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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경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3번)
반갑습니다. 오늘 1월 3일 수요일 염화실 인터넷 강의 시작하겠습니다.
말씀드린 데로 오늘은 천수경을 공부할 차례입니다.
천수경의 중요성부터 조금 말씀을 드리면 최소한 한국에서는 천수경을 모르는 불자는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반야심경 보다 더 오히려 많은 분들이 독송하고 있는 것이 천수경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만치 많은 분들이 독송하는 입장에서 볼 때 중요하다고 하는 증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또 천수경은 불교에서 여러 가지 의식을 집행하는데 있어서 불공이라든지 천도제라든지 그 외 기도라든지, 아침에 설사 정식기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강원에서 행자실에서 곳곳에서 아침에 천수경 한번 정도는 외우거든요
그런 것으로 보아서 중요한 뜻은 고사하더라도 그만치 중요한 경전이고 또 그 가르침이 우리 삶에 불교적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하는 경전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설사 불교적인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장남삼아 하는 농담 속에도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천수경의 첫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진언 정도는 다 외우고, 그것을 어떤 코메디에서, 또는 어떤 만화 같은 데서도 잘 인용되는 불자가 아니라도 잘 알고 있는 그런 경전이 또한 천수경이기도 합니다.
천수경은 다른 어떤 경전을 교리적으로 분류해서 그 위치를 이야기 할 때
무슨 소승교다, 대승시교다 대승종교다 일승원교다 이렇게 어떤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고 하는데
교리의 단계나 차원에 따라서 위치를 정하는 그런데 해당되지가 않는 경전입니다.
이것은 의식상 아주 중요한 경전이지만 교리적으로는 크게 주시를 받지 못하는 경전이 또한 천수경이기도 하지요.
천수경은 구체적이 제목이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천수경 중간에 이제 나오죠. 그게 구체적인 경전제목의 모두인데 그것을 줄여서 천수경 이렇게 부릅니다.
경전의 제목에서도 보았듯이 천수천안관자재보살(千手千眼觀自在菩薩) 그리고 또 대다라니 이런 말이 있습니다.
대다라니(大陀羅尼)가 중심이 되어있습니다.
대다라니는 관세보살의 자비정신이 그 속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면 관세음보살의 경전이다 이렇게도 표현해요.
그리고 중심 되는 내용은 대다라니입니다. 그래서 대다라니가 중심이기 때문에
이것은 교상판석상 소승교나 대승교나 대승시교나 대승종교, 일승원교 여기에 포함되지 않고 밀교에 해당된다.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대다라니니, 진언이니, 주문이니 하는 것은 밀교에서 하는 말이거든요.
밀교는 다시 말해서 현교의 상대적인 말이기도 합니다.
현교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이치를 그대로 다 드러내놓고 나타내 보이는 거죠.
들어내서 나타내 보이는 가르침 이게 현교입니다. 나타낼 현자죠.
그다음에 상대적인 용어로써 밀교인데요. 밀은 비밀할 밀자(密)잖아요.
비밀하게 가르치는 것, 비밀하게 가르치는 경전 이게 밀교경전 이런 뜻입니다.
세상사가 다 드러낸다고 꼭 좋은 것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덮어놓고 감춘다고만 좋은 것도 아니죠. 감출 때는 감추어야 되고 들어낼 때는 또 들어내야 되고 하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감추어야 할 때 드러내도 안 되는 것이고 드러내어야 할 때 또한 감추어도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중국이나 한국 일본 이런 사찰에 나라에서는 경전이 들어낸 현교의 경전과 감춘 밀교의 경전이 상당히 골고루 잘 배합이 되어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려 때 밀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출가인이나 재가 수행자나 재가 불자들의 신행형태를 가만히 보면은 선불교, 선불교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밀교적인 색채가 농후합니다.
어떻게 보면 30%가 밀교적인 그런 색채를 갖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화엄불교가 30%쯤 되고요
그다음에 선불교는 출가승들 또 근래에 와서 선불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서 선을 행하는 이들이 많기는 합니다만 이건 이제 대개 출가한 전문적인 수행자들이 하기가 편리한 수행법이기 때문에 비록 한국불교가 선불교 중심이라 하지만 선불교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죠.
