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15대 국왕이었던 광해군(1572~1641)은 인조반정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난 후 제주도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선조와 공빈 김씨사이에서 두 번째 왕자로 태어난 광해군은 1608년 왕위에 올랐다가 재위 15년만인 1623년 반정세력에 의해 폐위된 비운의 국왕이다.
광해군 묘는 폐위된 국왕의 묘로 규모도 매우 단촐하지만 찾기도 어려운 곳에 있다. 정순왕후의 사릉이 있는 송능삼거리 적성골 입구에서 약 20분 정도 사릉로를 따라 들어가다보면 영락교회 공원묘원 입구가 나온다. 이곳이 광해군 묘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다. 공원묘원 포장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걷다보면 광해군 묘라는 안내판이 보이고 도로에서 아래편으로 작은 묘역을 발견하게 된다.
광해군 묘는 1623년 화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폐비 유씨와 함께 안장된 묘역이다. 묘 앞으론 길도 없는 급경사 언덕이 자리하고 있어 매우 비좁다. 그래도 한 때는 국왕이었지만 군으로 강봉되어 삶을 마감한 후 안장된 묘역은 연산군 묘와 더불어 묘역 뒤편으론 포장도로가 뚫리고 묘 앞으론 웬지 답답한 전경이 펼쳐진 모습이다.
재위 당시 떠오르던 청과 멸망해 가는 명 사이에서 뛰어난 외교력을 발휘했던 광해군은 그 웅지를 제대로 펼치기도 전에 반정세력에 의해 비운의 삶을 누리다가 이렇듯 초라한 묘역에 잠들어 있는 모습은 비장한 권력의 세계를 느끼게 해준다. 결국 반정세력인 인조는 병자호란을 맞아 청나라에 의해 삼전도의 굴욕마저 당하지 않았던가. 만일 광해군이 계속 권좌에 앉아 있었더라면 당시 역사적 상황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한때는 조선국왕의 신분이었지만 인조 반정세력에 의해 폐위된 광해군 묘는 초라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다
광해군 묘는 사릉이 있는 송능삼거리에서 사릉로156번길로 접어들어 적성교를 건너 송능리 방면으로 1km정도 들어간 곳에 있다
적성교를 지나면 바로 나오는 갈림길. 이곳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면 광해군 묘,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효종의 후궁, 안빈 묘로 가는 길이다
광해군 묘는 공원묘원 내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까지 마을버스(금곡~봉인사 간)가 수시로 운행한다
포장도로가 난 공원묘원길을 10분 정도 오르다보면 나오는 광해군 묘 입구
너무도 초라해 보이는 광해군 묘
부인 폐비 유씨와 함께 안장된 광해군 묘는 봉분을 둘러싼 곡장을 제외하면 일반 묘와 별로 차이가 없다
조선국왕을 지낸 인물의 묘역답지 않게 조촐하기만한 광해군묘
비운의 단종비 정순왕후의 사릉(思陵)을 탐방하는 길에 인근에 있는 광해군 묘를 함께 탐방하는 일정을 계획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송능삼거리에서 먼저 사릉을 탐방한 후에 사릉로156번길을 따라 적성골 마을길로 접어들어 마을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면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사릉과 광해군 묘가 있는 송능삼거리는 대중버스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버스를 이용해 이동한 다음 '적성골입구 조선왕릉 사릉'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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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루덴스`s 트라이라이프 원문보기 글쓴이: 루덴스
첫댓글 어제 광해군을 공부하다보니 광해군묘가 궁금했고, 아직 답사를 안간지라 잘 정리된것이 있어서 스크랩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