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빈, 그가 걸어온 길
1953년생(음력, 또는 행정 서류 상으로는 1952년생).
7남매 중 위에서 세번째, 남자로는 두번째.
위로 누님과 형님이 한 분씩 있고, 아래로 아우들이 넷 있었음.
현재, 아내와 두 아들이 있음.
2024년 2월까지, 총 72권의 책을 내었음.
제1기 : 준비기 --------------------------------------------------------------------------------
한겨울, 태어나자마자 경기를 일으켜 새파랗게 질려 숨이 멎었다고 함.
그래서 어르신들이 웃방 한쪽에 두고 잠이 들었고, 이튿날 새벽에 보니 살아 있었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어려서 많이 앓는 편이었고, 지금까지도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님.
어려서 자주 아팠던 탓에 본래부터 내성적인 성격이 더 강화된 것 같으며,
아마도 그것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쳐서 자기 성찰(명상)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음.
고향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온 뒤 독학.
후에 서울에 올라 와 대학교 입학 자격 시험을 위한 검정고시 공부를 하였음.
소년 시절, 남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공장에 다니면서 읽었던,
청계천 7-8가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들.
주로 을유문화사와 정음사 판 세계문학 전집의 일부으로,
단테의 <신곡>,괴테의 <파우스트>, 셰익스피어 비극, 타고르의 시집,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인데, 일부 잃어버린 책이 있어서 아쉽다.
특기할 만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조부님으로부터
<천자문>(김혁제에 의해 새로 지어진 <신-천자문>)을 시작으로 매해 방학 때마다 한문을 배운 일임.
이후 <계몽편>, <사자소학>, <5언 추구>, <7언 추구> 등을 거쳐 초등학교 6학년 때 <명심보감>을 배우고,
그 뒤에 <통감> 1권을 거쳐 2권을 배우다 그친 이 한문 교육은 필자의 정신적인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음.
(1) 우리말에 대한 이해력의 신장
우리말의 대부분, 특히 개념적인 의미를 지닌 대부분의 단어가 한자이므로
한자를 안다는 것은 우리말을 보다 정확(적확)하게 이해하는 힘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함.
(2) 암기 능력의 증장
전통적으로 한문은 많이 읽고 외는 것을 통하여 중국어 문법을 저절로 터득하는 방법으로 배우게 됨.
따라서 필자는 처음 <천자문>을 배울 때 그 전문을 암기하였는데, 이같은 방식의 공부를 통하여
글을 외는 재미와 능력을 갖게 되었음. 그 능력은 후에 문학을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음.
실제로 필자는지금도 인상적인 경전 구절이나 문학 표현을 꽤 많이 외고 있는 편임.
조부님으로부터 배운 적이 있는 <고문진보(古문眞寶)>
가운데 이백(태백)의 <춘야연도리원서>가 시작되는 부분.
이 책을 다 배우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못내 아쉬운 일.
그렇지만 워낙이 명문장인 <춘야연도리원서>을 포함하여,
지금도 <고문진보>의 명문-명구를 가만히 홀로 암송하면서
한문 문장의 아름다움과 옛 선비들의 아취에 젖는 때가 있다.
(3) 경전, 또는 고래의 성현들에 대한 존경심의 형성
필자를 이끌어온 두 축은 '문학'과 '거룩함'인데, 이중 더 중요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거룩함(또는 마음에 대한 관심)인 바,
이에 대한 관심은 선천적인 요소를 제한다면 한문 교육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닌가 판단됨.
한문은 공자님을 비롯한 유가의 성현들의 말씀을 중심으로 배우게 되고, 나아가 중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를 수반하게 됨.
이같은 한문 공부를 통해 필자는 옛 성현들에 대한 흠모와 존경의 염을 갖게 되었고,
이 경향은 평생에 걸쳐 꾸준히 진화해 왔음. 또한 이같은 필자의 성현, 마음, 거룩함 등에 대한 관심은
필자에게 한문을 가르쳐 주신 조부님의 온아인자하신 성품과,
역시 부드럽기 그지없는 성품을 지니셨던 어머님(단 한번도 화를 내시거나 짜증을 내시는 것을 본 적이 없음)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염을 배경으로 더욱 강화될 수 있었음.
