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태영 감독과 훈련중인 해성고축구부 선수들. |
|
|
|
"축구 그만두고 집에 가." 남해 해성고 축구부 학생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이다. 공부가 싫어서가 아니라 축구가 좋아서다.
한반도 남쪽의 끝자락. 남해읍에서 승용차로 15분 거리에 해성고가 있다. 1948년 설립돼 꽤 깊은 전통을 자랑한다. 배출된 동문 만도 1만2000명. 하지만 농촌 인구의 고령화로 신입생이 없어 2000년 이후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다.
남해 해성고가 살아난 것은 축구 때문이다. 현재 전교생은 160명. 이 가운데 53명이 축구 선수다. 쉽게 말해 학생 3명 중 1명이 공을 찬다. 해성중학교까지 합치면 작은 시골학교에 100명의 축구 선수가 득실거린다.
지난 연말 남해공설운동장의 해성고 훈련장을 찾았다. 김태영 감독이 육상전문 코치를 초빙해 달리는 자세를 교정하고 있었다. 고함이나 질책은 없는 대신 김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서는 쉴 새 없이 농담이 오갔다. 그렇다고 훈련을 건성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훈련은 확실하게, 그러나 즐겁게"가 김 감독의 지론이다. 해성고 축구부원은 '조선 8도'에서 다 모였다. 남해 토박이는 불과 6명. 나머지는 전국 28개 중학교 출신이다.
올해로 창단 3년째를 맞았다. 지난해 무학기대회에서 8강에 오르는 등 고교무대 강자로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다음달 11명의 졸업생이 배출된다. 이미 대학팀에 5명이 합격했고 실업축구 N-리그에 3명이 진출했다. 곽효준 최용선 등 2명은 쿠웨이트 프로리그로 갔다. 한국 선수의 중동리그 입단은 처음이다. 국제심판 출신의 김 감독이 닦아놓은 인연이 제자들의 해외 진출길을 연 것이다.
김 감독의 말을 빌리면 전국 초중학교 축구 선수 가운데 해성중학교와 해성고 입학 희망자가 '줄을 섰다'. 이유는 싼 학비와 뛰어난 운동 환경 때문이다. 해성고는 인근 남해스포츠파크 잔디구장에서 1년 내내 훈련할 수 있다. 물론 학교에도 잔디구장이 있다. 또 50억 원을 들여 선수들을 위한 전용 기숙사를 짓고 있다.
자율학교인 탓에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많다. 일반 학교에서는 운동 선수와 일반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지만 해성고는 축구부 선수들만 별도로 반을 편성해 공부를 하게 한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외국인 코치까지 있어 외국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자칫 혈기 왕성한 학생들이 시골에 파묻혀 지루할까봐 학교 측은 당구장과 탁구장 컴퓨터실까지 마련했다.
해성고의 유명세는 축구에서만이 아니다.
지난해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해성고 3학년인 오지영 양이 입성했다. 이미 2개 학급 규모의 골프학과 개설도 추진하고 있다. 힐튼남해골프&스파 리조트의 경영자이자 해성고 재단인 에머슨퍼시픽 그룹의 이중명 이사장이 적극 나서고 있다.
해성고 최성기 교감은 "우리는 대한민국 학원 스포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면서 "앞으로 더 발전된 모델로 한국 스포츠의 기둥이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