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여러분들의 덕분에 무사히 잘 다녀왔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2004년8월6일 20시50분경 Asiana OZ222편(기장: 최병길)으로 이륙하여 뉴욕 JFK공항으로 가는 도중 기체가 많이 흔들리고 불안한 점이 없지는 않았으나 무사히 존F케네디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여전히 시계는 8월6일 22시를 가르키고 있었습니다. 공항입국장소에는 73기 총학생회장이신 정동규회장과 가이드 이강모씨가 영접을 해주었고, 뉴욕 한인타운의 한식점에서 늦으막하게 저녁을 먹으러 갔더니 우리75기 동기 김성순씨가 이성량교학부장과 딸하고 함께 우리를 반기어 주고 있었습니다. 이국땅에서 김성순씨는 서울과는 달리 감기가 걸려 얼굴이 힘이 없어보이고 콧물을 훌쩍거리면서도 우리를 맞이하고자 기다리고 있었는데 안색이 안되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국땅 뉴욕에서도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어디 쉬운일이겠습니까....?
우리 일행은 밤12시가 다되어서 뉴저지주 Holiday Inn Has brook에 여장에 풀고 첫날밤을 쉬고자 하였으나 시차때문에 잠은 안오고 눈이 말똥망똥해서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본인은 잠이 안와서 뉴저지에 있는 형님댁에 놀러가서 진탕 술마시고 놀다가 새벽4시에 호텔로 왔답니다)
그 다음날 그러니까 2004년8월7일 모닝콜이 7시임에도 불구하고 5시30분부터 샤워하고 머리감고 일찌감치 조식을 아메리칸 스타일로 해결하고 8시에 호텔앞에 집결하여 어디론가 가야 했는데 그곳이 어디이냐 하면은 바로 Mr. 부시가 있는 워싱턴 D.C인데 이곳까지 글쎄 4~5시간을 버스로 이동하여 점심을 해결하고 국회의사당 (14:50~5:20) -> 백악관으로이동(15:45~16:10) ->스미소니언박물관(16:15~17:30) -> 제퍼슨기념관(18:00~18:30) -> 링컨기념관((18:30~19:30) -> 알링턴국립묘지(존F케네디 묘와 로버트 F 케네디묘가있고 그 뒤에는 영원의 불(Eternal Flame)이 타고 있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6만여명의 미군이 죽었는데 그 기념물도 방문해서 사진도 찍고 묵념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첫날은 워싱턴D.C에서 관광을 끝내고 석식을 한후 Marriot Hotel 투숙했는데 다음날은 카나다와 미국국경 사이에 있는 나이아가라폭포를 관광하기위해서 자리에 누웠는데 웬일이야 어느덧 밤은 깊어 12시가 다되어 가는 거에요. 내일 아침 모닝콜은 아침6시에 출발은 7시30분이라나. 아이구 무조건 씻고 자는 겁니다.(참고: 우리나라도 전쟁의 기미가 보이면은 진도개 하나, 둘을 군에서 명령을 내리는데... 그와마찬가지로 이곳 워싱턴과 뉴욕은 오렌지경보가 내려져 워싱턴에서는 검문검색이 심했는데 우리나라와는 좀 다른 점은 젊잖게 관광객들에게 불쾌하지않게끔 배려하여 검색하는 모습이 돋보였습니다)
-이곳에서 24명의 동국의 가족들이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단체사진도 찍고 가족 또는 개별 사진을 찍고 하였습니다-
그다음날 그러니까 2004년8월8일 오전 7시30분 Marriot Hotel를 나서서 워싱턴을 출발하여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하는 겁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비싼 돈주고 왔는데 잠을 잘 시간이 어디있느냐 밤을 새더라도 볼 것 다 보고 할 것 다해야 한다나. 그래서 호텔에서 조식도 못얻어 먹고 출발! ~ 해서 조식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하여 가다가 맥도널드로 떼우고(양이 많아서 다 먹지 못할 정도로 1인분이 많더라구요, 그래도 악착같이 다 먹었습니다)
가다가 가끔 화장실을 가는 데 가이드가 화장실 간다고 하면은 듣기가 거북하다하여 화장실을 학교라 칭하여 가다가 쉬(소변)이 마려우면 학교가고 싶다고 하라잖아요. 그래서 가다가 2시간마다 학교를 들렸지요.
