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권력의 DNA - 김재홍 경기대 교수
2012년 다시 발호하는 박정희의 유령들
[박정희 권력의 DNA]<1> 대통령 선거를 위한 물음들
전두환 씨의 육사생도 사열과 국가보훈처 산하 골프장에서 VIP 골프, 그리고 강창희 국회의장 후보의 하나회 전력으로 여론층이 부글거린다. 박근혜 의원이 "5.16은 구국의 혁명이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모두가 박정희 권력을 상기시키는 사건들이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필자주>
<박정희 DNA ①>
지난 6월8일 육사 화랑대 연병장에서 전두환 씨 부부가 생도들의 사열을 받았다. 사열은 군에서 최고의 예우 표시다. 전 씨는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으로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까지 받은 반국가 범죄의 전과자다. 그에게 '명예'를 생명처럼 귀중히 여기는 생도들의 사열을 받게 하는 것이 가당하기나 하냐며 국민여론이 들끓었다. 그의 육사 행차는 또 무장 경찰 8명이 경호한 것으로 밝혀졌다.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박정희의 후예 보수정권 아래서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DNA ②>
이렇게 '박정희 프레임'이 대선 이슈로 비화하고 있는 이유는 많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이슈 중 11가지 박정희 DNA만 보아도 그렇다. 최근 새누리당은 19대 국회의 의장 후보로 강창희 의원을 선출했다. 별다른 변수가 없으면 다수당의 후보가 그대로 국회의장이 되는 게 상례다. 문제는 강 의원이 하나회 회원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하나회는 전두환이 조직한 정치장교 비밀결사로 박정희 정권의 비호아래 키워진 친위대였다. 박정희 사후엔 전두환이 주도한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에서 핵심집단 노릇을 했다. 어떻게 내란 집단의 회원 출신이 이 시대에 국가지도자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맡을 수 있단 말인가.
<박정희 DNA ③>
지난 6월5일 오후 호텔신라에서는 전두환의 손녀 결혼식이 있었다. 언론들이 억대 호화판 결혼식이라고 보도했다. 전두환은 내란죄 말고도 부정부패로 모은 돈 때문에 추징금 2205억원을 내라는 판결을 받았는데 현재 1600여억원 미납이다. 이 천문학적 규모의 검은 돈을 청와대에 앉아서 기업인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법정에서 재판장의 신문에 대해 전두환은"과거부터 내려 온 관행에 따라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과거의 관행이란 그의 전임 청와대 주인인 박정희가 했던 대로 했다는 뜻이다. 권력형 부패의 원조가 박정희였음을 전두환이 증언한 셈이다.
전두환은 추징금을 더 이상 내지 않고 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며 배 째라는 식으로 버텨 왔다. 그러면서 손녀의 결혼식을 억대 호화판으로 치르니 국민여론이 들끓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내년 10월까지 추징금을 추가로 환수하지 못하면 그에 대한 추징금 판결의 효력은 종료된다. 벌금의 경우 내지 못하면 노역으로 대체되지만 추징금은 그런 강제규정도 없다.
<박정희 DNA ④>
6월12일 전두환은 국가보훈처 산하 골프장에서 VIP대우를 받으며 골프를 즐겼다. 여기에도 무장한 경호경찰 8명과 차량 2대가 따라붙었다. 경호경찰대의 구성도 경정 1명, 경위 4명, 경사 3명 등 간부로만 이루어진 최고급이었다. 골프장의 관리 사장이 하나회 출신 예비역 장성인지라 최대한 잘 모셨으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반란과 내란 수괴가 어디에 가서도 특혜 특권을 누리는 호화 생활이 계속돼 온 것이다.