1977-1978년 군에서 예편하기 전후에 소크라테스의 일생을 전하는 플라톤의 몇몇 저작을 읽고 큰 감동을 받는 한편,
'무지의 지(無知-知)'라는 개념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을 정리해 보았는데,
이 정리는 지금까지도 필자의 마인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
또 한 가지, 군에서 예편한 직후에 어느 책에서 읽은 베토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음미하며
앞으로의 삶에 대한 큰 밑그림이 그려졌다고 할 수 있음.
사람이 훌륭하다는 증거는 그 마음이 선량하다는 데 있다.
그밖의 다른 어떤 증거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베토벤이 여섯 살짜리 어린 소녀 팬으로부터
편지를 받고나서 한 답장에 쓴 말.
로망 롤랑은 이 말을 그의 저작인
<베토벤의 생애>의 머릿글로 인용하였다.
큰 감동을 받은 이 구절을 잊지 않기 위하여
필자가 발표한 맨 처음의 글들을 모아 놓은
스크랩 북의 맨 앞장에 이 말을 적어 두었음.
필자는 베토벤의 이 말을 '우수함'으로써 구별되는 외적인(광장의) 가치는 본질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것,
'선량함'을, 즉 '마음'을 중심으로 하는 내적인(골방의) 가치야말로 본질적인 가치라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이해하였음.
특기할 만한 것은 필자가 비록 문학에 뜻을 두고 있다고 해도 이 가치 기준에 의할 경우
문학적인 성공은 외적인 가치에 근거하는 것일 뿐 내적인 가치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 점임.
물론 문학에는 내적인 가치와 상응하는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본질은 예술이고,
예술적 가치는 내적인 가치 그 자체가 아니라 내적인 가치로부터 파생되는 가치일 뿐임.
1978-1982년 김동리 선생이 창간하고 시인 이근배 선생이 발행하던 문예 월간지 <한국문학> 근무.
학력으로 보나 사회적인 경험으로 보다 문학 잡지에 근무할 수 없었던 필자가 이런 행운을 얻게 된 것은
필자가 투고한 시조 작품이 월간 <샘터> 지에 실렸을 때 이근배 선생께서 "기성 시인 못지 않은 솜씨"라고
칭찬해 주신 것에 고무되어 직접 선생을 만나 뵈었고, 그때 이 선생으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제안이 있었기 때문임.
1979년-1983년 <한국 극작 워크샵> (지도 : 여석기 고려대 교수, 한상철 교수) 멤버.
1979년 9월 <현대문학>에 수필 초회 추천(추천자 : 조연현 한국 문협 이사장).
1980년 3월 <현대문학>에 수필 완료 추천(추천자 : 조경희 예총 회장)
문단에 정식 데뷔한 직후 수필가인 금아 피천득 선생님께 작품과 함께 편지를 보냈고,
얼마 후 금아 선생님이 직접 필자를 찾아와 격려해 주셨음. 이후 선생님을 사숙하게 되었는데,
이 인연은 맑고 조촐한 삶을 지향하던 필자의 경향을 더욱 강화하여 주었음.
당시 필자는 자주 "나의 전공은 문학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필자가 쌓아온 한문 교양, 앞에 예시한 베토벤의 언명과 더불어,
금아 선생님이 실제 삶에서 구현하고 계셨던 맑은 삶의 가치를 확인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음.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심사위원 : 이원수 한국 아동문학가 협회 회장).
당선작인 <나무와 아이>에 앞에서 언급한 베토벤의 말로부터 사색하여 얻은 개념인
'우수한 것'과 '훌륭한 것'을 구별하는 것과, 우리는 우수함으로서는 각기 차등이 있지만
'훌륭한 것'을 기준으로 할 경우 누구나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담겨 있었음.
1982년 첫책 <기쁨으로 빛나는 나무> 를 직접 일러스트하고 편집하여 출간함(분화공보부 우수도서).
이 책은 신춘문에 당선작인 <나무와 아이>를 보정한 것임.
1983년 출판사 대학문화사 편집장.
5월, 계몽사 어린이 문학상 동시 부분 입상(<감꽃 마을> 포함 5편).
10월 6개월의 연애 끝에 결혼.
1984년 출판사 정신세계사 편집장.
6월 소설 <단(丹)>을 위한 취재 시작.
