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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유감
글 : 이재범
94년 대만 타이뻬이를 시작으로 15년째 끈끈하게 이어져온 우리 학회의 해외세미나가 지난 여름에도 우리를 중국 황산으로 인도하였다. 많지 않은 18명의 회원과 가족들이 3박4일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함께하며 소동파의 고장 항주와 중국 최고 명산 황산을 거쳐 상해의 개발현장을 탐방하였다.
1. 일정
우리가 방문하는 지역은 항주, 상해, 황산으로 평균기온이 상해는 27.3도이고 황산은 17.3도로 항주와 상해는 더운 편이나 황산은 고산지대로 선선한 날씨였다. 환율은 어느새 200원까지 올라 우리를 부담스럽게 했다.
8월 20일 목요일 13시에 인천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 항공 OZ359편은 시차라는 축지법을 이용하여 비행시간 2시간 거리를 불과 한 시간 남짓 지난 14시 15분에 항주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항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3시간여 버스로 이동하여 황산에 여장을 풀었다.
둘쨋 날에는 황산시내를 관광한 후 10여분간 황산 케이블카를 타고 중턱에 올라 4시간여 산행을 해서 정상 부근에 있는 숙소에 올라 정상주와 함께 잠들었다.
셋째 날은 새벽에 일어나 일출을 감상한 뒤 버스를 타고 항주로 돌아와 발맛사지와 송성가무쇼를 즐기고 다시 3시간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상해로 이동하는 긴 여정이었다.
상해에서 맞이한 넷째 날에는 동방명주탑에 올라 상해시내를 조망하고 상해도시계획관과 2010엑스포 준비 현장을 탐방한 후 저녁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였다. 귀국하는 비행기는 돌아오기 아쉬워하는 우리의 마음을 아는 듯 16:30에 출발하여 3시간여 지난 19:20에 도착하는 지연술을 보여 주었다. 그제서야 하나님이 시차를 만든 이유를 알 듯했다.
2. 상해 글로벌 세미나
상해는 중국 최대도시이고 6000년의 역사도시로 총 면적은 6,184평방키로미터에 달하여 서울의 10배 정도로 광대한 지역에 산이 하나도 없는 평지이고 인구는 약 1,200만명으로 서울보다 약간 많은 정도에 불과하였다. 1842년 남경조약으로 개항된 조계지로 일찍부터 중국의 국제무역중심도시로 성장하였다. 1990년부터 중앙정부가 동북아의 허브도시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아래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하였다.
2015년까지 아태지구 국제무역의 중심이 되겠다는 목표로 양자강 연해도시와 연계한 상해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금융의 중심지로 육성하는 육가취금융지역과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시키려는 상해포동신구중심의 계획면적은 28평방키로미터에 달하며 현재 5.5평방키로 미터가 완성되어 450여개의 고층빌딩 건설되고 있다. 상해에는 증권, 기화, 산권, 부동산, 인재, 다이아몬드 등 7개 국가급 요소시장, 다국적 기업의 중국본부, 중국대기업의 본사 등이 소재하는 중국 상업의 중심도시이다.
1기 개발지구는 금융중심구, 죽원상업무역구, 화목행정문화구 3대 중점지역으로 구분하여 개발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유일하게 금융무역으로 명명한 국가급 개발구에는 83개의 국내외 금융기관과 300여 그룹의 본사가 밀집되어 있다. 상해의 도시계획은 중국, 영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의 전문가를 초청한 초현대적 도시설계를 자랑한다. 무역구는 포서하고 황포강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포동에 위치한다. 무역구에는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468미터의 동방명주타워, 세계3위라는 88층의 금무빌딩, 2008년에 건설된 101층의 글로벌 파이낸셜센터 등이 있다. 3번째 상해 방문만에 겨우 오르게 된 동방명주 타워는 방송탑으로 우리가 시내를 구경한 전망대는 90미터 높이에 있다고 한다. 허공에 뜬 전망대의 발판을 투명한 유리로 깔아 발밑을 내려다보는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다리가 떨려 잘 걸을 수 없었으나 촬영을 위해 몇 번 가장자리로 가보니 조금은 익숙해졌다.
