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나무 이야기 ]
♣ 첫머리에
모처럼 고향 시골에
들렸다가 판에 박은듯이 파란하늘에 알알이 박혀있는 빨간감을 보고 언젠가 어디선가 읽었던 감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 두서없이 적어본다.
가을이 오면 우리에게제일먼저 닥아 오는건 티 없이 맑고 높은 파란 하늘과 그 하늘아래 앙상한 가지에 주렁주렁 메달려 있는 풍성하고 탐스럽기 그지없는 붉은 감일 것이다. 그래서 가을을 상징하는 데는 어디서든지 파란 하늘과 붉은 감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돌담으로 둘러쳐진 사립문, 마당 구석의 감나무 한두 그루, 나지막한 초가집이 옛 우리 농촌의 풍경이다. 가을이 되어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리고 지붕위에 달덩이 같은 박이 얹혀지면 짙어 가는 가을의 풍성함이 돋보인다. 더더욱 수확이 끝난 감나무 가지 끝에 한두개씩 까치도 먹고살라고 남겨 놓은 '까치밥'은 우리 선조들의 따뜻한 속마음을 보는 것 같다.
♣ 역사적 배경
감은 동아시아 특유의 과수로서 한국 ·중국 ·일본이 원산지이다. 중국 최고(最古)의 농업기술서 《제민요술(齊民要術)》에 감나무의 재배에 대한 기록이 있고, 당나라의 《신수본초(新修本草)》에도 감나무를 분류 수록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찍부터 재배한 과일로서 《항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경상도 고령(高靈)에서 감을 재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 약재 및 민간요법으로서의 감나무
동의보감에 의하면 '곶감은 몸의 허함을 보하고 위장을 든든하게 하며 체한 것을 없애준다. 또 주근깨를 없애주고 어혈(피가 모인 것)을 삭히고 목소리를 곱게 한다'고 하였으며 '홍시는 심장과 폐를 눅여주며 갈증을 멈추게 하고 폐와 위의 심열을 치료한다. 식욕이 나게 하고 술독과 열독을 풀어주며 위의 열을 내리고 입이 마르는 것을 낫게 하며 토혈을 멎게 한다' 고 하여 감은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옛 사람들의 중요한 약재였다고 한다.
민간요법으로는 감이 설사를 멎게 하고 배탈을 낫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고 한다. 바로 타닌 성분인데 수렴(收斂)작용이 강한 타닌은 장의 점막을 수축시켜 설사를 멈추게 한다. 과음한 다음날 아침에 생기는 숙취의 제거에도 감은 좋은 약이 된다고 한다. 이는 감속에 들어있는 과당, 비타민C 등이 체내에서 알코올의 분해를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풋감의 떫은 즙과 감나무의 잎을 중풍, 고혈압 등의 치료와 예방에 쓰고, 감식초, 감떡, 곶감 등, 감으로 만든 여러 가지 식품들도 건강을 지키는데 좋은 약이 된다고 한다.
감즙은 중풍의 명약으로 여기고 있다. 떫은 풋감을 절구에 넣고 짓찧은 다음 여기에 감 부피의 10분의 1분량의 물을 붓고 통에 옮겨 담은 뒤에 날마다 한번씩 잘 저어서 5~6일쯤 두었다가 자루에 넣고 짜거나 고운체로 잘 거른다.
이렇게 만든 감즙을 5~6개월 동안 두었다가 약으로 쓴다. 감즙을 만들 때 썩은 감이나 익은 감이 한 개라도 들어가면 떫은맛이 없어지고 약효도 없다.
중풍으로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었을 때 이 감즙을 반홉에서 1홉 가량 마시면 즉시 효력을 보는 수가 있다고 한다.
감에는 타닌이 들어있어서 단감이 아닌 이상 그대로는 먹기 어렵다. 껍질을 벗겨 말린 곶감(乾枾)으로 먹거나 따뜻한 소금물에 담가 삭히기도 하고 아예 홍시를 만들기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갈중이' 혹은 '갈옷'이라 부르는 옷을 무명에 감물을 들여 만든다. 감물이 방부제 역할을 하여 땀 묻은 옷을 그냥 두어도 썩지 않고 냄새가 나지 않으며 통기성이 좋아 여름에는 시원할 뿐만 아니라, 밭일을 해도 물방울이나 오물이 쉽게 붙지 않고 곧 떨어지므로 위생적이다.
갈 옷의 정확한 역사와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중국 남쪽에도 갈옷을 입은 흔적 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몽고의 지배를 받던 고려 충렬왕 때 전래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감나무는 또 목재가 단단하고 고른 재질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굵은 나무속에 검은 줄무늬가 들어간 것을 먹감 나무(烏枾木)라 하여 사대부 집안의 가구, 문갑, 사방탁자 등에 장식용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또 골프채의 머리부분은 감나무로 만든 것을 최고급으로 치고 있다.
열대지방에도 감나무 무리가 자라고 있으나 과일을 맺지는 않는다. 이 중에서 흑단(黑檀, ebony)이란 나무는 마치 먹물을 먹인 것처럼 새까만 나무이다. 그 독특한 색깔 때문에 멀리는 이집트 피라미드의 침상가구에서 오늘날 흑인의 얼굴을 새기는 조각품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알려진 고급가구재, 조각재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 의식의 필수적 과일인 감
감은 우리나라의 재래과수로서 밤, 대추와 함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관혼상제 의식에 빠져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과일이다.
