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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사유를 변주하는 휴머니즘의 언어미학맹태영 시인의 시세계
지은경(시인 · 문학평론가)
1. 프롤로그
일찍이 박두진 시인은 '시인은 천혜의 사람'이라 하였다. 천혜의 사람은 하늘이 베푼 은혜를 입은 사람이란 뜻으로 시인의 시 쓰기를 축복받은 행위로 본 것이다.
맹태영 시인이 근 4년 만에 내는 세 번째 시집 『5월의 당신께』상재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첫 시집 『소고기국밥, 두번째 시집 『꽃방귀, 세 번째 시집까지 시인의 시집을 모두탐독한 평자로써 맹태영 시인을 하늘의 은혜를 입은 '천혜의시인'이라 이름하고 싶다.
맹태영 시인은 풍치 좋은 자연에 묻혀 시만 쓰는 사람이 아니다. 분명 직장인이며 생활인임에도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시적 감수성과 자연을 해석하는 정서적 시심이 깊고 넓어 어느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눈은 인식의 눈이며 시적 해석을 하는 미적능력이 있는 사람이 시인이다. 고행의 길을 걸어가는 출가자가 고통을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고 기쁨으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수행자가 되듯이 그의 시들은 기쁨과 환희의 사유를 담고 있어 고통스럽지 않다. 성실한 시창작 과정의 천착에서 얻어낸 소중한 결실인 것이다.
시가 한 가지 기법으로 독자의 눈을 사로잡기란 쉽지 않다.시의 기본적인 작법인 형상성, 함축성, 참신성, 탄력성 등이잘 갖춰진 시가 탁월성을 지니고 있을 때 읽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게 된다. 현대시의 특징이 언어의 낯설게 하기라 하여한때 시인도 이해 못하는 불편한 시가 쏟아져 나왔다. 이들 난해시를 이해 못하는 것은 독자의 책임일 뿐이라고 말하여 당혹스럽기도 했다. 신춘문예 심사위원이나 평론가들이 이런 분열적인 난해시를 시창작의 예술성으로 본 것은 미술의 구상과비구상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시의 본질을 잃는다는 것은시가 대중에게서 멀어지는 이유가 되는 것은 유념해야 된다.
시의 애매성과 낯설게 하기 등 고도의 상상력은 지적 능력이며 시의 정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위트와 아이러니,메타포, 해학과 풍자 등은 시적 상상력을 넓혀주고 주제의식을 더욱 분명하고 선명하게 해준다.
2. 촌철살인의 비수가 숨은 시
맹태영 시인의 시의 특징은 간결성과 탄력성을 지니고 있어 주목하게 된다. 따듯하면서도 날카로운 언어가 역동적이고 지적 통찰의 깊이를 보여준다. 위트와 유머의 화법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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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의 비수가 숨어있음을 보게 된다. 그의 시는 현대시의 낯설게 하기의 충격요법을 지니면서도 뜬구름 잡는 난해성의 시가 아니다. 역설과 재치로 유쾌 상쾌하면서도 진지한진실성을 보여주고 있다. 시의 언어는 레토릭이 성패를 좌우한다. 시어의 선택은 수사법 활용의 훈련에서 구축되며 중요한 것은 레토릭에 주목하면서 휴머니즘을 잃지 않는 것이다.자연의 해석과 인간정신의 사유를 포괄하면서 휴머니즘이 녹아있을 때 미학적이며 독자의 신뢰를 얻게 된다.
이리 날지도 못하고 저리 날지도 못하며사이사이 사는 새
슬픔을 쪼아 먹고 눈물을 마시며가슴앓이로 살아가는 새
시간과 공간 사이에 끼여 살며눈치만 보며 살아가는 새
흩날리는 꽃잎에도 움츠리며불안에 퍼덕이는 새
날아갈라치면 애처롭고부여잡으면 떨어질 것 같아두려움으로 우왕좌왕하는 새
날지도 날 수도 없는틈에 끼여 사는 새
-「틈새」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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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시는 아주 좁은 부분을 이르는 '틈새'라는 명사를 '틈'과'새'로 나누어 두 개의 명사를 만들어 새로운 이미지를 낳고있다. 1연의 새는 아주 작은 틈에 생존하며 날고 싶은 곳으로날지 못하는 새가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상징하고 있어 충격을 준다. 2연에서는 날아다니는 것이 본능인 새가 날지 못함으로 슬픈 현실이 되고 있다. 새처럼 인간의 본능 또한 자유를 억압당할 때 슬픈 한 마리 새가 된다. 3연의 "시간과 공간 사이에 끼여 살며/ 눈치만 보며 살아가는 새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직장인들을 은유하고 있다. 생존하기 위해서 회사에 고용되고 고용인은 상사의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속된 삶을 그린 것이다. 4연의 “흩날리는 꽃잎에도 움츠리며 불안에 떤다는 것은 계절의 순환으로 꽃 피는 봄이 와도 아름다운 풍요와 정취를 맘껏 누리기는커녕 꽃잎을 흔드는 작은 바람에도 여지없이 불안한 현실이다. 5연에서 새의 불안은 클라이막스에 달한다. 자유롭고자하여 날고자하나 날 수 없는 새의 운명이 예사롭지 않다. 고정된 틀을 잡는 것도 안정되지 않으니 두려움으로 좌불안석이다. 그래서 화자는 최후에 “날지도 날 수도 없는 틈에 끼여 사는 새라고 슬픈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다.
