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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고드름에 매단 존재의 고독 - 대승폭 단독 초등기 1990년 2월 3일
김운회 (경쟁의식은 무의미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등반은 다른 스포츠와 절대로 다르다고, 클라이머는 선수가 아니다. 그래서 등반은 경기가 아니다. 물론 경쟁자도 없다. 이것이 평소의 내 생각이었다. 등반은 결과를 놓고 우열을 가리지 않는다. 늘 여건이 바뀌는 장소에서 행해지기 때문이다. 오로지 순수한 마음속에서 스스로의 심판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등반에 대한 책임과 가치도 클라이머 자신이 갖고 있는 철학을 벗어나지 않는다. 등반의 동기가 과다한 경쟁의욕에서 발생된 것이라면 그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경쟁을 통해서 발전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등반에서는 다르다. 그 높은 위험성 때문에 과한 경쟁심이란 자칫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대한 '우선'은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다. 동물은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모험심, 그것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 우리나라의 빙벽등반 기술은 많은 향상을 보였다. 몇 개의 빙폭에서 새로운 등분이 이루어졌고, 빠른 속도등반, 솔로등반, 노자일(Ropless)등반이 성행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빙벽등반의 발전과정에서 당연한 경향일 것이다. 발전은 경쟁에서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좋다. 그러나 그런 경쟁심이 주위의 시선에 의해서 '강요'되고 있는 점도 없을 수는 없다. 등반의 당사자는 경쟁을 목적으로 했거나 초등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몇 분 빠르게 오른 것을 대단하게 평가하며 좀더 빠른 기록을 기대하고 좋은 빙폭이 있기에 오른 것을 은밀히 초등을 노린 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이는 충분한 기량을 갖고 있지 못한 클라이머에게 경쟁을 장려하는 식이 되어 무리한 등반을 행하게 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나는 대승폭 솔로 등반을 하고도 팀에게 죄송스런 마음를 가져야 했다. 나는 '먼저 오른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곳에 내가 올랐다'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될 뿐이다. 요즘 나는 빙폭에 가면 '형님' '아우'하며 오랜 교분을 갖고 있는 클라이머를 많이 만난다. 그들은 '청악은 왜 솔로등반을 하지 않느냐?'라고 묻는다. 솔로등반은 분명 능력있는 클라이머들의 새로운 등반행위이고 좀더 발전적인 등반의 결과를 얻는 수단일 것이다. 솔로등반은 클라이머가 '스스로 해냈다'는 것으로 해서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등반이다. 우리팀이 솔로등반을 금지하는 이유가 있다. 몇 년 전과는 달리 토왕폭을 비롯한 모든 빙폭에는 연일 여러 팀이 등반하고 있다. 수년 전에는 낙빙의 위험 때문에 한 팀 이상 등반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한꺼번에 많은 팀이 몰려 등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혼자서 자일 없이 오르려는 클라이머라면 이미 등반력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는 사람일 것이므로 등반 내적인 요소에 의해서는 절대로 추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클라이머라면 굳이 솔로등반을 피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위험은 다른 곳에 있다. 솔로 등반자는 다른 등반팀이 떨어뜨린 얼음이나 잦은 낙빙으로 인한 추락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다른 팀이 추락을 하며 충돌할 수도 있고 자일에 휘감겨 같이 떨어질 것도 배제해서는 안된다. 이외에도 등반외적인 위험요소는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아직 발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능성은 늘 존재하는 것이며 그러한 상황이란 곧바로 '죽음'과 직결된다. 