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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 거문도사건(1885-1887) : 러시아는 부동항이 필요 / 조선에 마산항을 빌려 달라/ 이에 영국은 러시아 남진을 경계하여 러시아 함대의 감시를 위한 길목으로 “거문도”를 무단 점령함.(3년만에 철수) |
백도는 천제의 아들이 용왕의 딸과 사랑하게 되어 하늘로 올라가지 않음으로 천제가 진노하여 섬을 모두 바위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듯이, 환상적인 서른아홉개의 바위가 만든 기암괴석과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남해의 해금강이다. 백도는 천연기념물 흑비둘기를 비롯하여 팔색조, 가마우지, 휘파람새 등 30여종의 희귀조류가 서식하고 있고, 풍란, 석곡, 눈향나무, 후박나무, 동백 등 아열대 식물들이 353종에 이르며, 큰 붉은 산호, 꼬산호, 해면 등 70여종의 해양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천연생태계의 보고이다.
거문도를 거문(巨門), 즉 ‘큰 문이 되는 섬'으로 생각한다. 거문도는 고대부터 동아시아 뱃길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거문(巨門)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섬이다. 그러나 거문도라는 지명은 조선후기 실학자인 “김유”라는 인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김유는 이곳 거문도 태생으로 학문이 뛰어난 학자였는데, 영국군이 거문도를 점령하자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이곳을 방문하던 중, 김유와 필담을 나누면서 그의 뛰어난 학문에 놀라, 조정에 건의하여 섬 이름을 거문(巨文) 즉 학문이 높은 섬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지명 유래가 지형이나 산천에서 비롯된 것에 비하면 이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라 하겠다. 거문도가 서구 열강들의 틈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동학운동과 치열한 항일운동을 끝까지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학식있는 인물들이 섬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 3경 향일암 (向日庵)
해마다 지난 한 해의 시름을 떨쳐버리고 희망의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이곳의 일출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향일암에 오른다. 전국에서 몰려오는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는 해와 함께 희망을 염원하며 소망을 하늘로 띄워 보낸다. 일출은 물론 일몰도 볼 수 있는 향일암은 절벽에 세워져 있어 더 신비로운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 올라서면 온갖 세상시름이 바람에 씻겨 사라지게 된다.
4대 해수관음 ① 강원도 낙산사의 홍렴암 ② 강화도 보문사 ③ 남해 보리암 ④ 여수 향일암 |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 도량인 향일암(向日庵)은 돌산도의 끝자락인 금오산의 기암괴석 절벽에 위치해 있다. 산의 형상이 마치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금오산(金鰲山)이라 했다고 한다. 신라 원효대사가 선덕여왕 때 창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과 싸웠던 승려들의 근거지이기도 하였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주차장을 지나 거의 40도에 가까운 돌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며 적당히 다리가 아파올 즈음 향일암으로 오르는 석문(石門)이 앞을 가로 막는다. 하늘을 향하여 몸을 낮추고 머리를 숙이라는 의미이다. 부처님께 이르는 길. 새로운 마음으로 해맞이를 하러가는 길은 그만큼의 겸손함을 배우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제 4경 금오도 비렁길
‘비렁’은 벼랑(절벽)의 여수사투리이다. 금오도의 아름다운 해안가의 깎아지른 듯한 기암괴석의 절벽을 따라 조성된 18.5㎞의 벼랑길이 금오도 비렁길로 소문이 났다.
밀려드는 천길 낭떠러지의 벼랑길 사이에는 조선 왕실 궁궐 건축 목재로 사용될 황장목이 자라는 금오숲이 있다. 이 숲은 인어공주, 혈의 누, 김복남 살인사건 등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되었으며 호젓하게 걷기 좋은 길이다. 어디엔가 금자라가 있을 것 같은 금오도. 비렁길 트레킹에서 볼 수 있는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는 무료한 삶을 재충전 시켜주는 활력소가 될 것이다.
남해안 끝자락의 섬, 금오도는 조선시대만 하여도 일반인들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봉산이었다. 왕궁에서 사용하는 벌목장과 사슴목장 등이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렁길을 따라 이어진 다도해의 환상적인 풍경과 절벽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비렁길은 최대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비렁길은 총 5개 코스와 종주코스로 나뉘어 있으며 18.5km에 8시간 30분 소요된다.
제 5경 여수세계박람회장
전 세계인에 감동을 선사했던 여수박람회장은 지구촌 단 하나뿐인 화려한 빅오쇼를 비롯해 스카이타워, 아쿠아플라넷 등 하루 종일 신나는 박람회 시설물과 다이나믹한 해양레포츠 프로그램, 바다와 맞닿은 수변공원을 거닐며 산책하는 이들로 북적댄다.
2012년 여름을 뜨겁게 했던 여수세계박람회! 가족, 연인과 함께했던 박람회장이 해양레저관광지로 새롭게 개장했다. 바다와 맞닿은 수변공원을 거닐며 산책하고, 다이나믹한 해양레포츠 프로그램이 가득하고,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화려한 빅 오쇼를 비롯해 스카이타워, 아쿠아플라넷 등 하루 종일 신나는 박람회 시설물과 다이나믹한 해양레포츠 프로그램, 바다와 맞닿은 수변공원을 거닐며 산책하는 이들로 북적댄다.