11월, 소설 <단> 출간.
12월 소설 <도> 베스트셀러 2위.
1985년 1월 소설 <단>, 베스트셀러 1위.
1월 출판사 편집장 직을 사직하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함.
4월 큰아들 승규 태어남.
소설 <단>, 연간 베스트셀러 1위(12개월간).
제2기 : 종교기 --------------------------------------------------------------------------------
1985년 3월 안양 소재 한마음 선원의 대행 스님과 첫만남.
작품을 쓰기 위해 인터뷰하기 시작하여 곧 스님의 인격에 감화됨.
5월 한마음 선원에서 5계를 받고 불교 신자가 됨.
불교에 대해서는 그 전에 <반야심경> 해설서를 읽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고,
부처님의 전기를 읽고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 등 마음으로는 친불교적인 성향이 짙었지만
막상 종교로서의 불교에 귀의하지는 않고 있었음. 그러다가 소설 <단>을 쓴 다음,
<단>에 쓰여진 '술(術)' 중심의 사상에 대한 반작용으로써(마음의 부담 때문에),
거기에 더하여 한마음 선원의 선원장인 대행 스님의 감화력에 영향을 받아 불자가 된 것임.
1985-1989년 한마음 선원에 소속되어 일함. 이 시기에 평생의 도반으로서 불교와 관련하여,
특히 대승불교의 깊은 이해에 관하여 큰 도움을 받고 있는 이제열(적연) 법사님과 인연이 시작됨(감사합니다).
1989년 한마음 선원에서 일하는 동안 불교 지도자들이 각기 다른 불교를 말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어
불교를 총정리할 필요성을 절감함. 그러던 중 일본 학자 마쓰다니 후미오의 여러 저작을 접한 것을 계기로
근본불교(초기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아가 근본불교-부파불교-대승불교로 이어지는
불교사를 개괄함으로써 불교를 사상적으로 정리하는 큰 틀을 얻음.
그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사제팔정도를 중심으로 하는 근본불교의 대체를 파악하게 되었고,
그 중심에 위빠싸나 수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한마음 선원을 나오게 됨.
이 마지막 시기에 남방불교권에서 위빠싸나 수행을 하고 귀국하신 거해 스님의 법회에 참가하여
위빠싸나 명상법의 실제를 익히고, 거해 스님으로부터(대단히 감사합니다!) 가르침을 받은 회원들과 함께
위빠싸나 명상 모임 <위빠싸나 선우회>(서울 남산 대원정사) 창립한 다음 3년간 활동함.
이 기회에 한마음 선원의 가르침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정리하여 말한다면,
한마음 선원에서 가르쳐지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는 마음 공부는
체(體)와 용(用)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은 데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짐.
이 경우 '체'는 세속적인 욕망과 결합하지 않는 순수한 해탈의 지향을(公共性),
'용'은 세속적인 욕망, 즉 출세, 금전, 이익 등과 결합한 마음을 의미함(私私性).
주인공 공부는 가르쳐지는 분에 의해서는 설령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신도의 입장에서는 후자와 결합할 가능성이 높은데(그들은 사사로운 이익을 원하므로)
이 양자에 대한 명확한 구별과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음.
왜냐하면 중생의 마음은 기이하고도 교묘하고 변화막측하며 심심미묘한 것이어서
마음 공부(진리 추구)라는 거룩한(순수한, 숭고한) 가치가 자기의 이익과 결합하게 되면
자기 안에 온갖 기이하고 황홀난측한 정신적, 영적인 현상을 만들어낸 다음
그것을 비판받아야 하는 사사성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공부(진리 추구)라는 거룩한 관점에서 해석하여 환영하고 증장시킴으로써
마침내 마음 안에 거룩한 귀신, 숭고한 악마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임.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본 사이트의 <김정빈은 누구?-그의 생각 엿보기> 난의
구도기 <김정빈의 마음 공부>와 종교 비판서 <그런 종교는 없다>를 참고할 것.
이 점은 필자의 저서 <즐거운 수행>을 통하여도 간접적으로 말한 셈이라고 할 수 있음.
6월 작은아들 태규 태어남.
