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美人別曲
몇 사람 안 되는 필자의 일본인 친구 중에, 訪韓 시 마다 한국전통음식에 대한 예찬과 더불어 여성들의 우아한 미모에 대한 찬사를 잊지 않는 예의바른 동업자가 한 사람 있다. 원래 속마음과 겉으로 내뱉는 표현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어서 本音<혼네>와 建前<다데마에>라는 특별한 용어까지 만들어낸 일본인인지라 그의 칭찬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거짓말일지라도 하도 여러 번 반복해서 듣다 보니 그 달콤한 말에 세뇌 당한 모양이다. 미국 주간지에 등장하는 대리석조각 같은 누드모델보다 모시 적삼에 종이부채를 손에 쥔 동양화 속의 한국여성이 더 아름답다는 인식이 새롭게 필자의 머릿속에 뿌리 내린 것이다.
그의 말로는, 세계의 어느 나라나 부유층이 출입하는 5성급 호텔의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에 가보면, 그 사회의 최상층 인사들의 면면과 더불어 미색을 뽐내는 여인들이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데, 돌아다니다 보면 한국 여성의 용모와 자태가 아시아권에서 으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미안했던지, ‘미세스 곽도 그 미인군단에 물론 속한다.’는 주석을 꼭 달아둔다. 이런 경우에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고 사양해야 올바른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워서, 그저 한량 시절의 대원군처럼 껄껄대며 웃어넘길 뿐이다.
단것을 좋아하는 식성 때문에 고르지 못한 치아가 약점인 일본 여성에 비하면, 우리 쪽은 절반가량이 晧齒丹脣의 고전적 미모의 소유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일본인의 찬사는 그저 인사치례로 해보는 헛소리가 아니라고 속단해도 별로 지나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을 믿기로 하고 실상을 살펴보니 필자를 찾아오는 환자 중에 ‘나는 남보다 못 생겼다.’고 하는 불필요한 異常心理, 즉 UF 콤플렉스(ugly face complex)에 깊이 빠져있는 젊은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 호텔 커피숍이나 백화점은 물론이고 여인들의 競艶場인 미장원 등에서 유난히 잘생긴 여자들과 마주치면, 마음이 약하고 주머니가 가벼운 여인은 쉽게 이런 열등의식이 발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여성들은 콧날이 오뚝 서 있고, 뺨이 통통하게 콜라젠과 지방으로 충만 된 예쁜 얼굴윤곽에다 몸매 또한 가슴둘레와 허리의 그것이 1.618대 1이라는 레오널드 다빈치의 미학적 황금비율에 거의 들어맞는다. 이런 천부의 조건에다 온몸을 휘감은 외국 브랜드의 의상과 핸드백 등 장신구가 그것들을 든든하게 백업해 주게 되면 마음이 약하고 주머니가 가벼운 여인은 주눅 들지도 모른다. 플러스알파가 가져다주는 일종의 착각현상인데, 이렇게 되면 열등의식이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런 식의 미녀 폭증은, 서양의 잣대로 만들어낸 미녀의 조건에 뒤져 있던 한국여성에서, 경제적 성장에 따라서 풍성해진 식탁 메뉴로 인해서 고질적 성장방해요소가 제거되면서, 저절로 아시아계 인종의 특징인 피부의 황색 기운이 벗겨지고 유백색 원색의 회생과 더불어 피부의 윤기, 여성적 성징의 강화 등 체형과 용모의 서구화 과정을 보여주는 한 단면일 뿐이다. 연령에 따르는 질병과 악성종양의 증가는 거의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양태라는 점에서도 체질과 체구의 서구화는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식생활 개선이 이뤄진 가정의 여성이면 누구나 일어날 수 있는 신체적 변화일 뿐 인종의 차이는 아니다.
그런데 일본인의 눈에 한국여성의 미색이 각별히 눈에 잡히는 것은, 어쩌면 최근 韓流 熱風을 타고 소개된 이영애, 최지우 씨 등 미녀 배우들이 준 강열한 이미지가 그 원인일 지도 모른다. 공항에서 한국출신 배우들을 열광적으로 환영하는 일본인 팬들의 소동을 보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각일 줄 믿는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오늘날 미인으로 보이는 대부분의 미녀들은 타고난 미인들이 아니다. 그 대부분은 외국의 고품질 기능성 화장품과 미를 창출하여 엉뚱한 용모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미용술에 의해서 연출된 것이 아니면, 압구정동 성형외과 선생들의 예술적 감각에 의해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위작들이다. 그런데, 마치 인사동 골동품 상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짜 김홍도의 美人圖처럼 감쪽같이 만들어내는 이들 전문가의 신기에 가까운 의술이 쌍꺼플로 시작해서 오뚝한 코, 도톰한 입술로 이어지는 <미인 만들기> 작업에 들어가면 누구나 이영애 최지우 같은 미녀가 된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만큼 한국의 의술이 세계적 수준이라고 믿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그것은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기대일 뿐이고, 오히려 자연만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런 결과에 대해서 성형외과 의사들은, 수술로 아무나 미인이 되는 것은 아니고, 여기에는 어느 정도 잘생긴 원판이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토로한다. 얼굴은 한 부분을 떼어내서 평가하면 잘생기고 못 생긴 것을 판가름하기가 어렵다. 전체적으로 보아 조화를 이루었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얼굴이 되는 것이므로 다른 조건들이 서로 맞지 않으면 수술은 당사자나 타인들의 눈에 만족한 결과를 낳을 수가 없다.
