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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셔요?
이 글은 6 여년전 운경(남편)의 간병일기를 간병인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담담하나 아주 상세히 서술했습니다.
운경의 현재 건강 상태는 완벽한 건강입니다.
그동안 글로, 전화로, 혹은 방문해 주신분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든지 궁금한점이 있으시면 대문에 있는 전화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 1월 송하
<세 잎 크로버의 꽃말은 1>
2005 12 14
- 올 겨울 들어 며칠째 강추위가 몰아치고 있습니다.
남서 쪽에는 계속되는 폭설로 어려움을 겪고 거리에는 구세군 냄비가 연말이 왔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남편도 오늘은 친우들 모임이 있다고 서울로 올라가고, 나는 지금 막 내년 4월 태어날 세 번째 손자(둘째 아들의 첫아이)의 요 이불 베개를 며칠 만에 드디어 완성하여 장롱에 접어놓고 이글을 쓰기 시작 합니다.
내가 지나간 일 년 간을 돌이켜 보며 이 글을 지금 띄우는 이유는 간암 말기라는 절망 속에서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지금,
건강한 남편의 모습을 보며(완쾌 된 것은 아니며 다만 많이 좋아 아주 건강해 져 있습니다) 나의 남편과 같은 어려운 질병을 앓고 계신 환우나 또 그 고통을 힘겹게 함께하고 계신 가족에게 작은 위안을,
혹은 희망을, 혹은 완쾌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하자는....
모두가 힘을 합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거라는 작은 확신에서입니다. 또한 나의 이 식이 요법이 훌륭해서 모두에게 권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남편의 건강해 지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경험을 그냥 서술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가장 신뢰 하는 것은 병원 치료이며 그 병원 치료의 바탕위에
환자의 건강과 치료에 도움이 되도록 먹을거리를 균형에 맞게 만들어 본 나의 조그만 노력을 얘기 하는 것 입니다.
그동안은 남편도 자신의 증상을 자세히는 모르고 있었으며 나 또한 컴맹에 가까워, 이제 막 이 사실을 정확히 알게 된 남편에게 인터넷 도움을 청하여 이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 간암과의 동거 그 일 년의 시작 -
나는 며칠만 있으면 육십이 되는 만나이로 쉰아홉이며 나의 남편은 네 살이 더 많은 예순세 살입니다.
남편이 돌이 킬 수 없는 중증, 간암 말기라는 사실을 꼭 일 년 전 작년 이맘때 2004년 11월에 알게 되었습니다. .
남편이 간염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5년 전쯤 회사 신체검사에서 였습니다.
그 당시 일시 적으로 금연 금주도 하여 보았으나 쉽게 잊어버리고 단기간으로 끝났으며,
특별한 치료 방법도 없었고 겉모습은 늘 건강 하였으므로 환자라고 별로 의식치 아니하고 간염을 하나의 동반자로 여기며 살아 왔었습니다.
4년 전 2001년 정년퇴직을 하기 바로 전 신체검사에서 “간경화 의심”이라는 진찰 소견과 함께 조직 검사를 받아보라는 권유도 받았습니다만 남편은 몇 달 후 정년퇴직을 하였습니다.
노후 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방법 중 우리 가족은 시골 생활을 하기로 마음먹고 곧 실행에 옮겨
이곳 송산면 고정리 에 있는 포도밭 한편에 자그마한 집을 짓고 새 생활이 시작 됩니다.
시아버님과 함께 세 식구는 전원생활을 하게 되면서 즐거움 반 힘든 일 반을 낙으로 삼으며 간염 보균자라는 사실을 잊은 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이사온지 1년여 남짓 마을 여러분의 권유로 남편은 이장일 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농촌 일에는 문외한 이었던 남편은 더 바빠젔습니다.
원래 좋아하던 술은 새 생활이 시작 되어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마음 한 편에서는 간장에 대한 염려가 끈이질 않았지만
마침 2003년 면 보건소에서 초음파 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아무 이상 없다하여 정말 좋아 했습니다.
시골에서 맑은 공기 마시며 우리가 수확한 무공해 식품 먹고 적당히 일하여 건강해 진줄 알고 모두가 즐거워만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TV 뉴스를 보니 진료 자체가 문제가 많다고도 하였습니다.
남편은 170cm 키에 75kg으로 복부 비만형 이며 건강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하여 이곳에 온 이후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심는 일부터 닭장을 만든 다든가 창고를 짓는 일,
작은 정원을 가꾸고 고추를 심으며, 포도 농사도 수확하며 등등 이런 저런 노년의 외로움 따위는 잊고 살았습니다.
2004년 봄이 오면서 남편은 작은 창고 지붕 위에 건조장을 마들기 위해 비닐하우스를 설치하면서 조금 피곤해 했으나 조금 쉬니까 회복되어 그냥 지나버렸습니다.
여름이 되면서 몸이 좀 야윈 듯 해보였고 가끔 소화 불량이 있었으나 원래 잘 먹고 마시는(주류) 사람이라 또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어서 소화제를 먹고 낫곤 하였습니다.
포도 농사란 정말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포도나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초보 농부에게 만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고추와 포도, 땀방울로 여름은 영글어 가고 알알이 포도가 익어 온 마을이 온통 포도향기로 뒤덮일 무렵이 되면서
내색 않던 남편은 몹시 피곤해 했습니다.
어지간하면 병원에 잘 안 가던 사람이 동네 가까운 병원에 가서 혈액 검사를 받아 보았는데
감마GTP-142 GOT, GPT 각 57로 적신호가 켜져 있었습니다.
세부 검진을 받아야 했지만 고추, 포도 수확하랴 가을걷이로 바쁘기도 했고,
많은 지인들과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즐거움 속에 병에 대한 근심을 잠시 묻어 두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 가을이 왔습니다.
둘째 아들의 결혼식이 12월 초로 잡혀 있었는데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할일들을 하면서 남편은 다시 피곤해 하기 시작 했습니다.
쉽게 피곤을 오게 되고 가끔 오른쪽 배 부근에 뻐근함을 느끼며 소화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봄을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줄기 시작한 몸무게는 이미 5~6 kg 줄어 있었고 얼굴색도 약간 노르스름했으며 손바닥도 붉게 보였습니다.
밤에 잠을 잘 못 잤으며 방귀를 자주 뀌었고 가금씩 목에 무언가 걸린 것 같은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불길한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아들 혼례를 끝내고 진찰을 받겠다는 남편을 설득하여 11월 16일 강남 삼성 병원에서 첫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날 진찰을 해 주신 K 박사님은 젊고 유능해 보였으며 그 분야에서 훌륭한 명의로 평판을 받고 계시는 분이셨습니다.
외진을 하신 박사님께서는 남편의 간경화가 이미 많이 진행 되었다고 하셨고 그 말씀을 들은 나는 크게 낙담 하였는데 이것은 전초전에 불과했습니다.
혈액 검사, 위 내시경 검사, 초음파, CT 검사 등을 하고 열흘 뒤 세 번째로 박사님을 뵙는 날 이었습니다.
우선 박사님은 음주에 대해서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사실 남편은 술을 끊은 지 꽤 되었다고 선생님께 말씀 드렸지만 남편은 첫 번째 진료 받기 사흘 전에도 술을 마셨습니다.
박사님은 영상을 보여 주시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나에게
검게 착색된 중앙 부분이 암이라는 것과 간경화가 있다고 말씀 하셨는데 남편은 다 알아 듣지는 못 한 듯 했습니다.
남편을 밖으로 내어 보내고 박사님은 나에게 영상을 다시 한번 보여 주시면서 문맥이 꽉 막혀 있다 는 것,
암이 많이 퍼져 있다 는 것, 수술, 치료, 이식 모든 것이 다 불가능하며 그래서 문맥이 터질지 혼수가 먼저 올지는 모르겠다는 것 등 몇 가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경화가 진행된 부분의 영상은 자갈밭을 차를 타고 가면서 내려다보는 바로 그 느낌 이었습니다. 질릴 대로 질려있던 내가 모기 소리가 되어 간신히 말 하였습니다.
“제가A형인데요“
- 이곳 고정리는요 -
2004 12 15
- 계속되던 폭설과 한파가 약간 누그러지는가 싶더니 충남 서해안 지역과 제주 등지에 대설 주의보가 다시 발령되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침 식사 후 옷을 두툼히 입고 마을 행사에 참여 하느라 외출 했습니다.
오늘의 마을 행사라 함은 동네 노인회 분들이 밭에서 활동 하시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면에 제출하는 일입니다.
서해안 고속도로 비봉에서 우회전하여 20km 남짓 오다보면 제부도, 대부도로 가는 길목에
프랑스의 작가 프랑스와즈사강을 기억나게 만드는 사강 이라는, 제법 어시장다운 곳을 지나게 되며
이곳을 지나자마자 이정표에 KBS 송신소와 고정 초등학교는 우회전 하라는 안내 표지판이 있는데 그곳에서 우회전 하여 약 5km 남짓 들어오면 정갈하게 잘 정돈된 고정초등 학교가 보이고 바로 이 고정초등학교 뒤에 고정 4리 우리 마을이 있습니다.
주민은 약 40여 가구 남짓 하며 젊은 가옥은 별로 없이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는,
노인이 많고 대다수 주민들이 포도 농사를 가장 많이 짓고 고추나 벼 등도 수확하는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이 주위는 온통, 포도밭이며 배, 복숭아 양다래등 과수나무가 많고 군데군데 소나무 밭이 어우러진 조용한 정감 있는 농촌 마을입니다.
서울 강남에서 약 60km쯤 떨어져 있으며 아주 맛 좋기로 유명한 송산 포도의 산지이기도 합니다.
고정 초등학교에서 우리 마을로 우회전하지 않고 조금 더 내려가면 KBS 남양 송신소가 나오고
송신소를 빗겨 뒤로 돌면 얼마 전까지 만 하여도 바다 였음 직한,
지금은 시화호 간척으로 인하여 거대한 갯벌이 말라 꿩들의 보금자리가 된 아름다운 갈대숲의 군락지가 있고 그 끝,
하늘과 바다가 맏 닿은 듯 한 곳에 아름다운 섬, 조그마한 오움도가 있습니다.
여기 분들이 움도 라고 부르는 이 섬 너머로 바다를 가로질러 안산이 바로 바라보입니다.
세계 최대의 공룡 알 화석지가 바로 이곳 움도 와의 중간쯤에 군데군데 넓게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수 조 용필 씨의 생가는 사강에서 초등학교 오기 중간쯤에 있습니다.
2002년 3월, 남편은 정년퇴임을 하게 되었고, 그해 겨울에 우리는 이곳에 하얀 집을 짓고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68년 초 결혼 이후로 줄 곳 서울에서만 살았던 우리에게는 이 농촌 생활이 노후의 신선한 체험으로 닦아 왔습니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여주 고향을 등지고 복잡한 서울 아파트에서 거의 20여년 우리와 함께 하신 시아버님도 무척 기뻐 하셨습니다.
좋은 이웃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이곳에 온지 1년도 안되어 남편은 이장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지인이 생기게 되고 주말이면 찾아주는 손녀, 아들, 며느리, 친지, 지인들의 방문은 우리를 정말 즐겁게 하여 주었습니다.
30여 평 하얀 조립식 건물엔 자주색 지붕을 올리고 나무도 심고 뜰엔 정성스레 잔디도 심었습니다.
남편은 작은 정원 한 켠 에 아주 예쁜 연못도 팠습니다.
주위에 빙 둘러 나무도 심고 어린 비단잉어 몇 마리도 넣어주니 운치도 생겼습니다.
사강 시장에서 비치파라솔도 사다가 설치했습니다. 남편은 또 우물가에는 앵두나무를 심어야 한다며 앵두나무 두 그루도 연못 주위에 심었습니다. 친척 분이 갖다 주신 강아지 두 마리도 새 식구가 되었습니다.
운경(雲耕 : 남편의 자작 호)부부의 언덕위의 하얀 집이 된 것입니다.
포도밭일 중간에 땀을 식힐 양으로 찻잔을 마주하며 연못가에 앉아 봅니다.
저 아래 펼쳐지는 들판이 싱그러워 집니다.
저 멀리쯤에 보이는 신작로에는 어쩌다 차가 한대씩 지나갑니다. 하늘 위엔 구름도 비행기도 떠 있습니다.
집 앞 잔디 끝 작은 텃밭 아래로는 우리 또래의 두 부부가 일하는 모습도 가끔 보입니다.
그분들은 포도를 아주 잘 가꿉니다. 그 분들이 가꾼 포도는 모양도 예쁘고 색깔도 아름다우며 맛 또한 최고입니다.
가끔 우리는 그분들과 외식을 나가곤 합니다.
네 잎 크로버의 꽃말은 행운 이라고 합니다. 나는 아직까지 네 잎 크로버를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세 잎 크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고 합니다.
나는 창 가로 가기만 하여도 아름다운 세 잎 크로버를 어디서나 볼 수가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볼 수 있는 여러분들이 바로 세 잎 크로버 입니다.
마을 행사에 참여 했던 남편이 지금 막 돌아 왔습니다. 나는 여기서 남편의 간식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
- 간식으로 먹는 과일 야채 주스 -
재료 - 알로에 마 각종 과일 신선한 야채
= 알로에는 두꺼운 쪽인 경우 약 3~4cm (약50~ 80g) 쯤 잘라 껍질을 벗겨 냅니다.
= 마는 솔로 깨끗이 닦으면 껍질에는 많은 손상 없이 깨끗이 닦아지는데 이것을 100g정도 잘라내고 나머지는 냉장 보관합니다.
= 과일은 무엇이나 좋으나 농약 등에 오염이 되지 않은 것 이어야 됩니다. 사과나 복숭아 등은 깨끗이 닦아 껍질째 사용 합니다.
즙을 짤 채소는 공해가 없는 텃밭이나 화단에 심은 것이 좋습니다.
간 기능이 좋지 않아 생즙을 피해야 하는 분은 생즙은 안 드시는 것이 좋으며 그냥 과일과 야채를 갈아드시기를 권 합니다.
남편의 경우도 처음 5~6개월이 될 때 까지는
각종 과일과 함께 마당 한편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자라고 있는 미나리, 그린케일, 돌나물, 알로에, 마는 꼭 넣어 전기 맷돌에 갈아
가끔은 청국장 가루를 한 스푼씩 넣어 처음에는 양을 적게 시작하여 하루에 두 번, 식사 사이 중간에 마셨습니다.
5~6개월이 지나 소화 기능도, 몸의 상태도 거의 정상처럼 보이게 되자
알로에, 마, 각종 과일을 갈아 여기에 집에서 가꾼 야채즙을 조금 내어(약 반 컵 정도) 섞어 먹습니다. 여러 가지가 들어가니 양도 많아 요즈음은 한 사발 정도가 넘칩니다.
참고로 요즘 저의 준비 재료를 소개 하면, 여름 내도록 집 주위에서 우리가 수확한 냉동 과일들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작년 말 남편이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과일이 암을 배출 시키고, 비타민을 비롯하여 많은 영양소가 있어 몸에 좋을 것 같다 하여 여러 가지 과일 채소를 심었습니다.
=토마토를 약 40그루 정도를 심어 빨갛게 아주 잘 익은 것만 따서 큰 냄비에 올리브유와 같이 넣고 약한 불에서 끓입니다.
이것을 식혀 냉동 하여 작은 덩어리로 만들어 냉동 보관 합니다.
=연못가에 심었던 두 그루 앵두나무에서는 열매가 작년보다 더 알차게 열렸었습니다.
우리는 연못 위를 넓은 비닐로 대충 덮어 앵두가지를 훑듯이 하여 떨어진 앵두를 큰 양푼으로 두 개 가득 담았습니다.
앵두는 씨앗을 어떻게 걸르나 하고 생각하다가 역시 토마토와 같은 방법으로 끓여 주걱으로 으깨어 배 보자기에 내렸습니다. 씨앗과 같이 버려지는 것이 더 많아 흘러내린 앵두 즙은 많지는 않았습니다 만은 역시 냉동하여 저장합니다.
참고로 여기서 앵두 즙을 마시고 배탈이 났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처음 앵두 즙을 내리던 날 이었습니다.
끓여 보자기에 내린 앵두 즙은 맛이 진하여 설탕과 물을 섞어 한잔을 마시고 한참 있다가 반잔 정도를 또 마셨었는데
그리고 난 몇 시간 후 설사로 곤욕을 몇 번 치렀습니다.
그때는 앵두 때문 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하였습니다. 며칠 뒤 작은 아들이 왔었습니다. 그때 작은 아들은 회사 근방에서 혼자 있었음으로 주말이나 되어야 오곤 하였습니다.
나와 아들은 먼저와 같은 방법으로 앵두 주스를 마셨는데
나는 먼젓번과 똑같이 또 곤욕을 치렀고 아들 역시 똑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경험은 일반 식중독과는 다른, 장을 깨끗이 씻어 내리는 듯 몇 번 물청소 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대단한 정장 작용과 변비 해소 능력이 있는듯합니다. 아무튼 그 다음부터 앵두 즙은 조심하여 소량을 쓰게 되었습니다.
= 참외도 심었습니다. 잘 익은 것을 골라 껍질째 사용하였습니다.
= 수박은 심지 않았습니다만 씨 채 갈아서 냉동하여 씁니다.
= 딸기는 집 오른쪽 경사 진 곳에 2년 전쯤 몇 뿌리 이웃에서 모종 하였던 것이 제법 퍼져 심심 잖게 수확하여 깨끗이 씻어 건져 냉동하여 두었습니다.
= 우리가 가꾸던 포도밭은 금년부터 다른 분이 가꾸고 계셨지만 이 포도 또한 잘 익은 것을 생으로 으깨어 굵은 채에 내려 냉동 보관합니다.
= 배, 사과, 귤, 한라봉, 키위, 얼마 전 동생이 사다준 용과도 있습니다.
= 비닐하우스에 계속 심겨져 있는 그린케일과 붉은 양배추의 넓은 잎이 이 추위에 다행히 얼지 않고 싱싱하게 자라고 있어 고마울 뿐입니다.