1992년 거해 스님의 명상 지도를 받기 위해 여러 법회에 참석하였는데, 그중에 특기할 만한 것 중의 하나가
해남 대흥사에서의 일주일 간의 수행이었음. 수행을 하던 어느 날 필자는 거해 스님으로부터
5년에 걸쳐 빠알리 어로부터 번역해 오신 <법구경>(<법구경> 자체가 아니라 <법구경>의
게송을 포함하는, 정확하게는 <법구경 인연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음.
이에, 그 책의 출간을 돕기 위하여 도서출판 고려원의 주간으로 있던 장순용 선생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거해 스님과 고려원 간에 출간 계약이 성사되었음. 이후, 고려원이 교정 초교를 보던 중
원고를 다시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문제점을 제기함으로써 필자가 전면적인 윤문에 착수함.
원고용지로 5천 장에 이르는 그 윤문 작업은 하루 8시간씩 일하여 꼬박 8개월이 소요되었음.
이 작업을 통하여 필자는 신선하고 아름다운 초기 불교의 부처님에 대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더불어 위빠싸나를 중심으로 하는 빠알리 경에 기초한 불교 교리에 대한 이해도 심화할 수 있었음.
나아가, 윤문 작업이 끝난 직후 수행에 대한 열망이 강렬하게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때 이후 집중적으로 한 달 가량 개인적인 명상 수행을 한 것이 훗날까지 큰 도움이 되었음.
이때의 명상 수행을 통하여 필자는 인간 존재 전반에 대한 연민의 염을 갖게 되었으며,
'속내의 마음'과 '연출된 마음(퍼소나)', 필자의 표현대로 하자면 '골방의 얼굴(가치)"과
'광장의 가치(얼굴)'의 일치를 체험하였거나, 일치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일으키게 되었음.
1995년 미얀마의 양곤에 있는 찬미에 수도원에서 우 자나카 비왐바(큰스님)의 지도 하에 명상 수행(사두! 사두! 사두!).
오랫동안 살던 안양을 떠나 평택으로 주거지를 옮김.
살림집을 경기도 평택에 두고 살림집에서 3분 거리에 있는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성은리에 전원주택 한 채를 빌려 집필실로 사용하며 시골 생활을 익힘.
미얀마에서 돌아와 위빠싸나 명상을 소개하는 책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내고,
안성 성은리의 집필실에 <맑은 마음 명상원>을 개설.
이후 책을 쓰는 일에 전념하며 지내는 한편, 미국 하와이의 대원사(후의 무량사)로부터 초청을 받아
세 차례, 총 5개월에 걸쳐 위빠싸나 명상을 중심으로 한 수행 및 교리 강좌를 진행함.
2001년 버섯 재배 사업.
제3기 : 통합기 -------------------------------------------------------------------------------
2002년 버섯 재배 사업 실패.
이 실패를 통해 세속 정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함.
그 결과 그동안 구도적인 가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하다고(무가치하다고) 생각해오던 세속 정신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이후 구도적인 진실과 위대한 세속정신을 통합, 내지는 조화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함.
지난 17년간의 종교기를 정리한 책 <김정빈의 마음 공부> 발표.
2003년 위대한 세속정신을 일화를 중심으로 정리한 책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 발표.
2005년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에 전원주택 <감나무집>을 짓고, 이사.
2007년 금아 피천득 선생님의 별세를 계기로, 문단 데뷔 이후 처음으로
문학인 단체에 가입함
(<현대문학 > 출신 수필가들의 모임인 <현대문학 수필 작가회>).
2008년 <현대문학 수필 작가회> 회장.
새로운 형식의 강의(공연)에 대한 연구를 완성하고,
이름을 <음유연송>이라 함.
음유연송의 일부인 <연강>을 위하여
<어린 왕자>에 관한 영상 강의용 DVD(41분)를
시나리오, 연출, 편집, 제작.
2009년 작년에 써두었던 <수필을 위한 변명>(1,800장)을 인터넷 잡지 <문학의 시대>에 연재.
2월 인터넷 <다음 카페>에 <김정빈의 날마다 한 생각>을 개설.
3월 차명수 법사와 함께 <맑은 마음 수행원> 창립.
4월 10일 위빠싸나 명상법에 관한 책 <즐거운 수행> 발간. 이 책은 전에 내었던 책인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보완하여 새로 낸 것임.
