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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성월을 맞이하였다.
맑은 하늘,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지만, 성모님의 달이다.
천주교회를 다니면서 천주교회는 성모상이 왜? 그리 많은 것일까?
지하 성당에 있는 성모상과 성당 밖에 있는 성모상은 왜? 다르지
그리고 집에 있는 성모상과 레지오를 할 때 있는 성모상은 누구신지 매우 궁금하였다.
어느 성모상이 진짜(?) 성모님인지 교리 때도 배운 적이 없다.
김승한 사도요한은 어머님이 세분이 계셨다.
한분은 큰 어머니. 또 한분은 나를 낳아 주시고 다섯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사십육 년 동안 저를 키워주신 이영숙 로사 어머니이다.
어느 분이 진짜 엄마인지 알고 있는 데, 진짜 성모님은 누구신지 알고 싶어서
6년 전에 성모님을 찾아 나섰다.
매일, 눈만 뜨면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 라고 기도하는데,
명동 성당 수녀님 말씀처럼 그냥 믿으면 된다. 아니다.
알고 기도하면 더 의미 있는 성모송(聖母誦)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몇 자 적어본다.
천주교회에서는 정말, 성모 마리아를 믿는 것일까?
무상 급식소에 있을 때 개신교 신자가 물어 왔다.
천주교회는 마리아를 믿는 교회라고 목사께서 그리 알려 주었다고 한다.
대답을 간단하게 하였다.
예수님을 낳아 주신 어머님이라 공경하는 것이다.
오만 원 권 지폐에 있는 신사임당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적극적으로 개발한 인물이지만,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 존경한다.
한석봉의 어머니를 존경하는 이유도 아들 한석봉을 훌륭하게 키었기 때문에 존경받는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원죄 없이 동정 잉태하셨고,
평생 동정이시고, 신학적 의미. 이런, 논리로 설명하면 복잡해진다.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어머니를 존경하듯이 그냥 예수님을 낳아 주신
어머니기에 공경하고 존경한다고 간단하게 대답하면 안 될까?
성모상의 종류
▣ 성모 성심상
성모 성심이란 성모님의 거룩한 마음으로 예수 성심과 긴밀히 결합 되어 있는,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성모님의 사랑의 상징이다.
(가장 많이 있는 성모상)
▣ 루르드 성모상
1858년 프랑스 루르드 지방 피레네 산맥 북쪽 마을의 동굴에서 발현한 성모님의
모습을 재현한 것.
루르드에서 성모 마리아는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벨라뎃다 성녀에게 발현하셨고 1862년 1월 18일 공인되었다.
연약한 양치기 소녀 벨라뎃다가 친구 및 동생과 함께 땔감을 구하러 들로
나가 개울을 건너려고 양말을 벗을 때였다. 아주 강한 바람소리와 함께 세상의 어느 누구도 감히 견줄 수 없는 아름다운 부인이 저만치 서 계셨다.
별 말씀 없이 부인은 아기의 천진함과 처녀의 순결함 그리고 모성의 드러움을
지닌 채 푸른 띠를 나부끼며 정성스레 합장한 손으로 묵주 알을 굴리고 계셨다. 머릿수건과 옷은 모두 흰색이고, 푸른색 허리띠를 두르고 있으며, 묵주를
오른쪽 팔에 걸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다.
각 가정에 모셔둔 소형 성모상과 성모동굴의 성모상은 대부분 이러한 모습이다.
그리고 발등에는 장미송이가 놓여있다.(발현할 때 발위에 장미가 있었다고 함.)
우리나라에 루르드 성모상이 많이 보급된 이유는 한국에 가장 먼저 진출한 파리 외방전교회의 영향 때문이다.
★특징 : 장미를 밞고 있다.
※ 루르드 성모상은 대표적으로 명동성당 성모동굴에 있다.
▣ 뤼(Rue)드(De)박(Bac) 성모상(기적의 메달)
1830년 11월 27일 프랑스 뤼드박에서 성녀 카타리나 라보레 수녀에게 발현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만든 성모상이다. 1832년 6월 30일 공인되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상(무염시태 성모상) 레지오 마리애의 회합에 사용하는
성모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주 볼 수 있는 성모상이다.