가는길에 점심은 중국음식으로 떼우고, 게티스버그의 전쟁기념관에 들려서 구경도 하고, 가다가 허드슨강을 배경을 한 산행도 20~30분 하기도 하고 어떻든 간에 나이아가라 바람의 동굴입구에 도착하니 19시15분이랍니다.(이 나이아가라의 바람의 동굴은 염소섬에 있었습니다)
배가고파서 언제밥을 먹느냐고 하니 지금 밥이 문제냐 여기는 해가 밤9시까지 떠 있다고 하더니 나이아가라 폭포옆의 바람의 동굴로(수심50M)안내하는 것입니다. 50M의 물줄기가 쉴틈이 없이 쏟아붓듯이 흘러내리는 바람의 동굴을 슬리퍼와 노란우의를 입고 관람한 후 카나다로 건너가서 나이아가라 폭포가 내려다보이는 나이아가라 야경을 보러가서 스카이론 타워에서 관광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더니 폭포일식및 한식점이 있었는데 역시 그곳도 한국인이 주인이었어요. 카나다는 우리나라 못지 않게 썰렁하게 불경기라서 IMF때보다 더 불경기라며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카나다인은 물론 한국인들이 무척 어려움을 호소하듯이 보였습니다. 호텔에 진입한 시각은 밤11시30분 호텔은 Double Tree Hotel인데 지은지 3개월 정도 되었다는군요.
2004년8월9일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침 모닝콜은 여전히 6시 출발은 7시30분인데, 조식은 뷔페가 아니고 딱 일정한 량을 1인분씩 주더라구요. 참 희한 일이지요. 그래도 배는 고프지 않을 정도로 주길래 거뜬하게 해결하고 나서기는 했지만 웬지 찝찝하더군요 오늘은 카나다에서 미국으로 건너가기전에(미국<->카나다 왕복하는 동안 여권 검사) 들린것은 안개호 숙녀호 유람선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가 내리 쏟아 지는 곳까지 1시간30분동안 파란우의를 입고 갔다오는데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모든 스트레스와 불만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나이를 보내버린다고 나이아가라가 아니라 '나이야가라' 하고 말하면은 10년은 젊어서 온다는 곳,이곳에서 유감없이 모든 스트레스와 피로와 불만을 던져버리고 나이를 줄여서 돌아 왔기는 했는데....
카나다에서 관광을 끝낸후 7시간동안의 버스로 오면서 중간에 아메리칸스타일로 중식을 해결하고 뉴욕에 도착해서 저녁은 불고기백반으로 해결하고 들어선 곳은 뉴저지에 있는 Hilton Hotel이었습니다.(젊어졌던 나이가 도로 원상복귀되는 듯한 피로가 또 다시 밀려오는 것 같은 상황에서 도착 했습지요)
2004년 8월10일 모닝콜6시 출발은 8시 오늘은 워싱턴광장 -> Water Way 유람선을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는 한식집에서 중식을 하고, 센트럴파크에 가서 20분간 마차를 타고 시내투어를 하고는 센트럴파크에서 오후 5시30분경에 뉴욕 한인타운에 있는 큰집에서 한식을 먹고난후-> 그 유명하다는 뉴욕 브로드웨이 뮤직컬 관람(Phantom of The Opera)하고 나니 밤10시. 이황우 원장님이 맥주한잔 산다해서 이성량교학부장이 안내한 곳은 이성량 교학부장이 졸업한 뉴욕 콜럼비아 주립대학교, 마주보는 허드슨강을 건너서 호반벤치같은 곳에서 맥주 한 병을 대접받고 어제와 똑같은 호텔인 Hilton Hotel로 직행 , 뉴욕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2004년 8월11일 모닝콜6시, 8시출발하여 간 곳은 바로 지금 보이는 수료증을 받은 곳 Stony Brook University에서 한국인 김기자교수의 특강을 듣고, 인도인 교수 Sunirta S. Mukhi , 이분은 stony brook university의 Wang Center의 Director을 맡고 있는 분인데 이분의 유창한 영어 특강후 Wang Center를 둘러보고 아쉬운 작별을 했는데 한가지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뉴욕에는 주립대가 5개 있는데 이 Stony Brook 대학교가 New York주립대의 하나라는 것을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이 학교에서 1일 프로그램의 세미나를 갖고서 수료증을 받은 기분은 뭐라 그럴까요. 꼭 내가 이 학교에서 몇년간 공부해서 수료증을 받는 기분이 었다면 믿어줄까요.
