謁
학생은 열도 안되는 데 선생은 오지 않았구나.
二十樹下三十客 四十村家五十食
스무나무 아래 서로운 객이 망할 놈의 동네에서 쉰밥을 먹었구나
梅月堂 金時習 (1435-93)
21. 목마와 숙녀
목마와 숙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生涯)와 목마(木馬)를 타고 떠난 숙녀(淑女)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傷心)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少女)는 정원(庭園)의 초목(草木) 옆에서 자라고 문학(文學)이 죽고 인생(人生)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木馬)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作別)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燈臺)……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未來)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木馬) 소리를 기억(記憶)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意識)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人生)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잡지(雜誌)의 표지(表紙)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박인환 詩 박인희 낭송
22.
그리움
섬과 섬사이에는 눈물이 있고
꽃과 꽃 사이에는 나비가 있고
별과 별사이에는 작은 어둠이 있습니다.
가도 가도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수평선 너머 같은
그대
그대와 나 사이엔 그리움이 있습니다.
-김현태-
23.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24. 신혜숙 매일 신문 기사 (2004-06-14)
나홀로 창업 신혜숙씨
주부 신혜숙(47)씨는 취미를 직업으로 키웠다.
.
그리고 창업 일년 만에 월 1천여만원의 고정 매출 실적을 기록하는 사업가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
신씨는 꽃을 이용해 돈을 번다.
.
국내에서는 아직 여성들의 취미활동 분야로만 인식되는 압화(프레스드 플라워, Pressed Flower)가 창업 아이템. 생화를 채취해 눌러 건조시킨 뒤 새롭게 배열, 컵받이·액자·열쇠고리·가구 등 각종 생활소품에 부착하는 공예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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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외도' 해상관광공원, 대구 두류관광정보센터 등의 판매 코너에 고정 납품하고, 최근엔 개인의 구매 요청도 조금씩 늘어 혼자서는 주문량을 감당하기 다소 벅찰 정도. 원자재 구입비 등을 빼고 남는 순수익은 월 400여만원이라고 했다.
.
혼자서 모든 공정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데다 우수 창업 아이템으로 선정돼 여성경제인협회 창업보육센터에 작업장이 입주함으로써 점포 임차료 부담도 거의 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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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품은 부가가치가 높아 제 상품을 갖고 가는 곳들이 다행히 모두 현금 결제까지 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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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는 잘 몰랐지만 돈이 빨리 돌아 사업이 비교적 일찍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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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부터 대구시내의 주부 대상 문화센터를 찾아 다니며 취미활동을 해 왔다는 신씨는 그곳에서 압화를 배우고 상업화도 생각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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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창업을 생각한 것은 2000년 말. 이후 서울 등 국내는 물론 일본·캐나다까지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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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화가 발전해 있는 일본에는 무려 5번이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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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를 못하면서 무턱대고 찾아 갔다가 말이 안 통해 손짓 발짓을 동원해야 했고, 관련 서적 한 권을 구하려 종일을 쏘다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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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 봐도 여전히 작품 중심이었습니다. 상품화된 경우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요. 그때 옳거니 싶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선진국에서조차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으니 앞으로 전망이 밝겠다는 확신을 얻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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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는 작년 4월 집에서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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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청 자금 2천만원 등 필요한 창업자금 4천만원을 모두 대출을 통해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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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데다 원자재 구입비만 준비해도 창업이 가능한 아이템이어서 그야말로 소자본 창업을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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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사업체를 차리고 나니까 사 가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됐습니다. 손수 만들고 판로 개척까지 혼자서 하려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사업하는 남편을 설득해 주말·휴일마다 외지로 돌아다녔지요. 몇 달 뒤 외도 해상관광공원에서 제 물건을 보더니 월 500만원 어치를 고정적으로 사겠다고 합디다. 대박이 터졌던 셈이지요. 