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일 년에 한번은 러셀산행은 아니더라도 심설산행만큼은 해오던 터라, 유난히 눈이 안 오는 올 겨울을 한탄하던 중 때마침 1월 26일경부터 전국적으로 폭설에 준하는 눈이 온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바로 深雪山行을 가자며 함백산 산행을 추진하는데 몇몇 회원이 중요한 약속이 있다며 난색을 표합니다.
그래도 기회가 기회인지라 대신 월요일 휴가를 내고 일요일 오후에 출발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추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토요일 우정 망우역까지 나와 기차표까지 예매를 하고 정작 일요일을 기다렸으나, 눈은커녕 날씨만 을씨년스럽게 춥기만 하고, 휴가까지 내고 추진하던 산행계획에 가슴만 뻥하니 구멍 난 기분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을 애궂은 기상청에다 심술을 부려봅니다만..... 사실 맞는 말입니다.
최근 들어 기상청의 예보가 빗나간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습니까? 빗나가도 어느 정도라면야.... 이건 완전히 폭우가 쏟아지는 곳에 눈이 온다는 격 정도이니 말입니다. 기상청 직원 여러분 죄송하지만 이해하십시요. 사실 이 것 때문에 현 집행부 욕을 좀 했더랬습니다. 그 전 집행부때는 날짜만 잡으면 오던 비도 그치고 , 흐린 날씨도 쾌청해지고 하더니.....올해는 영. 그래서 시산제를 하자는 둥 굿판이라도 벌려보자는 둥. 쓸데없는 소리들을 좀 했었습니다.
일요일 5시 출발이라 미리 만나 소주나 한잔하자며 3시에 청량리역에 모여 뒤늦은 점심 겸해서 소주 한잔에 날씨 탓을 하는데 우리의 떠드리아저씨 또 업무이야기입니다. 힘들다며 휴가까지 내고 뛰쳐나왔는데 직장인이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용팔이와 리틀용팔은 양평에서 타기로 했기에 나, 떠드리, 시중, 끝내리 마샘, 그리고 삐리리 임똥과 리틀 임똥. 이렇게 여섯이서 기차에 몸을 싣습니다. 간만에 타보는 기차지만 환경은 그대로입니다.
타자마자 맥주 한 캔씩을 들이키며 양평에서 용팔 가족을 태우고 캄캄한 길을 졸다 보니 기차는 제천을 지나 영월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벌써 이 해 들어 영월을 두 번이나 지나쳐 갑니다. 깊은 산골 속에 스쳐지나가는 한 두개의 불빛은 분명 이제는 늙어버린 우리 할배같은 민초들의 안온한 삶의 터전들이 아닐까요?
영월, 신동, 예미, 자미원, 증산. 이름만 들어도 예쁠 것 같은 역들을 지나 기차는 사북에 도착하는데, 그 변해버린 모습에 일견 당황해합니다. 10여 년 전에 차를 끌고 이곳을 지나 갈때는 별 볼일 없던 곳이 그 ‘강원랜드’가 뭔가 하는 것이 들어서더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그려. 울긋불긋한 호텔 네온싸인에 보이는 것이 전당포요, 때마침 들어선 ‘하이원’이라는 스키장으로 인해 라스베가스 저리가라더군요.
우리는 20년이 훨씬 지난 시절의 사북사태 이야기로 이곳의 쓰라린 추억을 되살려봅니다. 아직도 생각나는 그 당시의 한 장-당시 노조위원장의 부인이 노조원들에 멱살을 잡혀 끌려다니던-의 사진. 추후 그 사진의 주인공이 20여년이 지나 어느 신문 지상에서 당시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다시 기차는 고한을 거쳐, 기차터널로는 무지하게 긴 두문동재 터널을 지나 우리나라 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는 추전역을 지나 밤 9시 반경에 우리들을 태백역에 토해놓습니다.