<박정희 DNA ⑤>
전두환과 함께 하나회를 조직하고 2인자 위상을 차지해 온 노태우도 최근 자신이 맡긴 비자금 420여억원을 임의로 처분했다며 사돈인 신명수 전 동방그룹 회장에 대해 수사요청서를 대검찰청에 냈다. 대법원이 지난 97년 노 씨에게 내린 판결은 군사반란과 내란에 대해 징역 12년, 그리고 부정부패 혐의로 2628억 9600만원의 추징금이었다.
우리나라 권력형 부패는 박정희에 의한 개발독재의 산물로 그 후예들에 의해 뿌리깊은 관행으로 이어져 왔음이 드러난 것이다. 노 씨는 이번 비자금을 회수하면 추징금을 완납하고 돈이 조금 남는다고 한다.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불법사찰은 박정희의 정보통치 DNA
<박정희 DNA ⑥>
이명박 정권의 국무총리실이 여야 정치인과 언론인, 기업인 등 자기들이 정한 요주의 인물에 대해 무차별적 사찰 감시를 해 왔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심지어 이용훈 대법원장까지 불법적으로 사찰해 왔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사찰 대상자는 정권측이 필요하면 그야말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야당 쪽 뿐아니라 여당인 한나라당 국회의원들도 포함됐다. 언론계 인사와 불교 조계종 간부 스님들도 사찰을 당했다.
이것은 박정희의 정보통치가 되살아난 모습이다. 과거 중앙정보부와 안기부가 했던 국민에 대한 광범한 사찰과 감시를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로 옮겨 교묘하게 해 온 것이다. 바로 박정희식 정보통치 DNA가 흐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박정희 DNA ⑦>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이루어 낸 남북 화해협력은 이명박 정권 아래서 완전히 파괴됐다. 당국간 대화는 물론이고 기업인 등 민간 차원의 교류도 대부분 중단되고 장벽이 높아졌다. 새누리당은 북한인권법을 준비하고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개선시키느냐는 방법론이 중요하다.
인권은 그 정치체제의 핵심 문제이고 헌법 정신과 직결돼 있다. 그래서 인권문제를 공격하는 것은 총성 없는 전쟁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동서독 분단 시절 서독의 정부나 정치인들은 공산주의 동독의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동독의 공산체제에 저항하다가 투옥되는 정치범을 비선 협상으로 돈 주고 데려오는 측면 지원을 지속적으로 했다. 그렇게 서로의 정치체제를 인정하고 적대감을 없애는 일만 했기 때문에 독일 통일이 조기에 가능했다.
이명박 정권의 가장 큰 실정 중 하나가 남북관계 단절이다. 단절을 넘어서 대북 대결주의로 적대감정을 격화시키고 있다. 이는 보수정권의 특성으로 박정희의 대북 대결주의 DNA가 흐르고 있다는 지표다.
박근혜 "5.16은 구국의 혁명이다"는 박정희 DNA의 결정판
<박정희 DNA ⑧>
박정희 DNA의 결정판은 뭐니뭐니해도 역시 박근혜 의원 자신의 정치 행보다. 박 의원은 "5.16쿠데타는 구국의 혁명이다"고 이미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위원회 토론에서 밝혔다. 그것이 요즘 다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박 의원은 이어 박정희의 1인 종신독재 체제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유신쿠데타에 대해서도 "역사에 그 평가를 맡겨야 한다"고 했다.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지 1년 후인 1975년 가을 한 행사에서 퍼스트 레이디 자리에 선 박근혜 의원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 두 언급이야말로 박정희 DNA의 종결자라 할 만하다. 그런 발언은 박 의원이 박정희의 딸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언행으로 검증할 때 민주주의 신봉자가 아니라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5.16과 유신은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파괴한 반란행위다. 박근혜 의원이 이것을 지지한다면 결코 의회주의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신념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도 괜찮은지 공론에 부쳐보아야 할 것이다.
<박정희 DNA ⑨>
박근혜 의원은 또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뽑는 과정에서 부정투표 의혹을 받은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겨냥해 "국가관이 불분명한 사람은 국회의원이 되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것이 신호였는지 새누리당은 부정투표 시비를 받고 있는 두 의원의 국회 제명을 추진하기도 했다.