상해 도시계획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상해성시계획관에는 과거의 도시계획도와 시내 사진첩을 전시해 놓은 전시실과 현재의 상해 도시모형을 미니어쳐로 만들어 놓은 전시실, 2010상해엑스포 전시관 등이 있었다. 인민광장 상해 시청사옆에 위치하고 2000년에 개관한 지하1층 지상5층 규모의 건물로 신축 당시인 2000년에 상해건축대상 백옥란상을 수상한 건물이라고 한다.
1930년 대의 상해 도시계획 모형, 도면, 사진 등에서부터 현재 상해의 모형과 미래의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2층에서는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고 3층과 4층은 중앙에 설치된 상해도시모형 미니어쳐를 중심으로 주변에 세계의 창, 주거, 교통, 환경, 여행, 미래 모형 등을 주제별로 전시하고 있었다.
상해는 오래된 역사도시인 만큼 재개발이 필요한 도시인데 역사유적이 많아 재개발이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주나 상주에 가면 개발중에 유적이 발견되어 개발업자를 골탕먹이는 땅이 많은 것과 같았다. 상해의 아파트는 전용면적 25평 규모가 보통 4억 정도 된다고 하며 최고가 아파트는 350억짜리도 있다고 한다.
오후에는 라텍스 매장에 들러 매트리스, 베개, 죽부인을 모방한 라부인 등을 구경하였는데 그중에서 라부인이 가장 인기가 좋았다. 베개는 디자인 바뀌었고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발베개도 등장하였다. 또 다른 변화는 올림픽과 엑스포를 통하여 중국의 도시에서 거지가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고 우리가 올림픽을 통하여 질서를 배운 것처럼 중국도 국제적인 행사를 통하여 세계의 일원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3. 항주의 미
항주는 우리가 중국에 도착한 첫째날과 황산에서 돌아와 상해로 이동하는 셋째 날에 들른 도시이다. 중국 동해안에 아열대 지역에 위치한 절강성도 항주는 총면적은 683평방키로미터, 인구 435만명의 중국 7대 고도의 하나로서 4계절이 분명한 풍요롭고 아름다운 도시이다. 도시 중앙으로 전단강이 흐르고 용정차를 비롯한 녹차와 더불어 뽕을 많이 재배하여 비단이 유명하다. 절강대학은 중국4대 명문이고 항주의 GNP는 U$9,000이 넘는 부자도시이며 서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름다운 호수로 알려져 있다. 높은 빌딩과 아파트는 우리나라의 도시와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었다.
9세기부터 237년 동안 14명의 황제가 수도로 선택할 만큼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도시로 도시 전체가 깨끗하고 아름다워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관광도시이다. 도시내에 개발된 운하는 도시를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으며 해질무렵 서호 주변의 찻집에서 저녁노을 바라보며 용정차를 마시며 즐기는 여유는 항주관광의 백미라고 한다.
첫째날 항주에서는 먼저 소산구경제개발지구를 둘러보았다. 수많은 고층 빌딩이 건축되고 있었다. 이 많은 건물을 채울 기업이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동시에 올라가는 건물들은 위협적이기도 했다. 항주의 국가급 소산경제기술개발지구는 1993년 5월에 국무원의 비준을 받아 설립되었다. 외자유치를 통해 공업 발전과 수출증대를 통한 와화획득을 목표로 현대적 공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항주소산경제개발지구는 항주소프트웨어 산업기지, 항주 강동공업원구, 소산고신기술산업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원원구에는 일본정강공업단지 내에 일본기업체인 마루베니 미쓰비시 이토추, 야마하 등과 대만기업체인 대만기계공업성, 고신기술창업중심 등이 입주해 있고 중화화학섬유업체로 프랑스 ECL이 입주하고 있다.
