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찾아 삼만리 (2)
속편 우리는 친구
드디어 1, 19일 화합의 날이 열렸다.
점심을 먹고 여유롭게 출발한 결과 모임장소에 도착하니 4시 40분. 내가 첫 번째로 도착하여 2층 입구에 동창회 안내문을 써 붙여놓고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으려니 홍석이에게서 문자가 왔다.‘지금 성원, 종옥, 용섭이와 함께 가고 있는 중인데 어디신가요? ’ 내가 1등으로 도착했다 했더니 특별상으로 노래한곡 시켜주겠단다. ‘오우 노우’라고 화답을 보내고 있으려니 근영이 세월의 나이를 얼굴에 그렁그렁 달고 중년의 아줌씨가 되어 나타났다. 제 친정엄마를 꼭 빼 닮은 얼굴에 청순한 단발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이다. 알레르기가 있어 화장을 못한다는 그녀와 얘길 나누고 있으려니 용섭이 나타나 수사관처럼 우리의 얼굴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숨은 그림 찾기하듯 세월을 읽고 있었다. 아! 용섭이구나 난 노란색 시트지에 미리 써놓은 이름표를 가슴에 붙여주었다. 홍석인 금세 알아볼 수 있었지만 성원이와 종옥인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어서 “누구세요? ” 라고 물어야 했다. 규식이 도착하고 그 역시 세월이 많이도 얼굴을 바꿔놓았다. 진철이와 호민이의 얼굴도 몰라보게 변해 있었고, 여자 친구인 정님이의 얼굴마저 몰라볼 정도였다. 제 아버지를 많이 닮은 대천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고, 쑥스러워 인사도 제대로 못하는 모자를 쓴 상화와 성규가 도착했다.
예약 인원이 거의 왔을 6시 40분경에야 드디어 식순에 맞춰 교가 부르고, 사무국장님의 축하 메세지 읽고, 인사말씀 전하고 있으려니 연희가 도착하고. 첫 모임의 발족이다 보니 작성해 간 많은 협의문을 토론하고 있으려니 한쪽에선 배고프다고 아우성이고, 한쪽에서는 술이 고프다고 아우성이다. 회의를 마치고 드디어 음식을 앞에 두고 축배를 들다 그제서야 모임 장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 올리라는 사무국장님의 부탁이 생각났다. 아쉽지만 식당에서 건배하는 한 장면만 종업원을 시켜 동영상 찍고, 2차로 자리를 옮겨 라이브 카페에서 동영상 3편을 찍었지만 교가를 목청껏 불렀던 장면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기분 좋게 취한 정 많은 홍석인 이렇게 마련된 만남의 자리가 감격스럽고 행복에 겨운듯한 표정으로 연거푸 수고했다며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지만 남자를 지배하는 게 여자다’ 라며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겨우 10여일의 짧은 기간에 의해 추진된 행사였지만 여러 친구들의 힘으로 차질 없이 진행되었고 술마시고 곤드레만드레를 걱정했던 일들도 기우였기에 다행이었다. 앞으로 더 큰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첫 테이프를 잘 끊었고 친구들 역시 절실히 동창회를 희망해 왔기에 참석을 못한 친구들을 포함해 파악된 45명의 친구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함께 기뻐하고 설렜던 1주일이었다. 모임 하루 전까지 광주 사는 진철인 열심히 친구들 전화번호 정보를 물어다 주었다. 그리하여 타향인 울산 사는 화영인 장 수술을 하게 되어 못 와 섭섭해 했고, 서울 사는 영호는 금요일에 가게 오픈을 하게 되어 참석 못함을 아쉬워했고, 서울 사는 필순이는(병일) 일요일이 하필 조카 결혼식이어서 못 온다며 들뜬 목소리로 모임 추진에 힘써줘서 고맙다며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다. 올 수 있을듯하여 끝까지 기대를 했던 만중인 결국 일 때문에 못 오고, 영광 사는 택신, 병칠, 정임인 참석할 수 없다며 토라져서 난데없는 비보를 전했다.
내막인즉 5월 총 동문 체육대회 때마다 동창회 모임을 발족해보려고 애썼던 고향을 지키는 친구들의 눈물어린 정성과 노력을 외면해버린 광주지역 친구들에 대한 섭섭함이 그 것 이였다. 자비 20여만원을 털어 음식 장만하고, 유니폼 맞추고, 확인 전화 하고. 그도 그럴 것이 체육대회 시 기수 참가회비가 30여만원이다 보니 서너명의 친구들이 감당하기엔 어려움이 컸으리라. 기쁜 마음으로 준비한 많은 음식들을 전원 불참으로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줘야 했던 지난날의 아픈 경험담에 애잔함이 컸다. 고향이라는 것은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에 의해 보존되고, 고향을 방문하는 우린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리라. 명절 때 ‘고향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라는 현수막을 볼 때 내 형제 자매를 기다리고 환영하는 듯한 그 정에 마음이 훈훈해진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우리의 친구들이 모두 성공해서 돌아오길 한마음으로 빌고, 기뻐하는 마음. 그 마음이 고향 사람들의 마음이리라. 모임 장소에서 우린 지난날의 정확한 자잘못과 반성의 시간을 갖으며 차기 회장, 총무를 맡게 된 진철, 호민이도 적극적으로 화해하고 대처 하겠다 하여 일은 일단락되었다.