먼저 67m라는 아찔한 높이에서 엑스포장을 한에 바라볼 수 있는 스카이타워 전망대는 폐 시맨트사일로를 세계 최대 크기의 파이프 오르간으로 재 탄생하여 여수바닷바람과 함께 어울려 뱃고동 소리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준다.야간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아름다운 여수 밤바다를 밝혀준다. 바다위를 가르는 시원하고 짜릿한 익스트림 스포츠 스카이 플라이는 주제관과 아쿠아플라넷 사이의 바다를 로프에 의지해 바다위를 미끄러지듯 날아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과 짜릿함을 볼 수 있다. 또 바다에서 즐기는 카약과 수상자전거 등으로 다이나믹한 해양레저 스포츠를 무료로 즐길 수 있다.
또한 세계적인 해양생물을 만날 수 있는 해양생태관! 벨루가(흰고래), 바이칼물범 등 280여종의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펼치는 이벤트가 가득한 곳 아쿠아리움과 여수의 랜드마크이자 여수세계박람회의 트레이드마크인 빅오는 여수 밤바다의 감동과 화려함을 중무장하고 있다.여수세계박람회 당시에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THEA Awards의 '2-12 올해의 쇼'를 수상하였다.
제 6경 진남관 (鎭南館)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삼았던 진해루가 있던 자리에 1599년 이순신 후임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시언이 정유재란때 불타버린 진해루터에 75칸의 대규모 객사를 세우고, 남쪽의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진남관(鎭南館)이라고 이름지었다.건물 규모가 정면 15칸, 측면 5칸, 건물면적 240평으로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대 규모이다. 이 정도 규모의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사찰이나 궁전의 행랑, 종묘의 정전 같은 건물을 제외하고는 합천 해인사의 경판고와 진남관 단 두 곳뿐이다. 객사로 이용된 진남관 뜰 안에 세워져 있는 석인상도 유명하다. 돌로 만든 석인상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한창 건물의 양 측면에는 2개의 충량(측면보)을 걸어 매우 안정된 기법을 구사하고 있는 등 18세기 초에 건립된 건물이지만 당시의 역사적 의의와 함께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제작할 시기에 왜구의 공격이 심해지자 이를 막기 위해
제 7경 여수해상케이블카
여수 돌산과 자산공원을 잇는 1.5Km 구간의 국내 첫 해상케이블카로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 캐빈 10대(5인승)와 일반 캐빈 40대(8인승), 총 50대가 운행되고 있다. 바다 위를 지나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국내 최초의 해상케이블카이다. 박람회장과 오동도 중심으로 다도해의 탁 트인 전망과 끝없이 펼쳐진 여수의 밤바다 풍경이 아름답다.
여수해상케이블카는 거북선 대교의 옆으로 지나고 지상에서 보는 여수 앞바다와는 다르게 흔히 항공 촬영된 사진으로만 보아오던 아름다운 풍광을 직접 볼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케이블카를 이용한 관광에는 3가지 포인트가 있다.한낮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볼 수 있고 크리스탈 캐빈은 마치 바다 위를 걸어가는 듯 한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여수의 바다는 더욱 아름다운 빛으로 물든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여수의 해질녘 노을은 그 황홀함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장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가 진 후 여수의 색다른 아름다움이 펼쳐진다.돌산대교와 거북선대교, 장군도와 해양공원의 아름다운 밤바다 조명이 어우러져 마치 내가 아름다운 빛 속에 어우러져 있는 듯 한 기분이 들게 된다.
아시아에서는 홍콩, 싱가폴, 베트남에 이어 네번째로 바다 위를 통과하는 해상케이블카로써, 이제 국내에서도 바다 위를 통과하는 해상케이블카에서 바람을 가르는 짜릿한 스릴감과 함께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제 8경 이순신대교
여수에서 광양을 이어주는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국내 첫 현수교이다. 현수교 가운데 세계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주탑 높이(270m)는 서울남산(262m), 63빌딩(249m)보다 높고, 주탑간 거리 1,545m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 해인 1545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웅장함과 탁 뜨인 바다전경이 일품이다. 특히 주탑과 주탑사이의 주경간장 길이는 일본의 아카시대교, 중국 시호우먼교, 덴마크 그레이트 벨트교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이며 국내 최장을 자랑한다.
이순신대교는 임진왜란 당시 주요 해전 중 하나였던 노량해전이 펼쳐지는 여수시 묘도와 광양시 금호동 사이의 바다위에 지어졌다. 이곳은 노량해협과 인접한 지역이고, 전투를 이끈 이순신장군의 주 활동 무대 중 하나이자 그가 전사한 곳이다.
이순신대교의 전망대는 거북선을 형상화하여 새롭게 나아가는 충무공 이순신의 정신을 건물에 반영하였으며, 이순신대교 조망권을 위한 전망대를 실내형으로 건축하였고, 장애인 노약자 및 어린이 이용객을 위해 전체 동선을 고려해 설계에 반영하는 등 엘리베이터 또한 설치되어있다.