그린케일은 작년부터 가끔 재배하여 왔던 것이고, 붉은 양배추는 새싹씨앗으로 사 온 것을 밭에 뿌려 자라난 것으로, 그린케일처럼 잎이 널찍하니 곁 잎으로 엇갈리어 자라고 있으나 케일보다 조금 적은 것이 잎이 탄력이 있어 보입니다.
집에서 무농약 퇴비만으로 가꾸고 기른 것들입니다.
알로에는 작년 5월 서울 광명시 알로에 농장에서 사다 하우스에 심어 놓았었는데 ,
그동안 이것을 필요 할 때 마다 한 잎씩 따다가 잘라 썻었읍니다만 이제는 거의 다 써서 며칠 전 서울에 다녀오는 길에 하나로 마트에서 몇 잎 사다가 쓰고 있습니다.
알로에는 100g에 약 300 ~ 400원 정도 하는 것으로 한 잎은 약 1kg을 조금 넘습니다.
오늘은 냉동되었던 도마도, 포도, 약간의 앵두를 해동하여 배, 알로에, 마와 같이 전기 맷돌 녹즙기(맷돌요리기) 에 갑니다. 과일 분쇄가 끝나고 녹즙 짤 때 끼우는 노즐로 바꾸어 그린케일과 붉은 양배추 잎을 넣어주면 찌꺼기는 밖으로 나가고 즙은 과일 갈은 것 위에 떨어집니다.
맛은 별로 없지만 남편은 잘 먹어 주어 고맙습니다.
그 전 같으면 과일 한 두 쪽도 입에 안 대던 사람이었는데 몸에서 병을 배출 하려는 스스로의 자생력이 생겨 아마 입맛도 바뀌어 지나 봅니다.
오후 중간식에는 과일만 바꾸어 같은 방법으로 하여 청국장 가루를 얹을 생각입니다. 봄에 꿀에 재워 놓았던 매실청도 한 스푼 넣어 보렵니다.
생과일과 냉동과일을 적당히 나누어 섞습니다.
= 고구마나 감자등도 삶아 첨가하여도 좋습니다.
= 콩 또는 팥 율무 보리 삶은 것을 넣어도 아주 훌륭한 영양 간식이 됩니다. 양다래(키위)는 농약을 뿌리지 않고 재배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개월 2개월이 몇 월 몇 년 인가요?-
2005 12 19
다시 일 년 전 남편의 진찰받던 곳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가 A형 인데요”
박사님은 잠시 후 “이식 말씀인가요?” 하고 물으셨습니다.
나는 그저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박사님이 계속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신 것 중 기억에 남는 것을 적어 본다면
문맥이 완전히 막혀져 있고, 암이 이미 너무 많이 퍼져 있으며,
17cm 라는것(이 사실에 경악 했으나 후에 의무기록사본을 떼어보니 비장비대 17cm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치료 방법도 없고 수술이나 이식도 안 되며, 단 한 가지 가능한 치료는 방사선을 쪼이는 방법이 있으나
이는 환자에게 고통이 따르고 수명연장에는 그저 일 이 개월의 도움밖에 안되니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원하면 방사선과에 의뢰를 해 주시겠다고 말씀 하셨으며,
환자가 원 하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해 주라는 당부의 말씀도 계셨는데 이 말씀의 의미를 그 순간은 몰랐었습니다.
그날, 그해 첫눈 인가가 내리고 있었고 나는 폭발 할 것 같은 마음을 간신히 참으며, 자신의 정확한 상태를 모르고 있는,
그러나 약간은 착잡해 하는 남편이 집으로 차를 운전하여 돌아 왔습니다.
내가 암이란 말이냐라는 질문도 했습니다.
“그렇다네요.” 별거 아닌 것처럼 대답하며,
지나다니는 사람 다 정밀 검사 받아봐라 정말 멀쩡한 사람 몇이나 있느냐 는 식으로 얼버무렸습니다.
어차피 간장에는 특효약이 없으니 본인 스스로의 의지로 이 맑은 공기와 자연 식으로 같이 노력 하여 고치자라고도 했고
조그만 암 무슨 상관있느냐고도 했지만 참으로 참담 했습니다.
옛날에 신장 결석을 초음파로 분쇄 받은 경험이 있던 남편도 내색만 안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다행히 크게 심각히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간이식은 절대 안 된다.
다 살은 나 살자고 아이들 힘들게 할 수 없다는 당부도 하며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닦아온 둘째아들의 결혼식이라도 끝나고 진찰 받자니까 내가 서둘러 받게 했다면서,
아이들이나 친척 분들이 그때 까지 만이라도 몰라주기를 바란다는 말도 했고
아무런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에 섭섭해 하며, 병원에서 준 간디스토마 구충제와 알약 몇 알도 먹기 시작 했습니다.
술과 담배는 초진을 받기 사흘 전 부터 완전히 끊었으며 평생 먹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고 명의와 최고 시설을 자랑하는 삼성 병원의 진단이 미심쩍어 의심을 해서가 아니라,
똑같은 진단이 나오더라도 한 번 더 진찰을 받고 결정 하는 것이 후회가 없을 듯 하기도하고,
또 방사선과라면 마침 집안 조카도 서울대 병원에 근무하고 있기도 하여 도움이 필요할 경우
도움도 받을 겸 해서 서울대학병원에 예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당시의 강남 삼성 병원 의무 기록을 대충 옮기려고 합니다.
AFP - 576 , AST(GOT) - 90, ALT(GPT) - 19,
Bilirubin, total - 1.8 Platelet - 75, PT sec - 15.3 등에 이상이 나온 것 외에 다른 혈액 검사상 수치는 거의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1. Liver cirrhosis with splenomegaly.
2. Massive type HCC involving right hepatic love dome area and right hepatic love posterior segment with tumor thrombosis in the right portal vein and main portal vein, combined with several intrahepatic metastases in the right hepatic love.
우리말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도 있습니다.
여하튼 일 년 동안 나의 공부한 실력으로 해석을 해 보겠습니다. 아주 많이 잘 모르고 있는 점이나 잘못된 것이 있을 것이며 이를 가르쳐 주시면 정말 감사 하겠습니다. 이 기록의 번역은 전적으로 저 혼자의 것임을 거듭 밝힙니다.
- 간 경화와 비장 비대가 있다는 것.
침범한 암이 오른쪽 돔 부분과 오른쪽 뒷부분에 있으며 암 혈전이 오른쪽문맥과 중앙 문맥에 있으며 다수의 간암 전이가 있다는 것과 분류상 괴상형 이라는 말 인듯합니다.
일주일 뒤, 아들의 결혼 전날 이었습니다.
진료 예약이 되어있는 서울대 병원에 가져다 줄 소견서를 떼기 위해 삼성 의료원에 갔습니다.
먼저 진찰을 해 주신 특진 K 박사님이 아닌 일반 진료 선생님께서 소견서를 떼어주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남편은 마침 화장실에 가서 미처 진료실에 들어오지 못했었습니다.
여기서 나는 그 닥터로 부터 남편이 3개월 밖에 못 산다는 청천벽력을 듣게 되었습니다.
나는 얼른 부정 했습니다.
“아니에요, 안 보셔서 그렇지 멀쩡한데요, 지금 여기까지 한 시간 넘게 운전 하고 온걸요.”
간암이라는 것이 이미 증상이 있어서 발견되면 중증 이라는 것도, 예후가 좋지 않다는 것도 대강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설마 3개월 이라니,
"간 기능이 좋기 때문이에요“. 닥터가 대답 했습니다.
남편의 간 기능은 분류상 child A 로 비교적 양호한 편입니다.
병원 지하에 내려가, 소견서며 기록을 복사본 하여 주는 대로 받아 가지고 반포 큰 아들네 집으로 갔습니다. 내일 있을 둘째 아들의 결혼식이 서울에서 있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또한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가족 손녀 둘과 아들 내외가 살고 있습니다.
손녀의 재롱을 보면서, 자신이 시한부 인 것을 모르는 남편에게 나의표정을 억지로 감추려 애쓰고 있었으나 며느리 눈에는 내가 이상히 보였는지, 몹시 피곤해 보이니 방에 가서 주무시라고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이튿날 토요일 작은 아이의 결혼식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나의 사랑 하는 가족이 또 생겼습니다.
결혼식은 병세를 알기 이전에 결혼 준비를 거의 해 놓은 상태라서 별 무리 없이 진행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신혼여행 비행기가 이튿날 아침에 뜨는 관계로 신랑 신부는 호텔에 남겨 두고 우리 부부는 화성 우리 집 으로 내려 왔습니다.
이 틀 뒤 월요일에 서울대 병원에 진료를 받기위해 운전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나는 새벽에 꾼 꿈이 상당히 좋으니 당신은 괜찮아 질 것이라고 얘기하여 주었습니다.
나는 가끔 신기하게도 꿈이 맞는 경우가 많으며 이것은 또한 작은 예지력 까지도 연관이 있는 경우가 있어 나나 가족은 때때로 신기해하며 비교적 꿈을 믿게 되었는데 오늘 아침의 이 꿈은 정말 더 믿음이 갔습니다. 그 꿈의 내용은
(남편이 집을 나서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사방은 새벽 인지 밤인지 어둑어둑 했었습니다.
나는 남편이 나가는 것이 싫어 졌습니다. 왼지 모르게 많이 슬펐습니다.하여 남편을 붙잡으며 말렸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한 발씩 나가고 있었고 나는 더 슬퍼졌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또 만류 하는 순간 대문 가까이 까지 간 남편이 갑자기 획 돌아 서서 집으로 들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얼른 남편 뒤로 가서 앞을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왼쪽에, 또한 오른쪽엔 커다란 호랑이가 한 마리 어둠을 받아 어슴푸레 대문을 가로 막아 버티고 있었습니다.
구렁이와 호랑이가 막아서서 남편이 나가지 못하고 돌아 온 것입니다.)
우리가 서울대병원에 전화 진료 예약 한 S 박사님은 외과의로서 간 절제나 간이식 분야에서 매우 유명하신 분으로서 생각보다 젊고 체구가 당당하신 미남 이셨으며 아주 친절하게 말씀하시는 분 이셨습니다.
박사님은 남편에게 곧 입원 할 것을 권유 하셨으나 우리는 일주일 뒤로 미루었습니다. 아이들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며칠 뒤 큰 아들 가족과함께, 여행에서 돌아온 신랑 신부를 데리고 여주 선영 산소에 참배도 하였고 돌아오는 길엔 신륵사도 돌아보았습니다.
아버지가 간 경화 정도로만 알고 있는 아이들도 침울 하였지만 선영 산소에 참배 하는 것도, 아이들과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마지막 이구나라는 생각은 나의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 하고 있었습니다.
사돈집에 보낼 이바지며 신행 살림에 필요한 약간의 잡다 한 것을 챙겨 아이들을 신혼집이 있는 신 반포 아파트로 보내고
12월13일 서울대병원 외과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이날도 남편이 약 70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운전을 하고 가기는 했지만 피곤할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입원 하면서 금식, 검사, 채혈, 촬영을 거듭 하였습니다. 오진이 많다는데 결과가 좋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실 낱 같은 희망도 가져봅니다.
남편은 입원실 히터가 이상하다며 손보기도 하고 전구가 고장나있다며 기술자를 불러 고치기도 합니다.
그 곳은 2인용 병실 이었으며 한 분은 위암 수술로 위 약간을 절재 하고 입원하여 계셨습니다.
입원하고 있는 동안 남편은 몹시 답답해했으며 신문을 사러 1층 까지 다녀온다든가 복도를 거닌다든가
휴게소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환자 아닌 사람이 입원 한 것처럼 씩씩해 보였습니다.
나중에는 거듭되는 검사와 금식에 짜증도 냈습니다. 어디까지 전이가 되었는지 알기 위하여 정교 하다는 PET 스캔도 받았습니다.
입원 후 며칠이 지나, 늘 회진을 돌던 병실 담당 주치의 두 분이 수술 불가하여 내과로 전과하겠다는 말을 하고 나를 병실 밖으로 불렀습니다.
덜컹 하고 가슴이 내려앉고 숨이 막혀왔습니다. 복도에 주저 앉았으나 그분들의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삼성 병원에서와 다를 바 없는 결과로, 이미 알고 있는 사실 그대로였고 폐에도 전이가 의심이 되는 간암 말기라는 것과 2개월밖에 못산다는 얘기도 조심스럽게 해 주었습니다.
지난달 삼성 병원에서 3개월을 얘기했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서울대 병원에서 2개월을 얘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머리는 급회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분들은 단지 통상적인 통계에 의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며, 우리에게는 상관없는 단지 숫자 일 뿐인, 그저 앞 긴-긴 날을 얘기하고 있는 거야. 2개월 3개월 이라니 그게 도대체 몇 월 몇 년 인가요?
퇴근하여 아버지 병실을 찾은 큰 아들이 옆에 와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들도 알 때가 된 것입니다.
갓 시집온 둘째 며느리가 옆 치과병동에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근무 틈틈이 병실을 들러 주었는데 시집오자마자 이런 상황을 접하게 되어 미안하고 안쓰러웠습니다.
다음날 방사선과에 근무하는 나의 친정 쪽 집안인 조카를 찾아 갔습니다. 그 조카는 환자를 접하는 일과는 연관이 없는, 병원과 관계되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으며 남편의 병세를 듣고 매우 안타까워 했습니다.
늘 바쁜 분 이었지만 그날은 다행히 자리에 있었습니다. 나는 조카에게 간곡한 부탁을 했습니다.
이대로 그냥 환자를 보내면 얼마나 실망을 하겠느냐, 그러니 절대로 그냥 보내지 말아 달라는 것과 잘 모르겠지만 무어 색전술 인가가 있다고 하는데 설령 효과가 전혀 없어도 좋으니
환자에게 크게 피해만 없다면 그거라도 하도록 하였으면 좋겠다는 말 따위를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
환자가 실망만 하지 않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나 좋을 듯 하였습니다.
병원 치료가 환자나 보호자가 원 한다고, 혹은 부탁 한다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거듭 부탁하고 있었습니다.
외과 선생님의 처방이셨는지 내과 선생님의 처방이셨는지 조카가 부탁을 하였는지 지금 생각 해 보아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남편은 색전술을 일 회 받고 다음날 퇴원을 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조금 더 쇠약하여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운전은 수원에 사시는 두 번째 시동생이 하였습니다.
8박 9일 만인 12월 21일 이었습니다.
이때 혈액 검사상 AFP는 34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정상은 20 이하)
혈액 검사상 수치가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지만 이 AFP가 암 활동과 관계가 있는듯하여, 지난달에 576 이나 하던 수치가 아주 많이 떨어졌음으로 나쁘진 않았습니다.
GOT, GPT도 28과 25로 떨어져 정상 범위로 내려와 있었습니다.
그동안 약을 먹었거나 치료 한 것이 전혀 없었으므로 아마도 금주 금연과 병원에서의 안정이 도움이 되었나 봅니다.
알코올을 주입한 쥐의 암 세포가 알코올을 주입하지 않은 쥐의 암 세포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는 것을 TV 뉴스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이곳 에서는 미만형 간암(diffuse HCC) 이라 기록 하였습니다.
Hbeag - negative Hbeab - positive
Hbsag - positive Anti-Hcv - negative
< 세 잎 크로버의 꽃말은 2 >
2005 12 21
색전술에 대하여 대충 이야기 하면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나 혼자 이해하는 바로는
허벅지 사타구니부분 동맥을 절개하고 혈관을 조영하여 모니터를 보면서 카테터라는 관을 깊숙이 간암이 분포 되어 있는 곳까지 도 달 시킵니다.
간암은 특이하게 동맥에서 혈류를 공급 받고 있는데 이 신생 동맥에 리피오돌 이라는 것 과 항암 물질을 섞어 이곳에 뿌려주고 색전(뚜껑을 닫아 막는 것)을 하여 암에 공급되는 혈류를 막아 암의 전이와 성장을 막으며 암을 괴사 시킨 다는 것입니다.
하여 간 동맥 화학 색전술이라는 명칭인 듯 합니다.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는 고도의 숙련된 분들이 시술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시술 후 허벅지 동맥이 지혈이 되기까지 약 8시간이 걸리게 되어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하므로 처음에는 곤욕스러워 했으나 다음부터는 지혈 패드라는 것이 있는 것을 알게 되어 두 번째 색전술 부터는 지혈패드를 하여 지혈 시간이 3시간으로 줄게 되어 한결 편 하게 되었습니다.
시술 후유증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 어지름 증, 구토, 발열 등이 올수 있기 때문에 지혈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날은 절대로 퇴원 할 수 가 없습니다.
색전술을 받는 하루전날 금식 하여야 하며 (8 시간 이상) 이날 입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술 당일 날 바로 병원으로 가기도 합니다.
시술 당일날 바로 가는 날 이면 우리는 새벽 6시쯤 집을 떠나 병원주사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간단한 처치를 받으며 혈관조영실로 들어갑니다.
남편은 작년 12월에 한차례, 두 달 뒤 2월에 한 번 더 받고 다음부터는 석 달에 한 번씩 지금 까지 5번의 색전술을 받았습니다. (1년 동안)
남편이 시술실 안으로 들어가고 나는 밖 복도에 앉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기도 하고 입구 쪽 자판기에서 커피도 뽑아 마십니다. 때론 대기하고 있는 다른 사람 가족과 이런 저런 병에 관한 이야기도 합니다.
머리 위 전광판에는 대기, 시술, 회복 자 명단이 쓰여 있는데 이곳을 자주 보기도 합니다.
남편이 한번 들어가면 보통 한 두 시간 후에 나와 병실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때부터 움직이지 말아야 하며 물을 많이 마셔야 합니다.
몇 시간 뒤에는 반드시 소변을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몸 안에 소변양이 많이 고이게 되면 간혹 지혈된 허벅지 부분이 터져 출혈이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간이 안 좋은 분 들은 대개 지혈시간이 길기 때문에 주의하여야 할 부분입니다.
맨 처음 색전술을 받던 날은 대 여섯 시간이 지나도 소변이 안 나와서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눌러 억지로 배출 시킨 적도 있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남편은 후유증으로 고생 한 적이 없습니다.
간혹 항암제의 효능으로 암의 괴사 시에는 고열이 며칠간 난다고도 하고 열이 많을수록 암이 많이 괴사되고 있다는 뜻이라는 글도 책에서 보긴 하였습니다만 아무튼 남편은 별 고통 없이 색전술을 받았습니다.