위의 시는 노동과 생산의 함수관계에서 측정당하는 현대인의 지친 실체를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있다. 인간의 궁극적인목표는 자유와 행복이다. 그러나 현실은 두렵기 만하고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는 이율배반적인 삶이다. 화자는 마지막 연에서 자유롭고자 하나 자유로울 수 없는 '틈에 낀 새'라는 것에서 틈에 낀 새가 얼마나 부자유하고 불편한 삶을 사는지 연상할 수 있다. 이 틈에 낀 새는 바로 현대인의 삶을 메타포한것이다. 화자는 틈새와 같은 좁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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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불안한 실체를 발견하고 있다. 주관적인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은 자신을 향해 분명하고 정직하게 고백한다. 한 인격체의 자유인으로서 회복하고 싶지만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것을 억압하고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흐드러지게 꽃이 핀 아름다운 봄날에도 움츠릴 수밖에 없는 자신을 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싶은 것이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한 줄의 시인의 사유가 사회에 감동을 주는 것은 위대한 사상체계보다 강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은 의식의 포문을 깊고 넓게 확장하여 자아를 재구성하고 재편집하는 존재이다. 위 시는 ‘틈’과 ‘새'의 이미지로 현대인의 정서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완성도가 높은 시이며 이 시집에서 대표시로 건져 올린 수작이다.
홀연히 돋아난
봄!
- 「쑥」전문
말이 필요 없을 때도 있다
빈 가지에엄지 척! 내미는 나무,
새순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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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이 느낄 때도 있다
「봄」전문
안녕하세요귀공녀처럼 인사하는 목련
안녕하세요부끄러운지 후다닥 도망가는 벚꽃
(생략)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사월은 꽃처럼 인사하는 달안녕하세요?
-「사월의 인사」부분
시에는 시인의 정신이 투사되므로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의 사상과 정신을 엿보는 것이 된다. 시가 독자와 정서를 공감할 수 있다면 공감도가 높은 시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시 「쑥」은 단 두 줄의 시이며 세 단어로 시를 완성시키고 있다. 시제는 쑥」이다. 여기서 '쑥'은 안으로 깊이 들어갔거나 밖으로 '쭈욱' 내미는 모양을 나타내는 부사이다. 또다른 '쑥'은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인 식물이다. 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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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명사인 여러해살이풀 '쑥'이 봄을 은유하는 시가 되고 있다. 또 봄의 새싹은 흙을 쑤욱 밀고 올라오므로 여기에서 '쑥'은 명사이며 부사로서의 동음이의어의 성격을 띠고 있다. 단두 줄로, 세 개의 최소 단어로 여러 개의 이미지를 형상화한시이다. "홀연히 돋아난 홀연히는 미처 생각지 못한 상태이다. 1연의 “홀연히 돋아난"은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갑자기나타난 것 '풀'도 '꽃'도 아닌 '봄'이다. 시인이 시를 구성하는재치와 사유가 살아있는 감각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어 감탄하게 된다.
시「봄」에서도 “말이 필요 없을 때도 있다”는 것은 "빈 가지에/ 엄지 척!" 내미는 새순이 바로 봄이지 않으냐고 암시하는것이다. 가지에 돋은 새 순이 '엄지 척'으로 본 시인의 시선이참신하다. 봄 새순→ 엄지척에서 '봄= 엄지척' 공식이 된다.맹 시인 만의 새로운 자연의 발견인 것이다. 봄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 없이 느끼는 것이란 7 행의 짧은 시 속에 담고있는 특별한 안목이 봄의 이미지를 새롭고 참신하게 한다.