그래서 흔히 그런 모든 것을 아우르는 뜻에서 통불교다 한국불교는 통불교다. 이런 표현을 합니다. 그러다보니까 30%정도 되는 밀교적인 색채가 상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밀교경전임에도 불구하고 선불교 현교 이런 것들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불교에서 모든 의식에 천수경을 외워야 되고 천수경을 외우지 안이하면 불교의식이 진행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 정도니까요.
이경전은 대게 이제 대다수의 경전이 인도에서 편찬, 중국에서 번역이 되고 했는데,
우리가 외우는 천수경의 지금 이 형태는 조선시대에 편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심이 되는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소위 대다라니는 인도에서부터 전해왔던 경전이죠.
그래서 대장경 속에 천수대다라니경을 찾아보면 대다라니는 한결같이 다 들어 있습니다.
어떤 본의 천수경에도 들어있는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외우고 있는 이런 천수경은 없어요.
이건 이제 조선 성종7년 1476년 최초로 천수천안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이라고 하는게 간행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걸 이제 소위 의식의 중요한 경전으로 취급해 왔습니다.
그 후 서산스님이 출현하셔서 조선중기로 접어들면서 불교에서는 진언집이라든지 또는 의식집,
진언집 하면은 진언만 주로 모은 책 이죠.
예를 들어서 주문이라든지, 진언이라든지, 다라니라든지 이런 것 만 모아놓은 책이 진언집입니다.
이런 것들이 조선중기에 편찬되어 발행이 되었고요.
그다음에 천수경이 들어 있는 의식집 불공이라든지, 시식이라든지, 기도라든지 기타 대예참, 소예참, 관음예문 등등 여러 가지 의식이 다 포함된 그런 의식집이 상당히 활발하게 편찬되어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으로 보면은 이 의식집이 어떤 것인가 하면은
석문의범 이라고 하는 것이 있고요. 그다음에 불자지송 무슨 우리 신도님들이 많이 가지고 다니는 그것은 상당히 양이 많이 축소된 것이지만은 스님들 전용의 의식집은 석문의범이니 불자지송이니 하는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 속에 천수경이 반드시 들어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다라니는 물론 인도에서부터 전해내려 온 것이지만은 그 외 앞 부분이라든 뒷부분이라든지 이런 지금의 구조를 가진 천수경은 우리나라에 와서 1476년에 최초로 편찬되어서 세상에 빛을 보인 바로 그 경전이다. 이렇게 이제 볼 수가 있습니다.
구조를 살펴보면은 십일문으로 이제 볼 수가 있는데,
개경(開經)이라고 해서 정구업진언 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계청(啓請) 천수천안관자제보살(千手千眼 觀自在菩薩) 경전 제목이 이제 등장하는 거기서 부터 계청이고
그 다음이 별원이라고 하는 것이 또 있습니다. 별원
별귀의 하는 것이 있고요,
다라니(陀羅尼)중심이 되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나타내는 다라니가 있고,
그다음에 이제 찬탄(讚嘆)이 있는데 사방찬, 도량찬 이런 것을 중심으로 한 찬탄이 있고
그다음 참회(懺悔)가 있습니다. 참회계 참회진언이 있죠.
준제주가 있습니다. 준제공덕취라고 해서 쭉 역시 준제주라고 해도 관세은보살의 자비사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에 총원이 있어요. 저 앞에서 별원을 이야기 했는데 총원이 있는데 그것은 이제 별원에서는 나무대비관세음해서 오로지 나무관세음보살님만 특별하게 들어내는 그런 원이었고
총원은 여래십대 발원문이라든지, 사홍서원이라든지 이런 전체적인 총제적인 발원이 총원이 됩니다.
총귀의 이라고 해서 저 앞에서 별귀의 라고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 역시 관세음보살님에게만 귀의 하는 것이 별귀의에 해당되고, 총귀의는 이제 삼귀의가 총귀이죠. 불법승 삼보에게 귀의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제일 마지막에 회향이라고 하는 것이 있죠.
