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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德(정덕)第三癸巳(계사), 내가 四十九(사십구)歲(세)의 가을에, 때때로 御堂(어당)에서 開目抄(개목초)를 講義(강의)하였었다. 그런데 文底秘沈(문저비침)의 句(구)에 이르러서 그 義(의)가 甚深(심심)하고도 그 뜻이 難解(난해)하였다. 그러므로 文(문)을 三段(삼단)으로 나누고 義(의)를 十門(십문)으로 연 것이다. 草案(초안)은 이미 畢(필)하였으나 淸書(청서)는 아직 하지를 못하여서 헛되이 笈(급)속에 넣어 두고 이를 펼 틈이 없었느니라. 그런 然後(연후), 享保(향보)第十乙巳(을사), 내가 六十一(육십일)歲(세)의 봄에 어쩌다 이를 열람하건대 疏略(소략)이 좀 많았다. 故(고)로 대강 添削(첨삭)을 加(가)했으니 결코 未治(미치)의 本(본)을 남겨 두지 말지니라. 그런데 이 抄(초) 속에는 많은 大事(대사)를 밝히었다. 이는 오로지 法(법)으로 하여금 久住(구주)케 하기 爲(위)함이니 末弟(말제)들은 깊이 나의 뜻을 헤아려라云云(운운). 三重秘傳抄(삼중비전초)
開目抄上(개목초상)에 가로되 "一念三千(일념삼천)의 法門(법문)은 但(단) 法華經(법화경)의 本門(본문)壽量品(수량품)의 文底(문저)에 秘沈(비침)하셨습니라. 龍樹(용수) * 天親(천친)은 알고도 아직 弘通(홍통)하시지 않았으며 但(단) 우리 天台智者(천태지자)만이 이를 마음에 품었느니라"等(등)云云(운운) 묻기를, 方便品(방편품)의 十如實相(십여실상) * 壽量品(수량품)의 三妙合論(삼묘합론), 어찌 一念三千(일념삼천) * 經文(경문)의 面(면)에 顯然(현연)함이 아니겠는가. 宗祖(종조)는 어찌하여 文底秘沈(문저비침)이라고 말씀하셨는가. 答(답)하되, 이는 즉 當流深秘(당류심비)의 大事(대사)이니라. 故(고)로 文(문)은 적다 할지라도 意義(의의)는 풍부하다. 만약 이 文(문)을 분명히 밝히면 一代(일대)의 聖敎(성교)는 거울에 비추듯이 明白(명백)하며 三時(삼시)의 弘經(홍경)은 손바닥에 놓고서 봄과 같으니라. 故(고)로 先哲(선철)도 역시 分明(분명)하게 이를 判別(판별)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나와 같은 頑愚(완우)한 者(자)가 어찌 이를 解得(해득)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 講義(강의)를 하기 위해서 文(문)을 三段(삼단)으로 나누고, 義(의)를 十門(십문)으로 열어, 略(약)해서 文旨(문지)를 밝히느니라. 文(문)을 三段(삼단)으로 나눈다란 즉 標(표) * 釈(석) * 結(결)이니라. 義(의)를 十門(십문)으로 연다란 第一(제일)에 一念三千(일념삼천)의 法門(법문)을 듣기 어려움을 나타내고, 第二(제이)에 文相(문상)의 大旨(대지)를 나타내고, 第三(제삼)에 一念三千(일념삼천)의 數量(수량)을 나타내고, 第四(제사)에 一念(일념)에 三千(삼천)을 갖추는 相貌(상모)를 나타내고, 第五(제오)에 權實相對(권실상대)하여 一念三千(일념삼천)을 밝힘을 나타내고, 第六(제육)에 本迹相對(본적상대)하여 一念三千(일념삼천)을 밝힘을 나타내고, 第七(제칠)에 種脫相對(종탈상대)하여 一念三千(일념삼천)을 밝힘은 나타내고, 第八(제팔)에 事理(사리)의 一念三千(일념삼천)을 나타내고, 第九(제구)에 正像(정상)에 아직 弘通(홍통)되지 않은 까닭을 나타내고, 第十(제십)에 末法流布(말법유포)의 大白法(대백법)임을 나타내느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