‘드뎌 운명의 날 다가오고. 동무들이여 이틀만 기다리라. 더 설레이시라. 불면하라, 그리고 기억하라 이 곳을 ... . ’ 이란 모임 장소 문자를 이틀 전에 발송하고 차분하고 면밀하게 준비하면서도 설레고 나에겐 불면의 나날이었는지도 모를 시간들을 보냈다. 그 결과 모임이 끝나고 난 심한 감기몸살을 앓게 되었다. 그러던 중 호민에게서 연락이 왔다. 랑이 아버지께서 전북대병원에서 금요일에 수술을 받고 입원중이신데 랑이가 내려가고 있으니 찾아가 보란 전화를 받고 익산 사는 미정이와 함께 찾아가 볼 요량으로 계획을 세웠지만 랑이가 직장을 다니게 되어 지체할 겨를 없이 찾아 뵙고 당일 밤에 올라가는 길이라 하여 계획을 취소하게 되었다. 전주 지척까지 온 친구를 못 만나게 되어 아쉬움이 컸다. 지난 모임 전날에야 진철이가 보내준 전화번호로 랑이와 얘길 나눴었다. 최근 친구들에게 들은 소문과 부산 동생들에게 들은 소문에 대해 궁금하여 나는 말을 꺼냈다.
“너 학교 선생님 됐다던데 그랬니? ” “아니, 그런 소문이 있어? 아닌데 ” “그리고 여러 친구들이 너 동생과 함께 부동산에 투자해서 떼부자 됐다는 소문이 있더라 정말이니? ” “어머어머 그런 소문이 어떻게 났을까? 어머, 나 아니야 얘 ”선생님이 되었단 얘기도, 떼부자가 되었단 얘기도 다 헛소문이란다. 근거 없는 소문이 웃겨 죽겠다는 듯한 랑이는 고 3때라던가 장티푸스에 걸려 생사를 넘나드는 중병을 앓다 겨우 살아났고, 그 이후부터 몸이 약해져서 감기를 달고 산다며 연신 잦은 기침을 하면서도 즐거워하고 행복해했다.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이번 모임을 추진하며 나만 알게 된 헛소문에 대한 얘기가 또 있다. 20여년 전 형삼이가 제주도에 살며 호텔에서 근무한다는 소문이 그렇다. 그것도 형삼이네 동네 살았던 친구에게 들은 얘기라 그다지 믿지 못할 헛소문은 아닐 법도 했고,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그래서 제주도에 여행 가면 그 호텔에 묵어보고 싶은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형삼이에게 물어보니 자긴 호텔에서 근무한 적이 없단다. 현재 감귤농사를 한다는 말도 헛소문이란 말에 조금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난 사실보다는 기분 좋은 헛소문을 더 믿고 싶기까지 하다. 누가 발단이 되었을까? 아마도 그 친구를 사랑하고 그 친구의 성공을 기꺼이 축복해줄 수 있는 마음 넉넉한 친구였으리라. 하지만 친구에 대한 흉한 소문은 없다. 친구의 아픔을 제 아픔인양 마음속으로 함께 아파하고 가슴에 묻어놓고 남의 얘깃거리에 재미삼아 입방아 찧는 그런 친구들이 없기 때문이리라. 친구들의 좋은 소문은 제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주는 그런 마음. 그것이 우리만이 나눌 수 있는 우정이고, 사랑이리라.
난 또 다른 소문, 기분 좋은 소문을 기대해본다. 우리 친구 상선이가 서울서 시의원이 되었고, 아직 장가 안간 까불이 조성규가 나이 50에 득남을 했다는 소문이,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상화는 만평이나 되는 농사를 지으며 대부가 되었다는 소문. 혹은 또 친구 중 누군가가 영웅이 되고 롯또에 당첨 되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등의 가슴 훈훈한 사랑의 소식들이 끊임없이 들려올 때 난 그 소문에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되리라. 그리고 초등학교시절 조숙하고 건강미 넘쳤던 랑이는 역시 건강한 몸으로 계속 떼부자가 되어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을지어다.
내 사랑하는 친구들이 모두 인생의 거친 파도를 헤치고 불혹의 나이를 지나 성숙하고 가슴 따뜻한 사람이 되어, 또 저마다 신지식인이 되어 사회의 등불이 되길, 영광 서 초인의 긍지를 갖고 빛과 소금이 되어 행복한 삶을 영위해가길 빌어본다.
친구들아 억수로 사랑한데이 !! 2013. 2. 2 선강 김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