회향부분은 정삼업진언 개단진언 건단진언 정법계진언 이 내용인데 이것은 어떤 천수경에는 생략된 천수경도 있고, 이것이 다 포함된 천수경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것을 회향이다 이렇게 해서 구조를 11개의 문으로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한국의 불교 특징을 보면은 사실 관음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대단히 성하죠.
무슨 석가모니보다도 지장신앙, 관음신앙 또 어떤 데는 뭐 산신신앙, 칠성신앙, 나한신앙 이런 것 들이 있지만 관음신앙은 참 대단합니다.
무슨 일본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긴 한데요.
특히 한국은 관음도량이라고 하는 곳이 많고 그래서 관음기도가 상당히 성하죠.
이 천수경이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많이 읽히고 모든 의식의 서두에 독송하게 되어있는 것도 관음신앙의 영향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특별하게 원하고 특별하게 귀의하는 내용에는 오직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하고 관세음보살에게 발원을 하는 그런 내용으로 되어있죠.
그리고 또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인 대다라니라고 하는 것도 관세음보살의 어떤 과거의 활동상과 원력과 관세음보살의 어떤 능력, 신통력, 영향력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표현하는 그런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건 밀교경전이면서 관세음보살경전이다. 이렇게 이제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 관음신앙의 영향이라고 이렇게 이야기 할 수가 있겠죠.
말씀 드린데로 천수경의 제목은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대다라니경(千手天眼觀自在菩薩廣大圓滿無碍大悲心大陀羅尼經)이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요건 이제 그 부분이 나타나는 곳에서 다시 이제 자세히 말씀드리기로 하고 우선 이제 천수경 두말할 것도 없이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가진 그런 자비를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을 표현하는데 더 이상 좋은 표현이 없죠.
우리 염화실 관음예문 기도난이 있잖습니까
많은 분들이 관음예문을 쓰면서 기도를 하는데 관세음보살이 중생들을 어여삐 여기고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그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죠.
얼마나 사랑하였기에 천의 눈을 하셨을까
얼마나 애달팠으면 천의 손이 되셨을까
사실 천개의 눈도 모자라고 천개의 손도 모자라는 그런 대자비죠.
이런 자비의 화신 관세음보살은 도대체 출처가 어디인가
역시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으신 깨달음의 세계 속에 자비정신이 있는데, 그 자비정신을 잘 부각시켜 어떤 상징적인 정신을 구체적으로 이렇게 드러내어 우리가 의지하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배우고 닮기 쉽도록 그렇게 들어내서 관세음보살로 특별하게 드러낸 그런 관세음보살의 자비정신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꼭 염두에 두시고 자비정신이 물론 관세음보살을 찾는 우리의 마음이기는 합니다만은
사실 또 선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관세음보살 하나만 열심히 외우면 그것이 그대로 일심으로 통하고 선으로 통하죠. 그런 게송이 있잖습니까?
만연도방하(萬緣都放下) 단념관세음(但念觀世音)
만가지 인연들을 다 놓아 버리고 다만 관세음보살을 외운다.
차시여래선(此是如來禪) 역위조사선(亦爲祖師禪)
이것이 여래선이고 또한 조사선이다.
선불교에서 제일 높이 보는 경지를 조사선의 경지다. 그렇게 말하죠.
관세음보살만 오직 잘 부르면 그것이 곧 여래선이고 조사선이다. 이게예요.
불교 안에서 궁극의 경지, 최상의 경지인 조사선 바로 관세음보살을 일념으로 부르는 바로 그기에 있다 어떤 의미에서 부르던지 어떤 목적으로 부르든지 관세음보살이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고 부르든지 간에 일념으로 부르는 거기에는 모든 것이 다 끊어진 자리죠.
어쩌면 관세음보살도 끊어진 자리고 석가모니도 끊어진 자리고 너도 끊어지고 나도 끊어지고 피아가 일체가 되고 온 우주법계가 혼연 하나로 통일된 그런 경지가 관세음보살을 일념으로 부르는 그런 경지라고 우리가 볼 때 물론 그렇게 되기가 쉬운 것은 아니죠.
