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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피해자를 가까이 접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여성폭력의 양상이 얼마나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알게 된다. 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범주를 나누기가 힘들 정도로 하나의 폭력은 다른 폭력의 가능성을 증폭시키고, 중첩되어 가해지는 폭력피해는 여성들을 더욱 더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는다. 가정폭력과 성폭력 때문에 거리로 내몰렸다가 성매매 업소로 유입되고, 그 속에서 폭력과 착취에 시달리는 여성과 소녀들의 이야기는 통속적이지만, 여전히 슬픈 우리의 현실이다. 한 여성의 생애에서 이러한 폭력의 연쇄고리를 끊어낸다는 것은 문제의 복잡성만큼이나 다양하고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한,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창원여성의집은 가정폭력 피해여성과 아이들을 일시 보호하는 모자보호시설로서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된 해인 1997년에 설립되었다. 현재는 성매매 피해 청소년 지원시설인 범숙의집과 대안교육기관인 범숙학교, 여성긴급전화 1366, 위기청소년교육센터 등 다양한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시스템을 포괄하고 있다. 아동, 청소녀, 성인 등 폭력피해 여성의 생애주기를 촘촘하게 따라가면서 그 폭력의 연쇄고리를 끊어내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2007년에 발간된 창원여성의집 10년사에는 “복지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창원여성의집이 전국 최고의 여성복지시설이자 경남지역 여성인권운동의 본산으로 성장해온 지난 10년의 시간 속에는 항상 조현순 관장이 있었다.
조현순관장의 시작은 창원여성의집 이전인 가톨릭 여성회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화, 노동운동이 대세였던 시절, 그 역시 한국에는 가정폭력피해자가 없냐는 질문에 ‘없다’고 딱 잘라 말할 정도로 여성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영국의 가정폭력 피해여성 쉼터를 방문한 경험은 한국으로 돌아와 ‘매 맞는 여성’을 위한 쉼터 개소로 이어졌고, 지역사회에서 폭력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경험은 자연스럽게 성매매 피해여성으로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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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나라에는 매 맞는 여성이 없냐고 물어봐서 없다고 했죠 제가 1988년도와 89년도 사이에 프랑스와 영국에 갔어요. 영국에 6개월 동안 있을 때, 나한테 보여줄게 있음 보여 달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무슨 연립주택 같은 데를 데려갔어요. 저는 거창한 종합 복지관을 보여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빈약해 보이는 곳이라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이 사람들이 날 무시하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여기가 어디냐 라고 물었더니 동거남이나 남편한테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의 피난처다. 너희 나라에는 매 맞는 여성이 없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없다고 대답했죠. 진짜 없냐고 해서 다섯 번이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어요. 한국에는 그렇게 맞고 사는 사람이 없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돌아 온 90년에 가톨릭 여성회관 관장으로 부임을 했어요. 사실 그때만 해도 노동문제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지역 여성계 인사들이 매 맞는 여성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한국에도 매 맞는 여성이 있느냐고 물었을 정도였습니다. 그 계기로 쉼터를 시작했습니다. 1991년 5월에 쉼터가 문을 열었는데, 그 해 추석 때 서른 몇 명의 여성들이 아이들을 끌어안고 찾아왔습니다. 이것이 제가 여성복지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서 나에게 와줘서 너무 고맙구나
저희가 (쉼터) 문을 열고 2년 정도 되었을 때였어요. 어느 날 새벽 2시에 벨소리가 나서 문을 열었는데, 초등학교 1,2학년처럼 보이는 여자아이가 담배를 물고 경찰하고 같이 서 있는 거예요. 40대 남자랑 여인숙에서 자다가 걸렸는데, 남자는 도망가고 여자아이는 잡혔는데 잘 곳이 없다고, 경찰이 여기서 재워주면 안되겠냐고 부탁을 하더라고요. 제가 그 아이에게 고생이 많았겠구나 하고 이름을 물으니, 담배연기를 내 얼굴에 대고 푸우 하고 내뿜었어요. 아이가 증오와 분노와 미움으로 독기가 가득 찬 눈으로 저를 흘기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그때 내가 카메라를 들고 나와서는“니 CF감인데 다시 한 번 해봐라” 했더니, 욕을 하는 겁니다. 그러는 것을 아무소리 없이 사진을 30, 40판을 찍어대니 나중에 아이가 기가 죽더라고요. 경찰한테 제가 아이를 보살피겠다고 걱정 말라고 하고 돌려보냈어요. 문들 닫고 돌아서는데 이 아이를 어떻게 할까 한방에 날릴 방법이 없나 고민하는 중 아이와 눈을 마주쳤는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어요. 순간 아무 생각없이 뚜벅뚜벅 걸어가서 아이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처음엔 아이도 발버둥 치더니 곧 제 가슴속으로 파고들더라고요. 그때 제 머리에는 이 아이가 온갖 나쁜 일을 다 겪었을 텐데 죽지 않고 살아서 나에게 와줘서 너무 고맙다. 그리고 나쁜 어른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을 이 아이에게 어른인 내가 너한테 용서를 빌고 싶다... 그리고 이 아이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이 아이를 걱정해주는 엄마나 보호자가 없어서 이렇게 되었을 텐데 그 마지막 책임자가 필요하다면 내가 책임을 져야겠다 등등의 생각이 돌아갔습니다. 아이도 마음이 따뜻해진 듯해서 “니 배고프제?”. 했더니 아이의 눈이 반짝이더라고요. 라면하나 끓여줄까? 순간 아이 눈이 빤짝 저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절대 라면을 안 끊여주는데 이렇게 특별한 경우에는 라면이 최고의 선물이지요. 라면을 끊여서 함께 먹으면서 그렇게 순이는 나의 또 하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성매매의 현실과 너무도 부당한 사회의 집단 무의식적 폭력상황을 배워가면서 여성의과 인권에 대하여 눈이 뜨여갔습니다. 순이를 끌어안으면서 많이 울었고 여성이라서 겪어야하는 어이없는 현실 앞에서 이것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님도 배웠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 성매매 피해자들은 저에겐 스승인 셈입니다. 이들을 만나기 전에는 문제 조차도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이러면서 여성의식에 대해 눈을 뜨면서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이고 구조적인 문제구나라고 느꼈던 거죠.