☛ 교본 39쪽 16∼17줄
처음에는 메달(기적의 메달) 형태로 제작되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화,
성상의 형태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뤼드박의 성모상은 양팔을 펼친 모습으로 머리에는 흰 수건을 어깨에는
푸른 망토를 두르고 발아래에는 지구를 감싸고 있는 뱀을 밟고 있는 모습이다.
원래는 카타리나 라보레 성녀에게 '메달'을 만들라고 하셨는데,
그 모습이 성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가 선포되기 전이었지만, 성모님께서
메달에 새겨 넣으라고
알려주신 기도문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님, 당신께 매달리는...'이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에, '원죄 없으신 잉태 성모상'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검토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같은 뤼드박의 성모상인데 교본에는 당시 호칭되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상’으로 수록되었고, 현재 우리는 ‘은혜 성모상’
‘모후의 성모상’ ‘은총의 성모상 이라고도 호칭하고 있으나 주로
‘은혜 성모상’으로 부르고 있다.
★특징 : 뱀을 밞고 있다.
※ 가톨릭신문, 2015년 5월 10일자를 참조하였다.
※ 명동 성당 성모동산에는 무염시태 성모상이다.
▣ 과달루페 성모상
1531년 12월 9일 이른 아침, 가톨릭으로 개종한지 얼마 되지 않은
멕시코 인디언 원주민 후안 디에고 농부가 미사에 참석하려고 테페약
언덕을 넘고 있었을 때 신비롭고 찬란한 빛을 내는 구름 속에 푸른 망토를
입은 성모 마리아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는 후안에게 이곳에 성당을 세우길 바라고 있다.
후안 디에고는 스페인에서 온 후안 데 수마라가 주교에게 전했으나,
주교는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 후 후안 디에고는 성모 마리아를 만났던 장소로 다시 갔다.
성모 마리아는 “후안, 네가 처음 나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장소에 가보아라.
산 위에 올라가면, 너는 거기에서 많은 장미꽃이 피어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후안 디에고가 수마라가 주교에게 가서 “성모님이 보내신 꽃입니다.
받아주십시오.”라고 말하고는 틸마를 펼쳐 담아온 장미꽃들을 보여주었을 때,
신기하게도 장미꽃들이 마룻바닥에 폭포처럼 흩뿌려지면서 과달루페의
성모 형상이 후안 디에고의 틸마에 새겨져 나타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를 본 수마라가 주교는 그 경이로움에 놀라 그 즉시 성모 형상이 새겨진
틸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성모 마리아의 요청을 믿지 않고 무시한 죄를 지은
자신에 대해용서의 기도를 바쳤다. 1531년 12월 12일 공인되었다.
★ 특징 : 천사가 바치고 있다.
▣ 파티마의 성모상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에서에게 발현한 마리아의 모습이 파티마의 성모상이다.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 1917년 5월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6번에 걸쳐
세 어린 목동 루치아 도스 산또스(10세), 프란치스코 마르또(9세), 히야친타 마르또(7세)라는 어린 목동들에게 발현하셨던 모습을 재현한 것. 흰 베일을 머리에 쓰셨는데,
그 베일이 망토처럼 온 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가슴에 금색지구 모양의 목걸이를 하고, 두 손은 묵주를 걸은 채 합장하고 있다. 또 두 발은 구름을 밟고 있으며,
구름 아래에는 참나무 가지들이 늘어져 있다. 무릎 아래쪽에는 옷에 큰 별 무늬가 있습니다. (생략된 성상도 있습니다) 성모발현을 목격한 세 사람의 목동 중
프란치스코(1908∼1919)와 히야친타(1910∼1920)는 복자품에 오를 예정이다(?)
루치아는 수녀가 되었다.
파티마에 발현한 마리아는 1930년 10월 13일 공인되었고, 1946년 교황 비오 12세 때
'세계의 여왕'으로 선포됐기에 왕관을 쓴 모습으로도 제작된다.