내일 열차편을 예매하기 위해 창구로 가니 웬 시커먼 사람 4명이 역무원과 아주 작은 실랑이를 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자니 진짜 짜증이 납니다. 빨리 예매하고 잠자리도 구해야 하는데, 자기들은 서울에서 온 민중의 지팡이라며 신분증을 들이대고 할인해 주는 것이 없냐며 티격태격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티격태격은 좀 뭐하고 끗발 있음을 이용하여 좀 덕을 보려는 수작들 같은데. 뒤통수를 한 대 콱 쥐어박으려다......
정작 우리 것을 예매해 놓고 보니 양평과 서울의 요금 차이가 3,000원이나 납니다. 용팔패밀리분을 합치면 6,000원이나 벌써 손해 본 것이지요. 아이구 배 아파라!
배도 출출한 터라 잠자리 얻기 전에 저녁을 해결하려는데 시중지부장이 한마디 합니다. ‘기사식당 들어가서 후회하는 적 없다’고..... 마침 눈에 띄기에 들어가서 청국장에 제육볶음에다 가져 온 양주 한 병을 꺼냅니다. 사실 이번 산행에 술 종류에 무진 애를 썼는데 정작 술꾼들이 별로라 재미를 못 봤습니다. 양주 한 병에다 담근 술 몇 개를 가져왔는데 말입니다.
가시오가피주, 꽃사과주, 야관문주..... 삐리리 전임회장님이 얼마 전 대단위 이빨보수공사를 해서 술을 전혀 못하고, 시중이도 전날 먹은 술이 아직도 덜 깬 것 같고, 떠드리는 마누라랑 한바탕하고 왔는지 술을 보고도 시큰둥하고-그래도 결국은 남자에게 좋다고 한마디 했더니 다음날 야관문주는 한 병을 몽땅 낼름 배낭에 집어넣어 가지고 갔습니다.-...... 이래 저래.
식당 문을 나서니 기다리던 눈이 내리기 시작하지만, 양은 별로 일것 같습니다. 내일 산행시작점 근처로 가서 자느냐, 아니면 어차피 차가 예서 출발하니 여기서 자고 가자는 둥 참 말도 많더니, 바로 여관방을 잡고 내일 쓸 부식을 사고 맥주를 사들고 들어와 보니 벌써 용팔이와 삐리리 임똥, 떠드리는 자고 있습니다. 떠드리를 깨워 高原의 겨울밤 회포를 잠시 풀고 내일 산행을 위해 잠자리에 듭니다. 또 언제나처럼 끝내리 마샘은 너무 술자리가 일찍 끝난게 서운한지 얼핏 잠자리에 들려하지 않습니다.
간단히 누룽지로 아침을 때우고 7시경에 여관을 나서 터미널로 가 택시를 잡고 물어보니 대당 13,000원 정도가 나온답니다. 화방재까지..... 다음 버스를 기다리자니 시간이 아까워 두 대에 나누어 타고 눈이 살짝 내린 길을 달려 화방재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하니 7시 반경.
처음부터 된비알을 오르는데 우측 태백산 자락을 넘어오는 아침 해가 눈부셔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출발할 걸’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급경사를 오르다보니 벌써 땀이 삐질삐질. 거기에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에 귀가 얼얼합니다. 한참을 올라 무명봉에서 동쪽을 보니 바로 앞으로 시커란 태백산이 앞을 가로막아 섰고 그 위로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은 먹구름이 몰려와 있습니다. 이제 한바탕 눈이 내리나보려다 기대를 했지만 결코 현실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이깔나무와 잣나무 숲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길로 지금까지 쌓인 눈에 그런대로 겨울산행의 맛을 느끼게 해줍니다. 함백산이 바로 올려다 보이는 시설물 근처에 오니 제법 눈이 쌓여있어 햇살이 눈(雪)에 반사되어 눈(目)이 부셔옵니다. 좌측 상동쪽으로 보니 雲霧 비슷한 것이 산허리를 둘러쌓는데 꼭 신선세계에 올라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어젯밤에 먹으려다만 족발을 꺼내놓으니 순식간에 달려들어 아작을 내는데, 갑자기 빗자루를 든 군인들이 나타나더니 이곳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 빨리 떠나라고 성화입니다.