이 곳을 나와서 간곳은 백화점. 이곳에서 미국에 와서는 못다한 쇼핑을 한 곳이랍니다. 평소에 닦은 영어 실력을 다 써 먹었는데.... 어쨌던 간에 언어소통에는 별 문제가 없었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창한 speaking으로 잘 했다는 것이 아니라 다 모두 해결이 되더라는 이야기이지요. 점심은 이 백화점 1층에서 아메리칸 버거킹으로 떼우고, 마지막으로 간곳은 Sea Food 랍스타가 있는 아메리칸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해결하고 존F케네디공항으로 이동하니 그때가 밤9시였습니다. 각자 체크 인하고 출국하기 위해 들어섰는데. 글쎄 존 F케네디 공항은 면세점이 없더라구요. 바깥에 면세점 비슷하게 있었는데 그곳이 면세점이라나.
아무것도 못 사고 들어서니 구멍가게 같은 곳 밖에 없길래 쓰고 남은 동전을 다모아서 쓰고 왔지요.
존F케네디에서 한국으로 가는 방법은 존F케네디 공항에서알라스카 앵커리지로 6시30분간 비행기타고 날라가서 알라스카 앵커리지에서 1시간20분 면세점코너에서 쉬면서 쇼핑도 하고 알라스카 앵커리지에서 한국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는 8시간30분 정도 걸렸답니다.
뉴욕 존F 케네디공항에서Asiana비행기 oz221편(기장:노응삼)를 타고 앵커리지로 가서, 앵커리지에서 Asiana비행기(기장:최광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했는데 도착 시각은 2004년 8월13일(금) 오전 7시10분이 었습니다.
미국동부해외학술세미나 참석 소감: 6개월마다 실행되는 해외학술 세미나는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니었음을 먼저 말씀 드립니다. 무엇이든지 열심히 준비해가서도 생각대로 안되는 것이 이국(異國)땅이 라는 것입니다. 먼저 미국은 큰 대륙으로서 역시 일본과는 달리 대륙의 기질이 있었고 , 개척의 정신이 있어서인지 미국인들의 스타일이 쉽게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세계제2차대전을 치루고, 한국의 6.25전쟁에 참여한 미국인들의 긍지는 대단하였으며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한국전쟁기념물을 방문했을 때는 한국인을 따뜻하게 맞이해주었고,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있는 뱃지를 팔고 있었습니다. 그 만큼 한국인을 환영 해주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에티켓이 발달해서 남자들이 여성들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었고,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반드시 뒤에 사람이 들어오면은 문을 붙잡고 들어오도록 배려하는 모습이 우리나라와는 틀렸습니다, 항상 앞서가는 사람이 문을 열었을 때에는 여자든 남자든 먼저 문을 여는 사람이 붙잡고 서 있는 예의는 배울점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지저분하지 않을 정도로 도로가 잘 정돈 되어 있었으며, 차량도 먼저가고자 하는 차들은 고속도로에서 전조등을 켜고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습관화되어 있고 제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은 한 건의 교통사고도 목격할 수 도 없었고 길거리에서 차량때문에 시비를 걸거나 멱살을 잡은 모습은 찾아볼 수 가 없었습니다.
제가 뉴욕 맨하턴에서 32 Street로 센트럴파크에서 집사람과 함께 택시를 타보았는데 전혀 불안하지 않고 순조로웠답니다.
우선 가장 좋은 점은 한식이던 미국식이던 중국식이던 음식에 대해서는 위생관념이 철저해서인지 믿음이 가고 전혀 걱정이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쇼핑도 예전과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도 쇼핑을 적게하고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였고, 또한 한국의 면세점보다 물가가 비싸서 특이한 상품이 아닌한 쇼핑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왜 한국이 IC강국이 되었느냐 하면은 한국은 좁은 땅덩어리라서 케이블공사가 수월하고 빨리 인터넷이 가능하였지만 미국은 너무나 넓은 대륙이라서 어찌 미국이 한국처럼 IC강국이 가능 하겠습니까?라고 가이드가 말하더군요.
한국인의 장점인 그러한 점을 살려서 많은 한국인이 IC강국의 남아답게 또는 여성답게 외국에 나가서 국위를 선양하는 보람된 일터에서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으로서 두서없이 빠진 내용도 많지만, 대충 Out Line만 적어 보았습니다. 2학기에는 74기 총학에서 주관하여 내년1월초에 해외학술 세미나를 가는 모양입니다. 큰 돈이 안드는 방향으로 세미나가 진행 된다면은 많은 원우들이 함께 나갔으면 하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75기 총무 최 흥 권 올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