참고로, 왕관을 쓰신 성모상은 역대 교황님들이 대관식을 거쳐서 장엄하게 성모님께
왕관을 씌워드린 경우이다.
★특징 : 세 아이가 바치고 있다
▣ 바뇌 성모상(빈자의 성모)
1933년 1월 15일에서 3월 2일까지 독일 국경에서 가까운 벨기에의 바뇌
(Banneux)에서 비신자인 12세의 소녀 마리에트 베코(Mariette Beco)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셨습니다.
마리에트는 그녀의 가족과 지도신부에게 자신을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고 칭한
순백의 옷을 입은 아름다운 부인을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그 부인은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갸우뚱하면서 합장한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있었으며,
마리에트에게 “나는 고통을 받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왔다. 나를 믿어라.
나도 너를 믿겠다.”라고 말하였다. 성모는 마리에트를 작은 샘이 있는 곳까지
안내한 후, 이 샘을 치유의 샘이라고 부르며 “이 샘은 모든 백성들과 병자들을
위해서 보존되어 왔단다.”라고 말하였다.
마리에트의 환시 사례는 1935년부터 1937년까지 벨기에 주교단이 공식적으로
조사하였다. 주교단이 작성한 보고서는 더 심층 높은 조사를 위해 로마에 제출되었다.
1942년 5월 리에주 교구장 케르크호프스 주교는 성모 발현의 신빙성을 처음으로
승인하였다. 1947년(1949년)에는 교황청으로부터 성모 발현에 대한 공식 승인이
내려졌다.
성모 발현 이후, 마리에트는 성직자나 수도자가 된 다른 성모 발현 목격자들과는 달리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며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았다.
★ 특징 : 루르드 성모상과 흡사하나 머리를 왼쪽으로 약간 기울이고 있는 점이 다르다.
★ 의정부 성모 병원에 있는 성모상이 바뇌 성모상이다.
그 밖의 성모상
▣ 메주고리 성모상
유고슬라비아(발간반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메주고리예) 메주고리예인
남서부 농촌마을에 6년 전에 10대 소녀 6명이 언덕위에서 인간과 흡사한
성모마리아를 만났다
– 경향신문 1987년 7월17일 참조-
2017년 2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폴란드 바르샤바-프라가 교구장 헨리 호세르
대주교를 메주고리예 교황 특사로 임명하였다. 메주고리예 교황 특사의 임무는
메주고리예 발현의 진위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메주고리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목적인 상황과 순례자들의 요구를 깊이 살펴보고, 보다 나은 사목 지침을
마련할 수 있도록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제안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교회의 입장을 살펴본 결과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은 아직 조사 중에 있는
상황이고, 메주고리예 순례는 교회 안에서 허용되고 있다. 따라서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은 거짓이고, 교회의 인준을 받지 않았기에 순례를 가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고, 악의적인 것이다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에 대한 교회의 입장-
○ 신앙 교리성(교황청의 상임위원회)
길버트 몬시뇰님 안녕하십니까? 귀하께서는 1998년 1월 1일 소위 말하는
메주고리예의 발현과 사적인 순례 그리고 그곳을 찾는 신자들을 위한 사목에
관하여 또 모스타 교구 주교의 입장에 관하여 몇 가지 질문을 제출하셨습니다.
신앙 교리성(교황청의 상임위원회)
길버트 몬시뇰님 안녕하십니까? 귀하께서는 1998년 1월 1일 소위 말하는
메주고리예의 발현과 사적인 순례 그리고 그곳을 찾는 신자들을 위한 사목에 관하여
또 모스타 교구 주교의 입장에 관하여 몇 가지 질문을 제출하셨습니다. =중략=
○ 교황청 신앙교리성
○ 장관 요제프 라찡거(Ratzinger) 추기경
○ 장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Tarcisio Bertone) 대주교 드림
- 아직 인준 받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나 순례는 허락받은 정도입니다.
