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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원문보기 글쓴이: 정중규
Speak Softly Love - Andy Williams
Speak softly, love and hold me warm against your heart
I feel your words, the tender trembling moments start
We're in a world, our very own
Sharing a love that only few have ever known
부드럽게 속삭이며 날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그대 품안에 날 포근히 감싸주세요
난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느낄때마다
긴장된 전율의 순간들이 시작 된답니다
우리는 우리들만의 세상에서
지금까지 어느누구도 알지 못했던
그런 사랑을 나누고 있어요
Wine-colored days warmed by the sun
Deep velvet nights when we are one
밝은 한 낮의 포도주빛 시간들은
저 하늘의 태양빛에 익어가고
짙은 벨벳빛깔의 밤이 되면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Speak softly, love so no one hears us but the sky
The vows of love we make will live until we die
My life is yours and all becau-au-se
You came into my world with love so softly love
살며시 속삭이며 사랑해 주세요
저 하늘 외에는 아무도
우리의 사랑의 밀어를 듣지 못하게 말이죠
우리가 한 사랑의 맹세는
우리가 무덤에 갈때까지 변치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내 인생에 사랑으로 그것도 달콤한 사랑으로
들어 왔기에 나의 삶은 당신의 것이랍니다
Wine-colored days warmed by the sun
Deep velvet nights when we are one
밝은 한 낮의 포도주빛 시간들은
저 하늘의 태양빛에 익어가고
짙은 벨벳빛깔의 밤이 되면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대부 The Godfather 1972년
감독: Francis Ford Coppola
주연: Marlon Brando + Al Pacino 외
음악: Nino Rota + Carmine Coppola/ 175분
‘오메르타’(Omerta) 라는 일반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은 단어가 있다.
영한 사전에는 말하지 않는다는 약속, 경찰에서의 비협조 또는
범죄의 은폐 등으로 나와 있어, 보나마나 마피아 같은 나쁜 범죄조직에서의
침묵의 서약 같은 것이겠거니 다들 생각하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원래 이 단어는
마피아의 원산지인 시실리도 마찬가지이었지만,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던 곳에서의
독립 운동 같은 애국 애족적인 투쟁을 하기위한 하나의 전략으로서
그 유래가 그리 나쁘지 않은 의미로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몇 백년간 이어져오던 이 오메르타의 전통을 어긴 자들에게는 당연히 죽음
이라는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었는데, 결국 이런 전통이 마피아 라는 범죄조직으로도
그대로 계승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원작소설의 저자인
마리오 푸조 (Mario Puzo, 1920-1999, 미국 뉴욕)는
참으로 용감하였다. 그가 유작으로 발표하였던 소설의 제목 (2000년7월 처음 출판)
이기도 한 이 ‘오메르타’의 서약을 어긴 자로서 오해를 받아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던 일이 바로 1963년 3월의 이 원작소설의 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Hell's Kitchen 으로 불리던 뉴욕 맨허튼, 웨스트 사이드 의 빈민가에서
나폴리 출신의 이민 2세로 태어난 이탈리아노 아메리칸, 이 푸조의 경력 중에는
그 어느 시점에서도 마피아와 연관이 되었던 적은 (절대로) 없었다고 한다.
순전히 오랫동안 꾸준히 모아왔던 자료들과 통찰력내지 상상력으로만 이 작품을
썼다고 몇 번씩이나 인터뷰를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그려진
Don Vito Corleone 의 가족 이야기는 실존 인물들이라는 끝이 없는 루머를 만들어
내었고, 푸조 자신도 한때는 마피아조직원이었다는 생사람 잡는 소리까지 들어야만
하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대부와 그 밖의 작품들’이란 글 등을 통해 꼴레오네의
(영감을 준) 모델은 바로 다름 아닌 자신의 어머니였다는 어처구니없는 고백까지
하기도 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도망간 남편을 평생 원망하며 7자녀를 억척같이 잘
키워낸 매우 남성적이고 무자비한 면이 있는 활동적인 여성으로서 이 엄격한 어머니가
안계셨다면 실제로 그 자신도 어쩌면 나쁜 길로 빠졌을지도 모른다고 회고하였다.)
