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의 미학

[김선규]

빈자의 미학과 Urban Void - 건축가 승효상


승효상


승효상은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학부와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하였으며 비엔나 공과대학에서 수학한 바 있다. 1974년부터 고 김수근의 '공간'에서 15년동안 설계수업을 받은 후 1989년부터 자신의 사무소 '종합건축사사무소 이로재'를 통해 독자적 활동을 하고있다.
현재 '한국건축가협회'와 '김수근 문화재단'의 이사인 그는 한국 건축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4.3그룹'의 일원이었으며 건축계의 개혁을 촉발한 '건미준(건축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의 핵심 멤버였다. 또한 새로운 건축교육을 모색하고자 건축가들이 설립한 '서울건축학교(SA)'의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지혜의 도시, 지혜의 건축'(1999), '빈자의 미학'(1996)과 4.3그룹 공저인 '이 시대 우리의 건축'(1994) 등이 있으며 칼럼니스트로서 여러 신문에 정기적으로 기고했다. 또한 한국건축가협회상(1991, 1992, 1998), 김수근 문화상(1993, 2000), 건축문화대상 본상(1993)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단국대, 한양대, 경기대 건축대학원, 이화여대 등에 출강하였으며,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북 런던대학의 객원 명예교수(Visiting Honorary Professor)로 초빙 받아 런던에 체류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승효상의 건축세계

승효상의 건축 철학인 '빈자의 미학' 은 이 시대가 필연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가를 명쾌히 보여주고 있다. '빈자의 미학'은 물리적으로 빈한 자의 퇴행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빈자이고자 하는 자의 실천적 미학이다. 이 정신은 지난 세기와는 또 다른 양태로 인간성이 상실되어 가는 세기말적 징후들과 맞서려는 강한 의지이다. 자연에 대한 경외, 도에 대한 갈구, 높은 안목, 청빈한 삶을 생활화 한 조선의 선비들과 기성의 세계에서부터 스스로를 구태여 추방시켜 구원의 길을 찾아 나서는 자코메티 등의 현대의 몇몇 예술가들에서까지 흔치 않게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승효상은 자신의 건축에서 Urban Void를 구현한다. 우리의 선조들이 만든 옛 지도의 대부분은 공백이다. 거기에는 현대 지도에서 읽기 힘든 지형의 세력이 보이고 물이 흐르는 소리가 있으며 우리의 삶의 흔적이 담겨 있다. 그 공백 속에는 삶의 은밀함이 보인다. 오늘날의 건축과 도시는 마스터플랜이라는 미명하에 숨쉬기 힘들 정도로 공백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고 꽉 들어차고 있다. 먼저 필요한 것들을 채워넣은 후에 생기는 것이 오늘날의 공백이다. 건축을 할 때, 먼저 채우지 않아야 할 부분을 생각하면 어떨까? 채우고나서 마지못해 남기는 것이 아니라 남겨야 할 것을 먼저 생각하고 나머지를 채우자는 것이다.
승효상은 근본주의자이며 영원한 본원의 세계를 추구하는 구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세우는 노출 콘크리트의 흰 벽, 그가 만드는 길과 마당은 고전적 비례감의 아름다움을 넘어선다. 때로는 일반에게 익숙한 미적 통념에서 벗어나 필요 이상 과장되거나 충격적으로 축소되기도 하는 그의 조형 언어는 우리의 일상을 진리의 세계로 연계시키고자 하는 처절한 순례의 결과이다.







대표작품



수졸당 (1992, 서울 논현동)

수졸당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쓴 영남대 유홍준 교수의 사택이다. 이 작품을 통해 건축가 승효상이 젊은 시절 많은 것을 배웠던 김수근 선생을 극복할 수있었다는 평가를 받을만큼 수졸당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수졸당이 위치한 곳은 우리 나라의 내노라 하는 이들이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는 논현동이다. 승효상은 이러한 주위 환경 속에서 '비움'을 표현하고자 한다. 사랑방과 옛담 등을 이용하여 우리 한옥의 구조를 응용함으로써 단지 그 구조뿐만이 아닌 청빈의 정신을 함께 담고 있다. 그럼으로써 60여평의 건물이 120평 이상의 느낌을 갖도록 하고 있다. 나는 수졸당이 서로 자신의 공간을 지키려고 바둥대는 도시 공간 속에서 이웃에 대해 배려하고 너그러이 관조하는 옛 선비의 모습을 담아 내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대학로 문화 공간 (1993,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 가면 고상한 문화로 가득 차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대학로를 직접 눈으로본 순간, 그 기대는 와르르 무너져 내려버린다. 술집과 노래방,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각종 화려한 건물들은 서로 자기를 봐달라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건축가 승효상씨는 이러한 대학로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자신 있게 말한다. 단지 남에게 보여지기만 위해 존재하는 건물은 너무나 불행 할 뿐이라고. 이러한 생각이 반영되어 설계된 건물이 바로 문화 공간이다. 그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다만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건물을 짓고 싶었다고 말한다. 문화 공간은 대학로의 이야기를 듣기만 함으로써 대학로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문화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져 그 무채색으로 진지함을 가득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오픈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그 안의 공연장, 화랑 등의 다양한 기능들이 외부와 직접 소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학로 문화 공간은 현재의 대학로를 환히 들여다보며 옛날의 대학로를 회상하고 서 있는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수백당 (1999, 경기도 양평군)