사실 창업 초기엔 반찬 값이나 벌면 만족스럽겠다고도 생각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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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삼아 재미로 할 때는 예쁘게 나오던 작품이 막상 상품화하려니 잘 안돼 적잖은 시행착오도 겪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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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잘 말려야 예쁜 색깔이 나오는데 작년 여름 장마철에 작업하니 색깔이 자꾸 변하더라고요. 전기로 말리는 기계까지 샀지만 잘 안됐습니다. 결국 다시 모든 공정을 손으로 하기 시작했지요. 지난 여름엔 코피까지 자주 흘려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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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꽃, 귀한 꽃을 확보해 두는 일은 신씨의 사업에 중요한 일. 그래서 매일 칠성시장 꽃시장을 둘러보러 나가고, 시간만 나면 산에 오른다고 했다. 산에서는 귀한 들꽃을 만날 수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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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할미꽃도 보기 힘듭니다. 쇠뜨기, 제비꽃, 냉이꽃도 마찬가지예요. 원료 확보가 제 사업의 관건이니 그런 꽃을 만나면 얼른 `잡아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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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는 꽃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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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시작한 후 원예치료사 자격을 땄고 요즘은 야간대학 원예과에 다니고 있다. 공부하지 않으면 돈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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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절차와 경영을 알기 위해서도 공부해야 하지요. 그 다음엔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야겠고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인기 학과 비인기 학과가 따로 있다고들 합니다만 원예학과도 인기학과일 수 있습니다. 자기 하기 나름이지 않겠습니까".
.
신씨는 하찮게 보이는 꽃도 상품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신씨는 경주엑스포, 대구U대회 등을 통해 자신의 상품을 외국인에게 알려 수출길도 뚫을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를 알리는 기념품으로 손색 없다는 자부심도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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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TRA도 찾아볼 계획입니다. 살림 하는 `엄마'도 아이디어를 살리면 얼마든지 `수출 역군'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신씨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053)355-3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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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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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신혜숙(47)씨는 취미를 직업으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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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창업 일년 만에 월 1천여만원의 고정 매출 실적을 기록하는 사업가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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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는 꽃을 이용해 돈을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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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아직 여성들의 취미활동 분야로만 인식되는 압화(프레스드 플라워, Pressed Flower)가 창업 아이템. 생화를 채취해 눌러 건조시킨 뒤 새롭게 배열, 컵받이·액자·열쇠고리·가구 등 각종 생활소품에 부착하는 공예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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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외도' 해상관광공원, 대구 두류관광정보센터 등의 판매 코너에 고정 납품하고, 최근엔 개인의 구매 요청도 조금씩 늘어 혼자서는 주문량을 감당하기 다소 벅찰 정도. 원자재 구입비 등을 빼고 남는 순수익은 월 400여만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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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모든 공정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데다 우수 창업 아이템으로 선정돼 여성경제인협회 창업보육센터에 작업장이 입주함으로써 점포 임차료 부담도 거의 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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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품은 부가가치가 높아 제 상품을 갖고 가는 곳들이 다행히 모두 현금 결제까지 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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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는 잘 몰랐지만 돈이 빨리 돌아 사업이 비교적 일찍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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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부터 대구시내의 주부 대상 문화센터를 찾아 다니며 취미활동을 해 왔다는 신씨는 그곳에서 압화를 배우고 상업화도 생각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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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창업을 생각한 것은 2000년 말. 