어쨌든 그는 1955년에 첫 번째 소설, The Dark Arena 로 문단에 데뷔한 이래,
8년 만에 이 베스트셀러 (뉴욕 타임스 차트에 67주나 상위 랭크) 로 단숨에 인기작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또 제작자, Albert S Ruddy (1930,캐나다)의 제안을 받아들여
1970년대 초에 이 영화의 각본, 각색 작업에도 참여를 하게 된다.
범죄조직과 그 조직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수많은 갱스터 영화들 중에서
이 작품 만큼이나 그 주인공들을 미화한 작품이 또 있을까?
이 영화의 감독직을 고사하였던 수많은 거장들이 마피아의 보복보다도 더 두려워
하였다는 점이 바로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이 미화 작업이었다고도 하지만,
그러나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수많은 대중들에게 이 범죄 영화만큼 엄청난 사랑을
받은 (시리즈) 영화도 또 없을 것이다.
그럼 전 세계를 한동안 이 대부 중독증에 빠트린 가장 큰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피는 물보다 진한다는 가족애를 중심축으로 하여 한 가족의 초상화를
그리듯, 가족중심의 따뜻한 ‘휴머니티’로 작품 전체를 포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이블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유별나게 많이 나온다.)
물론 그 외에도 가난뱅이 이민자의 성공담인 아메리칸 드림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들이 많지만, 어쨌든 대가족 중심의 우리나라 사람들 못지않은 이 이태리인들의
끈끈한 가족사랑은 너무나도 각별하고 생생하게 전달이 되어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품의 시작도 먼 사돈의 팔촌 친척들까지 다 만날 수가 있는 결혼식
이라는 축제의 분위기에서 부터 시작이 된다.
1945년 8월의 마지막 토요일.
롱 아일랜드의 한 호화주택에서 수많은 하객들이 모여 춤을 추고 노래들을 한다.
돈(Don)이라는 경의를 표하는 호칭과 함께 代父(Godfather) 라는 친근한 호칭의
Vito Corleone (Marlon Brando,1924-2004, 오마하)의 딸,
Connie (Talia Shire,1946, 뉴욕/ 코폴라감독의 여동생)의
결혼식 피로연은 마침 막 끝난 전쟁의 승리분위기 그대로, 그래서 하루 종일 계속될
예정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일에 줄곧 관여를 해온 성질이 급한 황소 같은 장남,
Sonny (Santino/James Cann, 1940, 미국 뉴욕)는
이 와중에도 아내 몰래 여동생의 들러리와 즉석관계를 가지고, 소극적인 성격의 둘째,
Fredo (John Cazale, 1935-1978, 미국 보스톤)는
손님들 접대에 바쁘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사내답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줄곧 들어왔던
셋째, Michael (Al Pacino, 1940, 미국 뉴욕)은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전쟁 중에 해병대에 자원입대를 한 후, 지금 군복을 입은 채
여자 친구,Kay Adams (Diane Keaton, 1946, 미국 LA)와
구석진 자리에 앉아 (마치 딴 식구처럼)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결코 실망시킨 적이 없다는 비토 꼴레오네 는
피로연 도중에도 집무실에서 온갖 부탁을 하러온 하객들과 일일이 다 접견을 한 후,
‘Consigliere‘(조직의 브레인)이자 양아들이기도 한 변호사,
Tom Hagen (Robert Duvall, 1931, 미국 CA)에게 후속 일들을 지시한다.
여기에는 인기가수인 Johnny Fontain (Al Martino 1927, 미국 필라델피아)의
할리우드의 영화 출연건도 포함이 된다.
1946년 초, 마약거래 일로 협조를 부탁 하였다가 거절을 당한 뉴욕의 5대 패밀리
의 하나인 Tattaglia 패밀리의 일원, Sollozzo 는 저녁을 먹고 길에서 과일을 사던
대부, 비토 꼴레오네 를 저격하면서 패밀리 간에 선전포고를 하자,
그동안 아버지 일에는 절대로 관여를 하지 않았던 막내, 마이클이 직접 나서서
복수를 하고 피신 차, 잠시 시실리로 떠나게 된다.