수졸당으로 찬사를 받았던 승효상이 6년만에 내 놓은 작품이 바로 수백당이다. 마치 수졸당의 동생인양 '수'자로 시작하는 이 수백당의 주제도 '비움'이다. 다만 수백당은 강남의 한복판에 갇혀 있는 수졸당과는 달리 북한강과 여러 산들 사이에 여유롭게 자리 잡고 있다. 승효상씨는 실외의 7개의 방에 굳이 정원이나 안뜰, 마당과 같은 이름을 붙이기를 거부한다. 그저 그 공간들은 장원과 더불어 비어있는 공백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 수백당이라는 공간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빛이다. 수백당의 창문들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벽 가운데 뚫린 환풍구가 아니다. 그가 만들어 낸 창들은 어느 방에서는 북한강변을 담고 있는 산수화가 되고 어느 방에서는 가느다란 모서리를 따라 정적인 분위기를 돋구어 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창과 공백을 통해 승효상은 자연과 소통하고 있는 공간을 연출하고 싶었던 것 같다.






웰컴 사옥 (2000, 서울 장충동)

웰컴 사옥은 장충단 공원에서 퇴계로로 넘어 가는 언덕길에 위치한 광고 회사 건물이다. 이 건물은 모 핸드폰 CF에서 주인공 이영애씨가 드레스를 입고 몰래 빠져나가는 사무실로 더 유명한 곳이다. 이 건물의 이름인 웰컴은 이 건물의 건축 개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광고라는 지극히 현대적인 작업을 하는 공간인 만큼 누가 오든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 오든 '웰컴'인 곳이 바로 이 곳이다. 그래서 승효상씨가 내세운 이 건물의 주제는 민주주의이다. 이 건물은 다원주의를 강조하는 만큼 공간 사이의 소통을 중요시한다. 단적인 예로 건물 사이사이의 넓직한 계단들은 단지 오르내리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이 쪽 공간과 저쪽 공간의 사람들이 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Urban Void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승효상씨는 이 건물을 통해서 자유롭게 소통하는 현대 사회를 꿈꾸어 보았는 지도 모른다.









주요작품목록

1975 광복 30주년 기념 전시관 , 서울
1977 마산 양덕성당
1979 국립 청주 박물관
1980 경동교회
국립 경주박물관 분관
1981 도나우스타트 2000 , Austria Wien
베써보넨 , Austria Linz
국제 경제센터 Austria Wien
미노레텐 광장 , Austiria Wien
1982 국립 중앙박물관 , 기본계획
서울대공원 마스터플랜 , 과천
차병원 , 서울
1983 서울대학교 동창회관
1984 주미 한국대사관저 , USA Washington DC.
서울법원 청사 , 서울
1986 성북동 P 주택 , 서울
1987 상록 회관 , 서울
눌원 빌딩 , 부산
1988 국립민속박물관 , 개축 , 서울
천주교 변동 교회 , 대전
1989 한국통신 디자인 지침
1990 제일병원 강남크리닉 , 서울
나다컨트리클럽 클럽하우스, 안성
1991 태흥영화사 사옥 -태 800 계획 , 서울
제일병원 IVF 센터 , 서울
1992 영동제일병원, 서울
이문 291 , 서울
학동 수졸당 , 서울
분당 단독주택, 공동주택, 분당 주택전람회단지
1993 대학로 문화공간 , 서울
시모노세키 P주택, 시모노세키
1994 돌마루 공소 , 당진
천주교 풍납동 성당 프로젝트 , 서울
순천향대학교 도서관 , 아산
윤산부인과 병원 , 구리
1995 K2 빌딩 , 서울
J 산부인과 병원, 성주
순천향병원 임상연구소 , 서울
율동법당 프로젝트 , 경주
1996 신동방본사 사옥 , 서울
삼세 한방병원
천주교 중곡동 성당 , 서울
세리헌 , 가평
1997 발산 제일병원 , 서울
산본 제일병원 , 군포
유 시어터 , 서울
실크리버 컨트리 클럽 클럽하우스 프로젝트 , 청원
백운감리교회 , 서울
현대 고등학교 체육시설 프로젝트 , 서울
1998 수백당 , 남양주
1999 포천중문의과 대학교 중앙도서관 , 포천
파주 출판문화 정보산업단지 건축지침 , 파주
안양대학교 중앙도서관 , 안양
2000 웰컴 사옥 , 서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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