앞으로 완전히 인준 받고 나면(받을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지만) 관심을
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암스테르담 성모상
성모님은 1945년 3월 25일부터 1959년 5월 31일까지 15년 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이다 페르데만(40세)발현하셨다.
1996년 5월 31일 암스테르담 하아르렘의 주교 보메스 몬시뇰은 당시의 보좌주교
푼트 몬시뇰과 함께 하느님의 어머니를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공경할 것을 공식적으로 허락했다. 이후 보메스 주교의 사후 후임자가 된 푼트 주교는 메시지의 내용을 6년간 면밀히 조사한 뒤 57년 후, 2002년 3월 31일,
암스테르담의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의 발현은 초자연적 근원을 가지며 초자연적
현상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 가르멜 성모상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1251년 7월 16일 화요일에 성모 마리아가 잉글랜드
케임브리지에서 가르멜회의 총장인 성 시몬 스톡 앞에 발현하였다고 한다.
당시 성 시몬 스톡은 수도회 설립 과정에서 내외적으로 극심한 반대와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하여 성모 마리아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간절히 요청하였는데,
성모 마리아가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한 손에 스카풀라를 들고 발현하여
성 시몬 스톡에게 “사랑하는 아들아, 네 수도회를 위해 이 스카풀라를 받아라.
이는 내가 너와 가르멜 산의 자녀를 위해 얻은 특별한 은총의 징표이다.
누구든지 이 스카풀라를 죽는 순간까지 착용하는 사람은 영원한 불의 고통을 겪지 않을 특권을 누릴 것이며, 죽은 후 첫 번째 토요일에 내 도움을 받아 하늘나라에 이를 것이다.
이는 구원의 표시이며, 위험으로부터 지켜 줄 방패가 될 뿐만 아니라,
평화와 보호를 약속해 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성 시몬 스톡은 이 계시를 자신의 비서 겸 고해 사제인 피터 보일에게 구술하게 하였으며, 1642년에서야 처음으로 정확한 형태가 세상에 나왔다.
이 이야기는 종합적으로 믿을 만한 교회의 전승으로써 많은 신자가 믿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성 시몬 스톡에게 가르멜회에 대한 아래와 같은 은총의 표시로서
갈색 스카풀라를 주었다고 확신한다.
갈색 스카풀라를 가르멜회의 수도복의 일종으로 만들어 착용하면 성모 마리아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
갈색 스카풀라를 처음부터 끝까지 착용하면 성모 마리아의 특별한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특히 임종할 때에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
부차적으로, 이 약속은 가르멜회 회원이 아니더라도 갈색 스카풀라를 착용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해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바치는 이들에게도 역시 해당한다.
▣ 라살레뜨 성모상(눈물의 성모)
라살레트는 프랑스 알프스 산 그르노블 인근의 작은 산마을이다.
이곳은 1846년 9월 19일 멜리니 마티유 칼바(15세)와 막시맹 지로(1세) 두 명의
어린 목동들에 의해 알려진 성모 마리아의 발현으로 가장 유명하며, 이후 수많은
기적적 치유가 보고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현상을 조사하여 믿어도 무
방하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라살레트의 성모라는 이름으로 1851년 9월 19일 승인하였다
▣ 보랭 성모상
국민의 75%가 천주교인으로 알려져 있는 벨기에는 1932년 11월 29일,
보랭과 1933년 1월 3일 바뇌 두 곳에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것으로
로마 교황청이 공식 인정한 나라다. 페르난드(15세), 안드레아(14세) 질베르뜨(13세)
알베르또(11세) 질베르뜨(9세)에게 발현되었다.
1933년의 보랭의 성모발현에 관한 이야기는 전 유럽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이 믿을 만하다고 확신하는 반면 환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934년과 1935년 많은 잡지와 책들이 보랭의 발현이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알리려고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오히려 보랭의 발현을 잘 알리는 결과가 됐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 - 성직자나 평신자나 - 발현사실을 믿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발현장소로 순례를 오게 되었고 회의적이던 사람들은 사라져 버렸다.