이후 서울 등 국내는 물론 일본·캐나다까지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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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화가 발전해 있는 일본에는 무려 5번이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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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를 못하면서 무턱대고 찾아 갔다가 말이 안 통해 손짓 발짓을 동원해야 했고, 관련 서적 한 권을 구하려 종일을 쏘다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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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 봐도 여전히 작품 중심이었습니다. 상품화된 경우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요. 그때 옳거니 싶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선진국에서조차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으니 앞으로 전망이 밝겠다는 확신을 얻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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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는 작년 4월 집에서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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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청 자금 2천만원 등 필요한 창업자금 4천만원을 모두 대출을 통해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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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데다 원자재 구입비만 준비해도 창업이 가능한 아이템이어서 그야말로 소자본 창업을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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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사업체를 차리고 나니까 사 가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됐습니다. 손수 만들고 판로 개척까지 혼자서 하려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사업하는 남편을 설득해 주말·휴일마다 외지로 돌아다녔지요. 몇 달 뒤 외도 해상관광공원에서 제 물건을 보더니 월 500만원 어치를 고정적으로 사겠다고 합디다. 대박이 터졌던 셈이지요. 사실 창업 초기엔 반찬 값이나 벌면 만족스럽겠다고도 생각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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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삼아 재미로 할 때는 예쁘게 나오던 작품이 막상 상품화하려니 잘 안돼 적잖은 시행착오도 겪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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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잘 말려야 예쁜 색깔이 나오는데 작년 여름 장마철에 작업하니 색깔이 자꾸 변하더라고요. 전기로 말리는 기계까지 샀지만 잘 안됐습니다. 결국 다시 모든 공정을 손으로 하기 시작했지요. 지난 여름엔 코피까지 자주 흘려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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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꽃, 귀한 꽃을 확보해 두는 일은 신씨의 사업에 중요한 일. 그래서 매일 칠성시장 꽃시장을 둘러보러 나가고, 시간만 나면 산에 오른다고 했다. 산에서는 귀한 들꽃을 만날 수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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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할미꽃도 보기 힘듭니다. 쇠뜨기, 제비꽃, 냉이꽃도 마찬가지예요. 원료 확보가 제 사업의 관건이니 그런 꽃을 만나면 얼른 `잡아놔야' 합니다".
.
신씨는 꽃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했다.
.
사업을 시작한 후 원예치료사 자격을 땄고 요즘은 야간대학 원예과에 다니고 있다. 공부하지 않으면 돈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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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절차와 경영을 알기 위해서도 공부해야 하지요. 그 다음엔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야겠고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인기 학과 비인기 학과가 따로 있다고들 합니다만 원예학과도 인기학과일 수 있습니다. 자기 하기 나름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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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는 하찮게 보이는 꽃도 상품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신씨는 경주엑스포, 대구U대회 등을 통해 자신의 상품을 외국인에게 알려 수출길도 뚫을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를 알리는 기념품으로 손색 없다는 자부심도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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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TRA도 찾아볼 계획입니다. 살림 하는 `엄마'도 아이디어를 살리면 얼마든지 `수출 역군'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신씨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053)355-3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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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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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신모계 사회가 다가온다.
디지털 시대, ‘신모계사회’가 온다
미디어다음 /심규진, 조혜은 기자
가족 붕괴 후, 여성 가장 늘어
양육에 대한 책임, 위기 관리 능력 여성이 우위
거리에 쓰러져있는 남성 노숙자, 남편의 가출, 외도 등의 이유로 아이들을 실질적으로 맡아 키우고 있는 여성이 늘고 있다.ⓒ미디어다음 김준진
“남편에 대한 원망과 실의에 잠겨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는 무기력 상태였죠. 지금은 독하게 마음먹고 고생해서 빨리 두 아이들과 보금자리를 꾸리고 싶다는 마음 뿐입니다.”