맞아서 피투성이가 된 채 맨발로 도망나온 여성을 보호하면서, 독기에 가득 찬 채 담배연기를 뿜어대던 여자아이를 끌어안으면서 시작된 조현순 관장의 여성복지 활동은 그들이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시설에 있는 여성들이 불쌍해 보이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더 잘 입히고, 더 잘 먹이고, 더 잘해줘서 쉼터에 있을 동안만이라도 최고로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행복해지는 것은 여성들의 당연한 권리라는 생각에서다. 잔여적 복지마인드에 길들여진 공무원과 복지시설 종사자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도와주는 여성들이 불쌍해 보이기를 원하는’ 후원자들 역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신념을 가진 조현순 관장에게 여러 번 ‘죽을 뻔’했다고 한다.
영원히 복지시설에 있더라도 그들은 존중받을 사람들입니다 라이온즈 회원인 사모님들이 열 댓 명 온 적이 있어요. 그 때가 초겨울이었는데, 우리는 겨울에 한 달 난방비가 몇 백만원이 나올 정도에요. 맞아서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는 여성들은 따뜻하게 지내야 하거든요.... 어머니들이 여기 오면 제가 화장부터 시킵니다. 옷도 좋은 거 입으라고 하고, 하이힐 신고 워킹도 시키고....그 날도 어머니들이 화장도 하고 그러고 과일을 먹고 있다가 그 사람들이 들어갔는데, 표정이 이상한 거예요. 자기 아파트도 기름 때문에 잘 못 때는데....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데 우리가 도울 필요가 있냐고 그러고.... 그래서 내가 가라고 했어요. 어머니들 불쌍하게 보여서 동냥 받을 생각 없다 오래 있어봤자 9개월인데 그 이후에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여성들이다 난 더해주지 못해서 안달인데, 여기 있을수록 불쌍해지는 게 말이 되냐. 거지 도와주듯 하는 마음으로 왔다면 그냥 갔으면 좋겠다 고하여 돌려보냈습니다... 복지를 하면 돌봐준다, 베풀어준다, 도와준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위험한 생각은 없어요. 다른 사람들에 의해 빼앗긴 그들의 권리를 국가로 부터 위탁받아서 찾아주는 일을 하는 거죠... 복지를 하는 사람들은 복지를 하는 대상이 정말 존엄한 대상임을 인지해야한다는 거다.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존엄한 대상이다. 영원히 복지시설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존중받을 사람이라는 거다. 그에 대한 정리가 안 되면 복지하면 안 돼요. 그래서 내가 우리 선생님들에게 어머니들은 최고의 고객이다. 그분들 때문에 월급 받으니 고마워해야한다고 늘 말해요. 처음에는 시설 관리직원이 없었어요. 왜 관리 인력을 안 주냐고 복지부에 질의를 했더니 사지 멀쩡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이 하면 안 되냐고 해서 그 보건복지부 직원 나한테 죽을 뻔 했어요(웃음). 그래서 관리 인력이 생겼죠.
피해 여성들에게 항상 ‘더 못해줘서 안타까웠던’ 조현순 관장은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항상 기존 복지제도의 한계를 뛰어넘어 왔다. 기존 제도를 최대한 활용하되, 그 한계가 명확하면 제도를 바꾸어 내거나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 ‘범숙의집’과 ‘범숙학교’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소규모 생활공동체 그룹홈형태인 ‘범숙의집’과 시설형 대안학교 ‘범숙학교’는 가정과 학교에서 배제된 성피해 위기 청소녀에게 적절한 양육과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대안적인 복지시설이다.