시 사월의 인사도 사월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로 형상화하고 있다. T.S. 엘리엇은 사월을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운다'며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 말했다. 그러나 맹 시인은 '목련은귀공녀’로, ‘벚꽃은 부끄러워 도망가는 꽃'으로, '개나리는 폭죽웃음'으로, '복숭아꽃은 곁눈질로 인사하는 홍당무'로 수사하고 있다. 그의 시어들은 출렁이는 자연 속에서 생명으로 발아하며 더불어 우주의 신비로움을 품고 있다. 시어와 자연이따로 분리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여백 속에서 '안녕하세요'라는 아름다운 정서와 의미를 창출해내고 있어 새롭고 신선한 언어감각이 돋보이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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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따뜻한 마음을 담은휴머니즘 정신
휴머니즘humanism은 라틴어 후마니스타humanista(인간다움)에서 유래됐다.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높이는 본성을 옹호하며 실현하는 것이 휴머니즘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 존재의 가치와 삶의 조건에 관심을 두는 사상과 신념인 것이다. 인류 역사상 휴머니즘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는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 지역, 인종 등을 초월하는 인간다움이 더욱 요망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휴머니즘엔 문학적 휴머니즘과 철학적 휴머니즘이 있다.인간다움의 상징인 지적 도덕적 교양과 덕의 함양을 목표로하는 지적운동을 문학적 휴머니즘이라 하고, 인간 존재의 가치, 생명의 존엄과 자유와 책임 등을 철학적 휴머니즘이라고한다. 문학적 휴머니즘은 덕과 선, 정의와 행복에 대한인식을 실행하려는 실천의지를 표상하는 것이며 철학적 휴머니즘은 문학적 휴머니즘과 공통된 점이 많으나 좀 더 이성을중시한다.
하늘보다 높고땅보다 단단한
바다보다 깊으며해보다 뜨거운
달보다 밝고별보다 빛나서
꽃보다 아름다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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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전문
인류의 근본 모체는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이 인류를 존속케 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라면 어머니는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다. 하나님이 70억 인간을 다 보살필 수 없어 당신 대신 우리에게 보낸 분이 어머니란 말이 있다. 어머니를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머니의 자리가 숭고함을 뜻하는 것이며 생명의 창조성은 거룩함과 위대함을 상징한다. 그래서 인류는 '어머니날'을 정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해마다 나라마다 기리고 있다. 맹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시가 존엄하게 읽힌다.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단단한 어머니는 엄청나게 크고 튼실한 존재로 정의되고 있다. “바다보다 깊으며/ 해보다 뜨거운”에서도 어머니는 자연과 우주에 비유하는 것에서 무량한 가치가 되고 있다. '높고→ 단단하고→ 깊고→ 뜨겁고 밝고 빛나서→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로 귀결되고 있다. 시적화자의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는 세상의 좋은 것은 다 모아 놓고 싶다. '나'라는 생명체를 존재케 한 어머니에 대한 은혜와 감사가 무량광대한 감회를 낳고 있어 인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감사와 은혜의 마음은 어머니의 희생적인 삶을 회고하며 잊지 않는 데에서 나온다.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사유가 우주를 넘나들며 시공을 초월하여 묘사되고 있다. 하늘, 땅, 바다, 해, 달, 별 등의 비유는 어머니를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의 정원인 자연에서 어머니는 생명을 창조하는 분으로 위대하고 성스러운 발견인 것이다. 시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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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 '꽃보다 아름다운'은 어머니가 위대함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승화되고 있다. 시의 언어는 말속에 숨어있는 촌철살인과 같은 미적 기능을 발휘할 때 감동을 받게 된다.
서산만 바라보는 친구 하나 있다손은 땅을 짚은 채두 무릎을 꿇고 나를 기다리는 친구
밤에는 이슬을 먹고낮에는 바람을 먹고 사는맑고 순수한 친구
나의 지친 팔을 어루만져 주고처진 어깨를 일으켜 세워주며젖은 등을 말려주는 친구
-「낡은 의자」부분
'의자'는 2850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유래되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의자'는 주로 왕이나 귀족의 전유물이었으며 외양도 화려하여 권위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도 한때 '회전의자'란 대중가요가 있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회전의자는 출세의 상징이었다.