인천에 사는 곽모씨(40)는 남편의 사업 실패 후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식당에 취직했다. 숙식이 해결되는 식당에서 일하며 얻는 수입은 한달 백만원 정도. 남편은 1년전 부도를 낸 후 가출해 이혼 수속도 하지 못하고 있다. 10살, 12살짜리 아이 둘은 친정에 맡겼다. 곽씨는 “지금은 사정이 어려워 한 달에 한 번 아이들을 만나지만 빨리 기반을 잡아 함께 살고싶다”며 “재혼을 하더라도 아이들과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정이 붕괴된 후 여성이 가정을 책임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은 “경제적 이유가 이혼의 주 요인이라고 전제했을 때, 양육권을 어머니가 갖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말한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여성 가구주의 비율은 1980년 14.7%에서 2000년 18.5%, 2003년 19.1%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곽씨의 경우와 같이 남편의 가출 등으로 인해 여성이 실질적 가장 역할을 경우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과거에는 이혼하거나 남편과 사별한 여성이 재혼을 하지 않고 아이들을 키우며 편모 가정으로 사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아이가 딸린 채 재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혼과 재혼 등의 과정에서 여성이 아이를 맡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여성이 가정이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이다.
13살 때 부모가 이혼한 조모(27)씨도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조씨의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 알코올 중독과 함께 어머니를 구타하는 일이 잦았고, 참다 못한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했다고 한다. 조씨의 어머니 신모(50)씨는 이혼 후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해 고향인 광주를 떠나 서울에 정착했다. 조씨는 고등학교 때까지 아버지, 새어머니와 지냈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경제적 부양 능력이 있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됐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살고 있을 때도 학비는 어머니가 주셨죠. 어머니도 재혼을 하셨지만 새아버지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저와 동생을 친 자식 대하듯 해 주셨어요. 아버지가 얼마나 구타가 심했는지 알기 때문에 어머니를 이해했고 원망한 적도 없었습니다.”
모계 사회의 또다른 징후 - ‘처가살이’ 증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외가에서 크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미디어다음 김준진
일반적인 가정 중에 외가 중심의 육아가 이뤄지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외가 중심 육아 역시 여성 중심의 생활의 일종.
공무원인 최모(34, 전주)씨는 2세 양육 문제로 고민하다 친정 바로 옆에 신혼집을 얻었다. "한달에 50만원씩 양육비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양육 문제를 손쉽게 해결했지요”
은행원인 남편도 사실상의 처가살이에 만족감을 나타낸다. “아내가 직장일로 바쁠 때가 많은데 장모님께서 따뜻한 저녁상이라도 차려주시면 그렇게 고마울 때가 없지요.”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신모(38, 서울시 마포구)씨는 올해로 처가와 위층, 아래층으로 산지 5년째다. 사업실패로 갈 곳이 없어진 뒤 어쩔 수 없이 장인 장모의 집에 세를 들어 살게 된 것. 위층 아래층 살다 보니 아이들은 어디가 누구의 집인지도 모를 만큼 자주 오가며 지낸다. “친가 식구들이 단촐 했지만, 외가에는 식구가 많아 아이들이 크는데 더 안정적입니다. 양육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화장실과 처가는 멀수록 좋다’는 속담은 이제 옛말이다. 양육과 생활을 위해 ‘처가 앞으로!’를 외치는 맞벌이 가정이 갈수록 늘고 있다. 양육 문제로 시댁에 들어가 사는 가정 중 상당수가 아이 문제나 생활비 문제 등 고부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데 반해 처가살이를 택할 경우에는 갈등 요소를 상당 부분 피할 수 있다.
여성부가 한국여성개발원에 의뢰해 발표한 ‘2003 전국가족조사’에 따르면 아내의 부모(18.1%)가 남편의 부모(11.1%)보다 경제적 지원을 많이 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의논상대가 되어주는 등 정서적 의존도 역시 남편의 형제가 4.2%인데 비해 아내의 형제는 22.6%로 월등히 높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가장 가깝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도, 힘든 일이 있을 때 제일 의지가 되는 곳도 친가보다는 ‘외가’라는 것이다. 이처럼 가정의 외가에 의존도 증가는 처가 중심, 모계 중심 생활유형의 등장을 알리고 있다.
디지털 유목 사회는 원시 시대로의 회귀?
