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美堂號(사미당호)
응와 조부는 꿈에서 “사미당 안에 네 가지 아름다움이 갖추어졌다.”라는 싯귀를 얻은 뒤 四美堂으로 자호하였다.
이 몽조를 부자형제 4인이 대소과에 급제할 것임을 나타낸다고 하였는데 사실로 되었다.
사미당의 一子 농서공(27,규진) 대과급제 → 子 응와공(28,원조) 대과급제
二子 함청헌(27,형진) 소과급제 → 子 한고공(28,원호) 소과급제
북비공부터 응와공까지 4대가 형제간에 양자를 주고받음
집안에서 父는 자애롭고, 子는 효도하고, 형제간에는 우애롭고, 공순하며.
집밖에서 충성하고, 믿음이 있고, 공경하며 몸가짐을 삼가라.
夢中得句(몽중득구)
돌아가신 할아버지(사미당 민겸)께서 일찍이 꿈속에서 “사미당 안에 네 가지 아름다움이 갖추어졌다.”라는 시 한 구절을 얻으셨다. 이에 지암 이공에게 부탁하여 篆書전서로 사미당의 편액을 써 걸고 불초 등에 훈계하기를 “이는 신령의 가르침이다. 어떤 사람은 너희 부자와 형제 네 사람이 모두 과거에 급제할 조짐이라 한다.”고 하셨는데 후일 과연 그렇게 되니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겼다. 그러나 내가 삼가 그 뜻을 해설하건데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사람들이 모두 영광스럽게 생각하므로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시에서는 사미를 두 번 말하였으니 위의 아름다움이 아래 아름다움의 근본이 되어 이러한 경사가 있게 된 것이다.
우리 집은 증조부 때부터 4대에 걸쳐 오직 형제만 있어 서로 양자를 주고받으며 후사를 이어왔다. 나의 생가 증조부(碩儒석유, 향년 26세)께서는 세상에 드문 재목이었지만 불행히도 오래 사시지 못했다. 증조할머니 숙인 배씨는 마음으로 아랫대를 이을 것을 맹세하여 나의 증조부모(碩文석문)에게 정성으로 도와줄 것을 구하여 생가 할아버지를(敏儉민검) 양자로 주기로 하셨다.
오호라 가문의 興替흥체(성쇠)는 오로지 世德세덕(대대로 쌓아온 미덕)의 깊고 얕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우리 집안 사미의 경사를 말할 진덴 앞의 두 세대가 쌓은 덕이 아니라면 어찌 뒤의 두 세대가 계승할 수 있었으리오. 비록 그러하나 과거 급제는 외물이다. 집안에서 자애롭고 효도하며 우애롭고 공손한 것과 문을 나와서는 충직하고 신실하며 공경하고 삼가는 것이 우리 집안의 네 가지 아름다움이니 선조께서 실천하신 바이고, 자손들이 마땅히 쫒을 바이다. 일곱 자 시구 아래위로 사미를 거듭 말하였으나 그 뜻은 진실로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 선조의 뜻을 체득하여 대대로 그 아름다움을 성취한다면 이를 바탕으로 백 가지 아름다움이나 천 가지 아름다움이라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응와전집 2책 속집 권17 사미당기》
警枕之敎(경침지교)
사미당의 교육방법, 언행, 爲先위선, 御家어가한 이력은 선세 胎謨태모의 결정이며 공에 이르러 누대의 遠志원지는 구상화하고 확충된다. 墨帳묵장으로 불렀던 木枕목침에 관한 일화와 선비로서 교학에 힘을 다한 공은 아들과 손자를 큰 인물이 되게 한 결실을 얻었다. 공은 가학과 가법을 지키고 불린 현손이고 가업 전수의 대업을 완성한 현조이다.
사미당은 종숙부 구완당 李碩五(이석오, 1712~1777)에게 수업하였으나 일과를 정해 勉督면독하지 않아도 스스로 刻苦自勵각고자려하였으며, 한개마을에 文翰문한을 일으킨 분은 사미당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사미당은 아마 자신 대에서 문한을 일으키리라고 결심한 것 같다. 아들 형제(규진, 형진)를 입재 정종로에게 수학시켰으며 손자 때에 이르러 더욱 교육방법이 삼엄하여 응와의 조고 행장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口念嘿數(구념묵수)
독서는 우리 유가 가문의 본분이라 후진을 가르치고 인재를 만드는 일이 나의 책임이다. 하시고 스스로 두문불출하고 정좌하여 방 하나에 책을 쌓아두고 아버지에게 명하시어 우리 형제들을 공부하게 하셨다. 공의(민겸) 교육방법은 대단히 엄격하였다. 낮에는 책상을 마주해 가르쳤고, 밤에는 벽을 사이에 두고 앉아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횟수를 세고 있었다.
밤이 깊어 글 읽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면 그 방으로 건너가 혹 의심 나는 뜻을 묻기도 하고, 혹 고사를 들어 분명히 알도록 했으며 정한 공부가 끝나야 비로소 돌아가 취침하는 것이었다. 장기와 바둑 등 유희 도구는 종신토록 집에 두지 않으셨다. 동시에 공부하려는 자는 많이 모아서 모두 그 재목에 따라서 성심껏 誘掖(유액, 이끌어 도와줌)하여 친족 중에 유학지사가 많은 것은 모두 부군의 가르침에 힘입은 것이다.
할머니 恭人공인께서 일찍이 작은 목침 하나를 들어 보이시면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의 할아버지가 너의 아버지를 가르치실 때의 회초리이다. 네 집을 학문하는 가문으로 이끈 도구이니 너희들도 목침의 뜻을 알고 부지런히 공부하라.”고 하셨다. 《응와전집 1책 권20 조고사미당부군행장》
【不習誦無以記】 소리내어 외우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치문경훈》
杜門盡敎(두문진교)
이민겸은 용모가 준엄하고 단정하며 말씀이 의연하고 씩씩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저절로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였다. 부모상은 물론이고 먼 친척 한 사람이 이웃 마을에 살다가 어버이의 상을 당해 돌아가려 하였다. 밤중에 달려가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혹독한 날씨에 홑옷을 입고 수백 리 길을 달려가면 틀림없이 동사할 것이다.” 하며 입던 솜옷을 벗어주었다. 향시에는 두 번 합격했으나 회시에 낙방하자 결연히 과거 공부를 그만두며 말하기를 마음에 얻고자 한 것이 여러 사람이다. 독서는 우리 사림의 본분이라 후진을 가르쳐 인재로 만드는 것이 나의 책임이다. 하고 이로부터 杜門靜坐두문정좌하여 동시 수학한 자가 심히 많았다. 재목에 따라서 성심껏 가르쳐 종중에 유학지사가 많은 것은 모두 그가 힘을 다해 가르친 덕이었다. 《성산지 권4 儒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