어찌 되었건 우리 사회에 미인인구가 불어나자 여성 전반에 미를 숭상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고, 또한 그것은 곧 상인들의 미인계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그런 목적에서 능력보다 용모와 체격에 포커스를 맞추는 취업전선의 나쁜 풍토가 생긴 것은 개탄할 일이다. 이를테면 과거의 학력이나 실력 위주로 행하는 선별이 아니라 육안이나 카메라 렌즈에 포착되는 이미지가 합격과 낙방을 결정하는 이상한 사회로 방향을 틀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나친 탐미주의가 낳은 부작용의 하나다.
이를테면 노래를 생업으로 삼는 가수, 올바른 발음이나 표준어로서 승부를 걸어야 되는 아나운서까지도 그 직능에 필요한 지식보다 미모에 주안점을 두고 선발한다면 본래의 업무에서 100%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을 것이다. 훌륭한 용모에다 섹시한 율동으로 픽업된 백댄서 출신 가수가 음정과 박자를 못 맞춰서 연예를 떠났다거나 하나도 웃기지 못하는 커미디언이나 개그맨들의 탄생과 소멸은 부지기수로 그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안다. 모니터에 나온 자막을 보고서야 그가 누구라는 것을 식별할 정도로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출연자는 그 직능에 소질이 없는 것임에도 브라운관에 자주 나온다면 그것은 잘 생겼다는 용모의 덕이라고 단정해도 별로 틀리지 않는다.
국어사전을 펼쳐보면, 본래 미인은, 첫째로 용모가 잘 생겼다는 의미 외에도, 둘째 항목에 才德이 뛰어난 여자를 지칭하는 말이라는 해석이 나란히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 古文에 등장하는 미인은 후자를 지칭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그 이유가 시각적으로 인식되는 미녀는 이성을 끌어당기는 효력이 짧은 단점 때문에 사고와 심리반응이 공히 건전한 여인에게 미인이라는 칭호를 주고 싶은 유학자들의 의중이 반영된 항목이 아닌가 싶다. 절대적 권력자인 임금의 마음을 자신에게 돌리려고 썼다는 조선왕조 때의 思美人曲에서의 미인의 의미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표기에는 시각적으로 아름답다는 조건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소멸되어 간다는 약점이 있는 반면에 그보다 효력이 긴, 自制와 謙讓의 미덕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었다는 특성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필자가 진료활동을 통해서 관찰한 바로는 금혼식을 올릴 만큼 화목하게 偕老하는 커플 중에는 미녀보다 UF 쪽에 가까운 여인들의 수가 더 많다. 이것은 곧 겉으로 드러나는 생김새보다 내면에서 울어나는 지적 요소, 가문이 만들어내는 고급스러운 정서가, 함께 어우러져 형성하는 매력이, 조선 白磁를 바라볼 때처럼 면면히 이어지며 그 성능을 오래도록 발휘한다는 생물학적 증거라고 믿고 싶다.
물이 흘러서 골짜기를 이루어야 비로소 그 산천이 아름다운 것처럼, 세상만물에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의 아름다움은, 장구한 시일을 통해서 자연적 필요에 의해서 형성된 美觀에 필적하는 상대가 아니다.
사실을 말하면, 한 개체가 미녀로 태어나느냐 아니면 추녀가 되느냐는, 전적으로 운명적인 것이다. 부모가 아무리 미인과 미남이라도 꼭 그 2세에 잘생긴 용모의 전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남성적 혹은 여성적 특징을 잘 살린 용모인데도 불구하고 그 자식이, 아들은 계집애 같은 연약함을, 그리고 그 딸은 부친을 닮아서 德大의 체구를 물려받는 이변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보는, 어긋난 유전의 사례들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되는데, 한 집안에서 미인을 출산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5대 이상 계획수태를 도모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관계자들은 이야기한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조물주가 간여하지 않는 한, 인공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미와 같다.
그런데 누가 유전에 관한 정확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관련된 유전자를 찾아내서 인공적으로 그것을 조작하는 미녀생산 프로그람을 5대에 걸쳐서 실행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미인이란 형상을 표현하는 언어지만 때로는 여인의 아름다운 신체부위의 총합보다 그 행동과 생각에 더 매료되는 경우를 종종 지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바로 남성을 사로잡는 그런 매력을 지닌 여자가 있다면 어찌 그녀를 미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18세기 조선왕조 때 여류시인이며 기생이었던 김초당의 詩를 두 구절 소개하니 한번 읽어보면 미인의 넓은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기생 시절이 이미 멀어져, 전생의 꿈이었기에
때로는 한가한 밤에 옛 시를 읊어보네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를 급히 쓰다 보니 글씨가 어지럽고
처마의 새소리 게을리 듣노라니 옷 개는 일 더뎌지는구나
아하, 하며 시 읊는 일, 아낙이 할 일은 아니지만
다만 대감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무엇이랴.
현대여성들의 건전한 미인관을 위해서 시 한 수를 더 소개한다.
야윈 말인데도 오히려 푸른 소나무 숲속을 잘 뚫고 가네.
작은 다리가 있는 서쪽 언덕에 싸늘한 종이 서있는데,
구름과 노을의 통로 속에 절 집이 저 멀리서 보이네.
녹색 비단 꽉 찬 가운데 푸른 봉우리 우뚝하고,
절로 돌아가는 스님이 낙엽을 스락 스락 밟고 지나가는데,
기생은 가을꽃 머리에 꽂고는 예쁜 티를 내고 걸으니
만 겹의 계곡과 산이 가는 길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을 보니
아마도 이 길로 돌아올 쯤에는 신선 발자국 밟는 것 같겠구나
글쓴이 곽대희
댓글 2 인쇄 | 스크랩(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