1) 밤
다른 식물의 경우 나무를 길러낸 첫 씨앗은 땅속에서 썩어 없어져 버리지만, 밤은 땅 속의 씨밤이 생밤인 채로 뿌리에 달려 있다가 나무가 자라서 씨앗을 맺어야만 씨밤이 썩는다. 그래서 밤은 자기와 조상의 영원한 연결을 상징한다. 자손이 수십 수백 대를 내려가도 조상은 언제나 자기와 연결되어 함께 이어간다는 뜻이다. 신주를 밤나무로 깍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밤은 근본을 아는 나무여서 즉 조상의 섬김이다.,
2) 대추
대추의 특징은 한 나무에 열매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열리며 꽃 하나가 피면 반드시 열매 하나가 열리고 나서 꽃이 떨어진다. 헛꽃은 절대 없다. 즉,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반드시 자식을 낳고서 죽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제상에 대추가 첫 번째 자리에 놓인다.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뜻에서이다. 대추는 열매를 많이 열어 자손의 번창을 의미한다.
3) 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천지의 이치이다. 그러나 감만은 그렇지 않다. 감 씨앗은 심은 데서 감나무가 나지 않고 대신 고욤나무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3~5년쯤 지났을 때 기존의 감나무 가지를 잘라 이 고욤나무에 접을 붙여야 그 다음 해부터 감이 열린다. 이 감나무가 상징하는 것은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다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가르침을 받고 배우는 데는 생가지를 칼로 째서 접붙일 때처럼 아픔이 따른다. 그 아픔을 겪으며 선인의 예지를 이어 받을 때 비로소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르침을 받고 배움이 있어야 사람이 된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다.
칠덕수(七德樹)로서의 감나무
옛사람들은 또한 감나무를
1) 새가 둥지를 틀지 아니하고
2) 벌레가 생기지 않고
3) 녹음이 짙어 풍성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4) 그 수명이 오래가며
5) 나무의 단풍이 아름답고
6) 그 낙엽은 거름에 좋고
7) 열매는 그 맛이 뛰어나다 하여 7곱가지 덕을 가진 나무라하여 칠덕수(七德樹 ) 라고 불리었으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옛 성인이나 선비가 거처하는 집에는 마당 한 구석에는 꼭 한 두 그루 이상의 감나무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이 오절을 구비한 나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절(五節)을 구비한 감나무
감나무는 잎이 넓어서 글씨 연습을 하기에 적합하므로 문( 文 )이 있다 하였고,
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단단하여 화살촉의 재료가 되기 때문에 무(武 )가 있으며,
또한 감은 다른 과일과는 다르게 겉이 푸르면 속이 푸르고 겉이 누르면 속이 누렇고 겉이 붉으면 속도 붉어져 표리(表裏)가 항상 동일하므로 충( 忠 )이 있고.
익으면 달고 맛있는 홍시가 되어 노인들이 즐겨 먹을 수 있어서 효(孝 )가 있다 하였으며,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까지 떨어지지 않고 가지에 달려 있으므로 절( 節 )이 있다 하였다
따라서 감나무는 문(文), 무(武), 충(忠), 절(節), 효(孝)를 갖춘 나무라하여 5절을 갖춘 나무라고 불리어져 왔다.
여기서 잠시 감을 주제로 한 효(孝)에 대한 옛 선조들의 숨소리를 들어보자
조홍시가(早紅枾歌)라 이름하는 이 시조는 조선시대의 송강(松江) 정철(鄭澈),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와 더불어 조선 3대 작가로 불리우는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시조(時調)다.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l 아니라도 품음즉도 하다마난
품어 가 반기리 업슬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소반에 담긴 일찍 익은 감(홍시)이 곱게도(먹음직 스럽게도) 보이는구나.
유자가 아니라 해도 품어 가지고 가고 싶은 마음이야 가득하지만
이 감(홍시)을 품어가도 반가워 해 줄 부모님이 안 계시니 그것이 서럽구나.)
작자는 퇴관하여 은둔생활을 하면서 평소 존경하든 한음 이덕형 선생을 자주 찾았다. 하루는 한음 집을 찾으니 한음이 반가운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내놓는 소반에 담겨있는 조홍감을 보자, 불현듯 중국의 오나라 때의「회귤」고사가 생각나면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슴에 떠올랐던 것이다. 이미 돌아가신 어머님을 그리고 생각하는 애절한 심정이 우리의 가슴을 찌르고, 작자의 어버이에 대한 효성심이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한마디로 풍수지탄(風樹之嘆 :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효도 못한 것을 몹시 후회함)을 연상하게 하는 노래이다.
여기 시조 내용에 나오는 유자(柚子)의 육적회귤(陸績懷橘)의 고사성어(故事成語)에 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코자 한다.
옛날 중국 오(吳)나라의 육적(陸績)이 6세 때에 원술(袁述)의 집에서 갔었는데 원술이 육적에게 접대로 유자 귤3개를 내어 놓았다 육적은 그것을 먹는 체 하면서 원술 몰래 그것을 슬그머니 품안에 숨겨 넣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월술에게 하직인사로 큰 절을 하는 도중에 품안에 숨겨 넣었던 귤이 방바닥으로 떨어져 나왔다. 원술이 이상히 생각하여 육적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집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고 싶어서 그랬노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원술은 육적의 그 지극한 효성에 매우 감동하였다는 가슴을 찡하게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효(孝)가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는 요즘의 현실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담은 위의 2 시조를 읽어가면서 그 뜻을 생각해보면 마음이 숙연해 지며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 끝말
감은 옛날부터 별도로 과수원을 조성해서 재배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집 뜰안에 심어서 봄에는 꽃을 보고 그 꽃을 먹기도 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즐기며 겨울에는 열매를 따서 먹어 온 대표적인 정원 과수로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우리는 다시금 감이 지닌 여러 가지 의미를 되새겨보고 자기 자신의 수양에 다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