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협상과 DDA(도하개발아젠다)농업협상 등 농업개방 파고가 어느 때보다 더 센 상황에서 우리농업과 농촌, 농민들에게 희망은 있는가. 본보는 우리농업의 미래지향적 대안을 찾고자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와 공동으로 지난 8월말 유럽의 농업·농촌(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현장을 둘러봤다. 우리와 비슷한 농업환경 속에서도 고부가가치·지식농업으로 농업강국을 일궈온 그들에게서 우리농업의 희망을 찾아봤다.
| | 최첨단 전자식경매시설을 갖춰 가격담합 등의 행위가 전혀 없다는 알스미어 시장. 최근에는 인터넷 경매도 실시하고 있다. | |
| #네덜란드 농업현황
전체 농업 인구 22만5000명 가족농 연소득 4만8000유로 유럽 농식품 유통 중심지로 세계 화훼거래량 60% 점유
지난 8월 21일 연수단이 첫 도착한 곳은 작지만 강한 나라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국토면적이 남한의 절반도 안되는 4만1548㎢에 불과한데다 국토면적의 65%가 ‘바다보다 낮은 땅’으로 습지가 많은 등 기후조건이 열악하다. 네덜란드 역시 우리보다 높은 인건비로 인해 서아시아에서 이주한 노동자들이 농업인력을 대체하고 있으며, 시장개방 확대 등 국제경쟁력 심화 등의 이유로 생산비가 저렴한 아프리카 등지로 주산지가 옮겨가거나 호주나 미주로 이주하는 농가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 농업선진국이다. 무역규모 4400억 유로로 세계 8위 수준이며, 1인당 GDP도 2만6700유로 수준이다. 농업인구는 네덜란드 전체인구의 1.36%, 우리나라 농업인구의 1/10도 채 안되는 22만5000명에 불과하지만 기업농 160만 유로, 가족농 4만8000유로의 연간소득을 올려, 네덜란드의 1인당 평균 GDP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주목할만한 것은 화훼류 67억 유로를 포함해 연간 356만 유로에 이르는 농축산물을 수출하는 나라다. 이중 화훼류는 세계거래량의 60%, 구근은 90%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농업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리적인 이점을 살린 농산물 도매거래의 중심역할을 담당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즉, 농장, 식품, 음료·제조업이 복합적으로 연계, 발달된 유통거점으로서 유럽식품의 관리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서 경쟁력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네덜란드의 화훼산업이 경쟁력을 갖춘 것도 지리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알스미어시장을 중심으로 연구, 교육, 지도, 생산, 유통의 각 분야가 긴밀히 결합해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93년 역사, 잠실운동장 22배 규모, 경매사만 5000여명 거래량 85% 해외로…농가 판로 걱정 없이 생산 전념
#1912년, 화훼농 28명 '깃발'
네덜란드 화훼산업발전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며, 화훼수출의 거점인 알스미어(Aaslsmeer)화훼경매시장. 알스미어는 잠실운동장 22배(66만평)규모의 시설에 5000여명의 경매사, 3000여명의 화훼연구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10만여대의 화훼운반기와 최첨단전자식 경매시설 등을 갖춘 세계 최대의 화훼시장이다. 특히 이곳이 돋보이는 것은 시장설립자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아닌 생산자 농민들이라는 것. 화훼생산농민들이 중간상인들의 횡포에 맞서기 위해 협동조합을 결성, 운영하고 있는 꽃시장이란 것이다.
알스미어시장을 안내한 피터 씨는 “암스텔담 근교에 위치한 알스미어지역은 20세기 초부터 튤립, 장미 등 꽃 농사가 발달했지만 중간상인들이 가격을 담합해서 폭리를 취하는 등 횡포가 심했다”면서 “이에 지난 1912년에 화훼생산농가 28명이 경매장을 설립하고 유통구조단축과 중간마진폭 축소 등을 통해 생산농가에게는 안정적인 가격을 보장하고 소비자들에게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꽃을 공급하면서 알스미어시장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알스미어시장은 화훼재배농민들의 필요성에 의해 설립됐으며, 현재도 알스미어지역을 비롯한 5000여 화훼재배농가의 공동판매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 거래량 16억3000만유로
알스미어시장의 연간 거래량은 16억3000만 유로로 절화가 10억900만 유로, 분화 5억1200만 유로, 기타 정원식물 등이 1억900만 유로를 차지하며, 거래량의 85%는 수출되고 15% 정도가 국내에서 소비된다. 그러나 알스미어시장은 이 같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운영형태는 설립초기와 같은 협동조합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시장운영과 관련된 모든 정책결정은 조합원들에 의해 선출된 협동조합이사회(Cooperative Board)에 의해서 결정되며, 이사회 구성원은 조합원 총회에 의해 선출된다. 또 화훼생산자, 수출업자, 학계 등으로 구성된 자문기구가 있어 주요 정책결정 등에 대한 자문을 하고 있는 것도 특징.