그러나 열심히 기도해서 그런 경지에서 우리가 이르렀다고 볼 때
그랬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의 경지라고 하는 것은 더 이상 나아갈 때 없는 최고경지고,
최상의 깨달음의 경지고 그야말로 여래선이고 조사선이다 하는 조사스님의 가르침도 있습니다.
천수경 공부를 하면서 천수경이 행자들이 외우는 것이고, 막 불교에 귀의한 초보신도들이 외우는 경전이라고 해서 낮추어 생각하면 어불 성설이죠.
전혀 그 내용을 알지 못하고 하는 말입니다.
관세음보살 하나 부르는 그 한마음 속에 조사선, 여래선이 다 들어있고, 팔만대장경이 다 들어있고, 부처가 들어있고 관세음보살이 들어 있는 그런 경지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을 해서 그걸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하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처음에 이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죠
구업(口業)을 청정하게 하는 진언이다
구업을 청정하게 한다, 구업을 비운다, 구업을 깨끗이 한다.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한다. 텅 비운다, 깨끗이 한다. 이런 진언인데
참 사람들이 짓는 악업을 열 가지 악업을 이야기 하죠.
그 가운데 마음으로 짓는 것 3가지, 또 몸으로 짓는 것이 3가지 입으로 짓는 것이 4가지 이에요.
망어가 그것이고, 악구가 그것이고, 양설이 그것이고, 기어가 그것이죠.
망어(妄語)는 남을 속이는 망령된 말
악구(惡口)는 욕이라든지, 험한 말이라든지, 누굴 협박하는 말, 위협을 주는 말이라든지 이런 것 들이 다 악구입니다.
양설(兩舌)은 두 가지 말, 남을 이간시키는 그런 말, 여기 가서 이 소리, 저기 가서 저 소리하는 그런 말 양설이죠.
기어(綺語)는 입에 발린 말, 겉 다르고 속 다른 말들 그런 것 많죠. 뭔가 이렇게 속에 바라는 바가 있고 계획한 바가 있을 때 그것을 성사시키려고 입에 발린 말 많이 하지 않습니까? 이런 말들을 기어 비단결 같은 말 이다 이렇게 합니다.
이런 등등 망어(妄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기어(綺語)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업을 많이 짓습니다.
참 그래서 구시화문(口是禍門)이다 이런 말이 있죠.
입은 재앙의 근원이다. 재앙의 문이다. 뭐 수구섭의 신막범( 守口攝意身莫犯)그런 말이 있어요
입을 잘 지켜서 단속을 하라, 마치 기름병을 막는 거와 같이 하라
꼭 그 기름을 쏟아서 사용할 때 만 딱 병마개를 열지 그 사용하지 않는데 병마개를 열면 곤란하죠.
딱 그것을 필요할 때만 병마개를 열어서 기름을 따르듯이, 정말 적절할 때만 입을 열어서 말을 하라 하는 그런 옛사람들의 말에 대한 그런 좋은 이야기가 참 너무너무 많습니다.
사람이 화가나면은 별별소리 다하죠.
그래서 그만 온갖 업을 다 짓습니다. 자기 혼자만 업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통해서 그만 크게 확대되어 큰 싸움이 생기고 그래서 말은 간단한 말이었지만 그것으로 인한 파장이 보통 커진 것이 아니죠. 얼마나 파장이 크니까? 말 함부로 할일이 아니에요.
밑에 사람은 말을 잘못하면 윗사람에게 큰 화를 당하고,
위에 사람은 말 잘못하면 한마디 말이 밑에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보통 크지 않습니다.
한가정의 가장이 말을 가볍게 경솔하게 함부로 해서도 안 되고요
한 단체의 단체장이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해서 왜냐하면 밑에 사람은 그 중심되는 사람, 책임맡은 사람, 어른 되는 사람, 제일 위에 있는 사람 말이 어떻게 나오는가에 거기에 따라서 모두가 마음가짐이라든지 몸가짐이라든지, 행동이라든지 준비하고 거기에 따른 반응이 즉각 달라지지 않습니까.