서둘러 만항재로 내려오니 고속도로 같은 길이 나오는데 아까 택시운전사 아저씨가 이곳까지 차를 댈 수 있다고 했는데, 여기까지 내쳐올걸 하는 아쉬움이 나옵니다. 아스팔트 길을 조금 걷다 바로 함백산으로 오르는 산행길로 다시 접어듭니다. 그러나 이 길도 한참을 가서 함백산 바로 직전에 다시 아스팔트 길과 만납니다. 다행이 대간 길을 좋아하는 지라 무던히 군소리없이 다시 언덕길을 올라섭니다. 허허벌판으로 나오니 동쪽의 우람한 태백산과 그 너머의 육백산, 응봉산자락이 스카이라인을 그리고 있고 가운데에 고원의 도시 태백시가 오롯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조금 더 틀면 함백산 바로 밑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의 고지훈련장이 산중턱에 을씨년스럽게 보입니다.
지금부터 다시 함백산을 내쳐오르는 길은 급경사길로 한참을 숨을 헐떡이게 합니다만, 바로 정상이 보이는 능선에 올라서니 구름도 다 걷히었고 그야말로 一望無際입니다. 아쉽다면 정상 바로 옆의 시설물이 옥에 티지만..... 몰아치는 바람에 사진을 정신없이 찍고 나니, 빨리 점심을 먹잡니다. 우리 신들메산악회의 특징이 올라 본 적이 없는 산을 주로 찾고 항상 그 지방의 음식물을 먹는다는 규정 아닌 不文律이 있어, 이 고장의 태백한우를 먹으려면 점심을 빨리 먹고 빨리 배를 비워야한다는 命題가 들어서게 됩니다. 물론 가장 주도하는 사람이 떠드리 동지고요.
정상 조망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사실 이 맛에 산에 오른다 해도 별 무리는 없다 할 것입니다. 사방이 막힘없이 뚫려 있는 조망처인지라 추운 줄도 모릅니다. 북쪽 방향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중함백, 은대봉, 금대봉을 넘어 매봉으로 이어지는 길이 뚜렷하고, 날씨가 좋아서인지 고한쪽의 강원랜드, 하이원 스키장을 필두로 지난 가을 올랐던 민둥산, 두위봉 등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푹푹 빠지는 눈길을 내려와 점심 해결 장소를 찾아 배낭을 내려놓으니 이 곳이 주목군락지의 보호구역이라 철조망을 쳐놓은 곳입니다. 일부는 라면을 끓이는데 시중이가 ‘이것 봐라’ 합니다. 철조망에 무슨 만국기 걸린 것도 같고, 시골 성황당의 모습같기도 한 표지기가 너덜너덜 달려있는데 - 사실 이 자리에서 한마디 하건대 표지기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일종의 산행표지판입니다. 산행길이 애매하다든가, 갈림길에서 방향 표시를 한다던가 하는 것이 그 목적일진대, 이건 완전히 자기들 산행하는 자랑입니다. 산악회 이름에 개인 이름까지 덕지덕지 붙여서..... 뭐 하는 꼴들인지. 저도 산행을 하다 표지기의 혜택을 받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만, 정작 중요한 있어야할 곳에는 없고 더 이상 갈 길이 없는 이런 철조망에다 어지럽게 붙여놓은 꼴이라니 - 그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山自分水嶺 건강보험 이차장 011-ooo-oooo’ 이라 적혀있는 노란 색의 표지기였습니다. 시중이는 사진 올릴 때 필히 올린다했는데..... 나는 일반 민간건강보험 직원이 홍보용으로 붙여놓은 것이라 치부해 버리고 무시하기로 하였습니다.