솔로등반의 매력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극한의 모험속에. 그러한 위험을 들어 나의 선배들은 솔로등반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금지해 왔다. 나의 경우 처음에는 솔로등반에 대한 욕망이 매우 강했지만 팀과 선배님들의 뜻이 옳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솔로등반의 매력과 욕구를 스스로 절제 해왔다. 올해의 겨울은 유난히 빙벽등반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는 듯 했다. 많은 클라이머들이 대승폭, 소승폭 등을 올려는 의욕을 보였다. 주위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기사화 하는 등 뭔가 이루어질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이미 솔로등반은 보편화되고 있었다. 설악과 구곡을 오가며 클라이머들의 열정을 보며 '이러다가는 큰 사고 한번 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며칠 전부터 팀의 훈련을 위해 구곡에 와 있었다. 그때 나는 '구곡의 분위기' 속에서 '왜 좀더 그럴싸한 등반을 하지 않느냐?'라는 식의 보이지 않는 '압력'을 느끼게 됐다. 나는 사실 대승폭 등반을 한 그해부터 솔로등반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남들이 하고 있는 솔로등반이 기록에 자극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솔로등반의 경험은 없지만 언젠가는 할 것이고 그리고 한 번으로 그칠지 모르는 기회라는 생각에 국내에서 가장 어렵다는 대승폭을 등반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결심은 은밀한 음모였다. 누구에게도 애기하지 않았다. 청량리에서 우리회의 맹렬 여성맴버 김혜영이와 만나 구곡으로 가는 열차에서 애기를 꺼냈었다. 내가 '장수대로 가고 싶은데...'하지 그녀는 순수히 승낙했다. 구곡에서 장비를 챙겨나오는 길에 혜영이는 김종선 선배에게 전화를 하자고 했다. 나는 싫다고 했다. 솔로등반을 금지하는 마당에 김선배에게 전화를 하면 말릴 것이고, 그러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 그냥 떠나기로 한 것이였다. (37분간의 고독과 깨달음) 차속에서 등반을 생각했다. 동작 동작을 순서대로 머리에 그려보았다. 하강루트는 그쪽으로 잡고, 장비는 이것으로 하고, 비상사태가 나면 어떻하지? 등등. 원통에 내려 다방에 들어갔더니 안에 있던 사람들이 '눈이 많이 와서 차사고가 많았다'는 애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우린 '그래? 그렇게 눈이 많이 쌓여 있다면 떨어져도 안 다치겠구나' 하는 농담을 주고 받았다. 3일 아침, 장수대에 도착하니 러셀자욱이 나 있었다. 전망대에 도착하여 얼음상태를 보니 너무나 좋았다. 마음 한구석으로는 얼음이 떨어져 있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지만 얼음상태를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까지 나의 속마음을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온 혜영이에게 비로소 털어놓았다. 혜영이는 자신의 빌레이에 내가 등반을 하려는 것이 못내 걱정이 되었는지 다시 종선형에게 전화를 하자고 보챘다. 솔직히 만약의 사고가 나면 자신 혼자로는 뒷일을 감당할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0시 40분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혜영일 뒤로 하고 전망대에서 폭포하단으로 하강을 하였다. 하강자일이 회수되어 올라가는 것을 보며 그제서야 '홀로'라는 고독감이 엄습했다. 차고, 찍고 다시 차고, 찍고 그렇게 조금씩 오르면 한 시간 후쯤 폭포 위에 올라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승폭 출발지점에 섰다. 시계를 보니 11시 5분. 위에 걸린 고드름이 무섭게 나를 향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고 움찔했다. 루트파인딩을 한 후 출발지점을 바꾸기로 했다. 그곳으로 오르려면 가로막고 있는 고드름을 깨야 했다. 고드름을 제거하고 피켈을 찍어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오른손에 빅버드, 왼손엔 허밍버드 햄머를 들고 출발했다. 11시 40분. 항시 등반하는 것과 같이 자일을 묶고 오른다는 생각을 애써했다. 