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한 청지기로 삽시다(벧전 4:7-11)
베드로 사도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선한 청지기다”라고 불렀습니다.
청지기란, 예전에, 양반집의 수청방(守廳房)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잡일을 맡아보고, 시중을 드는 사람을 이르던 말입니다. 여기서 “수청방”이란, 예전에, 양반집에서 여러 잡일을 맡아보고 시중을 드는 청지기가 기거하는 방을 이르던 말입니다.
청지기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을 대신 맡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청지기들로서, 각각 주어진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일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에게 주어진 일들을 충성스럽게 잘 감당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선한 청지기”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불의한 청지기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혹시, “나는 청지기로 살아가는 것이 싫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누구의 종이며, 누구의 청지기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주고 사신 그의 백성, 그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면, 잊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탕자의 길을 다시 걷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다 아버지 집을 떠난 탕자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놀라우신 그 사랑으로 우리를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라는 말 앞에, 우리가 어떻게 내 자신을 드러내고, 고개를 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산 소망이 되신 예수님 앞에 서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데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청지기로, 종으로, 집사로, 권사로, 목사로 세워주셨다는 사실에 우리는 감사하며, 감격하며 목숨을 다해 충성스럽게 섬겨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고 말했습니다.
선한 청지기의 기본 원리는 충성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선한 청지기로 삽시다.”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선한 청지기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살아야,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쏙 드는, 흡족한 청지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어떻게 해야, 선한 청지기로 살 수 있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맑은 정신으로, 항상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아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수제자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제외하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도 베드로일 것입니다.
베드로는 실제로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승천하신 이후,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초대교회를 형성하고, 바울과 함께, 가장 많은 사역을 감당했던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이었습니다.
예수님 바로 옆에서, 가장 많은 은혜를 체험했고, 그 어떤 제자들보다 의욕도 앞서고, 자신감도 충만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베드로는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아끼시던 제자였음에도, 늦은 밤 육신이 피곤하고, 지쳐서, 그리고 예수님의 그 말씀하심을 깨닫지 못해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정신이 번쩍 들었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말씀을 성도들에게 들려주면서, 그 일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에게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청지기는 어느 때에 주인의 명령이 떨어질지 모르는 위치에 있기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노아의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4:37-3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에 들어가서 문을 닫는 그 때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부르신 청지기라고 하면서, 심판의 날이 다가올 때까지도, 아무 것도 모르고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 이 세상을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 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을 붙들고, 늘 깨어서, 기도하고 있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라는 말은 올바른 마음, 침착한 마음, 깨끗하고 청결한 마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근신하여”라는 말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요동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중심을 꽉 잡고, 늘 조심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말은 “인내”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인내하지 못하고, 참지 못하면,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고, 어떻게 자제하며, 자기 관리를 잘 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청지기가 된 우리는 인내로 무장하며, 깨어서 기도하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향한 놀라운 집중력을 가질 때만 나타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만을, 예수 그리스도만을 온전히 붙잡지 않고, 자꾸만 다른 데에 신경을 쓰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고, 엉뚱하고 헛된 것에 집중하게 되면, 우리는 깨어서 기도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여러분의 마음을 두고 계십니까? 무슨 일을 하는데, 집중하고 계십니까? 저와 여러분은 선한 청지기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온전히 우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서, 주님의 명령, 말씀을 따라서, 정신을 차리고, 항상 깨어서,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선한 청지기로 살 수 있습니까?
둘째로, 무엇보다도 열심히 온 마음을 다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8-9절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아멘.
무엇보다도, 열심히 온 마음을 다해,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취해야 하는 다음의 행동입니다.
제가 “다음의 행동”이라고 말씀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하지 않고, 사랑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 속에서, 온전히 인내하고, 그리스도를 향한 놀라운 집중력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기도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먼저 스스로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절제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붙들고, 온전히 기도하지 않는데, 어떻게 우리가 열심을 내어,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는 사람이 사랑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만큼, 마음을 다하고, 열심을 낼 수 있는 시간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면서, 서로 사랑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베드로 사도가 이 편지를 쓸 때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편지를 쓸 때는 네로 황제의 핍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정말로, 신앙생활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짜, 목숨을 걸지 않으면, 믿음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성도들은 흩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나그네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영광스러운 순교를 앞에 두고, 로마에서 이 편지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향해 썼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엄청난 고난과 극한 환란과 시련에 처해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는 선한 청지기다”라고 전하며, 산 소망이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을 확신시켜 주고,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자, 편지를 썼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서신을 가리켜, “격려의 서신”, “소망의 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성도들은 이 감격적이고도, 감동적인 말씀을 보면서, 실제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위로와 소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더욱 더 말씀을 붙들고, 소망을 붙들고, 인내하며, 깨어서, 기도하면서,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함에 있어서, 자꾸만 혼란이 생기게 되는데, 사랑을 한다고 하면서, 내가 사랑한만큼 무언가 나에게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사랑을 베풀어 주는데, 당연히 그 사람도 날 사랑해 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은 그럴 수 있겠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잘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수직적인 관계만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인 수평적인 관계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수직적인 관계와 수평적인 관계가 잘 형성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이 첫째 계명이고, 이웃 사랑이 둘째 계명입니다.
수직적인 관계가 바로 되어야, 수평적인 관계가 올바르게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지 못하면, 우리는 서로의 허물만 드러내기에 바쁠 것입니다. 이것은 참된 사랑의 실천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열심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열심을 가리키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내 열심, 내 의지, 내 힘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은 한계에 곧 부딪히고 말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일꾼으로서 감정적으로 하는 일시적인 사랑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힘써서, 열심을 다해, 온 맘을 다해,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들은 서로 서로 자비를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고,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춰내는 것이 아니라, 덮어주는 것입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해야 합니다.
기도가 없다면, 사랑이 없다면,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한다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기도가 있다면, 사랑이 있다면,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선한 청지기로 살 수 있습니까?
셋째로, 각각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은사를 따라서 최선을 다해 봉사해야 합니다.
10절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아멘.
하나님께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는 일에 열심히 하면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값없이 주신 선물, 그 은사를 따라서 최선을 다해 봉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선한 청지기의 맡은 일, 사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이라는 말 속에서,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정말 다양하고,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여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두 다 소중한 것입니다.
여기서 “은사”라는 말은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은사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 곧 다양한 능력이나 재능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교회 일이란, 자기의 의지에 따라, 자기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 사람은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헌신하고, 섬기는 곳이 교회입니다. 내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교회가 아닙니다.
여러분! 여기서 “봉사하라”는 말 속에는 “상대를 섬기라”, “자기를 희생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상대를 섬기고,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가장 잘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 마음의 주인이 되신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섬기시고, 친히 자신을 희생하시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항상 생각하고, 십자가를 우리의 마음 속에 떠올리며,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섬김과 희생과 헌신으로 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우리를 불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합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아멘.
우리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말을 할 때에도, 봉사를 할 때에도, 어떤 일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광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선한 청지기로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