라면에다, 담근 술로 간단히 점심을 해치우고 능선이라 제법 눈이 많이 쌓여있는 길을 달려 두문동재로 내려섭니다. (한참 걸렸으나 산행기가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중략)
예전에는 번화한 길이었으나 산 밑으로 두문동재 터널이 뚫리면서 대간 길을 가는 사람이나 금대봉, 분주령, 대덕산으로 이어지는 들꽃, 야생화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으로만 알려져 지금도 도로에는 눈이 쌓여있어 아예 차량통행이 금지된 곳입니다. 그 와중에도 정선쪽은 눈을 치워 차가 올라오도록 만들었으나 태백시쪽은 아예 꿈에도 계획이 없었는지 그야말로 눈길입니다.
다시 금대봉을 넘어 용연동굴로 내려갈 것이냐로 의견이 나뉘었지만 어느 누구도 금대봉을 넘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시간도 많이 지체되었고, 기차시간도 있고 한지라 빨리 한우고기 먹어야한다는 떠드리의 强辯(?)에 모두 ‘맞아 맞아’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눈치입니다. 물론 더 가고 싶은 사람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산 밑 터널 속에서 차들은 쏟아져 나오는데 저기까지 가는 길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꾸불꾸불한 길을 근 3km를 내려가야 하니 우리에겐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바로 깍아 지른 듯한 비탈길을 바로 직선으로 타넘어 내려가는데 장난이 아닌게 잘못 밟으면 죽죽 미끄러지지, 낙엽은 푹푹 빠지지, 나뭇가지는 사정없이 얼굴을 때리지, 간신히 조그만 계곡 길을 들어서 내려오는데 물은 없지만 작년 폭우 때 군데군데 유실되어 절벽을 이루기도 하고, 들어난 바위는 뾰족뾰족한게 금방이라도 등산화를 벨 것 같은 위세입니다. 기어기어, 허위허위 내려오니 마샘은 엉뚱한 다른 능선으로 돌아내려오느라 고생입니다. 사실 우리야 그런대로 내려온다지만 리틀들은 전혀 생소한 산행길에 고생 많이 했을 것입니다.
국도로 내려섰으나 지나가는 차는 본체만체 쌩쌩 달려가지, 어쩌다 서는 차는 다 못 탄다며 그냥 가버리지 난감합니다. 한참을 헤매다 용팔이가 안내간판에 달려있는 전화번호로 전활하니 대당 만원 정도 한답니다. 괜히 고생했나..... 매그너스와 다이너스티 택시 두 대를 예약하고 바로 달려온 차에 타는데, 그 와중에 더 좋은 차인 다이너스티를 타야한다고 경쟁이 일어납니다. 바람같이 달려 다이너스티에 몸을 실은 사람들의 면면을 보니.....떠드리, 아 물론 나도 거기에 끼었습니다만..... 나는 그래도 덩치가 커서 큰 차에 타야한다고 핑계는 되지만, 물론 떠드리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하겠죠.
태백역 앞에 실비집이 좋다하여 푸짐하게 차려 논 한우고기를 허겁지겁 먹다 보니 탈이 나서 며칠을 고생했었습니다. 불룩한 배를 부여잡고 시간이 남은지라, 황지못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태백에는 우리나라의 4대강 중 가장 크고 긴 강인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가 있는 곳입니다. 그 중 한곳 낙동강의 발원지가 이 곳 황지못이죠. 비록 시내 한가운데 자리 잡아 멋은 덜하지만 그런대도 수량도 풍부하고 물도 그런대로 깨끗합니다.
또 하나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는 아까 오르려다 만 금대봉에서 내려가면 있는 곳으로 전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다음 野生花 트레킹때 꼭 가보려 합니다.
다시 기차에서 먹을 맥주를 사가지고 태백역으로 오니 사람이 바글바글합니다. 대부분 방학 중에 엄마 손을 잡고 눈꽃축제를 보고 가는 가족산행꾼들로, 덕분에 기차는 20여분이나 연착이 된다고 합니다.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졸다 깨다 양평에서 용팔패밀리와 마샘이 내리고 종착역인 청량리역에 내리니 11시가 넘었습니다.
간만에 기차로 산행을 하고보니 경비는 조금 더 들더라도 힘은 덜 들고 리틀들도 같이 할 수 있는 산행이라 참 좋았습니다. 비록 눈은 별로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