- 어디 동아줄 없나요-
퇴원할 때 간호사께서 당부의 말씀과 약을 주었습니다.
미나리 즙이나 기타 채소즙 종류는 절대로 먹지 말라 하였습니다. 생 채소로는 먹어도 되지만 즙은 먹지 말라 하였습니다.
아가리쿠스 영지버섯등도 먹지 말라 하고 식도 정맥이 있어 터지면 큰일이니 병원 약은 명심하여 복용하라며 육류의 뼈나 생선의 뼈등 도 정맥을 건드릴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약은 그 당시의 것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간 보호제와 비타민, 위와 식도를 튼튼하게 해 주는 것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식도 정맥이 도드라져 보인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대부분 간 경화나 암이 있는 경우에 간 혈관이 눌리게 되어 주위의 다른 혈관을 통과 하게 되는데 이때 위나 식도 정맥이 도드라지게 되고 혹 출혈이라도 있게 되면 위급한 경우가 생기는 수도 있다고 합니다.
퇴원하여 집에 돌아온 나는 무기력해 하며 허탈했고 슬펐습니다. 2개월여 남은 남편의 생명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고작 냉장고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먹다 남은 인삼이며 홍삼제품이나 영지
버섯 등을 치우는 일을 하는 것 뿐 이었습니다.
이틀 뒤 우리는 아이들 연말 선물을 준비하려고 수원 애경 백화점에 가게 되었는데 나더러 운전을 하라는 것 이었습니다.
나의 운전 경력이란, 10여 년 전 남편이 다리를 다쳐 약 한 달 정도 신 반포 에서 여의도 까지 운전 한 적이 있고,
여기에 온 이 후로는 식료품이 필요 할 때 고작 집에서 약 사 오 킬로쯤 떨어진 사강까지 운전한 경험들 밖에 없어 조금은 망설였지만
앞으로 운전을 해야 할 경우도 생길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수원까지 운전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남편의 도움으로 주차를 하고 백화점 안 매장을 둘러보려는데 남편이 피곤해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옆 들어갔던 한군데 매장에서 두 아들과 두 며느리 스웨터만 사고 가장 중요한 손녀들 것 은 미쳐 준비도 못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서서히 남편은 지쳐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고 컴컴했습니다.
잠자는 남편을 수시로 들여다봅니다.
간성 혼수가 올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꽉 막힌 문맥이 터질 수 도 있다고 했습니다.
자갈 밭길을 달리던 것 같던 남편 의 간경화 부분 영상이 계속 맴 돌아 나의 심장을 도려냅니다.
남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어 어디를 가나 쫒아 다닙니다.
돌보던 포도밭은 다른 분께 부탁 하였습니다. 2년 남짓 보던 동네 이장일도 임기 1년을 남기고 그만 두었습니다.
서투른 솜씨로 더듬더듬 간암에 대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봅니다. 간암에 관한 것은 전부 예후가 안 좋은 글 밖에 없었습니다. 하여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다가도 남편이 들어오는 기색이 있으면 얼른 모니터를 게임으로 돌려 오락을 하는 척 합니다.
그 게임은 스왑핵사 라는 것인데 덕분에(?) 몇 달 뒤에는 그 게임을 끝 까지 다 깬 적도 있습니다.
남편은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좀 많이 피곤해 보일 뿐이며 소화가 약간 되다 말다 했으며, 감기가 든듯한 목소리로 가끔 변하기도 했으며 하복부에 통증이 오기도 했습니다.
몸이 가렵다고도 했습니다. 밤에 잠을 잘 못자서 낮잠을 자기도 했으나 잠잘 때 외에 누워 있지는 않았습니다.
몸은 많이 야위어 64kg 까지 약 11킬로그램 줄었습니다. 다행히 복수는 차지 않는 것 같았고 얼굴색은 아주 조금 노르스름해 보였습니다.
=무공해 식품만 먹어야 했습니다. 마침 가을에 저장해 놓은 무 배추가 있었지만 다른 채소가 없는 겨울입니다.
하여 몇 년 전 아파트 장식장 한편에 무 씨앗을 사다가 화초로 기르던 생각이 나서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큰 아들이 새싹 기르는 용기와 씨앗을 사다 주었습니다. 인터넷 을 검색하여 여러 가지 씨앗을 주문하기도 하였습니다.
A 종묘사에 주문을 하였는데 며칠 만에 씨앗 기르는 자세한 설명과 함께 씨앗이 도착하여 기르기 시작 하였습니다.
각종 채소 영양소에 관한 것도 찾아보기 시작 했습니다. 새싹씨앗에 대하여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 마시는 물을 바꿨습니다.
이곳은 농지가 많은 곳이고 바닷가에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농약, 암모니아 등이 침전 되어 맛도 안 좋고 약간 짜기도 했습니다. 비용은 들지만 생수를 사다가 먹기로 했습니다.
정기적인 생수 배달도 없는 지역이라서 며칠에 한 번씩 사강 농협에 나가서 여섯 병 들이 박스로 대 여섯 박스쯤 사다가 모든 음식에 씁니다.
물론 생수에 대한 완전한 믿음 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곳 지하수 보다는 좋을듯 합니다. 생수 비용은 한 달에 약 오, 육 만 원쯤 듭니다.
간장 병에 대하여 그저 막연히 예후가 어렵다는 것 외에 특별히 아는 것이 없어 무언가 조그만 상식이라도 얻으려고 인터넷과 여러권의 책을 사다가 열심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책은 신빙성이 없어 보였고 어떤 책에서는 간에 좋은 식품등도 알 수 있기도 했습니다.
2004년, 이 해도 며칠 남지 않은 날 나는 아들이 사다준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날 남편의 소식을 듣고 집안 형님께서 당신의 며느님과 같이 찾아 오셨는데 그 며느님이신 질부가 내게 책 한권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막 읽기 시작한 아들이 사다준 책과 같은 것 이었습니다. 그들은 또 똑 같은 말로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이 대로 실행하여 효과 보았데요.”
귀가 번쩍 뛰었습니다. 마음이 급하여 한꺼번에 막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 책의 내용은 몇 가지의 채소만으로 건강과 암을 퇴치하였다는 내용이었고 나중에 보니 인터넷에 많이 올라있는 글이었습니다.
바로, L 지음, “ 야채스프의 건강비법” 이었습니다.
재료를 보니 우리가 늘 먹고 있는 것들로 특별히 간에 해가 갈 것은 없어 보였습니다.
나는 즉시 재료를 준비 하여 책에 있는 대로 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게 내려준 동아줄 이었고 그것이 설령 썩은 동아줄 일지언정 나와 남편은 온 몸을 그것에 의지 하여야 했습니다.
그 책 안에는 말기 암 환자에 대한 글도 있었는데 그것은 야채스프에 환자 자신의 오줌(유린)을 섞어 마시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무척 기이 하게 생각하면서도 이 마당에 못해볼 것 이 없으며 거리낄 것 이 없었습니다. 하여 실행을 하려고 하였으나 남편이 거부 하였습니다. 자신이 암 말기라는 사실을 모르는 남편은 화를 내었습니다.
나는 간곡히 부탁도 하여 보았고 애원도 하여 보았습니다.
그해도 그 아까운 시간이 그렇게 며칠이 지나 2005년 새해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요로 법에 관한 책도 두 권 더 보았는데 소변에는 많은 항암 물질이 있다고 되어있었습니다.
무균의 상태로 몸 밖으로 배출 된다고도 했습니다.
여태껏 내가 알고 있었던 바로는, 소변은 몸 안의 필요 없는 노폐물 로 무익하다 라고만 생각 되었으나, 언젠가 아이들 소변 추출물이 약제에 쓰이고 있다는 말도 들은 기억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남편에게는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을 설명하여 주며 나의 단 하나 소원 이니 부디 한번 해 보자고 하였습니다.
남편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 했습니다.
2005 12 22
- 전라도 충청 지방에 왜 이리 끊이지 않고 폭설이 계속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근 20여일 계속되고 있는 눈사태이며 가옥이 무너지는 일도 있다고 하고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이 일대 통행이 마비되어 많은 불편을 겪고 제주는 고립이 되었다고 하는데 아직도 눈은 내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도 그저께 밤사이에는 눈이 아주 많이 내려 쌓여 있습니다.
날씨는 계속 추워서 나는 집안에서 꼼짝 않고 가사 일을 한다든가 tv를 본다든가 하면서 주로 이글을 씁니다.
아직은 자판 두드리는 일이 많이 서툴러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생각만큼 많이 쓰지는 못 합니다.
남편은 그저께 아침에는 집 주위에 쌓여있던 눈을 치웠으며 오후에는 서울 여의도 동호회에 다녀왔습니다.
얼마 전부터 우리가 함께 외출을 할 때에는 남편이 운전을 하여 차를 가지고 다니지만 혼자 외출 하는 경우에는 사강 까지만 운전을 하여 정형외과 병원 앞마당에 주차 하여 놓고,
대부도를 출발하여 금정역 까지 가는 330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금정역 앞에서 내려 다시 1호선 지하철을 타고 대방역 까지 갑니다.
어제 오후에는 마을 회관에서 마을 분 몇 분들과 담소도 나누고 늦게 돌아와 저녁을 먹고 TV도보고 신문도 보고 하였는데 소화가 안 된다며 소화제를 먹었습니다. 이 약은 소화 안 될 때 먹으라고 병원에서 준 알약입니다.
요즘은 그전보다 훨씬 소화가 좋아졌으며 지금처럼 소화가 안 되어 약을 먹게 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여 요즘에는 별로 소화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저께 모임에서 먹은 고기가 나빴거나 과식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그동안 고기는 금하여 오다가 최근에 서야 조금씩 먹는데 그것도 집에서는 아니고 거의 외식의 경우입니다.
가끔 쳇증으로 고생할 때를 생각해 보면,
자장면을 먹은 후 와 고기를 먹은 경우, 또 과식을 한 경우입니다. 원래 육식 체질이었는데 그동안 금하여 와서 소화 체질이 바뀌어 진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밀가루와 육류가 소화에 어려운 듯도 합니다.
육류를 하지 않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밤새도록 조금 괴로워하던 남편도 아침이 되니 그럭저럭 가라앉은 듯 아침 식사를 거르긴 했지만 차도 마셨고 야채스프도 마셨으며 이제 곧 점심도 먹을 계획입니다.
이제 야채스프 끓이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 하겠습니다.
-야채스프 끓이는 방법 -
재료 무 - 4분의 1
마른 무 잎(무청) - 4분의 일
당근 - 2분의 일
우엉 - 4분의 일
마른 표고버섯 - 한 장(햇볕에 말린것)
재료는 뿌리째 깨끗이 씻어 씁니다.
위의 재료를 법랑이 아닌 유리 냄비 같은(비전 냄비)곳에 담 습니다.
이 재료의 세배의 물을 붓고 불에서 끓여,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여 한 시간을 끓입니다. 뚜껑은 꼭 닫아 둡니다.
식은 후 소독된 베 보자기 같은 것에 지긋이 짜 주어 이 물을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 하루 세 번 한 컵씩 약 600cc 를 마시는 데 간장병인 사람은 반드시 현미차도 마셔야 합니다. 보관은 가급적이면 유리로 된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 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변질되는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저는 위의 분량의 약 3배정도를 한 번에 준비합니다.
-현미 차 만드는 방법-
재료 현미 -- 한 컵
물 -- 8컵 + 8컵
한쪽 냄비에 물 8컵을 불에 올립니다.
동시에 현미 1컵을 볶기 시작 합니다. 현미가 타지 않고 진한 갈색이 날 때쯤이면 물도 끓기 시작 하는데 이때 볶아진 현미를 물에 부어넣고 불을 끕니다. 5분 뒤에 채에 받칩니다.
재탕은, 물 8컵을 다시 끓여 이곳에 건진 현미를 넣어 약 5분간 더 끓입니다. 이것을 채에 받쳐 위의 것과 섞어 마시는 것입니다.
= 하루에 역시 3컵 600cc 정도를 마시는데 야채스프와 현미 차는 절대로 동시에 먹어서는 안 됩니다. 15분 이상 사이를 두었다 마십니다.
남편의 경우에는 식 전에 야채스프와 약(소화를 돕도록 해 주는 알약)을 먹고 식후에 또한 약(간보호제와 비타민제)과 현미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요로법도 같이 실행하고 있는데 그 방법은
새벽 첫 소변을 처음 것은 조금 버리고 중간의 것을 한 컵 받습니다.
3분의2컵 야채스프에 이것 3분의 1을 섞어 하루 세 번 마시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소변을 탄 야채스프를 한 컵씩 하루에 세 번 마시고 사이 사이로 현미차도 하루 세 컵을 마신다는 말입니다.
이 방법은 금년 초 시작하여 지금 까지 열심히 하여 오고 있는데, 색전술을 하여 혈관 조영을 하였다든가 CT 촬영을 위해 약물 투입을 한 날은 하루 이틀 거릅니다. 몸에 안 좋은 약물이 배어 나올까봐서입니다.
-새싹 채소 기르기-
=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으라 했습니다.
과일과 채소에는 항암 효과와 체세포 활성 능력뿐 아니라 약에 기댈 수 없는 치료 효과도 자연 식품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환자들은 잘 먹어 건강이 유지되어야만 어떠한 치료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완전 무공해 식품으로 새싹 채소를 기르게 된 것입니다.
새싹 채소에는 다 자란 채소보다 이삼십 배의 효능도 있다하였습니다. 어떤 채소가 어떻게 좋은지 찾아보기 시작 했습니다.
항암 식품에 관한 책에 의하면 마늘이 가장 좋다고 하였습니다. 브로콜리, 순무도 많은 항암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버섯도 효과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씨앗은 A사에서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무, 순무, 브로콜리, 알팔파, 치커리, 적양배추, 적케일, 크레스, 아마, 다채(비타민) 등을 주문, 용기에 심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동안에 내가 터득한 방법을 소개하면
씨앗 10여 종류를 준비하여 우리가 보통 쓰는 커피 스푼으로 한 스푼 반 정도씩 떠서 소주잔에 넣어 담고 물을 붓습니다.
여름에는 너 댓 시간 불려 두지만 요즘 같은 겨울은 아예 하룻밤 재워 둡니다.
이것을 용기에 펴 주어 기르게 되는데 흔히들 거즈나 키친타월 따위를 깔고 심으라고 합니다만 그렇게 하여보니 거즈에 뿌리가 박혀 수확하기도 힘들며 여름 같은 때는 뿌리가 상하기도 합니다.
새싹 채소는 뿌리 까지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채반에 그냥 뿌리면 씨앗이 작은 것은 밑으로 빠집니다. 좋은 방법은 양파 망 같은 것을 청결히 하여 채반 위에 덮어주고 그 위에 물에 불린 씨앗을 겹치지 않게 펴 줍니다.
채반 밑에는 더 큰 용기를 두어 물이 잠길 듯 말듯 하게 부어 줍니다. 이 위에 천이나 헝겊을 덮어 볕을 막아 줍니다.
요즘 같은 겨울에는 이삼일 후에 발아가 되는데 이때 위에 덮어 주었던 것을 치워 줍니다.
씨앗은 항상 물이 마르지 않게 분무를 해 주어야 하며 밑에 물도 자주 갈아 주어야 청결 합니다. 여름보다 겨울은 성장이 느립니다.
나는 우리 밭에서 받은 갓, 무, 아욱씨앗이며 작년 앞마당에서 수확한 들깨 씨앗도 기릅니다.
사 오일 쯤 자란 것은 수확이 가능 한데(여름 기준) 무, 순무, 브로콜리 ,치커리 등이 잘 자랍니다.
적양배추, 적케일 등은 오 육일이 걸리며 들깨는 팔일쯤 걸립니다. 겨울은 성장 속도가 이보다 이삼일 늦습니다.
5~6cm쯤 자라면 이것을 수확하여 씨앗을 깨끗이 제거 해 주어야 하는데 물에 몇 번 씻어도 씨앗이 뿌리에 남아 엉겨 있는 것이 많은데 이것은 일일이 하나씩 떼어줍니다.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일입니다.
여기서 건방진 소리를 한다면 간병을 하시려거든 24시간 매달리십시오. 본인을 위 하여는 숨을 쉴 여가도 없다고 생각하고 간병을 하십시오.
씨앗을 떼어 내려면 나는 돋보기안경을 써야만 보입니다.
식탁 앞에 앉아 하나하나 다듬습니다. 이 작고 여리 디 여린 새싹 한 줄이 남편의 목숨 줄이 됩니다.
주방 한 켠에 작은 테이블을 놓고 그곳에서 기릅니다.
수도가 가까운 곳이면 그만큼 일손을 덜 수 있어서 편리 하며, 새싹을 기르기 위한 커다란 용기가 3개 이상 필요 합니다.
씨앗은 2~3일에 한 번씩 심고, 마르지 않게 자주 분무 하여 자라나는 데로 뽑아 약 한 공기쯤의 새싹 채소를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소스를 뿌려 먹습니다.
소스는 올리브 오일이나 집에서 짠 들기름 약간에
키위 레몬등 아무 과일이나 조금 넣어 믹서에 갑니다.
여기에 항암 효능이 있는 카레가루나 겨자가루를 조금 섞어도 되고 꿀이나 매실 청을 섞어도 좋습니다.
제가 열거한 새싹 채소의 맛은 맵고 씁쓰레 합니다만 약으로 생각하고 드십시오.
상점에서 파는 밭에 뿌리는 일반 씨앗은 농약 처리된 것이니 반드시 새싹씨앗용을 구입하여 사용 하셔야 합니다.
씨앗 값은 종류에 따라서 다릅니다만 이정도의 양이면 한분이 잡수실 경우 일 개월 에 약, 만 오천 원 정도가 듭니다. 요즘 남편은 가끔 소스 대신에 구운 김에 싸 먹기도 합니다.
간에 좋은 식품은 주로 책에서 보았습니다.
= 요약하면 강낭콩, 율무, 버섯 , 청국장, 생마늘, 콜리후라워, 해조류등 수 없이 많았습니다. 바지락도 탁월합니다.
= 오염되지 아니한 자연 식품이면 무엇이나 약이 되는 듯 했습니다.
