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회사 만들고 싶어 벤처 창업 나눔기술은 1990년 가을에 설립됐다. 창업 당시 3명이던 인원이 현재 74명, 보증금 없이 15만원짜리 9평이던 사무실이 여의도를 내려다보는 한강변 400평의 사무실로 바뀌었다. 97년 총 매출액은 44억1천만원, IMF로 국내 경기가 전반적으로 어려웠던 지난해 매출은 24억1천만원, 그리고 올해 매출 목표는 51억2천만원으로 벤처기업의 '꿈'이라 할 수 있는 코스닥 등록을 앞두고 있다. 괄목할 만한 성장률은 아니지만 꾸준한, 그래서 더 신뢰가 간다. 나눔기술을 이끌고 있는 장영승 사장은 지난 85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재학시절 미문화원점거농성사건에 참여, 2년 7개월간 옥고를 치뤘다. 덕분에 미국 정부에 의해 '테러리스트'로 분류, 대한민국 국회의원 20명이 신원보증을 했는데도 3차례나 비자 발급이 거부되기도 했다. 장영승 사장은 출소 후 학교를 마치고 국내 중견 정보통신업체 중 하나인 펜타컴퓨터에 입사했다. 당시 담당했던 업무는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개발. 이것이 계기가 돼 나눔기술이 기업용 솔루션 개발이라는 한 우물에 전념하게 된 셈이다. 장영승 사장은 1년 후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나눔기술(당시 정보와 기술나눔)을 설립했다.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기업, 진실로 나눌 줄 아는 좋은 회사를 만들어 보겠다는 게 동기였다. 장사장이 생각하는 좋은 회사란 기술자들이 마음껏,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말한다. 한마디로 나눔기술의 모토이기도 한 '올바르고 강한 회사'인 것이다. 올바르다는 것은 경영자가 기업경영을 올바르게 할 뿐 아니라 구성원들도 건강한 생각을 갖고서 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강하다는 것은 돈도 많이 벌지만 기술도 뛰어나고 게다가 조직력도 강한, 규모는 작아도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회사라는 게 장영승 사장의 설명이다. 창업 후 기업으로서 나눔기술이 처음으로 했던 일은 기업의 경영정보시스템(MIS)을 개발해주는, 소위 벤처기업 으로서는 아주 평범한 사업이었다. 시작부터 모험적인 사업을 벌리기보다는 가치 실현에 중점을 두고 우선 경험해 본 영역에서부터 출발, 차근차근 기반 기술을 쌓아가겠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한국형 그룹웨어 출시로 성장발판 마련, 장영승 사장은 첫 프로젝트를 수주했을 때의 기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창업은 했으나 변변한 프로젝트 하나 수주하지 못한 채 3∼4개월을 보냈다. 당시 수입으로는 회사를 꾸려가기에도 힘이 들었다. 이런 가운데 수주한 방송위원회(KBC) 심의업무 전산화 및 도시정보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는 나눔기술의 초기성장에 큰 힘이 됐다는 것이다. 나눔기술이 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92년 6월 한국컴퓨터소프트웨어전시회(SEK)에서 '나눔 OISA(Office Integration System Architecture)'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컴퓨터로 전자결재 문서에 도장이 찍히는 것을 보고 관람객들은 물론 쟁쟁한 소프트웨어 업계 관계자들도 깜짝 놀랐다. 당시로서는 국내는 물론 미국의 세계적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생각지 못한 제품이었다. OISA는 서식처리시스템, 기간업무시스템, 전자우편, 전자결재시스템 등을 단일 환경으로 묶은 전혀 새로운 개념의 기업용 업무흐름 통합시스템. 오늘날 간판제품이 된 그룹웨어 '워크플로우'의 기본 사상인 셈이다. 나눔기술은 OISA를 바탕으로 이듬해인 93년 한국형 그룹웨어 '워크플로우 1.0'을 내놓았다. 동시에 사명을 지금의 나눔기술로 변경했다. 향후 데이터베이스(IP) 사업까지 확장하겠다는 계획 하에 초기 사명을 정보와 기술나눔으로 정했으나, 부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정보통신 벤처기업 이라기보다는 기획사의 이미지가 강하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이 때부터 나눔기술은 핸디소프트와 함께 국내 그룹웨어 시장을 이끄는 쌍두마차로 떠올랐다. 그러나 장사장은 '워크플로우 1.0'에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고 말한다. 나눔기술이 '워크플로우 1.0'을 개발할 당시는 운영체계로 주로 마이크로소프트(MS) 도스가 사용되던 시기였다. 윈도우는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데 불과했다. 나눔기술은 당연히 도스버전 그룹웨어를 개발했으며, 당분간은 도스시대가 지속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윈도우는 급속히 신장했고, 나눔기술은 도스버전을 제대로 팔아보지도 못하고 바로 윈도우 버전 개발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만약 나눔기술이 당시 도스버전이 아닌 윈도우 버전을 핸디소프트에 앞서 내놓았더라면... 그룹웨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 실패로 시련기 맞아 93년 나눔기술은 우리말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개발한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 '씨앗'을 개발했다. 하지만 '씨앗'은 상업적으로 실패했고, 나눔기술은 최대의 시련을 겪게 된다. 프로그램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 말처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누구나 쉽게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 한글로 된 프로그래밍 언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제품은 상업적으로 전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어떤 소프트웨어보다 안정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벤처기업이 개발하겠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장영승 사장은 씨앗은 상업적으로 실패하기는 했지만, 애당초 씨앗은 돈을 벌자고 개발한 게 아니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씨앗을 기반으로 나눔기술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나라에 꼭 필요한 기술은 돈이 안돼도 한다는 긍정적 이미지와 어려움을 겪으면서 회사내 조직력이 만들어 졌다는 게 장사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씨앗 개발에 들어간 노력이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었다.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에 뛰어들 정도로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라는 인식이 사용자들의 입을 통해 확산됐으며, 한글처리 부문에서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다. 씨앗 개발과정에서 축적된 기술력이 없었다면 나눔기술의 한글검색엔진인 '스마트서치'도 개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스마트플로우'로 인트라넷 시장 선점한 셈이라 말 할 수 있었다.