운영형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경매를 하며, 경매물량은 전날 12시부터 익일 오전 6시까지 입하하고, 경매는 오전 6시30분부터 시작해 오후 11시경이면 끝난다고 한다. 또한 출하물량은 2~5℃의 저온창고에 보관하고 자체검사를 실시한 후 전자경매를 실시한다. 낙찰된 꽃은 낙찰자 정보가 담긴 바코드가 부착되며, 이후 경매장 내에서 재 포장된 후 냉동차로 국·내외로 수송한다. 경매수수료는 5%내외(4.3%+포장비용+경매장내 이동차량비용 등). 알스미어시장 자체가 조합원들의 생산물을 판매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고 운영주체가 비영리단체인 협동조합인 만큼 판매과정에 들어가는 각종 비용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것이 이곳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가격담합·속박이 전혀 없어
농민들이 운영주체인 만큼 경매과정의 가격담합행위나 출하농가들의 속박이 행위 등은 전혀 없다. 피터 씨는 “경매사의 자격기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입찰참여카드를 소지한 사람이면 누구나 경매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격담합에 의한 가격조작은 불가능하다”면서 “또한 생산자들은 고품질 제품이 높은 판매가격을 받는 것을 피부로 접하기 때문에 고급품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물론 알스미어시장에서도 화훼물량의 과부족 현상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경매물량을 일부 통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처럼 그날그날의 물량에 따라 경매가격이 널뛰기 하는 것은 없다는 게 피터 씨의 설명이다. 그는 “경매물량을 늘리기 위해 인터넷을 통한 전자경매를 실시하고 물량과부족 현상을 사전에 방지해 농가 및 유통업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 물량을 통제하기도 한다”면서 “그러나 경매를 위해서는 매일 일정물량이 유통돼야 하므로 대규모 협동생산이 필수적이며, 생산자들은 판매에 대한 걱정 없이 안심하고 생산에 전념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곳을 둘러보고 나온 박노욱 한농연중앙연합회 수석부회장은 “시설과 규모가 최첨단이라서 부럽기도 하지만 생산자 주도로 유통구조를 현대화한 노력이 솔직히 더욱 부럽다”면서 “농민들이 운영하는 화훼시장이 세계최고가 된 것은 우리나라의 협동조합들이 왜 조합원인 농민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 시사하는바가 크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농민들이 농협개혁을 요구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자는 것”이라면서 “우리보다 자연조건이 더 열악한 네덜란드가 농업강국을 자리매김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농업경쟁력 취약한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튼실한 연구소가 '경쟁력 원천'
알스미어시장이 세계최대가 된 것에는 잘 구축된 인프라도 한 몫을 한다. 우선 알스미어시장 내에는 정부와 화훼농가가 공동 투자해 설립한 알스미어화훼·채소연구소가 있어 박사급 1000여명을 포함한 3000여명의 연구원들이 품질향상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시장 내에 품질테스트센터가 별도 두고 연간 400종류 이상의 신품종 화훼에 대한 품질검정을 실시한 후 시장판매를 허가해주고 있다. 또 알스미어시장을 거점으로 주변에 네들란드원예통합연구소, 바게닝겐농업대학 등이 위치해 있으며, 이들 연구소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신품종 및 신기술개발,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는 것도 우리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화훼관련 업무로 1년에 4~5번은 네덜란드를 찾는다는 왕남식 한농연중앙연합회 감사는 "'실습을 통한 교육' 을 모토로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제도가 잘 발달돼 있는 것이 네덜란드 농업의 경쟁력" 이라며 우리도 교육-지도-생산-유통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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