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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주로 겉모습을 봅니다. 외모를 봅니다.
그 사람의 재물의 소유 여부나 권력의 유무를 바라봅니다. 배경을 살펴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외형적인 조건들을 따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내면의 아름다움보다는 외면의 화려함을 추구합니다.
겉을 그럴싸하게 포장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겉모습을 보고, 쉽게 속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심장 폐부까지 살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십니다.
시편 7:9절을 보면,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깨끗하다. 나는 정직하다. 나는 흠 하나 없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소리쳐 외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기에, 우리의 거짓은 금방 들통나고 말 것입니다.
잠언 16:2절을 보면,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21:2절을 보면,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벌거벗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숨기거나 감출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를 붙들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1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10:9-10절을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10:17절을 보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시인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마음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죽음과 절망으로부터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12:1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아멘.
구원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후에, 제일 먼저 일어나는 변화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9-20절을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고 할 수 없습니다.(고전 12:3)
그러므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라고, 우리가 고백하는 것은, 우리 마음 안에서 이미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된 우리는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이 말을, 우리는 늘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린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최선의 삶, 최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최상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어떤 모습을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 드리는 모습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하는 모습, 찬양하는 모습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에베소서 5:26-2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거룩하고 흠이 없어야 합니다.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어야 합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우리의 몸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지는 대표적인 순간이 언제입니까?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순간입니다.
요한복음 4:23-24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예배의 자리로, 기도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우리는 예배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예배할 때에, 영과 진리로 예배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신령한 마음과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준비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야 합니다.(마 6:33)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예배이어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우리의 인생이 성공합니다. 세상의 성공을 먼저 따라가다 보면, 망할 수도 있지만, 예배에 성공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기에, 망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이길 힘과 능력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먼저냐, 하나님이 먼저냐?”
결단해야 할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이 먼저여야 합니다. 예배가 먼저여야 합니다. 예배를 위하여, 다른 것들을 희생해야 합니다.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산 제물이 되는 것은 희생입니다. 희생 없는 제물은 없습니다.
희생이 따르기에 값진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귀한 것입니다.
산 제물이 된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이나 계획 등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0:38-39절을 보면,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무엇으로 증명될까요? 우리의 말과 행함으로 증명될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우리는 베드로의 고백이나 도마의 고백처럼,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을 함으로,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님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믿음을 행함으로 증명할 수 있는 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2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러분, 우리의 몸을 지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도구로 사용되려면, 마음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변화를 받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부패하게 만드는 환경을 멀리해야 합니다.
내 마음을 더럽히는 사람도 멀리해야 합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귀면 사귈수록 내 마음을 황폐케 만드는 사람이라면 멀리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내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가까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민수기 11:4절에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고 말했습니다.
내 마음을 더럽히는 환경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내 마음을 황폐하게 하는 사람과 사귀면 안됩니다. 마음이 더러워지면, 황폐해지면, 우리의 몸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겉모습과 말에 속아 넘어가, 엄청난 피해를 당하고, 아파하는 사람들,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은 정원과 같습니다.
정원에는 아름다운 꽃나무만 자라는 것이 아니고 잡초도 자랍니다.
잡초는 심지 않고 가꾸지 않아도 잘 자랍니다.
좋은 꽃나무는 그렇지 않습니다. 잘 자라지 않습니다.
잡초와 꽃나무가 정원에 함께 있으면 어느 사이에 잡초가 더 무성해져버립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의 정원에도 잡초가 자라납니다.
우리 마음의 정원에 못된 생각은 가만히 있어도 무성하게 잘 자랍니다.
애쓰고 힘쓰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못된 생각은 잘 자랍니다.
그러나 좋은 생각은 있다가도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는 마음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의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풍조를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말씀과 기도로 마음을 깨끗이 닦아야 합니다.
매일 10분만이라도, 성경 보고, 10분만이라도 매일 기도하십시오.
매일 10분씩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5년 후, 10년 후에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5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날마다,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며 사십시오.
날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사십시오.
우리의 삶 전부가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