좋은 것 열 개 먹는 것 보다 나쁜 것 하나를 안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합니다.
암은 철분을 먹고 자란다고 하였습니다.
하여 붉은 고기와 붉은 생선은 암이 먹고 자라는 핏기가 있어서 안 좋을 듯 하여 피하기도 합니다만,
혹자는 환자가 기운이 있어야하니 영양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고기를 먹을 것을 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자의 판단과 기호가 되겠습니다만 우리는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10여 개월은 절대로 먹지 않았습니다.
단지 나의 생각은, 암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안 먹게 하고 싶어서 붉은 고기 붉은 생선 뿐 아니라 철분이 많은 채소인 시금치도 먹게 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 환자에게 훌륭한 먹을거리인 흰살 생선, 조개등 어패류로 대체 했습니다.
그 전에 우리 가족은 육류를 아주 좋아하여 자주 먹곤 했었습니다만 암 진단 이후부터 일 년 가까이 먹지 않다가
이젠 많이 좋아 졌다는 박사님 말씀도 계셨고 우리가 볼 때에도 그런 것 같아 가장 최근에 아주 조금 먹어 보았습니다.
< 세 잎 크로버의 꽃말은 3 >
2005 12 24
어제는 정기 진료가 있는 날 이었습니다.
남편의 담당 의 이신 KY 박사님은, 본인도 느끼시겠지만 많이 좋아 지셨습니다 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KY 박사님과 진료의 과정은 계속하여 차례로 얘기하기로 하겠습니다.
- 식사 준비하기-
아침--
남편은 원래 아침에 빵을 먹었던 사람입니다. 이 습관은 아주 오래된 것이며 아침에 밥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버릇은 지금 까지 이어져 아침에 밥을 못 먹겠다 하였습니다.
하여 나에겐 또 다른 걱정이 되었습니다. 밀가루는 소화에도 안 좋을 뿐 아니라 첨가물이 더 걱정스러워 졌습니다.
묘안을 생각 한 것이 떡을 만드는 것입니다. 쌀을 하룻밤 물에 불리었다가 방앗간에 가서 빻아 왔습니다.
이것을 몇 봉지씩 나누어담고 냉동실에 보관하여 하나씩 꺼내어 녹여 씁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떡을 찐 경험이 없는 나에겐 큰 걱정이었습니다.
우선 쌀을 빻을 때 소금을 전혀 안 넣습니다.
= 염분은 절대로 안 좋다 하였습니다.
= 영양이 많아 환자가 꼭 먹어야 하는
밤, 대추, 잣, 호두 등의 견과류와 곶감, 단 호박 등을 떡쌀가루와 거의 동량으로 준비하여 물을 약간 내린 가루와 섞어
찜을 찔 수 있는 용기에 베 보자기를 깔고 위에 담아 한 시간 이상 푹 찝니다.
떡에 넣는 재료는 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삶은 콩이나 말린 과일 등도 있으며
떡쌀을 빻을 때도 푹 삶아서 꼭 짠 쑥을 같이 넣어 빻기도 합니다. 쑥이 간에 좋다고 합니다.
저는 올봄에, 이곳은 지천에 널린 것이 쑥입니다 만은 별로 채취를 못하여 한 두어 번 밖에 못 넣었습니다.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떡 쌀가루는 잘 안 쪄진다고도 합니다만 매번 조금씩 빻으러 다닐 수가 없어
한 번에 현미와 쌀 섞은 것을 약 반말정도 빻아놓고 씁니다.
올 일 년 동안 너 댓 번 정도 빻은듯합니다 만 지금도 이 떡 찌는 일이 어렵습니다.
이렇게 찐 떡은 한 김이 나간 뒤에 몇 덩이씩 나누어 랩에 싸서 냉동실에 보관 하였다가 아침마다 하나씩 꺼내어 약 4분정도 해동합니다.
혹 뜸이 덜 들었을까봐 조금 오래 해동 합니다.
한 번 찌면 보통 열 두어 덩어리가 되며 한 덩이는 약 200~250g이 됩니다.
= 밤은 여기서 가까운 밤 산에서 몇 말을 사 오기도 했으며
호두는 천안 농협에서 안 깐 것 4Kg들이 3 박스를 지난 9월에 사와서 나무로 만들어진 호두 까는 기계로 까서 사용 하는데 호두와 밤 까는 것은 남편이 합니다.
= 잣은 많이 구입을 하지 못하여 마트에서 사다가 쓰며,
=곳 감은 가을에 생감을 사다 말린 것 을 냉동 보관 하여 씁니다.
= 대추는 여기 이사하던 4년 전, 앞 울타리 옆에 두 그루 심었던 것이 고맙게도 올해는 실하게 열어주어 건조해 두고 씁니다.
= 단 호박은 초봄에 어린 묘목을 이웃에서 모종하였었는데 제법 여러 개가 열렸습니다.
이 견과류들은 훌륭한 군것질 도 되어 남편이 수시로 먹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마루에서 딱 딱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남편은 호두를 까먹고 있나 봅니다.
= 아침 식사에 계란도 한 알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프라이를 합니다.
이 계란은 집에서 기르는 유 정란입니다.
토종닭이 많았습니다만 이제는 3마리 밖 에 없는데 이것이 심심찮게 알을 낳는 것입니다.
새싹채소도 한 공기 정도를 넓은 그릇에 담고 소스를 곁들입니다. 이것이면 남편의 아침 식사 준비가 끝납니다.
남편이 일어나서 새벽부터 아침까지 먹는 것을 정리하면
< 식전 30분 -- 야채 주스 한 컵과(소변 3분의 일 섞은 것)
이담 분 비제 1알
아침식사 -- 떡 한 덩이,
새싹 채소와 소스
계란 프라이 한 개와, 양념하여 볶은 마늘 조금
아침 식후 -- 현미 차 한 컵과 약 두알 (비타민제와 간 보호 제) >
이상 이며 10시 30분을 전 후 하여 위에서 말한 간식, - 야채 과일 주스 만드는 방법- 에서와 같이 만든 것 한 사발, 약 400~500CC를 먹습니다.
점심,
점심식전 30 분 -- 야채 주스 한 컵(소변 3분의 1 섞은 것)
알약 한 알
점심식사 -- 잡곡 밥(현미 율무 보리 강낭콩 팥) 한 공기 와 채소 종류 생선등과 콩자반 김이나 해조류 버섯 등 특별 한 것 없이 골고루 먹습니다.
점심식후 -- 현미 차 한 컵과 약 한 알 (비타민제)
점심과 저녁 사이에 다시 한 번 오전에 먹던 간식, 과일 야채 갈은 것을 먹고 저녁 식사 30분 전에 약 한 알과 야채주스(소변 3분의 일을 섞은 것) 한 컵, 저녁 식사 후에 약 두 알과 현미 차 한 컵을 마시면 오늘 식사는 끝이 납니다. 하루에 먹는 것을 다시 정리 한다면, (글 쓰는 현재)
야채스프(소변 포함) 세 컵
현미차 세 컵
아침, 점심, 저녁과 사이에 두 번, 과일 야채 갈은 것 두 사발 이상이며, 이는 매일 꼭 먹는 양이며 요즈음 엔 군것질도 꾀 합니다.
아무튼 남편은 이전엔 건강 체질 이었으며 소화가 잘되는 사람이었으므로 잘 먹어 주어 어려움을 극복 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 잘 안 되던 소화도 아주 서서히 좋아 지게 되어 최근 몇 달 간은 다른 보통 사람들 수준만큼 되게 되었습니다. 과식만 아니 하면 별 문제 없습니다.
점심과 저녁밥은 반드시 잡곡밥 이어야 합니다.
=조개 종류를 많이 드십시오.
=미역국 같은 해초류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드십시오. 과일과 야채는 여러 가지 색을 드십시오.
=버섯과 콩나물은 볶음요리나 생태찌개 바지락 조개탕에 넣어 드십시오.
=된장찌개나 국물요리는 매우 싱겁게 하십시오, 특히 과일과 채소 종류는 무공해 여야 합니다.
설탕이나 밀가루 마가린 조미료 등은 쓰지 않았습니다. 과일 등으로 맛을 냅니다.
색전술을 받은 후 정상 회복까지는 보름 정도가 걸린다 하니 그동안은 신경을 많이 쓰셔야 합니다.
이곳은 다행히 조개 등 싱싱한 해산물이 좋아 남편이 색전술을 받으면 게나 새우 낙지 주꾸미 바지락 등을 계속 하여 먹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이라서 걱정 없이 먹습니다.
듣는 바로는 게나 새우의 경우 껍질을 같이 먹으면 콜레스테롤 걱정은 안 하여도 된다고 하니 요리 방법만 잘 하신다면 될듯합니다.
먹는 양은 처음 소화가 쉽지 않을 때는 조금씩 먹다가 이제는 많이 늘었습니다.
섭취하는 양과 수분이 많으니 물 같은 것은 마실 여가가 없습니다.
남편은 커피 마니아 였었는데 그것도 몇 달 동안 안 마시다가 역시 최근에 한잔 정도는 마십니다. 간혹 녹차도 마십니다.-
여기서 다시 남편의 그때 상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 갈수록 내 마음은 점점 참담해 갔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을 가끔 날카로운 것이 싸악 도려냅니다.
삼성병원이나 서울대 병원에서 얘기 해 준 대로라면, 2월이면 남편은 삶을 마감할 사람입니다.
이제 한 달 반 정도도 안 남았습니다.
남편 앞에서는 태연 한척 합니다. 눈물이 나려고 하면 얼른 세수를 합니다. 목욕탕에 물을 틀어놓고 울어도 봅니다.
제 옆에 자고 있는 이 사람과 영 영 이별을 해야 하다니 ~~ 자다가 뛰어나가 포도밭으로 내 달립니다. 거기서 통곡을 합니다.
아들한테 전화를 하고 싶었습니다. - 아들아 아버지 돌아가신단다.- 전화통을 붙들고 절규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참았습니다.
남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책 이며 알로에, 우엉도 아이들에게 시켰습니다.
두 아들 내외는 주말이면 거의 왔기 때문에 필요한 모든 것은 다 부탁 하였습니다.
남편은 모임에 참석하는 횟수가 줄어들었습니다. 꼭 가야하는 곳은 언제나 옆에서 붙어 다녔습니다.
운전할 정도로 건강 하진 않았지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닐 정도는 되었습니다. 이도 서서가면 피곤해 했습니다.
어디를 가건 어떤 모습을 하건 나는 늘 슬펐습니다. 일월 말경 어느 날 큰 아들네 집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제일 큰 손녀가 일곱 살인데 유치원에서 만든 카드를 줘서 펼쳐보니 -
할아버지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라고 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 글을 읽는 순간 통곡 하고 말았습니다. 남편도 그 글을 읽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해주는 흔한 말인데도 상황에 따라서 그렇게 슬프게 들렸던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약 챙겨 주는 일과 시간 맞춰 주방에서 먹을 것 만드는 일이 고작 이었는데,
끓이고 심고 만들고 차리고 하는 이 모든 것이 다 새롭고 서툴러 나는 하루 종일 동 동거리고 있었지만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슬픔과 남편의 비협조 였읍니다.
어떤 사람이 평소 과격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간이 부었구나. 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는 몸에 생기는 암모니아 가스의 정상적인 대사가 이루어 지지 않아
이를 배출시키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이 암모니아가 몸에 축적되면 뇌세포에 독성을 발해 일어나는 뇌신경의 작용이라 합니다. 심하면 이로 인해 뇌부종이 오기도 한다고 합니다.
남편은 표현은 안 하였지만 자신이 간암 환자라는 것에(본인은 그저 경미한 초기의 암 환자라고 알고 있었음)약간의 분노도 느꼈을 것이고 이것이 무슨 소용 있나하고 낙담도 하였을 것입니다.
하여 내가 해 주는 먹을거리인 이것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 아니어서 남편을 달래가며 늘 눈치를 보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엎친데 겹친 데로 힘들어만 갔습니다.
하긴 하루에 너무 자주 먹고 마시고 해야 하기 때문에 본인도 무척 힘은 들었을 것입니다.
제발 일 년만 내가 하는 대로 따라가 달라고 부탁, 또 부탁 했습니다.
잠시 틈이 날 양이면 간암에 관계 되는 책을 봅니다. 숨을 쉴 양이면 남편 생각에 서름이 복 받쳐 옵니다.
2005 12 26
- 암이 진행을 멈추었나? -
한 달이 지나가고 이월이 되고 설도 지나고 시간은 그렇게 무심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월의 중간쯤의 시간이 되면서 나는 남편에게서 무언가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몸 무개도 줄고 때때로 목소리도 변하며 조금 힘들어도 했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정지 한 듯한, 더 이상 나빠지고 있지 않는 다는 사실 이었습니다.
간암은 어느 정도 이상이 자라나면 그때부터는 급속도로 확산 전이된 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갑자기 혼수라는 것이 찾아 올 수도 있습니다.
갑작스런 출혈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여 그러한 증상에 관하여도 책에서 열심히 보아 두엇었 습니다만 남편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점점 용기가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
정말 병세가 멈춘 것일까요.
간절한 바람이 현실로 돌아오는 것 같기도 하여 한편으로는 기대도 하면서도 폭풍 전야 같은 두려움 또한 점점 더 무겁게 엄습해 오고 있었습니다.
2월 23일, 두 번째 색전술을 받기위하여 입원을 하였습니다.
입원 다음날 아침에 색전술을 받고 병실로 올라 온 날 오후, 담당 의사이신 KY 박사님이 회진을 오셨습니다.
혈관이 좁아서 색전술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말씀도 하셨고 그래서 어쩌면 더 이상 색전술을 안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돌아 가셨습니다.
병원에서 해주는 시술은 이것뿐인데 기대에 못 미친다니 크게 걱정도 되었지만, 병원 측 통상 사례로 볼 때에는,- 다른 사람의 경우라면- 지금쯤이면 위중한 상태가 되어 있어야겠지만 남편은 특별히 나빠진것 없이 여전해 보여 한편으론 위안도 되었습니다.
병실에 상주하고 있는 주치의가 채혈을 해 가며
암은 암인데 통상적인 진행과정이 달라 간암이 아닌 다른 암일 수도 있어 조직 검사 할지를 가늠하기위해 채혈을 하는 것이라 얘기 했습니다. 이 말에 나는 확신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 같이 암이 퍼지지 않았기 때문이구나.
이제 남편은 살았어. 암이 멈춘 것이야. 멈추었으니 다음에는 괴사되어 없어지는 일만 남았지. 그렇고 말고.
병원에 문병 온 아들에게 말 했습니다.
시동생에게도 시누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채혈 검사 때문에 하루를 더 있다가 주말에 퇴원하여 아들과 함께 집으로 내려 왔습니다.
작년 12월에 AFP가 34였던 것이 이번에는 정상인 5이하로 내려와 있었고 혈소판을 제외 하고는 거의 정상 수치를 보였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체험 한 가지를 얘기 하겠습니다.
남편은 일 년 반 쯤 전에 갑자기 혈압이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혈압 약을 계속 먹고 있었으며 처음 입원 할 때도 가져가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잊어버리고 못 가져가게 되어 병원에서 주는 혈압 약을 먹었더니 맞지 않아 안 먹었습니다.
불과 이 틀 동안만 못 먹었지만 문득 우리가 먹고 있는 야채스프의 효능에 관하여 쓴 책에 의하면, 야채스프를 먹은 지 두 달 쯤 이면 혈압 약은 먹지 않아도 된다고 쓰여 져 있던 것이 생각나 그냥 계속하여 먹지 않아 보기로 했었습니다.
혈압약도 간에 좋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효능도 믿어 볼 겸 반신반의 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았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혈압이 들쑥날쑥하여 걱정을 하면서 버티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면서 혈압이 진정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여 지금까지 혈압 약은 먹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남편은 야채스프에 대한 믿음이 크게 생기어 이후로는 잘 먹게 되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평생을 먹어야하는 혈압 약은 혈압 치료제가 아니라 단지 혈압 억제제 일 뿐입니다.
보름 쯤 뒤에 리피오돌 CT라 하여 먼저 시행한 색전술의 경과를 알기위해 채혈과 CT를 찍고 며칠 후 담당의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담당의 이신 KY 박사님은 젊습니다.
말씀 한마디 토씨 하나에도 절제가 있으셨고 많은 지식과 인격이 함축되어 있는 듯 상당히 믿음이 가는 분 이 십니다.
경과가 좋으니 색전술을 계속 하자고 하셨습니다.
이때 기록에 의하면 약간 shrinkage(줄어들다) 되어 있으나 큰 변화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악몽 같던 2월이 이렇게 지나고 삼, 사월이 왔습니다.
= 집 주위에는 미나리며 냉이며 돌나물 등이 반갑게 돋아났습니다. 이것들은 간 환자에게 매우 좋은 식품입니다.
나는 매일 조금씩 채취하여 알로에, 마와 과일에 섞어서 갈든가 반찬을 하여 먹었습니다.
남편은 2월 보다 조금 낳아진 듯 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남편 눈치를 봅니다. 자고 일어나면 먼저 목소리가 변 하였는지부터 살핍니다.
얼굴색도 봅니다. 이제 몸 무개는 64 킬로그램으로 더 이상 줄지 않고 있습니다.
가끔 감기도 걸립니다만 감기약은 몸에 안 좋으니 먹지 않고 그냥 주의하면서 지나갑니다.
목소리는 가끔 목에 걸린 듯한 소리가 되기도 합니다. 소화도 편하지 않는 날이 많습니다.
온천 같은 곳에 가서 한증도 자주 하였습니다. 지난 겨울동안 과일도 참 많이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얼굴은 윤기가 흐릅니다.
그동안 이년 여 동안 연못에서 잘 자라던 비단 잉어들이 지난겨울의 한파로 많이 죽었습니다.
연못이 얇고 작아서 그런가보다고 하면서 남편은 어느 날 혼자서 보수를 시작합니다. 나는 걱정이 되어 사람을 사서 하라고 해 보지만 그 고집을 누가 꺾나요?
그러고 나선 피곤해 합니다. 감기 기 가 조금 있어도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몇 달 동안 바깥은 모르고 지나왔습니다.