4월 11일 <맑은 마음 수행원>의 <나를 사랑하기 1일 코스> 첫 모임(서울 마포 불교 방송 지하 1층).
5월 불교 잡지 <불광>의 부처님 오신 날 특집 원고 <부처님은 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를 발표.
2010년 <만화 논어>, <만화 장자>, <만화 손자병법>을 재정리하여 주니어 김영사에서 다시 펴냄.
이밖에도 <마음빵빵 리더십>, <청년의 아침을깨우는 책>, <안녕하세요 장자> 등 이해애 모두 여섯 권의 책을 펴냄.
5월부터 9개월간 천안 소재 호두 마을에서 위빠싸나 명상을 지도함.
2011년 1월 1일부터 <소설 법구경> 집필을 시작함.
7월, 청소년 멘토링서 <아들에게 배웁니다> 출간.
<즐거운 수행>에 실린 필자에 대한 소개글 ----------------------------------------------------------
김정빈
《현대문학》과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이후
베스트셀러 소설 《단(丹)》을 발표하는 등 모두 53권의 책을 내었다.
그는 문학가라기보다 구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위대한 정신과 영원한 진리를 탐구한다.
그는 직접적인 언어로써 공자 · 소크라테스 · 예수 · 붓다 등
인류의 대스승들로부터 예지의 샘물을 끌어내기도 하고,
간접적인 문학 언어를 통해 보통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초절(超絶)한 정신의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을 묘파하기도 한다.
자칫 고답적인 경향을 띠기 쉬운 이같은 그의 추구는 지금 이 자리―
그가 ‘2층’이라 부르는 세속 공간을 떠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처지를 강력하게 대변한다.
그가 제시하는 <가치의 층>에 따르면, ‘1층’은 악의 층으로서 우리는 그 길을 갈 수 없다.
두 번째 층은 ‘건강한 세속의 층’인데, 이 길에서 우리는 도덕적 · 사회적 규범을 따르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두 번째 층의 성취만으로는 무언가가 부족하다. 이 층에서 우리가 설령 극상의 성취를 이룬다고 해도
우리의 가슴은 문득 허전해진다. 그 허전함 · 허무함은 소유의 증대나 사랑의 쟁취만으로 달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이로부터 생겨나는 고독감은 마지막까지 남는 영원한 질병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두 발은 1층과 2층으로 구성된 ‘사막이라는 이름의 세속’을 걷고 있지만,
눈을 들어 ‘별’을 바라본다. 우리는 순수하고 오롯한 ‘3층으로서의 어떤 경지’를 꿈꾸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넘어진다. 우리는 지금 목마르다. 그러나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별에서 결코 눈을 떼어서는 안 된다고, 오아시스는 반드시 있다고 그는 말한다.
부대끼고 쫓기는 일상 속에서도 삶의 진실, 삶의 순수,
삶의 아름다움을 찾는 길이 있다고, 그는 조용조용한 언어로 속삭인다.
2012년 《소설경(小說經)》 출간
나는 그동안 구도와 문학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살아 왔는데,
이 두 분야를 결합하여 불교적 세계관을 소설로 창조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음.
그래서 2011년 1월 1일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년 4개월에 걸쳐
원고지 3,400장 분량의 장편소설을 쓰게 되었음.
‘소설로 쓰여진 팔만대장경’이라는 의미로 ‘소설경’이라 이름붙인 이 작품에서 나는
부처님 당시의 인도를 배경으로 실존했던 인물과 함께 내가 창조한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불교 사상을 서사로 풀어내었음.
내가 모델로 삼은자 작품은 기독교 사상을 웅대한 스케일로 형상화한 단테의 《신곡》이었음.
기독교에는 위대한 문학 작품이 많은데
불교에는 그에 필적할 만한 작품이 없기 때문에 감히 그에 도전해본 것임.
《소설경》 출간 이후에 이제는 더이상 책을 쓸 일이 없다고까지 생각했음. 그만큼 전심전력을 다해서 쓴 책이고, 이 책에 나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 것임.
나로서는 그랬지만 책은 대중에서 널리 읽히지 않았음.
대중적이기에는 너무나 종교성이 강하고 철학적 숙고를 요구하는 책이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됨.
책을 낸 지 얼마 안 되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는 사건이 발생함.
오래 믿어오던 사람에게 배반을 당하여 2층 전원주택을 잃어버림.