구곡폭포에서 60미터에 확보물을 한곳, 어떤 때는 설치하지 않고 오르기도 했으므로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방향을 바꿔 왼쪽으로 올라갔다. 얼음의 상태가 양쪽으로 고드름이라 오른손으로는 고드름 기둥을 잡고 왼발을 테라스에 올린 후, 다시 오른손의 빅버드를 힘껏 찍었다. 이때 왼쪽의 해머가 빠지면서 몸의 균형이 깨졌다. 그러나 오른쪽 빅버드가 몸을 지탱해 주었다. 전망대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러왔다. 고드름을 어럽게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혜영이가 격려의 소리를 지른 것이다. 초등 당시 하켄의 위치에서 쉬어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피켈에 매달려 약 2분간 쉬었다 다시 출발했다. 고드름 구간을 모두 끝내고 나니 완경사의 습한 얼음이 나타났다. 피켈과 해머가 너무나 잘 박혀 안정감을 주었다. 정사에 도착했을 때 산악회 선배들이 뭐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금기시하는 등반을 했기 때문이다. 12시 17분이었다. 등반에 소요된 시간은 37분. 한번쯤 경험하고 싶었던 등반애의 목적은 달성하였다. 기쁘긴 했다. 등반 전에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등반에서 솔로라는 것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여겼었나, 그러나 한편으로 그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다. 팀과 산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이 이곳까지도 와닿는 것 같았고 잠시 외도를 한 듯한 마음이 들어 편하지가 않았다. 결국 나는 솔로 등반을 하기 전과 후,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아무런 변화나 발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기록에 연연하지 말아야) 내가 대승폭을 자일없이 혼자 올랐다는 것이 빙벽등반 분야에 어떤 발전적인 영향을 주었겠는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의미를 두지말자, 그리고 두어서는 안된다.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빙벽상태는 해마다 변한다. 전에는 시도조차 못하던 곳, 어제 못한 등반이 오늘은 어렵지 않은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 대승폭도 작년에는 결빙이 안되어 못 오르지 않았던가. 빙폭의 난이도는 결빙시기, 또한 주변(특히일기) 여건에 따라 변한다. 특히 난이도가 높다는 빙폭일수록 그 차이가 더욱 심하다는 것은 얼음을 자주 대하는 클라이머들은 모두 알고 잇는 사실이다. 그러한 빙폭등반이기에 그 결과가 등반자의 능력을 재는 척도가 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이번 등반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며 두고두고 새겨볼 만한 계기로 삼을 작정이다. |
첫댓글 운회형!사랑해.....
갑자기 옜날일을??? 요즘분위기가 그때같긴하네....
중근아! 징그러.ㅋㅋ 고맙다.
당시 헤영이는 대승폭전망대에서 자기만을 남겨두고 혼자 대승폭하단을 향해 내려가는 김운회를 바라볼때,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없이 멀리 떠나가는 오빠를 바라보는 심정이었다고....
왠 오빠!!! 속으로 욕을 마구해대고 있었습니다. 날 이러곳에 데려와서 살 떨리게 쳐다보게 하고...선배님들께는 또 뭐라하고...그 때 쳐다보면서 10년 목숨은 줄었습메다. 그리고 나더니 또 나보고 올라가라 하고..그래서 또 작살나게 고생하고... 여하튼 덕분에 대승에 픽켈을 찍어 보았습니다.
산이 생각날때마다 이글을 읽으며 반성하겠습니다
읽을 때마다 한번더 생각하게 되 또 가고 싶습니다
갑자기 솔로로 대승폭을 오르고 싶은 기분이 드네요.
흉내로 나마 그때 심정을 느끼고 싶어서...........................
몇번을 읽어도~~~감동!!!
나에게 설악은 토항이 보이는 설악과 언제나 후배등반을 생각하는 운회 설악이 있습니다.
8000m 등반을 포기 할수 있는 설악 이야기도............사랑 합니다....... 문철한 입니다
회장님, 왜 갑자기 옛날 등반기를 올렸냐고요? 알면서 ^^
청악의 산악정신!!! Forever ~~~
나는 왜 긴장이 될까? 간만에 느끼는 이상한 느낌 , 아직도 나에게 작은 등반에 불시가 있는지.......
근데 그놈에 X15 바일는 어디에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