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의 제2부에서 상(相, aspect)과 관련된 매우 특이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 논의에 등장하는 일련의 예들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이른바 토끼-오리 그림일텐데, 이 독특한 그림이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의 물리적 오리엔테이션을 지닌 그림이 어떻게 두 개의 다른 그림으로 인식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 역시 이러한 독특한 그림의 성격이 제기하는 문제를 놓고 토끼-오리 그림과 유사한 여러 예들을 들면서, 상의 변화(changing aspect), 상의 떠오름(dawning of aspect), 또는 상맹(相盲, aspect-blindness)과 같은 독특한 용어를 사용하여 상(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상과 관련된 언급이나 논의는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의 저작들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시기에 상의 문제는 그가 관심을 가진 주요 이슈의 하나였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그러한 철학적 이슈로서의 중요성을 쉽게 가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트겐슈타인 연구에 있어서 상(相)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사례는 그리 흔치 않다. 비트겐슈타인 개설서들은 이 문제를 대개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본격적인 비트겐슈타인 연구서들에 있어서도 아주 간략하게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상과 관련된 논의는 대개 심리학적 주제와 관련된 저서들이나 단편적인 연구 논문에서 주로 다루어져 왔지만, 아직도 다양한 이견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상황에서 이 주제에 대한 연구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충분하게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국내 학계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된 기존의 연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여서 그에 대한 연구가 성공적으로 시도된다면, 국내 비트겐슈타인 연구의 폭을 넓히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구자는 본 연구를 통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 상(相)과 관련된 논의가 어떠한 배경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고,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해결책은 무엇이었는지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표면적으로 이 논의가 1947년의 저작물에서부터 나타난다고 할 때, 문제의식 자체가 성숙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바탕에 둔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시기에 따른 그의 철학적 변화가 여러 다른 내용과 아이디어들을 담고 있다 해도 그의 철학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적 요소가 언어와 세계와의 관계에 기초한 의미의 문제를 근본적인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연구자는 상의 문제 역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어느 시점에 갑자기 등장한 문제라기보다는 훨씬 근본적인 문제의 맥락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 아래 넓은 시각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할 것이다. 그러한 시각을 가지는 것은 결국 상(相)이라는 좁은 주제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그의 철학 전체를 적절히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연구자는 상의 문제에 대한 심층 연구를 통해서 과연 이 문제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관심이 어떠한 배경에서 생겨난 것인가의 문제로부터 그러한 관심이 어떠한 철학적 해결점으로 발전되었는가에 이르기까지를 명료하게 해명함으로써, 비트겐슈타인 철학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