아이들을 한국에 남겨두고 미국 하와이 무량사로 떠남.
하와이에서 나의 경제적 실패에 대해서, 나아가 인간이 무엇이며 종교는 무엇이고
삶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화두로 삼아 사색, 명상, 정진함.
마침내 그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음. 큰 안심입명이 찾아옴.
2013년, 한국으로 돌아옴.
법보신문에 3년간 불교 관련 기고를 함.
수행자로서의 긴 시간을 보낸 뒤에
2023년에 《소설경》 3,400장을 1,700장 길이로 축약하여
《그대는 장차 붓다가 되리라》 라는 제목으로 다시 펴냄.
본래 《소설경》은 출간 당시에 영국의 KnowlegePen 출판사를 통해서
영국,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러시아 등으로 번역, 출판되기로 되어 있었음.
그러나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는데, 이 무렵 미국 워싱턴 소재 Mascot 출판사에서
이 책이 《Six Month with Buddha》 라는 제목으로 나오게 됨.
번역서 출간에는 하와이에서 만난 최등용 회장님의 후원이 있었음.
그분께는 평생 갚아도 못다할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음.
《그대는 장차 붓다가 되리라 》 서평
작가 김정빈
1980년 《현대문학》에 수필 추천, 198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로 등단하였다.
1984년에 낸 소설 《단(丹)》이 다음해 1년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으며,
이후 《도(道)》, 《숭어》, 《성자들의 마을》, 《감꽃마을》, 《마음을 다스리는 법》,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 《근본불교의 가르침》, 《만화 불교》(전5권, 최병용 공저) 등
문학, 종교, 명상, 리더십에 관한 70권의 책을 냈다.
1985년에 불교에 귀의하였고, 1989년부터 위빠싸나 명상을 수행하고 있다.
계몽사어린이문학상 수상.
전 현대문학수필작가회 회장.
전 맑은마음명상원 원장.
전 목포과학대학 웰빙명상 교수.
그는 문학을 사랑하고 성스러움을 우러르며 살아왔다.
문학 작가로 출발하여 인류의 사대성인을 두루 탐구한 끝에
《단》이 널리 읽히던 1985년에 불교에 귀의하였다.
이후 한동안 종교와 명상 수행에 전념하였으나
여러 해가 지나 세속정신에도 성스러움이 있음을 깨우침으로써
인간의 모든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2012년에 문학과 성스러움을 결합한 작품 《소설경》을 발표하였다.
2022년 4월, 영미권 독자를 감안하여 보다 간결하게 정리된 《소설경》이
미국 출판사 Mascot Books를 통해
《Six Month with Buddha》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Six Month with Buddha》의 한국어판이다.
한편으로는 문학소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교사상서인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삶은 무엇인지와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반드시 불교에만 제한되지는 않는다.
불교라는 웅대하고 장엄한 산봉우리 아래에
불교 밖의 수많은 철학과 종교를 골짜기, 동굴, 능선으로 품어 안는다.
더하여 그 산봉우리 위에 문학예술로써만 그려 낼 수 있는
멀고도 아슴아슴한 무언가를 하늘로, 빛으로, 바람으로, 흰 구름으로, 무지개로 그려 내고 있다.
2020년부터 유튜브를 시작함.
유튜브는 문학을 다루는 <김정빈 작가의 문학으로 삶을 읽다> 채널과
불교를 중심으로 삶을 철학적, 종교적으로 다루는 <새 불교 밝은 불교> 등 두 채널이 있음.
2023년 줌을 통한 강의 시작.
강의는 문학 창작을 지도하는 강의와 불교를 강의하는 두 분야가 있음.
2024년 문학 강의를 확대하여 글쓰기 강의를 시작함.
(끝)
첫댓글 저는 선생님의 마음공부란 책 끝 결론부분의 '나는 자유인으로서, 의지인으로서 결정을 내렸다.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행복하고, 어떤 경우에서건 만족하자.' 를 마음에 새기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빠싸나 명상이 궁굼해지네요.
요 며칠간 선생님의 블로그, 유튜브 재미와 감동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상에 훌륭한 사람이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알게되어서 감사합니다만, 좀더 일찍 알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지금도 명상관련 프로그램이 있다면 참여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