전문가들 “원시적 모계 사회 부활의 조짐이 보인다” 한 목소리
김종래 조선일보 부국장의 저서 '우마드'는 "유동적이고 변화 무쌍한 사회는 남성 중심을 여성 중심으로, ‘신 모계 사회’로 바꾸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 출처='우마드'
가부장적 가족 이후의 새로운 가정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어떤 변화가 생겨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몇몇 전문가들은 여성이 아이들의 양육을 책임지고, 각 가정이 외가에 의존하는 경향을 통해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새롭게 등장하는 ‘신모계사회’의 시작을 발견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신 모계 사회의 징후로 사실혼 증가로 인한 ‘결혼 제도의 붕괴’, 정보 디지털 사회가 초래한 ‘신 유목민 사회’를 제시하고 있다.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던 한나라당 대변인 전여옥씨는 “지금 전세계는 모계사회로 진행 중”이라며 “여성을 중심으로 가족제도의 판이 새롭게 짜이고 있으며, 여성을 중심으로 남성은 원시수렵시대처럼 왔다가 가고, 또 오는 그런 모계사회가 다가올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북유럽과 서유럽에서 보편화된 사실혼제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미래학자이자 광고학자인 자크 시겔라는 ‘미래는 밝다(Le futur a de l'avenir)’라는 책에서 21세기를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가 그리고 있는 미래 사회의 모습의 주된 특징 중 하나도 바로 ‘모계사회’다. 그는 “20세기 들어서 치열해진 여권신장은 남녀간의 주도권 싸움이었으며 여권신장은 여성지배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마 민족인 몽골족과 우리 민족의 유사성을 분석하며 ‘한국형 노마드’ 이론의 전도사로 불리는 조선일보 김종래 편집부국장은 최근 ‘우마드’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신 모계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고 전망했다.
우마드(womad)란 여성(woman)과 유목민(nomad) 를 합성한 단어. 김부국장은 ‘우마드’라는 책에서 “아날로그 사회는 디지털과 인터넷 사회로 바뀌고 있고, 정착민 사회는 ‘도시유목민 사회’로 탈바꿈했다. 유동적이고 변화 무쌍한 사회는 남성 중심을 여성 중심으로, ‘신모계사회’로 바꾸고 있다”고 전망했다. 김 부국장의 전망에는 한국 여성들의 포용력과 모성애에 기반한 ‘수평적 리더쉽’, 아줌마들의 ‘수다’에서 나타나는 왕성한 정보욕구 등이 디지털 유목민 사회에 적합하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인류가 다시 모계사회로 돌아가고 있다는 주장은 인류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주장과 일치한다. ‘중국 티벳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의 저자 이경자씨는 “남성 가부장 사회는 자연의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며 "완전히 모계 사회라 단정 지을 수 없다해도, 지금 한국사회는 내면에서 무언가 변화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씨는 새로운 변화에 대해 "경직에서 유연함으로 변화되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며 "경직은 남성성, 유연성을 여성성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모계사회로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유연함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26.
그런 날이 있었지
신효정
그런 날이 있었지
눈물나게 그대 바라만 보고,
차마 꺾지 못할
시린 꽃이던
두고 갈 수 없어서
지키고 서서
그대 그림자나 되고 싶었던
그런 날이 있었지
내 그리움 선 채로 산이 되어
그대 꿈이나마 한자락 보듬어
한 생이든 반 생이든 지내고 싶던
가슴 저리게 외로운 날들
그대가 눈부신 꽃이던 날들
그런 날이 있었지.
27. 나요, 현순호
가끔씩
승호에게 몇몇 동무들의 근황을 바람처럼 듣긴했었지..
얼마전
'떡도골'이란 카페가 있다고
한번 들러보라 하더라.
오늘, 그리운 추억여행 잘하고..
회원으로 가입해 놓고..
그리고 몇자 남긴다.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도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모두 정말 반갑다.
28. 숲 속 길로 가면 눈물이 납니다.