시적 화자의 '의자'는 권위적이고 화려한 의자가 아닌 낡은의자이다. 낡은 의자는 화자와 오래된 친구 같은 관계인 의지적 존재이다. “손은 땅을 짚은 채 두 무릎을 꿇고 나를 기다리는 친구"라는 것은 '의자'가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님에도'친구'로 의인화하여 무한 위안을 받는 존재로 승격시키고 있다. 의자에는 4개의 다리와 등받이와 팔걸이가 있다. 화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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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는 두 손을 땅에 짚고 두 무릎을 꿇고 주인의 몸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서 친구라기보다 오히려 주종관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화자가 극구 '친구'라고 말하는 것에서 시작화자의 친구는 "이슬을 먹고 바람을 먹는 순수한 친구로서 권력이 배제되며 평등성을 부여하고 있다. 순수한 친구는 변심할 줄 모르며 진정한 친구는 나를 품어주는 장벽이 없는 사이로 오직 한 사람을 기다리는 순정의 마음을 보여 주는 것은 현대의 윤리의식과 고달픔을 보여주고 있다. 시에서 '낡은 의자'를 친구라고 표현한 것은 의인화된 친밀감의 표출이며, 굳이 친구라고 하는 것에서 비록 무생물의 의자이지만 기쁨과 슬픔과 고통을 품어주어 위안을 받는 소중한 사이임을 표출한 것이다. 무생물의 의자이지만 화자와의 친밀 관계를 높이두고 있어 의자와 사람을 동일시하고 있다. “나의 지친 팔을 어루만져 주고 처진 어깨를 일으켜 세워주며/ 젖은 등을 말려주는 친구”에서 화자가 늦은 저녁 집에 돌아와 하루의 피로를 풀며 안식을 얻고 있음을 보게 된다. 화자의 의자는 “밤에는 이슬을 먹고 낮에는 바람을 먹고 사는 맑고 순수한 친구”라는 것에서 의자는 화자가 순수한 영혼으로 돌아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위의 시에서 '의자'는 화자의 삶과 그늘이 고스란히 받아들여지는 위안의 의자이다. 낡은 의자를 의인화하여 박애정신을 투사하며 휴머니즘을 실현시키는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던져준 빵 부스러기에 십 수 마리의 새들이 연신 인사를 한다
새들이 쏘아 먹는 먹이가 가끔 와서 던져 놓고 가는 며느리의 용돈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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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불쌍한 것들이 꼭 당신 같아서
자기 몫을 뚝 떼어 새들에게 던져 주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고 새들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다
-「새와 할아버지」부분
위의 시는 현대의 고령화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평균수명의 높아지면서 노령화 사회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세대갈등과 독거노인의 문제도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24%가 노인이 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 부양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시에서 할아버지가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자신이 먹던 빵을 무심히 새들에게 던져주면서 사건이 전개된다. 새들이 날아와 먹이를 쪼아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자신의 처지와 비교한다. “새들이 쪼아 먹는 먹이가 가끔 와서 던져 놓고 가는 며느리의 용돈 같아서/ 저 불쌍한 것들이 꼭 당신 같아서”에서 할아버지가 새와 동일시되고 있으며 현재 독거노인들의 삶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새들의 먹이는 할아버지의 용돈과 동일시되면서 할아버지의 처지가 작은새로 축소화 된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는 가끔 찾아와 적은 용돈을 주고 가는 며느리지만 할아버지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새들에 비유하여 연민의 감정이 일렁인다. 할아버지의 며느리에 대한 작은 보살핌에도 고마움을 드러내는 마음이 담겨있다. '할아버지=새→ 빵=용돈→ 미안하다 고맙다'의 시어들이 짝을 이루며 이음동의어로서 그 영역을 공고히 하고 있다. 베품을 실천하는 할아버지의 새를 향한 연민의 마음이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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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따스하고 고귀한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미안함과 고마움의 표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진정한 존재방식을 찾아가는 신뢰감을 낳고 있다. 작은 새들에게조차 주체와 객체가 대치하지 않고 친화력을 보여주는 햇살 같은 시이다. 이 시에서 할아버지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 Amorfaty가 결핍된 휴머니즘을 소생시키고 있어 감동을 준다.