항주 도심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약 15키로미터 거리에 위치하는 정산개발지구에는 일본, 영국,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 벨기에, 싱가포르, 홍콩, 대만의 240여 기업이 입주하여 지역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으며 주로 일본과 대만 기업이 중심이다. 2002년 당시 투자총액은 15.5억달러에 달하고 외자계약액은 11.7억 달러에 달하였다. 우리가 주로 투자하는 북동지역의 연안 공업지구처럼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대만의 기업들이 중심이 되어 현대화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잠시 쉬기 위해 소동파가 만들었다는 서호에서 유람선을 탔다. 바람이 불지 않아 유람선은 더웠다. 서로가 객실에 설치된 작은 에어컨 바람을 맞으려 몰려들었다. 더위에 서호의 아름다움을 느낄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유람선보다는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버스안이 더 좋았다. 저녁을 먹기전에 항주의 젖줄 전단강변에 만들어지고 있는 철강신청항주보랑문화중심에 들러 중국의 건축 예술을 보았다. 구형으로 디자인해서 금빛 유리로 치장한 건물은 그들의 독창성과 건축예술을 통하여 지역을 알리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었다. 그 외에도 강변의 고수부지와 강뚝위에 설치한 광장을 연결하는 경사로 등은 토목기술에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보다 더 여유가 있어 보였다. 능율과 실용을 중심으로 하는 빨리빨리 문화에서는 추구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소동파가 멀리서 오는 친구를 대접하려고 준비한 삶은 돼지고기가 식자 술을 넣어 데워오라고 시켜 먹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는 동파육과 8가지 반찬에 반주를 곁들여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뒤로 동파육은 항주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차안에서 졸며 3시간 반을 달려 숙소인 황산송백골프리조트에 도착하였다. 18홀 골프장에 지어진 준5성급이라는 호텔은 우리나라 골프텔에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지어졌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눈앞에 펼쳐진 파란 잔디가 유혹하고 있었다. 골프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장이라도 필드로 달려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셋째 날에는 황산에서 내려와 황산시외 도로변 한식당에서 중식을 해결하고 항주 시내에 들어가기 전에 차가 유명해 찻집이 많은 마을에서 발맛사지를 받았다. 처음에는 길가에 늘어선 찻집과 멀리서 차를 마시기 위해 왔다는 주차된 차들을 보고 운치있게 차를 한잔 마시고 차 쇼핑도 하려니 생각했는데 설명과 달리 찻집들 사이에 있는 맛사지집으로 안내하여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5~6명씩 같은 방에서 맛사지를 받는데 맛사지걸이 끈질기게 발에 있는 각질을 제거하라고 권유해 일행중 2명이 마지못해 만원을 더 주고 응하였다. 돈을 더 주었으니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줄거라고 기대를 했는데 막상 끝나는 시간은 같았다. 일행을 위해 거금을 투자한 분들께 왜 내가 미안한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내게 맛사지를 해준 여식은 18세라고 하는데 머리가 영리하여 한국말을 매우 잘했다. 대화를 즐기면 일을 열심히 안한다는 가이드의 사전교육이 있어 일부러 말대꾸를 하지 않으려 했는데 너무 말을 잘해 대꾸를 안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띠를 물어 가르쳐 주었더니 금방 내 나이를 맞추었다. 아버지가 나보다 두살 아래고 월급은 우리 돈으로 40만원이라고 했다. 아직 학교에 다녀야할 많은 아이들이 돈벌이 나서는 모습이 안스러워 보였다. 동갑내기 우리딸은 아직 철부지로 보이는 데...
맛사지샆에서 나온 일행은 송성가무쇼를 보기 위해 공연장으로 이동하였다. 공연장에는 극장 외에도 민속장터가 꾸며져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장터를 한 바퀴 돌며 중국의 전통 음식과 소품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송성가무쇼는 송나라 시대 궁중에서 행해진 공연이라고 하는 데 내용이 다양하고 아름다워 볼만했다. 중국의 미녀들이 추는 중국 궁중 무용과 아라비아의 춤에 더하여 아리랑가락에 맞춰 우리나라의 부채춤 공연도 보여주었다. 저녁 식사후 과해대교를 지나 상해에 있는 준5성급 당조호텔에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항주만 과해대교는 영파와 상해를 잇는 다리로 금년 5월에 개통되었다고 하는 데 낮에 지나며 바다를 구경하면 좋을 것같았다.
4. 황산의 별
둘째 날에는 황산시내로 가서 150년 전에 건축된 안휘성의 전통가옥을 방문하였다. 안휘성의 전통가옥은 하나의 독립된 주택이 아닌 가문이 같이 거주하는 소규모 마을로 이루어졌다. 7~8채의 주택이 하나의 담장 안에 있었고 서당, 사당, 의인당(회의장)같은 공동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개별주택의 구조도 특이 하였다. 내부는 목조로 꾸며져 있었고 외벽은 벽돌을 쌓은 후 미장을 하였다. 남자들이 장기간 장사를 떠난 사이 여자와 노인들이 도둑으로부터 가정을 지키기 위해 창문이 높은 곳에 아주 작게 설치되어 있었으며 통풍은 중앙에 뚫린 하늘창을 통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1층은 식당과 거실로 이용하고 침실은 2층에 있으며 2층에 오르는 계단은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80센티 정도의 폭으로 좁고 경사가 가파르게 만들어져 2층에 오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온천구에 있는 한식당 서울관에서 한식으로 점심을 먹고 잠시 건너편 상점에 들러 서울에서 미쳐 준비하지 못한 밀집모자(12원)와 인스턴트커피 1상자(16원)를 샀다. 이제 황산을 오르기 위한 준비는 끝났다.