연못의 잉어가 죽은 것도 개가 강아지 세 마리를 낳은 것도 모르고 남편 음식 만들기, 인터넷 검색하기, 시간 맞춰 약주기, 간에 관한 책보기 등으로 세월이 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책은 모두 여덟 권 을 보았는데 책에 쓰여있는 용어들이 생소한 것이 많아 어려웠습니다.
이것들을 계속하여 돌려 봅니다. 조금씩 이해가 늘기도 하고 또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 지금도 계속하여 돌려 봅니다.
볼 때 마다 놓쳤던 부분들이 보이게 되어 좋습니다. 또 긴장을 늦추지 않게 되어 좋습니다.
연못 보수 하느라 곡굉이 삽질을 며칠 한 남편은 좀 쉬니 또 그럭저럭 괜찮아 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약간 이상이 왔습니다.
이유모를 치통으로 큰 고생 했습니다.
심한 위장 질환으로 응급실도 두 번이나 갔습니다. 남편은 누가 환자며 누가 간병인이냐며 웃습니다. 어지럼증이 생겼습니다. 불면증도 생깁니다.
그동안 남편이 소화가 조심스러워 소식을 하였었는데, 힘들어 하는 남편 앞에서 많이 먹기 미안하여 남편처럼 조금씩 식사 한 것이 아마 영양 부족이 온 듯도 하였습니다.
마음의 괴로움도 몸에 나타난 듯 하였습니다. 하여 마음을 되잡고 스트레칭도 하고 간식도 일부러 챙겨먹고 하였습니다.
2005 12 28
봄이 되면서부터 남편은 많이 좋아 졌습니다.
식사양도 약간 많아졌습니다. 노르스름하던 얼굴빛도 정상이 된 듯하며, 바깥일을 보는 시간이 길어 졌습니다.
소화는 이때에도 가끔씩 속을 썩입니다. 복부 통증도 때론 있습니다. 피곤하면 목소리도 정상이 아닐 때가있습니다. 그러나 예전 보다 빈도가 줄었습니다.
같이 나갈 때는 운전도 합니다. 꽤 먼 길을 드라이브 할 때도 있지만 옆에 있는 나는 아직은 긴장이 됩니다.
그만큼 아주 조금씩 남편은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진천 비단잉어 양식장에 가서 작은 잉어 마흔 마리 정도를 샀습니다.
수초도 샀습니다. 얼마 전 남편이 손수 보수한 연못에 넣을 것입니다.
오는 길에 평택 조류 농장에 가 보았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아 처음 가는 길입니다.
병이 없을 때 남편은 닭이며 오골계 기러기 오리 토끼 등을 사육하기도 했었습니다.
이것들을 포도밭에 방목 하였었는데 많을 때는 200수 가까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남편이 포도밭이라도 지나갈 양이면 이, 이백 마리 가까운 조류들이 남편 뒤를 좍 쫓아갑니다.
꽥꽥이며 퍼덕이며 뒤뚱거리며 뒤질세라 앞서며 뒤서며 쫓아갑니다.
동화에 나오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온 마을 어린이들이 쫓아갔다던 모습이 연상됩니다. 하여 그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깔깔거리며 웃곤 하였는데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옵니다.
남편은 닭장이며 토끼집이며 비닐하우스건 저장고며 하여튼 잘 만들고 짓고 부수고 했습니다.
아마 직장 다녔을 때는 직장일도 그렇게 잘 했으리라 짐작되는 부분입니다.
쓰다버린 전자레인지로 부화기도 만들어 병아리도 많이 부화 시켜 기르기도 했으며 이웃에 나누어 주기도 했었는데 돌보기가 버거워 닭 세 마리만 남기고 그것들을 다 없앴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름다운 관상조류를 기를까 하여 조류 농장을 가고 있는 겁니다.
- 새로운 취미 생활 -
산란기가 되어 조류농장은 출입할 수 없었습니다.
아쉬웠지만 마침, 새하얀 아주 작은 병아리 한 쌍 만은 구입 할 수 있어서 삼 만원을 주고 사왔습니다.
정식 이름은 실크 자보라 하는데 흔히 꽃닭 이라고도 합니다. 측은해 보일만큼 하야디 하얀 털이 매우 곱슬곱슬하여 곱술 자보라고도 합니다.
농사일도 접고 이장일도 접은 남편의 새로운 취미가 생긴 것입니다.
겨울 내내 잠자고 있던 비닐하우스 속을 갈고 다듬어 씨앗을 뿌렸습니다. 앞 텃밭에도 심습니다. 무, 얼갈이배추, 상추, 쑥갓이며 아욱도 심습니다. 참외와 도마도, 고추는 이웃에서 얻어다 모종을 합니다.
작년 까지 아버님과 셋이 하던 일을 올해는 둘이 합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시아버님 이야기를 하려니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20여 년 전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정든 고향 을 떠나, 서울 우리 집으로 오신 후 답답한 아파트 생활을 하시다가 이곳으로 오게 되어 퍽이나 좋아 하셨던 분입니다.
아버님은 전형적인 순박하디 순박한 우리네 농부셨습니다.
일이 힘 드셨지만 언제나 부지런하고 자애로우신 분입니다.
새벽마다 소여물 끓이시던 모습이며 어쩌다 고향 찾아 내려간 우리가 추울까봐 장작으로 군불을 지피던 모습이시며 참외며 고구마며---
남편이 이렇게 되자 수원 아파트에 사는 둘째 시동생이 모시고 갔습니다.
아버님 걱정 말고 형님 몸 잘 다스리라며 모셔 갔습니다. 하여 아버님 보내야하는 서운함을 뒤로 접고 우리는 지금 까지 병원 입원 퇴원을 자유로이 할 수가 있었습니다.
둘째 시동생은 남편이 운전을 힘들어 할 때는 병원 까지 운전도 하기도 했으며 늘 자주 와서 안부를 뭇곤 합니다.
둘째 시동생은 KT에 근무 하다가 최근에 퇴임 하였습니다.
둘째 서방님과 동서 감사 합니다.
다시 아버님의 답답한 도시 아파트 생활이 시작 되시나보다 했더니 한 달도 아니 되어 이번에는 남양주에 사는 셋째 시동생이 모시고 갔습니다.
셋째 시동생은 남양주시 수동면 운수리에 살고 있으며 농협에 다니고 있습니다.
운수리라는 그곳은 어찌 보면 이곳보다 아버님께는 더 쾌적한 환경이 될 수 도 있는 농촌 마을입니다.
산과 계곡이 좋으며 주위 마을에 가옥이 많아 남녀노소 없이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노인정도 바로 집 옆에 있습니다.
그곳에는 당신의 사랑하는 손자와 손녀가 있어 재롱떠는 모습도 볼 수 있으시고..... 이렇게 나름대로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만 아버님께는 엎드려 죄송하다고 사죄드립니다.
셋째 서방님과 동서 고맙습니다.
오 월초 남편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었습니다. 들어보니 바다 낚싯배에 예약을 하는 것 이었습니다.
나는 무척 놀랐습니다.
바다낚시는 부두 까지 새벽에 나가서 배를 타고 한 두어 시간쯤 혹은 세 시간쯤 바다로 나아가 낚시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시간동안 바다에 떠 있어야 합니다. 하루 종일 낚시를 하려면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합니다.
바다에는 바람도 심하고 파도가 입니다. 도중에 뭍으로 나올수도 없습니다. 식사와 간식도 걱정입니다.
남편은 이튿날 날이 채 밝지도 아니하여 어둑어둑한 새벽에 낚시 장비를 싣고 갔습니다. 평소 낚시를 많이 좋아 하고 있었지만 본인의 상태를 보아 그동안 삼가 했던 것입니다.
< 세 잎 크로버의 꽃말은 4 >
2005 12 29
- 일 년 동안의 남편 간병기를 쓰기 시작하여 며칠 동안 쓴 것을 어제 조심스레 남편이 인터넷에 올려 주었습니다.
어릴적 마음이 된 듯 조금은 부끄럽고 조금은 걱정스럽고 조금은 설레는 마음 이었습니다.
아침에 남편이 웹사이트를 열어 보여 주었는데 밤사이 여러분께서 이 글을 읽어주셔서 몹시 놀랐습니다.
몹시 신기하기도 합니다. 몇 분은 좋은 글도 우리에게 보네 주셨습니다. 혹 어느 분, 어느 병원에 누를 끼치는 일이 있으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제 글을 읽어 주신 분 , 좋은 글 올려 주신 분 정말 감사 합니다. -
낚시 간다며 남편이 휭 하니 나가자 덜컹 겁이 났습니다. 그동안 거의 붙어 있었는데 갑자기 제 시야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애써 감추려 하면서도 안절부절 걱정으로 서성입니다.
이곳은 서울보다 일찍 해가 뜨고 늦게 해가 집니다.
거의 해질 무렵이 되어서 남편은 씩씩 하게 돌아왔습니다.
망태기에는 큰 우럭이며 놀래미가 꽤 들어 있었습니다. 덕적도 부근 해역에서 잡은 것들입니다. 남편은 피곤해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구입한 전동 릴도 많은 도움이 되었나 봅니다.
다른 때 같으면 이 싱싱한 것 들은 거의가 손녀들 몫이었겠지만 이번에는 아니었습니다.
정성스레 깨끗이 손질하여 냉동실에 보관 하였습니다. 완전 무공해 자연산 - 남편의 것입니다.
무공해 자연산을 구입 하려면 우리의 경우에는 소래 포구를 갑니다.
시간이 맞으면 경매 물건을 볼 수가 있고 그중에서 잘 보아 두었다가 경매가 된 다음, 그 경매 받은 분께 가서 사 오는 방법도 가끔 씁니다.
중순경 우리는 산계 3마리 성조를 구입 하였습니다.
인천 공단에 있는 어느 중소기업 사장님께서 새를 몹시 좋아하셔서 사옥에 따로 조류 장을 설치하여 기르고 있었습니다.
희귀조류며 아름다운 새를 많이 가지고 계셨으며 전문 사육사가 관리 하고 있었는데 다른 것은 아니 되어도 산계는 분양 가능 하다하여 구입한 것입니다.
이 산계의 크기는 큰 닭 만 하였고 암컷은 잿빛으로 별 특징 없으나 수컷은 몹시 아름다웠습니다.
얼굴은 붉고 등 위는 하얀 부분과 붉은 부분이 선명하게 나뉘어 있으며 몸 전채는 청록색이며 밝은 윤기가 흐릅니다.
예쁜 흰 꼬리도 있습니다.
이 수컷은 성질이 조금 사나운데 산란기가 되면 몹시 난폭해 진다고 합니다.
며칠 전 구입한 흰 꽃 닭 과 같은 우리에 넣고 이놈들을 살펴보았지만 서로에게 해코지를 아니 하여 안심 하였습니다.
또 우리 집에는 아름다운 흰 공작 한 마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작년 7월에 남편이 부화 시킨 것으로 이제 채 돌도 되지 않은 아성조입니다.
이웃에 공작을 기르는 분에게서 알을 몇 개 얻어다 몇 마리 부화가 되어 남편은 크게 기뻐하였었는데
조류에 대한 상식과 경험 부족으로 남은 것은 이것 한 마리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몹시 예뻐합니다. 하여 배추, 무 잎도 따다주고 벌레도 잡아 먹입니다.
후미진 곳에 구더기도 길러 먹이고 있었는데 외롭던 이놈에게 새 식구가 생긴 것입니다.
처음에는 경계하는 눈치가 완연 하였습니다.
그래도 공작이랍시고 펴 보았자 겨우 부채 만 한 꼬리를 펴고 위협을 주어 볼 때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새 식구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아 줍니다.
부화기에 공작알도 여러 개 넣었습니다. 이것은 공작을 기르시는 이웃 분께서 부화 하여 같이 기르자고 하셨습니다.
남편은 정원이며 새장이며 밭 등을 돌보느라 집안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는데 나는 더 바빠졌습니다.
남편이 밖에 있었으므로 식사 이외의 것은 들고 배달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시간 맞춰 약이며 과일 간식이며 야채스프며, 집안과 밖의 거리는 불과 십여 미터밖에 안되지만 하루에 수없이 들락날락 하였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먹는 것이 너무 많다며 곱게 안 받아 먹어 늘 눈치를 보게 만듭니다.
- 3회째 색전술 받다 -
5월 말쯤 남편은 3회째 색전술을 받게 됩니다.
이번에는 당일 여섯 시쯤 출발 하였는데 여름이 목 전 이므로 그다지 어둡지는 않은 새벽 이었습니다.
색전술을 받고 간호사님들의 보살핌도 받고 남편도 이제는 더 익숙하여있었습니다. 이번에 입원한 병실은 6인실 이었습니다.
입원해 계신 여러분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도 됐으며 2인실보다 넓어 답답함은 들 했습니다.
지금은 퇴사하여 이병원에 없지만,
그동안 치과 병원에 근무하던 며느리 덕분에 가족 치료비 감면 혜택도 받았었습니다.
입원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 병실에 배정이 되어 2인실로 바꿀까 하다가 그냥 들어 온 것인데
병실은 넓어 훤했으며 입원하고 계신 분들이 여러분이 계셔서 좋은 이야기도 듣는 보너스 또한 있었습니다.
하여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6인 병실에 배정 되는 대로 입원하고 퇴원 합니다.
색전술과 색전술 사이에는 두 번의 채혈과 두 번의 CT ( lipiodol CT와 Abd CT라고 되어 있습니다) 촬영이 있고 그 사이에는 두 번의 담당의 진료가 있습니다. 하여 3 개월 동안 다섯 번 병원에 가는 것입니다.
이날 받은 색전술 기록에 의하면, 암 혈전 염색과 AP shunt 의 범위가 줄었다( Decreased extent of tumor thrombi stainning and Ap shunt) 라고
기록 되어져 있는데 색전술 할 때마다 이와 비슷한 소견이 있어, 이것이 암이 그동안 줄어들었다는 뜻인지
아니면 지금 색전술을 하면서 약이 침전되어 줄었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구별이 안갑니다만,
담당의 이신 KY 박사님의 처방과 시술을 믿고 따르며 초조함 없이 장기전으로 묵묵히 나아가겠습니다.
보름 뒤 인 6월 중순과 8월 중순경에 찍은 CT 에도 역시 Diffuse HCC의 소견 이라는 것과 5월의 liver CT와 extent는 변화 없고 왼쪽 gastric retroperitorium 에 small 림프노드 이전과 변화 없으며 --- 복수 없음 등 등
이 세 번째 색전술을 받고 난후 6월 혈액검사에 의하면
혈소판 수치는 63으로 조금 더 떨어졌고 정상이던 백혈구 수치가 두 번째 색전술을 하고나서부터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번에는 2.6 (정상은 4~10) 으로 까지 떨어 졌습니다.
백혈구는 몸에 들어오는 병원균을 없에 준다고 알고 있는데 그 기능이 떨어지게 되어 걱정입니다. (정확한 단위는 생략합니다)
여름이 되면서 남편은 더 바빠졌습니다. 부화기에 넣어 두었던 공작 알 이며 호로조, 흰 꽃닭 들이 차례로 부화하기 시작 한 것입니다.
이 조류들은 대개 어미가 품은뒤 20일째부터 26일 사이에 부화 하는데 공작 알은 26일이 되어야 부화합니다.
이 갓 태어난 병아리들은 온도며 먹이며 무척 조심을 하여 다루어야하기 때문에 남편은 큰 스티로풀 박스에 전구를 달고 자동 온도 조절기를 넣어 육추기를 만들어, 이 병아리들을 이곳에 옮겨, 약 두어 달 기른 후 새장으로 내어 보내는 것입니다. 육추기도 대 여섯 개 만들었습니다.
모자라는 병아리 사육장을 창고에 만들기도 하고 텃밭에 심어 놓은 농작물도 돌봅니다.
바다낚시도 몇 번 더 다녀왔습니다. 이제는 바다낚시를 가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내친김에 금계, 은계, 황금계, 백한, 긴꼬리꿩 등도 두세 마리씩 사왔습니다.
부화기 에서는 병아리 들이 부화 합니다.
이들에게 먹이로 주려고 귀뚜라미며 밀벌레며 번데기도 사옵니다.
하얀 비둘기 두 쌍도 넣어 주었습니다. 제법 조류동산 다워집니다.
이제는 이것들에 대한 공부도 하여야 합니다.
나는 채소에서 벌레들을 잡아 먹입니다.
농약을 전혀 주지 않은 채소의 벌레들은 매일 잡아도 또 생겨 납니다.
작은 비닐하우스는 내가 관리 합니다. 봄에 뿌린 씨앗들이 제법 많이 자라나 수확하여 먹게끔 되었습니다.
과일들을 채취하여 말리기도 하고 냉동도 합니다. 많은 채소들이 있었지만 새싹 채소는 여전히 길러 먹습니다.
이 새싹 채소들은 밭에서 자란 채소와 종류도 다르지만 효능과 영양분이 월등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밭에서 자라던 그린 케일이며 적양배추가 잎이 잘 자라고 있었는데 나는 조심하여 처음에는 과일과 채소 가는 것에 조금 넣어 같이 갈다가 며칠 뒤부터 즙을 조금 짜서 섞기 시작 하였습니다.
간이 안 좋은 분들은 채소즙을 피하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도 채소즙은 피하였는데 최근에는 간 기능도 거의 정상 인 듯하여 조금씩 섞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행히 소화에 무리가 없었습니다.
항암 효과가 뛰어난 브로콜리도 길러 보았는데 꽃봉오리 사이사이에 어찌나 벌레가 많이 끼는지 일일이 잡을 수도 없어 새들 먹이로 주었습니다.
그린 케일이나 적양배추 같이 잎이 넓은 것은 벌레를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부화기에서 공작 병아리 20여 마리가 부화 하였습니다. 더 많은 벌레와 노력이 필요 했습니다.
7월 말경, 작년부터 있던 백공작이 아주 아름답게,
이제 막 꼬리 끝에 아름다운 태극무늬가 생기기 시작 하였는데 며칠 전부터 지붕위에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쉬는 것인가 보다고 생각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점점 기운이 없어 보였고 먹이도 안 먹었습니다. 우리의 이 아름다운 공작님께서 병이 난 것입니다.
2005 12 30
사육 전문가 에게 물어도 봅니다. 가까운 동물 병원에 문의를 해 보았지만 별 치료 방법이 없다 합니다.