특히 위에 있는 사람일수록 말 함부로 하면 큰일나죠.
참 조심해야 되고, 절제하고 참아야 되고 열 번 스무 번 망설여서 거르고 걸러서 해야 되고 하는 것이 윗사람으로서 말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꼭 비방할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정말 욕을 해야 할일, 비방을 해야 할일 그런 일이 있다손 치더라도 비방하는 말은 결국 자기 자신을 해치는 말이지 상대에게 그렇게 큰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에요.
결국은 비방하는 말을 잘못해가지고 처음에는 상대가 비방할일을 했지만은 나중에는 그 비방 때문에 내가 비방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그 화를 자신이 다 뒤집어쓴다니까요.
그래서 부처님도 참 그런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왜냐하면 워낙 그 당시 뛰어난 성인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종교를 믿고 다른 종교의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들이 부처님께 귀의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니까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은 부처님께 와서 갖은 악담 다하고, 갖은 비난 다하고 ,온갖 욕설 다 하고, 온갖 모함을 다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랬을 때 부처님께서는 잘도 견뎌내셨거든요.
남을 향해서 비방의 말을 퍼붓는 것은 마치 바람을 향해서 흙먼지를 한줌 확 뿌리는 것과 같다
그 흙먼지는 결국 자기에게 돌아오죠.
바람 부는 곳을 마주보고 흙 뿌려보십시오. 그게 어디 가겠습니까?
그 흙먼지는 전부 자신이 뒤집어쓰는 것과 같다. 이런 표현도 있고
또 입에다가 피를 한입 물고 남을 향해서 뿌리는 것과 같다 그랬어요.
그 뿌리는 피가 상대에게 닿을지 안 닿을지는 그건 모릅니다.
그전에 이미 내입에는 더러운 피가 한입 물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부처님도 이런 섬찍한 표현까지 했습니다.
얼마나 그런 비방의 말씀을 많이 들어서면 그런 가르침들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말조심하라. 말 잘하라 이런 뜻이죠.
불자들이 제일 많이 읽히는 경전 중에 제일 첫 구절이 말 잘하라는 뜻입니다.
구업을 깨끗이 하는 진언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이게 차라리 수리하는 말이라면 좋겠지만 수리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말이기에 이게 그렇게 우리가 욕하고 악담하고 무슨 이간질 시킨 말하고, 거짓말하고 하는 것이
당장에 이거 뭐 몇 번 외운다고 그렇게 깨끗이 되겠습니까.
그게 아니에요 이 뜻을 우리가 알면 이렇게 해야 비로소 구업이 깨끗해지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수리 수리 마하수리는 본래 스리 스리에요.
범어가 중국을 거쳐서 중국에서 한문으로 표기되고 그 한문표기를 중국사람이 발음한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발음으로 한문을 발음 하니까 그게 이제 뭐 본래의 인도말은 어디 가버린 거죠.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오는 사이에 어디 가버리고 우리에게는 그냥 수리 수리라고 이렇게 되고, 이런 정도는 본래 스리 스리된 이 정도는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어떤 것은 상당히 틀리게 전달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그게 음이 정확해야 영험이 있고 정확하지 않으면 영험이 없다는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거와는 관계없이
수리 수리라고 하는 말은 길상(吉祥) 그런 뜻입니다.
아주 길상스러운 말을 뜻하는 거에요.
만수실리(曼殊室利)라고 해서 문수사리((文殊師利)를 묘길상(妙吉祥)
그러지 않습니까 그 말하고 어원이 같아요.
수리 수리 마하수리- 길상스런 말을 하라 이런 뜻입니다.
길상스러운 말은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공부 잘한다 잘한다 라고 해주는 것이 길상스러운 말이고,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금년에 사업이 잘 될것입니다. 하는 그런 덕담을 해주는 것이 길상스러운 말이고 개업한 사람에게 가서는 그 주변이 어떻곳이든 간에 잘 될것라는 그런 칭찬의 말과 힘을 북돋아주는말그런 말을 하는게 잘 될거다 잘 될거다 이렇게 해주는 것이 길상스러운 말이죠,
행복하십시오, 행복하십시오, 복 많이 받으십시오, 복 많이 받으십시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이런 말을 우리가 하는 게 길상스러운 말이에요.