청소년의 인권을 찾아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자 의무입니다
제가 생각해보니까 이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 것은 고통이겠더라고요. 일반학교를 가는 것은 100% 실패해요. 그래서 생각했죠. 우리도 학교를 만들자. 그래서 도교육청을 찾아갔어요. 교육청에서는 어이없어하고 결국은 교육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결국은 교육인적자원부를 찾아갔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청소년개발원과 함께 대안학교 공청회를 준비하게 되고, 저희가 하는 대안학교가 시설형 대한학교 모델로 제안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위탁교육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청소년 인권 중에는 양육되어져야할 권리, 교육받고 성장할 권리가 있어요. 권리를 찾아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자 의무입니다. 가출한 아이들한테 중요한 것은 양육되어지는 것이죠. 엄마가 있어도 제대로 양육을 못 받은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그룹홈 형태가 많아져야 해요. 제도교육이 안되면 위탁교육 등이 생겨서 충분히 교육받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국가가 서비스를 해주는 것, 18세까지는 의무이지만, 국가가 지금 의무를 안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아이들이 방임되고 있고 성매매로 유입되고 있는 겁니다. 국가가 의무수행을 못하고, 행정 하는 공무원들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셈이지만 그들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제도를 혁신한다 해도, 제도화된 시설에 투입되는 정부지원은 한정적,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하여 지역사회의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것은 사회적 낙인이 심하고, 장기간의 지원이 필요한 여성폭력 피해여성지원 기관의 리더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현순 관장은 지역사회에서 구축한 탄탄한 신뢰를 기반으로 ‘돈을 주고 싶도록 만드는’ 탁월한 리더십을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돈을 주고 싶도록 만드는 게 능력이지 이상하게 제가 일을 하려고 하면 주위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삼년 고생하긴 했지만요. 누구든지 신념을 가지고 끝까지 나아가면 길이 열린다고 생각해요. 비행기가 비행을 할 때처럼 그 날아오르기 가지가 힘들지만 어떤 순간 비상이 시작 되면 높이 날아오르는 것은 순간인 것처럼. 제가 도와달라는 말을 잘 못하는데, 제가 지역에 워낙 오래 살았고, 시민운동을 주도하다시피하니까 사람들이 어느 날 찾아와서 도와주더라고요. 우리 얘들 대학 보내는 돈으로 장학기금이 있는데, 돈이 다 나가면 또 차 있어요. 그 만큼 좋은 분들이 세상에는 더 많다는 뜻이지요. 돈은 자기가 가고 싶은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돈이 오고싶도록 만드는 능력이 중요한 것같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활동가는 비전을 줄 수 없어요 저는 활동가들 스스로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들이 행복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찾아야하는 것은 미래의 자기그림이고, 그 그림은 행복해야한다는 거죠. 각자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씨앗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그걸 찾아서 진정한 브랜드를 갖추어 가야한다고 봅니다.
같은 활동을 해도 칼라가 달라야하고 디자인도 다르고, 즉 그 사람만의 고유한 브랜드로 살아간다면 비교할 이유도 없고 비교 당할 이유도 없이 나는 나여서 좋은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내가 활동가여서 멋진 것이고 나를 보고 사람들은 꿈과 비전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활동가로 선택되어지는 것도 자기가 선택한 것이지만, 그것도 행운이에요. 그런데 이 행운을 충분히 인지하고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활동가를 만나면 너무 자신들이 안 행복해요.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 비전을 줄 수 없어요. 왜냐면 그를 만나는 사람들이 활동가를 통해서 가고자 하는 비전으로 가잖아요. 길의 입구잖아요. 그것을 잘 제공하는 것은 정말 훌륭한 일입니다 그래서 활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은 우리사회, 여성계로 봐서는 매우 소중하고, 소중한 만큼 그들이 행복해야하는 의무가 있는 거죠.
그렇다면 조현순 관장이 그리는 자신의 행복한 미래는 무엇일까? 복지분야의 여성리더를 키워내는 자신을 그리면서 그 일을 준비하고 있었고, 이제는 센터 설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물론 센터란 컴퓨터 한 대이고 인적 네트워크로 운영되며 한국의 모든 연수원은 우리의 연수원인셈이란다 21세기형의 센타를 꿈꾸는 조현순 관장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지금까지 여성폭력 피해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발휘했던 그의 리더십이 여성지도자를 양성하는데 집중된다면, 우리는 사회복지, 여성운동, 시민사회 영역에서 훌륭한 여성리더를 더 많이 보게 되지 않을까? 이는 우리 모두가 그릴 수 있는 행복한 미래이다.
내 그림은 3년이면 이루어진다니까요 저는 끊임없이 내 미래를 그려요. 내가 58살인데, 3년 전에 한국여성CEO센터의 대표로 제대로 된 CEO를 양성하는 그림을 그렸어요. 물론 그림은 멋지게 완성되어가고 있고요 프로그램개발 매뉴얼 완성 등 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데 저는 그림이 있으면 행복해요. 지금 막연하더라도 내 머리 속에서 그냥 그리고 또 그리면 그림은 어느 날 꼴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3년만 그리면 무엇이 되어 있는 경험을 여러 번 하면서 결국은 확신이 생기게 된 셈입니다. 그래서 나는 된다 된다하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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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행 및 정리 허나윤(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 정책홍보팀장) 사진 전석병 | |
첫댓글 마음속에 그렸으면 이미 다 된거라예!!!
잘읽고갑니다 양산에 다시 복귀해요
너무 멋진분이십니다^^ 감동!!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