한편, 퇴원을 한 비토 꼴레오네는 상원의원 같은 아들이 되길 바라면서, 각별한
사랑을 주었던 마이클의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실망을 하지만, 연이어 큰아들인
소니마저 조직 간의 복수극에 희생이 되어 죽자, 5대 패밀리의 회의를 소집을 하고
막내아들의 안전 귀국을 담보로 휴전을 제의한다.
그러는 사이에 시실리에 피신해있으면서 조상들의 고향 마을인 ‘Corleone’를 찾아
가던 중에 첫눈에 반한 Apollonia (Simonetta Stefanelli, 1954, 이태리)와 현지에서
결혼을 하고 즐거운 신혼생활을 하던 마이클 역시 복수극의 와중에서 아폴로니아 를
잃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옛 애인인 케이와 결혼을 해 아이도 갖게 되고,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노쇠해가는 아버지를 대신해, 패밀리의 사업에도 본격적인 관여를 하면서, 실질적인
꼴레오네 패밀리의 보스가 되어간다.
그리고, 합법적인 사업을 추진하던 마이클은 라스베가스의 카지노사업에 진출키로
결정을 하고 일을 추진하던 중, 1954년에 62세인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을 하자,
그동안 미루어왔던 적대적인 타 조직에 대한 복수와 숙청을 대대적으로 감행을 한다.
바로, 누님의 딸의 세례식이 뉴욕의 생 패트릭 성당에서 열리고 자신도 이제 그녀의
대부가 되는 순간, 신부님이 하는 질문, “Do You Renounce Satan?” 에
“I Do Renounce”라고 태연하게 대답을 하면서도 마치 사탄과도 같은 무자비하고
잔혹한 살인극들을 같은 시간에 벌리는 것이다. 거기다, 소니형의 죽음에 관여하였던
매형까지도 처형을 하면서,(속편에서는 친형까지 죽이기도 하지만......)
냉혹하지만 권위가 있는 보스로 거듭나게 되고, 곧이어 찾아오는 방문객들로부터
‘돈 꼴레오네’ 라는 (죽은) 아버지에게 하던 존칭을 똑같이 듣게 된다.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대주주였던 Gulf & Western 사는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이전서부터 이미 테러위협에 시달리는 등 수 많은 곤욕들을 치루기도 하였지만,
오랫동안 성역시 되어오면서 그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하였던 마피아조직을 주제로
죽음을 불사하고 만들어낸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업도 짐작하듯이 그리 쉽게 일들이
풀려나가지 않았다. 영화사측에서 우선적으로 접촉하였던 Franklin Schaffner 나
Arthur Penn 같은 감독 후보들과 주연급 배우들이 대부분 고사를 하는 바람에
당시로서는 젊기는 하지만 ‘Patton’(1970)으로 그동안에 아카데미상도 공동수상을
하는 등, 각본, 각색을 특히 잘하기로 소문이 나 있던
Francis Ford Coppola (1939, 미국 미시건)가
용감하게 총대를 메게 되었는데, 코폴라 가 캐스팅을 하였던 말론 브란도나 당시 신인
이었던 알파치노를 회사 사장이 결사반대를 하면서 시작된 갈등들은 촬영 내내
그에게 중도 퇴출(해고)을 걱정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 Ali Macgraw의 남편이자
파라마운트의 유명한 제작자, Robert Evans 가 많은 중재를 하였다고 하는데,
이 세 사람이 없는 ‘대부’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가 없다.)
특히, 영화에도 직접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아기였던 딸(세례 장면/Sofia Coppola)
까지 자연스럽게 참여시킬 정도로 평소에도 무척 가족적이라는 이 코폴라 감독의
가족중심의 사상과 끝까지 유지하려고 애 썼다는 휴머니티덕분에 그 잔혹한 장면들
까지도 미화된 그 대단한 업적을 생각한다면, (몇 번씩 촬영이 중단되는) 악전고투
끝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생애 최고의 작품을 안겨주고, 또 자신도 일약 거물로
신분상승을 하게 된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편, 성격이 괴팍스럽기로 잘 알려진 말론 브란도 는 이 영화로 받게 된
1973년도 제45회 미국아카데미 주연상을 수상 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On The Waterfront’(1954) 이후의 이 두 번째 상에 걸 맞는 참으로 특별한 연기를
보여주면서 그가 없이도 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불독 같이 늘어진 얼굴 볼 살 분장과 죽는 장면에서 오렌지를 이용하는 아이디어 등을
수없이 자신이 제공하면서 코폴라와 찰떡궁합을 보여주었던 그로서도 생애 최고의
작품을 남긴 셈이고, 또 무엇보다도 강렬한 눈빛으로 우리들 곁에 다가왔던 파치노는
이어 제작이 된 시리즈의 속편에서도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면서 캐스팅 때의 설움을
앙갚음 하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개봉이 되고나서 아주 곤경에 빠진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바로 다름 아닌 가수겸 배우, Frank Sinatra (1915-1998, 미국 뉴욕)였다.