나눔기술을 명실상부 기업용 솔루션 업체의 반열에 올려놓은 제품인 '워크플로우'는 94년 충청은행의 양식문서처리시스템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충청은행 양식문서처리시스템은 당시 은행권에서는 매우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받았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은행의 본점과 각 지점이 표준화된 업무 흐름과 동일한 폼(FORM)을 사용할 수 있도록 문서처리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것은 매우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충청은행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눔기술은 결재문서상의 데이터를 결재처리 후에도 재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또한 기업 네트워크가 확산될 경우 기존에는 수작업으로 진행하던 결재 및 보고업무가 빠른 시일내에 전자문서관리로 대체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폼에 기반한 워크플로우를 개발키로 결정한 것이다. 이렇게 개발된 '워크플로우'는 마침 국내 기업들의 랜(LAN) 도입 및 다운사이징의 열기와 맞물려 순식간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후 워크플로우는 지속적인 업그레이드와 기능 향상을 거치면서 성장, 현재 200여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96년부터 국내에 확산되기 시작한 인트라넷의 개념은 모든 IT업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나눔기술 역시 기업환경에 인트라넷을 적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기업들은 인트라넷을 운영하기에는 매우 열악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기업에서 사용하고 있는 PC 대부분은 8∼16MB의 메인메모리를 탑재한 486PC로 당분간 쉽게 개선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눔기술은 과거 도스에서 윈도우 환경으로의 이전이 불가피했듯이 클라이언트/서버에서 인트라넷으로의 전이는 필연적이라고 판단, 워크플로우의 인트라넷 버전을 개발키로 결정했다. 한발 늦은 윈도우 버전 출시로 그룹웨어 시장 선점에는 실패했을지 모르나, 인트라넷 시장에서만큼은 선두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이기도 했다. 워크플로우에서 제공되는 기능들을 인트라넷 방식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자바( JAVA) 또는 액티브X와 같은 신기술을 적용해야 했다. 나눔기술은 기존 고객들의 PC 사양을 고려할 때 당시에 주목을 받는 기술인 자바 애플릿 방식은 기술적인 가치는 있을지 모르지만 비현실적이라고 판단, 액티브X 기술에 기반한 인트라넷 그룹웨어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나눔기술의 핵심 솔루션, '스마트플로우'는 이렇게 탄생했다. 나눔기술의 판단은 제대로 적중했다. 인터넷의 열풍은 빠른 속도로 기업 정보 환경을 강타했으며, 스마트플로우로 나눔기술은 그 동안 약세를 보여오던 공공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공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96년 부산시청 전자문서관리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수주한 것이다. 부산시청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눔기술은 또 한번의 기회를 맞았다. 공공기관에 맞게 스마트플로우를 커스터마이징하는 과정에서 그룹웨어의 기본 문서작성기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기존 클라이언트/서버형 그룹웨어는 자체 개발한 문서작성기가 탑재돼 있었고, 스마트플로우는 나모웹에디터의 컨트롤(CONTROL)이 통합되어 있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미 개발해 본 경험이 있거나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커스터마이징하는 것이었지만, 나눔기술의 도전정신은 고객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공시장은 이미 90% 이상이 한글과컴퓨터의 담글을 워드프로세서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룹웨어가 별도의 문서작성기를 기반으로 할 경우 고객이 불편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눔기술은 결국 기존 소프트웨어를 전면 재개발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담글을 문서작성기로 채용한 공공기관용 그룹웨어를 개발했으며, 이는 공공시장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이후 그룹웨어의 담글 지원은 일반적인 추세가 됐으며, 일부 업체들은 지금도 나눔기술이 이미 3년 전에 구현한 담글을 지원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전한다. 스마트플로우는 최근 또 한번의 변신을 했다. 리눅스 기반 서버시장의 확대에 대응하고자 인트라넷 그룹웨어인 '스마트플로우 2000'의 리눅스 버전을 출시한 것이다. 나눔기술이 선보인 리눅스 버전은 스마트플로우 2000의 일반기업용과 공공기관용 두 버전 모두를 리눅스 환경에 맞게 재설계한 것으로, 이미 상용화한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리눅스 버전으로 변환한 사실상 국내 첫 사례인 셈이다. 여기서 장영승 사장은 서철저하게 경영철학에 기반한 사업 전개에 힘을 쏟았다..