입으로 짓는 5가지 악업하고 반대죠.
칭찬의 말, 힘을 북돋우어주는 말, 정말 남을 찬탄하는 말 이런 것이 길상스러운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마하수리 아주 크게 훌륭하십니다
수수리 수자는 극(極)입니다.
마하는 크다 수수리 할때 수는 지극할 극(極)자입니다. 지극히 훌륭하십니다.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사바하는 앞에서 말한 것이 결정코 성취되어지이다. 이런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지극히 훌륭하십니다 그 훌륭하심이 영원하소서, 또는 그 훌륭하심이 성취되소서
사업의 문제, 공부하는 사람의 문제, 어떤 계획을 세워서 일을 할려고 하는 사람에게 문제 보통 우리가 행복하십시오라고 하는 뜻에서도
행복하십시오 행복하십시오 크게 행복하십시오 지극히 행복하십시오 그 행복이 확실하시길 빕니다. 그 행복이 영원하여 지이다.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이런 말만 하고 산다면은 어떤 사람을 향해서도 이런 말만 하고 산다면은 그 사람이 구업을 지을 까닭이 있습니까. 복을 짓죠 큰 복을 짓습니다.
입을 가지고 업을 짓는 수가 있고 입을 잘 놀리면 큰 복을 짓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르고 덮어놓고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이걸 자꾸 외운다고 욕하고 악담하고 하는 것이 싹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평소에 찬탄의 말, 남을 북돋아주는 말, 격려해주는 말, 진정의 마음 담아 칭찬해주는 말, 이런 말을 해야 정구업(淨口業)이 되는 거죠. 구업(口業)을 깨끗하게 하는 그런 진언(眞言)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치를 알아야 되는 거죠.
진언(眞言)으로 알쏭달쏭한 그런 범어로 그대로 놔두었다고 해서 이상하게 해놓았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진언이라고 하는 것이 참말 이라는 뜻이지만은 이건 이제 옛날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도대체 진언(眞言)이 라고 하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라고 물으니까
예컨대 서울 장안에서 아주 유명한 거지가 우리나라 국경을 넘어서 중국에 갔어요.
내가 중국까지 와 가지고 거지노릇 할 수 있나 이왕 거지노릇하든 인생이니까 거짓말 좀해서 호강이나 하고 살자 이런 마음을 먹고 저 변두리로 가서 내가 조선의 어느 임금의 몇째 왕자인데 나를 왕자로 대접을 하시오 이렇게 이제 한거에요. 그러니까 중국 변방의 조금만 고을의 원님이 그런 내용을 자세히 모르니까 그 사람말만 듣고 소위 일국의 왕자로 대접을 한 겁니다.
그러다가 조선의 사신이 장안에 국사를 얻고서, 국사를 가지고 말하자면은 길을 가다가 그 고을에 당도해서 쉬게 되었습니다. 고을 원이 당신나라에 이렇게 지금 임금의 몇째 왕자가 여행을 하다가 우리고을에서 몇칠째 쉬고 있는데 이분이 조선에서 얼마나 호강을 했는지 늘 반찬투정을 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반찬을 해드려야 이분이 반찬투정을 안할 수 있느냐 이걸 이제 사신에게 고을원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지는 잘 차려주는데도 불구하고 반찬투정을 함으로 해서 왕자라고 하는 것을 더욱더 확실하게 나타내기 위한 하나의 그 나름의 방편으로 그렇게 했는데 사신이 그 말을 들으니까 자기나라 조선의 왕자가 뭐 여행을 간적도 없고 그런 왕자가 있지도 않는데 이상하다 생각이 들어서 그러면은 내가 가서 인사부터 드려야 되지 않느냐 하고 가서 인사를 드리는데 보니까 장안에 이름 높은 거지거든 거기서 내색을 할 수 가 없죠.