동물 약국을 찾아보니 수원에 있어서 점심을 먹고 출발 하였습니다.
남편과 나는 계속 침울하여 말을 잊었고 남편은 식곤증이 왔는지 운전하는 도중에 몇 번 하품을 합니다.
이곳과 수원 중간쯤에 우회 도로 새로 난 길이 있는 데 약간 경사진 언덕길입니다.
우리는 2차선으로 가고 있었고 앞에는 아까부터 아주머니들 몇 분이 탄 차가 가고 있었는데 운전이 매우 미숙해 보였습니다.
길은 약간 언덕으로 경사지어 속도는 없었지만 남편이 일차선 으로 들어섰습니다.
아마 앞 차가 거치적거리어 비켜 가려나보다고 생각 하였는데 중앙 분리대에 너무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점...점.
“여보 여보 여보” 세 번째 여보 소리와 동시에 쿵쾅쾅쾅 -
“어 이거 무슨 소리야”
남편이 급히 제 자리 위치를 잡았습니다.
조금 더 가서 옆 갓길에 차를 세웠습니다.
속도도 빠르지 않았고 약간 경사진 언덕길이었기 때문에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습니다만 남편은 몹시 격양되어 있었습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으며 몹시 화가 나 보였습니다. 나를 딱 쳐다보더니
“당신 때문이야” 남편이 퉁명스럽게 쏩니다.
내가 차 부딪치라고 핸들 꺽었나요? 순간적으로 나도 화가 났지만 속으로 삼키며
“당신하고 나 멀쩡하잖우 그럼 된 거지 화는 왜 내요 안 다쳤으니 다행이지 속상해 하지 마셔요”
남편은 한참을 어이없어 하기도하고 내가 왜 그랬지 하며 자책도 하고 열쇠를 나에게 주며 집까지 운전 하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우리는 계획대로 수원까지 가서 조류들 치료하는 약이며 예방약들을 사고 르노삼성차 수원지사에 차도 맡겼습니다.
차는 앞 좌측 범퍼와 좌측 문까지 조금씩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우리차가 없어 불편 했습니다.
택시도 타고 버스도 타고 이곳 사강까지 와서는 또 택시도 타고 하여 집에 돌아 왔습니다.
이미 석양 노을은 지고 있었고 우리는 오자마자 아름다운 공작이 있는 우리로 달려갔습니다.
공작은 머리를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처연토록 아름답던 그 공작은 이미..........
이튿날, 나하고 차 사고하고 무슨 연관이 있는지 마음이 좀 진정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그 대답은 이러 했습니다.
내가 먹고 마실 것을 하도 자주 주어 밤에 화장실 가느라 잠을 제대로 못자서 깜박 졸았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부터 생긴 증상중의 하나가 야뇨증입니다.
밤에 자다가 두 번 이상은 잠에서 깨어 소변을 보니 늘 잠이 모자라는 듯 했습니다. 하기야 그 증상은 요즈음 시작 된 것이 아닙니다.
작년 몸이 안 좋아 지면서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던 것 같습니다. 낮에는 잠깐씩 졸기도 하고 낮잠도 잤습니다만 밤잠을 푹 못자니 피곤 한듯 하였습니다.
남편은 여태껏 몇 십 년 동안 운전을 하였어도 운전을 하면서 졸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여 너무 뜻밖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먹고 마시는 시간을 조금씩 빨리하여 보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이달에 처음으로 남편 옆을 벗어나 혼자서 외출을 하게 됩니다.
먼저 미장원에 가서 제법 길게 자란 머리도 자르고 또 오랫동안 염색을 못하여 반 이상이 허예진 머리 염색도 한 후 친구들 정기 모임에 나갔습니다.
남편 치료를 시작한지 거의 9 개월째 만에 첫 나들이 입니다.
내가 한나절 정도 옆에 없어도 걱정이 들 될 만큼 남편은 건강해 진 것입니다.
그동안 육추기 에서 자라는 공작 20여 마리는 참으로 잘 자라 줍니다. 다행히 백공작도 다수 있어 더 아름답습니다.
다른 곳에서 분양 받아온 새들도 두어 마리는 떠났으나 모두 다 잘 자라고 있습니다.
공작은 사람을 피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따르고 멀리 날아가지 않기 때문에 가끔 정원에서 놀다가 들어가기도 합니다만 밭에 있는 농작물을 헤치어 자주 내 놓을 수 가 없습니다.
나는 부지런히 벌레며 채소를 갖다 줍니다.
남편은 그동안 조류에 대한 공부(?)도 하여 물에 약도 타주고 밤에는 잠자는 녀석을 잡아 겨드랑이에 예방 주사도 놓습니다.
동물을 대하는 남편의 모습이 참 정성스러워 보입니다.
조류들로부터 어떤 감염이 생길까 염려가 많이 되기도 합니다만 이 또한 남편의 취미이니 막을 수 없습니다.
남편은 가끔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이 부근을 한 바퀴씩 돌기도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어깨가 아파오면서 팔에 힘이 빠지고
심장이 쏘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했습니다.
며 칠 후 역시 또 자전거를 타다가 똑같은 일을 경험 하여 걱정을 하였으나 곧 다가오는 진료일 에 가서 여쭈어 보기로 했습니다.
- 조직검사를 하였습니다.-
진료일은 8월 20일이며 사흘 뒤에 네 번째 색전술 예정이 잡혀 있었습니다.
마침 진료일이 토요일이어서 아이들이 모두 와서 진료 시간을 기다리며 담소하고 있는데 남편은 또 살짝 그 증상이 왔다고 했습니다. 담당 선생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KY 박사님은 남편을, 옆 진료실에서 진료 하시는 심장 전문 선생님께 보내 주셨고 그 선생님께서는 급히 입원 하라고 하셨습니다.
며칠 뒤 색전술 입원이 잡혀 있는데 그날 입원 하면 어떻겠냐고 여쭈어보니 안 된다 하셨습니다.
간 수술시 에 심장 이상이 와서 어려웠던 적이 많다고 하시면서 빨리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도 하셨습니다.
토요일 퍽 늦은 시간이라 응급실을 거쳐 중환자실에 입원 하게 되었습니다.
사흘 동안 여러 가지 검사와 spect 라고 하는 심장근 검사도 하였는데 아무 이상 없다고 하여 이틀 동안 고생만 하다가 중환자실에서 나와 일반 병실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입원의 목적은 물론 네 번째의 색전술을 받기 위해서였지만 KY박사님의 조직 검사 권유가 있기도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알기에는, 조직검사를 하게 되면 암세포가 바늘을 따라 나와 혈관을 따라서 퍼질 수 도 있다는 그런 염려도 있기는 하였으나,
만약 그런 위험이 크다면 박사님께서 권유 하셨을 리 없다는 생각에 조직검사를 받아 보기로 하였는데 중환자실에서 아스피린 을 먹었기 때문에 금방은 못하고 색전술을 먼저 받고 며칠 있다가 조직검사는 하기로 하였습니다.
색전술을 받고 조직 검사 까지는 이틀 동안의 여유가 있어 병실을 비워두고 잠시 집에 내려와 동물들을 돌보고 다시 올라갔습니다.
조직검사는 KY 박사님께서 직접 하셨고 검사 시간은 잠깐 동안 이었습니다.
밖으로 나온 남편의 침대 밑에는 아주 조그마한 병에 선홍색의 액체가 들어 있었습니다,
마을이 온통 포도 수확으로 떠드래 한 9월이 왔습니다.
우리포도밭 포도도 실한 열매가 주렁주렁 매어 달려 온통 포도향기가 그득 합니다.
남편도 지난 8월 무더위에서는 조금 피곤해 했습니다.
조직검사에 대한 검사소견을 듣는 진료 날자가 가까워 오면서 점점 기대감에 이날이 기다려지게 되었습니다.
책에 의하면, 조직검사가 가장 확실히 간암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이긴 하지만 몇 가지의 경우 또한 있었습니다.
초음파나 CT등으로 간내 종괴를 확인하고 간조직을 떼어내는 방법으로, 간경화가 되어 있는 부분에서 적출시 에는 조직이 딱딱하여 암 세포가 검출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간암 세포가 아닌 정상 부위가 얻어 지는 경우가 있다고도 하는데 글쎄요.
9월초 진료 날이 되었습니다. 진료실 앞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박사님 앞에 앉았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배 부분을 만져보셨고 조직 검사 후 불편한 점은 없었느냐고 물어 보시기도 하셨습니다. 박사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암 세포가 검출이 안됐습니다.”
“........”
팽하니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암이.... 괴사.. 된.. 것인지요?” 나는 더듬더듬 억지로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상황 이었었는데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신 분은 선생님 이 셨는데........저보고 수고 하셨 다네요.
나는 얼른 얼굴을 돌렸습니다. 눈물 흐르는 얼굴을 안보이기 위해서 였습니다.
선생님 감사 합니다하면서 머리를 숙였습니다. 박사님을 업어 주고 싶었습니다.
진료실을 나와 문 밖에서 간호사님이 약 처방전과 다음 진료 계획을 말하여 주고 있었는데 나는 그 분의 손을 한참동안 꼭 잡고 있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정말 감사 합니다.“ 얼굴에는 계속하여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암이 여러 개 펴져 있는 사람입니다.
박사님은 그중의 큰 것 하나, 혹은 두 개에서 조직을 떼어 내셨을 것이고 최소한 그 부분에서만은 암이 괴사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혹시 나머지 살아 있는 것이 있다고 해도 이는 지금처럼만 치료 하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다 괴사 되었을까요?
2006 1 1
- 올 한해는 여러분 들이 모두 건강해 지실 것을 기원하면서
병술년 새해 첫날 저희 부부가 인사드립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진료를 받고 나오면서 의무기록사본을 떼어 보았습니다.
이날의 진료 하루 전날 찍은 lipiodol CT 에 의하면
- 오른쪽 문맥에 암 혈전이 부분적으로 흡착이 되어 있고, 간경화와 비장 비대- 라고 되어 있습니다.
올 9월부터 암 환자들은 중증환자 등록이 되어 진료비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여 미리 낸 예약금 환불도 받았습니다.
이번 가을 도 예외 없이 남편은 포도주를 담갔습니다.
이곳에 온 이후로 남편은 언제나 포도주를 상당히 많이 담가 왔는데 맛이 좋아 여러분들이 참으로 좋아 하셨습니다.
친구들 모임에도 한 두병씩 들고 나갔으며 우리 집에 찾아오시는 분께 선물도 하였습니다.
특히 이 포도주는 우리 집 포도축제날 가장 인기가 있었습니다만 올해는 이 행사를 안 하기로 했습니다. 포도주도 조금만 담갔습니다.
포도 수확으로 떠드레 하던 마을도 추석이 지나면서 여유를 찾고 있었습니다.
동네 여러분들이 포도도 많이 주셨습니다. 또 우리 포도밭 경작을 하시는 분도 주시고 하셔서 언제나처럼 포도알 같이 싱그러운 9월을 지냈습니다.
강화도에 가서 가을 멸치를 사오기도 했습니다. 원래 해마다 5월에 담그던 멸치젓을 올해는 못 담갔기 때문에 가을 멸치젓이라도 담그려고 넉넉히 사왔습니다. 소금에 버무려 고마운 이웃과도 나누었습니다.
멸치를 사려고 작정하고 간 것은 아닌데 대명항에 가보니 너무도 반짝 반짝 싱싱한 멸치가 있어 사온 것입니다.
멸치젓 담그기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멸치와 소금을 3:1로 섞어 항아리에 담고 웃소금을 넉넉히 얹어 시원한곳에 몇 달 저장을 하여 두었다가 익은 후 생으로 양념하여 먹기도 합니다만 적당히 꺼내어 물을 조금 붓고 끓여 거즈에 걸러 보관합니다.
이것은 아주 영양가가 높기 때문에 겉절이나 김치 담을 때 매우 유용합니다.
특히 무공해로서 맛도 좋으니 겉절이 만들 때 넣으시고 마늘과 참깨도 듬뿍 넣어 만드세요.
또 이것은 환자가 꼭 먹어야 하는 해초류 무침에도 참 좋습니다. 조금만 넣어 짜지 않게 하십시오.
며칠 뒤에는 천안 농협에 가서 호두를 사 왔습니다. 이것은 남편이 아침 대용으로 먹는 떡에 들어 갈 것이며 또한 훌륭한 간식 꺼리도 됩니다.
가을이 깊어 가면 우리 남편은 망둥이 낚시로 즐겁습니다.
바다 바깥에 앉아서 낚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 까지 오는 고무장화 바지를 입고 바닷물 안에 들어가 조류와 같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낚시를 하는 것 인데 물은 보통 허리까지 찹니다.
하루 종일 하는 날도 있습니다. 이 망둥이 낚시는 체력이 많이 소모 됩니다.
처음에는 씨알이 가늘던 것이 날이 갈수록 굵어집니다.
남편은 꾀 많이 낚아 옵니다.
이렇게 망둥어를 낚아 오는 날이면 남편과 나는 생선 다듬는 일로 바빠집니다.
내장을 제거하여 말리기도 하고 회로 무쳐 먹기도 하는데 남편은 생것을 삼가야 하므로 매운탕이나 조림을 하여 먹습니다.
이곳에 이사 오기 전에는 안 먹었던 것인데 맛이 생각보다 괸잖았습니다. 망둥어회는 홍어회처럼 요리를 하는데 그 맛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낚시는 11월 초 까지 이어 지는데 11월이 되면 날씨가 추워져서 더 이상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올해는 예년만큼 여러 번 많이 한 것은 아닙니다.
11월 초 남편은 Abd CT를 받고 한참 후 진료를 받았습니다.
KY박사님은 주위로 전이 되었던 암이 아직은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정말 엄청난 말씀 이 셨습니다.
-아직은 살아 있다니,-
그럼, 정말로 그 많던 암들이 대부분 사라 졌다는 것입니다.
진료를 받고 나오면서 떼어본 이 날의 의무 기록에 의하면 S5( 간을 필요상 분류한 8 분절의 한 부분)에 살아있는 암이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 된다고 했으며, 더 엄청난 일은 중앙 문맥에 혈전 없음(Main portal vein 에 thrombosis 는 없음) 이라는 대목 이었습니다.
꼭 일 년 전 이맘때 남편의 간암 판정이 나면서부터 나에게 가장 큰 걱정은 문맥이 꽉 막히어서 ....... 라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 중앙 문맥이 뚫렸다는 뜻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읽어보고 나는 몹시 기뻤습니다.
아직은 확실한 박사님의 말씀도 없으셨고, 또 이는 단지 나의 짧은 해석 이었으므로 정확한 말이 아니라 추측일 뿐이며 또 오른쪽에 암 혈전도 있다 하였었는데 어찌 되었는지 몹시 궁금해 하면서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혈액 검사 수치상 혈소판과 백혈구는 조금 더 떨어 져 있습니다.
- 이젠 남편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병원 진료가 궁금하다며 전화를 걸어온 큰 아이에게 말 했습니다.
“아버지 이젠 정말 사셨다.”는 등등 수선을 떱니다. 증상을 너무 자세히 말한 것입니다. 아이와의 대화를 듣던 남편이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내가 언제는 죽었었니?”
그러고 보니 앗 나의 실수 였습니다.
꼬박 일 년을 남편은 자신의 정확한 상태를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냥 숨기고 그저 별것 아니라고 했지만 이제는 남편도 알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남편스스로는 - 자신은 누워 앓은 적이 없고 크게 아픈 적도 없었으며, 얼마간의 무기력감과 피로감, 소화불량, 복부 통증 등으로 고생도 하긴 하였으나 크게 고통스러웠던 것도 아니었고,
암이 있다는것을 알기는 하였으나 그저 초기 정도에 지나지 않는 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 치료에 비협조적인 부분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남편이 이젠 거의 나았다는 확신이 생겨 이번 기회에 얘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간암은 거의 특별한 증상이 없습니다.)
남편은 처음에는 거짓말로 알아들었습니다.
다음에는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그동안의 진단 내력과 주위 분들의 정황을 조금씩 설명하여 주니 그때는 조금 수긍 하는 듯 하였으나
“내가 정말 2~3개월 밖에 못 산다고 했단 말이야?” 라는 질문을 한참동안 하곤 했었습니다.
이젠 정말로 남편이 다 알게 된 것입니다.
후유-한 숨이 나옵니다.
한결 홀가분해 지기도 했습니다.
혼자 끼룩 끼룩 끌고 가던 짐수레를 남편이 이젠 밀어 줄 것 같습니다.
앞으론 치료에도 많이 협조 할 것이며, 의논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띄울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남편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건강 할 때의 옛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남편의 몸이 많이 좋아지기 전에, 성격이 먼저 부드럽게 변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64 킬로그램 까지 줄었던 몸 무개는 여름을 지나면서부터 좋아져서 70킬로그램이 넘었습니다.
가끔씩 변하여 나의 애를 태우던 목소리도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 간암이나 경화가 있는 분들은 암 혈전의 변화로 인하여 다른 장기를 건드리게 되고 이때에 목소리가 변 할 수 도 있음) 소화도 과식만 안하면 문제없습니다.
가끔 느끼던 복부통증도 언제 부턴가 전혀 못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밤에는 잠도 잘 잤으며 소변을 보려고 깨는 일도 없어 졌습니다.
남편 스스로도, 물론 모르고 지나오긴 했습니다만 그 어려움을 겪어 낸 것에 대하여 자신감도 부쩍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많이 여러 번 먹는 것에 대하여 투덜거리는 일도 없어지게 되어 남편 눈치를 안보아도 되니 나에게는 다행한 일입니다.
- 다섯 번째의 색전술 -
11월 말경 다섯 번째의 색전술을 받고 퇴원하여 역시 보름정도 뒤에 리피오돌 CT와 혈액검사를 받고, 이 해도 다 저무는 12월 23일 (앞에서도 잠시 예기 하였듯이) 박사님과의 면담진료가 있었습니다.
박사님께서는 본인도 아시겠지만 많이 좋아 졌습니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남편이, 암 환자들은 문맥이 많이들 막혀 있다는 얘길 들었다고 하면서 어떠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박사님은 오른쪽 문맥이 막혀 있는 것이 변수가 많아 걱정이라고 하시면서 중앙 문맥은 뚫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앙 문맥이 뚫렸다 - -
뚫렸다니 -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나의 시원 잖은 기록사본 해석도 맞은 것입니다.