장영승 사장은 나눔기술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정직한 회사라고 말한다. 나눔기술이 창업초기부터 줄곧 일관되게 지향했던 시장은 기업의 업무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이다. 모든 시장이 마찬가지겠지만 기업에서 그룹웨어와 같은 핵심 업무용으로 애플리케이션, 그것도 패키지를 도입하는 데 있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은 제품 자체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개발 및 공급업체의 신뢰도라는 게 장사장의 판단이었다. 그룹웨어와 같은 제품은 한번 기업에 도입되면 쉽게 바꿀 수가 없으며, 또 한번 업무에 적용되면 그룹웨어를 사용하지 않고는 업무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할 정도로 그 파급 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장사장은 이런 시장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 대외적으로 나눔기술은 돈을 잘 버는 회사라기 보다 성실하고, 고객을 속이거나 배신하지 않는다는 기업 이미지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가장 벤처기업다운 홍보전략을 마련한 것이다. 나눔기술의 이같은 전략은 단순히 홍보차원을 넘어서 나눔기술의 경영철학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나눔기술은 영업에 있어서도 경영철학을 철저하게 지켰다. 경험과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벤처기업이 패기만으로 기업 시장을 뚫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나눔기술은 결코 편법을 쓰지 않았다. 철저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스스로 노하우를 쌓아갔다. 이와 관련 장영승 사장은 단 한번도 뒷돈을 줘 본 적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물론 리베이트도 안 줬다고 한다. "술을 산 적은 있다. 그러나 술을 사더라도 일이 되기 전에는 사지 않고 성사된 후에 고맙다고 샀다. 만약 나눔기술이 기존 기업들과 동일한 영업 형태를 보였다면 지금의 나눔기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업문화에도 벤처정신이 가미한 셈이라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벤처기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원동력은 아마 그들의 독특한 기업문화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도의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한 벤처기업의 특성상 구성원의 자율성을 어떻게 최대한 이끌어 내느냐의 여부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나눔기술은 소유, 분배, 인사, 그리고 경영제도 면에서도 새로운 벤처, 즉 모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나눔기술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연봉제와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한 기업 중 하나다. 회사주식의 25%를 무상으로 사원들에게 나눠줬으며, 매년 주주사원들의 투표를 통해 이사를 선임한다. 새 이사를 선임할 때 이사회는 임명 6개월 전에 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임직원은 이사 후보의 업무행태와 능력을 예의주시한 후 주주총회에서 투표로 선임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또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개인별, 부서별로 목표 계획을 작성하고 계획의 70% 이상을 달성하면 달성도에 따라 차등 있게 인센티브를 적용한다. 연봉제 역시 인센티브로서의 특성을 살려, 동일직급 사원 가운데 연봉이 1천만원 이상 차이나는 경우도 있다. 근무형태 역시 선택제도를 도입해 주당 55시간 이상 근무하는 집중근무와 주당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일반근무, 그리고 개인사정으로 정상근무를 원하지 않을 때의 여가근무 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임금은 근무형태에 따라 정상월급의 70∼140%로 차등 지급한다. 출퇴근 역시 자율에 맡긴다. 출근시간은 아침 8시30분에서 10시30분 사이에 6개월 단위로 자신이 정할 수 있는데, 자기가 정한 시간보다 늦게 출근하면 지각으로 처리된다. 퇴근시간은 출근시간에 맞춰 8시간 근무제로 계산하면 된다. 또한 경영진을 제외한 사원회가 있어 여러 가지 사내 현안에 대한 토론과 결정을 내리게 했다. 대리 승진시 회사 경영혁신 방안이나 업무능력 향상방안을 담은 실용적인 논문을 제출해 전 사원이 평가하는 독특한 승진심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장영승 사장은 벤처기업의 문화는 자율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구나 9시에 출근하고 양복을 입는다고 해서 일체감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장사장은 간혹 운동권 출신 중에 벤처기업을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과거의 매너리즘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벤처기업의 문화에도 문제는 있다. 자율과 다양성은 있지만 일사불란한 면이 부족하다. 이는 벤처기업이 풀어야할 최대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장사장은 이런 자율과 다양성이야말로 조직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믿기에 다소 부작용이 따르더라도 밀고 나간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