199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지정되었다는 황산은 중국인들이 꼽는 제일의 명산으로 중국 남부 안휘성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에 위치하여 숙박시설이 밀집한 지역인 온천구, 해발 1,680미터의 옥병루, 1,860미터의 정상 연화봉으로 나뉜다. 등산코스는 전산코스로 천도봉 - 옥병루 - 연화봉 - 광명정 - 서해대협곡 - 북해 - 시신봉 - 백아령 - 후산의 운곡사로 이어지는 힘든 코스와 후산의 운곡사에서 출발하여 전산으로 천도봉으로 가는 역코스가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아름답고 쉬운 역코스가 더 좋다고 한다.
한 시간 반 차로 꾸불꾸불한 산길을 올라 중턱에 있는 황산풍경구 관광 케이블카 정류장에 도착하였다. 황산의 입장료는 1인당 우리 돈으로 5만원 정도라고 하는데 중국인 관광객이 많아 놀랐다. 케이블카 승차장에는 승차를 기다리는 긴 줄이 있었는데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케이블카는 우리 일행의 두배가 넘는 인원을 동시에 태울 수 있는 대형이었다. 자광각에서 10여분 케이블카를 타고 전산 코스를 감상한 후 옥병루에 내렸다. 옥병루에서 숙소가 있는 북해까지의 세시간 반은 광명정, 연화봉, 비래석, 서해대협곡, 배운정의 전산 코스를 감상하며 황산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산행이었다. 깍아지른 절벽에 풀로 붙여놓은 듯한 폭 1미터 정도의 공중에 떠있는 길은 다리가 떨려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없게 하였다. 텔레비전의 황산 소개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는 아슬아슬한 광경을 우리가 직접 보여주는 멋진 순간이었다. 일행 중 몇 분은 겁이 나서 걷지를 못했다. 바위틈에 사람하나가 겨우 지나가게 만든 동굴도 있었다. 우리가 겁을 잔뜩 먹고 걷는 데 어떤 젊은 중국인 여성이 짧은 치마에 나뭇가지를 꺽어 만든 자연산 지팡이를 들고 마치 도사처럼 터벅터벅 걸으며 우리주위를 같이 걸어 신기하게 쳐다보았는데 마침내 우리 일행중 가장 총각같은(?) 임창희 선배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모두들 재미있어하며 한참을 동행하였다.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황산 제2의 고봉이라는 해발1,860미터의 광명정까지 2.65키로미터를 오르는 데 한 시간이 더 필요했다. 광명정은 구름이 자주 끼어 사방의 경치를 볼 수 있는 확률이 30%밖에 안돼 황산에 오르고도 산을 볼 수 없다는 데 우리는 운이 좋았다. 그러나 우리가 못 본 것도 있었다. 가이드는 광명정에서 보는 운해가 절경이라는 데 우리가 본 절경은 운해가 아닌 맑은 날의 황산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확률이 낮은 쪽을 보았으니 좋은 일 아닌가 싶다. 날씨가 너무 좋아 황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르게 보여 여러 전설을 가진 황산의 명소라고 하는 비래석을 한 방향에서 밖에 볼 수없는 것은 아쉬웠다. 서해대협곡에서는 천하의 일품 장가계가 생각났다. 장가계만큼 웅장하지는 않지만 나름 아름다웠다. 배운정은 신비한 바위들을 많이 감상할 수 있는 황산의 최고봉으로 정상에서 감상하는 일몰이 일품이라고 했다. 우리는 해지기전에 광명정에서 내려와 호텔옆 북해에서 바라보는 일몰에 만족해야 했다.