숲속길로 가면 눈물이 납니다
숲속길로 가면 눈물이 납니다
숲속길 아침 햇살이 유난히 빛나고 푸르른 나무들이
무성한 잎들을 오래된 나의 두통을 치유하듯
산들바람에 부드러운 손길인양 흔들거리며
조용하게 나를 불러 앉혀 놓은 힘든 사람들이
쉬어 가곤 하는 이름없는 바위 위에서 올려다본 하늘에
구름이 미소지으며 자꾸 멀어져 가 희미해져 갑니다.
무거운 입술사이로 지나간 유년의 노래는 나도 모르게
끝이 없이 흘러 나오고 걷잡을수 없는 그리움으로 하여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꼭 누군가가 특별하게 그리운 것은 아닙니다.
지나온 나의 모든 것들이 아득하게 그리운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나를 사랑해준 많은 사람들에게도
내가 준 사랑이 너무 보잘 것 없음에 안타까워하며
조용히 눈을 감고 기억하려 합니다
내가 있던 풍경들, 나와 함께한 사람들..
그리고 내가 소중하게 대해야 할 사람들..
내 가까이에 있는 사소한 일들..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갈 것임에
오늘 햇살은 더욱 눈이 부십니다
29. 눈물은 왜 짠가?
눈물은 왜 짠가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가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랑타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담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30. 김치훈 (2004-06-27)
안녕하세요?
대구 지역의 친우들 덕택에
2권의 원고를 탈고 했습니다. (토익에 관한 책)
다음 원고(수능에 관한 책 2권) 작업이 바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물심 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봉호형과 승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어제는 마음이 많이 풀어져서 조그만 사고를 쳤네요...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는 삶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Many thanks, hope & respect to my friends~치훈홧팅
31. 중국들어갑니다.(김치범 2004-06-28)
안녕하십니까 김치범입니다 가끔까페에들어가 올린글과 사진들을 보기는 했지만 글은처음올립니다.어쩌다 중국쪽에 인연을 닿아선지 국내에들어온지 4년이지나고도 한국생활에 안착을 못하고 또다시 중국으로 7월5일출국합니다.얼마나 그곳에서 머물진 모르겠지만 그곳에서도 가끔 소식 올리겠읍니다. 모든분들 건강과 행복하심을 기원합니다.홍콩이나 광동성으로 오시는분은 연락주시고요...
32. 김치범에게 (김치훈 2004-06-29)
7월 4일 중국으로 들어간다고 하니
들어가기 전에 한번 더 만날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몇 자 적는다.
삶의 즐거움이란 것이 돈의 많고 적음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제는 나머지 인생을 정말 가치있고, 자기 정체성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인생의 자긍심을 가지며 정리를 해야 할 때이지, 마냥 앞으로
나아가는 시기는 아니다.
자신의 가치를 과대 평가하지 말라.
마음을 비우고 허접스런 망상에 빠지지 말라.
일 자체를 즐기고 많은 일을 하려고 하지 말라.
천하를 다 얻고 내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가치니, 정체성이니, 보람이니 하는 것은 내가 건강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내적으로 조금 더 성숙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될 수 있으면 단순한 삶을 살고, 될 수 있으면 물질적인 것을
멀리하길 바란다. 사실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걸 다 이용하지도 못하면서 더 많은 물질을 바라고 있다.
모든 문제는 바로 여기서 출발되는 것 같다.
자꾸자꾸 버리는 연습을 하도록 하자.
아침에 일어나서 단 5분이라도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길 바란다.
거기 생활이 고독할 수도 있겠지만 고독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축복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진정한
성숙은 고독 속에서 이루어진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리고
또 생각하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라....
아직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자격이 있는 나 자신은 아니지만
인생의 원리는 바로 생각하고 기도하는 데 있다는 것은
알 수는 있다.
아무쪼록
몸 건강하길 바라며, 자주 여기 들러 많은 도움을 주고 받고 하길 바란다.
대구 평리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