4. 희망과 긍정의 시
당신이 오시면 풀잎 끝 이슬을 담아 긴 머리를 감아드리고 맑은 바람으로 한 올 한 올 말려 드리겠습니다
햇살로 만든 식탁보를 깔고 작은 화병에 한 송이 장미를 꽂아 놓고 소복이 꽃밥을 담아내겠습니다
아름다운 만찬이 끝나면 창포꽃이 바라보이는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꽃잔디를 위에서 황금색 나비와 춤을 추겠습니다
그리고 휘파람새와 맑은 별빛 같은 노래를 6월의 땅에 뿌려줍시다 희망의 세상을 꽃 피웁시다
「5월의 당신께」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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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5월의 당신께는 이 시집의 표제이다. 장미, 아카시, 라일락 등 온갖 꽃들이 만발한 5월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인간이활동하기 가장 알맞은 계절이어서 계절의 여왕이라 부른다.피천득은 '오월'이란 시에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스무 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노래하여 싱그러움을 안겨준다. 시적화자는 "당신이 오시면/풀잎 끝 이슬을 담아 긴 머리를 감아 드린다는 것에서 5월의 싱그런 풀향기를 맡게 하는 후각적 이미지를 발현한다. 이슬로 머리를 감는다는 것은외적 청결과 내적 순결한 정신을 암유하는 시적 표현이다. “맑은 바람으로/ 한 올 한 올 말려 드린다는 것은 이슬로 감은머리를 맑은 바람으로 말려드린다는 것에서 5월이라는 자연의 대상을 객관적 상관물로서 직설적으로 진술하기보다 자연현상에 감정이입하여 비유와 상징을 통해 그림 그리듯 보여주는 것이며 현대시의 모더니즘 기법을 활용하고 있는 시이다.“햇살로 만든 식탁보를 깔고/ 작은 화병에 한 송이 장미를 꽂아 놓고 소복이 꽃밥을 담아 내겠다는 것에서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가장 향기로운 5월로 만찬을 차리고 있어사랑의 마음은 아침햇살처럼 빛나고 있다. 만찬의 준비는 햇살로 식탁보를 깔고 장미를 꽂아놓고 꽃밥으로 식탁을 준비하는 것이다. 만찬이 끝나면 꽃잔디 위에서 나비와 춤을 추겠다고 하는 것은, 춤은 원초적 기쁨으로 화자의 마음이 자유와 발랄한 생의 환희로 넘쳐 행복으로 가득함을 알 수 있다. 마지막엔 '휘파람새'와 함께 '노래를 불러 6월에 뿌려주겠다고 하는것에서 5월과 6월은 단절되지 않고 연계성은 이룬다. 화자의상상이 주는 심리적 세계가 모든 계절을 적대시 하지 않고 공평하며 존엄하여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시 5월의 당신께는 시간적, 공간적 아름다운 5월의 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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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예찬하고 있다. 시각의 회화화하는 공감각적 기법이 미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문학의 본질은 미적 기능을 갖는다. 좋은 작품은 감동과 더불어 전율을 포함하면서 화자의심상은 반문명적인 색채가 강하다. 섬세한 언어와 관조적 아름다움, 미의 찬미와 내면의 멋이 정서적 경험과 상상력이 어우러져 서정시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겨울이 훔쳐 간 하루봄에게 꾸어 준 하루부족한 2월
겨울엔 매화로 받고봄엔 복수초로 받고셈 잘하는 2월
작다고 놀리지 마!겨울 손잡고 봄 손잡은풍족한 2월
「2월」전문
2월의 풍경은 아름다움도 쓸쓸함도 아닌 황량함이다. 펑펑 쏟아지는 눈 내림의 풍경도 없고 봄의 징조도 없는 을씨년스러움뿐이다. 그러나 화자는 “겨울이 훔쳐 간 하루/ 봄에게 꾸어준 하루/ 부족한 2월이지만 매화도 복수초도 피는 괜찮은 달로 관심과 호감을 보여주고 있다. "작다고 놀리지 마!/ 겨울 손잡고 봄 손잡은/풍족한 2월"이라며 애써 2월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1월과 3월 사이의 2월을 사슬처럼 연결하여 외소한2월의 존재감을 높여주고 옹호하는 것에서 경험주의와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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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의 갈등과 우열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뜻밖의 철학을 읽게 된다. 어둡고 칙칙한 2월이 거울처럼 밝게 빛나고 있어 시인의 겸손과 배려의 심성과 가치관을 보게 되는 시이다.