가수, 알 마티노 (1927, 미국 필라델피아)가 직접 출연을 하면서 그 역할을 한
자니 폰테인이 실제로 시나트라 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동안 마피아 덕분에
연예계에서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다는 비난은 그를 매우 당혹스럽게 만들었지만
여론들 역시 아니 땐 굴뚝의 연기냐는 식으로 우호적이지 못하였었다고 한다.
미화작업이라는 별도의 노력이 없이도 매우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연출이 된 장면중의
하나인 결혼식 피로연 도중에 부녀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하게
들려오던 월츠 풍의 음악은 이 영화를 더욱 더 낭만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는데,
1972년 1월에 로마에서 코폴라 감독과 충분한 의견을 교환한 후에 완성을 본
Nino Rota (1911-1979, 이태리 밀라노)의
이 Theme 이 바로 이 영화 전체의 Main Theme 이다
‘The Godfather Waltz’, ‘The Godfather Finale’등의 부제를 달아 여러 스타일로
변주를 한 이 대단한 Main Theme은 이후 계속되는 시리즈 전체음악의 기둥이 된다.
Federico Fellini (1920-1993, 이태리)감독과는 두말을 할 필요가 없는 영원한
짝꿍이었는데, 역시 193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노련하고 오랜 경력은 이 곡 외에도
마이클이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찾아갈 때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한
‘Michael‘s Theme’(The Halls Of Fear)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Theme들을 작곡
하였지만, 그러나 이 영화가 개봉이 되고나서 마치 이 영화를 대표하는 주제곡같이
대중들에게 알려진 음악은 바로 다름 아닌 ‘Love Theme’이다.
영화음악을 팝송화하기로 유명하였던 Andy Williams 가 ‘Speak Softly Love’
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러 더욱 유명해진 이 영화의 Love Theme 은 영화가 절반이
진행될 때까지도 전혀 들리지 않다가 마이클이 시실리에서 아폴로니아 를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반복이 되는데, OST에는 ‘Apollonia’라는 부제로도 수록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지휘하던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자리에 자주 앉았던 경험이 있는
코폴라 감독은 작곡가로서도 나중에 미국 아카데미상을 수상(1975년)하는 아버지,
Carmine Coppola (1910-1991, 미국 뉴욕) 에게도
처음부터 전체 OS를 만들 기회를 드렸다고 하는데, 마음에 드는 곡들을 발견하지 못한
코폴라 감독은 공과 사를 분명히 하면서, 아버지 대신 니노 로타 를 찾게 되었고,
대신 아버지의 작품들은 결혼식 피로연 시퀀스에서만 일부 사용을 하였다.
(그러나 속편에서는 플룻 신동으로서의 아버지의 어린 시절도 실제로 보여준다.)
그리고 배우로서 출연을 한 유일한 작품인 이 영화에서 역시 인기가수로 등장을 한
알 마티노 가 피로연에서 부른 ‘I Have But One Heart’은 다른 삽입곡들인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Bing Crosby),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Mona Lisa , ’Manhattan Serenade‘(Tommy Dorsey & His
Orchestra) 등과는 달리 이 장면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복고조풍의 노래이다.
그리고 마이클의 조카가 세례를 받을 때, 끔찍한 살인의 장면들과 함께 들려오던
J. S. Bach의 ‘Passacaglia And Fugue In C Minor’는 정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게 다가오는 것이 참으로 분위기에 어울리는 선곡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