중앙 문맥과 오른쪽 문맥이 막혀있다고 하였었는데 중앙 문맥이 뚫린 것입니다. 이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오른쪽 문맥도 확실히 뚫어 질것입니다.
KY 선생님 감사합니다. 박사님께 치료 받기 시작한지 오늘이 꼭 일 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절망 속에 계시는 많은 환우들의 등불이 되시어 우리 의료계의 또 하나의 큰 별이 되소서.
박사님은, 다음 번 CT촬영이 2월 초로 예약되어 있었는데 이것을 MRI로 바꾸셨습니다. 그리고 역시 2월 중순경 진료가 있습니다.
이번의 혈액 검사 특징은,
그동안 계속 떨어지기만 하던 백혈구가 정상에 거의 가까운 만큼 올라온 것입니다. 또한 늘 약하던 혈소판 수치도 (아직은 많이 모자라지만) 많이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간암과의 동거 그 일 년의 이야기를 마치며-
지난 일 년 동안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작은 나의 얘기 였지만 큰 희망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한꺼번에 쓰느라 빠뜨린 것이 많은 듯 합니다.
조리 바르지 못한 표현도 있었을 것입니다.
숨 가쁘게 달려와 오늘 까지 다다른 것이어서, 미쳐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기적은 혼자의 힘이 아닙니다. 환자와 의사와 가족 모두의 합심입니다. 우리는 모두 기적을 이르켜 낼 수 있습니다.
특별한 약을 구하여 먹은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자연에서 얻는 식품에만 중점을 두었습니다.
남편인, 환자 자신의 병에 대한 초연한 마음가짐이 첫째 였습니다.
병원에도 충실하였습니다.
처방하여 주는 알약은 열심히 먹었습니다.( 비타민, 담즙 분비제, 간보호제등)
색전술도 받고 의사 선생님 지시사항을 따랐습니다.
책도 여러 권 보았는데 - 요로법에 관한 책, 암환자를 위한 요리책, 완치된 분들의 얘기책, 혈액, 간암에 관한 전문 서적 몇 권도 보았습니다만 이것들은 지금도 계속하여 돌려 봅니다.
영어로된 의무 기록 사본을 보는 일은 나에게는 무척 어려웠습니다. 원래 영어도 잘 못하였지만 의학용어는 일반 용어와 또 달랐습니다.
주위 약사님께도 여쭈어보고 내 아이들 에게도 물어 봅니다.
입원 하던 날 병원 숙직 닥터에게 이해가 안가는 단어를 여쭈어 보았습니다.
가르쳐 주시면서 “그건 알아서 뭐 하게요?” 되묻습니다.
하긴 그러네요. 모르는 게 약인데 알아서 뭣했을까?
가장 최근에 촬영한 12월 8일자 리피오돌 CT 의무 기록에 의하면, 여태껏 나왔던 tumor(암) 라는 말이 없어지고 대신 nodular (결절) 라는 단어만 나옵니다.
암이라는 단어가 의무 기록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이제부턴 두 단어의 차이점을 공부하렵니다. 어느 분께서 좀 알려 주세요.
글 쓰는 내내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더듬거리던 자판도 이젠 꾀 익숙해 졌습니다.
긴 글 읽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좋은 글 남겨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합니다.
약간의 시간을 두어, 남편이 진료 와 시술을 받게 되면 글을 또 올리겠습니다. 우리 주변의 아름다운 얘기며 희망적인 글이 될 것입니다.
말기암을 굳건히 이겨내준 남편 정말 고맙고 사랑합니다.
2006 1 3
< 세 잎 크로버의 꽃말은 5 >
2006 3 24
_ 요즈음 농촌은_
오전 내도록 비닐하우스에 모종을 심고 왔습니다.
이 모종은, 겨울이 채 끝나기도 전 2월쯤 스치로풀 박스 같은 곳에 부엽토와 퇴비를 담고 씨앗을 뿌려 양지바른 비닐하우스에 보온을 하여 두면 옹기종기 앞 다투어 머리를 내어 밉니다.
아주 여리디 여린 작은 이 새싹 한 포기 한 포기씩을 조심스레 떼어 모종판에 한구멍에 한 포기씩 옮겨 심어 얼마동안을 기릅니다.
이 싹들이 5cm 이상이 되어 튼튼해지면 비로소 비닐하우스나 밭에 옮겨 심는 것입니다.
정말 농민의 정성과 사랑으로 가꾸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아직 초보 농부라서 이런 것들은 감히 못하고 인정 많고 다정한 이웃 분께서 손수 가꾼 모판 세 개를 주셨는데 이것들을 비닐하우스에 심은 것입니다.
한판은 약 50포기 정도가 되는데 배추, 상추, 쑥갓, 아욱, 브로콜리, 적양배추가 싱그럽게 건강히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주신분의 정성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심었습니다.
비닐하우스에는 이것 외에 20일 전에 씨앗을 뿌린 무, 얼가리, 그린케일, 열무등이 뾰족이 머리를 내어 밀고 있어 보는 마음을 즐겁게 해 줍니다.
가지 잘라 주기와 껍질 까주기 등이 끝난 주위의 포도밭에는 냉이가 상큼한 향기를 뿌려냅니다. 양지바른 산자락에서는 달래도 캡니다.
우리 집 작은 연못 둘레에는 미나리며 쑥들도 돋아납니다.
가을에 묻어 두었던 튜우맆의 파아란 잎들도 정원 한켠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튜맆꽃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하여 봄 내내 앞마당에 쪼그리고 앉아있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꽃이 빨리 시들어 며칠 동안 밖에 누릴 수 없는 행복입니다.
봄에 한껏 아름다운 자태를 잠깐 자랑하고는 이내 시들고 맙니다.
꽃이 시들고 나면 캐어내 뿌리를 망에 담아 그늘에서 여름을 보내고 10월쯤에 밭에 심어 얼지 않게 위를 덮어 줍니다.
겨울을 밭에서 지낸 그것들이 지금 자라 올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튜우맆은 캐고 심는 시기가 우리네 즐겨먹는 마늘과 같습니다.
3년 전에 약 20주 정도 심었던 것이 잘 펴져 올해는 100여수 이상의 꽃을 볼 수 있게 되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하뿔사, 가을에 저장해 두었던 칸나 뿌리가 모두 죽고 만 것 입니다.
아마 보온이 잘 못 되었었나 봅니다. 하여 어제 남편이 몇 뿌리 사와서 연못 뒤에 심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은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남편은 아직 완쾌라는 단어 앞으로 질주 하고 있습니다.
2월의 MRI 촬영 소견은, S8과 S5경계부위에 조영 증강이 되는 부위가 있어 아직은 tumor 살아 있는 것 같다는, 새롭게 보이는 병변은 없다는 소견이었습니다.
혈액 검사 상 수치는, 낮아지던 백혈구가 정상으로 올라와 준 것과 혈소판이 점점 개선되고 있습니다.
하여 2월 23일 6번째 색전술을 받았습니다.
이날의 의무기록 소견서에 의하면, 5와 8 경계부위에 보이는 복잡한 혈맥관은 문맥 혈전에 공급되고 있다는 뜻(central portion에 tortuous한 hypertrophied vascular structure 와 함께 portal vein 으로의 shunt 가 보임, 아마도 portal vein tumor thrombi를 supply하는 tortuous한 vascular structure.....) 인듯 합니다. 늘 그렇지만 해석이 잘 된 것 인지 .....
이 색전술 2주 후, 3월 10일 lipiodol CT에 의한 의무 기록 사본 전문을 옮기겠습니다.
( small lipiodol uptake in s5,
lipiodol filled right hepatic artery,
others are nonremarkable findings ) 5구역과 우엽 동맥에 리피오돌이 집착 되어 있으며 다른 새로운 발견은 없다는 뜻 인듯 합니다.
이번 6번째 색전술을 받고나서 남편은 전에 없이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가슴 부분에 통증도 오고 소화도 안 되며 미열이 있어 밤새 힘들어 하다가 다음날 퇴원을 하여 집으로 돌아 왔는데 그런 증상은 집에 와서도 며칠 계속되어 힘들어 하다가 괜잖아 졌습니다,
현재 남편의 모습은 외관상으로는 완전히 아프기 이전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작년 초, 심할 때 64 킬로그램까지 내려갔던 몸 무개도 여름이 지나 가을을 거치며 좋아지고 있다고 말씀 드렸었는데 이제는 73킬로그램이 넘으려하여 비만 관리로 식사량을 줄이고 있습니다. (아프기 이전 몸 무개는 74~75킬로그램 이었습니다.)
겨울을 건강히 잘 지냈습니다. 감기도 걸리지 않았으며 피곤하다든가 가슴이 결린다든가 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색전술을 받은 직후 며칠 동안 안 좋았던 것 외에는 소화에도 문제없습니다.
날씨가 추워 낚시도 못가고, 조류들을 돌본다든가 개 두 마리를 돌본다든가 하는 잡다한 일과, 컴퓨터 검색도하며 지인들과 이메일을 주고받고 이웃 분들과 어울리기도 하며 주말에는 아이들과 즐겁게 보냈습니다.
겨울을 보낸 남편은 이제 활동양이 많아 졌습니다.
연못도 돌보고 텃밭도 갈며 나무도 가꿉니다.
공작 8마리는 아주 잘 커주어 제법 아름 답 습니다.
산계는 이제 막 알을 한 알 낳았습니다.
하얀 꽃닭(실크자보) 한 쌍은 10식구로 늘어 낫 습니다. 흰 비둘기도 열심히 알을 품고 있습니다.
오늘은 경조사일로 서울을 갔습니다. 남편이 없으니 주위가 적막강산입니다.
그동안 우리 집 가장 기쁜 일은 큰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입니다.
큰손녀 입학식 날 우리는 새벽에 출발하여 큰 아들네 집에 갔다가 입학식에 같이 참관 하였습니다.
입학식 하는 손녀를 보며 느낀 가슴 뭉클한 감동은 30여 년 전 지 아범 입학 할 때와 똑 같았습니다.
입학하는 신입생은 한반이 30명씩 모두 세반이 있었으며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아담한 사립학교 입니다. 남편이 첫 손녀 입학금을 내어 주었습니다. 입학식 끝나고 한-쿡에 가서 점심도 사 주었습니다.
헤어져 집에 오려는 순간 손녀가 할아버지를 불러 세우더니 귀엣말을 합니다.
“할아버지 입학 선물 없어?”
이리하여 지갑을 마저 털립니다. - 어구 예쁜 것-
이렇게 글 쓰는 모습을 본 아들이 내 컴퓨터를 따로 설치해 주었습니다. 17인치 액정 모니터라서 조명이 좋으면 돋보기 없이도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컴퓨터 실력은 조금 더 늘어 싸이 홈피에 글 올려 주시는 분께 답 글도 보낼 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달 중순경엔 둘째 아들의 첫 번째 아기가 태어납니다. 하늘이 내려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참고로 요즈음 남편의 하루 식사를 적어 봅니다.
병원 약은 먼저와 변함이 없습니다.
= 1일 약 - 이담분비제 3정, 간보호제 2정, 비타민제 3정
= 아침 식전 - 야채스프와 유린 1컵
= 아침식사 - 떡 한 조각(밤, 대추, 잣, 호두, 곶감, 단 호박범벅)
계란후라이 이분의 일
마늘 볶은 것 5~6알
연근조림 한 두 조각 (연근은 혈소판 개선에 탁월하다고 합니다) 감자 두어 조각
새싹채소 한줌 과 과일 소스
현미차 한 컵
= 오전중간식 - 각종과일 채소와 알로에(70g) 마 (50g)믹서,
야채스프 한컵
= 중식 - 잡곡밥과 반찬
현미차 한 컵
= 오후중간식 - 각종과일과 알로에, 마 믹서 (오전 중간식과 비슷함)
야채스프와 유린 한컵
= 저녁 - 새싹채소와 소스
잡곡밥과 반찬
현미차 한 컵
이상입니다.
반찬으로는 생선, 채소, 조개 종류를 많이 먹으며 그동안 먹지 않았던 육류는 먹을 일이 있으면 어쩌다가 먹습니다.
야채스프 라 함은 무, 무청, 당근, 표고버섯, 우엉 다린 물로, 현미 차 만드는 방법과 함께 <세잎 크로버의 꽃말은 1> 편에 자세히 적어 놓았습니다.
모든 먹는 양은 조금씩 줄였습니다만 앞으로의 운동 양에 의하여 달라 질 것입니다.
철저히 자연식을 합니다.
새싹채소는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곁들이는데 현재는 - 무, 순무, 브로콜리, 치커리, 겨자 (이것들은 조금 빨리 자랍니다 ), 붉은 케일, 붉은 양배추, 다채(비타민), 청경채, 알팔파, 들깨(이것들은 조금 늦게 자랍니다) 등을 커피스푼 하나씩 떠서 작은 소주잔에 물을 붓고 3~4시간 담구었다가 체나 전용용기에 심는데 1주일에 두 번 정도면 됩니다.(역시 1편에 자세히 적었습니다)
모든 먹는 물은 생수로 합니다.
마늘 과 연근, 감자 등도 잘 볶아 하루 두 번 새싹 채소 옆에 곁들입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에게 좋은 음식이 더욱 많아 질 계절입니다. 미나리, 돗 나물, 민들레, 냉이, 쑥 등등,
제가 잘 모르고 있는 점, 도움이 될 이야기나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홈피에 올려 주셔요. 더듬더듬 답 글 올려 드리겠습니다.
< 세 잎 크로버의 꽃말은 6>
2006 8 24
포도가 향기롭게 익는 가을이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정말 상당히 무더웠습니다. 환우 여러분들 에게도 힘든 여름이 아니었나 싶은데 그래도 현명하게 잘 지내셨으리라 생각 됩니다.
그동안 남편 병상 경과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세 잎 크로버의 꽃말은 >- 5편에서는 금년 2월의 색전술과 보름후의 3월 CT 촬영 까지 말씀 드렸으므로 그다음 진행과정을 계속하겠습니다.
5월 초 다시 CT촬영이 있었고 며칠 후 외래 진료가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암은 하나도 없습니다.”
박사님은 아주 명쾌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이 사실에 많은 희망을 가지셔야 합니다.
이 글 끝 부분에 다시 간략하게 그간의 경과를 얘기 하겠지만 2004년 12월, 간암 말기로 2~3개월 생존 가능 시한부 진단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오른쪽 문맥과 중앙 문맥이 꽉 막혀있고 우엽 간 또한 암이 심하게 펴져있어 수술과 치료가 불가능 했었던 이야기는 <세 잎 크로버의 꽃말은> 1편에 얘기 했었지요.
이날 박사님의 이 말씀에 미리 조금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기뻤습니다.
일단 CT상 눈에 보이는 암은 없어졌지만 혹시라도 미세하게 남아있는 놈이 있을까봐 다시 한 번 색전술을 받기로 박사님과 의논이 되어 7번째 색전술을 5월 말경에 받았습니다.
역시 당일 아침 일찍 병원에 도착하여 색전술을 받고 하룻밤을 병원에서 지낸 후 이튿날 퇴원 하였는데 이번에는 아무 후유증 없이 잘 지나갔습니다.
이때 혈관 조영을 하여 보니 문맥에 약간의 혈전이 남아 있어 치료를 하였습니다만 이 또한 암은 아닌듯 하다는 박사님의 진료 후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3개월의 무더운 여름을 보낸 오늘 남편은 금식 채혈과 CT촬영을 하러 병원에 갔습니다.
이번 CT촬영 결과에 따라서 9월 말경 예정되어 있는 색전술의 시술 유무가 결정 되어 질 듯 합니다. 그동안 3개월에 한 번씩이던 시술도 4개월로 간격이 넓어졌습니다.
남편이 병원에 가는 날은 거의 함께 동행 했으나 오늘은 나대로의 일이 있어서 함께 가지 못 하였습니다.
요즘 저의 집 주변은, 그 뜨거웠던 여름을 견딘 결실이 여기저기에 탐스럽게 영글고 있습니다.
포도밭에서는 잘 익은 포도 냄새가 향기로 날아옵니다.
복숭아는 상큼 달작 익었습니다.
한 그루 있는 사과도 붉게 물듭니다.
완전 무공해 풋고추도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토마토와 오이는 끝물입니다.
봄에 작은 연못에 심었던 연과 수련, 어리연이 앞 다투며 그 고결한 자태를 뽐냅니다.
이 연 꽃들을 바라보는 것이 이 막바지 여름, 남편과 나의 큰 기쁨입니다.
그동안 부화된 각종 조류들 병아리는 여름을 잘 견디어 아성조로 변하였습니다.
공작 8마리도 아름다운 청 공작으로 혹은 고결한 백 공작으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동안 <세 잎 크로버.............>는 오늘 까지 총 6편의 글들로 엮어 보았습니다.
회를 거듭 할수록 완쾌되는 모습 그릴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늘 간절한 바람입니다만 환우 여러분들이나 간병 가족 모두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럼 여기서 1편에서 6편까지의 그동안의 병상 일지를 차례대로 간단히 다시 엮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직장 건강 검진이 시작된 시점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닙니다.
남편 기억으로는 88년쯤에 직장 건강 검진을 받았고 그때 자신이 B형 간염 보균자임을 알게 되었으나 별다른 이상이나 증후 없이 지내다가
2000년 퇴직 직전 검진에서 간경화가 의심되니 조직검사를 받아 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조직검사라는 데서 오는 거부감도 있고 몸도 건강하고 하여 잊어버리고 퇴직을 하여 2001년부터 농촌 생활을 하게 됩니다.
2003년에 마침 이곳 보건소에서 하는 농촌지역 무료 검진이 있어서 초음파 검사를 받아봅니다.
여기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늘 간이 안 좋은 것에 대한 우려가 있던 터라 아무이상 없다는 것에 대하여 몹시 기뻐하며 안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그 진료에 약간의 의문이 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2004년 봄부터 가끔 피로와 소화 불량, 가슴 부위의 뻐근함 정도는 미세하게 느꼈으나 며칠 지나면 회복 되곤 하여 무시 하게 되었고,
또 위에서 언급 했듯이 몇 개월 전 무료 검진 받은 결과에 아무 이상 없다는 진단도 있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을 아니 했습니다.