5. 에필로그
맹태영 시인의 시들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곰삭은 언어의 향기가 독자에게 청량제와 같은 원동력이 되고 있다. 현대시의 이미지를 위한 은유와 상징적 메시지가 시의 알고리즘이 되고 있다. 시가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쓴다면 초보적인 이야기이다. 시를 쓰겠다는 의욕만으로 하루아침의 짧은 노력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언어 조탁 능력은 천부적인 언어감각과 탐구정신이 몸에 배어 숙성시키고 발효하여 폭발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영향을 끼친 아르헨티나의 대표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단 몇 분에 걸쳐 말로 완벽하게 표현해 보일 수 있는 어떤 생각을 500 페이지에 걸쳐 길게 늘어뜨리는 것이야말로 쓸데없는 힘을 낭비하는 정신 나간 짓”이라고 한 말을 참고 한다면 야 말로 가장 짧은 문장으로 촌철살인과 같이 정신을 깨우는 파급 효과가 큰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감동이 없는 시는 껍데기 시이다. 인간의 작은 뇌 속에 우주를 품고 있는 인간의 속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에는 묘법이 없다. 거짓 없는 진실 하나로 다가가는 정공법이 있을 뿐이다. 진정성이 뒷받침 되지 않는 시는 감동을 줄 수 없다.
포스트휴먼시대이다. 포스트휴먼은 휴먼 다음 휴먼, 인간 다음 세대의 인간으로 진화된 인간은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해체된 융합된 시대를 말한다. 즉 기계와 인간이 융합된 시대로 과학이 생활화 되는 시대는 더 높은 수준의 시로 꽃피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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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감동에 있다. 감동이 없다면 예술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특히 시는 감동을 목표로 하므로 감동 자체에 대한 본질을 이해한다는 것은 시의 본질을이해하는 것과 같다. 시의 감동은 카타르시스 즉 한 편의 시를읽고 시원한 배설을 느끼게 한다면 성공한 것이다. 보고 싶은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현대인은 자기 확인을 강화한다. AI시대에 시는 소외된 현대인에게 구원의 생명줄이요 지친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시를 맹태영 시인의 제3시집 『5월의 당신께」에서 기대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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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처음 운전면허증을 땄을 때가 생각난다. 시동 걸린 차보다도 더 떨리던 느낌. 얼마 후에 할부로 새 차를 샀는데 첫 핸들을 잡은 느낌이 금방 도축한 짐승의 피 냄새와도 같은 야릇한 새 차 냄새에 취하기도 전에 덜컥 겁부터 났다.
질주하는 수많은 차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언제 바뀔지 모르는 신호등의 변덕스러움과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난폭하게 몰아대는 헬멧 없는 불량배들의 오토바이들을헤집고 다닐 생각에 멀미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과 공포는 핸들을 잡은 지 몇 개월뒤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나는 거리의 무법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큰 사고는 없었지만 작은 접촉사고가 나면서,또 교통사고들을 목격하게 되면서 다시 조용한 자동차의주인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자동차 사고자의 통계를 보면 면허 취득 후 6개월 사이가 사고율이 제일 많다고 한다. 신기루와 같은 속력에 혼자만의 공간,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도 있고, 움직이는 작은 집과 같으니 그황홀감에 취한 나머지 가속 페달을 밟고 신호를 무시하며거리의 무법자로서 자랑하지 못할 훈장을 달게 된다는 것이다.
얼떨결에 내게 된 처녀시집『소고기국밥』(2015. 북랩)이후 2년 뒤에 낸 2집『꽃방귀』(2017, 책나라)는 운전면허를 따고 난 6개월 사이에 가속 페달을 밟을 때였다는 생각이 든다.
4년여가 지난 지금 다시 좋은 차는 아니지만 엔진을 손보고 타이어도 교체를 하고, 오일도 교환하고, 쌓인 먼지도 닦으며 조용히 시동을 걸어 본다. 오래 세워두어서일까? 매끄럽지 못한 소리가 들리지만 다시 거리로 나서 달리기 위해 헤드라이트 스위치를 누른다.
밤이 지나고 찾아 온 아침 5월 햇살에 창문을 여니 파란하늘은 오색 연등을 매달고 먼 산에서는 이팝나무 꽃이 하얗게 손짓을 한다. 잠시 한적한 길로 들어서서 정자나무 옆에 차를 멈추고 시냇물을 따라 걷는다. 많은 이야기들이 강으로 졸졸 흘러간다.
5월은 나에게 특별한 달이다. 내 인생을 바꿔주고 사지에서 나를 건져준 천녀 같은 아내 김경희와 은혼식을 맞은 달이다.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그녀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5월 같은 당신께.
신축년 오월 백양산 아래 오래 된 아파트 거실에서 맹태영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