이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발현을 믿게 되었다. 첫해에만 해도 순례자들의
수는 2백만 명이 넘었다. 병이 나았다는 사람, 기타 세속적 은혜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래서 교회당국의 정식 조사가 진행되었고 기적임을
1949년에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 아끼다 성모상
1975 년 일본 아끼다 성체 봉사회 수녀원의 사사가와 (아네스) 수녀는 성당 내에
안치되어 있던 목각 성모상으로부터 들리지 않는 귀(그 당시에 귀머거리 상태이었음)로 3차례에 걸쳐서 성모님의 메시지를 받았다. 1984년에 공인되었다.
○ 제1차 메시지(1973. 7. 6.)
○ 제2차 메시지(1973. 8. 3.)
○ 제3차 메시지(1973. 10. 13.)
▣ 베타니아 성모상(베네주엘라)
▣ 르완다 성모상(아프리카)
▣ 슈파니에 성모상(시리아)
▣ 코차밤마(볼리비아)
▣ 퐁멩(프랑스)
▣ 녹크(아일랜드)
▣ 시라쿠사(이탈리아) 성모님상이 있다고 한다.
▣ 나주 성모상
-나주성모기적'에 대한 천주교회 입장 옮김-
주 성모 발현 설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나주시의 "마리아의 구원방주"에서
주장하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일컫는 말이다.
일련의 현상을 사실로 주장하는 모임을 이끄는 윤 율리아와 여러 추종자들이
이 현상을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신’ 기적(성모발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이것은 기적이 아닌 이단행위라고 규정하고 윤 율리아의
모임에게 3번의 권고문을 내렸으며 최종적으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 단체와
소속원은 가톨릭교회와의 일치와 친교를 거부하는 것으로 천주교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이에 참여하는 것은 자동처벌의 파문제재에 해당한다고 선언하였다.
발단은 1985년 6월 30일, 나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던 윤 율리아(세례명, 본명 윤홍선)가 소유하던 성모상에서 피눈물과 향유가 흘러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 요
이 현상이 성모 발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1985년 6월 30일부터 윤 율리아의
성모상에서 피눈물이 700일간 흘렀고, 향유가 내렸으며 이 향유가 젖으로 변하였고,
예수의 옷 가루가 내렸고, 성체가 내렸으며 이 성체가 살과 피로 변했다는 등의 현상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자체 검사 결과에 의하면, 성체에 흐른 혈액은 남자의 것으로,
RH 양성 AB형이라고 밝히고 있다. 회적으로는 소변의 음용 및 치유 효과 주장,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담긴 묵주의 판매, 급격한 부동산 증식 등으로 논란을 야기하였다.
2007년 가을 문화방송의 PD수첩은 윤 율리아의 주장의 신빙성에 대한 검증 소개 프로그램을 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은 성모상에 흘러 나왔다는 피의 유전자 검사를 제의했으나 나주성모 동산 측에서 거부하였으며, 윤 율리아 부부 소유의 땅이 1985년에 비해 20배 늘어난 사실을 지적하였다. 나주성모동산 측은 이에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냈으나 2007년 11월 13일에 법원에서 기각하여 같은 날 문화방송에서 정상적으로 방영되었다.
▶ 로마가톨릭의 입장
이 지역을 관할하는 한국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는 이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성모 발현 주장 역시 기적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1994년부터 조사 활동을 시작한 교구청 직속 기관인 ‘나주 본당 윤 율리아와
그의 성모상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과 메시지에 대한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현상이 기적이 아닌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윤 율리아가 성모에게서 받았다고 주장하는 메시지는 인위적인 요소가 첨가되어 있어
개인의 체험 및 묵상에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소위 성체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교리 및 믿음에 어긋난다.
윤 율리아 및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은 앙심에 의한 기적이라기보다는
초능력에 가깝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은
2008년 1월 21일 교령을 통해 교구장의 공지문(1998년 1월 1일, 2005년 5월 5일)과
사목적 지침들(2001년 5월 5일)을 따르지 않는 이들이 더 이상 로마 가톨릭 교회와
일치 화합할 의사가 없다는 것으로 판단하여 이러한 행위가 건전한 신앙행위나
경신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최종 확인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2008년 2월 25일 ~ 2월 28일)와 교황청 신앙교리성
(2008년 4월 24일)에서도 광주대교구의 조치를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확인하였다.