당시에 우리는 포도 농사와 약간의 작물을 재배하는 3년차 농부였으며 마을 이장일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몹시 바빴고 또한 일이 고단하여 그르려니 했습니다.
여름이 되면서 몸이 점점 여위게 되고 위의 증상들도 빈도가 점점 짧아 져 9월에 가까운 동네 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하여보니 GOT, GPT, 감마 GTP등이 높게 나왔으니 큰 병원에 가 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만,
곧 포도 수확도 하게 되었고 지인들과의 즐거운 포도 잔치(?)와 둘째 아이 결혼 준비 등으로 잠시 잊고 지내는데 남편은 아주 조금씩 몸무게가 줄고 있었습니다.
얼굴색도 진하여 졌으나 농군이라 여름 태양 때문이려니 했습니다.
큰 병원 검진은 결혼식 이후로 미루자는 남편을 설득 하여 11월 S 의료원에서 혈액검사, 초음파, CT와 소변 대변, 위 내시경 등을 통원 하면서 검사 하였습니다.
2004 11월 S 의료원 - 간경화와 비장 비대가 있음.
간 우엽 중앙 부분과 뒷부분을 침범 하고 있는 불분명한 큰 덩어리 병소가 있으며 오른쪽 문맥과 중앙 문맥에 암 혈전
을 동반한 간암. (massive type HCC)
소량의 복수 동반.
식도 정맥.
영문으로 된 의무 기록 사본을 본 나의 대충 엉터리 해석입니다만 여기서 3개월 생존 가능을 처음 듣게 됩니다.
이미 수술이나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딱 한 가지 방사선 치료 방법이 있으나 이는 환자에게 고통만 줄 뿐 생명 연장에는 별 도움이 아니 되므로 담당 박사님도 권 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이 말씀 까지는 남편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예기 해 주셨습니다.)
본인의 의지로 치료하라는 당부 말씀도 있으셨는데 이 말씀은 환자 본인과 나 에게 큰 실망을 안겨 줍니다.
이미 안 좋아 지기 시작한 남편의 상태는 가속이 붙어 5개월 사이에 몸무게가 12kg이상이 줄어 62kg으로 되었습니다.
이 병원의 결과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치료 방법이 없다는데 그냥 주저앉기만 할 수 가없었으며 다른 곳에서 다시 진단도 받아보고 싶고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필요 했습니다.
하여 서울대 병원으로 옮기어 12월 중순경부터 10일 동안 외과에 입원 하면서 CT와 PET스켄 등을 받았는데 역시나 결과는 마찬 가지 .. 아니 잔여 생존 기간을 2개월이라고 했습니다. 벌써 한 달이 또 흐른 것입니다.
두 병원 다 똑 같은 진단 결과였습니다.(diffuse HCC - 퍼져있는 미만형 간암)
수술이나 이식은 불가능 하다 하였습니다.
남편은, 오랫동안 간염 보균자이고 그래서 어쩌면 간경화가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약간의 초기 암 이 있을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만약 병원에서 아무런 처치도 아니하고 그냥 가라하면 (먼저 S의료원 처럼) 환자 본인이 얼마나 낙담 하게 될까 싶어 병원에 근무하는 조카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포기 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무언가 치료를 받는다는 희망이 환자에게 필요 하지 않느냐.
듣기로 뭐 색전술이라는 것이 있다는데 환자 본인에게 크게 해 될 것이 없다면, 치료 성과가 없어도 좋으니 그저 시술만 받게 해 달라; 고 부탁을 하였고,
그래서 그랬는지 아니면 박사님의 결정 이셨는지 아무튼 색전술을 고려하게 되어 소화기내과로 전과 되어 1회 색전술을 받고 연말쯤 퇴원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간 기능 상태는 별로 나빠 있지 않았습니다.
소화기 내과 김 박사님의 치료가 시작된 것입니다.
처음 진단 직전부터 남편도 본인의 건강 상황이 안 좋다는 예감이 들었던지 술을 끊었습니다.
금주 덕분인지 한 달이 지나니 암 수치를 나타내는 AFP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몸은 많이 쇠진 하게 되어 운전이나 외출은 할 수 없게 됩니다.
퇴원하여 집에 온 후부터 우리는 간암과 함께하는 생활이 시작 됩니다.
우선 남편은 자신의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협조를 구하기가 힘이 듭니다.
남편이 잠든 사이 몰래 인터넷을 검색 한다든가, 간 질환에 관한 책, 암을 이긴 분들의 이야기가 적힌 책, 음식에 관한 책 , 요로법에 관한책 등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자연 식이 요법이 시작 됩니다. 그 책들은 계속하여 지금도 읽고 있습니다.
< 세 잎 크로버의........> 1편에 상세히 서술 했듯이
야채스프, 현미 차, 과일 신선한 채소 , 건 과류 떡, 잡곡밥, 새싹 채소 등을 요로법과 같이 시행하게 됩니다.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2달이 지난 2월말 경에 2번째 색전술을 받으러 갔습니다. (병원에서 말한 그 시한이 이미 다 된 것입니다.)
혈관이 많이 좁아져 있어서(암 때문에) 색전술이 어렵다며 기대에 못 미치니 다음에는 시행 안 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실망을 하면서도, 식이 요법을 하고 있는 지금이 2개월 전 처음 색전술을 했을 때보다 나빠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남편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여 있었습니다.
또한 병원에서도 진행속도가 급하지 않아 통상적인 다른 환자와 는 다르다는 점을 비췄을 때, 나는 암이 진행을 멈춘것 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진행만 되던 암이 멈추었다면 앞으로는 소멸될 일만 남았다는 희망에 식이요법을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집에서 생산 할 수 없는 필요한 재료는 현지 농장을 찾아다니며 구합니다.
이 2번째 색전술 보름 뒤에 CT를 찍어 본 결과는 약간 줄었다는 (shirinkage)판독이 나오고, 4번째 색전술 때가 되어서야 시술이 조금 순조로워 졌다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그동안 좁아진 혈관 사이로 색전술 하시느라 혈관 조영 팀에서 애써 주신 분들 정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감사 합니다.
이 조영영상 팀 팀장이신 백발이 성글어 더욱 기품이 돋보이는 박 박사님, 언제나 시술 후 환자들께 자상함과 정성으로 회진을 도시던 모습은 환우 가족들 에게 아주 많은 힘이 되어 주십니다. 감사합니다.
8월에 4번째 색전술을 받고 난후 며칠 뒤 조직 검사를 하였습니다.
암 세포는 불검출 되었습니다. 조직을 떼어낸 그 부분에서 검출이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다 낳을 수 있다는 확신 속에서 주변에 퍼져있는 아직은 살아있는 암의 존재들도 곧 없어 질것이라고 기대 하게 됩니다.
이때쯤에는, 그동안 정상인의 반 정도의 수치를 보이던 혈소판도 많이 개선되었고,
항암 치료 등으로 낮아만 지던 백혈구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 왔습니다. 조금 높았던 황달 수치도 정상이 되었습니다.
몸무게도 조금씩 늘기 시작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송산면에서 병원 까지는 약 70km 정도가 되는데 진료가 있는 날이면 이제 직접 병원까지 운전을 하고 다닙니다.
색전술을 받기위해 입 퇴원을 하는 날도 본인이 운전 합니다.
워낙 간 주변에 그놈들이 많이 퍼져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깨끗이 정리되기 까지 석 달 간격으로 5회(2005년 11월 ), 6회(2006 2월) 색전술도 받고 그동안도 식이 요법이며 요로법도 병행 했습니다.
그동안 여태껏 자기 상태를 잘 모르던 남편이 자신이 그렇게 급박한 상황이었다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하여 인터넷에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작년 말부터 이 글도 Tm게 됩니다.
몸무게는 아프기 이전 상태인 73kg으로 완전히 돌아 왔으며 얼굴빛은 그 이전 젊었을 때로 돌아간 듯이 좋아 졌습니다.
이젠 오히려 비만을 걱정하게 될까봐 겁이 납니다.
우리의 작은 텃밭에 각종 채소가 많은 봄이 되면서 그동안 15개월여 가꾸어 먹던 새싹 채소는 그만 두었습니다.
요로법도 그만 둔 듯합니다.
하루에 두 번씩 갈아 마시던 채소와 과일은 생과일을 그냥 먹는 것으로 대체 했습니다. 내가 아주 많이 편해 졌습니다.
금기시 했던 육류와 붉은 생선도 이젠 거부감 없이 먹습니다.
남편이 그만큼 완쾌 되었다는 뜻입니다.
지난 5월에 받은 7번째의 색전술은, 눈에는 안 보이나 혹시라도 남아 있는 것이 있을까봐 시술한 것이라고 이 글 서두에서 말씀 드렸고 오늘은 9월에 예정 되어 있는 다음 8번째 시술 여부에 대한 CT를 촬영 한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또 색전술을 받게 될 까요 안 받게 될 까요.
어느 쪽이든 지금처럼 우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 잘 달래어 보겠습니다.
병원 처방에 충실 했습니다.( 색전술과 알약 1일 3회)
남편의 완치에 가장 고마운 분은 담당해 주신 서울대 병원 소화기 내과 김 박사님 이십니다.
색전술을 시술해 주신 혈관 조영팀 여러분의 노고가 크십니다.
바쁜 중에도 늘 도움을 준 서울대 병원에 근무하는 조카님, 내가 너무 괴롭힌 것 아니지요?
환자 본인의 편안했던 마음가짐도 중요했습니다. (1년 동안은 모르고 있었지만. - 몰라서 나한테 튀 튀 거린 것 미안하지요?)
주위 분들의 관심과 걱정, 기도도 한몫 했습니다.
카페에 격려와 염려의 글 올려 주신 분, 홈피에 좋은 글 올려 주신 분 여러분들의 글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되어 주셨습니다. 모두가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하루 빨리 쾌유를 빕니다.
여기서 잠시 다른 분의 이야기를 해 보렵니다.
작년 이맘때 이웃 동네의 모녀 두 분이 나를 찾아 왔습니다.
그 여자 분의 남편은 폐암으로 계속 안 좋아져 이미 간으로도 암이 전이 된 상태로 여러 방법으로 치료를 해 보았으나 효력이 없어 큰 걱정을 하다가 우리 남편의 얘기를 듣고 찾아 온 것입니다.
나이는 60대 중반 정도로 기억이 됩니다만 아무튼 꼼꼼히 나의 얘기를 열심히 듣고 가셨는데 최근에 그분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그분이 건강을 많이 되찾아 일상생활을 하신다는 소식에 나도 정말 고맙고 기뻤습니다. 그분의 치료 방법에 제 얘기가 도움이 되었는지 다음 기회에 여쭈어 보겠습니다.
나 또한 여러분께 이 희망적인 글을 올리게 되어 즐겁습니다.
몇 달 후 다시 글 띄우겠습니다.
<세 잎 크로버의 꽃말은 7>
2006 9 6
금방 글 또 올립니다.
<세 잎 크로버.......> 6편에서는, 8월 24일 CT 촬영을 하러 갔고 이번 CT 촬영 결과에 의하여 9월 말경으로 예정 되어 있는 8번째의 색전술의 시술 여부가 결정 되어 진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어제 9월 5일 외래 진료를 다녀왔습니다.
결과는, 8번째의 색전술은 안 해도 된다는 박사님의 말씀이 있으셨으며,
10월말경에 CT와 혈액검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정말 그놈들이 CT 소견으로는 자취를 감춘 것으로 판단된 모양입니다.
얼른 이 소식 여러분께 알려 드리려 글 올리는 것입니다.
식 생활도 별로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그동안 복용하던 처방약도 계속 하여 먹을 것입니다.
처음 진단부터 완쾌된 지금 까지 22 개월 동안 남편의 치유 과정을
<세 잎 크로버의 꽃말은> 1편부터 7편 까지 띄워 드렸습니다.
그것 들 과의 동거와 전쟁에서 기꺼이 승리하신 남편께 엎드려 큰 절합니다.
이제 그 동안의 제 간병일기는 끝맺을 때가 온 것 같군요.
긴 글 읽어 주시고 격려와 희망을 주셨던 여러분이 제겐 바로 세 잎 크로버(꽃말이 행복) 이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종종 들러 여러분들과 얘기 나누겠습니다.
_ 송하 _
- 2013 송하가 드리는 글 -
안녕하셔요?
위의 간병지를 쓴 송하입니다.
남편 운경은 그렇게 10여년을 아주 건강히 사시다가 작년봄 고관절 부식으로 인하여 지난 8월 영면 하셨습니다,
환우,가족 여러분
희망은 늘 가까이 있습니다.
2013 10월 송하드림
첫댓글 아직 반도 못읽었지만 ~잘읽고 갑니다
저의 친정아버지께서 간암으로 돌아가셨기에 더더욱 맘이 찡합니다
틈나면 다시 들러겠습니다
온유님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동과 수정 과정이 서툴어 온유님 댓글이 없어 진곳이 있습니다. 심히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많이 배워가며 느끼며 아주 진지하게 읽고 있습니다
송하님 저두 송하님처럼 꿈이 잘 맞습니다 꿈꾼후에 생생하게 보이는굼은 분명 맞구요
정신없이 도망다니고 전쟁하고 하는 꿈들은 대게 말 그대로 개꿈입니다 ^^이담에 제 꿈이야기도 해드릴께요 ~~
그리구 온유는 아직 병원신세 한번도 진적이 없습니다 아들 둘 낳았지만 집에서 저혼자 처리 다 했답니다 애도 쉽게 낳다보니 그렇겠지만서도 정신도 쫴매 강한편입니다 늘 하는 입버릇이 짐승도 지새끼 낳아서 잘 키우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왜 애를 못낳는다고 호들갑이야~한답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제몸의 이상으로 인해서는 병원한번도 안가봤답니다
지난해에 종합검진 한번받았고 칫과에 스켈링 한번 외는 병원 가본적이 없습니다
살아오면서 자연스레 식생활도 야채위주였구요 ~한가지 더한다면 부끄러워서 남에게
말도 못하는 요로법입니다 송하님께서 요로법하시니 제가 틀어놓는겁니다
또한가지 저는 수시로 옻 액기스를 먹어준답니다 그외는 다른이들과 다를게 하나도 없지만
몸관리 안하고 일은 죽어라하고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무탈하는건 하나님의 은혜라 믿고 삽니다
다음에 또 소식 드리겠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송하님의 절실한 기도와 애절한 간병기록 눈시울이 뜨거워 집니다
하늘도 감동받았나 봅니다 차차 회복이 되신다는 글귀에 큰박수와 함께 감동감화에 감읍하면서
오늘은 이쯤에서 !~
긴 글 마다않고 읽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글은 간병인들 보시라고 상세히 적어 지루한 글입니다.
온유님의 타고난 건강은 최고의 축복을 받으신 것입니다.
송하님의 간병기 이제사 다 읽었습니다.눈시울이 뜨거워 질때도 많았고 나도모르게 탄성을하며 아!~다행이다 라는
소리도 나왔고 정말 대단하시다는 감탄과함께 저절로 고개숙이며 존경하는맘까지 가지게 되었답니다
과연 이 온유도 그런일이 있엇다면 저토록 묵묵히 송하님 처럼 헌신적으로 잘 해낼수 있을까를 자신에게 묻기도 했답니다
어림없는 일입니다 한두달이야 해 낼수 있었겠지만 의사들의 말만 믿고 금방 단념하고 말았을겁니다
송하님의 그 정성과 집념앞에 고개숙이며 존경하는 마음과 큰 박수 보냅니다
정말 애많이 쓰셨습니다 두말할 여지도 없이 간암 말기에서 완쾌라니요 ?~누가믿겠습니까 ?~
무엇보다도 환자분께서 완쾌 하셨다니 축하에 축하를 드립니다 남은여생은 두번다시 그런 끔찍한 고통 받지마시고
편히 사시길 두손모아 기원드립니다.
그리구 글을 읽기쉽도록 세잎크로바 편수로 올려주셔서 읽는데 전혀 지루함도 없었답니다.
송하님의 세심함이 곳곳이 묻어나는 간병기 였습니다 야채스프부터서 새싹 사라다까지 염치없지만 다른분들에게 희망이 될듯하여 퍼가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길 부탁 드려봅니다
묻고 싶은것도 많아 앞으로 들리겠습니다.많은것을 느끼고 배우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긴 글은 몇년전 암 관련 카페에 올렸던 글로 많은 분들이 읽고 전화해 주시고 방문해 주셨었습니다.
간단한 책으로도 엮어 컴에 서투른 분께 보네 드리기도 했었습니다. 어느 월간지에서는 연재 제의도 왔었으나 수정 원고에 은근히 상업성이 들어 간듯하여 거절했었습니다.
전화 하시는 분께는 이 글을 복사하여 꼼꼼히 읽기를 부탁 하였었습니다.
그리고 꼭 (야채 스프의 건강비법)이라는 책을 보시도록 권유합니다. 지금도 가끔 어찌 어찌 소식 듣는 분들께서 전화도 주십니다. 그분들은 제 할 일의 최우선 1순위 이십니다. 전화가 길어 질 때는 새벽 한 두시 까지도 합니다.
언제든지 복사 하시고 또 궁금해 하시는 분이 계셔서 전화 주시면 항상 통화 가능합니다.
온유님의 과찬 감사합니다. 종종 뵙기 희망합니다.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긴글. 못배운 저는 정말 어려운 글. 정말 슬픔을 감출 수 없어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습니다. 운경선생님이 건강하여 지셨다 하니 진실로 기뻤습니다. 이내 찾아온 저의 슬픔으로 저는 저는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이 글을 쓰면서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20년전 아버님을 간경화로 돌아가시게 하고 제가 어리고 가난하여 병원 한번 모시고 가본적이 없는 이 불효자식은 정말 정말... 몇해전 진심을 나눈 단하나 뿐인 친구도 똑같은 병으로 보내고 세상과 다른이와의 친교에 장벽을 쌓은 저로써는 눈물로 만이 이 글을 읽어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국화향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그럴게 떠나 보내셨다니 저또한 마음이 몹시 아파옵니다.
그 심정 너무도 깊이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