정상아래 해발1500미터 고지에 있는 4성급 북해사림호텔에서 저녁식사로 나온 거지닭을 안주로 발렌타인 21년산을 한 잔씩 나눠 마시고 별을 구경하러 나갔다. 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은 줄은 이곳에 오기 전에는 정말 알지 못하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 새까만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크고 작은 별들은 등산의 피로를 한번에 날려 주었다. W자로 선명하게 보이는 별자리와 북극성도 보았다. 한여름에도 정상은 추웠다.
한참 별을 보고나니 한 여름인데도 추위가 느껴져 술 생각이 났다. 호텔에 있는 슈퍼 앞에 모여 맥주잔을 기울이며 정담을 나누었다. 북해에는 우리가 묵은 사림호텔 외에도 2개정도의 호텔이 더 있었다. 특히 등소평이 묵었다는 방은 방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었고 방 앞에는 큰 간판을 세워 그가 묵었던 방임을 광고하고 있었다.
잠시 잠이 들었나 싶었는데 떠드는 소리가 들려 깨어 밖을 보니 호텔마당에서 비박을 하고 새벽 산행을 준비를 하는 등산객들의 부산함이 보였다. 지난 5월 지리산에서 본 산악인들이 생각났다. 세쨌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잠이 오지 않아 책을 읽다가 5시에 일출을 보기 위해 로비로 나갔다. 일행 10여명과 함께 관망 포인트에 오르니 좋은 자리는 이미 없었다. 진작 나올 걸 공연히 방에서 시간을 보냈나 싶었다. 뒤에서 기다리다가 사람들이 지르는 환호성에 해가 떠오르는 것을 알고 자리를 옮겨 동쪽을 바라보니 작은 접시만한 붉은 해가 보였다. 조금씩 커지고 붉어지더니 더 이상 바라볼 수 없게 밝아졌다. 붉은 색이 더 밝아지니 흰색에 가까워지는 듯 보였다.
일출 감상을 하며 사자봉과 청량대의 멋진 모습을 보고 꿈속의 붓에서 피어난 꽃과 같이 생겼다는 몽필생화와 시신봉까지 덤으로 보고 사진도 찍었다. 호텔로 돌아와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사람들 틈에 끼어 20분 정도를 걸으니 백아령에 도착하였다. 백아령에서 운곡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운곡사까지 10분 정도 하산하며 황산의 후산을 감상하였다. 운곡케이블카는 어제 탄 케이블카와 달리 스키장에 설치된 곤돌라같이 고급스러웠다.
운곡사에서 버스가 있는 곳까지는 4명씩 나누어 택시를 타고 꾸불꾸불한 산길을 내려왔다. 일반차량은 못 다니고 이 코스만 다니는 전용택시였다. 버스를 타고 항주로 이동하는 길옆 산비탈에는 차밭이 많이 보였다. 황산은 茶務都會라 불릴 만큼 차거래가 왕성했던 지역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 창밖을 보니 차창밖으로 보이는 주변이 모두 차밭이었다. 그럼에도 유명한 브랜드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을 보면 소프트웨어의 부족이 지역의 생산물을 제대로 홍보하지 못하여 제값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5. 에필로그
이번 해외세미나에서 당초에 접촉했던 개발업체 관계자와 상해 도시계획담당자가 모두 일정에 맞지 않아 의도했던 세미나는 못하고 현지 탐방만했던 것은 아쉬웠다. 또, 여러 번 방문하는 상해라서 기대감이 낮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상해가 수시로 변하는 역동적인 도시이다 보니 갈 때마다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일정에서 과거의 방문지와 중복되는 곳은 제외시킨 탓도 있었다.
중국이 변한 것은 환율만 오른 것이 아니었다. 먼저 도시가 깨끗해지고 거리에 거지가 없어졌으며 관광객의 얼굴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한국인이나 일본인 위주였던 관광지에 내국인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정부에서 보조금을 주면서 국내여행을 장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의 경제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무튼 동북아 공동체의 동반자이자 경쟁자인 중국이 발전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다. 더 노력하여 그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다. 그들에게 앞자리를 내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그들을 이끌어 가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을 더 많이 알아야 할 것이다. 가까운 나라 여러 번 가는 나라이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속 그들을 방문하여 연구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참가자 명단
권주훈(이계선), 김영모(이정희), 김덕진(정순철), 김석진(김명경), 김성일(이경애), 심재복(한명순), 임창희(김옥련), 노용호, 박문도, 지순옥, 이재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