제 9경 여수밤바다/산단야경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선 여수도심야경은 낭만과 황홀함을 더해준다. 여수의 도시 곳곳에는 화려한 조명이 여수의 밤바다를 수놓고 있어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진남관 야간 조명과 오동도 방파제의 야간 조명과 황홀한 음악분수 ! 특히 여수해양공원에서는 돌산대교와 거북선대교, 장군도를 조망권 내에 두고 있어 산책을 하면서도 한눈에 아름다운 밤바다를 볼 수 있다.돌산공원에서 내려다보는 밤의 돌산대교와 장군도는 빛의 도시 여수를 가장 잘 표현하는 광경 중 하나이다. 돌산대교는 밤마다 50 여 가지 색상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여수의 밤바다를 보석으로 치장하고, 여기에 장군도의 아름다운 불빛이 더해져 여수항 앞바다는 이국적 정취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정유·비료·석유화학 계열 120여개 업체가 입주한 국내 최대의 중화학공업단지인 여수산단에서 내 뿜는 형형색색의 빛의 아름다움도 장관이다. 여수국가산업단지는 형형색색의 야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웅장한 기계설비에 설치된 수 만 개의 조명으로 어우러진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야경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산업단지에 밤이 찾아오면 반짝이는 불빛이 환상의 하모니를 이룬다.
제 10경 영취산진달래 : 지면 부족으로 소개 생략함
<돌산대교>
국도 17호선상에 있으며, 폭 11.7m, 길이 450m로 1980년에 착공해 1984년에 완공했다.
여수항에 입항하는 대형선박을 위해 양쪽 해안에 높이 62m의 교각을 설치하여 직경 56~87㎜ 정도의 강철 케이블 28개로 교판을 묶어 무게를 지탱하게 하는 특수공법으로 시공되었다. 교탑의 기초는 압축공기 케이슨 공법을 도입하여 해저암반층까지 침하시킨 대형 우물통을 기초로 한 철근 콘크리트 교각 위에 세웠다.
15,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돌산도는 여수시와 아주 가까운 거리이면서도 섬이라는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주민들이 생활과 교육 전반에 반드시 선박을 이용해야만 했다.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하여 돌산도와 육지를 잇는 교량을 건설하기로 하고, 1980년 착공하여 1984년 12월 15일 돌산대교가 준공되었다.
<낭만포차> 줄을 서서 기다려야 되는 종포 낭만포차돌산대교, 거북선대교, 해상케이블카가 한눈에 모이는 아름다운 ‘밤바다’와 바다 냄새에 취한 이들의 입소문을 타고 우정과 추억을 나누기 위해 여수를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야경 경관시설이 되어 있는 종포 해양공원에 위치한 낭만포차에는 자리가 부족해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손님 맞기에 땀도 나고 힘이 들기도 하지만 매상과 수익을 생각하면 행복한 비병을 지르게 된다. 꽃게 찜, 생선찜, 생선구이, 갑오징어, 해산물, 생선회, 버터구이, 감자튀김, 소시지 모듬, 갓 삼함, 갓 김밥, 매운 족발, 해물크림 떡볶이, 해물라면, 곱창순대야채볶음, 깨 장어구이 등 낭만포차 주요메뉴만 봐도 입맛을 당기기에 충분하다할 것이다. 최근 신축한 지상 4층 주상복합건물 입주가 다 끝났으며, 종포 도로 일대 상가는 젊은이들 대상으로 신상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어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옛 해일주유소 자리는 주유소를 헐고 게스트 룸을 신축하고 있는 중이다. (79밀알 글 중에서---)
여수시와 임진왜란[편집]
1592년(선조 25) 4월 14일 일본군의 침략이 시작되었다. 임진왜란 초기에 경상도좌수영·우수영의 수군도 일본군에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이미 여수 지방에서 거북선을 건조하여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이순신은 본영과 휘하 각 진의 전선을 동원하여 경상도 남해안으로 진출하였다. 이순신은 가는 곳마다 연전연승하였다. 옥포·합포·당항포·율포·노량·한산도 등에서 왜의 수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때 전라남도 지방 각처의 수령과 만호가 함께 출정하였다.
1593년(선조 26) 8월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고 여수에 통제사영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이순신은 여수가 지리상으로 외딴 곳이므로 왜와 해전을 벌이는 데는 지세가 불리하다는 이유로 본영은 그대로 남겨둔 채 한산도로 본진을 옮겨갔다. 한산도는 선박을 감추어 놓기가 좋으며 또한 왜의 수군이 남해안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여수 지역에서는 정철·정린·정춘의 활동이 주목된다. 1592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들은 재산을 털어 이순신의 휘하로 들어가 당항포로 진격하는 등 많은 전장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여수 지역에 기반을 둔 창원정씨 사람들로서 후에 가곡사에 배향되었다. 이들과 함께 여수 지역에서는 흥국사를 중심으로 한 의승수군(義僧水軍)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직 관료, 무과 출신, 유생, 승려 등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봉기하여 전라도 수군과 결합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