그래서 인사를 정식으로 하고 그리고 물러나와 가지고 저 왕자는 성격이 좀 독특해서 무슨 반찬을 잘해줘야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말 한마디 진언을 한마디 가르켜 드릴테니까
그 진언을 밥상을 드리고 그 말 한마디를 하면은 틀림없이 조용하실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거지요. 그래서 그것이 무엇인냐고 가르켜 달라고 해가지고 진언을 사신이 가르켜줍니다. 그 진언이 뭐 인고 하니 거지인 주제에입니다. 거지인 주제에 라고 하는 말이 중국사람이 못 알아 듣잖아요. 그야 말로 수리 수리 마하수리와 같은 말 입니다.
그리고 사신은 이제 볼일을 보기 위해서 떠나 버렸고 그 이튿날 밥상을 올리고
또 이제 거지가 잔소리를 하니깐, 고을원이 있다가 거지인 주제에 이렇게 했어요. 발음도 시원찮겠죠. 외국말을 배워서 하니까 온전치 않겠지만 그래도 거지인 주제에 하니까
자기보고 거지라고 하는 소리로 들린단 말이야 거지가. 큰일 났겠거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깐 야 저 내 본색이 들어 났는가 저 사람이 내 밑천을 알았는가 어쨌는가 안절부절인거죠.
그래가지고 많이 하던 잔소리도 뚝 끊어지고 그 이튿날 되니깐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을 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거지인 주제에 라고 하는 것을 이 고을에서는 모르고 이야기 했지마는 상대는 알아 들은 거죠.
자신은 모르고 해도 그렇게 영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그 뜻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당장에 사형을 처해 버리죠. 그 거지를 그냥 둘리가 없죠. 그런 상황 아닙니까? 뜻을 모르고 해도 그렇게 영험이 있고, 뜻을 알고 하면 그 백배의 영험이 있죠.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볼 때 옴 마니 반 메 홈 뭐 뒤에 나옵니다 만은 그런 옴 마니 반 메 홈 만 외우는 신앙형태적인 밀교적 수행보다도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의 성향으로는 현교.
다시 말해서 뜻을 다 드러내서 알고 그 이치를 우리가 가르침을 통해 깨달아 가지고 그 이치에 맞게 우리가 사는 것 이게 또 우리에게는 바람직하게 들린다 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길이라고 여겨져요. 그래서 주문이나 다라니나 많이 하는 사람들도 있죠.
우리나라도 그런 사람들이 있고 절이 있고 그것을 권장하는 스님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건 제 소신대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은 수리 수리 마하수리만 하더라도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이고 또 진언이라고 하는 것이 앞선 예화로 들려드린 거지와 고을원과의 관계 같이 그렇게 모른다고 것만은 해서 꼭 좋은 것 만은 아니고 또 앎으로 해서 더욱더 효력이 백배 천배로 발휘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여기도 이제 구업(口業)을 청정하게 하는 길이 무엇인가
덮어놓고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만 외우는 것이 아니고
한마디라도 남을 칭찬하고 찬탄하고 격려해주고 힘을 북돋아 주고 결코 어디 가서 초치는 소리 재뿌리는 소리 같은 것 가슴에 못을 박는 소리 같은 것 제발 그런 것 좀 하지 말고 조심조심 해서 찬탄하고 격려해 주고 이런 말을 한다면 우리가 과거에 설사 구업을 지은 것이 있다 손 치더라도 깨끗이 소멸되지 않겠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것은 진언에 대한 제 나름의 소신이고 또 평소에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 제일 많이 읽히는 경전의 가장 첫마디서두에 놓이는 말인데 만약에 우리가 불교공부를 하다가 이 첫 구절만 공부하게 되고 그 나머지는 못하게 됐다고 했을 때 이거 하나만 우리가 실천을 잘해도 큰 덕이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말하는 방법만 제대로 우리가 알아서 실천한다 해도 불교에 귀의하고 불교 공부한 그런 이익과 보람이 충분히 있지 않겠냐 하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천수경 오늘 전체적인 서론과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이야기로써 마무리 짓겠습니다.
오늘 천수경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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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정리 : 자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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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이 남에게 힘이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하니 항상 말 조심 조심 조심하는 수행 하겠습니다. 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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