2011년 5월에 발표한 마리아의 구원방주에 대한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공지문
2011년 5월 1일 한국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한국 가톨릭 모든
기관에 다음과 같은 공지문을 발표했다.
▶ '나주 현상'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광주대교구장 공지문
소위 '바티칸에서 두 번째 성체 기적이 일어났다'(2010. 4)는 문제와 관련된
유언비어들이 계속해서 전국적으로 유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광주대교구는 소위 '나주 현상'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이미 교구가
내린 결정 사항이나 그와 연관해 발표한 일련의 공지문에 전혀 변화가 없음을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또한 일부는 바티칸 당국이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조만간 승인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가톨릭 신자들을 혼란케 하며 기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08년 4월 28일 신앙교리성의 공적인 서신(문서번호: 112/1993-27066)에서
"이 나주 문제에 대해 윤공회 대주교님이 발표하셨고 후임자이신 최창무 대주교님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반복하여 발표하신 결정을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받아들인다."
는 교황청의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광주대교구 현 교구장인
본인은 2010년 7월 교황청 신앙교리성을 방문하는 기회에 이 내용을 재차
확인하였습니다.본인은, 소위 '나주 현상'이라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는 유일한 주무 부처인 교황청의 신앙교리성과 직접
접촉하고 있음을 한국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에게 밝혀드립니다.
※ 출처 cafe.daum.net/beautiful5060/F7U4/1243 아름다운 5060
옮긴이 김승한 사도요한
▣ 교회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379회(1984년 현제)의 성모님 발현의
대부분이 18세기(1830년~1984년)이전의 것이며 1984년 이후에도 발현 보도는
계속되고 있지만 교회는 그 진실성 여부를 가리는데 매우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다.
▣ 성모상의 종류를 조사하면서
성모상은 발현지에 따라서 그 분에 대한 존함?(尊銜)이 붙여진다.
1. 성모상 종류를 명확하게 구분 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2. 교회에서 공인된 성모상과 발현지를 정확하게 정리한 자료를 구하기 힘들었다.
3. 성모님상은 발현한 당시 그 모습대로 재현한 것이다.
4. 그러나 각 나라마다 자기 나라의 문화와 또 작가에 따라서 만든다.
(한국성모상은 한복 입은 모습. 성모자상 등)
그러나 자제하자는 의견도 있다.
5. 뤼드박의 성모상인데 교본에는 당시 호칭되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상’으로
수록되었고, 현재 우리는 ‘은혜 성모상’으로 많이 호칭하고 있어서 혼란이 있다고
생각한다.
★ 신학자들은 “성모상과 같은 성물 자체를 공경의 대상으로 삼거나 은총을
내려주는 신비체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며 “성물은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도와주는 ‘도구’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글을 마치면서…
작년(2019년)에 통신교리 신학원에서 마리아론을 배웠다.
우리나라 천주교회 신자들은 삼위일체 신비 보다 마리아를 더 믿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쉽다. 그러다 보니 나주 성모상을 추종하고 맹신하는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진다.
하느님의 삼위일체 보다 더 신비스러움이 이 세상에 있을까 생각하여 본다.
성모성월을 맞이하여 성모님께 기도를 열심히 하자.
※ 자료는 천주교 춘천교구 서부지구 신앙문화유산 해설단 토의자료를 편집하였다.
(김승한 사도요한 2017.8.3.)
※ 본 자료는 아래를 참조하였다.
1. 가톨릭신문, 제2943호 4면 (2015년 5월 10일자)
2. cafe.daum.net/beautiful5060/F7U4/1243 아름다운 5060.
3. 인터넷 자료를 인용했다.
4. 가톨릭 성물방(송철영 02-447-7369) 자문의 자문을 받았음을 밝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