국회의원을 국가관이라는 사상검증에 의해 축출하려는 것은 박정희의 정치적 DNA가 아닐 수 없다. 박 의원이 통진당의 두 의원에 대해 국가관이 아니라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지적했다면 문제는 달랐을 것이다.
박근혜 멘토 7인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 핵심들
<박정희 DNA ⑩>
박근혜 의원에게 박정희의 생물학적 부녀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행보가 문제라는 근거는 또 박 의원의 멘토단인 7인회에서 드러난다.
박정희 정권 아래서 재무장관을 지낸 최측근인 김용환 씨를 좌장 격으로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전 조선일보 발행인, 김용갑 전 총무처장관, 김기춘 전 법무장관, 현경대 전 의원, 강창희 의원이 그들이다.
모두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서 장관 등을 지낸 구시대 인물들이다. 이런 멘토단의 조언을 들으며 내놓는 정치행보가 구시대적일 것은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박정희의 정치적 DNA가 지금도 살아 움직인다는 증거인 셈이다.
<박정희 DNA ⑪>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부산일보와 KBS, MBC, YTN 등 언론 노조의 파업사태는 언론탄압의 박정희 DNA를 보여주었다. 특히 부산일보의 소유주인 정수장학회는 박정희가 부산 기업인 김지태가 세운 부일장학회 재산을 강탈해서 만들었다. 그 정수장학회의 부산일보에 대한 태도는 언론의 사회적 공기로서 공공성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구체적으로 언론 내부의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지 않고 정권이나 소유주에게 불리하게 보도하면 문책 인사를 강행한다. 우리나라에서 언론인 강제해직이라는 탄압은 박정희의 유신 통치기인 1975년 3월 처음 선을 보였다. 그 후 전두환도 1980년 언론인 강제해직과 기사 검열, 언론사 통폐합 등 갖가지 언론탄압을 자행했다.
12월 대통령선거 올바른 선택을 위한 물음들
작년은 5.16쿠데타 50년이었고 올해 10월로 유신쿠데타 40년을 맞는다. 박정희 권력의 등장과 독재화였다. 그리고 1979년 10월26일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권총 두발로 박정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어서 닥친 12.12군사반란과 5.17 내란으로 '박정희 없는 박정희 체제'가 지속됐다. 박정희가 키워 놓은 군내 친위대 하나회 집단, 이른바 신군부가 정권찬탈로 세운 5공과 6공이었다.
하나회의 수괴 전두환 노태우가 연거푸 대통령직을 거머쥐었다. 대법원은 1997년 4월17일 이같은 일련의 정권찬탈 과정을 반란과 내란으로 판결하고 전두환에게 사형, 노태우에게 징역 12년을 각각 선고했다. 내란에 의한 정권찬탈로 확정 판결이 난 것을 보면 그들의 대통령직이란 참칭한 것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국민이 선거에 의해 뽑은 대통령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97년 12월 대통령선거 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 복권을 요청했다. 국민 대화합이라는 명분에서였다. 이에 따라 전두환 노태우는 구속된 지 2년여 만에 석방된다. 그러나 이들에게 내려진 수천억원의 추징금 판결은 그대로 유효하나 아직 다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박정희의 정치적 DNA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차기 재집권을 넘보고 있다.
박정희 집권 50년이 지난 오늘 다시 발호하는 박정희의 정치적 DNA는 무엇인가, 그리고 박정희의 후예들인 전두환 노태우의 내란과정에서 힘을 발휘한 하나회는 어떻게 조직됐고 권력에 접근했는가, 이 모두가 오는 12월 올바른 선택을 위한 물음들이다.
필자 김재홍 교수는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니만펠로십을 수료했으며, 동아일보 논설위원과 제17대 국회의원을 거쳐 현재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에서 한국정치론을 강의하는 학자 언론인이다.